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화성으로 이번 주말 여행

근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화성으로 이번 주말 여행

근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화성으로 이번 주말 여행

재활용이 예술로 재탄생하는 곳 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

이름은 익숙하지만 여행지로는 아직 조금 낯선 경기도 화성.

하지만 서울에서 1시간 30분 만에 갈 수 있는 곳으로, 알고 보면 참으로 보석 같은 국내 여행지입니다

식상해진 관광지에 조금 시들해져 새로운 곳을 찾는다면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 장소와 현대적인 디자인이 돋보이는 공간이 한데 공존하는 화성으로 떠나보는 게 어떨까요?

지금부터, 알고 보면 더욱 매력적인 도시, 화성을 소개해보겠습니다.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매력적인 도시 화성

융릉과 건릉 – 정조의 효심과 사도세자의 비참한 삶을 느낄 수 있는 곳

용주사 –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을 모시기 위해 세운 사찰

전곡항(마리나 탐방&요트탑승) – 우리의 힐링을 책임질 즐거운 뱃놀이

제부도 워터 워크 – 깔끔하고 현대적인 디자인이 매력적인 곳

매향리 역사박물관&쿠니사격장 – 역사의 아픈 기억을 되새길 수 있는 곳

융릉과 건릉은 각각 정조대왕과 효의왕후 김 씨 그리고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 씨의 무덤입니다.

당파싸움의 희생양이라고 볼 수도 있는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힌지 8일 만에 죽음에 이르렀고, 현 배봉산에 초라하게 묻혔죠.

이후, 이를 한스럽게 여긴 정조는 즉위 13년 만에 명당이라 불리는 이곳으로 무덤 자리를 옮겼다고 해요.

워낙 유명한 이야기다 보니 살갗에 와닿는 것도 많을뿐더러 길이길이 남을 전대의 역사가 이곳에 고스란히 묻혀있다고 생각하니 화성이 새롭게 보이더라고요.

웅장한 모습의 융릉 정자각. 건릉 역시 융릉과 비슷한 형태를 띠어 주변의 넓은 평지가 이를 에워싸고 있습니다.

여기서 몰랐던 사실 하나! 융릉과 건릉은 2009년 8월 27일,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고 하네요.

정조는 살아생전 아버지의 무덤을 13차례나 방문해 자신이 죽으면 반드시 아버지 옆에 묻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결국 본인의 말대로 아버지 산소 왼쪽에 왕릉을 마련했으나 이후 왕비도 죽음을 맞이하였고, 더 명당이라 평가받는 이곳으로 합장하여 모셨다고 해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컸을지, 정조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대목이었습니다.

융릉과 건릉 사이의 거리가 제법 되지만 그 사이의 녹지 가득한 공간을 거닐면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조용하고 산뜻한 길을 걸으며 정조의 효심과 사도세자의 서글픈 생애를 떠올려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걸 어떨까요.

책에서 읽었던 두 사람의 일화와 조선 시대의 시대적 배경을 거슬러올라가보며 화성이라는 공간 속에 오롯이 가라앉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절이지만 다른 절들과 달리 산속이 아닌 길가에 자리 잡은 게 특징인데요. 고궁과 비슷한 지리적, 위치적특색을 가집니다.

뿐만 아니라 입구에는 보통 궁궐에서 볼 수 있는 삼문도가 보입니다.

사도세자를 모시는 특별한 곳이기 때문에 중간의 큰 문은 평상시에 닫아놓다가 제삿날에만 열어 놓는 게 특기할만한 내용이죠.

재활용이 예술로 재탄생하는 곳 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

재활용이 예술로 재탄생하는 곳 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

재활용이 예술로 재탄생하는 곳 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

국난을 극복한 강직한 삶 오리 이원익 선생을 만나는 충현박물관

수도권에서 가까운 위치에 폐자원으로 만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가 최근 개관했다.

전시 관람뿐 아니라 체험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이곳과 더불어 광명시자원회수시설까지 함께 둘러본다면 그동안 소홀했던 재활용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두 시설에서 운영하는 견학 프로그램은 자녀와 함께 참여하기에도 좋다.

버려진 물건이 작품이 된다

광명시 가학산 주변이 업사이클 테마파크로 거듭나는 중이다.

버려진 자원을 재료로 만든 작품을 전시하는 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이하 업사이클아트센터)가 지난 2015년 6월 개관한 것이다.

업사이클아트센터에서 ‘업사이클’은 ‘업그레이드(upgrade)’와 ‘리사이클(recycle)’을 합친 용어다.

재활용(recycle) 수준에서 머물지 않고 한 단계 더 나아가 작품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업사이클아트센터 방문으로 교육 효과도 기대할 수 있어 전체 방문객 중 자녀를 둔 가족 및 학생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업사이클아트센터는 바로 옆에 있는 광명시자원회수시설 홍보동을 리모델링했다.

함께 개관한 에코에듀센터는 새로 지은 건물이다.

업사이클아트센터 디자인은 김수근건축상을 받은 로랑 페레이라가 담당했다.

