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겨울 놀이와 백제 역사를 아우르는 체험 여행

신나는 겨울 놀이와 백제 역사를 아우르는 체험 여행

신나는 겨울 놀이와 백제 역사를 아우르는 체험 여행

예산의 자랑 숯불에 구운 전통 소갈비와 삽다리 곱창

보령과 공주, 아산은 닮은 점이 없지만, 서로 없는 것을 보완해주는 여행지다.

신나는 레저 스포츠와 겨울에 즐길 수 있는 계절 놀이가 많아, 겨울방학 체험 여행지로 제격이다.

겨울 놀이로 가족이 하나 되는 보령, 백제의 역사를 현장에서 생생하게 배우는 공주,

옛 모습을 간직한 시골 마을에서 민속놀이와 풍습을 체험해보는 아산까지 여행 내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1일차> 보령

10:00 한화리조트 대천파로스 박물관은 살아있다

12:00 점심 식사

13:00 대천 짚트랙

14:00 대천해변 & 보령야외스케이트장

16:00 호텔마스타대천

18:00 저녁 식사 및 숙박

<2일차> 공주

10:00 국립공주박물관

11:30 공주한옥마을

12:30 점심 식사

13:30 무령왕릉

15:00 공산성

16:00 계룡산자연사박물관

18:00 저녁 식사 및 숙박

<3일차> 아산

10:00 외암민속마을

12:00 점심 식사

13:00 온양온천

15:00 귀가

보령 여행의 핵심은 겨울바다의 멋이 살아있는 대천해변이지만 아침부터 바닷바람을 맞는 건 피하는 게 좋다.

한화리조트 대천파로스 내부에 자리한 트릭아트미술관 <박물관은 살아 있다(Alive Museum)>는 회화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도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다.

착시를 이용한 전시는 페인팅 아트, 디지털 아트, 오브제 아트 영역으로 구성된다.

그림 속 공룡이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것 같이 생생하고, 명화 속 모나리자가 유혹하는가 하면,

낭떠러지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듯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다. 몸과 다리가 분리된 것처럼 보이는 신체 분리 포토 존은 깜짝 놀랄 정도로 그럴듯하다.

주소 : 보령시 해수욕장3길 11-10

문의 : 041-930-8590

이용 시간 : 09:00~19:00

휴무 : 연중무휴

이용료 : 어른 9000원, 청소년 8000원, 어린이 7000원

할인 정보 : 어른 9,000→6,300, 청소년 8,000→5,600, 어린이 7,000→4,900, 중복 할인 불가

대천파로스에서 몸을 충분히 따뜻하게 만들었다면 다음은 시원하게 바다를 활강할 차례다.

대천 짚트랙은 새처럼 날고 싶다는 인간의 오랜 꿈이 현실이 되는 곳이다.

숲이나 강, 호수 위에 설치된 짚트랙은 많지만, 바다 위를 새처럼 날아가는 짚트랙은 국내에 몇 군데 없다.

짚트랙을 타려면 높이 52m 타워에 올라가야 한다. 안전 장비를 갖추고 와이어에 고리를 건 다음 613m를 날아간다.

와이어가 총 4개 있어 4명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다. 출발 신호와 함께 도착점을 향해 재빨리 하강한다.

얼굴에 와서 부딪히는 바닷바람이 상쾌하다. 추운 날에는 마스크나 머플러 등 보온에 신경 써야 한다. 타워에 설치된 전망대에서는 투명한 유리 바닥으로 보이는 풍경이 아찔하다.

대천 짚트랙에서 대천해수욕장의 중심 머드광장은 900m 거리로 가깝다.

머드광장에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빙판을 마련해 보령야외스케이트장으로 운영한다. 짚트랙을 즐기고 곧장 머드광장으로 향한다.

이용료는 없고 스케이트 장비만 대여하면 된다. 스케이트를 처음 타는 사람도 엉덩방아를 몇 번 찧고 나면 요령이 생겨 재미를 붙인다.

아이들이나 활동적인 여행객은 스케이트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둘만의 추억을 쌓으려고 대천해변을 찾아온 커플은 겨울 바다에서 사랑을 속삭인다.

대천해변은 백사장이 폭 100m, 길이 3.5km에 이르는 서해안 최대 해변이다. 경사가 완만하고 모래가 깨끗해서 오래전 해수욕장으로 개발되었다.

해변에 활어회, 생선구이, 조개구이, 해물탕, 바지락칼국수 등 맛있는 식당과 분위기 있는 카페가 즐비하다.

예산의 자랑 숯불에 구운 전통 소갈비와 삽다리 곱창

예산의 자랑 숯불에 구운 전통 소갈비와 삽다리 곱창

예산의 자랑 숯불에 구운 전통 소갈비와 삽다리 곱창

인천 앞바다 한눈에 쏙 소무의도 무의바다누리길

잘 구워진 갈비 한 점을 젓가락으로 드니 참숯 특유의 향이 침샘을 자극하고, 윤기 흐르는 도톰한 고기를 씹는 순간 부드러운 식감과 달콤한 양념 맛에 기분까지 좋아진다.

‘광시한우’라는 명품 한우 브랜드로 유명한 예산에는 이처럼 양념에 잰 한우 암소 갈비를 숯불에 구워 한입 크기로 잘라 내오는 전통 소갈비구이가 있다.

전통 소갈비구이란 무엇인가. 요즘은 생등심이나 생갈비 등 생고기 구이가 각광받지만,

원래 우리 육류 구이 식문화의 주류는 너비아니나 갈비구이, 제육구이 같은 각종 양념 구이였다.

19세기 말의 조리서 《시의전서(是議全書)》에도 양념해서 구워 먹는 ‘가리구이’라는 음식이 등장하는데, 오늘날의 갈비구이다.

가깝게는 1945년이 시초라고 알려진 수원갈비를 비롯해 포천의 이동갈비와 해운대갈비, 1980년대 대형 ‘가든’과 ‘공원’들의 주력 메뉴도 양념 소갈비구이였다.

