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근현대사 중심지 시민의 공간이 되다
인천 근현대사 중심지 시민의 공간이 되다
1883년 1월 1일, 개항 직후 인천항 주변에는 외국인이 모여 살기 시작했다.
일본과 청나라 사람은 물론, 미국과 영국, 독일 등 서양인도 인천항 인근에 조계지를 형성했다.
이들은 인천구조계조약(일본), 인천구화상지계장정(청나라), 인천제물포각국조계장정(그 외 나라) 등을 체결해 경계를 나누고 개발에 나섰다.
1899년 경인선이 개통되어 외국인이 서울로 빠져나가기 전만 해도 이곳은 세계 각지에서 온 이들로 북적거렸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인천항 주변인 인천개항장문화지구와 차이나타운에 일본과 청나라 조계지 모습이 남아 있다.
조계지 구역은 그 흔적이 적지만, 서양인이 사교 모임을 하던 구 제물포구락부(인천유형문화재) 건물이 여전히 건재하다.
그 앞에 자리한 인천시민애(愛)집도 조계지의 역사를 품고 있다.
자유공원 정상부에 있던 독일계 상사 세창양행 부지를 일본인 사업가가 매입해 저택을 짓고 살았기 때문이다.
인천시민애집 내력은 부침이 잦은 우리 근대사를 빼닮았다.
세창양행이 부지를 일본인에게 매각한 뒤, 광복 때까지 일본식 가옥이 있었다.
지금의 한옥은 인천시가 저택을 매입해 1966년에 완공한 건물이다.
인천시는 이 건물을 2001년까지 시장 관사로 활용했다.
바로 앞에 있는 중구청 청사가 인천시 청사였던 시절이다. 인천시청이 이전하며 시장이 떠난 관사는 인천역사자료관으로 꾸몄다가,
2021년 7월에 재정비를 마치고 시민에게 개방했다. 이때부터 인천시민애집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인천시민애집은 크게 세 공간으로 나뉜다. 관사동이던 한옥을 ‘1883모던하우스’,
앞마당과 정원을 아울러 ‘제물포정원’, 경비동 건물을 ‘역사전망대’로 재구성했다.
달라진 부분은 많지 않다. 일본식 가옥이었을 때나 시장 관사였을 때 흔적이 곳곳에 있다.
역대 인천시장이 거주한 1883모던하우스는 일본식 저택을 철거한 자리에 근대식 한옥을 올려 완성했다.
건물의 기초가 되는 기단은 남기고 외관을 변형한 ‘ㄷ 자형’ 한옥이다.
양쪽 날개는 각각 사랑채와 안채, 가운데 튀어나온 부분이 대청마루 역할을 했다.
나무 창틀에 커다란 유리창을 달아 실내에서도 정원을 감상할 수 있다.
시장 관사 시절에 사랑채는 집무실이었으며, 대청마루에서는 종종 행사나 연회를 열었다고 한다.
내부는 전통적인 가옥 형태에 1960~1990년대 가정집이 절묘하게 섞인 모습이다.
사랑채 천장에는 서까래가 보이지만, 다른 방에서는 눈에 띄지 않는다.
건물을 확장하며 당시 유행에 따라 조명과 천장 마감재를 바꾼 것이다. 수십 년이 흐르며 시대에 맞게 여러 차례 보수한 흔적이기도 하다.
현관에 들어서면 왼쪽으로 사랑채, 오른쪽으로 대청마루와 디지털갤러리, 랜디스다원 등이 이어진다.
사랑채쉼터는 탁 트인 유리창 너머로 아름다운 정원을 감상하기에 적당하다.
창가에 의자와 쿠션 등을 비치했으며, 반대쪽 서가에는 책이 가득하다.
지역 서점이 선정한 인천의 역사와 문화, 예술 관련 도서가 대부분이다. 공연과 전시, 소모임 등도 한다. 지난 8월에는 tvN 예능 프로그램 〈알쓸별잡〉을 이곳에서 촬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