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 다음 일렁이는 초록 물결 왕의 녹차의 유혹

봄꽃 다음 일렁이는 초록 물결 왕의 녹차의 유혹

봄꽃 다음 일렁이는 초록 물결 왕의 녹차의 유혹

커피만 있는 카페거리가 아니다 김해 장유 율하 카페거리

전남 보성에 녹차가 있다면 경남 하동에는 야생차가 있다.

하동 야생차는 화개·악양면 2000여 개의 농가가 연간 180억원의 소득을 올리는 특화작목.

차밭 면적만 1000ha(1천만㎡, 약300만 평)가 넘는다.

화개면 일원은 섬진강과 가까워 안개가 많고 다습하며 큰 일교차로 차나무 재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일까. 하동은 신라시대부터 차를 재배한 기록이 남아있는 이 땅의 ‘차 시배지’로 ‘왕의 녹차’라는 별명까지 지닌 ‘차의 고장’이다.

‘하동 야생차 문화축제’는 차(茶)를 주제로 한 종합 차(茶)문화 축제로 이름이 높다.

‘하동’하면 꽃비 흩날리는 봄날의 섬진강이 먼저 떠오르지만 이번 축제를 통해 하동의 새로운 모습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번 여행의 주제가 ‘하동의 야생차’인만큼 하동의 차 문화 유적지를 중심으로 여행 동선을 짜 봤다.

이번 축제의 주무대인 화개장터와 쌍계사 차 시배지, 그리고 하동야생차박물관을 중심으로 돌아볼 예정이다.

경쾌한 멜로디에 정겨운 가사를 듣고 있자니 서울에서 나고 자란 기자도 고향이 그리워진다.

어린 시절의 푸근한 추억이랄까.

지금은 소박한 모습이지만 이곳 화개장터는 섬진강이 수문을 연 이래, 영호남을 이으며 전국구 시장으로 성장해갔다.

21세기의 화개장터는 생각했던 것보다 소박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이한다.

지금도 지리산 자락에서 난 다양한 약초와 나물들이 주 메뉴이다.

아, 끝물이긴 하지만 장터 곳곳에서 섬진강 하구 별미인 벚굴도 맛볼 수도 있다.

2014년 화재로 새 단장한 모습이지만 좋았던 시절의 벅적거림은 이미 사라졌다.

장터 앞을 지키는 화개장의 역사 기념비만이 그 시절 옛 장터의 아쉬움을 속삭인다.

화개장터에서 12km 즈음 달려가면 쌍계사와 닿는다.

연인이 함께 걸으면 해로한다는 전설의 쌍계사 십리벚꽃길이 바로 여기에 있다.

덕분에 꽃비 내리는 봄날이면 섬진강 자락의 화개장터와 강 건너 매화마을, 그리고 쌍계사는 상춘객들로 몸살을 앓는다.

하지만 이번 여행의 주인공은 야생차.

“우리나라 차(茶) 문화는 바로 여기, 지리산 자락에서 시작됐다.

신라 흥덕왕 3년(828년) 중국 당나라에서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이 차나무 씨앗을 가져오자 왕이 지리산에 심게 했다고 <삼국사기>는 전한다.

쌍계사 장죽전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차가 재배된 곳으로 천년을 내려오면서 소중한 문화유산이 됐다.

…(중략)… 이곳이 한국 차의 본산임을 알리는 하동 야생차문화축제가 매년 차의 날인 5월25일을 전후해 이 일대에서 열린다.”

쌍계사 차(茶) 시배지 앞에 적힌 설명글이다.

차 시배지에는 성인 키 만큼 훌쩍 자란 야생차와 더불어 한국 최고(最古) 차밭임을 알리는 김대렴공 차 시배 추원비(1981년 건립)와 표지석(1992년 건립), 그리고 쌍계사를 창건하고 차 문화 보급에 힘을 쏟은 진감선사 추앙비(2005년 건립)가 사이좋게 자리한다.

쌍계사 안에 자리한 고운 최치원 선생이 왕명으로 짓고 쓴 진감선사 대공탑비(국보 제47호)도 놓치지 말자.

비문에는 ‘덩이차를 가루내어 끓여 마신다’거나 ‘다구로는 돌솥이 사용됐다’ 등 신라의 차 생활을 알 수 있는 기록이 남아있다.

커피만 있는 카페거리가 아니다 김해 장유 율하 카페거리

커피만 있는 카페거리가 아니다 김해 장유 율하 카페거리

커피만 있는 카페거리가 아니다 김해 장유 율하 카페거리

건강한 우리 술 막걸리와 산야초장아찌

강남에 가로수길이 있다면, 경남에는 장유 율하 카페거리가 있다.

단언컨대 요즈음 경남 최고의 핫 플레이스로 손꼽히는 곳이다.

율하 카페거리는 김해시 장유면 율하신도시에 위치하는데 창원, 부산, 거제 등 여러 도시와 인접해 외지 사람들까지 많이 찾아든다.

서울과 경기도 신도시에 들어선 카페거리와 달리 율하 카페거리에는 카페 그 이상의 즐길거리가 가득하다.

