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개국의 땅 전주 남원 진안 역사 여행

조선개국의 땅 전주 남원 진안 역사 여행

조선개국의 땅 전주 남원 진안 역사 여행

간판 하나로 유명해진 조용한 시골 진안 원촌마을

이 땅의 이름이 고려에서 조선으로 교체되어 가던 14세기 말,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격동의 시대.

바람 앞의 등불 같은 ‘고려’ 끝자락과 두려울 것 없이 성큼성큼 다가오던 ‘조선’의 시작점을 살아가던 이들의 삶은 어땠을까.

KBS1에서 인기리에 방영중인 <정도전>을 따라 역사 여행을 떠나봤다. 전주와 남원, 진안에서 만난 살아있는 조선의 역사 따라 출발!

고려말에서 조선초, 이 시대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몇 있다.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 그리고 태종 이방원과 정몽주다.

고려 충신 정몽주에게 새나라 ‘조선’을 함께 건국하자 회유하던 조선의 세 번째 왕 태조 이방원의 시

‘하여가’와 고려 충신으로 생을 마친 정몽주의 답가 ‘단심가’ 한 소절 읊어보며 조선시대 역사 여행을 시작해보자.

결국 정몽주는 개경의 선지교(선죽교)에서 이방원에게 제거된다.

그의 죽음은 새나라 건국에 날개가 된다.

4개월 뒤인 1392년 8월 이성계는 고려 공양왕에게 왕위를 받아 조선을 건국한다. 500년 고려의 끝 그리고 500년 조선의 시작이었다.

역사의 승자는 이성계였다.

1388년, 위화도 회군으로 권력을 잡은 이성계는 최영 세력을 숙청하고 조선의 태조가 된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조선의 ‘소프트웨어’를 완성한 정도전이 있었다. <조선경국전>의 저술자이자 ‘조선’이라는 나라의 설계자 정도전.

1398년, 정몽주에 이어 이방원에게 제거되기 전까지 그는 조선 최고의 권력자이자 설계자로 활약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고려에서는 변방인으로 새나라 조선에서는 개국공신으로 꽃을 피우나 싶더니 태종 이방원에게 제거된 후 조선 말기에 가서야 복원된 정도전.

하지만 그가 주장하고 기획한 한양 천도, 경복궁, 한양 도성 등은 조선시대를 관통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우리가 지금껏 알고 있는 성문의 이름도 그의 작품이다.

미비한 신분 탓에 외면당하던 고려를 벗어나 새로운 나라에서 잠시나마 마음껏 춤출 수 있었던 정도전이 꿈꾸던 ‘백성들이 살만한’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태조 이성계의 어진 품은 경기전

전주를 비롯해 남원과 진안 등 전라북도 지역은 조선의 건국과 뗄 수 없는 공간이다.

특히 ‘가장 한국적인 고장’으로 꼽히는 전주에는 유일하게 현존하는 태조 어진(임금님 초상화)을 비롯해 전주이씨 시조 묘역인 조경묘,

이성계가 황산대첩에서 승리한 후 쉬어 갔다던 오목대와 이목대 등 얘깃거리가 넘쳐난다.

상당수가 전주한옥마을 지척에 자리하니 한옥마을부터 살펴보자.

태조 어진을 모신 경기전 정전(보물 제1578호)에 들어선다.

왕조가 일어난 경사스러운 터를 뜻하는 경기전은 조선 건국을 기념해 건립됐다.

기둥 아래 하얗게 덧칠한 구름을 타고 왕을 배알하러 다가간다.

안으로는 권문세족과 신진사대부들의 대립, 밖으로는 왜구와 홍건적이 들끓던 고려말 혼란기,

최영과 함께 고려 최고 무장으로 꼽히던 이성계는 새나라를 개국한다. 경기전에 모신 태조 어진(국보 제317호)이 푸른 곤룡포를 입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태조 어진 진품은 어진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다. 일년에 한번, 한달 정도 대중에게 공개된다. 올해는 아직 일정이 나오지 않았다.

간판 하나로 유명해진 조용한 시골 진안 원촌마을

간판 하나로 유명해진 조용한 시골 진안 원촌마을

간판 하나로 유명해진 조용한 시골 진안 원촌마을

로컬푸드로 만들어 더 맛나다 제주 별난 빙수 열전

모든 것이 크고 화려해지는 세상, 쉴 새 없이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

그 속에서 살다 보니 문득 아날로그 세상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디지털의 편리함은 없지만 삶의 속도를 한 박자 늦출 수 있는 따뜻한 감성이 살아 있는 곳.

천편일률적이지 않고 사람들의 삶과 역사가 묻어 있는 풍경.

거칠지만 자연스럽고, 투박하지만 세련된 공간에서 따뜻한 감성을 되살릴 수 있는 여행지가 진안 원촌마을이다.

특별하게 볼 것 없는 평범한 시골 마을이지만, 기계로 찍어낸 획일적인 간판을 예쁜 손글씨 간판으로 바꿔 달면서 꽤나 근사한 마을로 탈바꿈했다.

길에서 만나는 아날로그 풍경과 그 속에 보물처럼 숨어 있는 친근한 간판의 글씨체가 잊고 지낸 고향의 기억을 되살아나게 한다.

그래서 지금 나는 원촌마을을 걷고 있다.

주민들의 삶과 예쁜 손글씨 간판의 조화

‘간판이 유명해봐야 그게 그거지.’ 사실 원촌마을에 가기 전까지는 크게 기대하는 바가 없었다.

그저 간판을 바꿔 달아 유명해진 마을로 생각했다.

