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근대사의 중심지 대구

대한민국 근대사의 중심지 대구

대한민국 근대사의 중심지 대구

낮과 밤 자연과 기술의 조화로 국가대표급 매력 발산

1900년 초 일제는 한국을 경제적으로 파탄시켜 한국경제를 일제에 예속시키기 위해 강력한 차관정책을 썼다.

1907년 한국이 일제에 진 외채만 1300여만원, 더 이상 외채상환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게 되자.

대구를 중심으로 나라의 빚을 갚아 국권을 회복하자는 운동이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일어났다. 이 국채보상운동의 중심도시가 바로 대구다.

대구는 이렇게 한국 근대 역사의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해냈으며 지금도 그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대구의 골목 구석구석에 남아있다.

생생했던 당시 함성과 이야기가 들려오는 것 같은 대구 근대 골목투어의 출발점 동산 청라언덕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에는 근대 시대를 살다간 선교사들이 거주하던 주택이 그대로 보존되어 지금은 의료, 선교박물관으로 일반인들에게 개방되고 있다.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선교사 챔니스 주택은 당시 서양식 건축물의 낭만적이고 실용적인 측면일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우리의 근대문화유산이다.

동산의료원 옆 제일교회와 선교사 주택 사이로 난 90여개의 계단이 바로 3.1 만세운동길이다.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계단이지만 1919년 우리나라에서 일제의 무단통치에 항거하는 3.1만세운동이 일어났을 때

당시 대구의 학생들과 시민들은 이 계단을 통해 태극기를 흔들며 대구 시내로 쏟아져 내려왔다.

당시 생생했던 현장을 증언이라도 하듯이 계단 양쪽 벽으로 가득 당시의 사진과 글들이 전시되어있다.

한 장 한 장 역사책 읽어 내려가듯 소중하게 읽어 내려오면 서문시장으로 통하는 길이 나오며 계산성당과 마주하게 된다.

계산성당은 1902년에 건축된 우리나라에서 세번째로 오래된 고딕 양식의 건축물입니다.

1886년 로베트 신부가 경상도 지역에 천주교를 전파하던 중 현재 계산성당 자리에 초가집을 임시 성당으로 사용하게 되며 계산성당의 역사는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목조건물로 시작했으나 불에 타게되어 1902년 지금과 같은 고딕양식의 성당으로 다시 그 모습을 바꿨습니다.

계산성당은 대구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서양식 건축물임과 동시에 대구에서 유일한 1900년대 성당 건축물이기도 합니다.

일제강점기를 대표하는 저항시인 이상화의 시 한편을 대구의 어느 쌀쌀한 겨울 골목길 끝에서 만난다.

풋내 나는 살지고 부드러운 흙, 땀내나는 우리의 땅을 그는 상처 입은 다리로 절둑거리며 끝끝내 걸어가고 있다.

꿈결 속에 만난 듯한 다정한 이웃들, 지금은 빼앗긴 들이지만 봄을 기다리는 시인의 마음이 그대로 읽혀져 아름다웠던 그의 발자취를 느끼러 골목을 돌아간다.

골목 어귀에는 그의 명작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가 빼곡하게 벽화로 적혀있다.

그리고 그가 생전에 살았던 아름다운 작은 집을 골목 어귀에서 만날 수 있다.

이상화 고택에 사용된 고벽돌 담장은 당시 근대의 분위기를 잘 살리기 위해 KT&G 측으로부터 일부를 기증받아 복원하였다.

집안에는 그의 생전 유품과 사진들이 정갈하게 전시되어있어 시인 이상화의 흔적을 느껴볼 수 있다.

이상화 고택 바로 이웃해서 자리잡고 있는 고택은 국채보상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고 서상돈의 고택이다.

낮과 밤 자연과 기술의 조화로 국가대표급 매력 발산

낮과 밤 자연과 기술의 조화로 국가대표급 매력 발산

낮과 밤 자연과 기술의 조화로 국가대표급 매력 발산

518민주화운동의 흔적들 광주 전일빌딩245

죽은 강에서 생태 강으로 재탄생

20여 년의 시간이 훌쩍 지나 울산에서 먼 수도권에 살게 된 지금에야 울산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2019년 7월 태화강 지방정원이 국가정원으로 지정됐다는 소식을 접하면서다.

내 기억 속 태화강은 ‘썩은 강’이라고 전해들은 설명에 멈춰 있었다.

그런 태화강에 국가정원이라니? 두 눈을 씻고 기사를 다시 확인했다. 사실이었다.

태화강 국가정원은 순천만 국가정원에 이어 우리나라 제2호 국가정원이 됐다.

울산 도심을 가로질러 동해로 흘러가는 태화강은 산업화 논리가 우선되던 시절 오염이 심각해 농업용수는 물론 공업용수로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문제의식에 공감한 지역사회가 2000년대 들어 태화강 살리기 운동을 진행했다.