카페만이 아니라 자연, 문화, 유적 등 알찬 콘텐츠를 품고 있어 더욱 마음이 끌린다.

생태하천과 유적공원, 기적의 도서관으로 둘러싸인 오감 충족 카페거리

율하 카페거리가 여느 카페거리와 차별되는 점은 바로 주변 환경이다.

먼저 율하신도시를 가로지르는 율하천을 끼고 있어 여유로운 ‘카페놀이’를 만끽하기에 제격이다.

생태하천으로 거듭난 율하천에는 산책로와 휴식공간이 잘 조성돼 있다.

봄이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거리를 거닐고, 여름이면 물놀이를 즐기고, 가을이면 저녁 무렵 산책을 즐기기에 그만이다.

자연만이 아니라 가까이에서 유적도 접해볼 수 있다는 점이 특별하다.

‘김해 율하지구 택지개발사업’에 앞서 실시된 지표조사와 시굴조사 결과 이 지역에서 청동기시대 주거지, 지석묘, 삼국시대 목곽묘, 석곽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건물지 등 중요 문화재가 대거 발굴됐다.

이에 고인돌공원과 마을 유적으로 구성된 율하유적공원을 조성했다.

공원 안에는 유적전시관도 있어 함께 둘러보면 좋다.

카페거리 또 다른 쪽에는 관동공원이 자리한다.

이곳에는 6세기 후반에서 7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주거 유적이 전시되어 있는데, ‘장유 택지개발사업’ 전에 실시한 시굴, 발굴조사 과정에서 발견돼 이전 복원한 것이다.

또 MBC 예능 프로그램 <느낌표>를 통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의 일환인 ‘김해 기적의 도서관’도 유적공원 쪽에서 만나볼 수 있다.

책읽는사회문화재단과 김해시가 2011년 공동 설립한 어린이 전용 도서관으로, 생태 건축가로 유명한 고 정기용 건축가의 마지막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율하 카페거리의 주변 탐색이 끝났다면 본격적으로 카페 구경에 나서볼까?

관동공원에서 유적공원 사이 주택단지에 카페가 많이 모여 있다.

개인 카페부터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까지, 다양한 카페들을 만나볼 수 있다.

그중 눈여겨볼 몇 군데를 소개하자면, 일명 ‘강동원 카페’로 알려진 ‘cafe G’, 율하 카페거리의 초창기 멤버이자 지금도 대표 카페로 꼽히는 ‘카페 두오모’와 ‘Cafe the SJ’, 인기 디저트 카페인 ‘듀팜므(deux FEMMES)’ 등이 있다.

cafe G는 배우 강동원의 이니셜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카페가 있는 이 건물은 실제 강동원 소유로, 2009년 김해시 건축대상을 수상할 정도로 훌륭한 조형미를 자랑한다.

지상 1층과 지하 1층이 카페로 운영되고 있다.

부드럽고 촉촉한 요거트 크림과 상큼한 블루베리가 어우러진 퍼플블루베리파이가 인기가 좋다.

파이 속에 직접 만든 블루베리젤리가 가득 들어 있다.

진한 초콜릿 맛의 쇼콜라레이어파이, 바나나로 달콤한 맛을 살린 바나나블랑파이 등 디저트의 향연이 펼쳐진다.

치명적인 디저트의 유혹에 기꺼이 마음을 내어주고 싶은 공간이다.

이곳은 단순한 카페가 아니라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조인성과 송혜교가 출연해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감성적인 엔딩 장면을 촬영했던 곳으로 알려지면서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고 있다.

카페가 있을 법하지 않은 길에서 만나게 되는 일루소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날에 찾으면 최고의 감동을 선사한다.

벚꽃과 어우러지는 황홀한 풍광 덕에 올 4월 초에는 이나영과 김우빈이 등장하는 커피 CF가 이곳에서 촬영되기도 했다.

건강한 우리 술 막걸리와 산야초장아찌

건강한 우리 술 막걸리와 산야초장아찌

건강한 우리 술 막걸리와 산야초장아찌

청송에서 즐기는 지질 여행 청송국가지질공원

주막거리로 명성을 날린 단양 대강면에 4대째 이어오는 대강양조장이 있다.

옛 풍경과 이야기가 곁들여진 새콤하고 진한 막걸리 한 잔과 산속에서 상 위로 오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한 산야초장아찌 한 상은 무더운 여름날을 보낸 노고를 위로해준다.

든든히 배를 채우고 걷는 벽화 골목에서는 100년 역사가 느껴진다.

충북 단양군 대강면과 경북 영주시 풍기읍을 잇는 죽령(해발 689m)은 문경새재, 추풍령과 함께 영남 3대 관문으로 영남 사람들이 한양으로 향할 때 넘어야 하는 고갯길이었다.

낮에 죽령을 넘은 이들은 지금의 대강면에서 밤을 보내야 했는데, 이들에게 잠자리를 내어주기 위해 그때부터 부근에 주막거리가 생겼다고 한다.

이제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대강양조장이 4대째 우리 술의 역사를 이어가면서 어렴풋이 옛 시절 이야기를 전한다.