페레이라는 영국 BBC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 중 하나로 선정한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의 설계를 맡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1층으로 입장하면 반원 모양의 전시장이다. 통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이 작품을 밝게 비춰 답답한 느낌 없이 전시장을 거닐 수 있다.

1층과 2층에는 업사이클 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아트숍과 음료 및 식사가 가능한 카페가 자리한다.

특히 카페 테라스로 나가면 야외에서 차를 마시며 가학산 자락을 구경할 수 있어 잠깐의 여유를 즐기기에 충분하다.

1, 2층에서 연결된 통로를 지나면 에코에듀센터다.

각종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교육실, 공동작업실, 창고가 있는 곳이다.

창고에는 업사이클아트센터에서 진행하는 디자인 교육의 재료인 폐자재를 모아놓았다.

지역 업체에서 보낸 것들이다. 광명동굴에서 시음 후 보낸 와인병도 볼 수 있다.

홈데코 교실에서 쓰이는 와인병인데, 다육식물을 키우는 화분이나 집안을 꾸미는 조명등을 만드는 데 사용한다.

업사이클 아트 전시회와 다양한 체험

업사이클아트센터 전시장에서는 현재 폐목재나 폐가구를 이용한 작품을 볼 수 있는 ‘리본 가구(RE:BORN FURNITURE)’전이 열리고 있다(2016년 1월 31일까지).

전시에는 하이브로우(이천희 & 이세희), 한정현, 박현진, 신명환, 천근성 등의 작가가 참여해 다른 곳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업사이클 작품들을 보여준다.

뻥튀기를 이용해 만든 명품 가방, 버려진 목재와 와인병을 활용한 테이블도 감상할 수 있다.

작품의 소재, 작가의 아이디어, 그 안에 담긴 의미 등 모든 요소가 흥미로운 전시다.

특히 배우로 활동 중인 이천희 작가와 이세희 작가가 나무 팔레트를 이용해 의자와 테이블을 만든 작품 ‘YARD-FURNITURE’가 눈에 띈다.

어느 휴식 공간에 두어도 어색하지 않을 업사이클 작품이다.

실내외 공간에 상설 전시 중인 작품도 지나치지 말자.

에코에듀센터로 넘어가는 통로 계단에는 프랑스 작가 엘로디 드 루빌이 만든 ‘스타’라는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버려진 주얼리와 각종 자재로 별을 표현한 작품이다. 업사이클아트센터 앞에는 엄아롱 작가의 ‘돌고래, 도시의 숲’이 있다. 쓸모없어진 LP판을 녹여 만든 작품이다.

국난을 극복한 강직한 삶 오리 이원익 선생을 만나는 충현박물관

국난을 극복한 강직한 삶 오리 이원익 선생을 만나는 충현박물관

국난을 극복한 강직한 삶 오리 이원익 선생을 만나는 충현박물관

곤지암 루지 360과 함께 즐기는 광주 힐링 여행

조선 선조와 광해군 때의 이야기를 다룬 사극 <징비록>과 <화정>이 최근 방영되고 있다.

<징비록>은 서애 류성룡 선생의 이야기를, 화정은 광해군 시대 정명공주의 삶을 그린다.

비록 주연은 아니지만 두 드라마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또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 있다.

오리 이원익 선생이다. 그는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등 격동의 시대를 거치면서 나라를 위해 묵묵히 헌신한 명재상이자 이 시대의 귀감이 되는 청백리였다.

오리 이원익 선생의 삶과 유물을 만나볼 수 있는 광명 충현박물관을 찾아가 본다.

영의정만 다섯 차례 오른 명재상

구름을 뚫고 솟아오른 봉우리라 불리는 구름산.

광명시 구름산 서쪽 자락에는 조선시대 명재상이자 청백리로 이름을 드높인 오리 이원익 선생의 흔적이 담긴 충현박물관이 있다.

먼저, 오리 이원익 선생의 삶을 들여다보자.

선생은 조선 명종 때 태어나 선조, 광해군, 인조 대에 이르기까지 60여 년에 걸쳐 공직에 몸담았다.

권력과 부에 집착하지 않고 원칙과 소신으로 국난을 헤쳐나간 명재상이자 청백리, 그리고 백성을 사랑했던 정치가였다.

선조부터 인조 대까지는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이라는 두 차례 국난을 겪었고, 당쟁으로 말미암아 조정 대신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분란의 시대였다.

이원익 선생은 이 혼란의 시대를 거치며 다섯 차례나 최고 중앙관직인 영의정에 올랐다.

선생의 애민사상은 그를 기리기 위해 살아생전에 생사당을 세운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5년 전, 그는 안주목사로 부임했다. 평양과 안주에서 각각 한 글자씩 따서 평안도라 불린 만큼 안주는 변방이지만 무척 중요한 지역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백성을 위해 양곡을 요청해 풍작을 이루었고, 양잠도 장려하는 등 백성들을 보살폈다.

백성들이 그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생사당을 세운 것도 이때 일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를 의주까지 피난시킬 수 있었던 것도 안주목사 때 선정을 베풀어 민심을 얻은 결과였다.

인조 때 이괄의 난과 정묘호란 당시에도 임금을 모시고 충남 공주와 강화도로 각각 호종했다.

