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넉한 산사 청도 운문사
고즈넉한 산사 청도 운문사
옥천 도리뱅뱅이와 생선국수 음식거리 금강의 맛을 만나다
봄바람에 실려 오는 향긋한 솔향. 그 기분 좋은 향내를 맡으며 찾아갈 수 있는 사찰이라면 단연 운문사를 첫 손에 꼽을 수 있다.
구슬처럼 맑은 운문천의 물소리와 울창한 노송 숲이 매우 인상적인 사찰이다.
운문사가 위치한 경북 청도는 복숭아와 감, 소싸움, 새마을 운동 발상지로 잘 알려진 고장이다.
최근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전천후 경기가 가능하도록 국내 최초 자동 개폐식 돔형 경기장인 청도소싸움경기장을 개장해 매주 주말마다 흥겨운 축제마당을 펼치고 있다.
또 이곳은 물과 산, 인심이 맑아 예로부터 ‘삼청의 고장’으로 불리기기도 했다.
도불습유라고 해서 길에 떨어져 있는 물건이 아무리 욕심나는 것이라도 자기 것이 아니면 절대 주워가지 않는 아름다운 풍습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청도의 가장 대표적인 사찰인 운문사는 청도읍에서 동쪽으로 40km쯤 떨어진 운문산(해발 1,188m)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일명 호거산이라 불리기도 하는 운문산은 재약산, 가지산, 신불산, 취서산 등과 함께 영남알프스를 이루는 고봉 가운데 하나.
먼 옛날 원광국사가 화랑도의 신조인 세속오계를 지은 명산이기도 하다.
이처럼 유서 깊은 운문산의 북쪽 기슭 햇볕 잘 드는 곳에 운문사가 자리를 틀고 앉아 있다.
운문사는 신라 진흥왕 때인 560년에 보양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보양국사는 신라 말기와 고려 초기에 살았던 승려이므로 이 같은 설명은 다소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옛 기록에 의하면 보양국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오는 길에 지금의 운문사 자리에다 사찰을 지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본래 진흥왕 때 누군가에 의해 초창된 사찰이 폐허가 되었고, 그 자리에다 보양국사가 다시 중창을 했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 될 것이다.
중창 당시의 사찰 이름은 작압사였다.
그 후 937년에 고려태조 왕건으로부터 운문선사라는 사액을 받으면서 작압사는 운문사로 불리게 되었다.
운문사는 여승들의 수도장인 만큼 경내 전체가 마치 잘 꾸며진 정원처럼 정갈하고 깨끗하다.
나무 한 그 루, 풀 한포기, 자그마한 돌멩이 하나까지 여승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다.
2016년 현재 운문사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학인 스님은 대략 150여 명.
속세와의 인연을 끊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청순하고 쾌활한 여승들이 엄격한 계율 속에서 수행자의 길을 걷고 있다.
사찰의 참 모습을 보려면 해가 진 후 또는 해가 뜨기 전에 찾아가야 한다.
그리고 기회가 닿는다면 스님들의 바루공양에 참여하고 하루나 이틀 정도 선방에 머물면서 앞만 보고 달려온 삶에 대해 한 번쯤은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이다. 일정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방문길을 서둘러서 새벽 예불에 참여해 볼 일이다.
특히 공부하는 스님들이 많은 운문사의 새벽 예불은 그 청아함과 경건함이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새벽 예불은 일반적으로 4시 30분에 시작해서 5시 30분경에 끝난다.
6시부터는 아침 공양(식사)이 시작되는데, 일반 신도들에게도 공양간(식당)을 개방하고 있다.
이밖에도 운문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명물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수령이 500년에 이르는 처진 소나무다.
천연기념물 제 180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 노거수는 줄기가 땅에 닿을 정도로 처져 있다고 해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재미있는 것은 해마다 음력 3월 3일 삼짇날 나무 주위에다 막걸리 12말을 희석해 뿌리는 일이다.
물도 아닌 막걸리를 뿌리는 것에 대한 여러 가지 추측이 있지만 그 유래와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역사가 오래된 사찰인 만큼 운문사 경내에는 많은 문화재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