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마저 파랗게 물들이는 다도해의 비경 거문도와 백도

가슴마저 파랗게 물들이는 다도해의 비경 거문도와 백도

가슴마저 파랗게 물들이는 다도해의 비경 거문도와 백도

우리는 동화 찍으러 남이섬으로 간다

다도해상국립공원의 최남단 거문도와 백도. 날씨가 좋지 않으면 종종 섬 안에 발길이 묶이는 곳이지만 여행자들에게는 언제나 그리운 곳이다.

여수에서 거문도까지는 뱃길로 2시간 20분이 소요된다.

거문도에서 백도를 유람하려면 또 왕복 2시간. 만만치 않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거문도와 백도는 1년 내내 여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순박한 인심과 때 묻지 않은 비경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거문도를 걸어서 일주하는 것은 도보 여행자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깊고 푸른 섬과 오롯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발길을 사로잡는 전시관도 있다. ‘인간과 자연, 로봇의 공존’을 주제로 73대의 첨단 로봇을 전시하는 대우조선해양로봇관이 그것이다.

거대한 로봇 조립 모형 안으로 들어서는 듯한 전시관 내부 모습부터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심해 6,000m에서 해양자원을 탐사하는 모습으로 전시된 키 6.5m의 국내 최장신 로봇 ‘네비’를 만나면 저절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이밖에도 다양한 표정을 짓는 사이버 여전사 ‘에버’, 감성돔 모양의 일곱 색깔 로봇물고기를 비롯해 미국, 영국, 프랑스를 대표하는 로봇들이 전시된다.

곳곳에 자리한 전시관 자체도 볼거리이다. 시멘트 저장고를 개조해 만든 거대한 파이프오르간 형태의 스카이타워, 뉴미디어

버라이어티쇼와 100여 참가국의 문화공연 무대인 빅오(The Big-O), 갯지렁이와 따개비를 닮은 건물로 바다 위에 지어진 주제관,

남해바다의 잔잔한 파도와 점점이 떠 있는 섬을 닮은 국제관 등 모두가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손길이 닿았다.

박람회장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거대한 건축 예술을 접할 수 있어서 흥미를 더한다.

여수 교동시장의 역사는 약 35년 정도이다. 여느 전통 재래시장에 비해서 역사가 길지는 않지만 서민의 애환과 정서가 뿌리 깊게 밴 곳이다.

지금의 시장 자리는 매립을 통해 내륙으로 변했지만 이전에는 바닷가였다.

아녀자들이 머리에 이고 와서 팔던 물고기들은 대부분 남편이 배를 타고 망망대해로 나가 잡아온 것들이었다.

그렇게 어부의 아내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노점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교동시장 시초였다.

시장은 연등천이라고 불리는 하천을 따라 길게 형성되어 있다.

길이는 약 300m 정도이며 햇빛 가리개 천장이 설치되어 있어서 한낮에 따가운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우천 시에도 시장 이용에 불편이 없다.

연등천은 바다로 연결되어 있어 하류는 여전히 민물과 썰물에 의해 바닷물이 드나든다.

교동시장은 전체적으로 노점상 형태다. 약 370여 명의 상인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장을 펼친다.

간혹 채소와 과일을 판매하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해산물이 주를 이룬다.

주변의 상점도 약 100여개가 되지만 노점상만큼 활성화가 되어 있지는 않아 보인다.

적어도 교동시장에서는 노점상들이 시장의 주최자인 것이다.

시장은 새벽 3시부터 열리기 시작해서 오후 2시가 넘으면 파장 분위기다.

따라서 싱싱한 해산물을 구입하고 싶다면 이른 새벽에 찾는 것이 좋다.

하지만 파장 무렵 찾아간다면 여기저기서 떨이를 외치기 때문에 의외로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구입할 수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상인들의 넉넉한 인심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우리는 동화 찍으러 남이섬으로 간다

우리는 동화 찍으러 남이섬으로 간다

우리는 동화 찍으러 남이섬으로 간다

아름다운 정자기행 강원도 고성 천학정

누가 뭐래도 남이섬은 연인들의 공간이다.

그것도 세계 각국의. 어떻게 알았는지 다양한 피부색의 연인들이 ‘그들만의 동화’를 촬영하러 이곳을 찾는다.

‘별것 없다’며 종종 괄시받기도 하지만 연인들에게는 필수 데이트 코스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남이섬을 찾았다.

북한강 줄기를 사이에 두고 경기도 가평과 닿아 있어 다양하게 여행 동선을 짜기에도 수월하다.

남이섬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몇몇 있다.

그 중에서도 지난 2002년 ‘지우히메’와 ‘욘사마’를 탄생시킨 드라마 <겨울연가>가 대표적이다.

벌써 10년이 지났건만 그들의 ‘첫키스’ 촬영지인 남이섬은 여전히 연인들의 ‘성지’로 사랑받고 있다.

눈 덮인 겨울 남이섬에 유독 연인들이 많이 몰려드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리라.

드라마는 몰라도 한번 겨울 남이섬을 보고 나면 연인이 바뀔(?) 때마다 잊지 않고 이곳을 데이트 코스로 활용하게 될 것이다.

겨울과 봄의 사이 즐기는 로맨틱한 데이트

‘남이섬’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남이장군(1441~1468) 덕분이다.

열일곱의 나이로 무과에 장원급제했으나 유자광의 모함으로 스물여섯 숨을 거둔 남이장군의 묘라고 알려진 돌무덤이 이곳에 있었다.

남이섬을 개발하면서 돌무덤을 정돈해 남이장군 가묘를 만들었다.