그 결과 수질이 6등급에서 1등급으로 크게 개선되고 물고기와 새, 식물이 다시금 서식하게 됐다. 죽은 강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이후 태화강은 국토해양부 선정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 환경부 지정 ‘대한민국 20대 생태관광지’에 이름을 올렸다.

태화강을 중심으로 조성한 생태공원은 지방정원을 거쳐 국가정원에 지정됐다.

그야말로 10~20년 사이 태화강과 그 일대에서 천지개벽에 가까운 변화가 일어났다.

회색빛 도시에서 초록빛 도시로~

난생처음 찾은 울산.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당연히 태화강 국가정원이다.

울산 도심의 태화강을 중심으로 조성한 84ha의 공원. 수치로 그 크기가 퍼뜩 가늠이 되지 않아 따져보니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 11배가 넘는 규모다.

어마어마한 면적에 6개 주제, 29개 세부 정원으로 이뤄져 있다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돌아볼지 고민이다. 이럴 때는 안내센터부터 찾는 게 답이다.

국가정원 주변에 주차장과 진입로가 여럿이다. 내비게이션에 ‘태화강국가정원안내센터’를 입력하고 바로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4층 규모의 안내센터는 안내데스크와 전시실, 전망대 등의 시설을 갖췄다.

친절한 안내데스크에서 국가정원에 대한 설명을 듣고 정원 지도도 챙긴다.

전시실도 살짝 들러본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태화강의 과거와 현재, 태화강 생태관광 등의 전시가 이뤄진다.

해설사가 상주하므로 신청하면 전시 설명도 들을 수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태화강에 얽힌 이야기를 머리에 담고 나니 정원을 더 알차고 재미있게 돌아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가상현실(VR)체험 코너에서 겨울철에 태화강을 찾는다는 떼까마귀의 군무를 감상한다.

시간과 계절을 맞춰야만 볼 수 있는 장관이 눈앞에 펼쳐진다. 실재처럼 생생하다.

해설사의 조언대로 4층의 하늘정원도 들른다. 야외 덱으로 꾸민 정원에서 태화강 국가정원을 한눈에 담아본다.

끝도 없이 펼쳐진 초록빛 세상을 보니 울산을 회색빛 도시로만 치부했던 선입견에 미안해진다.

태화강 국가정원의 푸른 꽃, 십리대숲

태화강 국가정원은 생태, 대나무, 계절, 수생, 참여, 무궁화 총 6개 주제로 이뤄진다. 안내센터가 위치한 곳이 대나무정원이다.

자연스럽게 대나무정원부터 산책한다. 대나무정원은 십리대숲, 대나무생태원, 은하수길, 대나무테마정원 같은 세부 정원으로 구성된다.

518민주화운동의 흔적들 광주 전일빌딩245

518민주화운동의 흔적들 광주 전일빌딩245

518민주화운동의 흔적들 광주 전일빌딩245

우리 아이의 신나는 겨울방학을 위하여

광주는 한국 민주화 운동사 첫 줄에 가장 굵은 글씨로 올라갈 지역이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가 ‘5·18민주화운동’에 기대어 성장했기 때문이다.

1980년 5월 전국으로 비상계엄이 확대된 상황에서도 광주시민과 학생들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에 나섰다.

12·12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했던 신군부세력은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군부대를 투입했는데 이 과정에서 시민과 학생들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되었다.

특히 시위대가 집회를 열었던 옛 전남도청사와 분수대 주변에서 큰 피해가 발생했다.

이 기간에 광주의 여러 건물과 시설물들에는 시민항쟁의 흔적이 남았다.

이러한 곳들은 현재 5·18민주화운동 사적지로 지정되어 있다.

전일빌딩245도 5·18민주화운동 사적지 중 하나다. ‘245’는 5·18민주화운동 중 전일빌딩245를 겨냥해 헬리콥터에서 정조준 사격한 횟수를 의미한다.

한때 이 빌딩은 광주 지역 언론사와 방송국, 도서관 등이 운영될 만큼 전성기를 누렸으나 세월이 흘러 점차 쇠퇴해 2011년 건물을 매매하기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주차장으로 이용하려 했지만, 건물 곳곳에서 5·18민주화운동 때 생긴 것으로 추정하는

다수의 탄흔이 발견되어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조사를 의뢰했다.

이후 진행된 국과수 현장 조사에서 모두 245개의 탄환이 확인되었고, 이는 헬리콥터 등 비행체에서 발사되었을 것으로 결론 내렸다.

국과수 결론 이후 애초 주차장으로 쓰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이곳을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리는 공간으로 리모델링하기로 결정했다.

건물 이름에 245라는 숫자가 붙은 것도 이때부터다.

그리고 2019년에는 전두환 사자명예훼손 재판 진행 중 국과수가 현장감식을 통해 25개의 탄흔을 추가 발견했다.

