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기슭 차밭과 섬진강 달빛에서 하동을 느끼다
지리산 기슭 차밭과 섬진강 달빛에서 하동을 느끼다
하동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두 가지가 있다. 야생 차밭과 섬진강이다.
느림의 미학을 담은 차밭과 섬진강은 발도장만 쿡 찍고 가는 여행지가 아니다.
머물며 천천히 음미해야 그 진가를 비로소 알 수 있는 곳이다.
하동 사람이 된 듯 낮에는 차밭에 자리 깔고 앉아 차를 우려 마시고 밤에는 섬진강 변에서 강바람에 일렁이는 달빛을 감상한다.
현지인처럼 살아보며 느끼는 ‘생활관광’의 ‘찐’ 매력을 하동에서 만끽할 수 있다.
차밭에서 나만의 티타임, 하동 차마실
하동은 명실 공히 우리나라 차(茶)의 본고장이다.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신라 흥덕왕 때 당나라에서 가져온 차나무 씨앗을 지리산 일대에 처음 심었다고 한다.
이를 인증하는 쌍계사 차나무 시배지가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에 있다.
이곳에는 지금도 야생 차밭이 건재하다
차밭은 지리산 자락, 섬진강 지류인 화개천을 따라 모여 있는데 안개가 많고 다습하며 일교차가 커서 차나무가 자라기 좋은 환경이다.
커피가 대세인 시대라지만 하동에서는 여전히 차가 대접받는다.
차의 본고장답게 어디를 가든 차를 내준다.
이곳에서 차는 일상이자 하나의 문화다. 대를 이어 차를 재배하는 농가가 많고 그만큼 차 문화가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그러니 하동에 머문다면 커피 대신 차를 마셔볼 일이다. 찻집도 좋겠지만 이왕이면 차밭에서 차 한 잔을 음미하면 어떨까.
하동에는 소규모 개인 다원이 많다.
어떤 차밭에서 어떤 차를 마셔야 할지 고민된다면 현지인이 운영하는 생활관광 프로그램 ‘하동 차마실’을 이용하자.
개별 프로그램을 사전 신청하면 키트를 제공하는 다원을 알려준다.
해당 다원으로 찾아가서 키트를 받으면 된다. 키트는 소풍 바구니, 다구, 차, 다식, 돗자리, 보온병 등으로 구성된다.
차 마시며 읽기 좋은 <하동에서 차 한잔 할까?> 책자도 들어 있다. 구성이 꽤 알차다.
현지인(차 농가인)이 어디에 가서 차를 마시면 좋을지 장소도 안내해 준다.
정금차밭, 쌍계사 차나무 시배지 등 풍광 좋은 장소로 인도하되 개인 사유지로 등록된 차밭이 아니면 어디든 가도 된다.
또한 가능한 한 다른 이용객과 겹치지 않도록 분산시킨다.
차밭만이 아니라 동정호 같은 호숫가나 섬진강 변으로 가도 된다.
하동 차마실 키트만 있으면 그 어느 곳도 나만의 다원이 될 수 있다.
풍광 좋기로 유명한 정금다원이 오늘의 목적지다. 차밭 위쪽에 정자가 마련되어 있다.
정자에 오르면 눈부신 초록빛 세상이 펼쳐진다. 지리산 자락과 섬진강 지류에 안긴 차밭이 평화롭다.
하동의 차밭 풍경은 보성이나 제주에서 보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작은 개인 다원이 하나둘 조각을 맞추듯 풍경을 완성하는 하동의 차밭 풍경은 자연 그 자체다.
차나무가 반듯하게 정렬, 정돈된 대규모 차밭에서 느낄 수 없는 특유의 감성이 있다.
밭 어느 자락에 돗자리를 깔고 다기를 정돈한다.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덖음 기술이 돋보인다는 하동 찻잎을 다관에 넣고 또르르 물을 붓는다.
찻잎이 머금은 향이 물에 스며들 시간을 준다. 찻잔에 차를 따라 한 모금 호로록 마신다.
차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맛있다. 눈앞에 펼쳐진 경이로운 풍경 때문인지,
주위를 감싼 싱그러운 차밭의 기운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이 순간 이곳에선 차가 참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