당시 그의 나이 78세, 81세에 이르는 노구의 몸이었다.

인목대비 폐위를 반대하다 홍천으로 유배되기도 했고, 인조 즉위 후 광해군을 죽이려 하자 몸소 막았으며, 서애 류성룡이 충무공 이순신을 비판할 때 끝까지 믿음을 보낸 것도 그였다.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개의치 않고 소신을 펼친 일화는 그가 얼마나 강직한 성품을 지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공직에만 60여 년간 몸담았고,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을 거치며 망가질 대로 망가진 조선을 위해 헌신했지만, 아쉽게도 가정에는 소홀했던 듯하다.

부인 영일 정씨가 1603년에 세상을 떠나자 부인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도망시(悼亡詩)>에 미안한 마음이 애절하게 배어 있다.

곤지암 루지 360과 함께 즐기는 광주 힐링 여행

곤지암 루지 360과 함께 즐기는 광주 힐링 여행

곤지암 루지 360과 함께 즐기는 광주 힐링 여행

자박자박 걸어가니 가만가만 가을이 다가옵니다

서울 근교에 뜨거운 여름을 짜릿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이 있다. 경기도 광주에 신설된 곤지암 루지 360 이 그 주인공.

곤지암 루지 360 은 1.9km 길이의 광폭 트랙과 두 개의 360도 회전 구간을 갖춰 스릴 넘치는 레이싱을 즐길 수 있다.

무동력 썰매를 타고 씽씽 달리며 무더위를 날려보자.

루지에 탑승하기 위해서는 스키하우스 2층 매표소에서 티켓을 구매해야 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파란 벽화가 그려진 터널을 만났다.

미지의 세계로 이어지는 비밀 문을 통과하는 기분이 들었다.

리프트를 타고 정상으로 가는 길.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온몸이 상쾌해졌다.

언덕의 야생화도 노란 잎을 흔들며 반겼다. 저마다의 속도로 루지를 즐기는 다른 이용객들의 모습도 보였다. 나도 빨리 타고 싶다는 생각에 기분이 한껏 들떴다.

탑승장에 내리니 알록달록 무동력 썰매들이 열 맞춰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차례가 되면 마음에 드는 썰매에 앉아 안전교육을 받고 잠시 대기하면 된다.

썰매 조종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핸들 하나로 방향 전환과 속도 조절을 한꺼번에 할 수 있다.

드디어 출발 신호가 떨어졌다. 기대감에 두근두근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구불구불한 트랙을 질주하니 묵은 스트레스가 확 날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아슬아슬하게 코너를 돌 때마다 한여름 더위를 잊은 듯 함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조형물, 트릭아트, 야생화 등 볼거리가 다양해 지루할 틈도 없었다.

무엇보다 스스로 속도를 조절하며 달릴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남녀노소 누구나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오후 6시, 트랙의 LED 조명이 켜졌다. 다양한 색깔로 빛나는 조명 덕분에 분위기가 한층 무르익었다.

루지 운영 마감 시간인 오후 8시까지도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루지와 함께 짜릿한 액티비티를 즐겼다면 지금부턴 푸른 여름 숲을 만끽할 시간이다.

곤지암 루지 360 인근에는 “정답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뜻을 지닌 화담숲이 있다.

이곳의 식물들은 생물자원 보호 차원에서 수집된 것이라 훨씬 다양한 나무와 식물을 만날 수 있다.

계절마다 색도 다른데, 여름에는 눈이 시리도록 짙푸른 초록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가장 먼저 우리를 반겨 주는 곳은 원앙 연못이다.

아름드리나무와 한옥이 한 폭의 그림처럼 어우러져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풍경에 가만히 들어가 멋진 인생샷을 건졌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모노레일 탑승장이 있다.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가 숲 테마 코스로 천천히 걸어 내려올 생각이다.

녹음이 우거진 여름 화담숲은 걷기만 해도 상쾌하지만 모노레일 위에서 바라보는 숲은 또 다른 감동을 준다.

모노레일 내부가 통유리라 화담숲의 싱그러운 여름 풍경을 한층 생생하게 바라볼 수 있다.

모노레일 3코스에서 내려 천천히 걷던 중 산수국을 만났다.

작고 푸른 잎이 반딧불이처럼 반짝 빛났다. 여름에만 볼 수 있는 화담숲의 보물이다.

방문 당시에는 꽃이 살짝 시든 상태였지만 그 매력을 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즐거운 산책을 끝내고 나가는 길, 화담숲 입구에 핀 능소화가 발목을 다시 붙잡았다.

서울 근교에 이런 숲이 있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산책코스 또한 남녀노소 누구나 걷기 편하게 조성되어 있어 가족들의 나들이 코스로 추천할 만하다.

자박자박 걸어가니 가만가만 가을이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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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말을 걸어왔다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인조는 명을 가까이 하고 후금을 멀리하였다.

국력을 키운 후금은 나라의 이름을 청으로 바꾸고 조선을 침략하였다.

이것이 1636년 일어난 ‘병자호란’이다.

막강한 청나라 군대는 빠르게 한성으로 진격하였고, 남한산성으로 피신해 47일 동안 대항하던 인조는 결국 청에 항복하였다.