그러니까 현재 전일빌딩245에 박힌 총탄의 흔적은 모두 270개다.

탄흔은 건물 바깥에서부터 확인된다. 5·18민주광장 안에 있는 ‘민주의 종’이 설치된 종각 지붕 선 너머를 보면 전일빌딩245 외벽이 눈에 들어오는데,

이곳에 남은 총탄 자국 여러 개를 볼 수 있다. 국과수 발표대로라면 시민항쟁 기간 중 지금 전일빌딩245를

바라보는 위치의 공중 어딘가에 떠 있던 헬리콥터에서 건물 외벽을 향해 사격했다는 의미다.

전일빌딩245 실내로 들어가면 총탄 흔적을 보다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지상 10층과 지하 1층 중 광주콘텐츠허브로 사용 중인 5~7층을 제외한 나머지 층에 전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관람은 옥상에서부터 차례대로 내려오면서 볼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옥상 이름은 ‘전일마루’다. 전망 덱에 오르면 멀리 무등산까지 보인다.

전일빌딩245보다 멀찍이 떨어진 자리에서 5·18민주화운동의 전개를 묵묵히 지켜봤을 이 지역 대표 명산이다.

전일빌딩245 공간 중 핵심은 10층과 9층에 운영 중인 ‘19800518’ 전시관이다. 10층으로 들어가자마자 벽과 천장에

설치된 <검은 하늘 그날:전일빌딩>(정영창 작가)과 <민주의 탄환>(이혜경 작가) 두 작품에 압도당한다.

흑백으로 전일빌딩245를 묘사한 그림과 건물 방향이 아닌 정반대로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고 있는 수많은 총알을 상징하는 설치 작품이다.

우리 아이의 신나는 겨울방학을 위하여

우리 아이의 신나는 겨울방학을 위하여

우리 아이의 신나는 겨울방학을 위하여

쓰레기 소각장이 예술의 중심지가 되다 부천아트벙커B39

경남 남해의 독일마을과 미국마을, 경기도 가평 쁘띠프랑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각 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와 전통을 만나는 이국적인 마을이라는 점이다.

특히 가평에는 유럽 여행을 하면 몇 손가락 안에 꼽는 유럽의 풍경을 간직한 곳들이 있다.

프랑스를 떠올리는 쁘띠프랑스가 대표적이지만, 지난해 청평호 건너편에 또 하나의 유럽 마을이 생겼다.

알프스의 고장 스위스를 테마로 한 에델바이스 스위스테마파크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와 스위스를 상징하는 베른베어, 유럽의 지붕이라 부르는 마터호른 등 스위스의 정취를 함께 즐겨보자.

에델바이스 스위스테마파크는 스위스를 주제로 한 전문 테마파크다.

입구에 들어서면 스위스의 고성을 닮은 스위스테마관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파스텔 톤의 밝은 원색을 입힌 건물 외관에 스위스의 다양한 문장과 그림을 넣고 창문도 예쁘게 꾸며 마치 동화의 나라에 온 듯하다.

에델바이스 스위스마을은 스위스테마관, 러브 프로포즈관, 스위스 스토리, 산타빌리지, 베른베어 등 테마관을 비롯해

커피박물관, 치즈박물관, 초콜릿박물관 등 아담한 전시 공간, 더츠커피와 마테호른 레스토랑 등 먹고 마시며 쉴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은 매표소 건물 2층에 위치한 스위스테마관이다.

스위스 하면 떠오르는 눈 덮인 산과 푸른 초원 위에 펼쳐진 그림 같은 마을, 마터호른, 알프스 구조견인 세인트 버나드

스위스의 나팔인 알펜호른 등을 만날 수 있다. 아담하고 소소하지만 스위스를 한번 둘러보고 스위스 마을을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융프라우의 설산과 푸른 초원을 배경으로 스위스의 아름다운 마을을 디오라마로 꾸몄다.

융프라우 기차가 지나가는 길을 따라 스위스의 모습을 눈여겨보자.

인터라켄과 융프라우의 야경을 보여주는 디오라마도 인상적이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형형색색의 집들에 조명이 비춰지면서 화려한 색감을 선보인다.

스위스마을에 있는 23채의 집 가운데 10채는 박물관과 테마 공간으로 꾸며졌다.

그중 박물관은 세 곳으로 각각 커피와 치즈, 초콜릿을 주제로 하고 있다.

단순히 전시물을 보여주는 데서 벗어나 입체적인 디오라마로 구성해 보는 재미를 더한다.

커피박물관은 스위스테마관에서 가장 가깝다. 1층은 마테호른 레스토랑, 2층은 더츠커피다.

더츠커피에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여러 개의 커피자루를 이고 있는 힘센 노동자의 모습이 벽에 그려져 있다.

세계전도를 통해 커피가 아프리카에서 중동과 유럽, 바다 건너 중남미 대륙으로 전파되는 모습을 한눈에 보여주니 커피의 역사와 이동 경로가 머릿속에 쉽게 그려진다.

