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스타일 갈미삼합 갈미조개와 삼겹살의 만남 중매는 묵은지?

부산스타일 갈미삼합 갈미조개와 삼겹살의 만남 중매는 묵은지?

부산스타일 갈미삼합 갈미조개와 삼겹살의 만남 중매는 묵은지?

까꼬막을 굽이굽이 돌아 걷는 길 부산 동구 초량이바구길

삼면이 바다에 안긴 한반도는 동해안을 따라 흐르는 백두대간을 등뼈 삼아 일어선다.

또 한반도 지도를 가만히 살펴보면 산과 물, 평야와 갯벌까지 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름다운 금수강산에 다양하고 풍부한 먹거리가 더해졌으니 이만하면 살기 좋은 자연환경 아닌가.

특히 널따란 평야와 바다, 갯벌을 갖춘 남도는 음식과 풍류에 있어 단연 선두를 차지한다.

백반만으로도 한상 가득 차려 내오는 넉넉함을 맛볼 수 있는 곳이 또한 남도 아니던가.

그 풍요로움과 넉넉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음식이 바로 ‘삼합’이 아닐까 싶다.

찬바람 부는 겨울이 제철, 부산스타일 삼합의 주인공은?

삼합의 대표주자 홍어삼합을 필두로 장흥에서는 한우와 조개관자를 더한 한우삼합이, 여수에서는 새조개가 메인을 차지한 새조개삼합이 등장했다.

또 완도에서는 전복을 내세운 전복삼합이 선보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해안을 품은 지역이 삼합을 즐길 여지가 더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각 지역의 특산물은 삼합의 재료로 다양하게 변주되었다.

육지대표와 바다대표에 묵은지 등이 더해진 형태로. 자, 이쯤 오늘의 주인공을 소개한다.

부산 낙동강 하구의 명지 출신, 갈미조개다.

갈미조개. 이름부터 갈매기가 그려진다. 그 속살이 갈매기의 부리를 닮았다고 ‘갈미조개’라는 이름이 붙었다.

본명은 ‘개량조개’. 또 낙동강 하구 명지에서 많이 난다고 ‘명지조개’라고도 알려졌다.

그 외에도 황갈색 껍데기 덕분에 ‘명주조개·노랑조개’라고도 부른다.

다슬기를 강원·충북에서는 ‘올갱이’, 경상도에서는 ‘고디’라고 부르는 것처럼 지역마다 부르는 이름이 조금씩 다른 것. 여기서는 ‘갈미조개’로 통일한다.

이곳 주민들에 따르면 낙동강 하구 명지에서 갈미조개가 다량 발견된 것은 1989년 낙동강 하굿둑이 자리하면서 부터다.

민물과 짠물이 만나는 곳에 자리한 유연성 때문일까.

명지 갈미조개는 부드러운 육질에 달큰하고 담백한 맛으로 유명하다.

이는 먼저 일본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초창기 채취한 갈미조개의 대부분이 일본으로 수출된 이유다.

명지에서 갈미조개를 맛보게 된 것은 그보다 역사가 짧다.

10년 전 즈음 지금의 명지 선창회타운의 한 음식점에서 갈미조개를 선보인 것이 그 시작이었다고 전해진다. 귀한 갈미조개, 언제 가장 맛있을까?

굴이나 꽃게처럼 갈미조개도 찬바람 부는 겨울이 제철이다.

그중에서도 오뉴월 산란기를 앞둔 1~2월이 가장 맛이 좋다고 알려진다.

찬바람 불어대는 이 겨울, 물오른 갈미조개를 맛보러 명지 선창회타운으로 가보자.

낙동강 하구는 철새들만의 쉼터가 아니다. 을숙도를 관통하는 낙동강 하굿둑을 따라가면 명지IC에 닿는다.

여기서 신호공단·명지새동네 방면으로 좌회전후 직진하면 명지선창회타운이 근방이다.

짠물과 민물이 넘나드는 이곳 낙동강 하구에 을숙도를 마주하고 명물횟집(051-271-3339)·선창회조개구이(051-271-2205) 등 갈미조개 전문점들이 몰려있다.

갈미조개, 그의 변신은 어디까지?

사이좋게 모인 음식점들은 ‘갈미조개수육·샤브샤브·전골·탕·갈삼구이·갈오구이’라고 적힌 문구로 식객들을 반긴다.

갈미조개를 맛보는 방법이 이리 다양할 줄이야. 이중 갈미조개와 삼겹살이 더해진 갈삼구이는 묵은지와 콩나물 등을 더해 맛보는 음식이다.

어떤가. 짜임새로 보아하니 갈미삼합이라 불러도 무방하지 않은가?

취향에 따라 갈미조개와 오리고기를 더한 갈오구이로 갈미삼합을 맛봐도 좋다.

명지에서 갈미조개와 함께라면 삼합의 변신은 무죄다.

“우리집은예 우리 아저씨가 다대포나 가덕도 근처에서 갈미조개를 이마이 잡아오지예.

수족관에서 하루 정도 해감해가꼬 매매 문때서 내놉니더.

모래밭에 기댕기서 모래가 천지빼까리지예. 손이 억수로 마이 가는 놈 아인교.”

까꼬막을 굽이굽이 돌아 걷는 길 부산 동구 초량이바구길

까꼬막을 굽이굽이 돌아 걷는 길 부산 동구 초량이바구길

까꼬막을 굽이굽이 돌아 걷는 길 부산 동구 초량이바구길

200년 전 다산의 마음이 통하는 路 예서 철학을 묻다

세상의 숱한 길들 너머로 사람 살아가는 마을길이 있다.

부산 동구 초량동의 초량이바구길을 걸으며 타임머신을 탄 듯 과거로 여행을 떠나본다.