이후 조선과 청은 신하와 임금의 관계를 맺었고 조선의 백성들은 임진왜란 이후 또다시 크나큰 고통을 겪어야 했다.

남한산성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등산로로 이용하고 있지만, 과거 병자호란의 치욕을 겪은 가슴 아픈 곳이다.

“아빠, 남문으로 갈 거야? 그럼, 나 먼저 간다아아~”

여덟 살 꼬마의 발에 스펀지라도 달린 걸까.

바닥이 꼬마를 밀어 올리듯 가볍게 남한산성 계단을 밟아 나간다.

아빠보다 몇 십 미터를 앞서 걷다 뒤돌아보며 산성을 감상하는 여유도 지녔다.

한두 번 남한산성을 오른 솜씨가 아니다.

중년의 신사에게서 느껴지는 여유와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삶이 곧 경쟁인 현대사회에 남한산성을 자박자박 걷는 꼬마에게서 여유를 배운다.

과자들 틈에 별사탕을 발견하는 마냥, 가을을 걸으니 인생의 단맛이 다가온다.

73칸의 행궁과 80개의 우물이 있던 자리, 남한산성 가을 산행에는 성남시를 경유하는 남문코스가 제격

“…치솟은 능선을 따라가는 성벽이 밤하늘에 닿아 있었고, 모든 별들이 성벽 안으로 모여서 오목한 성은 별을 담은 그릇처럼 보였다…”

작가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의 일부다 .실제 남한산성의 모습은 굽이친 능선에 은테를 두른 듯 하다.

‘별을 담은 그릇처럼 보인다’는 묘사 또한 실제와 같다.

성의 전체적인 형태가 주변부는 높은데 반해, 중심부가 낮고 평평한 평지를 이루고 있는 점을 보면 그렇다.

수비는 쉽게, 성내의 생활은 편하게 해 산성역할에 적합한 지형이었던 셈.

남한산성은 서울 외곽을 지키는 4대 요새 중 동쪽을 맡은 요새였다.

조선시대 산성의 모습을 가장 완벽히 보존하고 있다.

하지만, 남한산성을 얘기할 때면 으레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애초 신라 문무왕 12년에 토성으로 축성 되었던 이력 때문이다.

석성으로 개축한 것은 조선 광해군 12년 후금의 침입을 막고자 한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역사적, 문학적 배경을 차치하고서라도 남한산성은 충분히 아름답고 장엄하다.

일찍이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남한산성에는 동서남북으로 향하는 문과 73칸의 행궁, 80개의 우물, 45개의 샘이 있고, 광주읍의 행정처도 산성 안으로 옮겼다고 기록돼 있다.

산성의 규모와 산성 내의 공간이 가늠키 힘들만큼 크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얼마 되지 않는다.

동, 남문과 서장대, 현절사, 문무관, 장경사, 지수당, 영월정, 침괘정, 이서 장군사당, 숭렬전, 보, 루, 돈대 등이 남아 있다.

그 중 성곽의 모습을 잘 살필 수 있는 곳은 4대문과 수어장대, 서문 중간의 일부 성곽 정도다.

가을 정취를 느끼며 성곽을 걷는 길은 크게 세개 정도로 꼽을 수 있다.

얼굴이 말을 걸어왔다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얼굴이 말을 걸어왔다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얼굴이 말을 걸어왔다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배려 가득한 산책로에서 행복한 하루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의 할머니들은 아무 말이 없다.

얼굴로 지난한 세월을 이야기한다. 그림 속 할머니들은 깊게 팬 주름에 서러운 이야기가 겹겹이 쌓여 있다.

박물관 얼굴에는 1000여 개의 얼굴이 복닥거린다.

어떤 얼굴은 뭔가를 염원하는 듯하고, 어떤 얼굴은 기나긴 세월을 지나며 감정의 무용함을 깨달은 듯하다.

시간이라는 씨줄과 이야기라는 날줄로 직조된 얼굴들.

무수한 얼굴이 전하는 말을 들으러 경기도 광주를 찾는다.

1930년대 솜털이 하얗던 소녀들은 2019년, 백발성성한 할머니가 됐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생긴 지 80여 년이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 할머니 238명 중 생존한 할머니는 22명뿐.

이들의 평균 나이는 90대에 접어들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할머니들을 좀 더 잘 기억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반가운 소식이 있다.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이 새로 증축된 것이다.

“우리가 강요에 못 이겨 했던 그 일을 역사에 남겨 두어야 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로 증언한 김학순 할머니 말에 힘입어 1998년 처음 문을 열었다.

그 후로 20년에 접어드는 2017년 말, 유품전시관과 추모기록관(이하 추모관)이 세워졌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소녀상 ‘못다 핀 꽃’과 할머니들 흉상이 있는 입구를 지나 나눔의 집 뒤편으로 향하면 추모관이다.

옅은 회벽에 기와를 얹은 2층 건물이다.

추모관 1층 전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기획전시관에는 할머니들 초상화가, 유품전시관에는 할머니들 유품이, 그림전시관에는 할머니들이 직접 그린 그림 20여 점이 전시돼 있다.

