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결정이 말라붙은 고흥 오마도 간척지

눈물의 결정이 말라붙은 고흥 오마도 간척지

눈물의 결정이 말라붙은 고흥 오마도 간척지

부여 백제문화단지 1400년 전 백제의 숨결이 깨어나다

행락이 아닌 ‘여행’이라면, 길 위에서 더러 뜨거운 상처 같은 이야기들과 만나게 된다.

이긴 자들보다 진 자들이, 성공한 자들보다 실패한 이들이, 가진 자들보다 못 가진 자들이 살아낸 삶은 언제나 더 뜨겁다.

입신양명이나 부귀영화야 당대의 성취쯤으로 끝나지만, 못 다 꾼 꿈이나 가슴 치는 억울함은 오래 남아 긴 시간을 건너간다.

그렇게 건너온 이야기를 여름의 절정을 넘어서 찾아간 고흥 땅에서 만났다.

너른 논이 까마득한 소실점까지 이어지는 해창만 간척지.

논과 논 사이에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는 물길이 하늘을 담아낸다.

소외된 이들의 눈물과 가난한 이들의 희망이 소금 결정처럼 남아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전남 고흥의 오마도 간척지다.

분노와 슬픔, 그리고 눈물겨운 가난에 뿌리를 대고 있는 땅.

그곳에 갈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도, 노을이 물드는 모습을 바라보다 자주 울컥하게 되는 것도 모두 간척지를 이룬 것들에 대한 생각 때문이었다.

서울 여의도 크기의 세 배쯤 되는 고흥 오마도 간척지는 한센인들이 1962년부터 3년 동안

소록도 북쪽 풍양 반도에서 도양읍 봉암 반도까지 2㎞가 넘는 바다를 메워 만들어낸 땅이다.

간척을 위해 한센병 음성환자 2000명이 2개의 작업대로 나누어 교대로 한 달씩 일했다.

당시 소록도의 한센병 음성환자는 3300명.이 중 작업이 가능한 인원이 2000명 정도였으니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다 나섰던 셈이었다.

이들에게 지급된 장비는 삽과 손수레뿐.

대나무와 소나무로 만든 사다리를 수심 8m가 넘는 바다에 박아놓으면

이튿날 펄 속으로 다 잠겨버렸고, 인근의 산에서 캐낸 흙과 바위를 리어카로 실어 바다에 부으면 밀물의 바다가 이내 흙을 육지 쪽으로 밀어붙였다.

사다리를 다시 짜서 바다에 넣고 밀려 나간 흙을 다시 바다에 쏟아붓기를 끝없이 반복했다.

천신만고 끝에 겨우 막은 제방이 거센 조류에 허망하게 터져버린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노동. 부상자는 속출했고 더러는 목숨을 잃기도 했다.

한센인들은 왜 이런 고된 노동을 마다하지 않았을까. 그들이 원했던 것은 ‘정착’이었다.

완치돼 전염성이 없다는 판정을 받은 음성 환자들은 귀향을 허락받았다.

그러나 부푼 꿈을 안고 고향으로 향했던 이들은 십중팔구 다 병원으로 돌아왔다. 고향의 가족마저 받아주지 않았던 것이다.

돌아온 한센인에게 병원장은 ‘바다 간척사업에 나서면 새로운 정착촌을 만들어 주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소록도를 떠나 육지에서 살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한센병 환자들은 제안을 받아들였다.

반세기가 넘도록 치유되지 않을 상처의 시작이 이랬다.

물막이 공정이 80~90%가 끝났을 무렵, 정부는 돌연 한센병 환자들을 모두 내쫓았다.

총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한센병 환자와는 함께 살 수 없다’고 반대하던 간척지 주변 주민들의 민원에 굴복했던 것이었다.

스스로의 손으로 땅을 만들어 살고자 했던 한센인들의 꿈은 이렇듯 허망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소외된 병자를 국가가 주도하는 건설사업에 동원했던 것이나 약속을 저버리고 파렴치하게 마지막 꿈마저 빼앗았던 건 무자비한 폭력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폭력에 유린당한 이들은 이 땅에서 가장 낮고 불쌍한 사람들이었다.

부여 백제문화단지 1400년 전 백제의 숨결이 깨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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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걷기 좋은 길 성안올레 1코스 원도심 투어

백제문화단지의 정문인 정양문을 지나면 시원스런 중앙광장이 펼쳐지고, 그 뒤로 사비궁이 자리해 있다.

사비궁은 정전인 천정전을 중심으로 서궁과 동궁으로 나뉜다.

천정전이 왕의 즉위 의례나 신년 행사 등 국가의 각종 의식을 거행했던 공간이라면 서궁과 동궁은 왕의 집무 공간이다.

서궁에선 무신, 동궁에선 문신에 관련된 업무를 처리했다고 한다.

서궁과 동궁의 정전을 각각 무덕전과 문사전이라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천정전 중앙에는 어좌(御座)가 놓여 있다. 용좌라고도 불리는 어좌는 왕이 앉던 의자다.