반대편은 검은색 배경에 다양한 커피 이야기가 새겨져 있다. 에티오피아에서 ‘분나 마프라트’라 부르는 커피 세리모니도 인상적이다.

귀한 손님에게 커피를 석 잔 대접하는데, 첫 잔은 맛, 두 번째 잔은 행운, 세 번째 잔은 축복을 뜻한다고 한다.

18세기 유럽은 그야말로 커피의 대유행시대였다.

음악의 아버지 요한 세바스찬 바흐가 작곡한 <칸타타 BWV 211>은 일명 ‘커피 칸타타’로 불리는데, 커피하우스에서 주로 연주된 곡이라 한다.

“수천 번의 키스보다도 더 달콤하고, 맛 좋은 포도주보다도 더 부드럽지”라고 한 칸타타 속 여주인공

리스헨의 아리아만 보더라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커피 맛에 반했는지 알 수 있다.

더츠커피의 야외 테라스로 나가면 산 아래 너른 분지와 곡달산의 우람한 산세가 한눈에 바라다보인다.

쓰레기 소각장이 예술의 중심지가 되다 부천아트벙커B39

쓰레기 소각장이 예술의 중심지가 되다 부천아트벙커B39

쓰레기 소각장이 예술의 중심지가 되다 부천아트벙커B39

삼국시대 돌방무덤에서 디지털 수족관까지 타임머신 여행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에 자리한 복합문화공간 ‘부천아트벙커B39’는 원래 부천 중동신도시 개발 때 설치된 쓰레기 처리 시설 ‘삼정동 소각장’이었다.

1995년 5월 완공된 이 소각장은 하루 200톤 규모의 쓰레기를 처리하며 끊임없이 돌아갔다.

그러던 중, 문제가 터졌다. 1997년 서울 난지도 매립장과 경기도 안양 소각장 등에서 다이옥신이 과다 배출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었다.

정부는 전국 쓰레기 처리 시설의 다이옥신 배출량을 조사했고, 이곳 또한 논란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이른바 ‘다이옥신 파동’의 시작이었다.

결국, 삼정동 소각장은 2010년 문을 닫았다.

시설 노후화에 따른 운영의 효율성이 감소했고, 정부의 폐기물 관리 정책에도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부천시는 소각장 부지를 버려두기보다는 새로운 복합문화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부천아트벙커B39는 그렇게 탄생했다.

2018년, 부천아트벙커B39는 수년간의 재정비 끝에 문을 열었다.

기존의 소각장 모습을 오롯이 보존하면서도 예술적인 면모를 담아낼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쓰레기를 쌓고, 태우고, 처리해야 했던 소각장 특유의 구조는 더욱더 새로운 예술적 시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꾸며졌다.

1층부터 3층까지는 전시실을 만들고, 4층과 5층은 보존 구역으로 남겨 옛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1층은 벙커와 멀티미디어홀, 에어갤러리, 재벙커, 유인송풍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벙커는 쓰레기 저장조였던 시설로, 높이만 39m에 달하는 거대한 구조물이다.

부천아트벙커B39라는 이름이 여기서 나왔다.

압도적인 크기의 구조물은 옛 모습을 유추할 수 있게 해준다.

부천시에서 수거한 쓰레기가 이곳에 가득 찼었다.

멀티미디어홀은 과거에 쓰레기 수거 차량이 드나들었던 반입실이었다.

쓰레기를 가득 실은 트럭이 이곳에 도착한 뒤, 벽면에 설치된 철제문 너머로 처리하는 과정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트럭 몇 대가 오갈 정도로 규모가 큰 곳이어서인지 여러 전시가 열리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때로는 그림이나 사진이, 때로는 미디어아트 전시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벙커와 멀티미디어홀 사이를 벙커브릿지가 연결한다.

원래 삼정동 소각장에는 이러한 연결로가 없었다.

벙커브릿지는 삼정동 소각장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리모델링할 때 새롭게 설치한 시설이다.

이 다리 위에서 벙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계단을 이용하면 벙커 바닥까지 내려가 보는 것도 가능하다.

쓰레기를 저장했던 곳인 만큼 거대한 크레인과 조종실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독특한 구조와 여전히 음침한 분위기, 쓰레기 저장소였다는 특수성이 있어서인지 영상 작품이 주로 전시된다.

삼국시대 돌방무덤에서 디지털 수족관까지 타임머신 여행

삼국시대 돌방무덤에서 디지털 수족관까지 타임머신 여행

삼국시대 돌방무덤에서 디지털 수족관까지 타임머신 여행

달빛 아래 누리는 고궁의 정취 수원 화성행궁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판교는 그저 성남 변두리의 외진 곳, 혹은 경부고속도로가 통과하는 개발제한구역일 뿐이었다.

