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째 160년 전통을 잇는 황충길 명장
4대째 160년 전통을 잇는 황충길 명장
옹기는 따스하고 투박한 생김에 비해 쓰임이 많다.
한민족은 예부터 옹기에 곡식을 저장하고, 장과 김치를 담고, 찌개를 끓였다.
장식용 도기와 달리 옹기에 따스함이 느껴지는 것은 이렇듯 음식에 쓰이기 때문이다.
미세한 공기구멍이 있어 장을 발효하고, 김치 맛을 좋게 하고, 잿물 성분이 쌀벌레를 막아준다.
전통 기법 그대로 ‘살아 있는 그릇’ 옹기를 빚는 황충길 명장을 만났다.
황충길 명장의 집안에서 대대로 옹기를 빚은 바탕에는 천주교가 있다.
할아버지 황춘백 씨가 천주교 박해를 피해서 고향을 떠나 옹기점을 시작한 것이 1850년,
아버지 황동월 씨가 뒤를 이었고, 황충길 명장이 예산 땅에 정착했으며,
지금은 명장의 아들이 함께 일하니 4대가 160년 전통을 잇는 셈이다.
부친이 가마에 불을 때다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뜬 뒤,
명장은 힘들고 알아주지도 않는 옹기 일을 몇 번이나 그만두려고 했다.
그때마다 집안에 우환이 생겨 마음을 다잡고 옹기에 전념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 집집마다 냉장고가 생기고 아파트 생활이 늘자,
김칫독이나 장독 사용이 급격히 줄면서 문 닫는 옹기점이 많았다.
명장도 몇 년을 고전하다가 1996년, 냉장고용 김칫독을 발명하고 반전을 맞았다.
플라스틱 통에 보관하면 김치가 빨리 익거나 군내가 나서 먹지 못하는 일이 잦았는데,
냉장고용 김칫독은 다 먹을 때까지 시원한 맛을 유지했다.
소문이 나자 전국에서 찾아와 트럭으로 사 가느라 옹기점 주변이 시끌벅적했다.
상 복도 따랐다.
1996년 열린 제1회 농민의 날 공예 부문 대상과 충남발전대상 수상에 이어,
1998년 월드컵 유망 업체로 지정되며 2~3년 사이 전국에 이름을 떨쳤다.
그리고 1998년, 드디어 도자기 공예 부문에서 대한민국 명장(98-23호)에 선정된다.
3대에 걸쳐 쌓은 기술과 평생 한길만 보고 달려온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
그제야 벗어나려고 한 옹기 인생이 천직임을 깨달았다.
명성도 얻고 기반도 탄탄해졌지만,
옹기에 대한 명장의 철학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옹기 한 점 한 점이 빼어난 작품이라는 마음으로 정성을 들인다.
편하고 쉬운 전기 물레 대신 전통방식 그대로의 물레를 고집하며,
흙 고르는 일이나 천연 재료로 잿물 만드는 일도 허투루 하는 법이 없다.
평생 해온 일이라 물레에 흙 반죽을 올리면 몸이 알아서 움직인다.
눈 감고도 만들 정도로 몸에 익었지만, 눈길 한 번 떼지 않고 집중한다.
밑바닥을 만들고, 흙가래를 올리고, 두드리고, 다듬기를 반복하면서 항아리가 모양을 갖춰간다.
수많은 손길을 거쳐야 아담한 항아리 하나가 빚어진다.
좀더 매끈하게 다듬으려는 마음이 손끝에 나타난다.
전통예산옹기의 전시실에는 판매용 옹기와 함께 명장의 작품도 전시된다.
쌀독, 김칫독, 장독, 시루, 뚝배기 등 전통적으로 쓰인 옹기는 물론,
현대 가정에 어울리는 식기 세트, 원형 접시, 양념통, 머그잔, 냄비, 다기 세트까지 100종이 넘는다.
명장이 발명한 냉장고용 김칫독은 크기가 다양해 반찬을 넣어도 좋다.
옹기는 음식의 신선도를 오래 유지하고, 저장 중에도 계속 발효하며, 냄새가 나지 않는다.
길쭉한 새우젓 독을 우산꽂이나 화분으로 쓰고,
물을 저장하거나 채소를 절이는 자배기를 어항이나 수반으로 쓰는 등 전통 옹기를 현대식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