‘이바구’란 ‘이야기’의 부산 사투리.

초량이바구길은 일제강점기 부산항 개항부터 해방 후 50~60년대, 가히 한국의 산업혁명기라 할 만한 70~80년대 굴곡진 역사까지 고스란히 품고 있다.

부산 사람들이 그 길에서 겪어낸 세월의 아픔과 기쁨을 길 따라 풍경 따라 조심조심 풀어낸다.

초량이바구길은 부산역에서 길 하나를 건너자마자 시작된다.

부산역과 부산항이 있어 부산의 종가라고 불리는 부산 동구의 차이나타운 옆이다.

번잡한 부산역을 벗어나 이바구길로 들어서면 바로 초량동의 옛이야기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초입에는 1922년 부산 최초의 근대 병원으로 쓰였던 백제병원 건물부터 부산 최초의 창고였던 남선창고터 등이 있다.

남선창고는 당시 부산의 생선 창고로 쓰이며 북쪽에서 잡아온 싱싱한 명태를 보관했던 탓에 명태고방이라고도 불렸다.

지금은 터만 남았지만 사람들의 아련한 추억과 이야기만은 죽지 않고 살아 있다.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동네를 얼마쯤 걸어가자 한강 이남 최초의 교회라는 초량교회가 모습을 드러낸다.

최초라는 수식어는 이 길에서 흔히 쓰이는 단어다.

초량초등학교와 초량교회는 과거는 물론 지금도 여전히 이곳 사람들의 학교이자 교회다.

세월을 잇는 징검다리처럼 여전히 생활의 중심에 들어앉아 있다.

분주한 일상 속에 그 길을 무시로 스치며 간간이나마 옛것에 대한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장소들이다.

사람들은 현재를 살면서도 여전히 옛날을 기억한다. 사람이 주인인 그 길 위에서 과거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다.

문득문득 담벼락에 마련된 담장갤러리와 동구 인물사 담장도 만난다. 그 담장 곁에서 마실 나온 할머니도 만난다.

스물두 살에 시집와 여든여섯 살이 된 지금까지 여전히 이곳에 사신다는 이말남 할머니의 희미한 웃음 속에서 희로애락의 세월을 짐작한다.

할머니 얼굴의 주름 마디마디에 세월의 흔적과 추억이 가득 묻어난다.

길가에 붙은 패널과 마실 나온 동네 할머니 덕분에 살아보지 않은 그 시절 골목을 상상해본다.

저마다의 시간과 공간, 눈물과 기쁨이 스며 있는 미로 같은 우여곡절의 길에서 애잔한 우리네 인생 이야기를 읽는다.

길은 고불고불 골목을 헤매며 아기자기한 길을 내다가 문득 가파른 계단을 내놓는다. 168계단이다.

이 계단 앞에서는 누구라도 다리가 후들거린다.

이 길을 밤낮으로 오갔을 사람들에게는 이 계단 역시 아침저녁으로 맞닥뜨리는 생활의 한 부분이었을 테다.

계단은 바라보기만 해도 숨이 찬다.

누군가는 노동을 위해 아침저녁으로 오르내렸을 계단, 누군가는 학교에 가기 위해 고사리 같은 손 오므리고 다녔을 계단,

누군가는 술에 취해 휘청거리며 올랐을 계단, 그 계단을 오르며 앞서간 무수한 사람들을 생각한다.

현재를 걸으며 과거를 만나고, 과거를 바라보다가도 문득 현재와 맞닥뜨리는 것. 이것이 사람 사는 골목을 걷는 맛이자 묘미다.

파란만장했던 우리 근현대사의 흔적은 현재의 삶 속에서도 얼핏얼핏 모습을 드러낸다.

조바심내지 않고 천천히, 이끄는 힘 없이도 저 스스로 그렇게 옛이야기를 들려주고 또 동시에 현재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한 번에 오르기엔 힘에 부칠 것 같더니 다행히 몇 계단 오르지 않아 아담한 전망대가 걸음을 쉬게 한다.

카페테리아를 갖춘 이곳은 ‘김민부 전망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가곡 <기다리는 마음>의 작사가 김민부 시인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지난 시절 먼 바다를 바라보며 ‘바다로 나간 내 님은 언제 오시나’ 기다리던 사람의 마음을 짐작해볼 수 있는 장소다.

확 트인 시야에 마음까지 환하게 열린다. 이 전망대에서는 동구와 중구, 남구 일대는 물론 부산역과 부산항, 공사 중인 북항대교와 영도까지 시원하게 내다보인다.

부산에 와서 이곳을 지나친다면 영 아쉬울 판이다.

무엇보다 파란 바다와 맞닿은 하늘이 선사하는 청량감이 좋다. 머리카락을 날리는 바닷바람이 시름을 잊게 한다.

혼자만의 사색을 즐기기에도 좋고, 연인들 데이트 장소로도 좋다.

200년 전 다산의 마음이 통하는 路 예서 철학을 묻다

200년 전 다산의 마음이 통하는 路 예서 철학을 묻다

200년 전 다산의 마음이 통하는 路 예서 철학을 묻다

절절 끓는 구들방에 등 지지는 이 맛 영암 월인당

갈수록 정치는 낡고, 경제는 어렵다. 위정이 아닌 위민의 마음을 가진 사람과 차 한 잔 마시고 싶다면

남도답사 1번지 강진으로 가보자. 강진에는 200여 년 전 오직 백성을 위한 충정으로 평생을 살았던 천재학자 다산 정약용의 아우라가 가득하다.

“이런 곳이라면 나도 몇 달 만 유배당했으면 좋겠네.”

