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고 아기자기한 것이 좋아 여자들이 좋아하는 제주 여행

예쁘고 아기자기한 것이 좋아 여자들이 좋아하는 제주 여행

예쁘고 아기자기한 것이 좋아 여자들이 좋아하는 제주 여행

강 따라 마을 지나 청양 남산녹색둘레길

웅장하고 아름다운 자연과 천혜의 비경이 가득한 곳. 제주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수식어다.

하지만 제주에는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자연만 있는 건 아니다.

예쁘고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권하는 또 다른 제주 여행. 이들을 위한 큐트한 제주 여행이 시작된다.

여기가 학교라고? 알록달록 애월읍 더럭분교

이번 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는 애월읍 하가리에 있는 작은 분교다.

여행 중에 웬 학교냐고? 모르는 말씀 마시라. 애월초등학교 더럭분교는 대기업 CF에 등장했을 정도로 유명한 학교다.

그 유명세를 타고 알음알음 찾아오는 여행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실 더럭분교는 몇 년 전만 해도 학생 수가 적어 늘 통폐합 위기에 놓였던 곳이다.

그러다 2012년 삼성의 ‘HD 슈퍼 아몰레드 컬러 프로젝트’에 선정되면서 지금 같은 모습으로 바뀌었다.

당시 프로젝트에 ‘색채지리학’의 창시자인 세계적인 컬러리스트 장 필립 랑클로가 참여했고,

덕분에 더럭분교는 전에 없는 동화 같은 알록달록한 학교로 다시 태어났다.

예쁘게 단장된 학교에 아이들은 물론 교사들도 설렜으며 더럭분교에 전학 오는 학생도 늘었다.

재미난 건 늘어난 게 학생뿐만 아니라는 것. 학교가 유명해지면서 ‘여행객’이라는 생각지도 못했던 손님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더럭분교과 처음 마주할 때 대부분이 “여기가 학교?”라며 되묻는다.

우리가 생각하는 학교의 이미지와는 상당히 거리가 먼 낯선 풍경 때문이다.

넓은 잔디 운동장과 낮은 단층 건물에 알록달록 색이 입혀진 학교는 동화책에서 막 튀어나온 입체 조형물 같다.

새파란 하늘 아래, 동화 같은 학교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면 어디선가 영화를 찍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본관 건물뿐 아니라 음수대와 급식실, 심지어 쓰레기 수거장까지 다채로운 색으로 갈아입은 모습이 정말 사랑스럽다.

본관 앞 벚나무에 매달린 조그만 종도 어찌나 귀엽고 예쁜지.

장식용 소품이 아닌 진짜 ‘학교 종’이다. 교무실 문이 드르륵 열리며 여선생님이 나와 종을 가볍게 울린다.

맑고 곱게 울려 펴지는 ‘땡땡땡’ 소리. 놀던 아이들이 까르륵거리며 교실 안으로 들어가고, 이내 고운 합창 소리가 흘러나온다.

평화로운 한때, 학교에서 힐링의 에너지를 한껏 받아 간다.

더럭분교를 방문할 때는 이곳이 관광지가 아닌 아이들이 공부하는 학교라는 점을 잊지 말자.

교실 안으로 불쑥 들어간다든가,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행동은 삼가도록 하자.

동화 같은 더럭분교를 마음에 꼭꼭 담아두고 두 번째 여행지를 찾아 떠난다.

곧게 뻗은 평화로를 타고 한참을 남쪽으로 내려가다 닿은 곳, 이니스프리 제주하우스다.

이곳은 화장품 브랜드인 ‘이니스프리’ 체험관이다.

브랜드 체험관이라고 해서 뭐 볼 게 있을까 싶지만, 일단 안에 들어서면 나가기가 아쉬워진다.

이니스프리 제주하우스는 일반 화장품 전시관이라기보다 제주의 자연과 더불어 휴식과 힐링을 즐길 수 있는 예쁜 카페 같은 느낌이다.

이니스프리 제주하우스는 모기업인 아모레퍼시픽이 운영하는 오설록 서광다원 내에 자리했다.

3면이 유리로 돼 주변 차밭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맑은 날에는 한라산까지 또렷이 보인다.

강 따라 마을 지나 청양 남산녹색둘레길

강 따라 마을 지나 청양 남산녹색둘레길

강 따라 마을 지나 청양 남산녹색둘레길

사구를 지키는 습지의 힘 태안 두웅습지

충청남도 청양군 칠갑산 옆으로 해발 366m의 자그마한 남산이 솟아 있다.

이 산을 중심으로 이어진 ‘남산녹색둘레길’은 연장 13.8km로 지천생태길, 녹색길, 벚꽃길, 고향길 구간으로 연결된다.

자연생태와 역사, 농가의 풍경을 두루 조망하며 어렵지 않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둘레길을 한 바퀴 돌고 향기로운 고운식물원까지 관람하면 더 좋다. 청양을 찾는 어느 날, 눈과 마음이 온통 푸르게 물들 것이다.

물길 따라 ‘지천생태길’, 숲길 위로 ’녹색길’

걸음의 시작은 지천생태공원이 좋다. 청양터미널에서 멀지 않아 대중교통을 이용해 찾아가기가 수월하다.

공원 옆으로 작은 주차장도 조성되어 있어 차량 이동도 용이하다.

지천은 남산 둘레를 지나 부여의 금강과 만나는 1급수 천으로 생태보존이 잘 되어 있다.

지천 주변으로 도심 천에서는 보기 힘든 부들과 마름, 생이가래, 부레옥잠, 어리연 등이 자라고, 창포와 물억새, 갈대 등이 곳곳에 자생한다.

물속에는 여러 종의 물고기가 서식하며, 특히 금강하굿둑이 생기면서 사라졌던 참게가 각고의 노력 끝에 다시 돌아왔다.

지천생태공원 입구에 이를 기념하는 참게 조형물이 설치되었다.

또 공원 내 청양향교 부근에서 발견된 ‘교월리 말무덤’이 문화유산으로 보존되고 있다.