천정전의 어좌는 부여와 공주 지역에서 발굴된 백제시대 유물을 토대로 재현한 것으로, 기단부의 문양은 국보 제128호인 금동관음보살입상의 대좌에서

어좌 뒤 봉황문은 부여 규암면 외리에서 출토된 유물에서 차용한 것이다.

봉황은 태평성대에만 나타나는 전설 속의 새로 용, 거북, 기린과 함께 사령(四靈)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어좌 양옆으로는 왕과 왕비의 평상복과 대례복이 전시돼 있다.

서궁의 무덕전은 백제시대 복식을 체험해볼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선 왕이 입던 용포에서 장군의 갑옷에 이르기까지 백제의 다양한 복식을 무료로 체험해볼 수 있다.

무덕전 중앙의 멋스러운 의자와 드라마 <계백> 에 나왔던 주인공들의 실물 크기 모형은 모두 기념촬영을 위한 소품들이다.

동궁의 문사전으로 걸음을 옮기면 백제 제26대 성왕이 웅진(공주)에서 사비(부여)로 천도를 선포하는 장면을 홀로그램으로 만나볼 수 있다.

사비궁 우측에는 능사(陵寺)가 자리해 있다. 능사는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백제 위덕왕 14년에 창건한 사찰이다.

백제문화단지 내 능사는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절터(능산리사지·사적 제434호)에서 발굴된 유구를 토대로 복원한 것이다.

여기서 잠깐! 능사를 사찰의 이름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능사는 사찰의 이름이 아니라 ‘능 옆에 지어진 절’을 가리키는 일반명사이다.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던 사찰을 원찰이라 부르는 것과 비슷한 경우다.

실제로 능산리 절터에서 백제왕릉원까지는 직선거리로 채 200m도 되지 않는다.

백제문화단지 내 능사에는 대웅전과 오층목탑을 포함해 향로각, 부용각, 결업각, 자효당, 숙세각 등 부속 전각까지 고스란히 복원돼 있다.

그 중 시선을 끄는 건 단연 오층목탑이다. 높이 38m에 이르는 이 거대한 탑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복원한 백제시대 목탑이다.

능산리 절터 목탑 자리에서는 능사의 창건연대가 적힌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국보 제288호)이 출토되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리함과 함께 백제를 대표하는 유물 중 하나인 백제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도 이곳 절터의 서쪽 건물지에서 출토되었다.

불전에 향을 피우기 위해 사용했던 백제금동대향로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우리 유물 100선’에 선정할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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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랑과 흥겨운 판소리의 무대 전북 남원

주변이 깔끔하게 정비된 산지천은 서울 청계천의 모델이 된 곳이다.

이런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면 대부분 깜짝 놀란다.

“아니, 산지천이 청계천을 따라 바꾼 게 아니고요?”

많이 오해하고 있는 사실이다. 산지천은 오래전부터 도민들의 생활 터전이었던 곳으로 1960년대에

인구가 증가하면서 땅을 넓히기 위해 복개했다가 환경 문제로 1990년대에 모두 걷어냈다.

완벽하게 복원된 산지천에는 맑은 물이 흐르며 물고기들이 헤엄쳐 다닌다.

또한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관광 명소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과거 이명박 서울시장 시기에 청계천 복원을 꾀하면서 이러한 산지천의 사례를 많이 참고했다고 한다.

산지천 다리를 건너면 성안올레 스탬프 코너가 나타난다.

우리보다 먼저 스탬프를 찍고 있던 이들은 중국인 관광객이었다.

중국에까지 성안올레가 벌써 소문이 난 건가?! 뿌듯한 마음으로 스탬프에 도장 꾹, 찍고 길을 재촉했다.

성안올레를 지나가는 길에 옛 제주 성벽이 남아 있는 계단길을 들렀다.

겉보기엔 평범한 계단 같은데 제주성의 유구한 역사를 담고 있는 곳이다.

일제강점기에 제주성은 모두 허물어져 버리고 유일하게 남은 성벽의 흔적이 이 계단길 아래 남아 있다.

계단 옆길로 나서면 성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많은 부분이 담쟁이덩굴에 가려 있지만 실제로 보면 커다란 암석들이 높게 쌓아 올려진 꽤나 웅장한 성벽이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일제 때 자원수탈을 위한 항구를 만들면서 제주성을 허물어 그 돌로 바다를 매립했는데

당시 측후소(기상청)가 있던 지금의 계단길은 허물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나마 남아 있게 된 것이다.

성안올레 도보투어는 김만덕 기념관도 지나간다. 제주의 인물로 ‘김만덕’을 빼놓을 수 없다.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기생의 몸종이 되었던 김만덕은 후에 거상이 되어 막대한 부를 형성했는데

나라에 흉년이 들어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자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해 제주도민을 살린 의인 중의 의인이다.

김만덕 기념관에는 이러한 이야기들이 재미나게 꾸며져 있다.

골목길 안쪽에는 건입박물관이 있다. 마을 주민들이 전시물품을 기증해 만든 작은 박물관인데 소소한 볼거리들이 많다.

과거에 유행했던 제주 산호 기념품이나 직접 쓰던 돌절구, 다리미, 물허벅 등 마치 타임머신 여행을 떠나온 느낌이다.