짚와이어를 선택하면 가평에서 남이섬에 들어갈 때만 하늘길을 이용하고 나올 때에는 배를 타야한다. 짚와이어 요금에 돌아오는 나오는 배삯이 포함되어 있다.

물길은 3~5분, 하늘길은 1분30초면 남이섬으로 들어설 수 있다.

3월부터 1·3주차 월요일은 짚와이어 정기점검으로 이용할 수 없다.

드디어 남이섬. 남이나루에 도착하면 먼저 관광청부터 찾아가자.

데이트로 찾았다면 남이섬 지도를 챙겨 <겨울연가>의 첫키스 장소부터 체크하는 센스를 발휘하면 어떨까.

너무 능숙하게 한 번에 찾아가면 오해의 눈길을 피할 수 없으니 적당히 하자.

남이섬을 찾은 연인들이 빠지지 않고 사진을 찍는 장소를 체크하며 한 바퀴 돌아보자.

남이섬 초입에서 쭉 뻗은 중앙잣나무길을 지나면 왼쪽으로 첫키스 다리가 있다. 맞다.

드라마 <겨울연가>의 주인공들이 뽀뽀한 장소로 향하는 다리다.

이곳을 지나 조금만 가면 친절하게 ‘겨울연가 첫키스 장소’라고 적힌 안내판이 있다.

쌍쌍이 다정한 연인들이 쉬지 않고 몰려든다. 이곳에서 북한강 줄기를 따라 뻗은 수양벚나무 군락지와 계수·편백나무 군락지도 길이 예쁘다.

하지만 한번 들어서면 탈출로를 찾기까지 제법 걸어야 하므로 살짝 맛만 보고 다시 돌아 나오는 편이 좋겠다.

예쁘게 뽀뽀하면서 인증샷까지 찍었다면 다시 첫키스 다리를 지나 큰길로 나오자.

유니세프홀을 지나면 (전기)자전거를 대여소가 나온다. 이 주변에 식당과 간이매점, ATM기기 등이 몰려있다.

한식·일식·피자부터 북경오리까지 남이섬 안에서 다양한 음식도 맛볼 수 있다.

가평나루에는 춘천 별미 닭갈비 전문점들이 몰려 있으니 닭갈비 맛볼 한 끼 정도는 아껴두자.

닭갈비 맛투어를 진하게 하고 싶다면 춘천 명동 닭갈비 골목으로 가도 좋다. 남이섬에서 숙박도 가능하다.

호텔형 숙소와 펜션형 숙소를 갖춘 <정관루>에서 해결하면 된다.

아름다운 정자기행 강원도 고성 천학정

아름다운 정자기행 강원도 고성 천학정

아름다운 정자기행 강원도 고성 천학정

지친 몸을 가뿐하게 만들어주는 온천여행지

아롱거리던 별빛이 점점 옅어지는 새벽녘, 해안절벽에 아스라이 걸쳐진 천학정 누각에 올라선다.

발 아래 기암괴석 사이로 하얀 포말을 이끈 파도가 일렁이는 소리가, 낡은 엔진을 털털거리며 파도를 가르는 배 한 척이 고요한 새벽의 적막을 깨운다.

칠흑 어둠을 뚫고 붉은 해가 솟아오른다. 그 붉은 기운은 동해바다를 모조리 삼켜버리려 듯 온 수평선을 단숨에 물들인다.

동해안 최고의 일출명소 ‘천학정’

바다풍경이 멋진 곳이라면 어디든 정자가 그림처럼 서 있다.

특히나 강원도 고성은 여행을 좀 안다는 사람들이 비밀스럽게 아는 해변들이 많다.

그 해변에 들어선 정자들도 역시 아는 이만 가는 아주 비밀스런 장소.

고성의 아야진 포구는 고성 8경으로 꼽을 만큼 운치 있는 두 개의 정자를 안고 있다.

천학정, 청간정이 바로 그것이다. 두 곳 모두 일출과 월출이 아름다워 예로부터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다녀갔다.

그 중에서도 고성 현지인들의 적극적으로 추천으로 고성 8경으로 선정된 정자가 있었으니 천학정.

아야진 고개를 넘어 교암리 마을 백도해수욕장 초입에 자리잡은 천학정의 역사는 다른 정자에 비해 그리 길지 않다.

1931년이 이 정자의 탄생일. 허나 그의 풍광은 짧은 역사와 절대 반비례한다.

동해바다의 신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천혜의 기암괴석과 깎아지른 해안절벽의 풍광과 100년 이상 된 해송들이 만들어내는

소나무 숲의 운치는 고즈넉한 정자의 멋을 오롯이 즐길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새벽녘, 수평선에서 떠오르는 일출 또한 절경.

소나무 숲을 따라 계단을 오르니 아담한 정자가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다.

누각에 올라본다. 손에 잡힐 듯 동해바다가 펼쳐진다. 남쪽으로는 관동팔경 중 하나인 청간정과 백도를 마주보고, 북쪽으로는 능파대까지 아스라이 보인다.

고성군 토성면 청간리에 있는 청간정은 그 명성뿐만 아니라 풍광 역시 뛰어나다.

설악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청간천과 만경청파가 넘실거리는 기암절벽 위에 세워진 청간정은 누가 언제 지었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다.

다만 중종 15년에 수리했다는 것으로 보아 그 역사는 아주 깊다고 할 수 있다. 깊은 세월만큼 상처도 많다.

1881년 고종 18년에 화재로 타버린 것을 1928년 다시 재건했으나 한국전쟁 당시 다시 화를 입어 다시

보수하기도 했고 1997년 고성 산불로 크게 훼손이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겹처마 팔각지붕의 중층누정으로 아담하게

세워진 청간정의 현판은 1953년 5월 이승만 대통령이 친필로 쓴 것으로 알려져 있어 유명세를 탔다.