갈비 양념은 간혹 소금을 쓰기도 하나, 대개 간장을 기본으로 깨소금과 후추, 파, 마늘, 참기름, 설탕 등이 쓰였다.

상 위에 숯불이나 가스 불을 놓고 직접 구워 먹도록 한 것도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예산군청 부근에서 30년 가까이 소갈비를 구워온 ‘삼우갈비’는 옛날식 갈비구이의 명가로 손꼽힌다.

오랜 세월 지켜온 손맛 덕에 전국구 맛집으로 꽤 알려졌지만, 지금도 외지 사람보다 지역민들에게 사랑받는다.

맛있는 갈비구이를 만들기 위한 첫째 조건은 당연히 좋은 재료다.

삼우갈비 2대 사장 박유진 씨는 매주 질 좋은 한우 암소 갈비를 들여와 손질과 양념은 물론, 굽는 작업까지 직접 챙긴다.

일주일 치가 대략 24짝, 소 한 마리의 갈비가 좌우 2짝이니 총 12마리 분량이다.

기름을 제거하고 토막 낸 뒤 뼈에 있는 살을 너붓하게 펴서 촘촘히 칼집을 내는 데 꼬박 하루가 걸린다.

갈비 주변에 붙은 다른 부위도 잘 손질해서 양념에 같이 잰다. 그중 1~4번 갈비를 덮은 살치는 등심으로 분류되는 부위로, 눈꽃 같은 마블링이 예술이다.

소 한 마리에서 1~1.5kg 나오는 안창살도 예외가 없단다.

이렇게 손질한 갈비를 양념에 재어 급속 냉동하고, 필요한 양만큼 꺼내 사나흘 동안 해동과 숙성 과정을 거치면 부드러운 고기를 얻을 수 있다.

재료가 좋아도 굽는 기술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

주문이 들어오면 참숯 피운 석쇠에 갈비를 길게 펼쳐 한쪽 면을 굽고, 재빨리 뒤집어 반대쪽도 굽는다.

양쪽이 적당히 익으면 한입 크기로 잘라서 타거나 덜 익은 부분이 없도록 집게로 골고루 굴려준다.

손님상에 나갈 때는 구운 갈비를 데워둔 접시에 담고 시원한 동치미, 배춧속과 고추장, 깍두기, 어리굴젓, 설렁탕 국물 등과 함께 낸다.

구워 나오니 번거롭지 않아 좋고, 1인분도 주문이 가능하니 야박하지 않아 더욱 좋다.

진하고 구수한 갈비구이도 좋지만 갈비탕도 맛있다.

놋그릇 한가득 담겨 나오는 갈비탕은 특히 점심시간에 많이 팔리는데, 늦게 가면 맛보기도 힘들다.

인천 앞바다 한눈에 쏙 소무의도 무의바다누리길

인천 앞바다 한눈에 쏙 소무의도 무의바다누리길

인천 앞바다 한눈에 쏙 소무의도 무의바다누리길

달을 품은 산 왕의 길 을 받들다 경주 함월산 왕의 길

가을, 호젓한 섬길 한번 걸어보자. 통통배만 오갈 뿐 차도 다니지 않는 섬 해변길 말이다.

무의도는 드라마 촬영지와 하나개해변, 호룡곡산 등으로 명성을 떨친 지 오래지만 동생 섬인 소무의도가 입소문이 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무의도 샘꾸미포구에서 소무의도까지 구름다리가 놓이고 무의바다누리길이 조성되면서 찾는 이의 발길이 늘고 있다.

주말이면 무의도 가는 길이 꽤 편리해졌다.

예전에는 두세 차례 버스를 갈아타고 오갔지만 요즘은 인천공항철도가 주말마다 용유임시역까지 연결된다.

기차역에 내리면 무의도행 배가 출발하는 잠진도선착장까지 바다를 옆에 두고 걸어서 닿을 수 있다.

잠진도선착장에서 배를 타면 무의도까지 5분 남짓.

배는 20~30분마다 다니고, 섬 안에서는 뱃시간에 맞춰 버스들이 수시로 오가니 굳이 승용차를 몰고 섬 안에 들어설 필요가 없다.

사실 한적한 어촌마을 풍경을 보러 떠나는데 승용차가 넘쳐나는 것만큼 볼썽사나운 것도 없다.

무의도선착장에서 미니버스를 타면 섬을 가로질러 반대편 광명항까지 덜컹거리며 달린다.

호젓한 섬을 걷는 소무의도 여행은 버스 뒷자리에 앉아 차창을 열고 심호흡을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제법 가파른 언덕을 넘어선 버스가 자맥질하듯 고꾸라지면 무의도의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광명항보다는 주민들에게 샘꾸미마을로 익숙한 포구가 드러나고, 포구 건너에 소무의도가 웅크리고 있다.

예전 무의도와 소무의도를 연결하는 방법은 배편이 유일했다.

소무의도 서쪽마을과 동쪽마을은 산으로 가로막혀 산길을 걸어 넘거나 고깃배로 오가야 했다.

샘꾸미에서 소무의도 서쪽마을을 잇는 구름다리가 들어서고 섬을 일주하는 무의바다누리길이 조성되면서 섬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소무의도의 다른 이름은 ‘떼무리’다. 인도교와 연결되는 서쪽마을 선착장 이름도 떼무리선착장으로 불린다.

해안선 길이가 2.5km인 아담한 섬의 역사는 3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씨 가족이 세 딸과 함께 들어와 섬을 개척했고, 유씨 청년을 데릴사위로 삼으면서 유씨 집성촌이 형성됐다고 한다.

인근에서는 새우 등이 많이 잡혔고, 한때는 안강망 어선이 40여 척이나 될 정도로 부유했던 섬이다.

소무의도는 인천상륙작전 당시 군 병참기지로 사용되기도 했다.