박물관 후문으로 나서면 잘 꾸며진 생태 공원과 물사랑홍보관이 있다.

과거 제주도는 물이 귀하고 부족해 조선시대에는 최악의 유배지로 여겨지던 곳이었다.

기술이 발달해 지하수를 퍼올리게 되면서 지금은 삼다수를 수출까지 하는 시대가 되었다.

물사랑홍보관에서는 이런 이야기들을 자세히 들을 수 있다.

성안올레 1코스에는 동자복, 2코스에는 서자복이 있는데 제주 읍성의 동쪽과 서쪽에서 마주 보는 느낌으로 서 있다고 한다.

돌하르방과 닮은 듯 다른 동자복은 아주 오래전부터 마을 주민들이 미륵불로 여기며 신성하게 여겨왔다고.

이날도 누군가 기도를 드리고 간 듯 음료와 목걸이가 공물로 놓여 있었다. 동자복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믿음의 상징으로 굳건히 서 있었다.

김만덕 객주가 내려다보이는 길을 지나 건입동 마을 길로 접어든다.

멋지게 그린 벽화 길을 지나 산지등대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푸른 바다와 제주항 전경이 한눈에 잡히며 길을 따라 곧게 걸어가면 산지등대가 나타난다.

산지등대는 1916년 무인등대로 처음 설치되었으며 100년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장소이다.

작은 등탑이 예전 것이며 큰 등탑은 지금도 여전히 불을 밝히고 있다.

등대 안 관사였던 곳을 카페로 꾸며 쉬어갈 수 있다.

여기까지 쉼 없이 올라왔으니, 시원한 음료를 한 잔 마시면서 한참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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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포부터 호미곶까지 사색하며 걷는 포항 여행 코스

춘향이와 이몽룡이 만나 풋풋한 사랑의 봉우리를 터뜨리고, 천생연분 변강쇠와 옹녀가 불 같은 사랑을 나누기도 했으며

가난하지만 심성 고운 흥부의 우애 깊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땅은 다름 아닌 여느 고을보다 먼저 봄이 찾아오는 남원이다.

로맨티스트와 휴머니스트의 정기가 서린 이 고장에서 어느 봄날, 누구보다 따뜻한 사랑을 꽃피워보자.

‘사랑사랑 내 사랑이야 어허둥둥 내사랑이지야 삼오신정 달밝은밤 무산천봉 완월사랑 목락무변 수여천에 창해같이 깊은 사랑…’

줄리엣의 창 아래에서 로미오가 부르던 사랑의 세레나데가 바로 이와 같지 않았을까!

세기의 연인이라 불리며 보는 이의 가슴마저 설레게 한 춘향과 몽룡.

지금이라도 광한루에 가면 고운 속치마 내보이며 그네를 타던 춘향의 고혹적인 모습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들뜨곤 한다.

이몽룡처럼 번쩍하는 사랑에 빠지고 싶은 이, 춘향처럼 누군가를 매혹하고 싶은 이들에게 사랑의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광한루의 유혹이 지금 시작된다.

광한루원에는 춘향과 몽룡이 만났던 곳, 사랑을 나누었던 곳 등 곳곳에 촬영 흔적이 남아 있어 금방이라도 춘향이가 버선발로 뛰어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광한루원을 두고 사람들은 신선이 사는 이상향을 지상에 건설한 조선시대 대표적인 정원이라고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하늘나라 월궁인 광한루와 그 아래 천상의 은하수를 상징하는 호수와 오작교,

그리고 신선들이 산다는 전설속의 삼신산을 연못 가운데 조성하여 전체적인 구성이 마치 천제우주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젓이 산책하기에도 좋은 곳이 또한 광한루는 춘향전의 무대가 된 까닭에 연인들도 많이 찾는다.

사실 춘향과 몽룡의 사랑이야기가 현실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데에는 광한루의 아름다움이 큰 몫을 하고 있다.

특히나 오작교는 해마다 칠월 칠석이면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안타까운 천상의 사랑을 춘향과 이몽룡을 통해 완성시킨 사랑의 다리로도 유명하다.

그 외에도 춘향사당, 완월정, 춘향관, 월매집, 그네, 전통놀이 체험장 등 오랜 역사와 더불어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을 해볼 수 있는 곳 등이 많다.

춘향과 이몽룡이 이별의 정을 나눈 곳이라 전해지는 오리정도 들려보자.

춘향고개 하단 도로 좌측에 위치하고 있는 2층 목조 건물인 오리정은 춘향과 이몽룡이 백년가약을 맺고

남원에서 행복하게 지내다가 이몽룡이 남원부사로 전직하게 되어 부친을 따라 남원을 떠나게 되자 애절한 심정으로 함께 슬픔을 나눈 곳이라 전해진다.

복숭아꽃처럼 어여쁜 여자가 버드나무 같이 가는 허리는 봄바람에 하늘 하늘거렸다.

이처럼 어여쁜 여자가 팔자가 사나워 치마 자락 한 번 만지는 남자마다 모두 죽기 일쑤였다.

그런 여자가 제 짝을 만났으니 바로 변강쇠였다. 이들의 만남의 장소가 된 곳이 바로 장승 쌈지공원이다.