과연 청간정에 올라서니 겹겹이 밀려오는 동해의 파도뿐만 아니라 설악산 향로봉과 연봉의 울산바위까지 내려다 볼 수 있다.

일출의 장엄함은 물론 월출의 경치 또한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

밀려오는 파도가 암석에 부딪히면 마치 뭉게구름이 일다가 안개처럼 사라져 가는 황홀경을 연출하기도 하는 곳 또한 청간정이다.

지친 몸을 가뿐하게 만들어주는 온천여행지

지친 몸을 가뿐하게 만들어주는 온천여행지

지친 몸을 가뿐하게 만들어주는 온천여행지

바위산이 숨겨놓은 천연 냉장고 단양 고수동굴

명절로 인해 피곤피곤~ 온천으로 노곤노곤~ 피로야 물렀거라~! 지친 몸을 가뿐하게 만들어주는 온천여행지.

강원 양양 오색그린야드 오색온천

오색온천은 탄산온천과 알칼리온천을 즐길 수 있어 특별하답니다.

해발 650m 남설악 온정골에 자리한 온천원수는 만병통치 온천수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몸에 좋다는 평범한 이유 말고 오색온천이 꾸준한 인기를 얻는 이유는 ‘미인온천’이라는 별칭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온천수로 목욕을 하면 미인이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지하 470m에서 끌어올려 호텔에서 자체 개발한 탄산온천의 공이 큽니다.

탄산과 중탄산, 칼슘 등 몸에 좋은 성분이 풍부한 탄산수는 특히 피부미용에 좋습니다.

약간 찬 기운이 도는 탄산온천수에 입욕하면 온몸이 탄산기포로 덮힙니다.

넉넉하게 15분이면 탄산온천의 효과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미끌미끌하면서 부드러운 알칼리 온천탕도 놓치지 마세요. 서로 다른 온천을 비교해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최초 고품격 독일식 온천리조트를 내세우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온천이 있습니다.

수도권 지역에서 가깝기에 겨울이 되면 더 인기 만발인 곳, 바로 이천 테르메덴입니다.

직경 30m라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실내바데풀과 다양한 온천 프로그램으로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실외온천풀 등 크게 두 곳으로 나뉘어져 운영됩니다.

발안 IC에서 1km 남짓 거리에 위치한 월문온천은 대욕탕 안에 숯사우나, 옥사우나, 한방안개사우나가 있고, 노천탕도 연중 개방합니다.

지하 700m 암반에서 솟아나는 알칼리성 단순천으로, 피부염과 신경통, 혈액순화 장애 등에 효과가 있습니다.

화성시의 다른 온천과 구별되는 점이 있다면 모텔 등 숙박 시설과 단지를 이룬다는 것.

모든 숙박 시설이 온천수를 사용하고 시간제로 대여하는 가족탕을 운영해, 어린 자녀를 동반한 여행객에게 권할 만합니다.

보양온천으로 지정된 마금산원탕은 대중탕 외에도 보양온천의 필수 시설인 수치료탕, 운동욕장, 치유풀장, 노천탕, 운동실, 사우나 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온천수는 지하 300m에서 분출되는 약알칼리성 식염온천으로 수온이 57 정도입니다.

20여 가지 광물질을 함유하고 있는데 특히 철, 망간, 나트륨, 라듐 등을 다량 함유해 신경통, 요통 근육통 등 통증 완화와 피부 미용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울진군 북면 덕구리에 위치하고 있는 덕구온천은 자연 용출온천입니다.

해발 1,000m의 응봉산 줄기와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덕구계곡이 어우러져 절경을 자랑합니다.

동해안 제일을 자랑하는 수질과 계곡이 안고 있는 형제폭포, 옥류대, 선녀탕 등 이 천혜의 조화를 이루고 있어,

온천욕과 함께 계곡을 산책하며 다양한 동식물을 접하는 자연친화적인 가족 나들이와 휴양지로 으뜸입니다.

서로 다른 온천을 비교해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최초 고품격 독일식 온천리조트를 내세우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온천이 있습니다.

수도권 지역에서 가깝기에 겨울이 되면 더 인기 만발인 곳, 바로 이천 테르메덴입니다.

직경 30m라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실내바데풀과 다양한 온천 프로그램으로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실외온천풀 등 크게 두 곳으로 나뉘어져 운영됩니다.

발안 IC에서 1km 남짓 거리에 위치한 월문온천은 대욕탕 안에 숯사우나, 옥사우나, 한방안개사우나가 있고, 노천탕도 연중 개방합니다.

지하 700m 암반에서 솟아나는 알칼리성 단순천으로, 피부염과 신경통, 혈액순화 장애 등에 효과가 있습니다.

화성시의 다른 온천과 구별되는 점이 있다면 모텔 등 숙박 시설과 단지를 이룬다는 것.

모든 숙박 시설이 온천수를 사용하고 시간제로 대여하는 가족탕을 운영해, 어린 자녀를 동반한 여행객에게 권할 만합니다.

바위산이 숨겨놓은 천연 냉장고 단양 고수동굴

바위산이 숨겨놓은 천연 냉장고 단양 고수동굴

바위산이 숨겨놓은 천연 냉장고 단양 고수동굴

맛깔나는 전주 여행의 완성 남부시장 한옥마을 야시장

단양은 오래 사랑받아온 관광지와 새롭게 선보이는 여행지가 공존한다.

역사, 자연, 문화, 레포츠, 환경, 미식 등 여행 테마도 다양하다.