섬 안에는 풍어제를 올렸던 터가 남아 있으며,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가족과 함께 휴양차 들렀다는 해변도 있다.

섬 주변은 간조 때면 해변길을 드러낸다. 낚시꾼이나 찾을 줄 알았던 외딴 섬이 품은 사연이 이렇듯 구구절절하다.

414m 인도교를 넘어 들면서부터 나무 데크로 만들어진 무의바다누리길의 윤곽이 드러난다.

무의바다누리길은 총 8개 구간으로 나뉜다. 섬을 오롯이 일주하는 데는 1시간이면 족하다.

낚싯대를 가져왔으면 중간에 포구마을에서 낚시를 즐겨도 좋고, 소담스런 해변에 앉아 도시락을 맛봐도 좋다.

인도교와 서쪽마을을 거치면 떼무리길로 연결된다. 소무의도의 자연생태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 길은 당산으로 연결된다.

부처깨미길은 만선과 안전을 기원하며 풍어제를 지냈던 곳으로 주변 조망이 빼어나다.

부처깨미길을 넘어서면 몽여해변길로 이어진다.

분주해진 서쪽마을과는 다르게 소박한 포구와 몽여해수욕장의 해변 정취를 음미할 수 있는 길이다.

이곳에서 낚시를 할 수 있는데 소무의도 일대는 우럭, 농어, 놀래미 등이 많이 잡히는 낚시꾼들의 숨겨진 포인트다.

250m로 아담한 규모인 몽여해수욕장은 모래와 하얀 굴껍데기, 몽돌로 이뤄진 해변이다.

몽여해변에서 언덕을 하나 넘으면 명사의 해변으로 연결된다.

이 해변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가족과 함께 휴양을 즐겼다는 고즈넉한 곳이다.

소무의도 남쪽의 해녀섬길은 바다 건너 해녀섬을 조망하는 길로, 능선을 따라 늘어선 기암절벽을 감상할 수 있다.

명사의 해변길과 해녀섬길 아래는 간조 때 물이 빠지면 장군바위까지 해안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장군바위에는 해적들이 바위 모양을 보고 장군과 병사들로 착각해 도발하지 못했다는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달을 품은 산 왕의 길 을 받들다 경주 함월산 왕의 길

달을 품은 산 왕의 길 을 받들다 경주 함월산 왕의 길

달을 품은 산 왕의 길 을 받들다 경주 함월산 왕의 길

충주호 벚꽃 터널과 수안보 벚꽃길 산책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의 장례 행렬이 이어지던 길, 문무왕의 아들 신문왕이 아버지의 수중릉으로 행차하던 길,

지금은 그 길을 따르는 뭇 후손들이 더위를 식히고 역사를 기억하는 길, ‘왕의 길’에서 두 발로 뚜벅뚜벅 옛길을 더듬는다.

그 자체가 하나의 노천 박물관이라 할 정도로 경주에는 다 헤아리기도 벅찰 만큼 수많은 신라시대 유적과 유물이 있다.

그래서 경주는 갈 때마다 새롭고, 하루 이틀 혹은 며칠간의 여행으로는 도저히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곳이다.

보름달이 뜰 때는 달빛기행을 하고, 별이 밝은 날엔 별빛기행을 하며 밤에도 무궁무진한 고도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그런 경주에 최근 새로운 길 하나가 추가됐다. 추령터널과 기림사를 잇는 왕의 길이다.

함월산 아랫자락을 잇는 편도 3.9km의 걷기 좋은 숲길이다.

깊이 숨겨진 보물같이 아직은 제 모습을 세상에 널리 드러내지 못했지만 그래서 더 고즈넉하고 아늑하다.

경주 시내를 벗어나 감포 방향으로 가다 보면 함월산 자락에 추령터널이 있다.

이 추령터널 옆으로 왕의 길로 가는 진입로가 나 있다.

길은 처음부터 제 모습을 호락호락 보여주지 않는다.

진입로를 따라 2.5km의 시골길을 40~50분은 걸어야 왕의 길 초입인 모차골 입구에 닿는다.

좋은 길도 좋은 사람처럼 처음부터 그 깊은 속내를 훤히 다 드러내지 않는 법. 깊은 숲을 만나기 위해선 약간의 준비가 필요하다.

추령터널에서 모차골까지 가는 길도 숲길은 아니지만 꽤 한적하게 고만고만 걸을 만한 길이다.

걷다 보면 모차골 조금 못 미쳐 황용약수를 만나게 된다.

철분 함량이 높아 물이 떨어지는 곳의 돌들이 누렇게 변색될 만큼 몸에 좋은 물이다. 이 약수로 목을 축이면 한여름 갈증이 싹 달아난다.

약수 한 사발 들이켜고 나면 어느새 모차골에 닿는다.

모차골은 마차가 다니던 곳이라 하여 ‘마차골’로 불리다가 모차골이 되었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왕의 길이 시작된다.

그렇다면 이 길은 왜 이런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을까.

신문왕은 신라 31대 임금으로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의 맏아들이다.

삼국통일 이후 정세를 안정시키고 강력한 전제왕권을 확립한 왕으로 평가받고 있다.

681년 아버지인 문무왕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았을 당시 신라는 겉으로는 평온한 듯 보였지만

안으로는 통일 후의 긴장과 귀족들과의 갈등으로 고군분투하던 시절이었다.

《삼국사기》에 전하길, “근자에 와서 도의가 사라진 상태에서 왕위에 있다 보니 정의가 하늘의 뜻과 달라,

천문에 괴변이 나타나고 해와 별은 빛을 잃어가니 무섭고 두려움이 마치 깊은 못이나 계곡에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신문왕이 종묘에 제사를 지내며 조상들에게 바친 제문의 내용이다.