동백나무가 늘어서 붉은 꽃을 피우는 오솔길을 지나 다산초당 천일각에 서서 호수 같은 강진만을 마주하자 퍼뜩 떠오르는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과연 하늘같은 임에게서 버림받고 ‘땅 또는 바다의 끝’으로 유배당한 자들의 삶은 어떠했을지 궁금해진다.

지난날의 영화를 잊지 못한 채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술과 가무로 지내다 끝내 쓸쓸한 생을 마감한 이도 있었겠고,

성총회복(聖寵回復)이 있었으나 더 이상 권좌에 욕심을 내지 않고, 자연과 인생을 관조하며 마지막까지 ‘굶어 죽어가는

백성들을 어찌하면 더욱 풍요롭게 해 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고뇌로 평생을 바친 자도 있었을 터.

감히 짐작건대, 망망대해 고독한 귀양지에서 떠나온 임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

그리고 분노는 인간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었던 지극히 진실 된 감정이리라.

그래서일까. 비극의 상황에서도 절망치 않고 수많은 저술로 자신을 멋스럽게 승화시킨 유배자들의 열정은 더욱 빛을 발한다.

다산(茶山), 불후의 저작을 남기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 그도 빛나는 열정을 가진 이 중에 하나였다.

학문을 사랑했던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18년 동안 고락을 함께 하였으나 순조가 즉위하자마자 당쟁에 휘말리면서 난신적자(亂臣賊子)로 몰려

경북 장기를 거쳐 강진으로 유배당하였던 다산.

나고 자란 고향은 아니지만 18년의 귀양살이 중 약 10여년을 여기서 보냈기에, 정신적 고향이라 일컬어지는 강진 곳곳에는 그의 흔적들이 산재해있다.

봄이 되면 성숙한 여인의 붉은 순정처럼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동백이 발 길 멈출 곳 없는 나그네 마음에 불을

지피는 백련사의 부도밭 주변의 정취(다산과의 교류가 있었던 혜장선사가 있었던 절)와 다산이 8년 동안 거주하면서 ‘목민심서’,

‘경세지표’ 등의 불후의 저작들을 만들어내었던 다산초당, 그리고 혜장선사와 다산이 함께 오르며 생각을 정리하고,

삶의 의미를 사색하던 오솔길까지… 잠시 여유를 갖고 찬찬히 다산의 흔적을 더듬어보자.

“차를 마시는 백성은 흥하고, 술을 즐겨 마시는 백성은 멸한다.”

다산(茶山)이라는 호에서 알 수 있듯 다산 정약용은 차와 관계가 깊다.

차와의 인연 또한 백련사의 주지스님이었던 혜장선사와의 만남에서 시작된 것이다.

다산이 혜장선사를 처음 만난 것은 강진으로 유배 온 이듬해. 학문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마땅히 교류할 사람을 찾지 못했던

다산은 백련사에 갔다가 혜장선사와 조우하게 된다. 그 당시 혜장선사는 추사 김정희의 스승인 옹방강이

‘해동의 두보’라고 칭송할 만큼 뛰어난 스님이었고, 불가의 학승이면서도 유교의 경전에 관심이 깊었다.

이런 혜장선사는 다산 정약용에게 용돈도 주고, 귀한 차도 가끔 내려주기도 하였다 한다.

그러다가 다산이 다산초당에 기거, 만덕산 고갯길을 넘는 오솔길을 넘나들면서 본격적으로 교류하게 됐다.

그리고는 차를 마시며 정담을 나누기도 하고 때로는 열띤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함께 차를 마시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다산의 다도애(茶道愛)는 더욱 깊어지기 시작했고, 혜장의 유교지식 또한 넓어지기 시작했다.

절절 끓는 구들방에 등 지지는 이 맛 영암 월인당

절절 끓는 구들방에 등 지지는 이 맛 영암 월인당

절절 끓는 구들방에 등 지지는 이 맛 영암 월인당

괴산 화양동 청풍명월 을 따라 자연을 느낀다

잘 마른 소나무 장작 두어 개를 아궁이에 던져 넣자 금세 불이 옮겨 붙더니 장작 타는 정겨운 냄새가 좁은 뒷마당을 가득 채운다.

황토 굴뚝에선 구수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이불을 깔아둔 아랫목에 손을 넣는 순간 ‘앗 뜨거’ 소리가 절로 튀어나온다.

영암 땅 너른 들녘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언덕, 월출산과 은적산 사이에 자리 잡은

월인당은 한국인의 DNA에 새겨진 ‘구들장의 추억’을 되살려 주는 소박한 한옥민박이다.

내력 있는 종택도, 유서 깊은 고택도 아니건만 주말마다 예약이 밀려드는 까닭은 황토 구들방에 등 지지는 그 맛이 각별해서다.

모정마을 토박이인 김창오 씨가 월인당을 지은 것은 5년 전이다.

구례 사성암을 지은 김경학 대목과 강진 만덕산 기슭의 다산초당을 지었던 이춘흠 도편수가 1년 3개월간 함께 공을 들였다.

규모는 단출하다. 방 세 칸에 두 칸짜리 대청, 누마루와 툇마루가 전부다.

담장은 대나무 울타리로 대신하고, 넓은 안마당엔 잔디를 깔았다.

방 세 칸은 모두 구들을 넣고 황토를 깐 위에 한지장판을 바른 ‘장작 때는’ 방이다. 바닥은 뜨끈하고 위는 서늘하니 자연스럽게 공기가 순환하는 구조다.

한옥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 구들방을 만들었지만, 덕분에 손님맞이 하루 전부터 아궁이에 불을 때야 하는 번거로움과 수고가 따른다.

바깥주인의 ‘장작 때는’ 수고보다 한수 위는 안주인의 ‘풀 먹이기’ 정성이다.

한번 사용한 이불은 세탁 후 일일이 풀을 먹여 내놓는다. 손님 입장에선 절절 끓는 방에서 사각거리는 솜이불을 덮고 자는 호사가 고마울 따름이다.

