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은빛으로 내려앉는 곳, 대명유수지
가을이 은빛으로 내려앉는 곳, 대명유수지
몇 걸음 안에서도 땅은 모두 다르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약간의 경사 때문에 건조한 위쪽에서는 꽃이 피고 몇 걸음 아래에서는 이끼가 자란다.
좁은 공간 안에서도 나름의 구역이 있어 저마다 마땅한 곳에 자리를 잡고 서로의 터전을 존중하며 그렇게 생물은 공존한다.
대구광역시 달서구에 위치한 대명유수지
이곳도 마찬가지이다. 영남지방의 젖줄 낙동강에 기대 있는 대명유수지 안에는 오직 이곳을 터전으로 삼은 생물들이 살아가고,
하나의 생태계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가치를 더하는 듯 매년 가을이 찾아와 은빛으로 머물다 사라진다.
유수지는 본래 집중호우나 장마로 인해 늘어나는 하천의 물을 저장하는 곳이다.
대명유수지 또한 이러한 목적으로 1992년 완공되었다. 면적은 약 30만㎡로 축구장 42개 정도의 크기이다.
유수지가 되기 전 이곳은 범람원이었는데 유수지 공사와 함께 20년간 계속된 생태계 복원 사업으로 지금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20년이란 세월은 새로운 생태계가 정착하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유수지의 특성인 질퍽한 땅과 높은 습도는 이곳에 적합한 동식물을 불러들였고,
사람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대명유수지만의 자연을 완성했다. 낮은 산지와 숲, 수변 지역에서 서식하는 네발나비도 대명유수지의 입주민이다.
대명유수지의 또 다른 주민, 맹꽁이.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된 맹꽁이가 한국에서 가장 많이 서식하고 있다고 알려진 곳도 대명유수지이다.
맹꽁이는 장마철에 물가에 모여 산란을 하는데 비가 오는 날이나 흐린 날이면 수컷이 암컷을 유인하는 특유의 울음소리를 낸다.
하지만 그 외 시기에는 땅속에 굴을 파고 들어가 있어 그림자도 보기 힘든 귀한 녀석이다.
대명유수지에서 혹시 맹꽁이 울음을 들었다면 행운이 깃든 날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맹꽁이 외에도 삵, 족제비, 황조롱이, 고라니 등 멸종위기종인 동물들이 대명유수지와 그 인근에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충분한 물과 먹이. 그리고 사람으로부터 안전한 지역. 산업공단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음에도 다행히 대명유수지의 생명들은 소중하게 지켜지고 있었다.
2018년 대명유수지에는 자연을 최대한 지키는 선에서 사람을 위한 탐방로가 조성되었다.
전망데크, 포토존 등이 설치됐으며 ‘생태전문가와 함께하는 달서생태탐험’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생태탐험은 평범한 해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생태빙고, 생태퍼즐 등 재미가 더해진 프로그램을 통해 이곳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려준다.
눈으로만 봐서는 알 수 없는 대명유수지 속 비하인드스토리도 여러 개 들을 수 있다.
대명유수지를 방문한다면 30분~120분까지 다양한 생태탐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으니 꼭 참여해보길 추천한다.
가을의 상징 억새와 갈대
대명유수지가 유명해진 이유는 억새와 갈대에 있다.
가을이면 하얗게 물들어 바람에 찰랑이는 은빛 파도는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대명유수지만의 장관을 보여준다.
하지만 신비한 생태계가 살아있는 대명유수지에는 비밀이 숨어 있다.
은빛 파도의 주인공은 억새와 갈대가 아니라는 것.
사실 억새의 가족쯤 되는 ‘물억새’와 갈대의 친척쯤 되는 ‘달뿌리풀’이 대명유수지의 주인공이다.
산에 사는 일반 억새와 달리 물억새는 1년에 한 번 이상 반드시 물에 잠기는 습지에 사는 종이다.
달뿌리풀은 갈대와 비슷하지만 땅 위에 기는줄기가 보이는 식물이다.
대명유수지에는 이 ‘물억새’와 ‘달뿌리풀’이 가득하기 때문에 유독 가을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