대강양조장은 1918년 충주에 있던 외증조부의 양조장에서 시작되었다.

3대 조국환 대표가 1969년 양조장을 계승하고 대강면으로 이전하며 대강양조장이라는 이름을 걸었다.

대강면의 역사도 그렇거니와 소백산 자락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술맛에 좋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단양으로 이전하고 새롭게 개발한 술이 단양 지역 가양주인 신선주를 재현한 것인데, 당시만 해도 신선주는 고서와 구전으로 남았을 뿐이다.

2004년에는 건강을 생각하는 시대의 바람에 따라 검은콩 막걸리 특허를 받았고, 쌀과 밀, 옥수수, 보리, 조가 들어간 오곡진상주는 2005~2008년 청와대 만찬주로 지정되었다.

2008년부터 조재구 대표가 4대째 대강양조장을 지키며 복분자 막걸리를 비롯한 우리 술 개발에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대강양조장은 우리 술 제조와 판매는 물론, 막걸리 체험 프로그램을 상시 운영한다.

체험 프로그램은 쌀과 소백산 자연수, 누룩을 사용해 술 빚기, 전통 도구를 이용해 술 짜기, 완성된 술을 간단한 안주와 함께 시음하는 순서로 이어진다.

체험 가능한 인원은 3~30명으로, 프로그램은 2시간 정도 진행된다.

비용은 인원수에 따라 다르지만 1인 2만원 정도다.

전화나 인터넷 홈페이지로 예약한 뒤 참여할 수 있다.

마무리는 양조장 발효실과 박물관 관람이다.

발효실에는 커다란 항아리가 늘어섰다.

전통 맛을 고수하기 위해 지금도 오래된 항아리에서 효모를 키운다.

항아리를 고친 흔적은 양조장의 지난 시간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양조장의 역사를 자세히 볼 수 있는 작은 박물관에는 1960~1970년대에 사용된 잡기며 도구가 전시된다.

농가 맛집을 자처하는 수리수리봉봉의 주메뉴는 오리와 닭백숙, 산채정식, 닭볶음탕이다.

정식에는 메인 요리와 함께 여러 가지 장아찌, 산나물을 듬뿍 넣은 만두, 산야초스테이크와 산야초전이 포함된다.

모든 요리가 맛깔스럽지만, 한상차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접시는 단연 장아찌다.

어떤 메뉴를 주문하더라도 장아찌가 6~7가지 나오는데, 주재료는 철마다 달라진다.

이곳의 장아찌는 소백산 수리봉과 신성봉 부근에서 직접 채취한 산야초와 지역에서 재배되는 제철 채소로 만든다.

양념은 간장, 설탕, 식초를 3:2:1 비율로 하는 일반적인 방법을 사용한다고.

직접 담근 간장을 사용하기 때문에 덜 짜고, 각 재료의 향과 식감을 살린 것이 특징이다.

수리수리봉봉 대표는 가족의 건강을 생각해서 2003년 단양으로 귀농한 뒤, 일상에서 산야초를 건강하게 섭취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장아찌를 선택했다.

남편은 날마다 소백산을 오르내리며 산야초를 캐고, 아내는 집안 대대로 이어진 손맛으로 장아찌를 담갔다.

식당을 열고 맛있는 장아찌로 입소문이 나면서 장아찌 담그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사람들이 늘었다.

처음에는 지인 몇 명과 함께 조금씩 만들던 소규모 체험에서 지금은 단체 손님을 대상으로 장아찌 담그기 수업을 한다.

체험은 30명 이상 단체인 경우 예약 가능하며, 추가 비용은 없다.

청송에서 즐기는 지질 여행 청송국가지질공원

청송에서 즐기는 지질 여행 청송국가지질공원

청송에서 즐기는 지질 여행 청송국가지질공원

공주 근대건축기행 백제 역사에 가려진 근대 문화

최근 지오투어리즘(Geo-tourism)이 새로운 관광 패턴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오투어리즘은 천연의 지질 자원을 관광 상품으로 활용하여 관광객을 유치하는 ‘지질 관광’을 일컫는 말이다.

청송은 지난 4월 제주도와 울릉도·독도, 부산광역시, 그리고 철원군·화천군·양구군·인제군·고성군 등 5개 군을 포함하는 강원평화지역과 함께 국가지질공원으로 등재되었다.

청송의 주왕산을 비롯해 5개 읍·면에 산재해 있는 지질 명소를 찾아가본다.

신성계곡에서 만나는 공룡 발자국과 방호정 퇴적층

청송의 지질 명소는 청송읍, 부동면, 진보면, 안덕면, 부남면 등 5개 읍·면에 산재해 있다.

주왕산지구 13곳과 신성지구 4곳을 포함해 총 17개의 지질 명소를 보유하고 있다.

그 가운데 신성지구는 청송자연휴양림 내 퇴적층을 포함해 방호정 퇴적층, 신성공룡발자국, 백석탄 등 4곳이다.

