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남강유등축제 물 불 빛 그리고 우리의 소망
진주남강유등축제 물 불 빛 그리고 우리의 소망
지금껏 무료로 공연되던 주제 공연을 유료 공연으로 전환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
자립 축제로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선보이는 이번 공연은 축제 기간 내내 촉석루 성벽 밑
수상특설무대에서 평일 1회(오후 7시 30분), 주말 2회(오후 7시 30분, 9시 30분) 공연된다.
진주남강유등축제의 백미는 유등이 남강을 가득 메운 모습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네 아름다움을 표현한 전통등과 세계 31개국의 풍물등
전국 지자체의 상징등과 다채로운 창작등이 남강을 화려하게 수놓는다.
남강뿐만 아니라 진주성도 유등으로 가득 채워진다.
진주대첩을 테마로 하는 진주성 내 유등은 촉석루 부근과 국립진주박물관 앞 광장 등 성내 곳곳에 있는데
성벽과 영남포정사 앞에서는 도열한 군졸의 모습을, 김시민 장군 동상이 있는 잔디공터에서는 군사훈련 중인
군졸과 승병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올해 처음 선보이는 국립진주박물관 앞 공터에는 씨름판과 주막 등 저잣거리의 모습을 재현해놓았다.
진주남강유등축제에는 시민과 관광객이 직접 참여하는 행사도 다양하게 마련되었다. 대표 체험 행사로는 ‘유등 만들어 띄우기’가 있다.
직접 만든 주먹만 한 유등에 소원을 적어 남강에 띄워 보내는 이 행사는 관광객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다.
소망등 2만7천여 개가 만들어낸 거대한 터널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 유등도 빼놓을 수 없다.
이외에도 관광객이 축제를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신안동 분수광장 옆 남강변에 주막을 설치하고, 망경동 대숲은 ‘시와 함께하는 연인의 거리 존’으로 새롭게 조성했다.
진주남강유등축제 의 중심엔 진주성(사적 제118호)이 있다.
진주성은 진주의 역사와 문화가 집약된 진주의 성지다.
고려 말 빈번한 왜구의 침범에 대비해 본래 토성이던 것을 우왕 5년(1379) 진주목사 김중광이 석성으로 고쳐 쌓았고
조선 선조 24년(1591) 경상감사 김수가 외성을 축조했다.
삼국시대에는 거열성, 통일신라에는 만흥산성, 고려 시대에는 촉석성, 조선 시대 이래 진주성 혹은 진양성으로 불렸다.
진주성은 선조 25년(1592) 김시민 장군이 이끄는 군사와 성민 3천800여 명이 왜군 2만여 명을 물리친 진주대첩의 현장이다.
비록 이듬해(1593) 재차 침략을 시도한 왜군에 성이 함락되는 비운을 맞았지만
마지막 한 명까지 왜군에 맞서 싸운 군·민의 충절과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몸을 던진 논개의 의로운 죽음은
진주성을 에둘러 흐르는 남강처럼 4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네 가슴 깊은 곳에 큰 울림으로 남았다.
진주성에서 가장 먼저 둘러볼 곳은 촉석루(경상남도 문화재자료 8호)와 의암(경상남도 기념물 235호)
의기사(경상남도 문화재자료 7호) 등이다. 밀양의 영남루, 평양의 북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으로 꼽히는 촉석루는 영남 제일의 명승이다.
그래서일까. 촉석루는 전시에 장졸을 지휘하는 지휘소로서 역할도 톡톡히 해냈지만
평시에는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거나 고시장으로도 활용되었다. 남장대 혹은 장원루라 불린 것도 이 때문이다.
고려시대 창건된 촉석루는 이후 수차례 중건과 보수를 거쳤으며, 지금의 건물은 한국전쟁 당시 소실된 것을 1960년 진주고적보존회가 시민의 성금으로 중건한 것이다.
진주성이 함락된 뒤 논개가 왜장과 함께 남강에 몸을 던진 의암, 논개의 영정을 모신 의기사는 촉석루와 연계해 둘러보기 좋다.
의기사는 촉석루 오른쪽에, 의암은 촉석루 뒤쪽 남강변에 있다.
임진왜란 전문 박물관인 국립진주박물관도 진주성에 있다.
우리나라 현대건축의 거장으로 불리는 김수근 선생이 목탑을 모티프로 설계한 건물답게 한국적인 멋이 느껴지는 외관이 인상적이다.
1984년 11월 개관 당시 가야 문화를 소개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나
1998년 1월 국립김해박물관이 개관함에 따라 임진왜란을 주제로 하는 역사박물관으로 새롭게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