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품은 산 왕의

달을 품은 산 왕의 길 을 받들다 경주 함월산 왕의 길

달을 품은 산 왕의 길 을 받들다 경주 함월산 왕의 길

달을 품은 산 왕의 길 을 받들다 경주 함월산 왕의 길

충주호 벚꽃 터널과 수안보 벚꽃길 산책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의 장례 행렬이 이어지던 길, 문무왕의 아들 신문왕이 아버지의 수중릉으로 행차하던 길,

지금은 그 길을 따르는 뭇 후손들이 더위를 식히고 역사를 기억하는 길, ‘왕의 길’에서 두 발로 뚜벅뚜벅 옛길을 더듬는다.

그 자체가 하나의 노천 박물관이라 할 정도로 경주에는 다 헤아리기도 벅찰 만큼 수많은 신라시대 유적과 유물이 있다.

그래서 경주는 갈 때마다 새롭고, 하루 이틀 혹은 며칠간의 여행으로는 도저히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곳이다.

보름달이 뜰 때는 달빛기행을 하고, 별이 밝은 날엔 별빛기행을 하며 밤에도 무궁무진한 고도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그런 경주에 최근 새로운 길 하나가 추가됐다. 추령터널과 기림사를 잇는 왕의 길이다.

함월산 아랫자락을 잇는 편도 3.9km의 걷기 좋은 숲길이다.

깊이 숨겨진 보물같이 아직은 제 모습을 세상에 널리 드러내지 못했지만 그래서 더 고즈넉하고 아늑하다.

경주 시내를 벗어나 감포 방향으로 가다 보면 함월산 자락에 추령터널이 있다.

이 추령터널 옆으로 왕의 길로 가는 진입로가 나 있다.

길은 처음부터 제 모습을 호락호락 보여주지 않는다.

진입로를 따라 2.5km의 시골길을 40~50분은 걸어야 왕의 길 초입인 모차골 입구에 닿는다.

좋은 길도 좋은 사람처럼 처음부터 그 깊은 속내를 훤히 다 드러내지 않는 법. 깊은 숲을 만나기 위해선 약간의 준비가 필요하다.

추령터널에서 모차골까지 가는 길도 숲길은 아니지만 꽤 한적하게 고만고만 걸을 만한 길이다.

걷다 보면 모차골 조금 못 미쳐 황용약수를 만나게 된다.

철분 함량이 높아 물이 떨어지는 곳의 돌들이 누렇게 변색될 만큼 몸에 좋은 물이다. 이 약수로 목을 축이면 한여름 갈증이 싹 달아난다.

약수 한 사발 들이켜고 나면 어느새 모차골에 닿는다.

모차골은 마차가 다니던 곳이라 하여 ‘마차골’로 불리다가 모차골이 되었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왕의 길이 시작된다.

그렇다면 이 길은 왜 이런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을까.

신문왕은 신라 31대 임금으로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의 맏아들이다.

삼국통일 이후 정세를 안정시키고 강력한 전제왕권을 확립한 왕으로 평가받고 있다.

681년 아버지인 문무왕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았을 당시 신라는 겉으로는 평온한 듯 보였지만

안으로는 통일 후의 긴장과 귀족들과의 갈등으로 고군분투하던 시절이었다.

《삼국사기》에 전하길, “근자에 와서 도의가 사라진 상태에서 왕위에 있다 보니 정의가 하늘의 뜻과 달라,

천문에 괴변이 나타나고 해와 별은 빛을 잃어가니 무섭고 두려움이 마치 깊은 못이나 계곡에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신문왕이 종묘에 제사를 지내며 조상들에게 바친 제문의 내용이다.

그만큼 통일 직후였던 당시는 귀족들의 반란이 끊이지 않고 외부와의 전쟁 위험도 있어 나라를 다스리기에 어려운 시기였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문왕은 즉위 다음해인 682년에 아버지 문무왕의 수중릉이 있는 동해바다에 갔다가 용을 만나

만파식적과 옥으로 만든 허리띠를 얻었다. 대나무로 만든 피리인 만파식적을 불면 적병이 물러나고 병이 나으며,

가물 때는 비가 오고 비가 올 때는 날이 개는 등 신비한 능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그만큼 나라의 평화와 안녕이 절실했다.

만파식적은 신문왕의 왕권 강화와 정세 안정을 위해 만들어진 설화였을 테다.

그러니까 이 길은 신문왕이 마차를 타고 아버지 문무왕의 묘를 찾아가는 길이자 나라를 구원할 힘을 얻은 길이다.

또 이보다 앞서 문무왕의 장례 행렬이 지나간 길이기도 하다. 처음엔 신문왕길 혹은 신문왕 호국행차길이라 불리다가

현재는 공식적으로 왕의 길로 불리고 있다. 비단 신문왕만 다니지는 않았을 테고,

여러 왕들이 동해로 행차하며 이 길을 지나갔을 것이라는 추측에 따른 것이다.

초입에서 숲길은 야생미가 넘쳐흐른다. 아이 키만 한 개망초가 길을 수놓고 옆으로 흐르는 계곡은 끊임없이 길을 따라온다.

작은 계곡을 건너는 일만도 수십 번이다. 한여름으로 접어들면서 숲은 온갖 식물과 갖가지 곤충,

개구리같이 작은 동물들을 무수히 키워내고 있다. 높은 나무에서 매미가 울어대고, 계곡은 졸졸졸 마르지 않고 흐른다.

가는 길은 내내 이런 풍경이다. 온갖 나무와 식물이 한여름에도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숲에 폭 안기는 느낌이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날에도 이 길에 들어서면 시원하다. 삼림욕이 거저다.

길은 초입에는 사람 하나 지나다닐 만한 오솔길이었다가 이내 마차와 수레가 지나다녔을 만큼 널찍해진다.

걷다 보면 다양한 이정표를 만난다. 수레가 넘어 다녔다는 수렛재, 급한 경사에서 수레를 끌던 말들이 굴렀다는 말구부리,

신문왕이 잠시 손을 씻으며 쉬어 갔다는 세수방, 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한 불령봉표를 거쳐 가며 옛길을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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