발을 들여놓고서야 깨달았다. 크고 화려한 것만이 멋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평범함 속에 비범함이 숨어 있음을.

옛날식 벽돌 건물에 슬레이트 지붕이 줄지어 있는 마을 앞 삼거리 풍경.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시골 모습 속으로 한 걸음 더 내딛으니 지붕에 걸린 예쁜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신발가게에는 신발이 그려져 있고, 흰구름 할인마트에는 하얀 구름이 두둥실 떠 있다.

맞은편 백운약방에도 흰 뭉게구름이 걸려 있다. 구름 속에는 정갈한 글씨로 ‘백운약방’, ‘정류소’, ‘고농농약사’라 쓰여 있다.

백운약방은 무주, 진안, 장수를 오가는 무진장여객 버스의 정류소이기도 하다.

첫인상이 나쁘지 않다. 간판에 손글씨로 가게 이름을 쓰고 그림을 그리거나 조형물을 부착한 풍경이 비슷하면서도 사뭇 다른 느낌이다.

도시의 획일적인 간판과는 전혀 다르다. 세련되지만 그렇다고 마을 풍경을 해치지는 않는다.

오히려 마을 사람들의 삶과 가까이 있는 것 같다.

옷이 날개라고 하더니, 간판 하나로 원촌마을은 소박함과 세련된 멋이 조화를 이루는 멋진 여행지가 되었다.

원촌마을이 간판마을로 변신한 것은 2007년 봄이다.

전주대학교 도시환경미술학과 이영욱 교수가 간판 재정비 사업을 제안하면서 이뤄졌다.

처음에는 주민들의 불만도 많았다. 예전 간판으로도 불편한 게 없었고, 손으로 쓴 간판 글씨가 아이들이 쓴 것 같아 불평도 했다.

대학생들이 정성스레 작업한 간판이 하나 둘 걸리면서 변화가 찾아왔다.

새로 단 간판이 30여 개. 요란스럽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지만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은근한 매력에 이끌려 지나던

차들이 멈춰 서서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점차 입소문이 나면서 멀리서 일부러 사진을 찍으러 오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조용하던 마을에 외지인들이 방문하면서 몇몇 가게는 매출도 늘었다.

“우리 마을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건 없어. 그저 간판 하나 바꿨을 뿐인데…”라고 말하는 어르신은 간판을 보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마냥 신기하다.

여행자들이 와서 보는 건 간판만이 아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되돌아갈 수는 없지만, 원촌마을 여행을 통해서 옛 풍경을 만나고,

간판마다 녹아든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잊고 지내온 아련한 기억을 떠올린다.

로컬푸드로 만들어 더 맛나다 제주 별난 빙수 열전

로컬푸드로 만들어 더 맛나다 제주 별난 빙수 열전

로컬푸드로 만들어 더 맛나다 제주 별난 빙수 열전

개구쟁이 두 소년의 올 댓 초콜릿 제주 초콜릿랜드

무더위를 쫓는 데는 역시 빙수가 제격이다. 빙수 한 스푼에 불볕더위에 지친 심신이 파르르 생기를 회복한다.

제주도는 한겨울에도 빙수를 찾을 만큼 빙수 사랑이 각별한 곳이다.

1년 365일 빙수를 찾는 이곳. 섬에서 나고 자란 재료들로 만든 로컬푸드 빙수가 시원함은 물론 건강까지 알뜰살뜰 챙겨준다.

구좌 향당근의 시원한 변신, 당근빙수

제주 동부 지역의 작은 시골 마을 종달리.

종달리가 속한 구좌읍은 향당근이 주요 특산품이다.

마을 안쪽에 자리한 ‘카페동네’는 지역 특산품인 당근으로 만든 독특한 빙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당근으로 빙수를 만들다니. 빙수 마니아들도 이런 빙수는 처음 본다는 반응이다. 당근빙수, 몹시 궁금해진다.

카페동네는 제주 올레길을 걷다 만난 커플이 결혼한 후 아예 제주에 새 삶터를 꾸린 남다른 인연으로 시작된 작고 아담한 카페이다.

카페 어느 곳이든 부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이 집만의 특별한 메뉴인 당근빙수도 부부가 오랜 시간 함께 공들여 만든 결과물이다.

여행 중에 구좌 향당근을 처음 먹어보고 아주 맛있어서 당근을 재료로 특별한 메뉴를 만들 생각을 했단다.

이때 떠오른 아이디어를 차근차근 개발시켜 만든 것이 지금의 당근빙수다. 어디에도 없는 이들 부부만의 빙수가 탄생한 셈이다.

당근빙수는 보기에도 시원해 보인다. 투명한 유리 볼에 담긴 새하얀색과 주홍색의 조합이 잘 어울린다.

맨 아래쪽에 부부의 비법이 담긴 우유얼음을 깔고, 그 위에 당근즙을 얼려 만든 얼음가루를 수북하게 얹는다.

두툼한 인절미와 호두 알갱이를 토핑으로 올렸고, 꼭대기에 작은 허브 잎을 앙증맞게 장식했다.

주홍색과 흰색 얼음가루를 적당히 섞어 한입에 쏘옥 넣어본다.

사르르 녹는 얼음가루 사이로 향기로운 당근 내음이 입안에 가득 퍼진다.

오호, 이것 참 별미일세. 어디 한입 더 먹어볼까. 곱게 갈린 우유얼음과 식감이 느껴지는 당근얼음이 조화롭게 어울린다.

한참 먹다가 문득 깨닫는다. 어? 안에 팥이 없네. 그렇다. 이 집 당근빙수에는 팥이 없다.