월인당 세 개의 방은 저마다 특징이 있다. 마을 앞 너른 들과 월출산이 가장 잘 보이는 ‘들녘’ 방은 측면 툇마루를 단독으로 사용할 수 있다.

월인당 현판이 걸린 정중앙 ‘초승달’ 방에서는 마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쪽 끝 ‘산노을’ 방은 누마루와 바로 연결되는 구조라 가장 인기가 많다.

방마다 욕실과 싱크대, 냉장고를 갖춰 먹고 자고 씻는 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집을 지을 때 툇마루와 누마루는 특별히 공을 많이 들였다.

툇마루는 집안으로 들어서는 첫 관문이자 집 안과 밖을 연결해 주는 공간이다.

꼬마 손님들에게는 왕복 달리기를 할 수 있는 놀이터이기도 하다.

삼면이 툭 트여 햇살과 바람과 달빛이 드나드는 누마루는 차 한 잔의 여유 혹은 술 한 잔의 풍류를 즐길 수 있는 정자 역할을 한다.

월출산 위로 보름달이 뜨는 밤 누마루에 나와 앉으면 ‘달빛이 도장처럼 찍히는 집’이라는 이름처럼 안마당이 달빛으로 환하다.

집주인이 꼽는 최고의 달빛 풍경은 월인당이 아니라 마을 끝에 있는 원풍정(願豊亭)에서 바라보는 장면이다.

월출산 위로 둥실 솟아오른 달이 저수지에 교교한 빛을 풀어놓는 장면이 기가 막히게 아름답다는 것이다.

원풍정 기둥에는 이른바 ‘원풍정 12경’을 적은 12개의 편액이 걸려 있다.

지남들녘에 내리는 밤비(指南夜雨), 구림마을의 아침밥 짓는 연기(鳩林朝烟), 도갑사에서 들려오는 석양의 종소리(岬寺暮鍾) 등

‘원풍정에서 내다보이는 12경’은 마을 벽에 시와 그림으로도 풀어 놓았다.

월인당에 묵는다면 꼭 마을 산책을 해보아야 하는 이유다.

10월 초 방문했을 때 모정마을은 민박을 겸한 한옥을 짓는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11월 말이면 15채의 새로운 한옥이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괴산 화양동 청풍명월 을 따라 자연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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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 가기 전 꼭 봐야할 순천여행코스

병자호란 후에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간 봉림대군(후에 효종으로 즉위)의 스승이었던 우암 송시열이 직접 명명한 화양구곡을 소개한다.

청나라를 치겠다는 큰 뜻을 가졌던 우암은 그 실패의 한을 품고 화양구곡에 터를 잡았다.

그의 한이 서린 이 곳과 관련된 병자호란에 대해서는 사회 교과서 5학년 2학기 3단원에서 공부할 수 있다.

물과 산, 바위의 조화가 아름다운 화양계곡 운영담

충청북도가 “청풍명월(淸風明月)의 고장”이라면, 그 한복판에 위치한 괴산(槐山)은 “산고수청(山高水淸)의 고을” 이다.

즉 백두대간의 허리를 떠받치는 준봉들이 경상도와 경계를 이루며 웅장하게 솟아있고, 그 산자락과 골짜기를 굽이쳐

흐르는 계류는 거울처럼 맑은데 특히 괴산군 청천면의 화양동 계곡은 산고수 청한 괴산을 대표할 만한 절경이다.

넓고 깨끗한 너럭바위와 맑은 계류, 우뚝하게 솟은 기암절벽과 울창 한 숲이 한 폭의 진경산수처럼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우암 송시열, 그가 감탄한 화양구곡

일찍이 이중환도 『택리지』에서 “금강산 남쪽에 서는 으뜸가는 산수” 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이곳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조선 중기의 대정치가이자 학자였던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1607∼1689)이 은거한 뒤부터였다.

화양동 계곡에서도 특히 경치가 빼어난 아홉 군데를 통틀어 화양구곡(華陽九曲)이라고 하는데 경천벽, 운영담, 읍궁암, 금사담, 첨성대, 능운대, 와룡암, 학소대, 파곶이 그 곳이다.

그리고 그 이름을 지은 이는 우암의 제자였던 권상하(1641~1721)다.

그 중 2곡인 운영담은 맑은 물에 구름의 그림자가 비친다는 뜻으로 주자(朱子)의 “천광운영(天光雲影)”이라는 시구에서 따왔고

3곡 읍궁암은 효종의 제삿날에 우암이 엎드려 통곡했던 바위라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우암 선생이 자연 속에서 정진했던 암서재

우암이 책을 읽고 정진했던 금사담

물 속에 금빛 모래가 깔려 있는 4곡 금사담은 화양구곡의 여러 절경 중에서도 가장 풍광이 아름답다.

더욱이 물가의 우뚝한 바위 위에는 우암이 책을 읽고 정진하는 독서재(讀書齋)였던 암서재(巖棲齋)가 옛 모습대로 올라앉아 있어

우암의 자취를 더듬는 이들에겐 더없이 반갑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이 아담한 기와집은 효종 6년(1655)에 처음 세워진 이래로 수차례 중수를 거듭했다고 한다.

건물 뒤쪽에는 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앞쪽으로는 시야가 훤히 열려 있어 화양동계곡의 아름다운 풍광을 한눈에 감상할 수가 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누마루에 앉아서 화양동의 수려한 풍광을 바라보노라면 300여년 전 우암의 포부와 풍류가 오롯이 느껴지는 듯하다.

역사 속, 우여곡절을 겪은 화양서원

우암이 죽은 뒤 이곳 화양동에는 그를 배향한 화양서원이 세워졌는데 한동안 조선에서 가장 위세가 당당했다.