벽 양옆에 가로세로 1m가 넘는 그림 10점이 나란하다. 공연예술가 팝핀현준이 그린 할머니들 그림이다.

그는 말했다. “할머니들 얼굴이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또 그렸다”고. 할머니마다 표정도 분위기도 제각각이다.

백발의 박옥련 할머니는 입을 한 일자로 굳게 다물었고, 배춘희 할머니는 생긋 미소 지을 듯 입꼬리가 올라갔다.

김군자 할머니는 금방이라도 “밥은 먹었우?” 하고 말을 걸어올 듯 장난기 어린 눈빛이다.

할머니들은 입을 열어 자신을 설명하는 대신, 선과 색이 빚은 표정으로 한 많은 인생을 내비친다.

소녀의 피눈물은 말라붙어 할머니의 주름이 됐다. 화폭 속 할머니들은 끝내 일본의 공식 사죄를 받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가까운 일은 기억 못해도 옛일은 왜 이리 생생한지 모르겠다.”

김순덕 할머니의 말씀이다. 유품전시관에는 할머니 열일곱 분의 인생 이력과 사진, 생전에 쓰던 물건이 있다.

‘한 맺힌 삶을 살다.’ 전시관 소개 글에 딸린 제목이다. 즐거운 일보다는 한스러운 일이, 기억하고픈 일보다는 잊고 싶은 일이 많은 인생이었다.

“끌려간 친구들은 다 죽고, 나 혼자만 살아 돌아왔어.”

11살,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중 가장 어린 나이. 김외한 할머니는 일본 홋카이도에서 혼자 돌아왔다.

김옥주 할머니는 일자리가 있다는 일본인 집주인의 말에 속았다. 도착한 곳은 중국 하이난섬 위안소였다. 단 몇 줄로 축약하기에는 사연 하나하나가 길고 길다.

생전 쓰시던 물건들은 어찌나 소박한지. 돋보기, 화투, 한글 교본, 고국으로 넘어올 때 손에 ‘단디’ 쥐었을 여권….

울컥했다 화가 났다 아릿했다 분주한 마음을 달래가며 보느라 걸음이 느려진다.

그림전시관에는 잔잔한 음악이 깔린다. 서촌 골목길, 작은 갤러리에 들어온 듯하다.

할머니들은 1993년부터 그림 수업을 받았다. 처음에는 주변 사물을 따라 그리는 정도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비통한 지난날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배려 가득한 산책로에서 행복한 하루

배려 가득한 산책로에서 행복한 하루

배려 가득한 산책로에서 행복한 하루

가을이 일렁인다 가을 색이 파도치는 화담숲

햇살 좋은 어느 날, 문득 자연에서 하루를 즐기고 싶을 때 생각나는 화담숲.

친구와 울창한 숲길을 걷고, 다른 수목원에서 보기 어려운 모노레일을 타며 숲이 주는 행복을 즐기기 좋다.

휠체어나 유모차 사용자도 걱정 없다.

모든 이에게 열린 화담숲을 걸으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워보자.

휠체어와 유모차 사용자도 걱정 없는 화담숲 가는 길

화담숲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는 순간부터 휠체어나 유모차 사용자, 노약자를 위한 배려가 돋보인다.

수도권 스키장으로 유명한 곤지암리조트에 위치해 주로 리조트 주차장을 이용하고, 화담숲 전용 주차장은 성수기에 운영한다.

장애인 차량은 언제든 화담숲 전용 주차장 사용이 가능하다.

리조트 주차장에서 화담숲까지 가는 방법은 세 가지. 산책 길을 따라 걷거나 무료 순환버스 혹은 리프트를 이용한다.

화담숲까지 가는 산책 길은 약간 오르막이고 10분 정도 걸린다.

휠체어나 유모차를 끌고 걷기 불편하면 순환버스나 리프트를 이용한다.

순환버스는 저상형 차량이라 휠체어와 유모차 탑승이 용이하다.

휠체어나 유모차 사용자, 노약자가 리프트를 이용할 때 안전 요원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어느 길을 택해도 만족, 완만한 데크 산책로와 모노레일

화담숲은 자연 식생을 최대한 보존한 친환경 생태 수목원으로, 135만 5372㎡(41만 평) 부지에 20여 개 테마원이 있다.

숲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완만한 산책로다.

숲 전체를 돌아보는 데크 산책로는 폭이 넓고 경사가 완만해 휠체어나 유모차를 끌고 이동하기에 무리가 없다. 화담숲 산책 코스는 일방통행이다.

입구에서 천년단풍을 지나 곤충생태관, 민물고기생태관을 거치면 숲 속 산책 코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두 가지 선택이 가능하다.

걸어서 올라가거나 모노레일(유료)을 타는 것. 모노레일 총 구간은 1213m이며 순환형으로 운행한다.

모노레일 출입구는 높낮이 차가 없어 휠체어나 유모차도 탑승하기 쉽다.

모노레일 하부 승강장에서 상부 승강장까지 모노레일을 타면 약 5분, 걸어가면 40분 정도 걸린다.

모노레일을 타면 편안하게 이동하고, 해설자의 안내를 들으며 상공에서 숲을 조망할 수 있다.