냉장고 속에 들어앉은 듯 시원하게 신비로운 세상을 체험하는 고수동굴, 짜릿한 패러글라이딩 체험과 멋진 사진을 찍기 좋은 ‘카페 산’,

구석기시대 유물을 모아놓은 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 사용하지 않는 터널이 예술 공간으로 변신한 수양개빛터널, 단양을

굽어보는 만천하스카이워크와 짚라인, 물과 바위가 아름답게 어우러진 선암계곡 등 매력적인 볼거리가 가득하다.

단양 고수동굴(천연기념물 256호)은 그 이름을 동굴이 있는 단양읍 고수리에서 따왔다.

1976년에 문을 연 동굴은, 지난 2015년 인공 구조물을 철거하고 조명을 교체하는 등 대대적인 공사를 거쳐 2016년 8월 재개장했다.

방문객센터 1층 매표소를 지나면 석회동굴의 생성 과정, 동굴 생성물, 동굴 속 생물 등을 전시한 공간이 있다.

종유석이 왜 일정한 크기로 자라는지 스포이트로 액체를 떨어뜨려 실험하거나 종유석 단면을 돋보기로 관찰하고,

고수동굴 홍보 영화 보기, 캐릭터에 색칠해 스크린에 띄우기 등 체험 코너도 인상적이다.

방문객센터 밖으로 나오면 동굴 입구에 오르는 계단이 있다.

드디어 동굴 탐험을 시작하는 순간, 시원한 공기에 기분이 상쾌하다.

동굴 속은 평균기온 15~17℃로 처음에는 서늘한 듯한데, 탐험하느라 걷고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면 활동하기에 딱 맞다.

총 길이 1395m 중 940m 구간을 개방해, 왕복 1.9km 탐방에 40분쯤 걸린다.

계단 구간이 여러 번 있지만, 예닐곱 살 이상이면 걸을 만하다.

고수동굴은 약 200만 년 전에 생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단양은 석회암 지대가 발달해 시멘트 공장이 여럿 있다.

석회암은 탄산칼슘이 주성분인 퇴적암으로, 이산화탄소를 함유한 지하수가 석회암 지대에 흘러들면 탄산칼슘을 녹여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석회굴이 만들어진다.

단양에는 고수동굴, 천동동굴, 온달동굴, 노동동굴 등 석회굴이 네 개나 된다.

동굴 천장에서 탄산칼슘이 용해된 지하수가 떨어지는 지점에 종유석이, 바닥에 석순이 생긴다.

오랜 시간이 지나 종유석은 점점 아래로, 석순은 위로 자라 연결된 기둥이 석주다. 고수동굴에서는 종유석과 석순, 석주를 가까이 관찰할 수 있다.

종유석이나 석순 등은 수천수만 년을 거쳐 생기고, 지금도 아주 느린 속도로 자란다.

고수동굴 내부에는 모양이 독특한 것마다 마리아상, 만물상, 천당못, 천지창조, 사랑바위, 사자바위, 인어바위 등 이름을 붙여놓았다.

사자바위와 인어바위를 주인공 삼아 동굴 이야기도 만들었는데, 탐방 구간 반환점에 있는 사랑바위를 사자바위와 인어바위의 사랑이 맺어지는 상징으로 삼은 것이다.

사랑바위는 종유석과 석순이 손가락 한 뼘 간격으로 만나기 직전인 모습이다.

굳이 이름을 찾아보지 않아도 쏟아지는 폭포, 흔들리는 커튼, 밤하늘의 오로라를 보는 듯 황홀하고 웅장한 모양이 가득하다.

단양 도담삼봉(명승 44호)은 남한강 상류에 있는 바위산 세 개로, 단양팔경 가운데 으뜸으로 꼽힌다.

도담삼봉에는 재미난 얘기가 전해온다. 강원도 정선의 삼봉산이 홍수에 떠내려와 도담삼봉이 되었는데, 정선현은 삼봉에 대한 세금을 단양현에 요구했다.

이에 소년 정도전이 “원치도 않은 삼봉이 떠내려오는 바람에 물길을 막아 단양에 피해가 막심하니 도로 가져가시오”라고 해,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얘기다. 정도전은 호를 삼봉이라 붙일 정도로 도담삼봉을 아꼈고, 퇴계 이황은 도담삼봉의 아름다운 풍광을 시로 읊었다.

맛깔나는 전주 여행의 완성 남부시장 한옥마을 야시장

맛깔나는 전주 여행의 완성 남부시장 한옥마을 야시장

맛깔나는 전주 여행의 완성 남부시장 한옥마을 야시장

폐교에서 책 짓는 마을로 고창 책마을해리

수백 채 한옥 지붕 위로 달빛이 내려앉은 고요한 밤, 상인들이 문 닫고 돌아간 전주 남부시장에 오방색 조명이 환하게 켜진다.

남부시장 한옥마을 야시장이 열린 것. 매주 금·토요일이면 길이 250m 시장 통로에 이동 판매대 45개와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먹거리와 공연, 즐길 거리가 풍성해 여행자는 물론 주민도 찾는 곳이다.

주말 야시장에 다녀가는 손님은 평균 8000~9000명.

에너지 넘치는 청년 상인과 손맛 좋은 다문화 가정 사람들, 시니어클럽 어르신이 저마다 ‘비밀 병기’로 손님맞이에 분주하다.

남부시장 한옥마을 야시장은 아케이드 시설이 갖춰져 궂은 날씨에도 끄떡없다.

천재지변이 있지 않는 한 무조건 열린다. 2층에 위치한 청년몰은 야시장보다 한발 앞서 남부시장으로 사람들을 이끌었다.

숙소로 발길을 돌리기 아쉬운 당신, 색다른 밤을 선물할 남부시장 한옥마을 야시장으로 가보자.