신도시 개발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판교테크노밸리에 숱한 IT 업체들이 둥지를 틀면서 지금은 가장 현대적인 도시가 됐다.

발굴 유물을 살펴보면 구석기시대 이미 판교에 사람이 거주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성백제시대에는 백제에 속했다가 장수왕이 남하하면서 5세기 후반에는 고구려, 6세기 중반 이후로는 신라에 편입됐다.

고려시대부터 내내 광주의 일부였으며, 성남시에 속하게 된 것은 불과 40년 전이다.

삼국시대 고분을 시작으로 미래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디지털 수족관

요즘 뜨는 쇼핑몰 아브뉴프랑까지 마치 타임머신을 탄 듯 다양한 시간대를 여행할 수 있는 판교로 하루 나들이를 떠난다.

백제·고구려 돌방무덤이 있는 판교박물관

판교박물관은 판교신도시를 건설하면서 발굴한 유물과 유적을 전시한 곳으로 판교의 오랜 역사를 보여준다.

택지 개발에 앞서 실시된 문화재 조사 과정에 판교동에서 한성백제시대 고분 9기

삼평동에서 고구려 고분 2기, 고려시대 절터와 청자, 조선시대 백자 등이 발굴됐다.

백제 고분이 주로 발굴된 지역에 박물관을 건립해 지난 2013년 겨울에 문을 열었다.

밖에서 보기에는 단층 건물인데 들어가 보면 지상으로는 1층이지만 지하가 몇 배나 깊어서 깜짝 놀란다.

고분을 주로 전시한 박물관답게 건물 전체가 땅 아래에 집중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1층에서는 발굴 유물을 시대별로 보여준다.

민무늬토기, 빗살무늬토기, 청자, 백자 등 다양한 토기와 도자류가 많고, 청동거울, 반지, 은팔찌 같은 장신구도 있다.

지하로 내려가기 전에 난간에서 지하 전시실 전체를 먼저 내려다볼 것. 작은 방처럼 보이는 것들이 모두 고분들이고

그 사이로 보행자 통로가 이어져 있어 150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가 삼국시대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다.

백제 고분 9기 가운데 2기는 박물관 야외에 발굴하지 않은 채로 땅속에 잠들어 있고, 7기만 발굴했을 때 원형을 통째로 전시실에 옮겨왔다.

고구려 고분은 바위가 커서 일일이 번호를 매겨 옮긴 다음 원래대로 다시 쌓았다고.

백제와 고구려 고분은 모두 돌을 다듬어 만든 돌방무덤이다.

대부분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들로 추정된다. 백제 고분은 작은 돌들을 견고하게 쌓아올렸고, 고구려 고분은 큰 돌을 주로 이용했다.

백제 고분에서는 장신구, 토기, 항아리, 접시 등이 고루 출토된 데 반해 고구려 고분에서는 아무런 유물도 발굴되지 않았다.

두 사람이 매장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고분, 돌방 2개가 붙어 있는 쌍실분, 바닥과 벽에 석회 흔적이 많이 남은 고분 등 여러 가지다.

고분들 사이에 체험 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다. 도자 모양 퍼즐 맞추기, 주요 유물이 새겨진 도장 찍기

무덤 내부를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카메라 들여다보기, 터치스크린으로 유물 발굴하기

퀴즈 풀기 같은 활동이 가능하다. 초등학생을 동반한다면 입구에서 주는 체험활동지를 받아 활용할 것.

달빛 아래 누리는 고궁의 정취 수원 화성행궁

달빛 아래 누리는 고궁의 정취 수원 화성행궁

달빛 아래 누리는 고궁의 정취 수원 화성행궁

화성행궁 옆 미술관 나들이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살랑거리는 바람을 맞으며 특별한 산책을 즐기고 싶다면 수원 화성행궁(사적 478호)으로 떠나자.

낮에도 아름답지만, 밤에는 은은한 조명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달빛 아래 고즈넉한 궁궐을 걷다 보면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이 살아나고, 사랑하는 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추억이 새록새록 쌓인다.

화성행궁은 친구나 연인, 가족 단위 여행객에게 골고루 사랑받는 야경 명소로,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야간 관광 100선’에 들었다.

야간 개장 인기에 입소문이 퍼져 관심도 높아졌다. 조명과 음향 효과를 한층 세심하게 구성해, 더 운치 있는 야경을 준비했다.

행궁은 임금이 머문 임시 궁궐로, 평소에는 관아로 사용하기도 했다.

화성행궁은 고상하고 기품 있는 건축물 덕분에 〈왕의 남자〉 〈대장금〉 〈이산〉 등 영화와 드라마에도 여러 번 등장했다.

화성행궁의 색다른 매력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부터 볼 수 있다.

궁궐 곳곳에 조명이 켜지면 동화의 한 장면 같은 분위기가 피어난다.

화성행궁 밤 산책은 ‘국왕의 새로운 고향’이라는 뜻이 있는 신풍루(新豊樓)에서 출발한다.