걸어가면 화담숲 인기 포토 존 ‘약속의 다리’를 건너고 나무와 꽃을 하나하나 가까이서 볼 수 있다.

휠체어나 유모차 사용자라면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갔다가 걸어 내려오는 방법도 있다.

상부 승강장에 내려 위쪽의 소나무정원을 감상하고 천천히 내려오면서 나머지 테마원을 돌아본다.

화담숲 전 구간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싶다면 굳이 모노레일을 타지 않아도 된다.

모노레일 상부 승강장까지 산책로가 완만해 휠체어나 유모차를 끌고도 부담 없이 올라갈 수 있다.

군데군데 ‘완만한 산책 길’과 ‘빠른 계단 길’로 나뉘기도 한다.

관람객의 몸 상태와 동반자에 따라 선택하도록 배려했다. 곳곳에 쉼터도 있다.

모든 이에게 평등한 착한 숲

화담숲의 또 다른 자랑은 훌륭한 자연환경이다.

계절에 따라 진달래와 벚꽃, 수국, 수련이 피고 지며, 천연기념물 327호인 원앙과 천연기념물 453호 남생이가 서식한다.

반딧불이 서식지도 조성해 해마다 6월 무렵이면 반딧불이를 만날 수 있다.

그밖에 도롱뇽, 두꺼비, 박새, 뻐꾸기, 고라니, 다람쥐 등이 이곳에서 살아간다.

화담숲은 자연 생태계와 수목을 잘 보존하기 위해 겨울철(12월~이듬해 3월)에는 휴장한다.

화담숲은 테마원의 분재원, 암석정원, 아이리스원, 수련원, 장미원, 수국원 등 볼거리도 다양하다.

가을이 일렁인다 가을 색이 파도치는 화담숲

가을이 일렁인다 가을 색이 파도치는 화담숲

가을이 일렁인다 가을 색이 파도치는 화담숲

따사로운 전람회 광주 경안천 분원리

찬란한 가을 하늘 아래 풍경은 요동치고 있다.

가을이 한바탕 신명난 단풍놀이판을 벌인다.

이 한판이 끝나면 풍경은 이내 차분하게 잦아들 것이다.

화려한 놀이판이 끝나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

굳이 단풍 명산까지 가기 힘든 가을날, 조금은 편하고 느리게 걸어도 좋을 화담숲으로 떠나본다.

천년단풍이 맞아주는 화려한 가을 산책

화담숲은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다.

좀 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스키장으로 유명한 곤지암리조트에 위치한다.

화담숲 전용 주차장이 있지만 요즈음 같은 단풍철에는 금세 차로 가득 찬다.

화담숲 주차장까지 올라가지 못하면 리조트 주차장을 이용해야 한다.

주차장에 차를 세운 후 리조트 순환열차나 버스, 리프트를 타고 화담숲 입구까지 갈 수 있다.

물론, 천천히 걸어도 된다. 리조트 주차장에서 화담숲으로 가는 산책길은 ‘꽃따라 물길따라’라는 예쁜 이름을 지녔다.

이름처럼 졸졸졸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걷는다. 가을 산책길의 시작이다.

화담숲은 규모가 약 1,355,372㎡에 이르며 4300여 종의 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반기는 나무가 천년단풍이다.

나무 둘레가 250cm, 높이가 12m에 이르며 수령은 200년 이상으로 추정된다.

수령이 오래된 커다란 은행나무는 간혹 볼 수 있지만, 오래된 단풍나무는 매우 희귀하다.

붉은빛을 가득 머금은 위풍당당한 단풍나무가 방문객을 맞이하니, 화담숲 단풍놀이는 시작부터 실로 거창하다.

천년단풍을 뒤로하고 민물고기생태관으로 올라가는 길,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보자.

연못과 한옥, 단풍이 그림처럼 어우러지는 풍광과 마주한다.

원앙이 산다는 연못 한쪽으로 들어앉은 한옥이 운치 있다.

한옥 건물에는 주전부리를 파는 ‘한옥주막’과 각종 차와 커피를 제공하는 ‘그 찻집’이 있다.

산책을 시작하기도 전에 한옥주막이나 찻집으로 향하고 싶은 유혹에 잠시 마음이 흔들렸으나, 산책을 끝낸 후 제대로 휴식을 누리기 위해 아껴두기로 한다.

규모가 크지 않은 민물고기생태관을 잠시 둘러본다. 민물고기생태관 옆으로 하부 모노레일 승강장이 있다.

이곳에서 상부 모노레일 승강장까지 도보로 40분가량 소요된다. 이 길이 숲속산책길 1코스로 불린다.

모노레일을 타면 5분 정도면 올라간다. 모노레일은 노약자나 유모차 이용 방문객에게 도움이 된다.

단, 모노레일 이용을 원할 경우 미리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해야 한다.

모노레일 대기 시간이 길 경우에는 승강장 주변의 곤충생태관이나 모래놀이터를 이용하도록 하자.

화담숲 산책로는 경사가 완만하고 데크 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 굳이 모노레일을 이용하지 않아도 남녀노소 누구나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유모차나 휠체어도 이동 가능하다.