그래서인지 더 담백한 맛이다. 게다가 몸에도 좋은 당근이니 빙수 한 그릇에 왠지 더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카페동네에서 내다보이는 풍경은 빙수 맛을 더해준다.

창밖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제주의 전통 농가들과 그 뒤로 멋진 오름이 한눈에 잡힌다.

한라산을 먹을까, 진달래밭을 먹을까?

제주시 용담해안도로변에는 한라산을 테마로 한 재미난 빙수가 있다. 카페 ‘닐모리동동’의 한라산빙수가 그 주인공이다.

새하얀 우유얼음을 산처럼 쌓아 올린 한라산빙수는 겨울철 눈 쌓인 한라산 모습을 연상시킨다.

갖가지 토핑을 올린 여느 빙수들과 비교하면 한라산빙수는 무척 단순해 보인다.

보기엔 그저 얼음가루만 가득 쌓아놓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입 맛보면 잠시도 스푼을 놓기 힘들다.

게다가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얼음이 이가 시릴 정도로 시원하다.

한라산빙수는 우유얼음 위에 기호에 따라 녹차나 커피시럽을 뿌린 후 안에 든 팥과 얼음을 살살 비벼 먹는다.

여기에 함께 나오는 타피오카를 한두 개씩 곁들여 먹으면 금상첨화.

부드러운 우유얼음과 달콤한 팥이 어우러져 자꾸만 찾게 된다.

개구쟁이 두 소년의 올 댓 초콜릿 제주 초콜릿랜드

개구쟁이 두 소년의 올 댓 초콜릿 제주 초콜릿랜드

개구쟁이 두 소년의 올 댓 초콜릿 제주 초콜릿랜드

제주산 커피 드셔보셨나요? 제주 코리아커피농장

초콜릿은 언제 어떻게 탄생되었을까? 종류는 몇 가지나 될까? 맛은? 이 모든 궁금증을 한 번에 해결해주는 곳이 있다.

제주 중문관광단지에 있는 초콜릿랜드는 제주도 버전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다.

이곳에 가면 초콜릿에 관한 모든 해답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초콜릿에 관한 지식만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초콜릿으로 그린 독특한 작품도 감상하고, 직접 ‘나만의 초콜릿 만들기’에 도전해볼 수 있다.

이웃사촌인 초등학생 충현이와 규현이. 개구쟁이 두 소년이 함께 초콜릿랜드 탐험에 나섰다.

초콜릿을 좋아하는 둘 다 가는 길 내내 싱글벙글 웃음꽃이 끊이지 않는다. 초콜릿을 직접 만들어본다고 하니 더욱 신이 난 모양이다.

중문관광단지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초콜릿랜드. 까만 돌담 위에 하얀색으로 ‘Chocolate’이라고 적힌 것을 보니 벌써부터 입 안에 군침이 돈다.

초콜릿랜드 안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이곳을 다녀간 스타들의 사진과 사인들이다.

올 여름에는 ‘미스코리아 2012’ 참가자들이 방문해 초콜릿을 직접 만들어보고 시식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초콜릿랜드는 크게 전 세계의 다양한 초콜릿과 제품들을 볼 수 있는 전시장과 초코 아트 작품을 감상하는 갤러리,

초콜릿 만들기 체험장, 전망대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초콜릿으로 만든 각종 재미난 전시물이 방문객들을 맞는다.

초콜릿으로 만든 한라봉과 체스, 금화, 카지노 칩을 비롯해 온갖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 흥미를 갖게 만든다.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는 조개들 속에 숨겨진 초콜릿 찾기도 재미나고, 실물을 그대로 본떠 만든 초콜릿 콜라와 돌하르방 전시품도 신기하기만 하다.

전 세계 초콜릿 제품들을 총출동시켜놓은 전시관도 흥미롭다.

미국과 유럽, 아시아관으로 나누어 각국에서 시판되는 각양각색의 초콜릿 제품들을 전시해놓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m&m과 오레오(Oreo), 유럽의 길리안(Guylian), 페레로(Ferrero) 등 유명 브랜드부터 우리나라의 제주 감귤초콜릿까지 없는 게 없다.

여러 가지 색을 입혀 만든 초콜릿 달걀을 보던 충현이 입맛을 다시며 규현에게 묻는다.

“근데 이건 달걀이야, 초콜릿이야?” 규현이 아리송한지 머리를 갸웃거리며 대답한다. “글쎄, 먹어봐야 알겠는걸?”

1층 전시장 아래층에는 초콜릿을 만들어볼 수 있는 체험장이 있다.

전시장을 지나 곧바로 체험장으로 들어선 아이들. “진짜 초콜릿을 만들어보는 거예요?”,

“내 맘대로 모양도 낼 수 있어요?” 초콜릿을 직접 만들어본다는 기대감에 한껏 신이 난 충현과 규현이다.

초콜릿 만들기 체험은 누구나 쉽고 재밌게 할 수 있는 데다 만든 초콜릿을 박스에 담아

예쁘게 포장해갈 수 있어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제주산 커피 드셔보셨나요? 제주 코리아커피농장

제주산 커피 드셔보셨나요? 제주 코리아커피농장

제주산 커피 드셔보셨나요? 제주 코리아커피농장

예쁘고 아기자기한 것이 좋아 여자들이 좋아하는 제주 여행

우리나라에서도 커피 재배를? 누구는 어려운 일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커피 문화가 확산되기 전부터 제주 지역에 터를 잡고 묵묵히 커피농장을 일궈온 이들. 그 수년 간의 노력이

‘코리아커피’의 탄생이라는 값진 열매로 나타났다. 제주산 커피, 그 신세계를 들여다본다.

