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감성을 촉촉하게 적셔줄 광주 예술 여행

메마른 감성을 촉촉하게 적셔줄 광주 예술 여행

메마른 감성을 촉촉하게 적셔줄 광주 예술 여행

조선 시대부터 이어진 역사 서문시장

광주가 예로부터 ‘예술을 즐기는 사람이 많고, 예술가를 많이 배출한 곳’이라는 뜻으로 ‘예향’이라 불렸다는 사실, 알고 있는가?

무등산의 청정 자연을 품은 의재미술관, 분위기 있는 골목을 따라 이색 카페가 가득한 동리단길,

세상의 모든 힙한 전시로 여행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까지,

예술 애호가라면 광주를 방문할 이유가 넘쳐난다. 예향 광주에서 메말랐던 감수성을 한껏 적셔 보자.

의재미술관은 차로 편하게 갈 수 있는 도심 속 흔한 미술관이 아니다.

무등산 자락 숲속에 꼭꼭 숨어 있어, 등산로 입구에서 약 20분을 걸어야 닿을 수 있다.

다행히 우람한 나무와 시원한 계곡이 반기는 아름다운 숲길이라 걸음이 가볍다.

도시 소음 대신 맑은 바람과 물소리가 가득해, 일상의 무게를 내려놓을 때쯤 의재미술관이 눈앞에 나타난다.

미술관에 들어서면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유리창이 무등산 계곡 풍경과 햇살을 그대로 들여온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소박하고 간결한 디자인의 이 건물은 2001년 한국건축문화대상을 받았으며,

인천국제공항을 제치고 당당히 대상을 차지했다.

무등산의 자연을 미술관 안으로 끌어들여 의재 선생의 작품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설계된 점이 돋보이는데,

이는 미술관을 위한 건축설계가 따로 없던 당시에는 파격적인 시도였다.

의재미술관은 의재 허백련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됐다.

의재 선생은 1922년 열린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 동양화부에서 최고상을 타면서 화가로서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세속적인 성공보다는 자신의 예술세계를 위해 전국 유람을 떠난다.

그런 뒤 무등산에 들어와 정착했다. 춘설헌에서 그림을 그리며 예술 발전과 후학 양성에 힘을 쏟은 것은 물론 가난한 나라를 일으키기 위해 농업학교를 세웠다. 화가이자 다인,

교육자 그리고 사회운동가로 다재다능한 삶을 살았다.

전시실로 걸음을 옮기면 그의 작품과 유품 그리고 삶의 스토리가 온전히 다가온다.

하얀 벽면에 작품들이 여유롭게 배치되어, 그만큼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된다. “삶과 예술은 경쟁하지 않는다”라는 그의 명언 앞에 걸음이 절로 멈춘다.

홍익인간을 쓴 서예 작품에서는 따뜻하면서도 힘 있는 필체가 느껴지고, 남도의 농촌 풍경을 담은 작품은 보기만 해도 풍요롭다.

활짝 웃음을 터트리는 선생의 대형 사진을 지나면 병풍과 산수화가 전시된 3전시실이 나온다.

그의 손때 묻은 붓과 다구들을 감상하며 천천히 걸어 들어가면 모란육폭병풍이 기다린다.

모란이 흐드러지게 핀 정원의 한 부분을 여섯 폭 병풍에 그린 그의 대표작이다. 의재 선생이 생전에 집안에서 사용하던 애장품이다.

남종화의 대가였던 그는 산수화를 즐겨 그렸다. 그가 말하길, 산수화는 우주를 담는 일이라 했다.

그의 작품 속에는 자연을 배경으로 사람들의 삶이 어우러지며, 그의 인생과 철학이 깊이 녹아 있다.

지하에서는 의재 선생의 손자인 직헌 허달재 화백의 작품도 볼 수 있다.

관람을 마치고 춘설차를 즐겨보자. 통창 앞에 무등산 자연과 마주 앉아서 마시는 춘설차는 더없이 향기롭다.

조선 시대부터 이어진 역사 서문시장

조선 시대부터 이어진 역사 서문시장

조선 시대부터 이어진 역사 서문시장

2015년 선정 열린관광지 대구 근대골목

서문시장은 조선 시대 평양장, 강경장과 함께 전국 3대 시장으로 꼽힐 만큼 규모가 크고 중요한 시장이었다.

조선 시대부터 이어진 역사를 자랑하며, 대구 중심 상권인 동성로와 근대 골목, 대구약령시, 달성공원 등 주요 관광지가 가깝다.

2016년 6월 개장한 서문시장 야시장은 국내 최대 규모 야시장이다.

개장 초기부터 대구 시민과 관광객에게 큰 인기를 끌면서 ‘글로벌 명품 시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서문시장은 대구 지역의 대표적인 도심 관광지로 야시장 개장으로 인해 밤이 즐거워지는 문화 공간으로 거듭나며, 쇼핑과 문화가 어우러진 창조 경제의 전형이다..

서문시장은 조선 후기 삼남에서 가장 큰 시장이었고, 오늘날에도 주단이나 포목 등 섬유 제품, 가죽․잡화, 건해산물 상가 등

8개 지구 6만5천㎡ 건물에 5,000여개 점포와 1,000여개 노점상에서 다양한 먹거리를 중심으로 번창하여

3만여명의 상인의 에너지로 넘치는 대구의 대표 전통시장이다.