그만큼 통일 직후였던 당시는 귀족들의 반란이 끊이지 않고 외부와의 전쟁 위험도 있어 나라를 다스리기에 어려운 시기였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문왕은 즉위 다음해인 682년에 아버지 문무왕의 수중릉이 있는 동해바다에 갔다가 용을 만나

만파식적과 옥으로 만든 허리띠를 얻었다. 대나무로 만든 피리인 만파식적을 불면 적병이 물러나고 병이 나으며,

가물 때는 비가 오고 비가 올 때는 날이 개는 등 신비한 능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그만큼 나라의 평화와 안녕이 절실했다.

만파식적은 신문왕의 왕권 강화와 정세 안정을 위해 만들어진 설화였을 테다.

그러니까 이 길은 신문왕이 마차를 타고 아버지 문무왕의 묘를 찾아가는 길이자 나라를 구원할 힘을 얻은 길이다.

또 이보다 앞서 문무왕의 장례 행렬이 지나간 길이기도 하다. 처음엔 신문왕길 혹은 신문왕 호국행차길이라 불리다가

현재는 공식적으로 왕의 길로 불리고 있다. 비단 신문왕만 다니지는 않았을 테고,

여러 왕들이 동해로 행차하며 이 길을 지나갔을 것이라는 추측에 따른 것이다.

초입에서 숲길은 야생미가 넘쳐흐른다. 아이 키만 한 개망초가 길을 수놓고 옆으로 흐르는 계곡은 끊임없이 길을 따라온다.

작은 계곡을 건너는 일만도 수십 번이다. 한여름으로 접어들면서 숲은 온갖 식물과 갖가지 곤충,

개구리같이 작은 동물들을 무수히 키워내고 있다. 높은 나무에서 매미가 울어대고, 계곡은 졸졸졸 마르지 않고 흐른다.

가는 길은 내내 이런 풍경이다. 온갖 나무와 식물이 한여름에도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숲에 폭 안기는 느낌이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날에도 이 길에 들어서면 시원하다. 삼림욕이 거저다.

길은 초입에는 사람 하나 지나다닐 만한 오솔길이었다가 이내 마차와 수레가 지나다녔을 만큼 널찍해진다.

걷다 보면 다양한 이정표를 만난다. 수레가 넘어 다녔다는 수렛재, 급한 경사에서 수레를 끌던 말들이 굴렀다는 말구부리,

신문왕이 잠시 손을 씻으며 쉬어 갔다는 세수방, 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한 불령봉표를 거쳐 가며 옛길을 상상한다.

충주호 벚꽃 터널과 수안보 벚꽃길 산책

충주호 벚꽃 터널과 수안보 벚꽃길 산책

충주호 벚꽃 터널과 수안보 벚꽃길 산책

중원으로 떠나는 역사와 풍경여행

충북 충주시 충주호수로(충주호봄나들이한마당),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물탕공원(수안보온천제)

푸른 물빛에 어우러진 하얀 벚꽃이 눈부신 광경을 연출하는 충주호 벚꽃 터널을 걸어보자.

제4회 충주호봄나들이한마당(4월 11~13일)은 10km에 이르는 호수 양안의 벚꽃 터널을 걷고,

따스한 햇살이 내려앉은 공원에서 다채로운 체험 행사를 즐기는 축제다

벚꽃 길 걷기 대회, 사생 대회와 백일장, 마술 공연과 음악 공연, 제기차기, 투호, 떡메 치기 등이 열린다.

벚꽃 손수건 만들기, 벚꽃 팔찌 만들기 등 체험 이벤트도 마련된다.

행사가 열리는 우안공원(물레방아휴게소)은 연못과 벤치, 각종 조각품이 어우러진 소박한 공원으로,

도시락을 먹으며 봄 햇살을 즐기기 좋다. 공원을 천천히 걸으며 화단 곳곳에 피어난 들꽃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충주댐이 건설된 1985년 무렵 식재되어 수령 30년이 넘는 벚나무들은 호수의 봄을 장식하는 주인공이다.

축제가 진행되는 공원 인근뿐만 아니라 물레방아휴게소에서 충주나루로 가는 호반 도로, 계명산자연휴양림으로 가는 호반 도로가 모두 벚나무로 이어진다.

호반을 따라 즐기는 드라이브도 일품이지만, 나무 데크가 연결되어 느릿느릿 걷는 여행을 즐기기에도 그만이다.

남한강에서 충주댐으로 가는 길도 벚나무들이 안내하니 벚꽃만으로도 배가 부르다.

충주댐 물문화관에서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댐 정상으로 내려가 댐 위에 놓인 공도교를 걸을 수 있다.

길이 447m 공도교 위에서 거대한 충주댐을 만나고, 호수에 안긴 듯 걸어보는 느낌이 특별하다.

엘리베이터 전망대에 서면 그림 같은 충주호의 풍광과 댐 아래로 흘러가는 남한강 물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름이 정겨운 종댕이길은 충주호와 심항산 자락이 만나는 곳을 잇는 숲길이다.

마즈막재 주차장에서 출발해 생태연못과 제1조망대,

제2조망대, 출렁다리를 거쳐 계명산자연휴양림 쪽으로 돌아오는 6.2km 코스다.

출렁다리를 건너보고 숲해설안내소 쪽으로 길을 잡는 것이 좀 더 수월하고, 숲을 오래 즐길 수 있다.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여행객이라면 충주댐 아래 남한강 변에 위치한 조동리선사유적박물관에 들러보자.

지난 1996년~2000년 발굴된 조동리 선사 유적의 이모저모와 선사시대의 농경문화를 소개하는 공간이다.

충주자연생태체험관(3월 28일~4월 16일 휴관)은 이구아나와 카멜레온, 뱀, 육지 거북 등 작은 동물을 직접 만져볼 수 있는 곳이다.

가축 먹이 주기, 표본 만들기, 각종 공예 체험도 할 수 있어 어린이에게 인기다.

충주호의 벚꽃이 만개할 무렵이면 수안보온천의 벚꽃도 꽃망울을 터뜨린다.

이때 맞춰 열리는 수안보온천제(4월 18~20일)는 올해로 30회를 맞는다.