제주 커피농장의 꿈을 이루다

커피는 대부분 아프리카나 남미 같은 더운 나라가 원산지이다.

보통 적도를 중심으로 북회귀선과 남회귀선 사이에 유명한 커피농장들이 분포되어 있다.

그 범주에서 한참 떨어져 있는 우리나라는 사실 커피나무 재배지로 적합한 곳은 아니다.

하지만 코리아커피농장 노명철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어느 정도 여건만 갖춰주면 국내에서도 얼마든지 커피를 재배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추운 겨울도 커피나무가 버틸 수 있도록 비닐하우스 재배를 한다면 못할 일도 아니었다.

달달한 믹스커피가 대세였던 시절, 이미 원두커피 맛에 푹 빠져버린 그는 제주에 커피농장을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다.

워낙 커피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농사’는 그가 가장 자신 있고 누구보다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

새로운 작물이 우리 토양과 기후에 적응할 수 있도록 키워내는 것 또한 그의 전문 분야.

그렇게 시작된 제주 커피농장의 꿈이 벌써 9년째에 접어들었다.

제주 남부 지역에 위치한 서귀포시 남원읍. 겨울철에도 영하로 떨어지는 날이 거의 없을 만큼 따뜻한 기운이 가득한 곳이다.

무가온(온도 조절 장치가 없는 비닐하우스) 시설로 커피나무를 재배하기에 제격인 곳이다.

남원읍 태흥초등학교 옆, 빨간 지붕을 얹은 소박한 건물 하나가 눈에 띈다. 코리아커피농장에서 운영하는 카페다.

그 옆에 세워진 비닐하우스 한 동. 이곳에 제주산 ‘코리아커피’를 생산하는 커피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비닐하우스에 들어서자마자 습기가 훅 끼쳐온다. 아무리 날이 좋다지만 이 정도로 습도가 높을 줄은 예상치 못했다.

비닐하우스 안 여기저기에 나무들이 우거져 커피나무 숲에 온 듯한 기분이다.

바닥에는 커피콩에서 싹튼 모종들이 잔뜩 널려 있다. 밖은 아직 겨울이지만 이곳은 봄기운이 화사하다.

이곳 비닐하우스에서 자라고 있는 커피나무는 1,200그루 정도.

제주의 기후와 토양에 완전히 적응한 나무들로 노명철 대표의 꿈과 함께 9년 동안 무럭무럭 커왔다.

2년 전부터 커피체리를 수확하기 시작했으며, 올해는 800kg~1톤 가량의 생두를 생산할 것으로 기대된다.

가지마다 이제 꽃망울이 맺기 시작해 4~5월경이면 커피체리를 수확할 전망이다.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인공 재배의 경우 자연 상태일 때보다 생산량이 2배 정도 늘어난다고 한다.

“커피나무를 시설 재배할 경우 강수량을 조절해 커피의 맛이나 당도, 신맛 등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우리만의 특별한 커피를 만들 수 있는 거죠.” 노명철 대표는 코리아커피농장만의 스페셜티 커피를 만들겠다는 또 다른 꿈을 꾸는 중이다.

노명철 대표는 이곳 농장에서 수확해 만든 커피에 ‘코리아커피’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름 그대로 국내에서 생산한 ‘한국산 커피’인 셈이다.

커피체리를 따서 말리고, 껍질을 까고, 다시 로스팅해 원두로 만들어내는 모든 과정은 노 대표와 아내의 손을 거친다.

하루에 다섯 잔씩 마실 정도로 커피를 좋아하는 부부에게 직접 로스팅하고 핸드드립하는 일은 즐거운 유희와도 같다.

예쁘고 아기자기한 것이 좋아 여자들이 좋아하는 제주 여행

예쁘고 아기자기한 것이 좋아 여자들이 좋아하는 제주 여행

예쁘고 아기자기한 것이 좋아 여자들이 좋아하는 제주 여행

강 따라 마을 지나 청양 남산녹색둘레길

웅장하고 아름다운 자연과 천혜의 비경이 가득한 곳. 제주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수식어다.

하지만 제주에는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자연만 있는 건 아니다.

예쁘고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권하는 또 다른 제주 여행. 이들을 위한 큐트한 제주 여행이 시작된다.

여기가 학교라고? 알록달록 애월읍 더럭분교

이번 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는 애월읍 하가리에 있는 작은 분교다.

여행 중에 웬 학교냐고? 모르는 말씀 마시라. 애월초등학교 더럭분교는 대기업 CF에 등장했을 정도로 유명한 학교다.

그 유명세를 타고 알음알음 찾아오는 여행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실 더럭분교는 몇 년 전만 해도 학생 수가 적어 늘 통폐합 위기에 놓였던 곳이다.

그러다 2012년 삼성의 ‘HD 슈퍼 아몰레드 컬러 프로젝트’에 선정되면서 지금 같은 모습으로 바뀌었다.

당시 프로젝트에 ‘색채지리학’의 창시자인 세계적인 컬러리스트 장 필립 랑클로가 참여했고,

덕분에 더럭분교는 전에 없는 동화 같은 알록달록한 학교로 다시 태어났다.

예쁘게 단장된 학교에 아이들은 물론 교사들도 설렜으며 더럭분교에 전학 오는 학생도 늘었다.

재미난 건 늘어난 게 학생뿐만 아니라는 것. 학교가 유명해지면서 ‘여행객’이라는 생각지도 못했던 손님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더럭분교과 처음 마주할 때 대부분이 “여기가 학교?”라며 되묻는다.