중간 중간 빠른 계단길과 완만한 산책길로 나뉘는 구간도 있다.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으므로 상황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하트 모양 조형물로 꾸며놓은 약속의다리는 인기 포토존 중 하나. 하트 조형물을 배경으로 다리 위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다.

다리에는 연인들이 채워놓은 사랑의 자물쇠가 빽빽이 달려 있다. 다리 끝에는 열쇠를 넣어두는 보관함이 있다.

사부작사부작 걸으며 물레방아도 보고, 자작나무숲도 지나고 돌탑도 구경한다.

그러다 발그레 고운 빛을 띤 단풍 구경에 젖어들곤 한다. 신비한 빛을 뿜는 억새의 살랑거림도 마주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상부 모노레일 승강장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길은 여러 갈래로 나뉜다. 어떤 코스로 산책을 이어갈지 결정할 시간이다.

따사로운 전람회 광주 경안천 분원리

따사로운 전람회 광주 경안천 분원리

따사로운 전람회 광주 경안천 분원리

초장에 찍어 먹는 쫀득쫀득한 곱창 구리 돌다리길 곱창골목

경안천과 남한강이 만나는 모퉁이 마을들은 잠시 세상과 동떨어져 있다.

수자원보호지역이 된 물 위로는 배와 사람이 나서지 않고, 양평까지 우회하는 337번 지방도는 차량마저 뜸하다.

경안천을 거스르는 길을 따라 퇴촌사거리를 지나면 경안천 습지생태공원이 고즈넉한 모습을 드러낸다.

광주8경에 속하는 습지생태공원은 겨울 산책이 색다르다. 하천변과 습지를 잇는 백색 탐방로가 2km가량 이어진다.

산책로 곳곳에는 생태공원에 서식하는 동식물에 대한 친절한 안내가 곁들여져 있다.

고라니와 철새들을 만날 수 있는 경안천변은 고니의 월동지이기도 하다.

탐조대로 이어지는 하천변은 가족들의 산책과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인기가 높다.

곳곳에는 쉼터가 조성돼 있어 겨울날의 상념을 돕는다.

경안천 하류의 남종면 분원리로 들어서면 시간은 한 템포 더디게 흐른다.

주변 마을은 한적해도 그 안에 담긴 혼은 품격 높다. 분원리는 조선 왕실의 마지막 가마터가 있던 곳이다.

‘분원리’라는 마을 이름도 궁중의 음식을 관장하던 사옹원의 백자 분원에서 따온 지명이다.

궁궐에서 쓰는 그릇을 굽기 위해서는 좋은 흙과 땔감이 필요했고, 한강의 강줄기가 만나는 곳에 옛 가마터가 조성됐다.

분원백자자료관(031-766-8465, www.bunwon.or.kr)은 규모면에서는 광주의 경기도자박물관에 뒤처져도 들어선 사연만큼은 남다르다.

한적한 마을 뒤편 언덕에 자리한 자료관은 폐교를 리모델링해 건물을 올렸다.

초등학교터에 매장된 조선시대 백자를 훼손하지 않기 위한 따뜻한 배려다.

왕실의 그릇을 굽던 자리에 일제강점기 초등학교가 세워졌고, 2000년대 초반 발굴 작업을 통해 그 터가 드러났다.

재단장한 자료관은 철판으로 강건하게 둘러싸여 있다.

자료관으로 오르는 길목에는 발굴된 백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사옹원 선정비들이 나란히 도열해 있다.

자료관 내부에는 발굴 당시 그대로의 백자를 전시하고 있다.

자료관에서는 스탬프를 찍어 엽서를 꾸밀 수 있으며, 사전에 예약하면 그릇을 직접 만들어보는 체험도 가능하다.

자그마한 공간이지만 해설을 곁들여주는 친절한 분위기도 정겹다.

자료관 앞에서 내려다보이는 겨울 풍경은 백자처럼 단아하다.

큰 고목 너머로 경안천과 팔당호가 고즈넉하게 어우러진다. 분원백자자료관은 연중무휴에 관람료까지 무료다.

분원리에서는 독특한 박물관 한 곳이 눈길을 끈다.

남종면사무소 뒤의 얼굴박물관(031-765-3522, www.visagej.org)은 얼굴을 소재로 세계 각국의 인형, 가면 등을 전시한 공간이다.

연극연출가가 설립한 이 박물관은 마당을 남도의 한옥과 석상들로 꾸몄고, 차 한잔 마실 수 있는 쉼터도 있다.

얼굴박물관은 전시품 교체를 위해 2월 12일까지 휴관한 뒤 13일부터 재개관에 들어간다.

월‧화요일은 휴무이며, 수‧목요일은 사전 예약을 해야 입장이 가능하다.

금요일부터 일요일은 항시 개관한다.

호젓한 전시관들은 물길 따라 계속된다. 경안천과 맞닿은 팔당호를 제대로 조망하려면 물환경전시관(031-8008-6937)으로 갈 일이다.

호텔을 개조한 건물 9층에 팔당호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시관이 마련돼 있다.

한편에 마련된 전망대에 서면 소내섬, 족자도, 예봉산까지 아름다운 팔당의 전경이 방해 없이 펼쳐진다.