당시 노론계의 우두머리였던 우암 송시열의 은거지에 세워진 서원인데다 인근에 명나라 신종(임진왜란 때 조선에 원군을 보내준 임금)과 의종

(명나라의 마지막 임금)의 위패가 봉안된 만동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만동묘라는 묘명은 화양동의 5곡인 첨성대의 암벽에 새겨 진 선조의 친필 “만절필동(萬折必東)- 황하는 아무리 곡절이 많아도 반드시 동쪽으로 흘러간다)” 에서 따왔다.

이 말은 주로 충신의 절개는 결코 꺾을 수 없음을 상징할 때 쓰는 말로, 곧 명나라에 대한 조선의 “신하 된 도리” 는 결코 그만둘 수 없다는 의미이다.

병자호란을 겪은 지가 얼마 안된 당시에는 청나라에 대한 적개심과 복수심이 크게 고조되어 있던 터라,

만동묘를 등에 업은 화양서원의 처사는 무조건 옳다며 모두들 머리를 조아리게 되었다.

순천만 가기 전 꼭 봐야할 순천여행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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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에서 바다까지 삼색 체험 로드

순천하면 ‘순천만’만 떠올리는 그대를 위해 순천의 다양하고도 아름다운 여행코스를 소개합니다.

바다부터 야경, 놓칠 수 없는 꼬막 정식까지! 알찬 순천 여행코스 지금 소개합니다. 빨로빨로미~

순천 추천 여행코스 : 화포해변 → 순천만습지생태공원 → 낙안읍성 → 미향식당 → 죽도봉전망대

순천에서 바다를 볼 수 없다는 편견은 버려주세요. 순천에서도 아름다운 바다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려 아름다운 일출도 볼 수 있지요.

새벽 동이 트기 전부터 보여주는 보랏빛 아름다운 여명은 상쾌한 순천 여행의 아침을 책임집니다.

멀리 보이는 죽방들과 바다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바로 반대편은 와온해변으로 저녁에 일몰을 볼 수 있어 순천에선 바다와 함께 일출과 일몰 두 가지 모두 볼 수 있는 여행지가 되기도 합니다.

여명이 걷히고 점점 붉어지는 하늘은 이른 아침부터 설레는 감정을 느끼게끔 만들어 주는데요.

빼꼼 고개를 드는 해돋이는 순천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출 장소로도 손꼽히는 곳 이기도 합니다.

마을 산책로에는 따로 데크전망대가 조성되어 있는데요. 전망대에선 더 아름답고 탁 트인 일출을 볼 수 있습니다.

조금 더 멋진 일출을 보고싶다면 전망대에서 일출을 감상해보세요.

순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여행 장소는 바로 순천만습지 생태공원이 아닐까 합니다.

순천에서 자연이 가장 잘 보존된 장소라고 생각해도 무방한 곳인데요. 여름이면 초록빛이 가을과 겨울에는 갈색빛의 갈대가 아름다운 곳이기도 합니다.

영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갈대밭은 어디를 걷든 행복한 기분을 느끼게끔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갈대밭 속에서 사진을 찍는 시간 만큼은 나도 영화 속 배우가 되보곤 합니다.

순천만 습지의 전경을 보고 싶다면 바로 용두산전망대를 오르면 되는데요.

용두산전망대에 오르게 되면 순천만 습지의 탁 트인 전경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용두산전망대에서 보는 순천만습지의 일몰은 순천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몰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시간의 여유가 된다면 꼭 순천만습지의 일몰까지 감상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옛 정취를 느껴볼 수 있는 곳 ‘낙안읍성’, 낙안읍성은 조선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세워진 작은 성입니다.

옛 시간으로 돌아온 것 같은 초가집들과 가옥들은 예전에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곤 하지요.

낙안읍성은 마을 뿐만 아니라 성곽을 거닐어 볼 수 있는데요. 조금은 높은 곳에서 낙안읍성 마을을 내려다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낙안읍성 성곽 맨 끝자락에 위치하게 되면 한 눈에 낙안읍성 마을을 내려다 볼 수 있으니 놓치지 말고 낙안읍성 성곽 전망대까지 둘러보고 가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낙안읍성을 다 둘러보았다면 슬슬 배가 고플 시간이 다가 올텐데요.

순천은 벌교와 가까운 위치에 있기 때문에 꼬막정식을 맛 볼 수 있답니다.

다양한 꼬막 요리와 꼬막초무침과 비벼먹는 비빔밥은 굶주린 배를 든든하게 채워줄 것 입니다.

낙안읍성을 둘러보고 배가 고프다면 맛있는 꼬막 음식을 즐겨보세요.

도심에서 바다까지 삼색 체험 로드

도심에서 바다까지 삼색 체험 로드

도심에서 바다까지 삼색 체험 로드

관광두레 PD가 안내하는 색다른 여행 순천 속으로

예술이 숨 쉬는 도시, 생생한 자연이 반기는 곳, 역사가 깃든 바다를 하나로 엮었다.

예술과 자연과 역사가 있는 삼색 체험 로드다.

문화전당에서 자연사박물관까지 놀며 배우는 동안 몸도 마음도 쑥쑥 자란다. 눈부신 자연과 맛있는 전라도 음식은 여행의 덤이다.

죽녹원은 사철 푸른 대나무 숲으로 유명하다.

길고 곧게 뻗은 대나무가 빽빽한 숲이 310,000㎡나 된다. 눈부시게 푸른 숲에는 2.4km 산책로가 있다.

운수대통길, 죽마고우길, 철학자의길 등 8가지 테마로 꾸며져 걷는 재미를 더한다.