우리가 생각하는 학교의 이미지와는 상당히 거리가 먼 낯선 풍경 때문이다.

넓은 잔디 운동장과 낮은 단층 건물에 알록달록 색이 입혀진 학교는 동화책에서 막 튀어나온 입체 조형물 같다.

새파란 하늘 아래, 동화 같은 학교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면 어디선가 영화를 찍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본관 건물뿐 아니라 음수대와 급식실, 심지어 쓰레기 수거장까지 다채로운 색으로 갈아입은 모습이 정말 사랑스럽다.

본관 앞 벚나무에 매달린 조그만 종도 어찌나 귀엽고 예쁜지.

장식용 소품이 아닌 진짜 ‘학교 종’이다. 교무실 문이 드르륵 열리며 여선생님이 나와 종을 가볍게 울린다.

맑고 곱게 울려 펴지는 ‘땡땡땡’ 소리. 놀던 아이들이 까르륵거리며 교실 안으로 들어가고, 이내 고운 합창 소리가 흘러나온다.

평화로운 한때, 학교에서 힐링의 에너지를 한껏 받아 간다.

더럭분교를 방문할 때는 이곳이 관광지가 아닌 아이들이 공부하는 학교라는 점을 잊지 말자.

교실 안으로 불쑥 들어간다든가,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행동은 삼가도록 하자.

동화 같은 더럭분교를 마음에 꼭꼭 담아두고 두 번째 여행지를 찾아 떠난다.

곧게 뻗은 평화로를 타고 한참을 남쪽으로 내려가다 닿은 곳, 이니스프리 제주하우스다.

이곳은 화장품 브랜드인 ‘이니스프리’ 체험관이다.

브랜드 체험관이라고 해서 뭐 볼 게 있을까 싶지만, 일단 안에 들어서면 나가기가 아쉬워진다.

이니스프리 제주하우스는 일반 화장품 전시관이라기보다 제주의 자연과 더불어 휴식과 힐링을 즐길 수 있는 예쁜 카페 같은 느낌이다.

이니스프리 제주하우스는 모기업인 아모레퍼시픽이 운영하는 오설록 서광다원 내에 자리했다.

3면이 유리로 돼 주변 차밭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맑은 날에는 한라산까지 또렷이 보인다.

강 따라 마을 지나 청양 남산녹색둘레길

강 따라 마을 지나 청양 남산녹색둘레길

강 따라 마을 지나 청양 남산녹색둘레길

사구를 지키는 습지의 힘 태안 두웅습지

충청남도 청양군 칠갑산 옆으로 해발 366m의 자그마한 남산이 솟아 있다.

이 산을 중심으로 이어진 ‘남산녹색둘레길’은 연장 13.8km로 지천생태길, 녹색길, 벚꽃길, 고향길 구간으로 연결된다.

자연생태와 역사, 농가의 풍경을 두루 조망하며 어렵지 않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둘레길을 한 바퀴 돌고 향기로운 고운식물원까지 관람하면 더 좋다. 청양을 찾는 어느 날, 눈과 마음이 온통 푸르게 물들 것이다.

물길 따라 ‘지천생태길’, 숲길 위로 ’녹색길’

걸음의 시작은 지천생태공원이 좋다. 청양터미널에서 멀지 않아 대중교통을 이용해 찾아가기가 수월하다.

공원 옆으로 작은 주차장도 조성되어 있어 차량 이동도 용이하다.

지천은 남산 둘레를 지나 부여의 금강과 만나는 1급수 천으로 생태보존이 잘 되어 있다.

지천 주변으로 도심 천에서는 보기 힘든 부들과 마름, 생이가래, 부레옥잠, 어리연 등이 자라고, 창포와 물억새, 갈대 등이 곳곳에 자생한다.

물속에는 여러 종의 물고기가 서식하며, 특히 금강하굿둑이 생기면서 사라졌던 참게가 각고의 노력 끝에 다시 돌아왔다.

지천생태공원 입구에 이를 기념하는 참게 조형물이 설치되었다.

또 공원 내 청양향교 부근에서 발견된 ‘교월리 말무덤’이 문화유산으로 보존되고 있다.

수변 산책로를 따라 길을 이어가면 작은 운동장이 있는 백세공원에 닿는다.

공원 옆에 널찍한 주차장이 있다.

곳곳에 쉼터가 조성되어 있고, 각종 운동시설과 잔디광장이 이용객의 편의를 돕는다.

공원 중앙에는 작은 공설무대도 있다. 이곳을 중심으로 때마다 주민행사가 열린다.

공원 맞은편에는 인공폭포와 물레방아가 설치되어 볼거리를 더한다. 붉은 구름다리가 놓여 천을 건너는 데 불편함이 없다.

천을 따라 30여 분을 더 걸어가면 지천교에 이른다.

차량이 이동하는 도로를 따라 걸어도 좋지만, 백세공원 맞은편 마을 옆 산책길을 걷는 것이 더 좋다.

수변 풍경과 함께 농가의 삶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천교에서부터는 ‘녹색길’이 시작된다. 녹색길은 먼저 적누리마을을 지나는데, 흙색이 붉고 누렇다는 뜻을 지녔다.

농가 풍경을 구경하며 걷다 보면 녹색길 중간 지점인 적누저수지에 닿는다.

저수지 옆으로 조성된 녹색길은 걷기 편한 자갈길이다. 중간 중간 다리쉼을 할 수 있는 의자와 팔각정이 마련되었다.

남산 등산로 들머리 옆에 있는 ‘우암송씨제각’과 조선시대 양차원이라는 사람의 효행을 기리는 ‘효자비’를 지나면 녹색길 끝자락인 광금리마을이 나온다.