변강쇠뎐의 흔적이 남아있는 백장계곡의 가늘고 길게 늘어져 흐르는 물줄기가 내려와 웅덩이를 만드는 지형은 남자의 힘이 쏘에 모여 기를 생성하는 형상이다.

그리하여 이곳 태아바위에 염원을 하면 귀한 아들을 얻으며 근연바위를 긁어 국을 끓여 먹으면 기운이 세진다고 하고,

비가 내린 후에는 전국팔도의 많은 명창들이 이 곳의 폭포에서 목청을 다듬기도 했다고.

역시나 전국의 장승들이 모여들었다는 전설처럼 수많은 장승과 남근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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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중심에서 즐기는 알뜰한 여름방학

때는 신라 진흥왕 시절, 장기현령이 늦봄에 각 마을을 순시하다가 지금의 용주리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폭풍우가 휘몰아치면서 바다에서 용 10마리가 승천하다 그 중 1마리가 떨어져 죽자

바닷물이 붉게 물들면서 폭풍우가 그쳤다고 합니다. 9마리의 용이 승천한 포구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 바로 ‘구룡포’입니다.

구룡포는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조용한 어촌마을이었습니다.

어부 이외에는 가족의 먹을 거리를 구하기 위해 바다에 나가는 정도였지요.

일제강점기가 되자 구룡포는 최적의 어업기지로 떠올랐습니다.

‘도가와 야사브로’라는 일본인 수산업자가 조선총독부를 설득해 구룡포에 축항을 제안하였고

큰 배가 정박할 곳이 생기자 수산업에 종사하던 일본인들이 대거 구룡포로 몰려온 것이지요.

방파제를 쌓아 생긴 새로운 땅에는 일식가옥이 빼곡히 들어섰습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100여 채 남아있던 일본인가옥은 현재 50채가량 남았습니다.

거리 곳곳에는 일제강점기 당시 사진이 붙어 있어 현재 모습과 비교하며 둘러볼 수 있습니다.

집 내부에는 다다미는 물론, 일본 잡지로 도배한 방문, 후지산이 그려져 있는 유리창 등 일제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남아 있지요.

포항시에서는 이를 활용해 한때 풍요로웠던 일본인들의 생활상과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의 증거물이자 교육장으로써 ‘구룡포 근대 문화 역사 거리’를 조성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표지판에서 오른쪽으로 쭉 걷다 보면, 멋들어진 건물 한 채가 보이는데요

이 건물은 1920년대 가가와현에서 온 하시모토 젠기치(橋本善吉)가 살림집으로 지은 2층 일본식 목조가옥입니다.

그는 구룡포에서 선어운반업으로 크게 성공하여 부를 쌓은 사람입니다.

건물을 짓기 위해 당시 일본에서 직접 건축자재를 운반하여 건립하였다고 합니다.

현재 복원 공사를 마무리하여 ‘구룡포 근대역사관’으로 개관하였습니다.

건물 내부의 부츠단, 고다츠, 란마, 후스마, 도코바시라 등이 1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잘 남아 있으며 일본식 건물의 구조적 의장적 특징을 잘 갖추고 있습니다.

이 건물은 한국과 일본 건축 전문가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대상으로 삼는 건축물로 그 가치가 크다고 해요.

1층에는 100년 전 일본 어부들이 구룡포에 정착하게 된 상황과 당시 일본인들의 생활상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부츠단과 고다쯔, 부엌 등 당시 이곳에 살았던 이들의 생활상을 재현해 두었습니다.

2층에서는 일본으로 돌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당시 구룡포에 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일본인들로 구성된 ‘구룡포회’ 회원들의 육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집안 곳곳을 둘러보다 복도 끝에 걸터앉습니다. 목조건물 특유의 안락함과 창 밖에서 들어오는 겨울 볕은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넓은 정원이 딸린 2층 목조 가옥에서 떵떵거리며 살았을 그의 모습을 떠올리니 가슴 한쪽이 씁쓸합니다.

근대역사관을 나와 왔던 길을 따라서 쭉 걸으면, 좌우로 늘어선 일본의 적산가옥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한적한 일본마을의 풍경을 연상하게 하는 골목입니다.

적산가옥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이 골목은 마치 일시정지라도 한 듯이 그 시절의 기억을 아직 떨쳐버리지 못한 채 멈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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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충주시 중앙탑면 중앙탑길(탄금호 수상레포츠 레저체험 아카데미)

한반도의 중심, 충주는 푸른 남한강과 부드러운 산이 맞아주는 마음 넉넉한 고장이다.

어디로 발길을 잡아도 가족과 추억을 만들 명소가 있어 짧은 여름방학을 알토란같이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호수와 산, 시골 마을의 체험이 기다리는 충주로 떠나보자.

탄금호는 남한강 물줄기가 만든 호수로,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국보 제 6호)과 탄금대를 양안에 거느리며 푸른 물빛을 자랑한다.

2013충주세계조정선수권대회가 열렸던 탄금호 국제조정경기장에 가면 신나는 수상 레포츠를 무료로 즐길 수 있다.

