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여행이야기 청주 중앙공원 은행나무전설
청주여행이야기 청주 중앙공원 은행나무전설
1392년 고려가 멸망하기까지 고려는 건국초기부터 멸망에 이르는 기간 동안 오랑캐들의 침략으로 하루도 편할 날 없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더구나 고려 말 약 100여년정도 지속된 원의 간섭은 고려의 힘을 약화시켰고 특히 고려 말 홍건적과 왜구의 잦은 침략은 백성들의 삶을 고통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부패한 귀족과 사찰은 백성들이 농사지을 땅마저 빼앗았으며 1368년 원이 멸망하고 명이 들어서자 정치세력들은 친명파와 친원파로 갈려져 첨예한 대립을 거듭했다.
이 당시 친명파였던 이성계는 요동정벌 명령을 거부하고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고려왕조가 멸망하는데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 ‘직지’의 고장으로 잘 알려진 청주는 충청북도의 중심지로 아름답고 서정적인 도시풍경과 더불어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문화재들이 산재해있어 교과서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 중 하나이다.
또한 규모 있는 도시의 명성에 걸맞게 여행자들이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음식점과 숙박시설 및 휴식공간 등 여행자들을 위한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신록이 푸르러지는 6월에 청주를 여행한다면 청주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여행지를 답사하며 그 여행지속에 숨겨져 있는 다양한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 보자.
청주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중앙공원에는 1000여년이 가깝도록 그 자리를 지켜온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있다.
나른한 오후가 되면 할아버지 무릎을 베고 누운 손주가 낮잠을 자고 있을 것만 같은 편안하고 수려한 나무이다.
1000여년이 가깝게 자란 나무답게 허리둘레가 어마어마해서 장정 여럿이서 팔을 뻗어도 닿을 것 같지 않은 엄청난 크기를 자랑한다.
대부분의 오래된 나무들이 그러하듯이 이 은행나무에도 전설이 하나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흉년이 들거나 전쟁이 날 때 울음으로 알려준다는, 청주여행이야기 마을마다 전해 내려오는 비슷한 전설이 아닌 고려 말의 정치상황과 관련된 전설이다.
청주 중앙공원은 옛 청주관아가 있던 곳으로 압각수라 불리는 은행나무 옆으로 청주옥이라는 감옥이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고려 공양왕 시절에 10여명의 죄수들이 이곳 청주옥에 잡혀오게 된다.
죄수들 중에는 목은 이색, 도은 이숭인, 양촌 권근, 인재 이종학 선생 등의 충신들도 포함되어있었다.
이중에서 목은 이색선생은 학문과 인품이 뛰어나 훗날 조선성리학의 뿌리가 되신 분이다.
이들 죄수들은 이성계와 공양왕을 모함했다는 죄를 뒤집어쓰고 청주옥에서 모진 고초를 당했다.
고문이 어찌나 심했던지 죄수들 모두 밤늦은 시각이 되자 죽은 자처럼 축 늘어진 상태가 되었다.
모진 고문이 있던 날 밤 갑자기 천둥번개를 동반한 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물은 삽시간에 불어나서 청주옥을 휩쓸었다.
감옥에 갇혀있던 죄수들은 물론 관리들과 백성들까지 모두 불어난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목은 이색선생도 예외는 아니어서 급작스럽게 불어난 물에 떠내려가게 되었다.
이색선생께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아름드리 은행나무의 가지를 붙든 뒤였다.
신비스럽게도 하늘 높은 곳에 있던 은행나무 가지가 저절로 내려와 이색선생을 붙잡은 것이었다.
이색선생이 은행나무 가지를 붙들자 은행나무 가지는 다시 사뿐히 하늘로 올라갔다.
덩달아 이색선생께서도 하늘로 올라가 은행나무꼭대기에 앉게 되었다.
그런데 왕을 모함한 죄로 잡혀온 죄수들도 다 같이 은행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이 아닌가?
죄수들이 은행나무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본인들을 고문했던 관리들이 하나같이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며 급한 물살에 밀려 떠내려가고 있었다.
청주 고을 사람들이 이를 보고 하늘이 무고한 죄수들을 살렸음을 칭송하며 감복했다고 전해진다.
또 고려 공양왕 역시 하늘이 살린 자들은 죄가 없음을 밝히고 그들을 풀어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