남부시장 한옥마을 야시장은 풍남문으로 향하면 찾기 쉽다.

풍남문에서 가까운 북문, 남부시장주차장이 있는 동문, 천변주차장 쪽 남문, 서문 모두 오방색 조명으로 밝힌 간판이 입구를 밝힌다.

야시장은 하절기에는 18:00~24:00까지, 동절기에는 17:00~22:00까지 손님을 맞는다.

십자로에 늘어선 야시장 판매대는 각양각색이다. 야시장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먹거리가 45개 판매대 중 31개다.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 전주에 왔으니 여기저기 다니며 배불리 먹었다 해도, 이곳 야시장의 유혹을 견디지 못할 터.

오직 남부시장 한옥마을 야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메뉴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군복을 입고 야시장의 후예를 꿈꾸는 ‘군대리아’의 버거, 나무젓가락에 낙지를 돌돌 말아 양념을 바르고 토치로 구운

‘낙지호롱’의 낙지꼬치, 인기 만점 ‘총각네스시’의 소고기불초밥, ‘지글지글팟’의 야채뚱땡과 철판스테이크도 긴 줄을 참고 기다려야 맛볼 수 있는 메뉴다.

이곳 야시장 먹거리 판매대에서는 토치를 이용한 불 쇼가 색다른 볼거리다.

짧은 시간 강한 화력으로 익혀 음식의 풍미를 더한다.

베트남, 태국, 중국, 라오스, 필리핀 등의 이국적인 음식도 맛볼 수 있다. 전주에 정착한 다문화 가정 사람들이 실력을 선보인다.

속을 시원하게 풀어줄 베트남 쌀국수, 알록달록한 라오스 만두(사구)가 단연 인기다.

음식 값은 3000~5000원 내외로 저렴하지만, 그 맛의 유혹에 끌려 2만~3만 원은 거뜬히 지출할지 모른다.

야시장에서는 전주 전통의 맛도 느껴볼 수 있다. 남부시장 터줏대감인 ‘조점례남문피순대’와 콩나물국밥집이 성업 중이다.

남문으로 시장에 들어서면 갖가지 소품 판매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목공예, 도자기공예, 자수, 액세서리 등 아기자기한 소품이 많다. 동문 입구로 들어섰다면 상가번영회 고객지원센터에 들러보자.

이곳에서 받은 지도를 들고 시장 곳곳을 살펴보는 방법도 추천할 만하다.

야시장 중앙에 마련된 무대에서는 다양한 이벤트가 펼쳐진다.

통기타·색소폰 연주, 버스킹 등 하루 2회 공연이 있고, 매월 마지막 금요일에 노래자랑이 열린다.

현장에서 접수하니 노래 실력을 자랑하고 싶다면 도전해보자.

야시장을 구경하다 보면 남문 방향에 2층 청년몰로 올라가는 계단이 눈에 띈다.

청년몰은 한옥마을에 야시장이 들어서기 전부터 남부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처음에는 사람보다 드나드는 고양이가 많다고 할 정도로 빈 점포가 수두룩했다.

1999년 남부시장 화재 이후 대부분 창고로 사용됐기 때문이다.

꿈 많은 청년 창업자들이 ‘적당히 벌고 아주 잘살자’는 모토로 방치된 공간에 하나둘 모여들었다.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많아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로 인기다. 청년몰이 문을 여는 시각은 오전 11시. 야시장과 달리 매일 운영한다.

폐교에서 책 짓는 마을로 고창 책마을해리

폐교에서 책 짓는 마을로 고창 책마을해리

폐교에서 책 짓는 마을로 고창 책마을해리

아련한 추억 품은 보수동 책방골목 산책

아이들이 떠난 학교는 오랫동안 외로웠다.

잠들어 있던 학교에 활기를 불어넣은 지 10여 년, 울창한 ‘책숲’이 들어섰고 사람들의 발길이 다시 이어졌다.

폐교에서 책마을로 재탄생한 이곳엔 ‘함께 쓰는’ 수많은 이야기가 종이 위에 새겨지고 있다.

평범하지만 소중한 우리들의 이야기다.

저 멀리 파도 소리 들리고 별들의 세세한 움직임까지 또렷이 보이는 고창의 월봉마을.

1933년, 이 작은 마을에 초등학교가 들어섰다. 나지막한 건물이 세워졌고 아이들에게 친근한 동물상이 교정 곳곳에 놓였다.

많은 학생들이 이 작은 배움터에서 꿈을 키워나갔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2001년, 나성초등학교는 문을 닫았다.

서울에서 출판사에 몸담고 있었던 책마을해리의 이대건 촌장은 선친이 세웠던 잠든 학교를 깨워야겠다고 생각했다.

2006년, ‘책마을’을 만들겠다는 꿈으로 폐허가 된 학교를 가꿔나가기 시작했고, 2012년엔 아예 가족과 함께 이곳에 정착했다.

“유럽엔 책마을이 많아요. 오래된 책을 모아둔 전통 있는 곳이죠.

책마을해리는 책이 있는 공간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삶, 이야기를 한 권으로 묶어내는 곳이었으면 해요.

스스로 저자가 되고 실제로 출판이 되는, 그리고 책 속에 쓴 꿈이 마법처럼 이뤄지는 마을이죠.”

삐걱거리는 복도를 다시 깔고, 교실을 말끔하게 단장했으며, 벽에 화사한 그림을 그렸다. 그러곤 차곡차곡 책을 들여놨다.

책마을해리가 생겨나면서 20여 가구가 사는 월봉마을에 활기가 돋아났다.

동네 어르신들은 자식들이 다녔던 학교가 다시 문을 열자 반겼다. 그리고 농사일이 끝나고 나면 이곳에 모였다.