수변 산책로를 따라 길을 이어가면 작은 운동장이 있는 백세공원에 닿는다.

공원 옆에 널찍한 주차장이 있다.

곳곳에 쉼터가 조성되어 있고, 각종 운동시설과 잔디광장이 이용객의 편의를 돕는다.

공원 중앙에는 작은 공설무대도 있다. 이곳을 중심으로 때마다 주민행사가 열린다.

공원 맞은편에는 인공폭포와 물레방아가 설치되어 볼거리를 더한다. 붉은 구름다리가 놓여 천을 건너는 데 불편함이 없다.

천을 따라 30여 분을 더 걸어가면 지천교에 이른다.

차량이 이동하는 도로를 따라 걸어도 좋지만, 백세공원 맞은편 마을 옆 산책길을 걷는 것이 더 좋다.

수변 풍경과 함께 농가의 삶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천교에서부터는 ‘녹색길’이 시작된다. 녹색길은 먼저 적누리마을을 지나는데, 흙색이 붉고 누렇다는 뜻을 지녔다.

농가 풍경을 구경하며 걷다 보면 녹색길 중간 지점인 적누저수지에 닿는다.

저수지 옆으로 조성된 녹색길은 걷기 편한 자갈길이다. 중간 중간 다리쉼을 할 수 있는 의자와 팔각정이 마련되었다.

남산 등산로 들머리 옆에 있는 ‘우암송씨제각’과 조선시대 양차원이라는 사람의 효행을 기리는 ‘효자비’를 지나면 녹색길 끝자락인 광금리마을이 나온다.

꽃잎 흩날리는 ‘벚꽃길’, 할머니 생각나는 ’고향길’

광금리는 산촌생태마을과 녹색체험마을로 조성되어 매년 ‘산꽃마을축제’가 펼쳐진다.

특히 탄금리마을로 향하는 고갯길은 벚나무길로 봄이면 벚꽃이 흩날리고, 여름이면 풍성한 잎이 햇살을 가려주는 명품 가로수길이다.

나무그늘 아래를 천천히 걷다 보면 탄정리마을이 나온다.

소박한 농가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 마을은 청양현에서 꼭 7리 떨어진 곳이라 하여 예부터 ‘일고브리’라 불린다.

마을을 벗어나서 대치천을 따라 탄정교를 건너면 청양향교에 닿는다.

청양향교는 조선 초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1851년(철종 2년)과 1874년(고종 11년)에 중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향교의 대성전에 명나라에서 사신이 가져온 공자의 화상을 봉안하고 있다.

더러 문이 잠긴 경우가 있지만, 인근 주민에게 문의하면 기꺼이 문을 열어준다.

향교를 보고 돌아 나와 가던 길을 이어가면 녹색둘레길의 시점인 지천생태공원에 도착한다.

녹색둘레길 종주는 보통 4시간 정도 소요된다. 이정표와 안내판이 각 지점마다 잘 설치되어 있고, 쉼터도 곳곳에 마련되어 있다.

다만, ‘고향길’ 구간을 제외하면 식당이나 가게를 찾기 힘드니 간식과 식수를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둘레길과 함께 남산오름길인 등산로도 조성되어 있다.

산길은 적누저수지에서 남산 정상을 지나 지천생태공원으로 연결된다. 약 2시간 정도 소요되며, 연장 4.7km이다.

사구를 지키는 습지의 힘 태안 두웅습지

사구를 지키는 습지의 힘 태안 두웅습지

사구를 지키는 습지의 힘 태안 두웅습지

항일운동의 큰 별이 태어난 역사의 땅 홍성

두웅습지는 우리나라에서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곳 가운데 강화 매화마름군락지 다음으로 규모가 작다.

전체 면적 6만 5000㎡(약 2만 평) 가운데 물에 잠긴 부분은 훨씬 좁아서 초등학교 운동장만 하다.

데크와 흙길로 된 습지 산책로를 한 바퀴 도는 데 15분이면 충분하다.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곳’이라는 정보에 순천만이나 우포늪 같은 곳을 기대했다가는 실망하기 십상이다.

두웅습지는 ‘사구 배후습지’라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사구 지대 뒤에는 평지나 산지가 있고, 사구 지대와 산지 경계부에는 담수가 고이는 배후습지가 형성된다.

두웅습지는 신두리해안사구의 배후습지라는 지형적인 의미와 희귀한 동식물이 서식하는 생태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2001년 태안신두리해안사구와 함께 천연기념물 431호로 지정됐고, 2002년에는 습지보호지역으로, 2007년에는 람사르 습지로 등록됐다.

겉모습만 보고 실망해서 돌아가지 말고 안내소 문을 두드려보자.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해설사가 상주한다.

30~60분 동안 두웅습지의 형성 과정과 의미, 습지에서 살아가는 동식물에 대해 들려준다.

두웅습지는 자그마한 규모에 비해 다양한 생물이 서식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멸종 위기 야생생물 금개구리다.

배 쪽이 황금처럼 누런빛을 띠는 금개구리는 참개구리보다 약간 작고, 밝은 녹색 등에는 줄무늬가 2개 있다. 개체 수가 적고 잘 움직이지 않아 찾기 힘들다.

5월 말부터 6월 중순까지 번식기라서 울음소리를 듣거나 모습을 관찰할 확률이 높다.

습지 내 초록색 울타리를 친 곳이 금개구리 서식지다.

멸종 위기 야생생물 표범장지뱀과 맹꽁이도 두웅습지에 있다.

이밖에 유혈목이와 도롱뇽 같은 양서·파충류, 노랑부리백로와 왜가리, 알락꼬리마도요, 쇠기러기, 종다리,

흰물떼새 등 조류도 이곳을 둥지 삼아 살아간다.

시간대와 계절에 따라 관찰할 수 있는 생명체가 다른데, 개미귀신은 아무 때나 쉽게 보인다.

명주잠자리 애벌레로, 모래에 깔때기 모양 함정을 만들고 거기 빠진 개미나 작은 곤충을 잡아먹는다.

솔숲 아래 모래땅에 개미지옥이 많다.