사각거리는 댓잎 소리와 맑은 공기, 댓잎 사이로 쏟아지는 푸른 햇살은 지친 일상에 활력을 주기 충분하다.

죽녹원 후문 쪽에 있는 시가문화촌도 놓치지 말자.

담양에 흩어져 있는 정자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죽녹원에서 2km 거리에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나무들이 양쪽으로 늘어선 메타세쿼이아길이 있다.

이국적인 분위기 덕분에 사람들의 발길이 줄을 잇는다. 1970년대 초반 심기 시작했으니 어느새 40년이 훌쩍 넘었다.

짙은 녹음이 드리운 여름 풍경이야 말할 것도 없고, 눈 덮인 겨울 풍경까지 마음을 흔든다.

걸음을 옮기기만 해도 영화 속 주인공이 되기에 충분하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최우수상에 뽑혔고, 길 끝에는 자동차 출입을 막아 호젓하게 걷기 좋다.

메타세쿼이아길에서 차로 10분쯤 달리면 금성산성 입구에 담양온천이 있다.

금성산을 병풍처럼 두른 담양온천은 맑은 공기까지 더해 건강 온천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바가지탕, 녹차탕, 침탕, 마사지탕 등 다양한 온천탕을 갖췄다. 대나무숯사우나는 담양에서 누리는 특별한 사우나다.

수려한 자연과 맑은 공기 덕분에 노천탕이 인기다. 노천탕의 재미는 역시 겨울.

뜨거운 탕에 앉아 짜릿하도록 차가운 공기를 마시면 기분이 상쾌하다.

옛 전라남도청사 뒤편에 자리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아시아 문화를 집대성한 공간이다.

총면적 15만 6817㎡로 우리나라 문화 공간 중 가장 넓다.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전면 창은 빛고을 광주답다.

어린이문화원은 아이들의 공간이다. 투명한 그림책 만들기, 메모꽂이 만들기 등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도서관, 박물관, 갤러리, 극장을 하나로 묶은 라이브러리파크는 보고 즐길 거리가 넘친다.

문화창조원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공간이다. 6개 복합관에서 아시아를 주제로 다양한 영상 상영과 강의 등이 열린다.

공연이 펼쳐지는 예술극장,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대나무정원, 옥상산책을 즐길 수 있는 하늘마당 등이 즐거움을 더한다.

광주 표충사 근처에 자리한 광주힐링가든센터 휴가 도심 휴식 공간으로 인기다.

대형 유리온실에서 다양한 꽃과 식물을 만나볼 수 있다.

다육식물 체험 공간은 엄마들에게, 닥터피시 체험장은 아이들에게 사랑받는다.

그 외에도 나만의 정원 만들기, 허브 아로마 향기체험, 목공 체험 등 몸과 마음을 싱그럽게 해주는 힐링체험프로그램이 많다.

광주힐링가든센터 휴에서 4km 떨어진 칠석동에 고싸움놀이테마공원이 들어섰다.

칠석동은 고싸움놀이가 전해 내려오는 마을이며, 광주칠석고싸움놀이는 국가무형문화재 33호로 지정된 우리 민속놀이다.

단순한 줄다리기보다 전술과 전략이 필요해 더 흥미진진하다.

고싸움놀이테마공원은 고싸움놀이의 고장인 칠석마을부터 고가 무엇인지, 어떤 방식으로 싸움을 하는지 궁금증을 한꺼번에 날려준다.

고싸움놀이 디오라마는 고싸움을 실제 크기로 생생하게 재현했다.

목포는 도심 곳곳에 근대의 흔적이 있는 도시다. 목포를 제대로 보려면 목포근대역사관에 먼저 들르는 것이 순서.

목포근대역사관 건물은 옛날 일본영사관이었다. 바깥의 기둥이며 붉은 벽돌, 실내 장식까지 1900년 건축 당시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았다.

안으로 들어가면 목포의 근대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해놓았다.

1897년 목포항이 개항되고 일본과 미국, 프랑스, 독일, 영국, 러시아 사이에 ‘목포각국공동조계장정’이 체결되었으며, 그에 따라 목포에 일본영사관이 설치된 것.

그 아픔의 현장과 목포의 항일운동을 소상히 기록한 곳이다.

역사관 뒤 일본군이 만든 방공호에도 들어가 볼 수 있다. 200m 거리에 자리한 2관까지 둘러보면 좋다.

관광두레 PD가 안내하는 색다른 여행 순천 속으로

관광두레 PD가 안내하는 색다른 여행 순천 속으로

관광두레 PD가 안내하는 색다른 여행 순천 속으로

전라선 차창 밖에는 섬진강의 인심과 별미가 가득

순천에 순천만만 있는 건 아니다.

순천만정원에는 프랑스식 쉼터가 있고, 순천 시내에는 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아늑한 전망대도 있다.

교복 입던 학창 시절로 돌아가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색다른 드라마촬영장이 있고, 그림책을 실컷 볼 수 있는 그림책도서관도 있다.

쉬엄쉬엄 마을 여행을 할 수 있는 남제골에서는 꽃차 한잔과 착한 도시락인 에코도시락을 맛볼 수 있다.

관광두레, 주민이 주도하는 관광으로

관광두레는 ‘관광’과 ‘두레’를 조합해 만든 단어다. 관광은 관광사업을, 두레는 주민공동체를 상징한다.

지역의 관광상품과 자연경관, 전통문화, 향토음식, 체험거리와 레저, 축제 등 관광자원을 활용해 주민들이 직접 관광사업을 경영하는 것이다.

이때 지역 전문가인 관광두레 PD가 주민과 함께 관광사업을 꾸려간다.

주민 조직을 발굴하고 서로 연계해주면서 사업 모델을 제안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관광두레 PD는 지역을 기반으로 한 관계와 정보가 풍부하기 때문에 같은 지역에서도 색다른 여행을 제안할 수 있다.