글은 잘 모르지만 농사짓기 박사인 할아버지와 자식 키우기 선수인 할머니들이 각자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놨고, 그것은 소중한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책마을도 완연한 가을로 접어들었다. 붉은 벽돌을 가득 덮은 담쟁이덩굴이 계절의 운치를 더한다.

책마을해리엔 12만 권의 책이 있다. 방송국과 출판사, 도서관, 개인 등에게 기증 받은 책들이다.

천장부터 바닥까지 책이 쌓여 있는 ‘책숲시간의숲(책숲)’엔 묵직한 시간이 흐른다.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나무 서까래와 첩첩이 쌓인 책들의 시간이 묘하게 교차된다.

책숲 옆엔 종이를 만들어볼 수 있는 한지공방이 자리한다.

공방 한가운데 종이로 만든 작은 집에 들어가자 부드러운 공기가 감싸 안는다.

공방 창문 너머엔 닥나무 몇 그루가 자란다. 옆 교실엔 거대한 자태를 뽐내는 활판인쇄기도 있다.

낡아 보이지만 지금도 끄떡없이 돌아가는 인쇄기다.

교실 2칸으로 이루어진 ‘버들눈도서관’엔 수만 권 중에 고르고 고른 그림책과 어린이․청소년 책이 그득하다.

책을 기획하고 글쓰기, 그림 그리기 등을 하는 ‘누리책공방’에선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진다.

마룻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과 한 글자라도 더 익히려는 어르신들의 열정이 넘치는 공간이다.

아련한 추억 품은 보수동 책방골목 산책

아련한 추억 품은 보수동 책방골목 산책

아련한 추억 품은 보수동 책방골목 산책

큰나무집에서 난 큰밥심

부산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있다. 바로 자갈치와 해운대. 부산과 동시에 떠오르는 이들은 부산을 대표하는 쌍두마차가 아닐까.

먼저 자갈치시장부터 살펴보자. 자갈치시장 지척에 자리한 BIFF(부산국제영화제)광장 그리고 국제시장과 부평시장(깡통시장)은 묶어서 여행하기 좋다.

여기서는 이들을 ‘자갈치권’이라 부르기로 한다. 남포동과 중앙동까지 포함한다.

해운대는 동백섬(APEC누리마루)과 문탠로드를 묶어서 살필 수 있다. ‘해운대권’이다.

이 둘을 잇자면 대중교통으로 1시간이 넘게 필요하다. 동선을 짤 때 참고하는 편이 좋다.

이번 여행의 주무대는 ‘자갈치권’이다. 최종 목적지는 보수동 책방골목.

이름만으로도 추억이 전해진다. 보수동 책방골목에 가려면 자갈치역이나 중앙동역에서 내려야 한다.

이왕 보수동으로 향하는 김에 자갈치역에 내려 ‘자갈치권’ 볼거리부터 살펴보기로 했다.

자갈치 시장을 보고 BIFF광장에서 부평동 족발골목을 지나 국제시장과 부평시장(깡통시장)을 양쪽에 품고 북쪽으로 향하면 보수동 책방골목이다. 자, 자갈치역에서 지금부터 출발!

부산 지하철 1호선 자갈치역 4·6·8번으로 나오면 해안을 따라 자갈치 시장이 펼쳐진다. 자갈치라.

덜컥 부산 아지매들의 매콤한 ‘꼼장어’부터 떠오른다. 지금이야 별미로 자리잡은 꼼장어에 스민 애환도 따라온다.

사철 먹을 수 있지만 그 맛이 고소한 봄에서 여름까지를 최고로 친다.

꼼장어의 본명은 먹장어와 목꾀장어다. 부산과 영남지역에서 ‘꼼장어’라 부르던 것이 전국구로 넓혀져 본명보다 더 유명해졌다.

자갈치 시장 한 켠 바다를 따라 꼼장어집들이 몰려있다. 밤바다와 꼼장어를 안주삼아 맛보는 한잔은 부산여행의 백미다.

싱싱한 오징어며 고등어 좌판과 맞은편에 이어진 생선구이집들이 사람들을 반긴다. 짠내에 버무려진 꼼장어 구이 냄새가 제법 매콤하다.

자갈치 시장을 구경하고 BIFF광장으로 향한다. 영화인들의 바디페인팅보다 먼저 반기는 건 이승기의 씨앗 호떡.

부산 별미로 꼽히는 어묵과 보기에도 입안이 얼얼한 떡볶이 등 간식거리들도 가득이다. 부산국제영화제 현장답게 극장들이 제법 많다.

자갈치 시장을 등 뒤에 대고 국제시장으로 향하는 길. 국제지하상가 시작 전 큰 사거리 왼쪽으로 부평동족발골목이 펼쳐진다.

부산 별미 ‘냉채족발’ 여기서 맛보면 되겠다.

다시 국제지하상가 시작 전 사거리로 돌아오자. 바다를 등에 대고 북쪽으로 직진한다. 왼쪽으로 부평시장, 오른편으로 국제시장이다.

자갈치 시장을 중심으로 뻗은 좌청룡 우백호 같다. 부평시장에서 유부보따리며 호박죽으로 속을 채우고 국제시장에서는 쇼핑을 즐겨보자.

국제시장 끝자락 국민은행 사거리에서 큰길을 건너면 왼쪽으로 보수동 책방골목이 시작된다.

보수동 책방골목임을 알리는 안내판과 함께 구불구불 좁은 골목이 펼쳐진다.

방금 전까지 속해있던 시끌벅적한 시장골목과는 다른 냄새다. 골목을 따라 양옆으로 빼곡하게 쌓인 책들이 정겹다.