한국해양소년단충북연맹이 운영하는 탄금호 수상레포츠 레저체험 아카데미는 다양한 수상 레포츠 기구를 이용할 수 있는 곳이다.

푸른 호수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둥둥바이크다.

자전거처럼 페달을 밟아 움직이는 둥둥바이크는 커다란 공 세 개로 연결되어 물 위에 둥둥 뜨는 재미난 기구다.

힘들이지 않고 물살을 가르며 나가는 맛이 상쾌하다. 페달이 발에 닿는 초등학생이면 조정 요령을 익힌 다음 탈 수 있다.

용 머리를 단 드래곤보트는 멋진 조정 선수가 되어보는 경험을 선물한다.

선수에서 지휘하는 북소리에 맞춰 탑승자들이 힘껏 패들을 저으면 물살을 가르며 나가는 보트를 따라 잔잔하던 탄금호 물결이 너울너울 춤춘다.

시원한 바람이 한여름 더위를 식혀주니 동해안 해수욕장이 부럽지 않다.

가족과 함께 유유자적 즐기는 카약도 빼놓을 수 없다.

조정에 익숙지 않아 뱃머리가 엉뚱한 곳으로 돌아가기 일쑤지만, 그 또한 카약 초심자가 누릴 수 있는 재미다.

잠시 패들을 내려놓고 가족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추억이 된다.

카약을 타기 전에 안전 수칙을 듣고, 패들 조종 요령을 배우는 것이 필수 코스다.

‘작은 요트’라는 뜻의 딩기요트는 가장 쉽게 체험할 수 있는 무동력 요트다. 탄금호에서 딩기요트를 타보자.

바람의 흐름을 잘 파악해야 하고, 체중을 이용해서 조종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강사들에게 교육을 받고 요트 체험을 하는 좋은 기회다.

충주조정체험학교에서도 무료 조정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개인이나 단체가 인터넷으로 접수하면(단체는 전화 접수) 조정 선수가 되어보는 멋진 경험을 할 수 있다.

이제 시원한 숲의 한가운데로 들어가자. 문성자연휴양림에 위치한 충주행복숲체험원에는 초록 그늘을 헤치고 올라가는 모노레일이 기다린다.

휴양림 아래 승강장에서 출발해 2km를 왕복하는 모노레일은 편안히 앉아 울창한 숲의 기운을 느끼는 특별한 경험을 선물한다.

목재문화체험장에서는 나무로 동물 인형이나 목걸이 등을 만드는 아기자기한 목공예 체험도 하고, 생활 가구와 소품까지 만들어볼 수 있다.

예약하면 재료비만 내고 가구도 만들 수 있는 실속 체험 공간이다.

햇살아래체험농장은 하룻밤 묵으며 여유 있게 머물기 좋은 공간이다.

펜션과 오토캠핑장, 캠핑 장비를 대여하는 글램핑장과 카라반 등이 있어 취향에 따라 고르면 된다.

햇살아래체험농장의 매력은 마을 곳곳에 자리한 체험거리다.

당나귀와 사슴, 타조와 염소 등 20마리가 넘는 동물이 사는 동물농장은 아이들이 직접 먹이를 주도록 꾸며진 공간이다.

어미 잃은 고라니까지 농장 식구가 되어 아이들과 함께 잔디밭에서 뛰논다.

작은 승마장에서 말을 타보는 승마 체험, 다육식물을 직접 심어보는 식물 체험까지 도심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색다른 경험이 기다린다.

공예가 선생님들과 마주 앉아 만들어보는 공예 체험은 엄마들에게도 인기다.

밭에서 직접 딴 옥수수를 삶아 먹고, 마당에 피어난 봉숭아로 꽃물도 들이며 알콩달콩 추억을 만들어보자.

경운기를 타고 농장을 한 바퀴 돌면 농촌 아이가 된 것 같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잔디밭과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정취 때문에 시골집 삼아 농장을 찾는 가족도 많다고 한다.

충주하니마을은 꿀벌을 테마로 꾸민 산골 마을이다. 침을 쏘지 않는 수벌을 만져보는 공간

여왕벌을 중심으로 벌집을 만드는 모습을 담은 유리관 등으로 꾸며진 테마관에서는 호기심 많은 아이들 눈빛이 초롱초롱 빛난다.

강변 드라이브길에서 만나는 독특한 테마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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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남강유등축제 물 불 빛 그리고 우리의 소망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흘러가는 강물을 따라 드라이브를 즐기다 보면 ‘저기 뭐지?’ 하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건물들을 만나게 된다.

그럴 땐 주저하지 말고 차를 멈추자. 특별한 테마로 꾸며진 박물관들이 방문자를 기다리고 있다.

아름다운 강변 풍경을 좀더 가깝게 품어볼 수 있는 시간도 덤으로 얻는다.

손때 묻은 클래식 악기들과의 만남, 프라움악기박물관

서울에서 6번 국도를 따라 팔당대교를 향해 달리다 보면 한강이 흐르는 오른편으로 3층짜리 유럽풍 건물이 눈길을 끈다.

