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 선생의 흔적이

백범 김구 선생의 흔적이 남아 있는 가족 힐링 한옥스테이

백범 김구 선생의 흔적이 남아 있는 가족 힐링 한옥스테이

백범 김구 선생의 흔적이 남아 있는 가족 힐링 한옥스테이

수달 살던 달천에 솟은 수려한 봉우리 충주 수주팔봉

‘남문한옥 대명헌’(이하 대명헌)은 백범 김구 선생과 인연이 깊은 곳이다.

1898년 인천 감리서를 탈옥한 김구 선생은 자신의 구명에 힘쓴 김주경을 만나기 위해 강화도로 왔다.

김주경은 이미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난 뒤였지만 김구 선생은 그의 집 인근에서 서당을 열고

3개월 동안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며 계몽운동을 펼쳤다.

당시 서당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집이 대명헌이다. 1947년 강화도를 다시 찾은 김구 선생은 자신의 동지

30여 명과 대명헌 마당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대명헌 마당에는 당시 사진을 찍은 위치에 포토 존이 마련돼 있다.

대명헌은 ‘ㄱ’ 자형으로 지은 근대한옥이다.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2칸으로 나뉜 안방이, 오른쪽에 사랑방과 누마루가 위치한다.

안방과 이어진 부엌 위 다락방에는 한옥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발코니가 설치됐다.

대명헌에서는 이처럼 영국식 건축양식이 눈에 띄는데, 대청과 누마루 바닥을 빗살 형태의 헤링본 무늬로 마감한 것과

색유리와 부식기법으로 멋을 낸 크리스털 유리문 등이 대표적이다.

안방과 툇마루 사이에 베란다를 두고 붙박이장을 설치한 공간구성도 인상적이다.

지금도 여전히 사용하는 붙박이장에는 90년 이상 된 식기와 커피잔 등이 가득하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영국식 건축양식을 한옥에 접목한 건 1900년에 세운 한국 최초의 한옥 성당인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사적 제424호)의 영향이 크다.

대명헌은 1918년 공사를 시작해 1928년 완공했다. 집 한 채를 짓는 데 꼬박 10년이 걸렸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경복궁 중건에 3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 것과 비교하면 이 집에 들인 정성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만하다.

아닌 게 아니라, 대명헌 건축에는 궁궐을 짓는 도편수가 고용됐으며, 목재는 모두 백두산에서 뗏목으로 실어온 잣나무를 사용했다.

김구 선생이 머문 공간에서 하룻밤을 보낸다는 건 분명 특별한 경험이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김구 선생이 쓴 <백범일지>를 준비해 같이 읽으며 시간을 보내도 좋다.

대명헌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는 하루 2회(오후 2시·4시) 진행하는 문화해설 프로그램을 통해 자세히 들을 수 있다.

취사시설이 없는 대명헌에서는 투숙객의 편의를 위해 빵과 샐러드, 제철 과일로 차린 조식을 무료로 제공한다.

색유리로 장식한 이국적인 누마루에서 맛보는 근사한 아침식사는 대명헌에서 하룻밤을 보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다.

대명헌에서는 1일 1회 이상 방역소독을 실시하며, 환기를 통한 청결에도 많은 신경을 쓴다.

강화역사박물관

강화도에서 출토된 다양한 유물과 디오라마를 통해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 강화도의 역사를 꼼꼼히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강화역사박물관 입구에는 고창, 화순 고인돌 유적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강화 부근리 지석묘(사적 제137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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