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혜의 대자연 속에 펼쳐진 종합테마공원

천혜의 대자연 속에 펼쳐진 종합테마공원

천혜의 대자연 속에 펼쳐진 종합테마공원

여주 불교의 명맥을 이어온 도시

과천은 명실상부 우리나라 최고의 가족여행지다.

365일 언제 찾아도 아이가 좋아하는 서울대공원과 아시아 두 번째 규모의 국립과천과학관, 주말 나들이로 즐거운 렛츠런파크

대규모 키즈체험관인 기린나라까지 모두 모여 있다.

대중교통으로 접근이 용이하고 이용료가 비교적 저렴해 아이들과 함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곳, 과천으로 떠나보자.

서울대공원에 들어서면 드넓은 자연과 동물들의 여유로운 몸짓에 마음이 탁 트인다.

부지면적이 약 9,157km²(약 277만평)이니 그 규모를 단번에 가늠하기도 어렵다.

복잡한 도심을 떠나 자연녹지가 어우러진 서울대공원에서라면 동·식물, 숲속 캠핑, 현대미술관 관람까지 아이들과 함께 풍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하지만 규모가 큰 만큼 아이들이 초반에 금세 지치기도 쉽다. 무리하지 않도록, 효율적인 동선을 계획하고 움직이는 것이 좋다.

서울대공원의 전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스카이리프트를 이용해보자.

대공원 매표소 오른쪽으로 5분정도 걸으면 동물원 정문으로 향하는 1호선 리프트(약 13분소요)를 탈 수 있다.

공원 내 저수지를 건너려니 시원한 바람이 와락 안겨든다.

유모차가 있어도 걱정은 없다. 안전요원이 앞자리 리프트에 실어준다.

리프트를 탈 때는 서울동물원 북단 정상인 호랑이 사육장까지 이어지는 2호선 리프트(약 17분 소요)까지 2개 구간 모두를 이용하는 편이 좋다.

총 길이 1,710m로 약 30~40분의 탑승시간이 소요된다.

정상에서 내려오며 원하는 동물이 있는 탐방로 쪽으로 관람하는 편이 효율적이다.

서울동물원은 세계 각국의 동물이야기가 펼쳐진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온갖 동물들이 모여 있는 이곳 동물원에는 세계적 희귀종인 로랜드 고릴라를 비롯해 약 262여 종 2500여 마리가 모여 산다.

아프리카에서 온 사자, 기린, 코끼리와 같은 인기 있는 동물들부터 초원을 누비던 초식동물들과 각 대륙에서 날아 온 새들까지 모두 만날 수 있다.

사육사의 생태설명회 시간에 맞춰 가면 그동안 알지 못했던 동물들의 생태를 자세히 배울 수 있다.

서울대공원 스카이리프트 옆에 위치한 ‘기린나라’는 대형 키즈 체험관이다.

단순히 장난감이 많은 곳이 아닌 아이들이 직접 몸으로 체험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경험을 쌓으며 부모와 소통하는 공간이다.

3층 규모에서 펼쳐지는 체험놀이는 정각 혹은 30분 단위로 운영하니, 운영시간을 체크한 후 놀이 계획을 짜는 것이 좋다.

1층은 체험위주의 공간이다.’그림자숲’은 손 그림자 공연을 본 뒤, 아이들 스스로 그림자를 만들며 빛의 성질을 배운다.

조명이 꺼지면 저마다 형광펜으로 그림그리기에 여념이 없다. ‘거울미로’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길을 찾아가는 체험이다.

막힌 미로 쪽으로 뛰다가 거울에 부딪힐 수 있으니, 무작정 뛰지 않도록 보호자의 주의가 필요하다.

여주 불교의 명맥을 이어온 도시

여주 불교의 명맥을 이어온 도시

여주 불교의 명맥을 이어온 도시

홀로 보낸 몇 시간 한옥의 보물섬 상화원에서

조선 시대 중엽의 실학자이자 지리학자였던 청담 이중환은 그의 저서인 택리지에서

“남한강이 젖줄처럼 흐르고 있는 여주는 일찍이 대동강변의 평양, 소양강변의 춘천과 더불어 나라 안에서 가장 살기 좋은 강촌으로 손꼽힌다.”

라고 표현했다. 많은 세월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주의 강물은 여전히 흐르고 있고 쌀과 도자기와 땅콩을 특산물로 자랑하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멋스러운 고장” 여주에 대한 옛 학자의 표현이 결코 빈말은 아닌 듯하다.

여주하면 곧바로 신륵사가 머리에 떠오른다. 주로 산속에 있는 여느 사찰과는 달리 물가에 자리 잡고 있어서 더욱 친근하게 느껴지는 사찰이다.

남한강변 봉미산 자락의 고즈넉한 숲속에 있는 신륵사는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조선 성종 때에는 영릉의 원찰이 되어서 왕실의 지원을 받기도 했는데, 강변의 절벽 위에 벽돌로 쌓은 탑이 있다 해서 “벽절” 이라 불리기도 했다.

벽돌로 쌓은 이 다층전탑(多層塼塔)은 완성된 상태로 보존되어 있는 우리나라 유일의 전탑으로 유명하다.