언젠가 누군가의 가슴 한켠을 차지했을 손때 묻은 책들에 그들의 학창시절이 더해진다.

보수동 책방골목에 대해 알고 싶다면 <동아서적> 맞은편에 자리한 보수동책방골목 문화관부터 들러보자.

층마다 보수동 책방골목의 추억들을 소개하고 있다. 북카페도 있으니 잠시 쉬어가도 좋겠다.

주말(금~일) 오전10시부터 오후4시까지는 문화해설사들에게 보수동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6·25전쟁으로 임시 수도가 된 부산은 전국에서 모여든 피난민들로 가득했다.

그들은 주로 지금껏 살펴 본 자갈치 시장, 부평시장, 국제시장 등의 시장통 자락에 정착했다.

지금도 볼 수 있는 자갈치시장의 난전에서 옛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곳 보수동 사거리 골목에 처음 자리를 잡은 <구 보문서점>의 손정린 부부도 그랬다.

전쟁통 북에서 피난 온 부부는 보수동 골목에 박스를 깔고 미군부대에서 나온 헌잡지와 만화, 고물상으로부터 모은 갖가지 헌책 등으로 노점을 열었다.

이것이 보수동 책방골목의 시작이었다.

큰나무집에서 난 큰밥심

큰나무집에서 난 큰밥심

큰나무집에서 난 큰밥심

대한민국 근대사의 중심지 대구

점심시간, 도시인은 바쁘다. 음식점으로 느긋하게 걷지 않는다.

사람이 몰리기 전에 들어가고 싶은 것이다. 행여나 줄을 서야 되면 기다리는 시간이 아까워 바로 들어갈 수 있는, 가까운 옆집 또는 그 옆집으로 들어간다.

음식이 나오기 무섭게 입으로 가져가는 사람들. 씹는 둥 마는 둥 넘겨대는 통에 입안은 빌 새가 없다.

이렇게 급하게 먹으니 음식의 양념, 센 맛, 자극적인 맛만 남는다.

음식 재료의 각 고유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최소한의 씹음, 음미할 시간이 부족한 바쁜 도시인의 식습관 때문이다.

기분 좋은, 몸에 좋은, 맛있는 여행을 하러 대구 달성군 가창면으로 향했다.

대구 신천대로를 통해 도심을 통과. 달성군으로 넘어가면서 하나 둘 자연의 모습이 늘어간다.

논과 밭, 작은 냇가와 동산, 드문드문한 거리를 사이에 둔 레스토랑과 휴양지 등 도심 외곽의 풍경이다.

곧 가창면에 이르고 ‘우록리 방면’ 안내판을 따라 샛길로 접어든다.

목적지인 큰나무집(대표. 조갑연)이 가깝다. 이 음식점은 ‘궁중백숙’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최근 내놓은 ‘사찰밥상’으로 또 다른 관심을 받고 있다.

템플스테이를 찾는 이가 늘고, 육류를 제외한 식단의 장점이 전문가를 통해 전해지면서 사찰음식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증가하는 추세다.

일반적으로 사찰음식이라 하면, 스님이 먹는 음식으로 고기, 오신채(마늘, 파, 부추, 달래, 무릇)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인이 즐겨 먹기에는 다소 밋밋하고, 무언가 허전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에 사찰음식의 좋은 점을 반영하면서 대중적으로 친숙한 음식을 지자체와 식당이 함께 만드는 시도가 여럿 보인다.

그 결과물 또한 드러나는 가운데, 큰나무집의 주인장 조갑연 씨는 “자극적인 양념과 육류를 과도하게 즐기는 풍토에서 벗어나

좀 더 몸에 좋고 맛도 좋은 음식을 만들고 내어드릴 수 있어서 선뜻 참여했다”라며 사찰밥상을 만들게 된 계기를 전했다.

조 씨의 밥에 관한 철학은 확고하다. 그녀는 사찰음식을 다루기 전에 밥부터 이야기해야 된다며 운을 띄웠다.

“한국인 힘은 밥에서 나오는 거 아니겠어요. 밥심이라는 말도 그렇고요.

이렇게 중요한 밥을 편하게, 자주 먹는 곳이 집이니까 손님이 편하게,

부담 없이 들려서 먹을 수 있는 밥상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다.

이어서 조 씨는 “‘친정집에서 먹는 밥’처럼 정성 가득한, 편하게 식사할 수 있는 밥상을 대접하고 싶어요” 그렇다.

어머니가 차린 밥상은 어떤 밥상도 대신할 수 없는 것. 그런 밥상을 염두하며 구상한 밥상 위에 사찰음식의 좋은 점을

살린 조 씨만의 특별함이 큰나무집의 ‘사찰밥상’인 것이다. “배고플텐데 인터뷰는 일단 드시고 더 하시죠”라며 대답할 여지도 없이 자리를 비켜준다.

상다리가 부러져라 나오는 한정식 자리에서 첫 느낌은 푸짐함이지만 쉽게 젓가락 갈 길이 보이지 않았던 어색함.

구성과 양에서 균형을 잡지 못한 코스형 한정식은 후반부로 갈수록 먹는 자체가 곤욕이다.

불편했던 한정식과 달리 사찰밥상은 적당한 반찬 가짓수와 먼저 먹기 좋은, 나중에 먹기 좋은 반찬으로 구분이 쉽다.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고 예쁜 그릇에 반찬이 예쁘게 담겼다.

큰나무집에서 가장 먼저 별미로 떠올랐다는 호박죽. 손수 호박을 손질해 만들어 풍미가 깊다.

손이 많이 가지만 ‘우리 집 자랑을 만든다’ 생각하면 이처럼 보람있는 요리도 없다고 한다.