꽃잎 흩날리는 ‘벚꽃길’, 할머니 생각나는 ’고향길’

광금리는 산촌생태마을과 녹색체험마을로 조성되어 매년 ‘산꽃마을축제’가 펼쳐진다.

특히 탄금리마을로 향하는 고갯길은 벚나무길로 봄이면 벚꽃이 흩날리고, 여름이면 풍성한 잎이 햇살을 가려주는 명품 가로수길이다.

나무그늘 아래를 천천히 걷다 보면 탄정리마을이 나온다.

소박한 농가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 마을은 청양현에서 꼭 7리 떨어진 곳이라 하여 예부터 ‘일고브리’라 불린다.

마을을 벗어나서 대치천을 따라 탄정교를 건너면 청양향교에 닿는다.

청양향교는 조선 초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1851년(철종 2년)과 1874년(고종 11년)에 중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향교의 대성전에 명나라에서 사신이 가져온 공자의 화상을 봉안하고 있다.

더러 문이 잠긴 경우가 있지만, 인근 주민에게 문의하면 기꺼이 문을 열어준다.

향교를 보고 돌아 나와 가던 길을 이어가면 녹색둘레길의 시점인 지천생태공원에 도착한다.

녹색둘레길 종주는 보통 4시간 정도 소요된다. 이정표와 안내판이 각 지점마다 잘 설치되어 있고, 쉼터도 곳곳에 마련되어 있다.

다만, ‘고향길’ 구간을 제외하면 식당이나 가게를 찾기 힘드니 간식과 식수를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둘레길과 함께 남산오름길인 등산로도 조성되어 있다.

산길은 적누저수지에서 남산 정상을 지나 지천생태공원으로 연결된다. 약 2시간 정도 소요되며, 연장 4.7km이다.

사구를 지키는 습지의 힘 태안 두웅습지

사구를 지키는 습지의 힘 태안 두웅습지

사구를 지키는 습지의 힘 태안 두웅습지

항일운동의 큰 별이 태어난 역사의 땅 홍성

두웅습지는 우리나라에서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곳 가운데 강화 매화마름군락지 다음으로 규모가 작다.

전체 면적 6만 5000㎡(약 2만 평) 가운데 물에 잠긴 부분은 훨씬 좁아서 초등학교 운동장만 하다.

데크와 흙길로 된 습지 산책로를 한 바퀴 도는 데 15분이면 충분하다.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곳’이라는 정보에 순천만이나 우포늪 같은 곳을 기대했다가는 실망하기 십상이다.

두웅습지는 ‘사구 배후습지’라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사구 지대 뒤에는 평지나 산지가 있고, 사구 지대와 산지 경계부에는 담수가 고이는 배후습지가 형성된다.

두웅습지는 신두리해안사구의 배후습지라는 지형적인 의미와 희귀한 동식물이 서식하는 생태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2001년 태안신두리해안사구와 함께 천연기념물 431호로 지정됐고, 2002년에는 습지보호지역으로, 2007년에는 람사르 습지로 등록됐다.

겉모습만 보고 실망해서 돌아가지 말고 안내소 문을 두드려보자.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해설사가 상주한다.

30~60분 동안 두웅습지의 형성 과정과 의미, 습지에서 살아가는 동식물에 대해 들려준다.

두웅습지는 자그마한 규모에 비해 다양한 생물이 서식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멸종 위기 야생생물 금개구리다.

배 쪽이 황금처럼 누런빛을 띠는 금개구리는 참개구리보다 약간 작고, 밝은 녹색 등에는 줄무늬가 2개 있다. 개체 수가 적고 잘 움직이지 않아 찾기 힘들다.

5월 말부터 6월 중순까지 번식기라서 울음소리를 듣거나 모습을 관찰할 확률이 높다.

습지 내 초록색 울타리를 친 곳이 금개구리 서식지다.

멸종 위기 야생생물 표범장지뱀과 맹꽁이도 두웅습지에 있다.

이밖에 유혈목이와 도롱뇽 같은 양서·파충류, 노랑부리백로와 왜가리, 알락꼬리마도요, 쇠기러기, 종다리,

흰물떼새 등 조류도 이곳을 둥지 삼아 살아간다.

시간대와 계절에 따라 관찰할 수 있는 생명체가 다른데, 개미귀신은 아무 때나 쉽게 보인다.

명주잠자리 애벌레로, 모래에 깔때기 모양 함정을 만들고 거기 빠진 개미나 작은 곤충을 잡아먹는다.

솔숲 아래 모래땅에 개미지옥이 많다.

두웅습지 해설 중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가장 인기 있는 부분이 개미귀신을 보여줄 때라고.

습지에서 살아가는 식물도 특색 있다.

자주 눈에 띄는 갈대나 억새, 부들, 해당화 외에 쉽싸리, 매자기, 부처꽃, 이삭사초, 창포,

애기마름, 참통발 등 설명을 듣고 보면 하나같이 소중한 습지식물이다.

두웅습지는 바닥이 신두리해안사구의 지하수와 연결돼 가뭄이 들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

덕분에 이곳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동식물에게 안정적인 생태 환경을 제공한다.

두웅습지가 오염되거나 파괴되면 신두리해안사구까지 영향이 미친다.

신두리해안사구를 지금 모습 그대로 지켜주는 게 두웅습지인 셈이다.

두웅습지에서 신두리해안사구 주차장까지 차로 3분, 걸어서 20분 걸린다.