수안보온천비각이 있는 물탕공원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축제를 온천욕으로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즐겨보자.

산신제와 발원제, 주민 화합 길놀이, 불꽃놀이를 비롯해 온천수로 송편 빚기, 맨손으로 물고기 잡기 등 여행객을 위한 체험 행사가 다양하다.

우륵공충주시립우륵국악단과 택견시범단의 공연, 〈7080 스파 콘서트〉, 온천 가요제 등 볼거리도 풍성하다.

중원으로 떠나는 역사와 풍경여행

중원으로 떠나는 역사와 풍경여행

중원으로 떠나는 역사와 풍경여행

예술과 자연이 빚어낸 특별한 아지트 상상마당 춘천

중원을 장악하기 위한 치열한 다툼, 무협지에서 흔히 쓰는 상투적 표현이다.

충북 충주는 삼국시대에 백제-고구려-신라 순으로 주인이 바뀌면서 말 그대로’중원’을 차지하기 위한 각축이 치열했던 곳이다.

중원은 충주의 옛 지명이다. 파란만장한 역사 못지않게 경치도 아름다워 볼거리가 풍부하다.

충주시는 2014년 이곳이 국토의 중앙부임을 강조하기 위해 가금면의 명칭을 중앙탑면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중앙탑의 정식 명칭은 ‘탑평리 7층 석탑’이다. 8세기 후반~9세기 초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탑의 높이는 12.95m,

남아 있는 신라석탑으로는 가장 높은 탑으로 국보 제6호로 지정돼 있다.

높이에 비해 폭은 상대적으로 좁아 하늘로 치솟는 듯한 상승감이 두드러진다.

중앙탑 바로 앞은 탄금호 국제조정경기장이다.

일대를 조각공원 겸 수변공원으로 꾸며 가족끼리 연인끼리 한가롭게 강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중앙탑 뒤편은 충주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1986년 유물관으로 시작해 1990년 박물관으로 승격한 종합박물관으로 충주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전시실을 갖췄다.

박물관 옆 뜰엔 폐사지의 불상과 입상 등을 전시하고 있다.

중앙탑에서 3km 떨어진 입석마을(중앙탑명 감노로 2319번지)에는 국내에 유일한, 국보 제205호 충주 고구려비가 있다.

마을이름이 선돌(立石)이지만 돌의 정체가 밝혀진 것은 1979년이다.

숙종이 이 마을을 지나면서도 실체를 몰랐고, 마을주민들은 새마을운동 초기

고구려비 옆에 ‘칠전팔기의 마을’이라는 새마을 기념비를 세웠을 정도다.

해독할 수 있는 문자로 보건대 5세기 후반 고구려 장수왕 또는 문자명왕 때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구려의 영향력이 이곳까지 미쳤음을 증명하는 귀중한 사료다.

2012년 문을 연 충주고구려비 전시관에는 중국 지안(集安)의 광개토대왕비,

북한 황해남도의 안악3호분 등 고구려와 관련한 자료를 함께 전시하고 있어 흥미를 더한다.

전시관 개방시간은 09:00~18:00, 입장료는 무료다.

충주시내를 벗어나 3번 국도를 이용해 수안보로 이동하다 노루목교를 지나자마자 우측으로 방향을 틀면 달천과 나란한 작은 도로를 거슬러 오른다.

넓지 않은 달천의 물빛이 한없이 푸르다.

달천은 옛날 수달이 많이 살았다고 해 달강이라 부르기도 하고 달래강으로 부르기도 한다.

물이 맑을 뿐만 아니라 맛도 좋아 조선 성종 때 학자 허백당 성현은 ‘용재총화’에서 ‘우리나라 물맛은 충주 달천수가 으뜸’이라고 칭찬했을 정도다.

충주시 단월동과 단호사 등의 지명도 달천의 물맛이 그만큼 달다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수주팔봉은 바로 달천이 한 굽이 휘어져 돌면서 빚은 자연의 예술품이다.

높지도 않고, 규모도 크지 않지만 8개의 바위봉우리가 빚은 풍경은 한 폭의 수묵화를 보듯 평온하면서도 웅장한 힘이 느껴진다.

물길이 휘어지면서 빚어낸 아담한 백사장도 여행길에 쉬어가기 안성맞춤이다.

수주팔봉의 8개 봉우리가 달천으로 치닫는 중간 부분이 뚝 잘린 것은 일제 강점기에 농지를 개간하기 위해 허리를 끊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연은 안타깝지만 지금은 끊어진 봉우리 사이로 폭포수가 흘러 나름의 운치를 더한다.

수주팔봉 전망대에서 반대편으로 돌면 산정으로 팔각정으로 오르는 길이 나 있다.

이곳에서는 반대로 잘려진 허리 사이로 보이는 강변과 마을 풍경이 푸근하다.

예술과 자연이 빚어낸 특별한 아지트 상상마당 춘천

예술과 자연이 빚어낸 특별한 아지트 상상마당 춘천

예술과 자연이 빚어낸 특별한 아지트 상상마당 춘천

청주 중앙공원 은행나무전설과 청주여행이야기

의암호를 끼고 고요하게 자리한 춘천어린이회관 부지는 춘천시민들의 비밀스런 아지트 같은 공간이었다.

춘천에서 풍광이 가장 빼어난 곳 중 하나로 입소문 난 장소이기도 했다.

어린이회관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던 상태였던지라 춘천인형극제와 춘천마임축제 등 특정 행사 기간에만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 외의 기간에는 춘천시민들이 삼삼오오 평화로운 휴식이나 산책을 즐기던 고즈넉한 공간이었다.

돗자리를 펴고 쉬거나 낙엽 가득 쌓이는 계절에는 바스락거리며 걷는 것만으로도 절로 힐링이 되는 그런 곳이었다.

몇몇만의 비밀 아지트로 숨겨두기에는 아까웠던 어린이회관 부지가 이제 ‘상상마당’이라는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오르게 됐다.