찰진 달달함이 입속을 가득 채운 후 식도를 지나면서 단숨에 입맛을 끌어올린다. 호박잎, 양배추, 케일 등 쌈

꺼리가 여럿 준비돼 있어 취향에 따라 손에 한 잎 놓고 밥을 반 숟가락 얹는다.

그 위에 청국장의 두부와 강된장 약간 덜어 쌈을 완성, 한입에 우물우물 씹으니 특별할 것 없는 친숙한 그 맛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고기 대신 버섯을 많이 넣은 잡채를 크게 한 젓가락 집어 씹는데 고기가 없다는

허전함보다 쫄깃한 버섯의 식감이 맛을 더하고 간도 밋밋한 기별이 없으니, 잡채에 고기가 없어도 괜찮구나 싶다.

대한민국 근대사의 중심지 대구

대한민국 근대사의 중심지 대구

대한민국 근대사의 중심지 대구

마음마저 덥히는 대구의 소문난 고깃집을 찾아서

대구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중심도시이다.

6학년 1학기 2단원 ‘근대 국가 수립을 위한 노력과 민족 운동’ 과 관련하여 일제강점기의 살아있는 역사체험여행을 떠나보자.

1900년 초 일제는 한국을 경제적으로 파탄시켜 한국경제를 일제에 예속시키기 위해 강력한 차관정책을 썼다.

1907년 한국이 일제에 진 외채만 1300여만원, 더 이상 외채상환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게 되자.

대구를 중심으로 나라의 빚을 갚아 국권을 회복하자는 운동이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일어났다.

이 국채보상운동의 중심도시가 바로 대구다.

대구는 이렇게 한국 근대 역사의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해냈으며 지금도 그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대구의 골목 구석구석에 남아있다.

생생했던 당시 함성과 이야기가 들려오는 것 같은 대구 근대 골목투어의 출발점 동산 청라언덕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선교사 챔니스 주택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에는 근대 시대를 살다간 선교사들이 거주하던 주택이 그대로 보존되어 지금은 의료, 선교박물관으로 일반인들에게 개방되고 있다.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선교사 챔니스 주택은 당시 서양식 건축물의 낭만적이고 실용적인 측면일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우리의 근대문화유산이다.

동산의료원 옆 제일교회와 선교사 주택 사이로 난 90여개의 계단이 바로 3.1 만세운동길이다.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계단이지만 1919년 우리나라에서 일제의 무단통치에 항거하는 3.1만세운동이 일어났을 때 당시

대구의 학생들과 시민들은 이 계단을 통해 태극기를 흔들며 대구 시내로 쏟아져 내려왔다.

당시 생생했던 현장을 증언이라도 하듯이 계단 양쪽 벽으로 가득 당시의 사진과 글들이 전시되어있다.

한 장 한 장 역사책 읽어 내려가듯 소중하게 읽어 내려오면 서문시장으로 통하는 길이 나오며 계산성당과 마주하게 된다.

계산성당은 1902년에 건축된 우리나라에서 세번째로 오래된 고딕 양식의 건축물입니다.

1886년 로베트 신부가 경상도 지역에 천주교를 전파하던 중 현재 계산성당 자리에 초가집을 임시 성당으로 사용하게 되며 계산성당의 역사는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목조건물로 시작했으나 불에 타게되어 1902년 지금과 같은 고딕양식의 성당으로 다시 그 모습을 바꿨습니다.

계산성당은 대구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서양식 건축물임과 동시에 대구에서 유일한 1900년대 성당 건축물이기도 합니다.

일제강점기를 대표하는 저항시인 이상화의 시 한편을 대구의 어느 쌀쌀한 겨울 골목길 끝에서 만난다.

풋내 나는 살지고 부드러운 흙, 땀내나는 우리의 땅을 그는 상처 입은 다리로 절둑거리며 끝끝내 걸어가고 있다.

꿈결 속에 만난 듯한 다정한 이웃들, 지금은 빼앗긴 들이지만 봄을 기다리는 시인의 마음이 그대로 읽혀져 아름다웠던 그의 발자취를 느끼러 골목을 돌아간다.

골목 어귀에는 그의 명작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가 빼곡하게 벽화로 적혀있다.

그리고 그가 생전에 살았던 아름다운 작은 집을 골목 어귀에서 만날 수 있다.

이상화 고택에 사용된 고벽돌 담장은 당시 근대의 분위기를 잘 살리기 위해 KT&G 측으로부터 일부를 기증받아 복원하였다.

집안에는 그의 생전 유품과 사진들이 정갈하게 전시되어있어 시인 이상화의 흔적을 느껴볼 수 있다.

이상화 고택 바로 이웃해서 자리잡고 있는 고택은 국채보상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고 서상돈의 고택이다.

뽕나무 골목 설화의 주인공 두사충은 중국 두릉 사람이다.

그는 시인 두보의 21대손으로 임진왜란 때 귀화하여 지금의 대구 계산성당 인근 지역에서 살았다.

당시 두사충은 조선의 열악한 의복문제를 해결하는데 관심이 많아 집근처에 뽕나무를 많이 길렀다고 한다.

어느 날 뽕나무잎을 따던 두사충은 이웃집에서 절구를 찧던 아름다운 아낙에게 마음을 빼앗겨 매일 넋이 나간 듯 담장 위에 올라갔다.

아들을 안쓰럽게 여긴 두사충의 아버지는 미모의 아낙을 찾아가 중매를 넣었는데, 마침 미모의 아낙은 남편을 잃고 홀로사는 처지여서 사랑의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 뽕나무 골목은 그 많던 뽕나무는 모두 사라지고 담장 벽화 한 장으로 두사충과 아낙의 사랑이야기가 남아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