4곳의 지질 명소 가운데 방호정 퇴적층과 신성공룡발자국, 백석탄은 안동 길안면으로 흐르는 길안천인 신성계곡 일대에서 차례로 만난다.

신성지구에서 첫 번째로 만나는 지질 명소는 방호정을 떠받치고 있는 듬직한 기암절벽이다.

방호정은 조선 광해군 때 선비인 조준도가 어머니를 생각하며 지은 정자다.

방호정 아래의 기암절벽은 일명 방호정 퇴적층이다.

방호정 퇴적층이 생성된 것은 1억 년 전인 중생대 백악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랜 세월 동안 화성암, 퇴적암, 변성암 등이 풍화와 침식작용으로 잘게 부서지고,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의 흐름에 의해 이동하게 된다.

물의 흐름이 느려지는 곳에서 쌓이게 되고, 이때 쌓인 퇴적층이 굳어지면 퇴적암이 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며 지구 판의 이동이나 조산운동에 의해 지각이 움직이면서 형태가 변하게 되는데, 방호정 퇴적층은 지층이 융기되면서 옆으로 기울어졌다.

또한 지층의 가장 윗부분은 침식작용으로 평탄하게 다져졌다.

그리고 그 위에 방호정이 지어진 것이다.

방호정 입구에서 바라다보면 지층이 대각선으로 쌓인 것처럼 보이는데,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작용한 결과다.

방호정에서 건너편 산을 바라보면 울창한 숲 사이로 삿갓 모양을 한 암반이 보인다.

지난 2003년 태풍 매미가 지나면서 산사면의 토사가 무너져 내렸는데 이곳에서 용각류, 수각류, 조각류 등 400여 개의 공룡 발자국이 발견되었다.

용각류는 흔히 알고 있는 브라키오사우루스 같은 몸집이 크고 목이 긴 초식공룡이고,

수각류는 티라노사우루스처럼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가진 육식공룡,

조각류는 이구아노돈 같은 쥐라기, 백악기를 주름잡던 공룡이다.

400여 개의 발자국은 걸어간 듯한 일정 간격으로 같은 방향으로 나 있다.

공룡이 지나갔던 흔적, 과연 공룡들은 무엇을 위해 이곳을 지나갔을까?

공주 근대건축기행 백제 역사에 가려진 근대 문화

공주 근대건축기행 백제 역사에 가려진 근대 문화

공주 근대건축기행 백제 역사에 가려진 근대 문화

서해의 품에서 캐낸 보물 보령 오천항 키조개

공주 근대건축기행의 출발점은 선화당이다.

국립공주박물관에서 우측으로 국궁장이 보이고, 그 맞은편에 선화당이 있다.

선화(宣化)는 ‘왕의 덕을 드러내어 널리 펼치고 백성을 교화한다’는 뜻이다.

너른 잔디밭이 인상적인 선화당은 충청도 관찰사가 정무를 보던 곳이다.

오늘날로 치면 대전광역시와 충청도를 아우르는 도청인 셈이다.

조선시대 충청감영은 영호남과 어깨를 견주는 호서 지역의 지방 거점이었다.

창건 당시에는 정면 9칸, 측면 5칸이었는데 현재는 정면 8칸, 측면 4칸으로 규모가 축소되었다.

1937년 옛 국립공주박물관의 진열관으로 사용되다가 1992년 박물관이 이전하면서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정면으로 보이는 2층 누각은 선화당의 정문인 포정사다.

아래층은 큰 문을 달아 출입구로 사용하고, 위층은 누각으로 사용했다.

일제강점기까지 공주사대부고 정문으로 사용되었다. 누각에 오르면 소나무 정원과 선화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선화당과 포정사 사이에 길게 늘어선 건물은 동헌이다. 관찰사가 행정 업무를 보고 재판을 하던 장소이다.

멋을 내지 않은 단아함이 양옆 소나무 정원과 어우러져 멋스럽다.

두 번째 코스인 옛 공주읍사무소는 붉은 벽돌이 인상적이다.

성냥갑처럼 네모반듯해서 한눈에 보기에도 근대 건축물임을 알 수 있다.

이 건물은 공주가 지방 행정의 중심에서 교육도시로 전환되는 과정에 행정을 담당했던 곳이다. 공주의 가장 큰 변화를 보여주는 공간인 셈이다.

1920년 충남금융조합 연합회 회관으로 건립된 이래 1930~1985년까지 공주읍사무소, 공주가 시로 승격되면서 시청사로 사용되었다.

현재 내부 공사 중이라 주변이 어수선한 게 흠이나 정면에 보이는 4개의 원형 기둥과 좌우로 원형창을 대칭으로 배열한 것이 인상적이다.

파리의 개선문을 연상시키는 아치형 입구는 전형적인 고전주의 건축 기법이라고 한다.

건물 뒤편으로 시민의 쉼터가 조성되어 공사가 마무리되면 훌륭한 역사 교육장이 될 것 같다.

옛 공주읍사무소에서 뒤편 봉황동으로 10분 남짓 걸으면 고딕 양식의 공주제일교회를 만날 수 있다.

