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포부터 호미곶까지 사색하며 걷는 포항 여행 코스
구룡포부터 호미곶까지 사색하며 걷는 포항 여행 코스
때는 신라 진흥왕 시절, 장기현령이 늦봄에 각 마을을 순시하다가 지금의 용주리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폭풍우가 휘몰아치면서 바다에서 용 10마리가 승천하다 그 중 1마리가 떨어져 죽자
바닷물이 붉게 물들면서 폭풍우가 그쳤다고 합니다. 9마리의 용이 승천한 포구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 바로 ‘구룡포’입니다.
구룡포는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조용한 어촌마을이었습니다.
어부 이외에는 가족의 먹을 거리를 구하기 위해 바다에 나가는 정도였지요.
일제강점기가 되자 구룡포는 최적의 어업기지로 떠올랐습니다.
‘도가와 야사브로’라는 일본인 수산업자가 조선총독부를 설득해 구룡포에 축항을 제안하였고
큰 배가 정박할 곳이 생기자 수산업에 종사하던 일본인들이 대거 구룡포로 몰려온 것이지요.
방파제를 쌓아 생긴 새로운 땅에는 일식가옥이 빼곡히 들어섰습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100여 채 남아있던 일본인가옥은 현재 50채가량 남았습니다.
거리 곳곳에는 일제강점기 당시 사진이 붙어 있어 현재 모습과 비교하며 둘러볼 수 있습니다.
집 내부에는 다다미는 물론, 일본 잡지로 도배한 방문, 후지산이 그려져 있는 유리창 등 일제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남아 있지요.
포항시에서는 이를 활용해 한때 풍요로웠던 일본인들의 생활상과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의 증거물이자 교육장으로써 ‘구룡포 근대 문화 역사 거리’를 조성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표지판에서 오른쪽으로 쭉 걷다 보면, 멋들어진 건물 한 채가 보이는데요
이 건물은 1920년대 가가와현에서 온 하시모토 젠기치(橋本善吉)가 살림집으로 지은 2층 일본식 목조가옥입니다.
그는 구룡포에서 선어운반업으로 크게 성공하여 부를 쌓은 사람입니다.
건물을 짓기 위해 당시 일본에서 직접 건축자재를 운반하여 건립하였다고 합니다.
현재 복원 공사를 마무리하여 ‘구룡포 근대역사관’으로 개관하였습니다.
건물 내부의 부츠단, 고다츠, 란마, 후스마, 도코바시라 등이 1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잘 남아 있으며 일본식 건물의 구조적 의장적 특징을 잘 갖추고 있습니다.
이 건물은 한국과 일본 건축 전문가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대상으로 삼는 건축물로 그 가치가 크다고 해요.
1층에는 100년 전 일본 어부들이 구룡포에 정착하게 된 상황과 당시 일본인들의 생활상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부츠단과 고다쯔, 부엌 등 당시 이곳에 살았던 이들의 생활상을 재현해 두었습니다.
2층에서는 일본으로 돌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당시 구룡포에 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일본인들로 구성된 ‘구룡포회’ 회원들의 육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집안 곳곳을 둘러보다 복도 끝에 걸터앉습니다. 목조건물 특유의 안락함과 창 밖에서 들어오는 겨울 볕은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넓은 정원이 딸린 2층 목조 가옥에서 떵떵거리며 살았을 그의 모습을 떠올리니 가슴 한쪽이 씁쓸합니다.
근대역사관을 나와 왔던 길을 따라서 쭉 걸으면, 좌우로 늘어선 일본의 적산가옥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한적한 일본마을의 풍경을 연상하게 하는 골목입니다.
적산가옥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이 골목은 마치 일시정지라도 한 듯이 그 시절의 기억을 아직 떨쳐버리지 못한 채 멈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