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절 끓는 구들방에 등 지지는 이 맛 영암 월인당
절절 끓는 구들방에 등 지지는 이 맛 영암 월인당
잘 마른 소나무 장작 두어 개를 아궁이에 던져 넣자 금세 불이 옮겨 붙더니 장작 타는 정겨운 냄새가 좁은 뒷마당을 가득 채운다.
황토 굴뚝에선 구수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이불을 깔아둔 아랫목에 손을 넣는 순간 ‘앗 뜨거’ 소리가 절로 튀어나온다.
영암 땅 너른 들녘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언덕, 월출산과 은적산 사이에 자리 잡은
월인당은 한국인의 DNA에 새겨진 ‘구들장의 추억’을 되살려 주는 소박한 한옥민박이다.
내력 있는 종택도, 유서 깊은 고택도 아니건만 주말마다 예약이 밀려드는 까닭은 황토 구들방에 등 지지는 그 맛이 각별해서다.
모정마을 토박이인 김창오 씨가 월인당을 지은 것은 5년 전이다.
구례 사성암을 지은 김경학 대목과 강진 만덕산 기슭의 다산초당을 지었던 이춘흠 도편수가 1년 3개월간 함께 공을 들였다.
규모는 단출하다. 방 세 칸에 두 칸짜리 대청, 누마루와 툇마루가 전부다.
담장은 대나무 울타리로 대신하고, 넓은 안마당엔 잔디를 깔았다.
방 세 칸은 모두 구들을 넣고 황토를 깐 위에 한지장판을 바른 ‘장작 때는’ 방이다. 바닥은 뜨끈하고 위는 서늘하니 자연스럽게 공기가 순환하는 구조다.
한옥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 구들방을 만들었지만, 덕분에 손님맞이 하루 전부터 아궁이에 불을 때야 하는 번거로움과 수고가 따른다.
바깥주인의 ‘장작 때는’ 수고보다 한수 위는 안주인의 ‘풀 먹이기’ 정성이다.
한번 사용한 이불은 세탁 후 일일이 풀을 먹여 내놓는다. 손님 입장에선 절절 끓는 방에서 사각거리는 솜이불을 덮고 자는 호사가 고마울 따름이다.
월인당 세 개의 방은 저마다 특징이 있다. 마을 앞 너른 들과 월출산이 가장 잘 보이는 ‘들녘’ 방은 측면 툇마루를 단독으로 사용할 수 있다.
월인당 현판이 걸린 정중앙 ‘초승달’ 방에서는 마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쪽 끝 ‘산노을’ 방은 누마루와 바로 연결되는 구조라 가장 인기가 많다.
방마다 욕실과 싱크대, 냉장고를 갖춰 먹고 자고 씻는 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집을 지을 때 툇마루와 누마루는 특별히 공을 많이 들였다.
툇마루는 집안으로 들어서는 첫 관문이자 집 안과 밖을 연결해 주는 공간이다.
꼬마 손님들에게는 왕복 달리기를 할 수 있는 놀이터이기도 하다.
삼면이 툭 트여 햇살과 바람과 달빛이 드나드는 누마루는 차 한 잔의 여유 혹은 술 한 잔의 풍류를 즐길 수 있는 정자 역할을 한다.
월출산 위로 보름달이 뜨는 밤 누마루에 나와 앉으면 ‘달빛이 도장처럼 찍히는 집’이라는 이름처럼 안마당이 달빛으로 환하다.
집주인이 꼽는 최고의 달빛 풍경은 월인당이 아니라 마을 끝에 있는 원풍정(願豊亭)에서 바라보는 장면이다.
월출산 위로 둥실 솟아오른 달이 저수지에 교교한 빛을 풀어놓는 장면이 기가 막히게 아름답다는 것이다.
원풍정 기둥에는 이른바 ‘원풍정 12경’을 적은 12개의 편액이 걸려 있다.
지남들녘에 내리는 밤비(指南夜雨), 구림마을의 아침밥 짓는 연기(鳩林朝烟), 도갑사에서 들려오는 석양의 종소리(岬寺暮鍾) 등
‘원풍정에서 내다보이는 12경’은 마을 벽에 시와 그림으로도 풀어 놓았다.
월인당에 묵는다면 꼭 마을 산책을 해보아야 하는 이유다.
10월 초 방문했을 때 모정마을은 민박을 겸한 한옥을 짓는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11월 말이면 15채의 새로운 한옥이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