현대식 건물 사이에 끼어 있어 그리 오래돼 보이지 않지만 1930년에 붉은 벽돌로 지은 남부 지방 최초의 감리교회다.

6·25전쟁 때 많이 파손됐는데 벽, 굴뚝 등 그대로 보존할 수 있는 것을 남기고 보수해서 구석구석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다. 건물 벽면에 개축 연도가 표시되어 있다.

첨탑 아래 ‘예배당’이라 조각된 글씨가 낯설면서도 정감이 간다.

공주제일교회 내부는 박물관으로 꾸며놓았다. 1층은 ‘나눔의 순례길’로 공주제일교회 신도들의 사진과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2층 ‘복음의 역사길’은 교회 설립 후 민족과 사회에 대한 공헌과 업적을 되돌아볼 수 있는 사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서해의 품에서 캐낸 보물 보령 오천항 키조개

서해의 품에서 캐낸 보물 보령 오천항 키조개

서해의 품에서 캐낸 보물 보령 오천항 키조개

광주 양림동 펭귄마을 뒤뚱뒤뚱 과거 속으로

보령 북부권의 모든 길은 오천과 통한다는 말이 있다.

백제시대에 오천항이 보령의 주요 항구와 군항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후 오천항은 작은 어촌 항구로 위세가 꺾였지만, 근래 들어 키조개로 인해 다시 옛 영광을 찾아가는 중이다.

키조개 전국 생산량의 60% 정도를 오천항이 차지하니 전국 각지의 미식가들이 포구로 모여든다.

진달래 피는 4월부터가 키조개 제철이다.

‘오천’의 한자어는 ‘자라 오(鰲)’, ‘내 천(川)’을 쓴다.

오천을 비롯한 천수만 일대의 지형이 마치 자라와도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바다 양면에 있는 산이 방파제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아무리 심한 폭풍우에도 피해가 없고, 수심이 깊어 간만의 차로 인한 선박의 통행이 전혀 불편하지 않은 천혜의 항구다.

항이라고 하지만 규모는 작다. 여행객을 위한 변변한 시설이 마련되어 있지도 않다.

바닷가를 따라 식당이 있고, 식당에서 마음에 드는 해산물을 구입할 수 있는 정도다.

그럼에도 봄철을 맞아 오천항을 찾는 이유는 국내 최대의 키조개 산지이기 때문이다.

키조개는 수심 20~50m의 깊은 모래흙에 수직으로 박혀 있다.

낚시로 잡는 것도 아니고, 그물로 걷어 올리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사람이 직접 바닷속에 들어가 하나하나 건져 올린다. 키조개를 캐는 일은 머구리의 몫이다.

이름도 생소한 머구리는 잠수부의 속칭이다. 바닷물에 들어가 고기를 잡거나 해산물을 채취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머구리는 물때에 맞춰 바다로 나가 작업을 한다.

짧게는 3시간, 길게는 6시간 이상 바닷속을 헤매며 키조개를 잡는다.

작업이 가능한 날은 보름 정도. 사리 때는 물살이 거세서 작업을 못하고 조금 때만 작업한다.

오천항 머구리들은 키조개를 찾아 수심 40m 이상 들어가는 일이 다반사다.

힘들고 위험한 일이지만 키조개가 삶을 지탱해주는 돈줄이니 어쩔 수 없다.

장비라야 물안경과 갈퀴가 전부다. 잠수복을 입는다고는 하지만 장비가 너무나 단출하다.

여기에 공기 호스가 연결된 호흡기가 전부다. 심해 잠수부들이 사용하는 튼튼한 헬멧 같은 것은 키조개 채취에 방해가 돼서 없는 게 낫다고 한다.

머구리가 바닷속으로 뛰어들면 잔잔한 수면 위로 공기방울이 하나둘 올라온다.

넓은 바다에서 머구리의 흔적은 이게 전부다.

배에 남은 선원들이 해줄 수 있는 건 그의 신호를 기다렸다가 어망을 내려주고, 공기 호스를 통해 공기가 잘 주입되고 있는지 혹 호스가 꼬이지는 않았는지 살피는 게 전부다.

작업이 끝날 때까지 머구리는 2시간이든 3시간이든, 춥고 어두운 바닷속을 홀로 걸으며 고군분투해야 한다.

사실 머구리에게 작업시간이란 딱히 정해진 게 아니다.

정해진 물량을 채우면 작업이 끝난다. 만일 작업장을 잘못 찾아 들어가면 허탕만 치고 종일 고생해야 한다.

광주 양림동 펭귄마을 뒤뚱뒤뚱 과거 속으로

광주 양림동 펭귄마을 뒤뚱뒤뚱 과거 속으로

광주 양림동 펭귄마을 뒤뚱뒤뚱 과거 속으로

명동성당에서 중앙우체국까지 구석구석 명동 산책

전남 광주 양림동은 과거로 떠나는 타임머신 여행지다.

광주 근현대사 여행지로 인기가 높은 이곳엔 옛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또 다른 시간 여행지가 있다.

이름도 재밌는 펭귄마을. 비록 펭귄은 살지 않지만 그보다 더 눈길을 끄는 잡다한 볼거리들이 가득하다.