궁궐로 들어가면 ‘달빛 정담’이라는 글자 옆에 달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눈에 띈다.

단아하게 빛나는 초롱을 따라가면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환갑잔치를 연 봉수당(奉壽堂)이다.

화성행궁의 중심 건물로, 실내에 부드러운 조명을 설치해 신비로움을 더했다.

몽환적인 봉수당의 아름다움에 걸음을 멈춘다. 방에서 누군가 나올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진다.

봉수당에서 정담을 나눈 혜경궁 홍씨와 정조를 상상하며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봉수당 옆에는 정조가 노년을 보내기 위해 지었다는 노래당(老來堂)이 있다.

이름도 ‘늙음이 찾아오다’라는 뜻이다. 어둠이 내리면 11~14분짜리 영상을 상영한다.

수원 화성과 정조대왕 능행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노래당 옆은 낙남헌(洛南軒)이다.

화성행궁이 철거된 일제강점기에 훼손당하지 않은 건물로, 특별 과거와 군사들의 회식 등 각종 행사를 치렀다.

낙남헌 앞에는 ‘달토끼 쉼터’라는 포토 존이 있다.

여기도 보름달 조명이 설치되어 기념사진을 찍으며 고궁의 밤을 즐기기 좋다.

낙남헌부터는 청사초롱이 어둠을 밝힌다.

숲속에 들어앉은 미로한정(未老閒亭)을 향해 계단을 오르면, 가지런한 궁궐 지붕과 현란한 도시 불빛이 어우러진다.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기분이 상쾌하고, 풀벌레 소리에 마음이 차분하다. 바닥에는 나비 모양이 어른거린다.

아련한 분위기에 젖어 걷다 보면 화성행궁 전경과 수원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미로한정이 나타난다.

밤의 낭만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잠시 정자에 앉아 여유를 누려보자.

마음에 시나브로 작은 틈이 생기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들를 곳은 화령전(華寧殿, 사적 115호)이다. 정조의 어진을 모신 건물로, 단순하지만 견고하다.

화령전의 운한각(雲漢閣)과 복도각(複道閣), 이안청(移安廳)은 2019년에 보물 2035호로 지정됐다.

검소하지만 격조 있는 건물을 부각하기 위해 건물 밖 조명에 공을 들였다. 화성행궁에 흐르는 국악과 달리, 화령전에는 처연한 대금 독주가 나온다.

대금 선율과 함께 화령전을 돌아보면 생각이 한없이 깊어진다.

화성행궁 옆 미술관 나들이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화성행궁 옆 미술관 나들이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화성행궁 옆 미술관 나들이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신선하고 다양한 맛을 즐겨요 수원 못골시장

화성행궁 봉수당을 지나는 부자의 대화다. 아빠가 헛웃음을 친다.

문근영은 영화 <사도>에서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로 등장한다.

지난해 9월 개봉한 <사도>는 6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사도>가 흥행하면서 수원화성과 정조의 발자취에 관심이 높아졌다.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은 비슷한 시기인 지난해 10월 개관했다.

수원에 처음 생긴 시립 미술관으로, 현대산업개발이 지어 수원시에 기증했다.

화성행궁과 광장을 끼고 이웃해 화성행궁이 광장 동쪽 면이고,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이 북쪽 면이다. 방문객이 자연스레 넘나든다.

미술관은 설계부터 화성행궁을 고려했다. 건물은 지상 2층, 지하 1층이다.

높이로 화성행궁을 누르지 않는 대신 수평으로 넓게 펼쳤다.

외벽은 콘크리트를 사용해 색깔이 튀지 않는 대신 입면에 송판 무늬를 새겨 차가운 느낌을 지웠다.

스카이라인은 비스듬한 곡면으로 처리해 한옥의 처마가 연상된다.

내부는 뮤지엄라운지와 기획전시실3이 화성행궁과 눈을 맞춘다.

뮤지엄라운지는 방문객이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쉼터다. 정면은 화성행궁 광장이다.

외벽이 전면 유리창이라 자연광이 좋을뿐더러, 광장과 화성행궁이 시원스레 열린다.

미술관 서쪽도 마찬가지다. 기획전시실3의 서쪽 면이 유리창이다.

전시에 따라 암막을 치기도 하지만, 평소 화성행궁이 보이는 전시실이다.

미술관 옥상정원 역시 화성행궁 친화적 장소다. 2층 옥상에서 화성행궁 전체와 팔달산을 품는다.

광장에서는 볼 수 없는 전경이라, 화성행궁 전망대로 알음알음 소문났다. 2층 교육실 복도와 1층 야외 계단에서 올라갈 수 있어 편리하다.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은 개방성 또한 장점이다.

관람료가 있으나 유료 전시실을 제외한 나머지는 무료 개방이다.