사구 안내도에 두웅습지가 표시되었고, 신두리사구센터 전시 중에 두웅습지가 한 코너를 장식한다.

습지 모형에 금개구리와 맹꽁이가 귀여운 얼굴로 맞이하고, 금개구리 울음소리도 나온다.

신두리사구센터는 신두리해안사구를 보호하고 방문객의 이해를 돕기 위한 시설로, 사구를 둘러보기 전에 전시물을 관람하는 게 좋다.

항일운동의 큰 별이 태어난 역사의 땅 홍성

항일운동의 큰 별이 태어난 역사의 땅 홍성

항일운동의 큰 별이 태어난 역사의 땅 홍성

자애로운 백제의 미소 충남 서산 마애삼존불

충남 홍성군에서는 역사 속의 위인들이 많이 배출됐다.

고려 말기의 큰스님 보우국사, 명장이자 재상 최영, 사육신 성삼문, 조선 후기의 문신 남구만, 조선 말기의 순국지사 이설,

독립운동가 김복한 선생 등이 홍성 출신이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펼친 홍성 출신의 대표적

인물로 만해 한용운 선생과 백야 김좌진 장군이 손꼽힌다. 최근의 인물로는 고암 이응노 화백이 있다.

홍성군은 1914년 홍주군과 결성군이 합쳐지면서 탄생했다.

홍성 읍내에 자리한 홍주성역사관에서 선현들의 발자취와 홍주읍성의 예전 모습, 홍성의 역사 등을 만나볼 수 있다.

홍성군청 바로 옆에 있는 홍주읍성은 고려 시대에 축조됐으며, 최대 길이가 1772m에 이르렀으나 810m만 보존되었다.

성내 관아 건물도 35동이었는데, 현재는 조양문과 홍주아문, 안회당(동헌), 여하정만 남아 있는 실정이다.

홍주성역사관에서 홍성군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기초 지식을 쌓았다면 김좌진장군생가지부터 가보자.

서해안고속도로 홍성 IC로 나가자마자 쉽게 찾을 수 있는 역사 시설이다.

출입문 왼편에 생가, 오른편에 기념관이 자리하고, 300m 정도 안으로 들어간 야산 자락에 사당이 있다.

생가 대문에 붙은 ‘김좌진’ 문패 글씨가 선명해서 아직도 장군이 살아 계신 듯 여행객의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마당으로 들어서면 안채, 사랑채, 광, 우물이 보인다. 서향으로 앉은 안채 뒤편 장독대를 돌 때면 조국 광복을 보지 못하고 눈감은 장군의 일생이 안타깝다.

1998년 문을 연 백야기념관으로 이동하면 장군의 흉상을 비롯해 독립운동의 이모저모를 자세히 볼 수 있다.

특히 청산리대첩 모형이 눈길을 끈다. 김좌진장군이 이끄는 독립군이 일본군을 청산리계곡으로 유인·초토화하는 장면이다.

김좌진(1889∼1930) 장군은 1911년 군자금 모금 활동으로 투옥됐고,

1915년 독립운동 자금 모금 중 체포되어 또다시 옥고를 치렀다. 1917년에는 만주로 가서 독립군을 조직하고 항일 무장투쟁을 펼쳤다.

특히 청산리대첩은 일제강점기에 기록적인 성과를 거둔 전투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록에 따르면 청산리대첩에서 일본군은 전사자 1200여 명, 부상자 2100여 명이었으나

독립군은 전사자 130여 명, 부상자 220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장군이 남긴 〈단장지통〉이라는 시는 가슴에 새기지 않는 관람객이 없다.

‘적막한 달밤에 칼머리의 바람은 세찬데 / 칼끝에 찬서리가 고국생각을 돋구누나 / 삼천리 금수강산에 왜놈이 웬말인가 / 단장의 아픈마음 쓰러버릴 길 없구나.’

이곳에는 문화관광해설사가 상주하면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관람객이 요청할 때마다 안내해준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김좌진 장군 생가 앞길을 따라 남쪽의 결성농요농사박물관 방면으로 10분 정도 내려가면 승려이자 시인이요

독립운동가 만해 한용운(1879∼1944) 선생의 생가지에 닿는다. 먼저 들러볼 곳은 만해문학체험관(매주 월요일 휴관).

동상과 초상화를 보면서 예의를 갖추고 실내 전시실로 들어서면 만해의 문학과 철학을 반영하는 유물 60여 점이 있다.

특히 유천(만해의 아호)이 서당에서 공부하던 모습, 서당에서 한학을 가르치는 모습, 글 읽기에 정신이 팔려 참새가 벼를 다 먹어

치운 장면, 만주에서 마취 없이 총탄 제거 수술을 받는 장면, 딸 영숙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모습 등

만해의 일생이 자그마한 인형으로 재현돼 위인의 삶을 친근하게 배울 수 있다.

그중에서도 설악산 오세암에서 〈님의 침묵〉을 집필하는 장면을 재현한 방이 압권이다.

12폭 병풍을 뒤에 두르고 단정하게 앉은 선생은 호롱불에 의지한 채 붓으로 〈님의 침묵〉을 써 내려간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로 시작되는 〈님의 침묵〉은 초가 형태의 생가 툇마루 흙벽에도 걸려 있다.

만해의 님은 조국, 민족, 생명의 근원 등이다. 불교의 힘으로 이별의 슬픔을 이겨내려는, 조국 광복을 희망하는 마음을 담았다.

만해는 1905년 백담사에서 득도하고 1910년 《조선불교유신론》을 탈고했으며, 1919년 삼일운동 때는 민족 대표 33인으로 활동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했다.