시간 여행 속 색다른 여행지로 떠오르는 곳이다.

양림 커뮤니티센터 옆 골목길은 1970~1980년대의 시간으로 이어지는 비밀 통로다.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울 만큼 작고 좁다.

골목길 입구, 가스통을 재활용해 만든 펭귄을 발견한 순간부터 펭귄마을표 웃음 넘치는 추억 여행이 시작된다.

펭귄마을로 한 걸음 떼자마자 나타난 낡고 허름한 담벼락 풍경이 시간을 십여 년 전으로 점프시켜 놓는다.

오래되어 거무죽죽 얼룩이 진 콘크리트 담장엔 검정색 스프레이를 뿌려 적은 옛 시절 이삿짐센터 광고와 마을 지도, 색색의 분필로 적은 온갖 낙서들이 가득하다.

몇 발자국 더 떼어놓고 나면 아예 멈춰 서서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부엌에나 있어야 할 양은냄비며 프라이팬, 소쿠리들이 일광욕이라도 즐기듯 담벼락에 딱 달라붙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재미난 담벼락 전시를 지나면 본격적인 마을 탐방이 시작된다.

작은 꽃들과 나무들을 가꿔놓은 아담한 마을 정원은 이곳 주민들의 휴식처인 동시에 여행자들에게는 멋진 포토존이 되어준다.

물론 평범한 정원이 아니다. 나무 열매 대신 기타와 미러볼이 걸려 있고 꽃밭 사이엔 곡식을 켜던 키가 한 자리 차지하고 있다.

이쯤 되면 마을 이름이 왜 ‘펭귄마을’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펭귄마을은 독거노인을 비롯해 주민 연령층이 높은 이 마을의 특징을 담고 있다.

나이 든 어르신들의 걷는 모습이 뒤뚱거리는 펭귄을 닮아 별칭처럼 부르던 것이 아예 마을을 대표하는 이름이 되었다.

적막한 마을 분위기를 좀 더 즐겁고 활력 있게 만들어보려는 애정 어린 별칭인 셈이다.

별칭과 더불어 펭귄마을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꾸며지기 시작한 건 약 5년 전부터.

이 마을의 촌장을 자처하는 김동균 씨가 동네 빈집에 쓰레기처럼 쌓여 있던 오래된 물건과 온갖 잡동사니들을 가지고 취미 삼아 이곳저곳 꾸미고 장식하던 것에서 시작됐다.

그 사이 주민들이 자신이 갖고 있던 옛 물건들을 내놓고 합심해 마을을 가꾸면서 이곳 쓰레기들은 추억의 시간 여행을 위한 훌륭한 원동력이 되었다. 모두 실생활에서 쓰이던 것이라 그런지 왠지 더 정감이 간다.

아마도 이것이 펭귄마을만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평범하기 그지없던 마을이 ‘발상의 전환’으로 인해 요즘 핫플레이스로 손꼽히는 타임머신 여행지로 재탄생된 것이다.

명동성당에서 중앙우체국까지 구석구석 명동 산책

명동성당에서 중앙우체국까지 구석구석 명동 산책

명동성당에서 중앙우체국까지 구석구석 명동 산책

옛것과 현재가 조화로운 광주 여행자의 방

1898년 문을 연 명동성당은 100여 년의 세월 동안 한국 천주교의 상징이자 ‘민주화의 성지’였다.

시국미사가 열리고 공권력에 쫓기는 민주인사들이 최후로 몸을 기대는 장소였다.

명동성당 입구에는 어디에도 호소할 곳 없는 가난하고 억울한 이웃들의 농성 천막이 줄지어 있었다.

‘명동성당을 보존하고 신자와 시민들을 위한 열린 공간을 조성한다’는 명분으로 시작된 명동성당 종합계획 공사는 명동성당 들머리의 모습을 사뭇 바꿔놓았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성당 입구 지하에 들어선 ‘1898 명동성당’이다.

성당이 처음 세워진 해를 기념하는 이름을 가진 이 지하공간은 갤러리와 커피숍, 꽃가게와 근대 유물전시실 등이 입주했다.

1898이라는 숫자를 형상화한 간판이 달린 조그만 입구를 지나면 초기 기독교의 카타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지하공간이 나온다.

다양한 상업시설이 들어선 것도 카타콤과는 다른 점이다.

200대 규모의 지하주차장을 만들어 성당을 찾는 차량들 때문에 발생되는 사고나 성당 균열 등의 문제도 말끔히 해결했단다.

거대한 지하공간 위 소박한 진입로는 명동성당 건축 당시의 모습에 가깝게 복원했다고 한다.

성당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자그마한 녹지가 있는데, 구석구석 벤치를 놓아 누구나 쉬어갈 수 있게 했다.

입구 오른쪽에는 붉은 벽돌 건물 둘이 보인다. 각종 공연과 혼인미사 등이 열리는 파밀리아 채플과 연회장인 프란치스코 홀이다.

파밀리아 채플 1층에는 유럽의 노천 카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비스트로 74’가 손님들을 맞고 있다.

