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엄마와 딸의 골목 여행 대전 소제동
봄날 엄마와 딸의 골목 여행 대전 소제동
봄이다. 날씨가 한결 따뜻해졌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떠나기 좋은 날이 이어진다. 이번에는 딸과 함께 길을 나서보면 어떨까.
예쁜 봄옷 골라 입고 카페에 가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말이다. 대전 소제동은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오기 좋은 곳이다. 이름하여 엄마와 딸의 뉴트로 여행.
소제동은 대전역에서 5분 거리다. 번잡한 역에서 나와 조금 걷다 보면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슬레이트 지붕을 인 집, 낡은 가게와 이발관, 세탁소 건물이 봄볕 아래 졸듯 서 있다.
최근 이 오래된 골목에 젊은 여행자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SNS에서도 ‘핫 플레이스’로 떠올라 ‘#소제동’으로 검색하면 관련 게시물이 줄을 잇는다.
경부선과 호남선이 갈라지는 대전은 ‘철도 도시’다.
대전역 앞 은행동은 가장 번화한 상권이지만, 소제동은 1905년 대전역이 영업을 시작할 때 지은 철도청 관사가 남아 1920~1980년대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당시 북관사촌과 남관사촌으로 나뉘었지만, 한국전쟁 때 많이 사라지고 지금은 동관사촌이던 소제동에 건물 40여 채가 있다.
영화 〈쎄시봉〉 〈제8일의 밤〉 등을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허름해 보이는 골목으로 한 발자국 들어가면 예상치 못한 반전을 만난다.
서울의 어느 거리를 걷는 듯 개성 있는 카페와 레스토랑 등이 곳곳에 숨어 있다.
울창한 대밭을 정원으로 삼은 찻집, 마당에 눈부시게 흰 돌을 깔아 우유니 소금 사막을 연상케 하는 식당… 이런 장소마다 젊은 여행자들이 사진을 찍는다.
요즘 ‘힙지로’라 불리는 을지로에 온 기분이다.
엄마와 딸이 소제동에 가면 찾아볼 만한 곳이 이탈리안 레스토랑 ‘파운드’다.
관사로 사용하던 건물의 벽과 천장, 기둥 구조 등은 그대로 두고 실내를 멋스럽게 꾸몄다.
메뉴도 신선하고 알차다. 부여방울토마토소스가지롤, 천안배에이드, 서천김페스토파스타, 예산표고트러플크림파스타 등 모두 충청도에서 난 재료를 사용한다.
메뉴마다 산지까지 거리를 표시한 점이 재미있다. 식당 한쪽에는 빗자루, 가위 등 충청도의 공예품을 파는 코너도 마련했다.
주변의 다른 가게도 지방색을 내세운다. 카페 ‘볕’은 충남에서 생산한 밀가루로 팬케이크을 만든다.
‘관사촌커피’는 양탕국이라는 커피를 판다. 1900년대 초 우리나라에 커피가 들어왔을 때 색과 맛이 탕약과 비슷하다고 해서 양탕국으로 불렸다.
이 집 커피는 강하게 볶아 쓴맛이 난다. 비정제 설탕과 연유가 함께 나오는데, 취향에 따라 넣어 먹으면 된다.
소제동의 이런 변화는 공간 기획 스타트업 ‘익선다다’가 이끌었다. 2014년 서울 익선동을 리모델링한 회사다.
익선다다는 2017년부터 소제동 프로젝트를 진행, 빈집을 이용해 멋진 공간을 만들었다.
소문은 빨랐고, 소제동은 순식간에 대전에서 가장 ‘힙한’ 공간이 됐다.
소제동 골목은 돌아보는 데 20분도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에서 걸음은 자꾸 느려진다.
지나간 가게 앞으로 다시 가고, 오래된 담장의 벽화 앞에서 괜히 발걸음이 맴돈다.
어깨에 내려앉는 햇살이 한결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그동안 가슴속에 묻어둔 말이 문득문득 나오는 것도 다정하고 따스한 이 풍경 때문인지 모른다.
그래서 소제동은 엄마와 딸이 손잡고 여행하기 좋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