신륵사 조사당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그의 스승 무학대사와 인도 스님인 지공대사, 그리고 고려 말의 고승인 나옹선사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조사당 안에는 세 대사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 있고 앞 마당에는 태조 이성계가 심었다는 오래된 향나무가 있다.

조사당 뒤편의 돌계단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독특한 형태의 부도를 하나 만나게 된다.

고려 우왕 때인 1379년에 만들어진 나옹선사의 석종형 부도인데 옆에 있는 석종비 뒷면에 새겨진 진당시는 목은 이색의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여주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명소인 영릉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세종대왕과 왕비 소헌왕후가 합장되어 있는 곳이다.

조선시대의 왕릉 가운데 가장 전형적인 형태를 간직하고 있는데 정문 근처에 있는 세종관에서는 덕망 있고

인자한 모습으로 그려진 세종대왕의 어진도를 볼 수 있다. 이 그림은 운보 김기창 선생의 작품이기도 하다.

여주읍 능현리에는 일제에 의해 “민비” 라 불리던 명성황후의 생가가 자리 잡고 있다.

고종의 첫 부인이면서 순종의 어머니인 명성황후가 열여섯 살 되던 해까지 살던 집이다.

오랫동안 일반 민가로 남아 있었으나 현재는 완전히 복원작업이 끝나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생가 근처에는 명성황후 기념관이 있으며 생가 앞에는 “명성황후탄강구리” 라는 고종의 친필이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 있다.

영월루는 말 그대로 “달맞이하기에 좋은” 아주 고풍스런 누각으로 남한강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마암 절벽 위에 다소곳이 자리 잡고 있다.

본래 이 누각은 여주군청 청사의 정문으로 이용되었던 것인데 지난 1925년에 지금의 자리에다 옮기고 ” 영월루 ” 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누각에 오르면 확 트인 강줄기뿐만 아니라 멀리 봉미산 자락에 살짝 걸려 있는 신륵사가 아스라이 눈에 들어온다.

홀로 보낸 몇 시간 한옥의 보물섬 상화원에서

홀로 보낸 몇 시간 한옥의 보물섬 상화원에서

홀로 보낸 몇 시간 한옥의 보물섬 상화원에서

역사의 숨결을 느끼며 떠나는 경기도 여주여행

한옥이 섬으로 들어갔다. 섬을 수호하던 나무는 전입신고를 마친 오래된 집을 감쌌다. 사람은 손길을 뻗어 길을 내고 연못을 만들었다.

섬에서 본 바다가 조화로워 상화원이라 이름 붙였다. 죽도에 정원이 생긴 사연이다.

풍경이 아름다워 보물섬이란 소문이 뭍으로 퍼졌다.

혼자 조용히 무더위 피할 시간이 간절하다면 보령시 죽도 상화원으로 향하자.

장항선 대천역에 내려 택시로 갈아타니 죽도까지 10여 분 거리다.

원래 서해에 떠 있던 섬이 간척사업으로 도로가 놓이며 육지와 연결되었다.

한때 난개발의 위기에 놓이기도 했지만 죽도의 자연을 온전하게 지키겠다는 섬 주인의 고집 덕분에 지금의 모습을 보존할 수 있었다.

주인은 섬을 보호하기 위한 의미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조화를 숭상한다는 뜻을 담아 상화원(尙和園)이라는 이름의 정원을 만들기로 했다.

죽도의 자연에 상처 내지 않겠다는 결심과 함께였다. 홀로 보낸 섬에 한옥을 들여올 생각은 어떻게 했을까.

이질적으로만 느껴지는 둘의 만남은 오늘날 생각해보니 절묘했다. 방문객들은 예상치도 못한 한옥을 섬에서 만나 기뻤다.

사라질 위기 앞에서 생명을 연장한 한옥이었다.

상화원 어디에서든 바다는 손에 잡힐 듯하다. 길과 어깨를 맞댄 울창한 숲은 몸을 숨기기에 충분하다.

인파가 몰리는 여행지가 부담스럽다면 상화원은 잠깐 나의 행방을 묘연하게 만들 근사한 은신처가 된다.

상화원 전체를 도는 데 1시간 30여 분이면 족하다. 섬까지 와서 서두를 필요가 있을까. 조급함은 잠시 접어두자.

상화원 입구에 들어서면 정면에 잘생긴 한옥 한 채가 반긴다.

의곡당이다. 경기도 화성 관아에서 정자로 이용하려고 지었던 한옥이다.

고려 후기 또는 조선 초기에 세웠다고 추정한다. 상화원으로 옮겨오기 전에는 천막을 쳐서 다방으로 썼다.

보존을 위해 이곳으로 오지 않았다면 이미 철거되었을 가옥이다.

의곡당은 현재 방문객센터로 쓰인다. 관람하는 이들에게 간단한 음료와 떡을 제공한다.

상화원 안에는 식당이나 매점이 없으니 참고하자. 마실 물을 챙기지 못했다면 회랑에 갖다놓은 생수자율판매대를 이용하면 된다.