두웅습지 해설 중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가장 인기 있는 부분이 개미귀신을 보여줄 때라고.

습지에서 살아가는 식물도 특색 있다.

자주 눈에 띄는 갈대나 억새, 부들, 해당화 외에 쉽싸리, 매자기, 부처꽃, 이삭사초, 창포,

애기마름, 참통발 등 설명을 듣고 보면 하나같이 소중한 습지식물이다.

두웅습지는 바닥이 신두리해안사구의 지하수와 연결돼 가뭄이 들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

덕분에 이곳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동식물에게 안정적인 생태 환경을 제공한다.

두웅습지가 오염되거나 파괴되면 신두리해안사구까지 영향이 미친다.

신두리해안사구를 지금 모습 그대로 지켜주는 게 두웅습지인 셈이다.

두웅습지에서 신두리해안사구 주차장까지 차로 3분, 걸어서 20분 걸린다.

사구 안내도에 두웅습지가 표시되었고, 신두리사구센터 전시 중에 두웅습지가 한 코너를 장식한다.

습지 모형에 금개구리와 맹꽁이가 귀여운 얼굴로 맞이하고, 금개구리 울음소리도 나온다.

신두리사구센터는 신두리해안사구를 보호하고 방문객의 이해를 돕기 위한 시설로, 사구를 둘러보기 전에 전시물을 관람하는 게 좋다.

항일운동의 큰 별이 태어난 역사의 땅 홍성

항일운동의 큰 별이 태어난 역사의 땅 홍성

항일운동의 큰 별이 태어난 역사의 땅 홍성

자애로운 백제의 미소 충남 서산 마애삼존불

충남 홍성군에서는 역사 속의 위인들이 많이 배출됐다.

고려 말기의 큰스님 보우국사, 명장이자 재상 최영, 사육신 성삼문, 조선 후기의 문신 남구만, 조선 말기의 순국지사 이설,

독립운동가 김복한 선생 등이 홍성 출신이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펼친 홍성 출신의 대표적

인물로 만해 한용운 선생과 백야 김좌진 장군이 손꼽힌다. 최근의 인물로는 고암 이응노 화백이 있다.

홍성군은 1914년 홍주군과 결성군이 합쳐지면서 탄생했다.

홍성 읍내에 자리한 홍주성역사관에서 선현들의 발자취와 홍주읍성의 예전 모습, 홍성의 역사 등을 만나볼 수 있다.

홍성군청 바로 옆에 있는 홍주읍성은 고려 시대에 축조됐으며, 최대 길이가 1772m에 이르렀으나 810m만 보존되었다.

성내 관아 건물도 35동이었는데, 현재는 조양문과 홍주아문, 안회당(동헌), 여하정만 남아 있는 실정이다.

홍주성역사관에서 홍성군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기초 지식을 쌓았다면 김좌진장군생가지부터 가보자.

서해안고속도로 홍성 IC로 나가자마자 쉽게 찾을 수 있는 역사 시설이다.

출입문 왼편에 생가, 오른편에 기념관이 자리하고, 300m 정도 안으로 들어간 야산 자락에 사당이 있다.

생가 대문에 붙은 ‘김좌진’ 문패 글씨가 선명해서 아직도 장군이 살아 계신 듯 여행객의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마당으로 들어서면 안채, 사랑채, 광, 우물이 보인다. 서향으로 앉은 안채 뒤편 장독대를 돌 때면 조국 광복을 보지 못하고 눈감은 장군의 일생이 안타깝다.

1998년 문을 연 백야기념관으로 이동하면 장군의 흉상을 비롯해 독립운동의 이모저모를 자세히 볼 수 있다.

특히 청산리대첩 모형이 눈길을 끈다. 김좌진장군이 이끄는 독립군이 일본군을 청산리계곡으로 유인·초토화하는 장면이다.

김좌진(1889∼1930) 장군은 1911년 군자금 모금 활동으로 투옥됐고,

1915년 독립운동 자금 모금 중 체포되어 또다시 옥고를 치렀다. 1917년에는 만주로 가서 독립군을 조직하고 항일 무장투쟁을 펼쳤다.

특히 청산리대첩은 일제강점기에 기록적인 성과를 거둔 전투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록에 따르면 청산리대첩에서 일본군은 전사자 1200여 명, 부상자 2100여 명이었으나

독립군은 전사자 130여 명, 부상자 220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장군이 남긴 〈단장지통〉이라는 시는 가슴에 새기지 않는 관람객이 없다.

‘적막한 달밤에 칼머리의 바람은 세찬데 / 칼끝에 찬서리가 고국생각을 돋구누나 / 삼천리 금수강산에 왜놈이 웬말인가 / 단장의 아픈마음 쓰러버릴 길 없구나.’

이곳에는 문화관광해설사가 상주하면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관람객이 요청할 때마다 안내해준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김좌진 장군 생가 앞길을 따라 남쪽의 결성농요농사박물관 방면으로 10분 정도 내려가면 승려이자 시인이요

독립운동가 만해 한용운(1879∼1944) 선생의 생가지에 닿는다. 먼저 들러볼 곳은 만해문학체험관(매주 월요일 휴관).

동상과 초상화를 보면서 예의를 갖추고 실내 전시실로 들어서면 만해의 문학과 철학을 반영하는 유물 60여 점이 있다.

특히 유천(만해의 아호)이 서당에서 공부하던 모습, 서당에서 한학을 가르치는 모습, 글 읽기에 정신이 팔려 참새가 벼를 다 먹어

치운 장면, 만주에서 마취 없이 총탄 제거 수술을 받는 장면, 딸 영숙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모습 등

만해의 일생이 자그마한 인형으로 재현돼 위인의 삶을 친근하게 배울 수 있다.

그중에서도 설악산 오세암에서 〈님의 침묵〉을 집필하는 장면을 재현한 방이 압권이다.

12폭 병풍을 뒤에 두르고 단정하게 앉은 선생은 호롱불에 의지한 채 붓으로 〈님의 침묵〉을 써 내려간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로 시작되는 〈님의 침묵〉은 초가 형태의 생가 툇마루 흙벽에도 걸려 있다.