명동성당에서 명동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명동예술극장이 나온다.

명동예술극장이 문을 연 것은 최근이지만, 이곳에 처음 극장이 들어선 것은 일제강점기인 1936년이었다.

‘명치좌’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고 주로 일본 영화를 상영했는데, 해방 이후 ‘국제극장’으로 간판을 바꿨다가,

서울시가 인수하면서 ‘시공간’이란 이름으로 바뀌어 연극 공연장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후 명동국립극장으로 다시 이름을 바꾸면서 대한민국 연극 공연의 중심으로 ‘명동시대’를 이끌었다.

1973년 충무로에 국립극장이 들어서면서 명동국립극장은 국립극장 예술분관이 되었지만, 얼마 안 가 금융회사에 인수되었다.

그러다 문화관광부가 건물을 매입하면서 지난 2009년 연극 전문 공연장인 명동예술극장으로 다시 태어났다.

명동예술극장에서 다시 명동로를 따라 내려가다 작은 골목길에 들어서면 중국대사관과 화교학교인 한성소학교를 중심으로 작은 차이나타운이 펼쳐진다.

흔히 ‘중국대사관 거리’라 불리는 이곳에는 오래된 중국 음식점과 약재상들, 한성화교협회와 삼민주의대동맹 한국지구 등이 자리잡고 있다.

한때는 한국 내 화교들의 중심지였지만, 지금은 중국 관광객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듯, 환전상과 한류 관련 상품 판매점도 눈에 띈다.

청기와를 얹은 거대한 붉은 문이 인상적인 중국대사관 앞은 중국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뤄 지나고 있었다.

중국대사관 거리는 서울중앙우체국으로 이어진다. 우리나라의 근대 우편제도는 1884년 문을 연 우정총국이 출발점이었다.

우정총국 개국식에서 벌어진 갑신정변이 실패하면서 우정총국은 폐쇄되었으나, 1905년 명동에 경성우편국이 들어서면서 우편제도도 자리를 잡게 되었다

옛것과 현재가 조화로운 광주 여행자의 방

옛것과 현재가 조화로운 광주 여행자의 방

옛것과 현재가 조화로운 광주 여행자의 방

예술 마을로 변신한 대한민국 첫 조선소

고풍스러운 정취와 현대적 감각을 아우르는 광주에서

여행자 못지않은 추억이 될 숙소를 소개한다.

마음 맞는 이를 만나 여행 친구로 만들고 싶다면, 아이엠게스트하우스

낯선 곳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 소통하고 친밀한 관계를 쌓는 경험은 여행의 또 다른 묘미다.

처음 본 사람을 여행 친구로 만드는 즐거움을 얻고 싶다면 가성비까지 뛰어난 게스트하우스만 한 곳이 있을까.

‘아이엠게스트하우스’는 광주역에서 도보로 10분밖에 걸리지 않고, 내일로 티켓을 소지하면 숙박료 할인을 받아 내일러에겐 성지와 같다.

처음부터 게스트하우스를 염두에 두고 건물을 지었기에 공간 활용이 최적화됐다는 것도 강점이다.

손님을 가장 먼저 맞는 1층은 소통을 위한 공간이다.

면적이 넓고 테이블을 여럿 비치해 대화를 나누거나 책장에 꽂힌 보드게임을 즐기기 좋다.

자리가 부족해도 걱정할 필요 없다. 나선형 계단 아랫부분에 둘러앉을 수 있는 양탄자를 깔았고, 2층엔 1층보다 널찍한 거실이 있으니까.

놀 공간은 훌륭하지만 막상 분위기가 서먹하면 허사일 터.

유쾌한 성격에 남다른 붙임성을 자랑하는 손일한 대표가 흥겨운 파티 분위기를 북돋우니 이 또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곳을 놀기 좋은 곳으로만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많으면 50명을 수용하는 일곱 개 객실은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청결하고, 게스트하우스로는 드물게 개인 사물함을 구비해 편리함에 안전까지 신경 썼다.

오랫동안 여행한 이에겐 희소식이 될 드럼세탁기 다섯 대와 머리를 말리거나 화장을 하는 파우더 룸 등 편의 시설도 눈에 띈다.

비즈니스를 위해 광주를 찾은 사람이 방문하는 장소는 상무지구일 가능성이 높다.

광주에서 가장 번화한 데다 시청, 교육지원청, 세무서, 환경공단 등 관공서가 밀집했고 김대중컨벤션센터도 가깝기 때문이다.

상무지구 중심에 위치한 ‘호텔 더 메이’는 업무차 광주에 머무는 사람에게 합리적인 선택이 될 비즈니스호텔이다.

넉넉하게 잡아도 걸어서 5분이면 시청에 도착하는 것은 물론 어지간한 관공서는 택시를 이용할 경우 기본요금만 지불하면 된다.

일반적인 여행과는 다른 비즈니스 여행만의 특성에 맞춰 실내를 구성한 점도 돋보인다.

