오릉 괘릉 김유신 장군묘에 담긴 설화 이야기
오릉 괘릉 김유신 장군묘에 담긴 설화 이야기
경주에는 잘 알려진 왕릉 외에도 수많은 능이 존재한다.
각자 옛이야기들을 품고 있는 왕릉과 위대한 인물들의 묘는 장소를 답사하는 것뿐만 아니라 무덤 안에 묻힌 주인공에 대해
공부하고 그들이 살아온 길을 되새겨 보는 것으로도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오늘 살펴볼 주인공들은 오릉에 묻힌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와 괘릉에 묻혀있는 통일신라 시대의 원성왕, 그리고 김유신장군묘에 묻혀있는 김유신 장군이다.
박혁거세와 알영왕비가 모셔져 있는 오릉
오릉은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 왕비인 알영, 제2대 남해왕, 3대 유리왕, 5대 파사왕의 능이다.
전형적인 원형 봉토분의 왕릉으로 아직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천마총’, ‘황남대총’과 같은 무덤들은 발굴조사가 끝난 무덤들이고, 발굴조사가 끝난 무덤은 ‘총’이라고 부른다.
오릉의 무덤들 중 제2호 분은 봉우리가 두 개로 쌍릉의 형태를 띄우고 있어 실제 무덤 안에 묻힌 사람이 6인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오릉의 첫 번째 주인공인 박혁거세는 61년 동안 신라를 다스렸던 인물이다.
그 후 하늘로 승천했는데 7일 후에 왕의 유체가 담엄사라는 사찰의 북쪽에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졌었고, 박혁거세의 부인인 알영왕비가 세상을 떠났다.
이에 백성들은 박혁거세와 알영의 시신을 한데 모아 장사를 지내려 했으나, 갑자기 큰 뱀이 나타나 이를 방해해 하는 수 없이 흩어진 상태
그대로 장사를 지내니 이를 5릉이라 부르게 된 계기가 되었으며 뱀이 방해를 하였다 하여 사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오릉의 능 동쪽에는 박혁거세의 제향을 받드는 숭덕전이 있다.
그리고 숭덕전 옆 관리사옥 뒤편으로는 신라시조 박혁거세의 왕비인 알영부인이 태어난 알영정이 있다.
신라인들은 예로부터 우물을 신성한 공간이라 생각했다.
알영정은 알영왕비가 태어난 우물이고, 박혁거세 역시 나정이라는 우물에서 태어났다.
알영정과 나정은 지척으로 붙어있으며 이 우물 주변은 신성한 공간으로 여겨져 보호되어왔다.
박혁거세의 부인인 알영은 용이 낳은 아이로 알영정 우물가에서 태어났다.
근처에 살던 노파가 가보니 용은 사라지고 여자아이만 남아있는데 아름다운 용모에 닭의 부리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아이를 데려와 개울가에서 입을 씻어주니 닭 부리는 없어지고 아름다운 용모가 드러났다.
알영은 아름답고 자태가 고왔으며 총기가 있는 아이로 자라났다.
소문을 들은 박혁거세가 알영을 데려와 비로 삼았는데 왕비가 되고 나서도 여전히 아름답고 단정한
자태를 잃지 않았으며 박혁거세를 정성을 다해 내조했다고 삼국사기에 전해지고 있다.
괘릉은 통일신라시대 원성왕의 무덤으로 잘 알려져 있다.
커다란 원형 봉토분만 있던 무덤양식에서 벗어나 중국 당나라의 영향을 받아 석물과 문.
무인상을 양쪽으로 세우고 무덤 주위에 둘레돌을 둘렀으며 둘레돌 주변으로는 십이지신상을 조각하여 왕릉으로서 위엄을 더했다.
괘릉이라는 뜻은 연못 위에 무덤을 살짝 걸었다는 의미로 원래 괘릉이 있던 자리에는 연못이 있었다고 한다.
연못을 흙으로 메우지 않고 왕릉을 그 위에 걸치듯이 만들었다고 해서 괘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괘릉은 통일신라시대 왕권이 안정화 되며 왕릉으로서 위엄을 갖추기 시작하는 과도기 단계의 무덤을 대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