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를 여행하는 특별한 방법 구석구석 현지인다운 대구
대구를 여행하는 특별한 방법 구석구석 현지인다운 대구
현대 도시의 중심부에 조선시대와 근대의 흔적이 비현실적으로 존재한다.
도심에서 멀지 않은 산들은 대자연의 웅장함마저 보여준다.
수변과 어우러진 고층 건물에 젊은 기운 넘치는 번화가, 활기찬 시장은 이 도시가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인지를 말해준다.
밤낮으로 볼거리와 먹을거리, 특히 납작만두, 찜갈비, 막창, 누른국수, 뭉티기 등 별미는 또 왜 이리 많은지.
가볼 곳도 먹을 것도 참 많은 도시, 대구다. 대구를 즐기려면 하루 이틀로는 어림도 없다.
일주일 정도는 머물러야 ‘그래도 대구를 좀 즐겼노라’ 얘기할 수 있을 듯하다.
생활관광 프로그램의 매력은 여행하는 도시를 깊이, 또는 많이 체험하는 데 있다.
나는 대구를 좀 더 알고 싶었고 이곳에서만 즐길 수 있는 것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대구에서 일주일 살기를 결정한 이유다. 특히 이번에는 ‘구석구석 현지인다운 대구 한 주살이 여행’의 숙소가 바로 서원이라고 한다.
그 옛날 유생들처럼 서원의 동재와 서재에 묵을 수 있다니 가슴이 설렌다.
타임머신을 탄 기분으로 조선 현종 6년(1665)에 세워진 구암서원에 도착했다.
구암서원은 조선시대 문신인 구계 서침과 깊은 인연이 있다
세종은 달성 서씨 세거지를 군사 요새로 쓰고자 하여 서침에게 땅값으로 다른 땅과 함께 세록(대대로 받는 녹봉)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서침은 세종에게 아무런 대가를 받지 않고 땅을 국가에 헌납할 테니 대신 대구 지방의 환곡 이자를 감해달라고 청한다.
개인의 부귀를 바라는 대신 지역 백성들의 삶을 먼저 챙긴 것이다.
이에 감동한 대구의 유림과 백성들이 서침의 은덕을 기리는 뜻에서 구암서원을 세웠다.
서원살이라고 답답하거나 지루할 거란 괜한 걱정일랑 거두자.
구암서원은 원래 대구 시내 중심부에 자리하다 1995년 현재의 위치인 북구 산격동 쪽으로 옮겼다.
연암산 자락에 자리 잡은 서원은 탁 트인 전망이 일품이다. 서원 마루에 서면 내 발아래로 대구 시가지 풍경이 쫙 펼쳐진다.
대구 중심부에서 멀지 않은데 마치 번잡한 세상에서 한 발짝 떨어져 나온 기분이다.
대구 곳곳을 여행하느라 분주한 하루를 보낸 뒤 서원에서 맞는 시간은 차분하면서도 생명력이 느껴진다.
서원에서는 다양한 활동이 이뤄진다. 일정 첫날에는 ‘선비 문화와의 입맞춤’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유복(유생들이 입는 옷)까지 제대로 갖춰
입어 몸가짐과 마음가짐도 달라진다. 배례와 생활예절 배우기, 촛대 만들기, 난 치기 등 참가자 구성에 따라 체험 내용은 조금씩 달라진다.
서원에 머무는 동안 활쏘기와 다례도 체험한다. 그중 구암서원의 미디어 파사드(외벽 영상) 공연은 빼놓을 수 없는 인기 볼거리다.
어둠이 내린 서원 외벽과 계단, 바닥에 화려한 영상이 펼쳐지면 절로 감탄사를 내지르게 된다. 과거와 현재가 눈부시게 어우러지는 순간이다.
외벽 영상은 5월에서 10월까지 첫째, 셋째주 금요일과 둘째, 넷째주 토요일 정규 진행하며 한 주살이 체험객을 위해 퇴소 전날 밤에 별도 운영한다.
대구 한 주살이 여행은 구암서원에서 마을로, 도시 전체로 확장된다.
구암서원뿐만 아니라 서원이 위치한 연암서당골 마을과 대구 곳곳에서 체험을 진행한다.
연암서당골은 아래쪽에 흐르는 신천과 위쪽의 연암산 사이 마을 일대를 일컫는데 예로부터 서당이 많아 이런 이름을 얻게 됐다.
달성 서씨 집성촌이던 연암서당골에는 지금도 체화당, 용담재, 일신재 같은 전통적인 공간이 여럿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