만해의 님은 조국, 민족, 생명의 근원 등이다. 불교의 힘으로 이별의 슬픔을 이겨내려는, 조국 광복을 희망하는 마음을 담았다.

만해는 1905년 백담사에서 득도하고 1910년 《조선불교유신론》을 탈고했으며, 1919년 삼일운동 때는 민족 대표 33인으로 활동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했다.

이후 불교의 대중화, 독립사상 고취, 문학 활동을 펼치다가 1944년 서울 성북동 심우장에서 입적했다.

심우장을 지을 때 조선총독부를 마주 보기 싫다고 북향으로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자애로운 백제의 미소 충남 서산 마애삼존불

자애로운 백제의 미소 충남 서산 마애삼존불

자애로운 백제의 미소 충남 서산 마애삼존불

바다로 향하는 꽃길 태안 청포대 카라반 빌리지

친구 같은 그 곳, 충남 서산

여행은 무엇보다도 자유스러워야 된다는 전제 때문에 그저 목적 없이 떠도는 것이 진짜 여행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내 경험으로 보자면 가장 지독한 권태는 가장 자유스러운 상황에서 비롯되고,

더욱이 자유를 만끽하는 일에 익숙해 있지 않은 이들에게는 그 권태가 예상보다 훨씬 더 빨리 찾아온다.

그쯤 되면 자유는 더 이상 자유가 아니라 오히려 속박으로 느껴지는 까닭에 나의 여행은 늘 목적지를 미리 계획해둔 상태에서 시작된다.

특히 목적지가 처음 가보는 곳이라면 더욱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나서게 되고, 여러 번 가본 곳이라면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를 보러 가는 듯한 설렘이 앞선다.

서산마애삼존불상(국보 제 84호)이라 불리는 돌부처를 찾아 갈 때면 내 마음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찬란한 불교의 자취, 백제 말기의 마애삼존불상

서산마애삼존불이 자리한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강댕이골은 백제시대에 태안반도를 통해서 유입된 중국의 불교 문화가

그 당시의 수도인 부여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가야 했던 길목이었다.

중국의 선진 문화를 다른 곳보다 앞서 접했던 이곳 사람들은 서산마애삼존불이라는 찬란한 불교 미술품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백제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이 불상은 본존불인 여래입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매우 재미있는 표정과 자세를 갖춘 반가사유상과 보살입상을 협시불로 두고 있다.

여래입상은 볼이 터질 듯한 큰 얼굴에 은행알 같은 눈과 둥글고 긴 눈썹, 얕고 넓은 코를 하고 있는데,

특히 볼에 가득 퍼진 미소가 꾸밈없이 밝고 너그러워서 흔히 “백제의 미소”라 불린다.

거기엔 사람을 주눅들게 하는 권위나 위엄 따위는 찾아볼 수도 없고, 단지 오늘날 우리네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었을 백제인의 따뜻한 모습만이 살아 있다.

크지 않은 규모이지만 많은 관광객이 찾는 개심사

마음을 여유롭게 하는 개심사

개심사는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 상왕산 기슭의 울창한 솔숲에 고즈넉이 자리한 사찰로 백제 의자왕 때에 혜감국사가 세웠다고 한다.

절의 규모도 그리 크지 않고 번듯한 국보급의 문화재 하나 없지만 마음을 여유롭게 하는 한적한 분위기로 뭇사람들의 마음을 훔치는 곳이다.

크지도 작지도 않을 만큼 적당한 크기의 건물들은 주변의 산세와 서로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고 심검당의

기둥은 제멋대로 휘어진 나무의 자연미를 그대로 살려 놓음으로써 어느 한곳이라도 자연을 거스르지 않도록 배려하였다.

오래되었지만 아름답고 절제 있는 해미읍성

평화로움 뒤에 숨겨진 슬픈 역사

해미 면소재지에 위치한 해미읍성은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옛 성 가운데에서 가장 형태가 온전하면서도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힌다.

성벽의 높이는 4m에 둘레가 2km쯤 되는데, 조선 태종 때에 왜구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한 군사 요새로 쌓기 시작하여

성종 때인 1491년에 완공되었고 그 뒤로 이 성안에는 해미현 현청과 충청도 병마절도사의 사령부가 들어섰다.

1970년대까지도 성안에는 면사무소, 국민학교, 우체국 등의 공공기관과 민가 160여 채가 있었으나 해미읍성 복원사업으로 인해 모두 성밖으로 옮겨졌다.

해미읍성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 이름처럼 아름다운 성(城)의 겉모습만을 가슴에 담고서 돌아가게 마련이지만

그 아름답고 평화로운 분위기 뒤에는 피비린내 나는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데,

조선 말 “병인박해” 당시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이 읍성과 인근 해미천에서 목숨을 잃은 곳이다.

남쪽으로는 천수만, 북동쪽으로는 간월호가 있는 간월호 마을

겨울철에 서산 땅을 찾거든 우리나라 최대의 간척지인 천수만 간척지를 빼놓을 수가 없다.

우리나라 최대의 겨울 철새도래지로도 이름난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A지구 간척지에 들어선 인공 담수호인 간월호(870여만 평)에는

겨울의 진객인 고니(백조)를 비롯하여 청둥오리, 기러기 등 갖가지 겨울 철새들이 수만 마리씩 떼지어 날아든다.

또한 이곳을 찾는 겨울 철새들의 수효와 종류가 해마다 크게 늘고 있어서 어린이들의 새로운 자연 학습장으로,

그리고 대규모의 생태 관광지로 새롭게 각광 받고 있다. 매년 11월부터 2월까지 간월호 방조제에는 철새떼를 구경하려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특별히 허가를 받을 필요는 없지만 중간중간 출입금지 지역과 어두운 시간을 피해 다니도록 하고 탐조여행을 나설

때에는 쌍안경과 조류도감을 반드시 챙기는 것이 좋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급적 새들의 활동이 가장 왕성한 동틀 무렵과 해질녘에 맞춰서 가도록 하는 것이다.