이후 불교의 대중화, 독립사상 고취, 문학 활동을 펼치다가 1944년 서울 성북동 심우장에서 입적했다.

심우장을 지을 때 조선총독부를 마주 보기 싫다고 북향으로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자애로운 백제의 미소 충남 서산 마애삼존불

자애로운 백제의 미소 충남 서산 마애삼존불

자애로운 백제의 미소 충남 서산 마애삼존불

바다로 향하는 꽃길 태안 청포대 카라반 빌리지

친구 같은 그 곳, 충남 서산

여행은 무엇보다도 자유스러워야 된다는 전제 때문에 그저 목적 없이 떠도는 것이 진짜 여행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내 경험으로 보자면 가장 지독한 권태는 가장 자유스러운 상황에서 비롯되고,

더욱이 자유를 만끽하는 일에 익숙해 있지 않은 이들에게는 그 권태가 예상보다 훨씬 더 빨리 찾아온다.

그쯤 되면 자유는 더 이상 자유가 아니라 오히려 속박으로 느껴지는 까닭에 나의 여행은 늘 목적지를 미리 계획해둔 상태에서 시작된다.

특히 목적지가 처음 가보는 곳이라면 더욱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나서게 되고, 여러 번 가본 곳이라면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를 보러 가는 듯한 설렘이 앞선다.

서산마애삼존불상(국보 제 84호)이라 불리는 돌부처를 찾아 갈 때면 내 마음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찬란한 불교의 자취, 백제 말기의 마애삼존불상

서산마애삼존불이 자리한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강댕이골은 백제시대에 태안반도를 통해서 유입된 중국의 불교 문화가

그 당시의 수도인 부여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가야 했던 길목이었다.

중국의 선진 문화를 다른 곳보다 앞서 접했던 이곳 사람들은 서산마애삼존불이라는 찬란한 불교 미술품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백제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이 불상은 본존불인 여래입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매우 재미있는 표정과 자세를 갖춘 반가사유상과 보살입상을 협시불로 두고 있다.

여래입상은 볼이 터질 듯한 큰 얼굴에 은행알 같은 눈과 둥글고 긴 눈썹, 얕고 넓은 코를 하고 있는데,

특히 볼에 가득 퍼진 미소가 꾸밈없이 밝고 너그러워서 흔히 “백제의 미소”라 불린다.

거기엔 사람을 주눅들게 하는 권위나 위엄 따위는 찾아볼 수도 없고, 단지 오늘날 우리네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었을 백제인의 따뜻한 모습만이 살아 있다.

크지 않은 규모이지만 많은 관광객이 찾는 개심사

마음을 여유롭게 하는 개심사

개심사는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 상왕산 기슭의 울창한 솔숲에 고즈넉이 자리한 사찰로 백제 의자왕 때에 혜감국사가 세웠다고 한다.

절의 규모도 그리 크지 않고 번듯한 국보급의 문화재 하나 없지만 마음을 여유롭게 하는 한적한 분위기로 뭇사람들의 마음을 훔치는 곳이다.

크지도 작지도 않을 만큼 적당한 크기의 건물들은 주변의 산세와 서로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고 심검당의

기둥은 제멋대로 휘어진 나무의 자연미를 그대로 살려 놓음으로써 어느 한곳이라도 자연을 거스르지 않도록 배려하였다.

오래되었지만 아름답고 절제 있는 해미읍성

평화로움 뒤에 숨겨진 슬픈 역사

해미 면소재지에 위치한 해미읍성은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옛 성 가운데에서 가장 형태가 온전하면서도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힌다.

성벽의 높이는 4m에 둘레가 2km쯤 되는데, 조선 태종 때에 왜구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한 군사 요새로 쌓기 시작하여

성종 때인 1491년에 완공되었고 그 뒤로 이 성안에는 해미현 현청과 충청도 병마절도사의 사령부가 들어섰다.

1970년대까지도 성안에는 면사무소, 국민학교, 우체국 등의 공공기관과 민가 160여 채가 있었으나 해미읍성 복원사업으로 인해 모두 성밖으로 옮겨졌다.

해미읍성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 이름처럼 아름다운 성(城)의 겉모습만을 가슴에 담고서 돌아가게 마련이지만

그 아름답고 평화로운 분위기 뒤에는 피비린내 나는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데,

조선 말 “병인박해” 당시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이 읍성과 인근 해미천에서 목숨을 잃은 곳이다.

남쪽으로는 천수만, 북동쪽으로는 간월호가 있는 간월호 마을

겨울철에 서산 땅을 찾거든 우리나라 최대의 간척지인 천수만 간척지를 빼놓을 수가 없다.

우리나라 최대의 겨울 철새도래지로도 이름난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A지구 간척지에 들어선 인공 담수호인 간월호(870여만 평)에는

겨울의 진객인 고니(백조)를 비롯하여 청둥오리, 기러기 등 갖가지 겨울 철새들이 수만 마리씩 떼지어 날아든다.

또한 이곳을 찾는 겨울 철새들의 수효와 종류가 해마다 크게 늘고 있어서 어린이들의 새로운 자연 학습장으로,

그리고 대규모의 생태 관광지로 새롭게 각광 받고 있다. 매년 11월부터 2월까지 간월호 방조제에는 철새떼를 구경하려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특별히 허가를 받을 필요는 없지만 중간중간 출입금지 지역과 어두운 시간을 피해 다니도록 하고 탐조여행을 나설

때에는 쌍안경과 조류도감을 반드시 챙기는 것이 좋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급적 새들의 활동이 가장 왕성한 동틀 무렵과 해질녘에 맞춰서 가도록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