고 김수근 건축가의 춘천어린이회관, 상상마당으로 다시 날갯짓하다

1980년에 개관한 춘천어린이회관은 올림픽주경기장, 벽산125빌딩(현 게이트웨이 빌딩) 등 국내 유명 건축물을

설계한 한국 건축계의 거장 고 김수근 건축가의 작품이다. 붉은 벽돌이 특징인 그의 다른 건축물처럼 춘천어린이회관 역시 벽돌로 만들어졌다.

의암호와 어우러진 벽돌 건축물이 상공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나비처럼 보인다.

김수근 건축가는 호수에 나비 한 마리가 내려앉은 듯한 모습을 연상하며 이 건물을 설계했다.

어린이회관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었지만 이 건물 자체가 갖는 가치 때문에 건축물만은 그대로 보존되어왔다.

그동안 어린이회관 운영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논의가 있었으나 결국 최종적으로 인연을 맺게 된 건 KT&G 상상마당이다.

상상마당은 KT&G가 진행하는 사회 공헌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고 대중에게 문화 향유의 기회를 넓혀주고자 하는 취지를 담은 복합 문화공간이다.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홍대 상상마당이 2007년에 문을 열었고,

2011년에는 문화예술 체험 공간인 논산 상상마당이 개관했다. 그리고 ‘아트스테이(art+stay)’라는 콘셉트를 가진 춘천 상상마당이 2014년 4월에 문을 열었다.

빈티지한 붉은 벽돌 건물이 아트센터로 변신

상상마당 춘천은 크게 ‘아트센터’와 ‘스테이’ 건물로 나뉜다.

옛 춘천어린이회관 건물에 들어선 아트센터에는 공연장, 갤러리, 라이브 스튜디오, 강의실, 카페, 아트숍 등이 자리한다.

외부와 마찬가지로 내부 역시 붉은 벽돌로 꾸며져 있으며, 1층과 2층이 자연스럽게 한 공간처럼 이어진다.

아트센터에서는 음악, 디자인, 교육, 시각예술 분야 활동이 주로 이뤄진다.

음악 위주의 공간은 사운드홀과 라이브스튜디오, 야외무대 등이다.

사운드홀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접할 수 있는 다목적 공연장으로 관객과 아티스트가 소통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고가의 장비를 갖춘 라이브 스튜디오는 라이브 및 원테이크 레코딩에 특화되어 있다.

시각예술을 테마로 하는 공간은 갤러리와 사진 스튜디오이다. 컨템포러리 아트 갤러리인 갤러리1에서는 국내외 작가들의 현대미술 전시가,

아카이브 갤러리인 갤러리2에서는 강원도 관련 다양한 시각자료 전시가 이뤄진다.

갤러리에서는 개관 기념으로 6월 15일까지 ‘춘천 기록 프로젝트 <기억하다> 전’이 진행된다.

2013년 4월부터 2014년 4월까지 춘천어린이회관이 상상마당 춘천으로 변신하는 과정을 기록한 작업을 전시한다.

건물 1층의 아트숍 ‘디자인 스퀘어’는 일상 속의 예술, 일상 속의 디자인을 소개하는 공간이다.

우리나라 독립 디자인 브랜드와 신진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전시 및 지원한다.

작품이 판매되면 일부를 제외하고 상당액을 작가들에게 그대로 전달한다.

그밖에 문화예술, 청소년 창의예술교육 등 강좌가 진행될 교육시설도 다양하게 갖췄다.

의암호를 끼고 자리한 상상마당의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제대로 만끽하고 싶다면 카페 ‘댄싱 카페인(Dancing Caffeine)’에 들러보자.

이름부터 독특한 이 카페는 커피의 기원설에 나오는 에티오피아의 염소 치는 소년 칼디와 관련한 ‘댄싱 고트(dancing goat)’에서 영감을 얻은 이름이다.

청주 중앙공원 은행나무전설과 청주여행이야기

청주 중앙공원 은행나무전설과 청주여행이야기

청주 중앙공원 은행나무전설과 청주여행이야기

제천 청풍호 자드락길 2코스 정방사길

고려말의 정치상황

1392년 고려가 멸망하기까지 고려는 건국초기부터 멸망에 이르는 기간 동안 오랑캐들의 침략으로 하루도 편할 날 없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더구나 고려 말 약 100여년정도 지속된 원의 간섭은 고려의 힘을 약화시켰고 특히

고려 말 홍건적과 왜구의 잦은 침략은 백성들의 삶을 고통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부패한 귀족과 사찰은 백성들이 농사지을 땅마저 빼앗았으며 1368년 원이 멸망하고 명이 들어서자

정치세력들은 친명파와 친원파로 갈려져 첨예한 대립을 거듭했다.

이 당시 친명파였던 이성계는 요동정벌 명령을 거부하고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고려왕조가 멸망하는데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 ‘직지’의 고장으로 잘 알려진 청주는 충청북도의 중심지로 아름답고

서정적인 도시풍경과 더불어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문화재들이 산재해있어 교과서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 중 하나이다.

또한 규모 있는 도시의 명성에 걸맞게 여행자들이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음식점과 숙박시설 및 휴식공간 등

여행자들을 위한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신록이 푸르러지는 6월에 청주를 여행한다면 청주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여행지를 답사하며

그 여행지속에 숨겨져 있는 다양한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 보자.

청주 중앙공원 은행나무 (압각수-충청북도 기념물 제5호)

청주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중앙공원에는 1000여년이 가깝도록 그 자리를 지켜온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있다.

나른한 오후가 되면 할아버지 무릎을 베고 누운 손주가 낮잠을 자고 있을 것만 같은 편안하고 수려한 나무이다.

1000여년이 가깝게 자란 나무답게 허리둘레가 어마어마해서 장정 여럿이서 팔을 뻗어도 닿을 것 같지 않은 엄청난 크기를 자랑한다.