뮤지엄라운지와 옥상정원, 전시홀, 라이브러리 등을 산책하듯 편하게 다녀갈 수 있다.

미술관 본래 역할인 전시는 총 5개 전시실에서 열린다.

1층은 뮤지엄라운지를 중심에 두고 서쪽에 기획전시실3, 동쪽에 기획전시실1·2가 있다.

2층은 1층 전시홀과 기획전시실2에서 계단으로 연결된 기획전시실3·4다.

홍보 담당 박현주 씨는 “당분간 관람객이 편하게 다가설 수 있는 주제를 주로 다룰 예정”이라고 한다. 미술관의 문턱을 낮추는 게 첫째 목표다.

뮤지엄라운지와 전시홀은 현대자동차 ‘포니’를 주제로 재미나게 꾸몄다.

포니 목형이 있는 전시홀 옆 계단은 비공식 포토 존이다. 자연광이 들어오고 사다리꼴 계단과 의자 쉼터가 있어 사진 찍기 좋다.

2층의 라이브러리도 들러볼 만하다. 아트&디자인 관련 책이 서가를 채운다.

전시와 연계한 교육 프로그램 역시 활발하다. 전시를 관람하고 실제로 창작 활동을 한다. 홈페이지에서 예약을 받아 2층 교육실에서 진행한다.

미술관을 둘러본 뒤에는 화성행궁으로 향한다. 화성행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행궁이다.

정조가 아버지 장헌세자(사도세자)의 원침인 현륭원(현 융릉)을 참배할 때 머물렀다.

정문 신풍루를 지나 정전 봉수당까지 567칸 가운데 482칸을 복원했다.

신선하고 다양한 맛을 즐겨요 수원 못골시장

신선하고 다양한 맛을 즐겨요 수원 못골시장

신선하고 다양한 맛을 즐겨요 수원 못골시장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꾸었던 정조를 만나다 수원 화성

수원 팔달문 인근에 있는 못골시장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북새통을 이룬다.

‘못골’은 조선 정조 임금이 수원 화성을 건설하면서 만든 저수지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지금의 행정구역 명칭도 지동이다. 1970년대 들어 이곳에 시장이 형성되면서 못골시장의 역사가 시작되지만, 2005년에야 정식 이름이 됐다.

못골시장은 200m도 안 되는 골목에 87개 점포가 밀집하다 보니 좁은 골목이 늘 북적인다.

팔달문 주변의 팔달문시장, 영동시장, 지동시장, 미나리꽝시장 등이 수원천을 사이에 두고 있지만 못골시장만큼 북적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못골시장은 왜 이렇게 북적일까.

그것은 지난 2008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전통시장을 문화 체험의 공간이자 관광지 혹은 연계 관광지로 활성화하기 위해 시작한 ‘문전성시 프로젝트’ 덕분이다.

문전성시는 ‘문 앞에 시장이 선 것처럼 미어터질 정도로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당시 못골시장도 문전성시 프로젝트에 선정되었다.

그 결과 사고파는 시장의 기능에 문화의 공간, 상인과 손님이 소통하는 공간이 되기 위한 노력이 담겼다.

못골시장에 들어서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라디오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유명 연예인의 목소리가 아니다.

전문 DJ의 품새는 더더욱 아니다. 바로 ‘못골온에어’라 불리는 못골시장 라디오다.

방송이 시작되면 신청곡과 사연이 전달되고, 스피커를 통해 신나는 음악이 흐른다.

시장은 리듬을 타듯 더욱 활기를 띤다.

못골온에어는 화․목요일 오전 11시 30분부터 한 시간 동안 진행된다.

여자들의 불만을 노래로 풀어내고 손님에게는 더욱 친절해지자는 취지로 활동하는 불평합창단

시장 상인들이 모여 만든 못골밴드, 시장에서 판매하는 식재료를 이용해 요리 강습을 하고 식재료를 구매하도록 하는 요리교실 등도 못골시장 성공의 일등 공신이다.

못골시장은 반찬, 정육, 생선 등을 주로 판매하는 시장이다. 그만큼 다양한 식품을 만날 수 있다.

메밀묵과 도토리묵, 즉석 두부, 참숯으로 구워내는 즉석 김은 만드는 대로 팔린다. 상인들의 손길도 분주하다.

생선 가게에서는 찌개가 되고 구이가 될 싱싱한 생선이 차례차례 손질되어 손님에게 건네진다. 어느 가게나 손님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비봉윤가네 야채가게’는 토마토와 오이 등 직접 재배한 채소를 판매하는 곳으로 정평이 났다.

직접 재배한 채소를 판매하니 가격이 저렴하고, 아침에 수확하여 공급하니 신선하다.

주인의 듬직한 아들은 제철 채소를 부리느라 분주하다.

시장 돌아보기에서 먹거리가 빠지면 서운하다. ‘서부냉면’은 냉면집이지만 냉면보다 칼국수와 녹두빈대떡이 유명하다.