바다로 향하는 꽃길 태안 청포대 카라반 빌리지

바다로 향하는 꽃길 태안 청포대 카라반 빌리지

바다로 향하는 꽃길 태안 청포대 카라반 빌리지

한옥의 보물섬 상화원에서 홀로 보낸 몇 시간

대한민국 캠핑의 전성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하지만 초심자가 그 많은 캠핑 장비를 마련하기란 만만찮다.

경제적 부담은 물론이거니와 이것저것 신경 쓰고 그 사용법을 익히는 것도 결코 쉽지 않다.

캠핑이라는 게 ‘장비 사는 맛’이라지만 뭐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고 그렇다면 대안은 카라반이다!

캠핑 분위기 한껏 내면서 내 집보다 편안한 안락함은 기본, 거기에 멋진 서해의 전망과 고품격 산책로까지! 바로 청포대 카라반 빌리지가 그런 곳이다.

카라반의 원조 미쿡에서 왔어요~

태안 청포대 해변은 충청권은 물론이고, 서울과 수도권, 전라도에서도 접근성이 매우 좋은 편이다.

주말 오전과 같은 상습 정체 시간만 피한다면 2시간이면 충분히 도착한다.

자그마한 청포대 해변 중앙에서 일군의 카라반 부대를 만난다. 오늘의 베이스캠프! ‘청포대 카라반 빌리지’다.

청포대 카라반 빌리지는 앞으로는 드넓은 서해를 조망하고, 뒤로는 소나무 숲을 기대고 있다.

똑 부러지는 젊은 여사장이 운영하는 이 캠핑장에는 모두 8대의 카라반이 있다. 모두 카라반의 원조국인 ‘미쿡’에서 물 건너온 녀석들이다.

범퍼에 노란색 라커로 작게 새겨진 Maid in USA가 이를 보증한다. 자부심 가득한 저 조그만 페인트 글씨.

자기는 중국산 아니라 미제란다. 못살던 시절, 고급품의 대명사였던 Made in USA. 오랜만에 만나니 ‘반갑다 친구야!’

청포대 카라반 빌리지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크다’는 것이다. 총 8대의 카라반들은 한눈에 봐도 덩치들이다.

“다른 곳에서는 4~6인용으로 쓰는 건데 저희는 커플용으로 운영해요.” 주인장의 설명이다.

똑똑똑! 안으로 한번 들어가 본다. ‘그래 봐야 카라반 아니겠어?’ 섣부른 예단은 보기 좋게 빗나간다.

더블베드 퀸 사이즈 침실은 물론, 주방과 거실, 화장실에 샤워 부스까지 아파트 한 채를 옮겨왔다.

8대의 카라반 인테리어도 나름 제각각이다. 카라반은 체험 상품이기에 올 때마다 다른 느낌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 이곳의 차별화 전략이다.

전셋집 보러 온 것도 아니고, 카라반 감탄은 저녁으로 잠시 미루고, 눈앞에 보이는 바다로 나가보자!

커다란 인디언 인형이 지키고 있는 입구를 나오자마자 청포대 해수욕장의 하얀 백사장이 시작된다.

아담한 방풍림을 지나면 바로 청포대 해변이다.

카라반 바로 앞에 바다가 있으니 1분도 안 되어 서해의 수온을 엄지발가락으로 잴 수 있지만, 그럼 재미없다.

메인 요리는 좀 있다 먹기로 하고, 애피타이저를 먼저 먹는다.

청포대 카라반 빌리지 입구를 나와 우측으로 한 300m 올라가면 역시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멋진 펜션들이 줄지어 있다.

그 펜션 앞 백사장에는 누가 조성했는지 예쁜 꽃밭이 펼쳐져 있다.

정말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꽃길이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특히 군락을 이룬 노란 야생화가 발길을 잡아끈다.

유혹의 꽃길은 바다로 이어지고 서해와 나란한 해변 길은 청포대 방문자들에게 좋은 산책을 제공한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청포대 해변을 걷고 있으면, “태안에는 34개의 해변이 있는데 그중에서

청포대 해변이 가장 예쁘다”는 캠핑장 주인장의 말이 제 집 자랑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카라반 사업도 청포대의 매력에 푹 빠져서 하게 됐단다.

청포대 해수욕장은 아담하고 아직 한가하다. 성수기 전이어서 오토캠핑장에 빈자리가 넉넉하며,

바다 바로 앞에까지 차를 가져갈 수 있을 만큼 해변도 한갓지다.

한옥의 보물섬 상화원에서 홀로 보낸 몇 시간

한옥의 보물섬 상화원에서 홀로 보낸 몇 시간

한옥의 보물섬 상화원에서 홀로 보낸 몇 시간

떠나가는 가을이 남긴 노란 단풍 청라 은행마을

한옥이 섬으로 들어갔다.

섬을 수호하던 나무는 전입신고를 마친 오래된 집을 감쌌다.

사람은 손길을 뻗어 길을 내고 연못을 만들었다. 섬에서 본 바다가 조화로워 상화원이라 이름 붙였다.

죽도에 정원이 생긴 사연이다. 풍경이 아름다워 보물섬이란 소문이 뭍으로 퍼졌다.

혼자 조용히 무더위 피할 시간이 간절하다면 보령시 죽도 상화원으로 향하자.

섬 전체가 정원이 되다

장항선 대천역에 내려 택시로 갈아타니 죽도까지 10여 분 거리다.

원래 서해에 떠 있던 섬이 간척사업으로 도로가 놓이며 육지와 연결되었다.

한때 난개발의 위기에 놓이기도 했지만 죽도의 자연을 온전하게 지키겠다는 섬 주인의 고집 덕분에 지금의 모습을 보존할 수 있었다.

주인은 섬을 보호하기 위한 의미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조화를 숭상한다는 뜻을 담아 상화원(尙和園)이라는 이름의 정원을 만들기로 했다.

죽도의 자연에 상처 내지 않겠다는 결심과 함께였다. 섬에 한옥을 들여올 생각은 어떻게 했을까.

