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두고 걷기 좋은 길

가까이 두고 걷기 좋은 길, 부산 금정산성

가까이 두고 걷기 좋은 길, 부산 금정산성

가까이 두고 걷기 좋은 길, 부산 금정산성

부산 금정산은 금정구 금성동·구서동·남산동·청룡동·부곡동, 동래구 온천동, 북구 화명동·만덕동에 걸쳐 있다.

강릉 한옥과 경포호에 깃든 이 고장

공식 안내 지도에서 27개 지정 등산로를 소개하지만, 주민들이 찾는 샛길을 포함하면 무려 100여 개 진입로가 있다고 한다.

그만큼 일상 가까이, 언제든 가볍게 오르기 좋은 산이다.

금정산성(사적)은 금정산 꼭대기에서 동남쪽·서남쪽 능선과 계곡을 따라 축성했다.

금정산성 입구에 ‘18845M’ 포토 존이 있는데, 산성 둘레 1만 8845m를 뜻한다.

우리나라 산성에서 가장 큰 규모다. 둘레가 너무 길어 수비군이 부족했을 정도다.

동래부사 한배하는 1707년 금정산성을 남과 북으로 나누는 중성을 쌓고, 장대와 군기고 등을 정비하기도 했다. 4망루에 오르면 중성의 흔적이 선명하다.

상고시대부터 대한제국 말기까지 모든 제도와 문물을 기록한 《증보문헌비고》에 따르면, 금정산성은 숙종 때인 1701~1703년에 쌓았다.

그러나 현종 때인 1667년 통제사가 금정산성 보수를 건의했다는 기록도 발견돼, 그 이전부터 어떤 형태로든 존재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고종 때 제작한 ‘금정산성진지도’에는 동서남북에 성문이 있고 본성과 중성에 망루 12곳을 갖춘 모습이다.

지금도 금정산성에 오르면 낙동강 하구와 동래 일대가 시원스레 눈에 들어온다. 오랫동안 요충지로 쓰인 까닭을 단박에 알 수 있는 풍경이다.

앞서 이야기했듯 금정산에 오르는 길이 워낙 많다 보니 금정산성을 즐기는 방법도 다양하다.

현지 해설사가 추천

현지 해설사가 추천하는 가장 매력적인 코스는 동문에서 출발해 3망루와 4망루로 이어지는 길이다.

넉넉잡아 1시간 30분 정도면 오를 수 있는데, 완만한 숲길에서 가파른 암벽까지 다채롭게 어우러져 걷는 맛이 빼어나다.

하늘을 가릴 정도로 빽빽한 나무 덕분에 초여름의 상쾌함을 만끽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금정산성 동쪽 고갯마루를 지키는 동문은 해발 415m에 자리한다.

꽤 높게 느껴지지만, 203번 버스를 이용하면 정류장에서 도보 5~10분 거리다.

금정산성 축조와 함께 설치한 동문은 일제강점기에 허물어져 일부만 남은 것을 1972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진입로가 성문보다 낮아 웅장한 기세를 자랑하고, 구불구불한 지형을 이용해 앞쪽에서 성문이 잘 보이지 않도록 방어력을 높인 점도 흥미롭다.

30~40분 걸으면 3망루를 가리키는 표지판을 만난다.

나비바위와 부채바위 사이에 있는 3망루는 해발 550m 암벽에 절묘하게 얹혀 눈길을 사로잡는다.

목적지인 4망루까지 오르는 길은 다소 가파르다.

단번에 힘을 쏟기보다 가끔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르기 바란다.

경사에 비례하는 아름다운 풍경이 고개를 돌릴 때마다 펼쳐지기 때문.

해발 620m 주 능선에 있는 4망루는 외성과 중성이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북쪽으로 의상봉이, 서쪽으로 낙동강이, 동쪽으로 금정구 일대 아파트가 즐비해 다양한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걷기에 자신 있는 이는 여기서 1.5km 떨어진 북문으로 향하자. 4개 성문 중 가장 투박하지만 담백한 건축미가 돋보인다.

북문에서 900m 더 가면 금정산 주봉인 고당봉이 기다린다.

금정산성을 조금 편하게 오르는 방법도 있다.

금강공원에서 케이블카를 이용하는 것.

1966년에 개통한 케이블카는 해발 540m 금정산 등성이까지 왕복 운행한다.

남문 근처에 조성 예정이던 종합 위락 단지 수송편으로 설치했다가 1972년부터 민간에서 운영한다.

당시 국내 최장 1260m로, 오가는 내내 금정산의 짙푸른 숲과 부산 시가지 전망이 눈에 담긴다.

최근에는 이곳 케이블카 특유의 레트로한 매력에 빠진 젊은 이용객도 늘고 있다.

동래온천

걷기의 피로를 풀기에 온천만 한 곳이 없다.

금정산성과 인접한 동래온천은 신라 시대부터 이름을 알렸고, 일제강점기에 본격적으로 개발돼 호황을 누렸다.

지금도 온천욕장을 갖춘 관광호텔이 다수 운영 중이며,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노천족욕탕도 있다.

노천족욕탕 뒤쪽에 조선 숙종 때 탕을 만들었다는 기록을 담은 온정개건비(부산기념물)가 남아 역사적 의미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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