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 있는 농촌체험 한옥마을 인량리
품격 있는 농촌체험 한옥마을 인량리
행복한 장터 구수한 아라리 가락 들으며 정(情)과 인심
어질고 인자한 사람이 많다는 인량리. 500여 년을 넘나드는 고택이 촘촘한 마을에 들어서면 왠지 글 읽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아니나 다를까, 한 집 건너 한 사람이 박사 가 난 마을이란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을은 우리나라 5대 명당으로 꼽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가만히 서 있어도 기운을 받는 듯한 이 마을에 하루 머무는 것도 좋은데, 무료하지 않게 체험 프로그램까지 무궁무진하다.
품격에 재미를 더한 나들이, 인량리에 숨어있었다.
마을의 첫인상은 포근하다. 송천강을 건너면 칠갑산 자락이 마을을 감싸 안은 모습이 편안하게 다가온다.
나지막한 산과 넉넉한 들판, 그 사이에 아기자기 하게 들어 선 마을. 어느 하나 모난 곳이나 튀는 구석 없이 잘생겼다.
풍수에 문외한이라도 배산임수의 평온이 절로 느껴지는 명당이다. 옹기종기 모인 고택이 마을의 품격을 전해준다.
마을의 역사를 잠시 짚어보자. 1610년(광해군 2)부터 어질고 인자한 현인이 많다고 인량리라 불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인량리는 8성씨 12종가가 모여 사는 양반 마을이다. 많게는 500년이 넘고, 적게는 200년 남짓 되는 고택이 즐비하다.
문화재로 지정된 가옥이 9채에 이른다. 마을 사람들은 ‘나라골’이라는 옛 이름을 더 사랑한다.
삼한 시대에 우시국의 도읍이 있었다고 나라골이라 불렸다고도 하고, 마을의 지세가 학이 날아가는 것과 같아서 ‘나래골’이 되었다고도 한다.
마을에는 예나 지금이나 걸출한 인재가 많다.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사모관대 행차가 끊이지 않았고, 근래에는 박사가 40여 명, 서울대 출신이 40여 명이다.
우리나라에서 다섯 손가락에 드는 명당이라는 말이 실감 난다.
뒷짐을 지고 본격적으로 고택 산책에 나서보자. 마을 입구에는 잎이 무성한 느티나무가 지키고 섰다.
사람들은 이곳을 ‘팔풍정’이라 부른다. 팔풍정에는 주민을 괴롭히던 여덟 요괴를 물리친 역동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팔풍정은 마을 사람과 이곳을 찾은 이들에게 평화로운 그늘을 선사하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팔풍정 맞은편에 앙증맞은 버스 정류장이 있고, 그 옆에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보인다.
좁은 시골길에는 석류며 감이 주렁주렁 열렸고, 집 옆에는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사과가 빨갛게 익어간다.
발길이 가장 먼저 닿은 곳은 용암종택이다. 열린 대문 앞에서 걸음이 우뚝 선다.
헛담을 두른 조심스러운 정취, 꾸미지 않은 듯 자연스러운 꽃밭이 대문을 액자 삼아 그림처럼 눈에 들어온다.
그대로 가져다가 두고두고 보고 싶은 풍경이다. 대문으로 들어서면 나지막한 산자락 풍경을 해치지 않으려고 지붕을 낮춘 선조의 멋이 감탄사를 자아낸다.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을 진압한 용암 김익중이 같은 해 지은 집이다.
용암종택을 나서면 길은 삼벽당으로 이어진다. 삼벽당은 농암 이현보의 넷째 아들 이중량의 종택이다.
겹겹이 이어지는 화려한 지붕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삼벽당은 ‘세 가지가 푸른 집’이라는 뜻이다. 세 가지는 청벽오동나무, 대나무, 소나무를 의미한다. 집 뒤로 소나무와 대나무가 울창하다.
둥근 목재로 만든 문지방이며, 45°로 깎아 연귀 맞춤한 문틀 등 구석구석 섬세함이 돋보인다.
삼벽당을 뒤로하고 가을볕을 따라가면 오봉종택과 만난다. 기품 있는 한옥의 멋을 고스란히 간직한 집이다.
집에서 가장 높은 벽산정 마루에 오르면 오봉헌과 고택 지붕이 오밀조밀 이어지고, 마을이 넉넉히 펼쳐진다.
안동 권씨 영해파 입향조 권책의 종택으로, 안동 권씨의 위세가 엿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