2011년에 개관한 프라움악기박물관이다. 악기 중에서도 서양의 클래식 악기들을 전시한 공간으로, 하나같이 누군가 연주했던 손때 묻은 악기들이어서 더욱 흥미롭다.

1층의 안내데스크에서 입장권을 구매한 후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등 현악기가 전시되어 있는 상설전시관부터 둘러본다.

자그마한 바이올린이 어떤 나무를 써서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지, 현과 활은 어떤 재료가 쓰이는지 알려주는 코너를 시작으로 다양한 현악기가 전시되어 있는 공간이다.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는 서양음악의 발전사와 계보를 읽으며 다음 전시공간으로 들어서면 수십 대의 건반악기가 관람객을 맞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피아노의 원형인 하프시코드부터 그랜드 피아노, 업라이트 피아노 등

다양한 건반악기들이 당장이라도 연주를 시작할 듯 생생하게 느껴진다. 이곳에 전시되어 있는 건반악기들 중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1897년 스타인웨이사에서 제작한 6피트 그랜드 피아노다. 꽃무늬와 격자무늬, 하프 모양 등으로 장식된 이 피아노는 마치 하나의 예술작품인 듯 감탄을 자아낸다.

악보를 놓는 보면대와 건반 뚜껑, 다리 기둥까지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고 실제 연주도 가능하다.

나란히 전시되어 있는 그랜드 포르테 피아노는 1808년 브로드우드사에서 제작했다.

하프시코드와 현대의 피아노를 구분 짓는 과도기의 피아노라고 할 수 있다.

브로드우드사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피아노 제조사로 모차르트와 쇼팽, 베토벤도 이 회사의 피아노를 즐겨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작은 피아노에 앉아 <월광소나타>를 연주했을 베토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작은 떨림이 느껴진다.

배를 타고 여행했던 사람들이 음악을 즐기기 위해 싣고 다녔다는 선박용 피아노도 이채롭고, 아름다운 꽃장식이 있는 피아노는 봄날의 가든파티를 연상시킨다.

그랜드 피아노의 크기를 줄여 일반 가정에서도 연주할 수 있게 제작한 업라이트 피아노도 의미 있는 전시물이다.

쇼팽, 슈만 등 서양 음악가들의 초상화가 전시된 계단을 오르면 다양한 관악기와 하프들을 만날 수 있다.

음악의 신 뮤즈를 떠올리게 하는 커다란 하프는 특히 장식이 아름다워 눈길을 끌고, 반짝반짝 윤이 나는 관악기들은 유리장식장 밖으로 큰 울림을 전하는 듯하다.

1873년 유명한 바이올린 제작자 장 밥티스트 비욤이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재현해 만든 걸작 바이올린 ‘메시아’도 볼 수 있다.

천장이 높은 2층은 연주회 공간으로도 사용된다. 평일에는 클래식 음악 DVD를 상영하여 잠시 앉아 감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커다란 스크린으로 저명한 지휘자와 연주자들의 얼굴을 보고, 성능이 뛰어난 스피커로 음악을 감상할 수 있어 연주회 못지않은 감동을 받게 된다.

1층에는 종이바이올린 만들기, 발로 치는 피아노, 벨 연주, 드럼치기 등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체험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미리 예약하면 도슨트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전시실을 돌아볼 수 있다.

한강과 연결된 박물관 마당은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고 여유로운 강변 풍경을 즐기기에 그만이다.

박물관과 나란히 자리한 레스토랑에서 여유롭게 차 한잔을 즐기는 것도 좋다. 매월 마지막 토요일에는 연주회가 열리니 미리 문의하고 찾으면 좋겠다.

진주남강유등축제 물 불 빛 그리고 우리의 소망

진주남강유등축제 물 불 빛 그리고 우리의 소망

진주남강유등축제 물 불 빛 그리고 우리의 소망

부산에서 맛보는 이색적인 김밥집

지금껏 무료로 공연되던 주제 공연을 유료 공연으로 전환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

자립 축제로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선보이는 이번 공연은 축제 기간 내내 촉석루 성벽 밑

수상특설무대에서 평일 1회(오후 7시 30분), 주말 2회(오후 7시 30분, 9시 30분) 공연된다.

진주남강유등축제의 백미는 유등이 남강을 가득 메운 모습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네 아름다움을 표현한 전통등과 세계 31개국의 풍물등

전국 지자체의 상징등과 다채로운 창작등이 남강을 화려하게 수놓는다.

남강뿐만 아니라 진주성도 유등으로 가득 채워진다.

진주대첩을 테마로 하는 진주성 내 유등은 촉석루 부근과 국립진주박물관 앞 광장 등 성내 곳곳에 있는데

성벽과 영남포정사 앞에서는 도열한 군졸의 모습을, 김시민 장군 동상이 있는 잔디공터에서는 군사훈련 중인

군졸과 승병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올해 처음 선보이는 국립진주박물관 앞 공터에는 씨름판과 주막 등 저잣거리의 모습을 재현해놓았다.

진주남강유등축제에는 시민과 관광객이 직접 참여하는 행사도 다양하게 마련되었다. 대표 체험 행사로는 ‘유등 만들어 띄우기’가 있다.

