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마곡사 솔바람길 마곡천을 따라 마곡사의 신록을 노래하다
공주 마곡사 솔바람길 마곡천을 따라 마곡사의 신록을 노래하다
‘춘마곡 추갑사(春麻谷秋甲寺)’라 했다. 계절의 아름다움이 봄에는 마곡사요, 가을에는 갑사라는 얘기다.
그만큼 마곡사의 봄 풍경은 손에 꼽을 정도로 아름답다.
그 아름다운 풍경 속에 백범길, 명상산책길, 송림숲길 등 3개 코스로 구성된 마곡사 솔바람길이 조성되었다.
마곡사와 함께 마곡사 솔바람길의 백미인 명상산책길을 걸어본다.
마곡사 입구의 번잡한 상가를 지나면 마곡천이 나란히 이어지며 마곡사로 안내한다.
마곡천이 태극 문양처럼 한 바퀴 크게 휘감아 돌면 비로소 마곡사 경내에 이른다.
마곡사는 신라 문무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한 천년 고찰이다.
예부터 마곡사가 깃들어 있는 태화산 골짜기에 마(麻)가 많이 자라서 이름 붙여졌다고도 하고
자장율사가 당나라에 유학하던 시절 스승인 마곡화상을 기려 마곡사라 불렀다고도 한다.
마곡사는 오랜 역사를 간직한 사찰인 만큼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둘러볼 수 없다.
경내에 보물로 지정된 영산전, 대웅보전, 대광보전, 오층석탑 등이 있고
대광보전 앞마당까지 이어지는 길에 해탈문, 천왕문, 명부전, 국사당, 응진전, 심검당 및 고방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그중 대광보전은 볼거리가 많은 곳 가운데 하나로 천천히 둘러보는 것이 좋다. 먼저 현란한 기교를 보여주는 대광보전 현판은 표암 강세황의 글씨로 알려져 있다.
강세황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문인화가이자 단원 김홍도의 스승으로 잘 알려져 있다.
대광보전 내부에서는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이나 영광 불갑사 대웅전처럼 남쪽이 아닌 동쪽을 향해 앉아 있는 비로자나불을 만날 수 있다.
후불탱화 뒤편에는 하얀 옷을 휘날리는 수월백의관음도가 있다. 이밖에도 대광보전 내외부에는 16나한
사천왕뿐 아니라 다양한 산수화가 남아 있다. 마곡사가 불교미술의 큰 맥인 남방화소의 중심으로 그림을 그리는 선승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대광보전에는 참나무 껍질로 만든 삿자리 이야기도 전한다. 다릿병을 앓던 한 사람이 부처님께 공양하기 위해 100일 동안 지극정성으로 삿자리를 짰는데
100일째 삿자리가 완성되던 날 자리를 털고 유유히 걸어 나갔다는 이야기다.
부처님이 정성에 감동하여 은혜를 베풀었다는 이야기로, 대광보전 바닥에 삿자리가 그대로 남아 있다.
조선시대 세조의 글씨도 남아 있다. 마곡사 입구에 자리 잡은 영산전 현판이 바로 그것.
세조는 생육신의 한 명인 매월당 김시습을 보러 마곡사를 찾았다가 결국 만나지 못하자 영산전 현판과 자신이 타고 온 가마를 남겼다.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책을 불사르며 울부짖던 매월당 김시습이었다. 그를 만나 회유하고자 했던 세조의 안타까운 마음이 그대로 묻어난다.
영산전이 현재 해체 복원 중이어서 현판을 볼 수 없고, 세조의 가마 역시 보기 어려워 아쉽다.
마곡사는 대광보전 위로 대웅보전이 서 있어서 매우 독특한 가람 배치를 보여준다.
대광보전 뒤편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2층 누각처럼 거대한 대웅보전이 의연하게 서 있다.
계단 위에서 경내를 내려다보면 심검당과 고방 방면으로 건물의 지붕선이 매우 아름답다.
마곡사는 백범 김구 선생의 흔적도 간직하고 있다.
김구 선생은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군 중좌를 살해한 죄로 복역하던 중 탈옥해 마곡사에 은신했다.
광복 직후인 1946년, 선생은 마곡사를 다시 찾아 경내에 향나무를 심었다. 그때 심은 향나무가 응진전 옆에서 60여 년의 세월을 지키며 오롯이 서 있다.
마곡사가 깃들어 있는 태화산 자락에는 마곡사 솔바람길이 조성되었다. 일명 ‘백범 명상길’이다. 김구 선생이 마곡사에 은신하던 당시 걸었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