상화원 관람은 입구를 등지고 오른쪽에서부터 시작된다. 1km가 넘는 회랑을 따라 걸으면 된다.

회랑으로 향하기 전 초록 잎이 무성한 팽나무에게 눈길 한 번 주자.

누가 적어두었는지 ‘팽나무 약 200살’이라 쓴 나무판자가 익살스럽다. 넉넉하게 드리운 나무 그늘이 고마운 계절이다.

‘산책로 입구’라 쓰인 푯말이 출발점이다. 회랑 바닥에 설치한 하얀색 줄은 방문객들에게 이정표 구실을 한다.

50m마다 설치한 거리 표시가 얼마나 걸어왔는지 알려준다. 덕분에 길을 찾는 수고는 덜하고 마음에 담는 풍경의 크기는 배가 된다.

회랑은 죽도 원주민이 오랜 시간 지나던 길을 그대로 따라 만들었다. 섬의 등고선과 닮은 높낮이에 지루할 새가 없다.

지붕을 얹어 궂은 날씨에도 산책하는 데 어렵지 않다. 계단이 많아 유모차나 휠체어로 가기엔 불편하다.

길 중간에 의자와 탁자를 둔 쉼터가 충분하다.

역사의 숨결을 느끼며 떠나는 경기도 여주여행

역사의 숨결을 느끼며 떠나는 경기도 여주여행

역사의 숨결을 느끼며 떠나는 경기도 여주여행

수원 못골시장 신선하고 다양한 맛을 즐겨요

서울에서 당일치기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경기도 여주는 세종대왕릉, 천년고찰 신륵사와 쇼핑의 메카로

불리는 여주프리미엄아울렛까지 둘러볼 수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을 즐기기 좋은 곳이다.

세종대왕의 업적을 찾아서

세종대왕릉(영릉)은 조선왕조의 능제를 가장 잘 나타낸 능으로 꼽힌다.

풍수지리설에 따라 주산인 칭성산을 뒤로 하고 남쪽으로는 안산의 북성산을 바라보고 있다.

대부분 세종대왕릉은 수학여행코스로 생각하기 쉽지만, 어른들에게도 충분히 유용하고 알찬 곳이다.

‘세종 대왕=한글’ 공식에서 한번쯤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곳도 바로 여기다.

세종전의 전시물 관람을 통해 과학기술을 연구하고 발명하는데 전력을 기울인 세종대왕의 모습과 대마도정벌과 압록강, 두만강을 경계로 우리나라

국경을 확정하는 등의 다양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정문을 들어서면 좌측에 해시계, 측우기, 혼천의 등 각종 과학기구를 복원해 흥미를 끌고 있으며

세종전에는 대왕의 업적과 관련된 여러 가지 유물과 자료들이 전시되어 학술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여주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로 유명한 신륵사. 여주대교에서 신륵사까지 이어지는 길은 데이트코스로,

강변의 천연갈대숲은 가을의 장관을, 관광단지입구에 조성된 음식점에선 계절에 따라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보통 사찰이 산속에 있는데 반해 강가를 향하고 있는 것도 이색적이다.

유서깊은 조사당 명부전 등의 보물이 아니더라도, 남한강을 향한 암반 위 다층전탑과 팔각정이 운치있다.

강 건너로는 주변에 숙박시설과 음식점들이 많아 여주에서 숙박을 계획했다면 신륵사 인근이 좋겠다.

신륵사 팔각정에서 건너편 강가를 바라보면 황포돛배가 눈에 띈다. 황포돛배란, 단어 그대로 누런포를 돛에 달고 운항하는 배를 말한다.

이곳에 떠있는 황포돛배는 조선시대 4대 나루 중 하나인 조포나루에서 운항하던 황포돛배를 재현해 만든 여주의 대표적인 관광상품이다.

신륵사에서 나오는 길엔 진입로에서 보았던 반달미술관에 들러보자. 고풍스럽고 어려운 도자기가 아닌 생활도자기의 미(美)를 조명하는 곳이다.

도자전문미술관으로 4개의 전시홀에서 예술작품으로서의 생활도자의 다양한 영역을 보여주는 전시회가 상설로 열린다

목아박물관은 무형문화재인 박찬수선생이 설립한 곳으로 불상, 불화, 불교목공예품 등이 전시돼 있다.. 목아박물관의 첫인상은 짐짓 놀랍다.

생경한 첫 대면은 이내 신기함과 호기심으로 바뀌게 된다. 평소 사찰에서 보지 못했던 다양한 목조각과 불교미술 등을 접할 수 있기 때문.

‘종교색이 강해 거부감이 일거나 아이들이 접하기에 어렵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재미있고 흥미롭다.

조선 제 26대 고종 황제의 부인으로 뛰어난 외교력과 자주성을 지키며 개방과 개혁을 추진했던 명성황후가 태어난 곳이다.

명성황후가 태어나 8살까지 살던 곳으로 1687년 안채만 남아 있던 곳을 1995년 행랑채와 사랑채, 별당채 등이 복원되었다.

또한 생각 맞은편에는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만든 명성황후 기념관이 자리해 있어 당시 시대적 상황 및 각종 자료들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