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전어에 버금가는 진미 웅어회

가을 전어에 버금가는 진미 웅어회

가을 전어에 버금가는 진미 웅어회

가을 전어에 버금가는 진미 웅어회

평화의 바람을 맞으러 파주로 가다

어깨에 닿는 햇살이 한결 부드럽고 따스하다.

코끝으로 스미는 바람도 달짝지근하다.

겨우내 집 안에서 웅크리고 있던 이들도 이제 슬슬 바깥공기 좀 쐐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저기에서 꽃소식이 날아들어 괜히 마음을 들뜨게 한다. 봄은 꽃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식도락의 계절이기도 하다.

이 땅 곳곳에서 나는 다양한 봄날의 별미들이 미식가를 유혹한다.

산과 들은 갖가지 나물과 채소를 선보이고, 강과 바다는 주꾸미며 벚굴이며 실치며 도다리며 대게 등등 온갖 먹을거리를 쏟아낸다.

이 땅은 작지만 깊고 풍요로워서 계절마다 다양한 진미를 맛볼 수 있게 해준다.

혹시 웅어라는 생선을 아는지. 조선시대에는 왕에게 진상할 정도로 귀한 신분이었지만 지금은 그 이름을 아는 이조차 드물다.

왕이 먹었던 진귀한 음식

웅어는 청어목 멸치과에 속하는 회유성 물고기다.

성질이 워낙 급해 멸치나 갈치처럼 그물에 잡혀 육지에 올라오는 즉시 죽는다.

그래서 수입산은 엄두조차 낼 수 없다. 양식도 불가능하다.

웅어는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기수역(汽水域)에서 많이 잡힌다.

어린 웅어는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바다로 내려가서 성장하다가 음력 4월쯤 바다와 맞닿은 하구로 올라와 갈대밭에 산란하고 그곳에 한동안 머무른다.

한자로는 갈대 위(葦) 자를 써서 위어라고도 한다.

김포와 고양, 파주의 한강 자락에서 많이 잡혔고, 멀리 올라오는 놈들은 행주나루나 개화산 앞강까지 왔다고 한다.

금강과 영산강에서도 잡혀 논산, 강경, 군산, 부여, 익산, 나주 등지에서도 웅어회가 유명했다.

지방에 따라 우어, 우여, 위어, 의어, 도어, 제어, 열어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옛 기록에도 웅어가 자주 보인다. 《자산어보》는 웅어를 드문 글자인 ‘웅어 도’ 자를 써서 ‘도어’라고도 부르고 있는데, 웅어의 실제 모습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몸길이 20~30cm로 가늘게 생긴 데다 빛깔까지 은백색이어서 칼과 비슷한 모양이다.

《본초강목》에는 웅어가 제어, 열어, 멸도 등으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한국수산지》

《신증동국여지승람》, 《고양군지》 등에도 조선시대 임금이 먹던 귀한 영양식으로 등장한다.

《경도잡지》에도 사옹원이 나서서 늦은 봄이나 초여름에 웅어를 잡아 임금에게 진상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사옹원은 조선시대 궁중의 음식 관련 업무를 맡아보던 관청인데, 위어소(葦漁所)를 고양에 설치해 임금에게 진상할 웅어를 전담해서 잡을 정도였다고 한다.

백제의 의자왕도 보양식으로 웅어를 즐겨 먹었다고 한다.

백제 멸망 후 당나라의 소정방이 웅어를 맛보려고 부하들에게 잡아오라고 시켰으나 한 마리도 잡아오지 못하자

‘고기마저 의리를 지키려고 모두 사라졌구나’라고 말한 데서 충어라는 말이 나왔다고도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한강과 임진강 일대에서 웅어가 잡히지 않는다.

한강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웅어철이 되면 그야말로 물 반 웅어 반일 정도로 웅어가 많이 올라왔다고 한다.

당시 행주나루 사람들은 웅어를 잡아 자식들의 등록금을 마련했을 정도였다고.

하지만 1980년대 한강종합개발사업의 일환으로 물길이 막히고 갈대숲이 사라지면서 한강

고양, 파주를 비롯해 금강 하구의 강경포구나 영산강 구진포에서도 웅어가 자취를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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