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성당에서 중앙우체국까지 구석구석 명동 산책

명동성당에서 중앙우체국까지 구석구석 명동 산책

명동성당에서 중앙우체국까지 구석구석 명동 산책

명동성당에서 중앙우체국까지 구석구석 명동 산책

옛것과 현재가 조화로운 광주 여행자의 방

1898년 문을 연 명동성당은 100여 년의 세월 동안 한국 천주교의 상징이자 ‘민주화의 성지’였다.

시국미사가 열리고 공권력에 쫓기는 민주인사들이 최후로 몸을 기대는 장소였다.

명동성당 입구에는 어디에도 호소할 곳 없는 가난하고 억울한 이웃들의 농성 천막이 줄지어 있었다.

‘명동성당을 보존하고 신자와 시민들을 위한 열린 공간을 조성한다’는 명분으로 시작된 명동성당 종합계획 공사는 명동성당 들머리의 모습을 사뭇 바꿔놓았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성당 입구 지하에 들어선 ‘1898 명동성당’이다.

성당이 처음 세워진 해를 기념하는 이름을 가진 이 지하공간은 갤러리와 커피숍, 꽃가게와 근대 유물전시실 등이 입주했다.

1898이라는 숫자를 형상화한 간판이 달린 조그만 입구를 지나면 초기 기독교의 카타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지하공간이 나온다.

다양한 상업시설이 들어선 것도 카타콤과는 다른 점이다.

200대 규모의 지하주차장을 만들어 성당을 찾는 차량들 때문에 발생되는 사고나 성당 균열 등의 문제도 말끔히 해결했단다.

거대한 지하공간 위 소박한 진입로는 명동성당 건축 당시의 모습에 가깝게 복원했다고 한다.

성당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자그마한 녹지가 있는데, 구석구석 벤치를 놓아 누구나 쉬어갈 수 있게 했다.

입구 오른쪽에는 붉은 벽돌 건물 둘이 보인다. 각종 공연과 혼인미사 등이 열리는 파밀리아 채플과 연회장인 프란치스코 홀이다.

파밀리아 채플 1층에는 유럽의 노천 카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비스트로 74’가 손님들을 맞고 있다.

명동성당에서 명동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명동예술극장이 나온다.

명동예술극장이 문을 연 것은 최근이지만, 이곳에 처음 극장이 들어선 것은 일제강점기인 1936년이었다.

‘명치좌’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고 주로 일본 영화를 상영했는데, 해방 이후 ‘국제극장’으로 간판을 바꿨다가,

서울시가 인수하면서 ‘시공간’이란 이름으로 바뀌어 연극 공연장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후 명동국립극장으로 다시 이름을 바꾸면서 대한민국 연극 공연의 중심으로 ‘명동시대’를 이끌었다.

1973년 충무로에 국립극장이 들어서면서 명동국립극장은 국립극장 예술분관이 되었지만, 얼마 안 가 금융회사에 인수되었다.

그러다 문화관광부가 건물을 매입하면서 지난 2009년 연극 전문 공연장인 명동예술극장으로 다시 태어났다.

명동예술극장에서 다시 명동로를 따라 내려가다 작은 골목길에 들어서면 중국대사관과 화교학교인 한성소학교를 중심으로 작은 차이나타운이 펼쳐진다.

흔히 ‘중국대사관 거리’라 불리는 이곳에는 오래된 중국 음식점과 약재상들, 한성화교협회와 삼민주의대동맹 한국지구 등이 자리잡고 있다.

한때는 한국 내 화교들의 중심지였지만, 지금은 중국 관광객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듯, 환전상과 한류 관련 상품 판매점도 눈에 띈다.

청기와를 얹은 거대한 붉은 문이 인상적인 중국대사관 앞은 중국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뤄 지나고 있었다.

중국대사관 거리는 서울중앙우체국으로 이어진다. 우리나라의 근대 우편제도는 1884년 문을 연 우정총국이 출발점이었다.

우정총국 개국식에서 벌어진 갑신정변이 실패하면서 우정총국은 폐쇄되었으나, 1905년 명동에 경성우편국이 들어서면서 우편제도도 자리를 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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