직접 만든 주먹만 한 유등에 소원을 적어 남강에 띄워 보내는 이 행사는 관광객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다.

소망등 2만7천여 개가 만들어낸 거대한 터널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 유등도 빼놓을 수 없다.

이외에도 관광객이 축제를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신안동 분수광장 옆 남강변에 주막을 설치하고, 망경동 대숲은 ‘시와 함께하는 연인의 거리 존’으로 새롭게 조성했다.

진주남강유등축제 의 중심엔 진주성(사적 제118호)이 있다.

진주성은 진주의 역사와 문화가 집약된 진주의 성지다.

고려 말 빈번한 왜구의 침범에 대비해 본래 토성이던 것을 우왕 5년(1379) 진주목사 김중광이 석성으로 고쳐 쌓았고

조선 선조 24년(1591) 경상감사 김수가 외성을 축조했다.

삼국시대에는 거열성, 통일신라에는 만흥산성, 고려 시대에는 촉석성, 조선 시대 이래 진주성 혹은 진양성으로 불렸다.

진주성은 선조 25년(1592) 김시민 장군이 이끄는 군사와 성민 3천800여 명이 왜군 2만여 명을 물리친 진주대첩의 현장이다.

비록 이듬해(1593) 재차 침략을 시도한 왜군에 성이 함락되는 비운을 맞았지만

마지막 한 명까지 왜군에 맞서 싸운 군·민의 충절과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몸을 던진 논개의 의로운 죽음은

진주성을 에둘러 흐르는 남강처럼 4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네 가슴 깊은 곳에 큰 울림으로 남았다.

진주성에서 가장 먼저 둘러볼 곳은 촉석루(경상남도 문화재자료 8호)와 의암(경상남도 기념물 235호)

의기사(경상남도 문화재자료 7호) 등이다. 밀양의 영남루, 평양의 북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으로 꼽히는 촉석루는 영남 제일의 명승이다.

그래서일까. 촉석루는 전시에 장졸을 지휘하는 지휘소로서 역할도 톡톡히 해냈지만

평시에는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거나 고시장으로도 활용되었다. 남장대 혹은 장원루라 불린 것도 이 때문이다.

고려시대 창건된 촉석루는 이후 수차례 중건과 보수를 거쳤으며, 지금의 건물은 한국전쟁 당시 소실된 것을 1960년 진주고적보존회가 시민의 성금으로 중건한 것이다.

진주성이 함락된 뒤 논개가 왜장과 함께 남강에 몸을 던진 의암, 논개의 영정을 모신 의기사는 촉석루와 연계해 둘러보기 좋다.

의기사는 촉석루 오른쪽에, 의암은 촉석루 뒤쪽 남강변에 있다.

임진왜란 전문 박물관인 국립진주박물관도 진주성에 있다.

우리나라 현대건축의 거장으로 불리는 김수근 선생이 목탑을 모티프로 설계한 건물답게 한국적인 멋이 느껴지는 외관이 인상적이다.

1984년 11월 개관 당시 가야 문화를 소개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나

1998년 1월 국립김해박물관이 개관함에 따라 임진왜란을 주제로 하는 역사박물관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부산에서 맛보는 이색적인 김밥집

부산에서 맛보는 이색적인 김밥집

부산에서 맛보는 이색적인 김밥집

속리산의 정기를 품은 보은에서 힐링

우리나라 대표 분식 메뉴인 ‘김밥’! 김밥은 소풍 때만 먹는 것 같고, 새까만 김에 밥을 한 입 크기로 동그랗게 만 모양만을 생각하지.

하지만 부산에는 언제든 먹을 수 있고 모양까지 다양한 김밥이 있다고 해.

언제 먹어도 맛있고 언제 먹어도 좋은 김밥. 다양한 모양과 맛의 김밥을 지금 소개

부산 벡스코역 5분 정도의 근처에 있는 하와이 김밥은 찾기 쉬운 곳이야.

아기자기한 내부는 여느 김밥집과 다를 것이 없지.

2,000원에서 6,000원까지 조금은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으로 든든한 한 끼 식사를 즐기기에 적당한 곳이지.

동그란 모양이 아닌 네모난 김밥. 바로 부산의 하와이 김밥이야.

하와이에서 인기 있는 초밥 중에 하나인 햄 무스비인 하와이 김밥은 우리가 아는 동그란 모양이 아니라 그런지 더 색다른 김밥이었달까?!

뭉친 밥 위에 햄과 달걀지단 그리고 김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김밥의 네모 버전이라고 할 수 있어.

재료가 다양하게 들어가진 않았지만 약간은 심심하게 한 밥의 양념 덕분일까?!

깔끔한 맛의 김밥을 맛볼 수 있는 곳이었어. 만약 김밥만 먹기 양이 부족하거나 심심하다면

떡볶이를 함께 먹는 것을 추천할게. 함께 시킨 떡볶이 국물에 김밥을 콕 찍어 먹으면 금상첨화지!

국물이 맵지 않아서 오히려 달콤한 맛을 더해주었어.

배가 출출한 날, 저렴하지만 든든한 한 끼를 먹고 싶다면 이색적인 네모김밥 부산 하와이 김밥으로 가보자.