이질적으로만 느껴지는 둘의 만남은 오늘날 생각해보니 절묘했다.

방문객들은 예상치도 못한 한옥을 섬에서 만나 기뻤다. 사라질 위기 앞에서 생명을 연장한 한옥이었다.

상화원 어디에서든 바다는 손에 잡힐 듯하다. 길과 어깨를 맞댄 울창한 숲은 몸을 숨기기에 충분하다.

인파가 몰리는 여행지가 부담스럽다면 상화원은 잠깐 나의 행방을 묘연하게 만들 근사한 은신처가 된다.

상화원의 길을 걷다

상화원 전체를 도는 데 1시간 30여 분이면 족하다. 섬까지 와서 서두를 필요가 있을까.

조급함은 잠시 접어두자. 상화원 입구에 들어서면 정면에 잘생긴 한옥 한 채가 반긴다. 의곡당이다.

경기도 화성 관아에서 정자로 이용하려고 지었던 한옥이다. 고려 후기 또는 조선 초기에 세웠다고 추정한다.

상화원으로 옮겨오기 전에는 천막을 쳐서 다방으로 썼다. 보존을 위해 이곳으로 오지 않았다면 이미 철거되었을 가옥이다.

의곡당은 현재 방문객센터로 쓰인다. 관람하는 이들에게 간단한 음료와 떡을 제공한다.

상화원 안에는 식당이나 매점이 없으니 참고하자. 마실 물을 챙기지 못했다면 회랑에 갖다놓은 생수자율판매대를 이용하면 된다.

상화원 관람은 입구를 등지고 오른쪽에서부터 시작된다. 1km가 넘는 회랑을 따라 걸으면 된다.

회랑으로 향하기 전 초록 잎이 무성한 팽나무에게 눈길 한 번 주자.

누가 적어두었는지 ‘팽나무 약 200살’이라 쓴 나무판자가 익살스럽다. 넉넉하게 드리운 나무 그늘이 고마운 계절이다.

‘산책로 입구’라 쓰인 푯말이 출발점이다.

회랑 바닥에 설치한 하얀색 줄은 방문객들에게 이정표 구실을 한다.

50m마다 설치한 거리 표시가 얼마나 걸어왔는지 알려준다. 덕분에 길을 찾는 수고는 덜하고 마음에 담는 풍경의 크기는 배가 된다.

회랑은 죽도 원주민이 오랜 시간 지나던 길을 그대로 따라 만들었다.

섬의 등고선과 닮은 높낮이에 지루할 새가 없다. 지붕을 얹어 궂은 날씨에도 산책하는 데 어렵지 않다.

계단이 많아 유모차나 휠체어로 가기엔 불편하다. 길 중간에 의자와 탁자를 둔 쉼터가 충분하다.

길에서 조금 벗어나 숲에서 보는 회랑 지붕의 곡선이 유려하다.

오르고 내리고 꺾이는 모습이 서해의 파도 같기도 하고 한옥의 지붕을 모방한 듯도 하다.

길을 놓는데 방해된다는 이유로 나무를 베지 않았다.

바닥과 천장에 구멍을 뚫어 자연을 지켰다. 나무를 피해 걸어야 하는 불편함이 오히려 흥미롭다.

떠나가는 가을이 남긴 노란 단풍 청라 은행마을

떠나가는 가을이 남긴 노란 단풍 청라 은행마을

떠나가는 가을이 남긴 노란 단풍 청라 은행마을

포도송이 같은 30여 개 태안이 품은 해변

가을은 하늘에서 시작해서 땅에서 끝난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며 가을이 왔음을 실감한다.

공중을 울긋불긋 화려하게 물들이는 단풍을 바라보며 가을이 한창임을 느낀다.

그리고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이 카펫처럼 깔리는 땅을 바라보며 곧 가을이 떠난다는 사실을 직감한다.

가을이 공중에서 땅을 향해 달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만끽하기 위해 선택한 곳은 충남 보령시의 청라 은행마을이다.

우리나라 최대 은행나무 군락지

보령시 청라면 오서산 자락에 위치한 청라 은행마을에 들어선다.

11월 초임에도 이곳엔 가을이 한창이다.

성미가 급해 이미 은행잎을 떨구기 시작한 은행나무도 있지만 아직도 느긋하게 초록빛을 머금은 은행나무가 많다.

‘올해는 더위랑 가뭄 때문인지 은행나무 단풍 시기가 여느 해보다 일주일 정도 더딘 것 같다’고 동네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그만큼 올해는 조금 더 늦게까지 청라 은행마을의 노란 물결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청라 은행마을은 국내 최대 은행나무 군락지다운 면모를 보인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어디로 눈을 향하든 은행나무가 들어온다.

마을에 3,000여 그루가 넘는 은행나무가 자라고 있다는 말이 과장은 아닌 듯하다.

어떻게 이곳에 은행나무가 서식하게 된 걸까. 마을에 얽힌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부터 장현마을(청라 은행마을) 뒷산은 까마귀가 많아 오서산이라고 불렀다.

산 아래 작은 못 옆에는 누런 구렁이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구렁이는 천 년 동안 매일같이 용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천년이 되던 날, 구렁이는 마침내 황룡이 되어 여의주를 물고 승천했다.

오서산 일대의 까마귀들이 이 장면을 지켜봤다. 이후 까마귀들은 먹이를 찾아다니다 노란색 은행을 발견하고는 황룡이 물고 있던 여의주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을로 고이 가져와 정성껏 키우면서 장현마을에 은행나무가 서식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전설과는 별개로, 청라 은행마을의 근원을 알려주는 실체도 있다.

바로 신경섭가옥(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91호) 앞의 수령 500여년 된 수은행나무다.

청라 은행마을의 은행나무들은 거의 암나무다. 마을 한 바퀴를 돌고나면 신발 끝에서 풍겨오는 냄새가 이를 증명한다.

500년 된 수은행나무는 청라 은행마을의 수많은 암나무들이 열매를 맺도록 제 역할을 해왔다.