칼국수는 바지락․굴․미더덕 등 해산물과 호박․양파 등이 들어가 국물이 시원하고, 주인장이 직접 반죽하여 밀어낸 면발이 쫄깃하다.

녹두빈대떡은 숙주나물과 각종 채소를 넣어 두껍고 노릇노릇하게 지진 뒤 네 조각으로 잘라서 내준다.

막걸리와 잘 어울리는 맛이다.

간단하게 먹을 것으로는 떡과 찐빵, 만두, 도넛, 호떡 등이 있다.

‘종로떡집’의 마구설기는 밤․단호박․완두콩․강낭콩․서리태 등이 가득 든 영양 백설기다.

못골시장의 끝자락에 위치한 ‘동성분식’은 울금호떡이 유명하다. 울금은 생강과 식물로 혈액순환과 기를 원활히 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

반죽에 울금 가루와 녹차, 다양한 견과류를 넣어 만든다. 동판에 기름기 없이 호떡을 굽는 것도 특징이다.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꾸었던 정조를 만나다 수원 화성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꾸었던 정조를 만나다 수원 화성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꾸었던 정조를 만나다 수원 화성

여권 없이 떠나는 세계 여행 안산다문화마을특구

짧은 주말, 아이들에게 역사적으로 유익한 곳을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라면 수원과 화성을 1박 2일로 다녀오는 것은 어떨까?

수원과 화성에는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루었던 정조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들이 숨어있다.

조선후기의 걸출한 군주 정조가 꿈꾸었던 새로운 세상을 찾아 발걸음을 옮겨보자.

특히 수원화성은 그 아름다움과 규모 그리고 과학성으로 인해 1997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우리나라 성곽건축기술의 정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성곽이 가지고 있는 모든 기능을 살펴볼 수 있는 이곳은

매년 수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수원화성은 둘레가 약 5.7킬로미터에 성벽의 높이는 평균 5미터 정도로 견고하고 튼튼한 성이다.

화성을 건축하는데 들어간 벽돌 수만 하더라도 거의 70만장에 육박한다.

한국전쟁당시 화성 성곽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으나, [화성성역의궤]에 자세한 건축과정이 기록되어 있어서 복구가 가능했다.

수원화성을 건축하는데 큰 공을 세운 사람은 정조시대의 대 학자 정약용 이다.

정약용 선생은 중국의 [기기도설]이라는 책을 참고로 하여 거중기를 발명하였으며

도르레를 이용한 거중기를 통해 성곽을 건축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크게 단축시켜 백성들의 고충을 덜어주었다.

수원화성의 성문은 모두 네 개(장안문, 팔달문, 창룡문, 화서문)인데 그 중 정문에 해당하는 문은 장안문이다.

장안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성문으로 그 크기와 아름다움이 국보 제 1호인 숭례문과 비교되기도 한다.

장안문은 철통 방어시설인 옹성을 갖추고 있는데, 성문을 항아리 모양으로 한 겹 더

에워 싼 성벽을 의미하는 옹성은 화공 등의 공격에 대비하기위한 매우 훌륭한 방어시설이다.

북문인 장안문이 정문 구실을 했던 이유는 정조가 사도세자의 무덤을 살피러 행차를 할 때 한양에서 수원화성으로 들어서는 가장 첫 번째 입구이기 때문이었다.

장안문을 지나면 수원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인 화홍문을 만날 수 있다.

총 일곱 개의 수문 위에 세운 누각인데 수문 아래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마치 꽃비를 뿌린 듯이 아름답다.

사시사철 너무나 아름다운 화홍문 주변은 늘 많은 여행객들로 붐빈다.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는 노론과 소론의 당파싸움에 희생되어 아버지 영조의 명으로 뒤주에 갇혀 목숨을 잃었다.

당시 세손이었던 정조는 왕이 된 후 가장 먼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원래 있던 자리에서 조선 제일 명당인 융릉으로 옮기고자 했다.

그러나 당시 융릉은 사람들이 이미 많이 모여서 살고 있는 곳이었다.

정조는 그 사람들을 강제 이주시키지 않고 새로운 장소에 성을 쌓고 집을 지을 돈과 이사비용까지 챙겨 사람들을 살게 하는데, 그 곳이 바로 지금의 수원화성이다.

사도세자를 모신 융릉에는 훗날 장조로 추존된 사도세자뿐만 아니라 그의 부인 혜경궁 홍씨도 함께 묻혀있다.

융릉은 다른 능과는 좀 다르게 정자각과 능침이 이루는 축이 일직선이 아니라 약간 비껴서 조성되어있는 것이 특징인데

이는 효심 깊은 정조가 아버지의 능을 조성할 때 뒤주에 갇혀 돌아가실 때도 답답하셨을 것인데

정자각 바로 뒤에 능침을 조성한다면 얼마나 더 답답하시겠느냐 라는 말에 따른 것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