부산대역 근처에 있는 노란 큰 간판!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부산대학교의 터줏대감인 부대꼬마김밥은 인근 대학생이라면 다 알 정도로 유명한 곳이야.

매장 안에 꽤 많은 의자들이 놓여있는 큰 부대꼬마김밥은 김밥 모양의 큰 차별점은 없지만 김밥을

이용한 분식집으로써 오래오래 사랑받았다는 점에서 소개하고 싶은 집이야.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원픽(one-pick) 메뉴는 거의 정해져있다고 해! 바로 ‘김 떡 순’

김떡순만으로 모자라다면 손칼국수 등 면 요리를 추가하곤 하지.

그렇게 주문해도 두 명이서 9,000원이면 꽤 저렴한 편이야. 꼭 손칼국수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면요리가 있으니 김 떡 순 만으로 부족할 땐 하나 더 시켜서 먹어봐.

요즘은 피맥, 감맥에 이어 분식에도 한 잔을 곁들인 분맥이 있다지만 여기서는 술을 팔지 않으니 그런 아쉬움은 잠시 접어두라고!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김밥과 입안에 군침을 돌게 하는 빨간 양념의 떡볶이에 맛이 상상되는 순대까지! 정다운 분위기 속에서 옛날식 분식을 즐겨봐.

부산하면 해산물을 빼놓을 수 없지. 부산 토박이도 잘 모르는 곳을 이번에 소개할까 해.

바로 부산 영도의 해녀촌이야. 해녀촌에서 무슨 김밥이냐고?! 그런 고정관념을 깨준 새로운 김밥을 지금 공개할게.

이곳의 주메뉴는 귀하디 귀한 성게와 함께 먹는 성게 김밥이야.

속리산의 정기를 품은 보은에서 힐링

속리산의 정기를 품은 보은에서 힐링

속리산의 정기를 품은 보은에서 힐링

충북 옥천 시 향 가득한 금강 길과 올갱이국의 앙상블

어느새 봄이 찾아왔습니다. 새봄을 맞아 자연은 겨울 옷을 벗어 던지고 새 옷으로 갈아입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자연만큼 사람도 바쁘지요. 학생들은 개학을 맞았고, 직장인들은 새해 새봄을 정신 없게 지내고 있습니다.

사람도 자연도 바쁘디 바쁜 3월이지만 그래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면 가까운 곳이 좋겠지요.

서울에 사시는 분들에게도, 부산에 사시는 분들에게도 가까운 곳. 충북 보은으로 떠나보세요.

서울에서 자동차로 2시간, 부산에서도 자동차로 2시간 30분 거리에 보은이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하루 동안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거리이지요.

‘보은’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나 속리산! 속리산은 충청북도 보은군, 괴산군 그리고 경상북도 상주군에 걸쳐있는 산이지만

대부분 보은의 속리산을 가장 먼저 떠올리실 거에요. 아마도 그 이유는 우리에게 익숙한 법주사가 보은에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보은에는 속리산뿐만 아니라 다양한 볼거리들이 있답니다.

짧지만 강렬하게 보은을 즐기고 싶다면 집중해주세요!

보은 시가지에서 조금 벗어나 속리산 쪽으로 향하다 보면 오른편으로 삼년산성 가는 길이 나옵니다.

삼년산성은 신라시대의 산성으로 우리나라 산성을 대표할 만한 석축산성이지요.

삼년산성은 성을 쌓던 당시 이곳이 삼년군 또는 삼년산군으로 불렸기 때문에 삼년산성이라고 이름지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삼국사기>에 의하면 성을 쌓는데 3년이 걸렸다고 하여 삼년산성이라고 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아득한 멋 옛날의 이야기이니 무엇이 맞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요.

전국에 무수히 많은 산성이 있지만, 보은에 있는 ‘삼년산성’에 관심을 가지는 분들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삼년산성은 비록 유명하지는 않지만 그 가치에 있어서 만큼은 절대 다른 산성들보다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이 지역은 삼국시대 때 백제와 신라가 영토를 다투던 분쟁지 중 하나였습니다.

신라는 백제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해 이 지역에 산성을 쌓았는데 그것이 바로 삼년산성인 것이지요.

백제가 웅진과 사비로 천도한 후에도 삼년산성은 서쪽의 백제에 대비하고, 고구려의 남진을 저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후 이 지역을 확보한 신라는 서북지방으로 진출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삼국통일이라는 대업을 이루게 됩니다.

따라서 삼년산성은 신라 삼국 통일의 중요한 전초기지라고 할 수 있지요.

또한 기록에 따르면 삼년산성은 한 번도 함락된 적이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였다고 합니다.

전국에 무수히 많은 산성이 있지만, 보은에 있는 ‘삼년산성’에 관심을 가지는 분들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삼년산성은 비록 유명하지는 않지만 그 가치에 있어서 만큼은 절대 다른 산성들보다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이 지역은 삼국시대 때 백제와 신라가 영토를 다투던 분쟁지 중 하나였습니다.

신라는 백제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해 이 지역에 산성을 쌓았는데 그것이 바로 삼년산성인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