대부분의 오래된 나무들이 그러하듯이 이 은행나무에도 전설이 하나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흉년이 들거나 전쟁이 날 때 울음으로 알려준다는, 마을마다 전해 내려오는 비슷한 전설이 아닌 고려 말의 정치상황과 관련된 전설이다.

청주 중앙공원은 옛 청주관아가 있던 곳으로 압각수라 불리는 은행나무 옆으로 청주옥이라는 감옥이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고려 공양왕 시절에 10여명의 죄수들이 이곳 청주옥에 잡혀오게 된다.

죄수들 중에는 목은 이색, 도은 이숭인, 양촌 권근, 인재 이종학 선생 등의 충신들도 포함되어있었다.

이중에서 목은 이색선생은 학문과 인품이 뛰어나 훗날 조선성리학의 뿌리가 되신 분이다.

이들 죄수들은 이성계와 공양왕을 모함했다는 죄를 뒤집어쓰고 청주옥에서 모진 고초를 당했다.

고문이 어찌나 심했던지 죄수들 모두 밤늦은 시각이 되자 죽은 자처럼 축 늘어진 상태가 되었다.

모진 고문이 있던 날 밤 갑자기 천둥번개를 동반한 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물은 삽시간에 불어나서 청주옥을 휩쓸었다.

감옥에 갇혀있던 죄수들은 물론 관리들과 백성들까지 모두 불어난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목은 이색선생도 예외는 아니어서 급작스럽게 불어난 물에 떠내려가게 되었다.

이색선생께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아름드리 은행나무의 가지를 붙든 뒤였다.

신비스럽게도 하늘 높은 곳에 있던 은행나무 가지가 저절로 내려와 이색선생을 붙잡은 것이었다.

이색선생이 은행나무 가지를 붙들자 은행나무 가지는 다시 사뿐히 하늘로 올라갔다.

덩달아 이색선생께서도 하늘로 올라가 은행나무꼭대기에 앉게 되었다.

그런데 왕을 모함한 죄로 잡혀온 죄수들도 다 같이 은행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이 아닌가?

죄수들이 은행나무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본인들을 고문했던 관리들이 하나같이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며 급한 물살에 밀려 떠내려가고 있었다. 청주 고을 사람들이 이를 보고 하늘이 무고한 죄수들을 살렸음을 칭송하며 감복했다고 전해진다.

또 고려 공양왕 역시 하늘이 살린 자들은 죄가 없음을 밝히고 그들을 풀어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제천 청풍호 자드락길 2코스 정방사길

제천 청풍호 자드락길 2코스 정방사길

제천 청풍호 자드락길 2코스 정방사길

겨울 바다 훈훈한 미술 엿보기 체험

절이 절벽 중턱에 걸터앉은 것 같다. 절 마당에 서면 눈 아래 펼쳐진 산줄기의 바다가 망망하다.

겹쳐진 산줄기들이 저 멀리서 밀려오는 물결을 닮았다.

그 품에 안긴 청풍호는 안식처처럼 평온하다.

사람 마음도 격랑과 평온을 넘나드니 풍경과 마음이 닮았다. 정방사에 가면 마음을 닮은 풍경을 볼 수 있다.

청풍호의 물결과 호수를 담고 있는 산줄기가 만들어낸 풍경을 걷는다.

제천시가 만든 청풍호 자드락길은 나지막한 산기슭의 비탈진 땅에 난 좁은 길을 뜻한다.

자드락길은 전체 7코스로 이뤄졌는데 저마다 특징이 있어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1코스 작은동산길 : 청풍 만남의 광장에서 능강교까지 이어지는 19.7km 구간. 청풍호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2코스 정방사길 : 능강교에서 정방사에 이르는 1.6km 구간. 절벽에 지어진 절과 절 마당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압권이다.

3코스 얼음골생태길 : 능강교에서 얼음골에 이르는 5.4km 구간. 맑은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 냉풍이 나오는 얼음골에서 끝난다.

4코스 녹색마을길 : 능강교에서 상천민속마을까지 이어지는 7.3km 구간. 산수유와 진달래가 피는 봄에 걸으면 가장 좋다.

5코스 옥순봉길 : 상천민속마을에서 옥순대교까지 5.2km 구간. 청풍호와 옥순봉의 풍경이 볼 만하다.

6코스 괴곡성벽길 : 옥순대교와 지곡리를 잇는 9.9km 구간. 도중에 만나는 옛 마을의 풍경이 볼 만하다.

7코스 약초길 : 지곡리에서 율지리 말목장까지 8.9km 구간.

이 밖에 배를 타고 풍경을 감상하는 뱃길도 있다.

자드락길 6코스가 끝나는 지곡리에서 배를 타고 옥순대교(옥순봉 휴게소)에서 내리는 코스다.

짧은 걸음 강렬한 풍경

청풍호 자드락길 제2코스 정방사길을 간다.

출발지점인 능강교에서 정방사까지는 1.6km쯤 오르막길을 계속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포장된 길이라서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길 초입에서 계곡이 여행자를 반긴다.

큰 바위 아래 맑은 물줄기가 시원하게 흐르고 바위 위에 솟은 소나무가 푸르다.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잠시 머물다가 본격적으로 오르막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우거진 숲이 그늘을 드리운다.

길은 정방사에서 끝나고 전망 좋은 풍경이 정방사 앞에 펼쳐진다.

눈 아래 펼쳐지는 풍경에 마음이 통쾌하다.

저 멀리서부터 넘실대며 밀려오는 산줄기가 바다를 닮았다. 바다 같은 풍경을 한눈에 담기가 벅차다.

산줄기와 청풍호가 만들어내는 망망한 풍경 위에 또 그만큼의 하늘이 펼쳐지고 하늘을 덮은 구름이 낮게 깔렸다.

절 마당 앞에 펼쳐진 풍경을 충분히 즐기고 나서야 절집이 눈에 들어온다.

신라 문무왕 2년(662)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정방사는 1,400년 가까운 역사를 품고 있는 절이다.