망원경도 비치돼 땅 위에서 놓치기 쉬운 강 위의 흔적들을 가깝게 관찰할 수 있다.

팔당호의 과거부터 이곳에 서식하는 동식물, 물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과학적 체험 공간으로 꾸며졌다.

초장에 찍어 먹는 쫀득쫀득한 곱창 구리 돌다리길 곱창골목

초장에 찍어 먹는 쫀득쫀득한 곱창 구리 돌다리길 곱창골목

초장에 찍어 먹는 쫀득쫀득한 곱창 구리 돌다리길 곱창골목

그랜드 하얏트 서울 추석 연휴 특별한 추억 만들기 진행

구리 수택동 구리시장 곱창골목은 일명 ‘돌다리길 곱창골목’으로 불린다.

시장을 지나 돌다리길 뒤편으로 내려서면 초입부터 고소한 냄새가 자욱하다.

10여 개 곱창집들이 옹기종기 모인 곱창골목은 대낮부터 “지글지글” 곱창 굽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돌다리길 곱창골목에 곱창집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선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구리시장 내 포장마차에서 곱창을 팔던 상인들이 하나둘 골목에 가게를 열기 시작하면서 곱창골목이 형성됐다.

‘원조 유박사 곱창’ 외에도 ‘보배곱창’, ‘이모네’ 등이 이곳에서 터줏대감 역할을 하는 식당들이다.

다른 맛집 거리와 견주면 이곳 곱창골목은 서민들의 향취가 가득하다.

손님들은 시간대에 따라 제각각이다.

수업을 마친 학생들, 저녁시간에는 직장인들이 소주 한잔에 곱창 안주를 즐기러 식당 문을 두드린다.

특히 이곳 곱창집들은 인근 청소년들에게 인기가 높다. 학생들이 찾으면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양을 더 얹어주기도 한다.

곱창집들 중 맏형 격인 ‘원조 유박사 곱창’의 사연은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곳 주인장이 곱창볶음을 시작한 게 1987년의 일이다.

막 시집 온 새댁은 구리시장 안에 포장마차를 꾸렸고, 그때 안주로 내던 것이 곱창이었다.

깻잎, 양배추 등 야채와 함께 내놓은 곱창볶음은 당시 여성들에게 유독 인기가 좋았다.

그때의 명맥을 이어 요즘도 이 식당에서는 야채곱창을 주메뉴로 자랑한다.

그 당시는 곱창도 일일이 가위로 잘라내던 시절이었다.

곱창을 손질하다 보면 손가락이 퉁퉁 부어오르기 다반사였고, 밀가루 반죽을 넣어 곱창을 씻어내면 기름기 때문에 하수구가 막히기 일쑤였다.

요즘 곱창 장사는 그래도 수월한 편이다. 곱창도 잘라놓은 상태로 들어오고 수압으로 속을 씻어내니 그만큼 간편해진 셈이다.

포장마차에서 곱창 장사를 시작했던 주인장은 1992년에 본격적으로 곱창 전문 식당을 열었다.

이곳 곱창골목에 자리를 잡은 것은 2001년이다.

인근 ‘보배곱창’과 ‘이모네’ 역시 2001년부터 함께 골목을 지켜온 식당들이다.

골목이 유명세를 타면서 다른 식당들이 옹기종기 들어서서 돌다리골 곱창골목이 지금과 같은 모양새를 갖추게 됐다.

이곳 곱창집들은 몇 가지 맛의 비결을 갖고 있다.

일단 신선한 곱창을 준비하는 게 포인트다.

식당에서는 하루 두 차례 곱창을 들여와 당일 판매를 원칙으로 한다.

곱창은 쫀득쫀득해질 때까지 바싹 굽고, 구울 때는 냄새를 없애기 위해 소주를 약간 붓는다.

들기름을 약간 섞어주는 것도 곱창의 노릿한 냄새를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다 익은 곱창은 초장에 찍어 상추에 싸 먹는다. 초장에 찍어 먹는 것은 다른 지역 곱창 가게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다.

포장마차 시절 손님들이 초장에 찍어 먹고 맛있어 하는 모습을 보고 정착시킨 뒤 이곳 곱창골목 대부분의 식당에서 곱창과 초장을 함께 먹는 게 유행이 됐다.

포장마차에서 곱창골목까지 20여 년 넘는 세월이 흐르다 보니 단골손님들의 성향도 제각각이다.

학생 때 단골이었던 곱창 마니아들이 그 맛을 잊지 못해 지방에서도 일부러 올라오고, 유학 갔다 돌아온 아이들에게 이곳 곱창을 사다주는 학부모들도 있단다.

“학생 때 왔던 친구들이 이곳에서 연애하고 나중에 애를 안고 찾아왔을 때가 가장 보람 있죠. 나도 곱창 장사로 큰딸을 대학까지 보냈으니까요.

아이를 집에 두고 남편과 함께 밤을 번갈아 새며 장사하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마음이 짠해요.”

‘유박사 곱창’ 주인장의 추억처럼, 구불구불한 곱창 안에는 맛뿐 아니라 숱한 사연과 애환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