순천 관광두레 모세환 PD가 안내하는 조금 색다른 순천 여행, 익숙한 곳마저 낯선 곳처럼 느끼게 해주는 그의 안내를 따라가본다.

순천 하면 바로 연상되는 순천만정원은 현재진행형이다.

정원축제가 끝난 이후로도 계속 다듬어지고 있어 점점 더 시민의 정원으로 거듭나고 있다.

그런 정원 한편에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이색적인 공간이 있다.

순천문학관 바로 옆 ‘낭트쉼터’라는 프랑스식 쉼터가 한적하다.

정원 위를 달리는 모노레일인 스카이큐브(SkyCube)를 타고 5분쯤 달리면 아는 사람만 안다는 낭트쉼터가 나온다.

낭트쉼터는 프랑스 낭트 시와 자매결연을 맺으며 생긴 쉼터로 프랑스풍으로 지어졌다.

주위를 프랑스 빨래배와 장미정원, 포도원 등으로 꾸며놓아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난다.

쉬어가는 여행자를 위해 와인과 과일을 함께 끓여 만든 프랑스 음료인 뱅쇼를 여름엔 시원하게 해서 판매한다.

뱅쇼를 마시며 쉬다 보면 이곳이 순천인지 어딘지 헷갈릴 정도다.

순천만정원에 낭트쉼터가 있다면 시내에는 죽도봉전망대가 있다.

관광객은 영 모른다는, 현지인만 안다는 순천의 전망대, 바로 죽도봉전망대다.

차를 타고 죽도봉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이 숲에 둘러싸여 운치 있다.

서울 북악스카이웨이의 ‘스몰 버전’이라고 할 만하다.

정자 옆 한쪽에 차를 세워두고 신우대와 동백이 우거진 울창한 숲속을 3~4분 걸어가면 이내 확 트인 전망을 자랑하는 죽도봉 정자가 나온다.

정자 1층은 카페, 3층이 전망대다.

따로 전망대라고 이름 붙여놓지 않았지만 순천 최고의 전망을 선사하니 순천 시민들은 이곳을 죽도봉전망대라고 부른다.

이곳에 올라 순천 시가지를 내려다보며 순천을 품어보자.

시원한 전망은 어디서나 질리는 법이 없다.

순천에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그림책도서관도 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뒹굴뒹굴 편안한 자세로 그림책을 볼 수 있고, 그때그때 달라지는 그림 전시도 감상할 수 있는 이색적인 도서관이다.

여행자에게는 쉬면서 문화충전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순천시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으로, 그림책은 어린이들의 전유물이라는 생각만 버리면 누구나 누릴 수 있다.

10월 25일까지 ‘어디어디 숨었니?’라는 주제로 김재홍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며, 하루 4~5회 작품 안내 프로그램을 들을 수 있다.

또 하루 2~3회 그림책 인형극도 진행되어 흥미롭다.

그 외 색칠하기, 만들기, 숨은그림찾기 등 체험 프로그램도 갖추고 있어 놀거리, 볼거리가 다양하다.

전라선 차창 밖에는 섬진강의 인심과 별미가 가득

전라선 차창 밖에는 섬진강의 인심과 별미가 가득

전라선 차창 밖에는 섬진강의 인심과 별미가 가득

전남 여수 금오도 비렁길 섬과 바다를 이어주는 황홀한 비경을 만나다

전라선은 전북 익산시와 전남 여수시를 이어주는 노선이다.

전북 지방의 산야를 달린 전라선은 전남 땅으로 넘어가면서 압록역과 구례구역으로 들어가기 전 곡성역을 만난다.

10여 년 전만 해도 3, 8일마다 열리는 곡성 5일 장날이면 기차역은 군산쪽 서해안과 여수쪽 남해안의 사람과 물산이 한데 모여 제법 흥청거렸다.

남도와 북도의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도 곡성역에서는 한 가지 화음으로 섞였다.

장이 파할 즈음 국밥 한 그릇과 한 잔 술에 거나해진 아버지들과 나물 팔아 얼마간의 지전을 손에 쥔 어머니들은 다시 곡성역으로 모여들어 전라선에 지친 몸을 실었다.

1999년 새롭게 문을 연 곡성역 출입문 앞에는 ‘곡성역명 유래비’가 세워졌다.

백제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대에 따라 곡성군 지명 변천 유래를 알 수 있게 해준다.

곡성역 플랫폼으로 들어가는 문 양쪽에는 매표소와 맞이방이 들어서있다.

매표소 앞에 세워진 열차시간표를 보면 곡성역으로 들어오는 첫차는 오전 6시 53분 익산행 무궁화호이고 막차는 새벽 2시 50분 여수행 무궁화호이다.

KTX도 상하행이 하루 2회씩 정차한다. 상행선 출발 시각은 오전 10시 42분, 오후 4시 17분, 하행선 출발 시각은 오전 10시 50분, 오후 10시 27분 (2012년 7월 기준)이다.

안전에만 주의한다면 시원하게 개방된 플랫폼으로 들어가서 전라선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해도 좋다.

한편 운행시간 단축, KTX운행 등을 위해 선로를 곧게 펴는 작업이 이뤄지면서 구 역사는 1999년 자신의 임무를 신 역사에 넘겨줬다.

1933년 지어진 구 곡성역은 이제 섬진강기차마을로 화려하게 변신, 증기기관차에 대한 향수를 가진 관광객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구 곡성역사(등록문화재 제122호)에 가면 작은 안내판 하나가 발길을 멈추게 만든다.

‘이 건물은 섬진강의 모래를 운반하는 기능을 했던 간이역’이었다는 것이다.