겨울 바다 훈훈한 미술 엿보기 체험

겨울 바다 훈훈한 미술 엿보기 체험

겨울 바다 훈훈한 미술 엿보기 체험

조선개국의 땅 전주 남원 진안 역사 여행

통영의 겨울체험은 눈과 마음이 즐겁다. 도시의 역사와 훈훈한 사연을 담아낸 미술관들과 벽화마을을 엿보는 이색경험이 기다린다.

독특한 테마를 지닌 미술공간들은 바다를 배경 삼거나, 담장을 캔버스 삼아 푸른 통영을 그려내고 있다.

전혁림 미술관, 옻칠미술관, 동피랑 마을 등에서 따뜻한 겨울 햇살과 함께 감성을 풍요롭게 하는 체험이 진행된다.

전혁림 미술관은 추상, 옻칠미술관은 전통, 동피랑 마을은 서민들의 삶을 소재로 고스란히 통영을 담아내고 있다.

통영시 용남면에는 국내 최초의 옻칠 미술관이 자리 잡았다.

통영에 옻칠 미술관이 세워진 것은 충무공과도 사연이 깊다.

이순신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로 통영에 부임한 이후 12공방을 설치했고 공방중 상하칠방에서 나전칠기를 생산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후로 통영은 400년 전통을 이어온 나전칠기의 본고장으로 명성을 알리기 시작했다.

옻칠 미술관에 들어서면 퀘퀘 묵은 옷장과 화장대 대신 옻으로 단장한 다양한 미술작품을 만날 수 있다.

국내, 외 작가의 현대작품 150여점이 전시중인데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옻칠 장신구와 한국 옻칠화다.

옻칠 장신구는 옻칠만의 미학적 특성을 살린 옻칠조형작품으로 전통미 가득한 목걸이, 브로치 등으로 재현됐다.

옻칠화는 유화와 달리 캔버스가 아닌 나무 위에 그림을 그리는게 특징으로 아름다운 광채와 빛깔이 독특하다.

미술관 소재 아트숍에서는 통영의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는 그윽한 휴식을 즐길 수 있다.

통영 미륵산 자락으로 향하면 건물 자체가 작품인 독특한 미술관을 만나게 된다.

‘통영의 피카소’로 불리던 추상화가인 전혁림 화백의 미술관이다.

전혁림 화백은 통영에서 태어나 타계했으며 고향인 통영을 화려한 색으로 담아낸 작가다.

미술관에는 전화백의 작품 80여점과 관련자료 50여점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미술관은 멀리서 봐도 다른 건물들과는 차별화된 독특한 인상으로 다가선다.

그가 거주하던 봉평동 일대의 뒷산을 배경으로 세워진 미술관은 건물 외벽이 아름답게 채색된 세라믹 타일들이 빼곡하게 채우고 있다.

전화백과 아들 전영근씨의 작품을 7,500여장의 타일로 재구성해 통영의 바다와 화백의 예술적 이미지를 재현했다.

전시관에서는 한국 색채추상의 대가인 전화백의 강렬한 유작 뿐 아니라 생전에 쓰던 물감 캔버스 등 작품도구 등도 구경할 수 있다.

별관에는 미술관에서 운영하는 카페가 있어 작품과 음악을 감상하며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는 휴식의 시간도 마련된다.

화가 전혁림 외에도 시인 유치환, 극작가 유치진, 화가 이중섭, 소설가 박경리, 음악가 윤이상 등이 모두 그리운 통영의 바다가 길러낸 예술가들이다.

하지만 통영 일대가 유명한 예술가들의 사연만 묻어나는 것은 아니다.

강구안에서 이어지는 골목 사이에 웅크린 벽화마을 동피랑은 미대 학생들과 일반인들의 따뜻한 그림이 있는 마을이다.

중앙시장 뒷길을 따라 동피랑 골목을 굽이굽이 오르다보면 다양한 벽화들이 길손을 반긴다.

마을은 몇 장의 그림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걸어 다니면서 그림을 감상하고 벤치에서 휴식을 즐기는 슬로우시티를 지향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시절 항구와 중앙시장에서 일하던 인부들이 기거했던 과거를 지닌 동피랑은 한 때 철거될 위기에 처했으나

‘푸른 통영 21’이라는 예술단체가 서민들의 삶이 녹아있는 독특한 골목문화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공모전을 열었고 미술학도들이 몰려와 골목마다 그림을 꽃피워냈다.

예쁜 벽화들이 입소문이 나면서 관광객들이 찾아들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통영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했다.

동피랑은 동쪽에 있는 비랑(비탈의 사투리)이라는 뜻으로 마을 언덕 중턱까지 오르면 통영 앞바다가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동피랑에서 강구안으로 내려서면 통영의 유서 깊은 공간들과 조우하게 된다.

중앙시장, 서호시장 등 통영의 대표 시장들 역시 강구안에 기대 있다.

400년 전통을 자랑하는 중앙시장은 뒤에는 동피랑을, 앞에는 강구안 포구를 두고 있다.

중앙시장에는 싱싱한 생선과 마른고기가 주류를 이루고 통제영 시절 이 일대에 12공방이 있었던 까닭에 나전칠기 가게도 만나볼 수 있다.

여객선 터미널 방향의 서호시장은 인근에서 나는 해산물들이 모두 모이는 곳이다.

자연산 활어부터 건어물까지 사계절 해산물이 넘쳐나며 즉석에서 막 회를 맛볼 수도 있다.

새벽 경매 시간때가 피크로 경매구경을 끝낸뒤 졸복국, 해물뚝배기, 굴밥 등으로 시원한 속풀이가 가능하다.

시장들 외에도 강구안은 통영의 명물인 충무김밥집과 선술집이 몰려 있고, 문화마당과 남망산 조각공원 등 문화공간도 함께 어우르고 있다.

강구안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전함이 정박하던 곳으로 초입에는 거북선 한척이 실제 크기로 전시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