도시에서 미관상 식재하는 은행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는 수나무가 많다지만, 농촌에서는 생업이 목적이기에 열매를 맺는 암나무를 많이 심는다.

한때 마을 사람들은 은행나무를 ‘대학나무’라고 불렀다.

은행 시세가 좋았을 때는 나무 몇 그루만 있으면 자녀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은행의 가치가 그 정도는 아니지만 여전히 청라 은행마을 주민들의 고마운 수입원이다.

청라 은행마을에서 한 해 열리는 은행양만 해도 100톤이 족히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은행 털어 대박 난 은행마을’이라는 애칭이 우스개 얘기만은 아니다.

청라 은행마을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둘러볼까,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 마을 둘레길을 따라 사부작사부작 걸으면 그만이다.

논밭을 따라, 개울을 따라, 흙집을 따라 은행나무들이 툭툭 서 있다. 인위적인 느낌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자연 그대로,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이다. 그도 그럴 것이 청라 은행마을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은행나무를

식재하고 꾸민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이 은행나무를 많이 심고 키우다보니 단풍 명소로 입소문이 나고 자연스레 여행객들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포도송이 같은 30여 개 태안이 품은 해변

포도송이 같은 30여 개 태안이 품은 해변

포도송이 같은 30여 개 태안이 품은 해변

한옥의 보물섬 상화원에서 홀로 보낸 몇 시간

꾸지나무골, 사목, 방주골, 어은돌, 두여, 샛별, 윤여, 바람아래

위 이름 중 몇 개나 귀에 익숙한지. 모두 태안이 품은 호젓한 해수욕장들이다.

푹푹 찌는 한여름, 갈 만한 해변이 마땅찮다고 푸념할 필요 없다.

태안반도는 1,300리 해변에 개성 넘치는 해수욕장 30여 개가 포도송이처럼 매달려 있다.

꽃지, 몽산포, 만리포 등 제법 유명한 해수욕장 외에도 낯설고 한적한 모래해변과 영화나 드라마의 숨은 촬영지로 등장했던 바닷가가 있다.

지도를 펼쳐놓고 동그라미를 그리다 보면 정말 포도송이가 완성된다.

태안반도 가장 북쪽에 위치한 꾸지나무골에서 안면도 남단의 바람아래까지, 태안의 해변은 골라가는 재미가 있다.

태안읍에서 603번 지방도를 따라 만대포구로 달리면 가장 북쪽에 위치한 곳이 꾸지나무골해수욕장이다.

20여 년 전만 해도 숲으로 덮이고 불도 들어오지 않는 외진 모래사장이었다.

뽕잎 대용인 꾸지나무 잎으로 누에를 치던 곳이 지금은 솔숲길과 연결된 호젓한 해수욕장이 됐다.

꾸지나무골 남쪽의 사목, 구름포, 방주골 등은 인적 뜸한 해변들이다.

사목해수욕장은 소들이 풀을 뜯던 고즈넉한 해변이었는데, 최근에 아늑한 펜션들이 들어서서 이국적인 풍취를 더한다.

한적한 태안의 해변은 영화와 드라마의 단골 촬영지가 되기도 했다.

634번 지방도 끝에 매달린 구례포해수욕장은 추억의 드라마 <먼동>의 촬영무대였다.

<용의 눈물>, <무인시대> 등 시대를 풍미했던 사극들도 이곳에서 찍었다.

근흥면의 갈음이해수욕장에서는 드라마 <다모>의 마지막 결투 장면이 촬영됐다.

채옥(하지원 분)이 죽어가는 황보윤(이서진 분)을 끌어안고 통곡하던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모래언덕이 포근한 이 해수욕장 소나무 숲은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인우(이병헌 분)와 태희(이은주 분)가 왈츠를 춘 곳이기도 하다.

사연으로 따지면 연포해수욕장을 빼놓을 수 없다.

이장호 감독의 영화 <바보선언>의 배경이 된 곳으로 모래사장 한가운데에 영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신두리해수욕장 옆 신두리사구를 놓치지 말아야겠다.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바닷가 모래언덕으로 천연기념물 제431호로 지정된 곳이다.

길이 13㎞의 몽산포해수욕장은 모래가 단단해 자동차 경기가 열리기도 한다.

몽산포해수욕장 옆 굴혈독살은 돌을 매달아 고기를 잡는 전통 어법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조약돌 해변을 보고 싶다면 파도리해수욕장이나 어은돌해수욕장으로 달려가면 된다.

안면도에 내려서도 굳이 콩나물시루 같은 꽃지해변만 고집할 필요가 없다.

삼봉, 기지포, 두여, 밧개, 두에기, 방포, 샛별, 윤여, 장삼포, 바람아래 등 사람들에게 덜 알려진 해변이 곳곳에 숨어 있다.

연인들을 위한 숲길 데이트 코스는 안면도 북단에 따로 마련돼 있다.

삼봉해수욕장과 기지포해수욕장 사이 해안 사구를 따라 소나무 숲길이 1㎞ 가량 이어진다.

기지포해수욕장은 사구 보존을 위해 해변에 대나무를 촘촘히 박아놓았다.

사구에서 자라는 해당화, 갯메꽃 등을 발견할 수 있다.

해안도로에서 가장 가까운 해수욕장인 밧개, 두여해변은 개발되기 전 꽃지해변의 정경을 그대로 품고 있다.

해변 가운데 개펄대장군, 개펄여장군이 이채롭다.

꽃지해수욕장에서 77번 국도를 따라 남쪽 영목항으로 방향을 틀수록 새로운 바다가 열린다.

안면도 남서쪽의 윤여해수욕장과 장삼포해수욕장은 황포 인근에 나란히 이어진 해변이다.

안면도에 붙은 다른 해변들에 비해 물이 유난히 맑고 잔잔하다. 인근 해변에 푹 둘러싸인 형상이라 더욱 아늑하다.

쌀썩은여해수욕장은 샛별해수욕장 뒤에 붙어 있다.