금빛으로 반짝거리던 섬진강 모래는 옛날에도 귀한 대접을 받으며 전국으로 실려나갔던 모양이다.

이 역사는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지방 역사 건물의 전형을 보여주기에 드라마 ‘토지’의 배경으로 등장했다.

진주역에서 평사리 청년들이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는 장면, 하얼빈역에서 진주역으로 돌아가는 장면 등이 촬영됐다.

또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도 구 곡성역이 등장했다.

진태(장동건 분)가족의 피난길, 진태와 진석(원빈 분)이 국군으로 징집되는 장면, 피난열차 등등 여러 장면을 이곳에서 찍었다.

구 곡성역 옆에 조성됐던 1960∼70년대 풍의 영화세트장은 철거되고 그 자리에는 화석박물관이 들어선다고 한다.

섬진강기차마을의 핵심은 증기기관차 탑승으로 계절, 요일에 따라 하루 3∼5회 가정역까지 10km를 왕복으로 다닌다.

예전의 전라선 철길이 증기기관차의 선로로 활용된다.

하얀 수증기를 내뿜는 기관차 뒤로는 3량의 객차가 매달렸다.

가끔 울리는 기적은 향수를 자극한다. 증기기관차에 몸을 실은 어른들은 가난했지만 꿈은 부자였던 그때 그 시절을 회상하고

어린이들은 아직도 이렇게 느린(시속 30∼40km) 교통수단이 버젓이 굴러다닌다는 사실에 대해 신기해하고 재밌어 한다.

레일바이크는 두 군데에서 탑승할 수 있다. 기차마을 안의 철로만 이용하는 레일바이크는 1.6km를 순환형으로 돈다.

1회 왕복에 20분 정도가 걸린다.

반면 침곡역부터 가정역까지 갈 수 있는 섬진강 레일바이크는 5.1km 거리를 달리며 섬진강을 왼쪽에 끼고 달린다.

30∼40분 정도가 걸린다.

증기기관차가 운행되지 않는 시간에 레일바이크가 다니므로 안전 문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전남 여수 금오도 비렁길 섬과 바다를 이어주는 황홀한 비경을 만나다

전남 여수 금오도 비렁길 섬과 바다를 이어주는 황홀한 비경을 만나다

전남 여수 금오도 비렁길 섬과 바다를 이어주는 황홀한 비경을 만나다

오릉 괘릉 김유신 장군묘에 담긴 설화 이야기

여수의 섬 아닌 섬 돌산도의 끝자락 즈음에 이르러 신기항을 만난다.

신기항에서 화태도, 대두라도 등 섬들을 헤치고 20분 남짓 가면 금오도에 닿는다.

금오도에는 비렁길로 명명된 아름다운 해안길이 있다. ‘비렁’은 절벽의 순우리말인 ‘벼랑’의 여수 사투리다.

마을을 오가거나 땔감을 줍고 낚시를 하러 다니던 이 옛길에서 금오도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엿볼 수 있다.

비렁길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한 1코스, 함구미-두포

비렁길은 함구미에서 시작해 두포, 직포에 이르는 약 8.5km의 길로 지난 2010년에 열렸다.

그 중에서도 1코스는 미역널방, 수달피비렁, 신선대 등 비렁길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길이다.

소요시간이 3시간 30분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휴식시간이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을 적절히 안배해야 한다.

비렁길은 어느 코스든지 오르막길로 시작해 숨이 차오르기 시작할 때쯤이면 완만한 길이 이어지고, 마을이 보이면 내리막길이 펼쳐진다.

험한 산세를 따라가야 하는 산행에 비하면 아주 착한 길이다.

비렁길 1코스는 함구미에서 두포까지 5km 정도 이어진다.

함구미선착장과 이웃한 함구미노인회관을 지나 우측으로 비렁길 시작을 알리는 표지판이 서 있다.

1코스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비경은 미역널방이다.

이름 그대로 마을 사람들이 미역을 널어 말리던 곳이다.

채취한 미역을 지게에 지고 이곳을 오르내렸으니 그 수고로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지금은 미역을 져 나르는 모습은 사라졌지만, 대신 어르신들이 방풍나물을 지고 내려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방풍나물은 금오도의 특산물로 중풍, 산후풍, 당뇨 등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졌다.

방풍나물의 효능과 가치를 발견한 어떤 사람이 5~6년 전 해변에 자생하는 방풍나물의 씨앗을 가져와 심기 시작했다.

지금은 금오도 대부분 지역에서 수확하며, 농가 수입이 제법 짭짤하단다.

미역널방에서 수달피비렁으로 이어지는 길은 금오도 비렁길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다.

특히 미역널방 아래로 90m나 되는 수직 절벽 위에 설치된 데크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신선이 된 듯한 느낌이 절로 든다.

수달피비렁을 지나면 섬사람들이 개간한 넓은 밭이 펼쳐진다.

밭 너머로 신선대와 굴등마을이 자리 잡고 있는 거대한 절벽과 매봉산, 연도의 문필봉이 겹겹이 이어진다.

대부산과 대부산 전망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대부산 삼거리에서 신선대까지는 오붓한 숲길이 이어진다.

커다란 비자나무가 어우러진 숲길도 만나고, 서어나무 군락을 지나기도 한다.

울퉁불퉁 제 마음대로 굽고 휘어진 길들이 정겹기 그지없다. 신선대는 신선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널찍한 암반이다.

바다 건너 외나로도가 길게 이어져 있다.

문득 나로도에서 우주선이 발사된다면 비렁길만큼 좋은 전망 포인트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신선대에서 2km 정도만 가면 두포에 닿는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을 따라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다 보면 심심할 겨를이 없다.

푸른 바다 빛깔이 안쪽으로 깊이 파고드는 느낌이 들 때쯤 두포로 가는 내리막길이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