로비는 화려한 치장을 배제하고 있어야 할 것만 갖추었지만 부티크 스타일의 개성이 잘 묻어나며,

한편엔 책이 빼곡하게 꽂힌 서가가 멋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업무차 묵는 손님은 혼자인 경우가 많아 이들이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7층엔 어느 때건 무료로 이용 가능한 비즈니스 센터가 있다. 컴퓨터, 프린터, 팩스, 프레젠테이션용 스크린, 회의 테이블,

간단한 사무용품을 비치해 잡다한 물품을 가져오지 않아도 문제없이 업무를 처리하도록 돕는다.

35개 객실 대다수가 작은 규모의 비즈니스 더블 룸이고 숙박비가 동급 호텔보다 저렴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딜럭스 더블 룸에선 안마 의자가 출장의 피로를 말끔하게 씻어 준다.

100년 전엔 아무도 몰랐겠다. 이 한옥이 누구라도 반갑게 맞아들여 휴식을 선사하는 공간이 될 거라는 사실을.

예술 마을로 변신한 대한민국 첫 조선소

예술 마을로 변신한 대한민국 첫 조선소

예술 마을로 변신한 대한민국 첫 조선소

메마른 감성을 촉촉하게 적셔줄 광주 예술 여행

조선소의 망치 소리로 요란하던 마을이 근사한 예술마을로 재탄생했다.

지금도 커다란 배를 만드는 용접 소리가 귀를 어지럽히고 거대한 프로펠러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기름 냄새, 쇠 냄새, 바다 냄새가 뒤섞인 깡깡이 예술마을 골목에는 삶의 흔적이 녹은 예술작품과 다양한 체험이 기다린다.

부산 영도구 대평동 옛 도선장 주변 동네는 일제강점기인 1912년 우리나라 최초 근대식 조선소가 들어선 곳으로, 지금도 조선 업체 12개가 운영 중이다.

‘깡깡이’라는 마을 이름은 아주머니들이 배의 녹슨 표면을 벗겨내는 망치질 소리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2000년 이후 쇠락하던 마을은 2015년 문화예술형 도시재생 프로젝트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예인선을 개조해 꾸민 선박 체험관, 옛 영도 도선의 이야기를 들으며ᅠ남항 일대를ᅠ둘러볼 수 있는 ‘깡깡이 유람선’, 방문객들이 시계,

장식품 등을 조립해 볼 수 있는 ‘깡깡이 마을 공작소’ 등 즐길 거리가 풍부하다.

골목 곳곳에 자리한 조각품과 벽에 그려진 벽화도 볼거리다.

신기한 선박체험관 : 예술가들이 참여해 예인선을 선박 체험 공간으로 꾸몄다.

파도의 힘을 이용한 휘파람 소리 체험 기계, 엔진으로 다양한 빛의 형상을 만들어내는 기관실 등이 있다.

깡깡이 마을 박물관 : 대평동 수리조선업에 얽힌 이야기를 마을의 유물과 영상, 예술작품 등을 통해 들려준다.

어린이 : 깡깡이 예술마을 메이커스 프로그램. 비즈공예. 드로잉엽서. 키트 조립

메이커스 프로그램 : 비즈공예. 드로잉엽서. 키트 조립. 주말 11:00~17:00. 체험비 별도

깡깡이 예술마을 통합투어 : 매주 토, 일요일 1일 3회 운영.

10인 이상 20인 이하 선착순 출발. 13세 이하 보호자 동반 필수. 만 6세 미만 유람선 탑승 불가. 1시간 10분 소요.

깡깡이 예술마을은 산업현장 가운데 있다.

작업중인 수리조선소도 많으니 안전을 위해 함부로 들어가지 않도록 한다. 평일에는 대중교통이 편하며, 사진촬영도 허가된 곳에서만 하자.

조선소의 망치 소리로 요란하던 마을이 근사한 예술마을로 재탄생했다.

지금도 커다란 배를 만드는 용접 소리가 귀를 어지럽히고 거대한 프로펠러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기름 냄새, 쇠 냄새, 바다 냄새가 뒤섞인 깡깡이 예술마을 골목에는 삶의 흔적이 녹은 예술작품과 다양한 체험이 기다린다.

조선소 마을 곳곳에 숨은 예술품을 만나는 재미

부산 영도구 대평동 옛 도선장 주변 동네는 일제강점기인 1912년 우리나라 최초 근대식 조선소가 들어선 곳으로, 지금도 조선 업체 12개가 운영 중이다.

‘깡깡이’라는 마을 이름은 아주머니들이 배의 녹슨 표면을 벗겨내는 망치질 소리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2000년 이후 쇠락하던 마을은 2015년 문화예술형 도시재생 프로젝트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예인선을 개조해 꾸민 선박 체험관, 옛 영도 도선의 이야기를 들으며ᅠ남항 일대를ᅠ둘러볼 수 있는 ‘깡깡이 유람선’,

방문객들이 시계, 장식품 등을 조립해 볼 수 있는 ‘깡깡이 마을 공작소’ 등 즐길 거리가 풍부하다. 골목 곳곳에 자리한 조각품과 벽에 그려진 벽화도 볼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