해마다 서문시장글로벌대축제를 열어 한복 패션쇼, 보부상 퍼레이드 같은 전통 재연 이벤트, 가요제 등 다양한 문화 행사를 진행한다.

서문시장은 칼국수, 만두, 찜갈비, 다양한 주전부리 등 ‘먹거리 천국’으로도 불리며, 음식을 먹기 위해 일부러 찾아올 정도다.

서문시장의 최대 장점인 먹거리를 바탕으로 2016년 6월 개장한 서문시장 야시장은 350m 거리에 80개 매대를 갖춰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야시장이 운영하는 시간에 비보잉과 노래 등 공연, 다양한 문화 이벤트가 펼쳐지는 관광형 시장이다.

80개 매대 가운데 먹거리 매대는 65개로 나뭇잎만두, 막창 등 대구 특성 식품은 물론 다문화 식품, 퓨전 식품 등이 어우러진다.

핸드메이드 제품이나 공산품, 공예품을 판매하는 상품 매대는 15개다.

서문시장 야시장을 찾는 방문객은 평일 5만 명, 주말 10만여 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외지에서 오는 관광객이 35% 이상으로 집계된다.

2017년에는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사후면세점, 게스트하우스, 플레이 존 등을 조성했으며, 젊은 층을 위한 스트리트댄스대회, 100% 시민 참여 가요제를 표방한

서문 나이트 팝스타 등 문화 공연 활성화에 기여한다. 대구 지역 도심 야간 관광지를 연계한 ‘밤이 즐거운 대구夜행’

투어에 서문시장 야시장이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 야간 관광 활성화에도 톡톡히 역할을 한다.

T-map 빅 데이터 분석 결과, ‘대구 지역 선호 관광지 1위’로 선정되었으며, SK플래닛 소셜 분석 결과, 야시장이 발달한 동남아를 제치고

대구 서문시장이 최고로 등극했다. 서문시장은 코레일과 10여개 여행사에서 구성한 여행상품 판매가 활발하고,

전국적인 관광 명소로 인정받고 있으며, 도심 골목 투어 활성화와 연계해 도심 관광을 주도, 글로벌 명품 시장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2015년 선정 열린관광지 대구 근대골목

2015년 선정 열린관광지 대구 근대골목

2015년 선정 열린관광지 대구 근대골목

대한민국 근대사의 중심지 대구

대구 근대골목은 지난날 우리들의 삶의 모습과 역사를 뒤돌아 보며, 마음 따뜻한 향수와 추억을 느끼며 위로를 얻게 되는,

도심 속 역사문화 탐방로로 도보여행을 통해 풍성한 경험과 낭만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특히 휠체어나 유모차가 접근하기에도

안성맞춤인 도시환경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지팡이를 짚고 산책에 나서거나 휠체어를 타고 여행하기에도 적합한 도심 관광지다.

대구 골목투어 코스 5개 가운데 2코스는 총 길이 1.64km로 비교적 짧은 편이나 골목골목 볼거리가 많고

대부분 경사진 길과 평지로 연결되어 있어 관광취약계층(장애인, 유모차, 어르신)도 접근 가능한 코스로 일반적 출발점은

동산 청라언덕이지만 휠체어를 사용하는 관광객의 경우 청라언덕 접근을 위해서는 대구제일교회

100주년 기념관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서 내리면 교회 주차장 너머 청라언덕이 있다.

일반적으로 청라언덕으로 향하는 경로는90계단으로 이뤄진 ‘3․1만세운동길’을 통해 청라언덕으로 오르는데,

장애인과 노약자, 유모차는 대구제일교회 100주년 기념관에서 시작해야 접근 가능하다.

(※ 휠체어 장애인의 청라언덕 접근을 위하여 ‘대구제일교회’에서는 대구제일교회 100주년 기념관 內 엘리베이터를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고 있다)

대구제일교회는 1893년 설립된 대구·경북 지역 최초의 개신교 교회로 지금의 건축물은 1994년에, 종탑은 2002년 완공됐다.

대구시 유형문화재 제30호로 지정된 옛 건물은 중구 남성로 약전골목에 남아 역사관으로 거듭났다.

국내 최초의 서양 사과나무 자손목도 한자리를 차지했다.

1899년 당시 동산의료원 초대 병원장인 존슨 선교사가 미국에서 가져다 심은 것으로 대구 사과나무의 효시로 알려져 있다.

‘3·1만세운동길’은 ‘동무생각’ 노래비 옆에서 계산성당으로 가는 내리막에 있다.

3·1운동 당시 집결지로 향하던 학생들이 일본군의 감시를 피해 지나다녔던 길이다.

긴박했을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잠시 머무르고는 왔던 길을 되돌아 대구제일교회 100주년 기념관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다시 출발점에 섰다. 길 건너로 계산성당이 보였다.

1902년에 들어선 영남지역 최초의 서양식 건축물이다.

좌우에 우뚝 서 있는 붉은 첨탑과 전면을 장식한 장미꽃 문양의 창이 간결한 고딕 양식의 진수를 보여주는 듯하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자 아치형 천장과 굵은 기둥이 성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만들어내는 빛 물결도 두 눈을 황홀하게 했다.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 때 순교한 성인들이 한복 입은 모습으로 새겨져 흥미로웠다.

한복 두루마기에 유건 차림을 한 김대건 신부를 보고나니 어쩐지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