샛별해수욕장 남단에서 국사봉길을 넘으면 ‘아담 사이즈’의 한적한 해변이 나온다.

해변에 붙은 큰 바위는 꽃지해변의 할미·할아비바위처럼 썰물 때면 길이 열린다.

군 초소였다가 개방된 쌀썩은여(바위)에 오르면 해안 절경이 예사롭지 않다.

쌀썩은여는 일제강점기 쌀 실은 배가 침몰하면서 쌀 수천 섬이 이곳에 밀려와 썩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안면도 최남단 영목항 인근의 마을들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가경주마을은 새 둥지처럼 아름다운 마을이라는데, 이곳 주민들은 “안면도에서 일몰이 가장 멋진 곳”이라며 자랑한다.

3번 군도를 따라 대야도까지 가도 좋다.

안면도 초입 황도에 펜션 바람이 불었듯이, 대야도 역시 안면도 동남쪽 해변을 바라보는 포인트에 예쁜 펜션들이 자리 잡았다.

지포저수지를 끼고 누동 방면으로 달릴 때 펼쳐지는 개펄 양식장도 볼거리다.

안면도 최남단의 모래 해변은 바람아래해수욕장이다. 영화 <마리아의 여인숙>,

수필 《남자, 여행길에 바람나다》의 배경이 된 곳이다. 다소 쓸쓸하지만 오히려 상념에 젖기 좋은 곳이다.

한옥의 보물섬 상화원에서 홀로 보낸 몇 시간

한옥의 보물섬 상화원에서 홀로 보낸 몇 시간

한옥의 보물섬 상화원에서 홀로 보낸 몇 시간

오골계가 아닌 오계라 불러다오 논산 연산오계

한옥이 섬으로 들어갔다. 섬을 수호하던 나무는 전입신고를 마친 오래된 집을 감쌌다.

사람은 손길을 뻗어 길을 내고 연못을 만들었다. 섬에서 본 바다가 조화로워 상화원이라 이름 붙였다.

죽도에 정원이 생긴 사연이다. 풍경이 아름다워 보물섬이란 소문이 뭍으로 퍼졌다.

혼자 조용히 무더위 피할 시간이 간절하다면 보령시 죽도 상화원으로 향하자.

섬 전체가 정원이 되다

장항선 대천역에 내려 택시로 갈아타니 죽도까지 10여 분 거리다.

원래 서해에 떠 있던 섬이 간척사업으로 도로가 놓이며 육지와 연결되었다.

한때 난개발의 위기에 놓이기도 했지만 죽도의 자연을 온전하게 지키겠다는 섬 주인의 고집 덕분에 지금의 모습을 보존할 수 있었다.

주인은 섬을 보호하기 위한 의미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조화를 숭상한다는 뜻을 담아 상화원(尙和園)이라는 이름의 정원을 만들기로 했다.

죽도의 자연에 상처 내지 않겠다는 결심과 함께였다. 섬에 한옥을 들여올 생각은 어떻게 했을까.

이질적으로만 느껴지는 둘의 만남은 오늘날 생각해보니 절묘했다.

방문객들은 예상치도 못한 한옥을 섬에서 만나 기뻤다. 사라질 위기 앞에서 생명을 연장한 한옥이었다.

상화원 어디에서든 바다는 손에 잡힐 듯하다. 길과 어깨를 맞댄 울창한 숲은 몸을 숨기기에 충분하다.

인파가 몰리는 여행지가 부담스럽다면 상화원은 잠깐 나의 행방을 묘연하게 만들 근사한 은신처가 된다.

상화원 전체를 도는 데 1시간 30여 분이면 족하다.

섬까지 와서 서두를 필요가 있을까. 조급함은 잠시 접어두자. 상화원 입구에 들어서면 정면에 잘생긴 한옥 한 채가 반긴다.

의곡당이다. 경기도 화성 관아에서 정자로 이용하려고 지었던 한옥이다. 고려 후기 또는 조선 초기에 세웠다고 추정한다.

상화원으로 옮겨오기 전에는 천막을 쳐서 다방으로 썼다. 보존을 위해 이곳으로 오지 않았다면 이미 철거되었을 가옥이다.

의곡당은 현재 방문객센터로 쓰인다. 관람하는 이들에게 간단한 음료와 떡을 제공한다.

상화원 안에는 식당이나 매점이 없으니 참고하자. 마실 물을 챙기지 못했다면 회랑에 갖다놓은 생수자율판매대를 이용하면 된다.

상화원 관람은 입구를 등지고 오른쪽에서부터 시작된다.

1km가 넘는 회랑을 따라 걸으면 된다.

회랑으로 향하기 전 초록 잎이 무성한 팽나무에게 눈길 한 번 주자.

누가 적어두었는지 ‘팽나무 약 200살’이라 쓴 나무판자가 익살스럽다. 넉넉하게 드리운 나무 그늘이 고마운 계절이다.

‘산책로 입구’라 쓰인 푯말이 출발점이다. 회랑 바닥에 설치한 하얀색 줄은 방문객들에게 이정표 구실을 한다.

50m마다 설치한 거리 표시가 얼마나 걸어왔는지 알려준다. 덕분에 길을 찾는 수고는 덜하고 마음에 담는 풍경의 크기는 배가 된다.

회랑은 죽도 원주민이 오랜 시간 지나던 길을 그대로 따라 만들었다. 섬의 등고선과 닮은 높낮이에 지루할 새가 없다.

지붕을 얹어 궂은 날씨에도 산책하는 데 어렵지 않다. 계단이 많아 유모차나 휠체어로 가기엔 불편하다. 길 중간에 의자와 탁자를 둔 쉼터가 충분하다.

길에서 조금 벗어나 숲에서 보는 회랑 지붕의 곡선이 유려하다. 오르고 내리고 꺾이는 모습이 서해의 파도 같기도 하고 한옥의 지붕을 모방한 듯도 하다.

길을 놓는데 방해된다는 이유로 나무를 베지 않았다. 바닥과 천장에 구멍을 뚫어 자연을 지켰다.

나무를 피해 걸어야 하는 불편함이 오히려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