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양요를 따라가는 강화도 여행

신미양요를 따라가는 강화도 여행

신미양요의 현장을 따라 강화도를 여행한다면, 가장 먼저 방문할 곳은 초지진입니다. 1871년 미군이 처음 상륙한 장소로, 이는 조선의 외세 저항 역사를 상징합니다. '진'은 나루터가 아닌 적의 공격을 막는 군사 요새를 의미하며, 강화도는 예부터 침략이 잦아 여러 진이 설치되었습니다.

1656년에 구축된 초지진은 신미양요뿐 아니라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과 운요호 사건의 일본군과도 격전을 벌였습니다. 초지진 앞 소나무에 남아 있는 포탄 자국이 그 증거입니다. 미군의 목적은 5년 전 제너럴 셔먼호 사건의 책임을 묻는 것과 조선과의 통상 협정이었습니다.

제너럴 셔먼호는 조선 후기 서양 선박 중 하나로, 통상을 목적으로 했으나 중무장되어 있었습니다. 이 선박은 협상이 실패하자 강제로 약탈을 시도했으나, 평양 주민들이 배를 불태워 침몰시켰습니다. 이 사건 후 미국은 응징을 계획했으나 실행하지 못했고, 대신 프랑스가 먼저 조선을 침공했습니다.

대동강을 따라 평양으로 올라온 제너럴 셔먼호

프랑스는 제너럴 셔먼호 사건 직후, 신부 처형을 명분으로 7척의 군함으로 조선을 공격했습니다. 이들은 강화도에 상륙해 약탈을 자행했으며, 이는 병인양요로 이어졌습니다. 프랑스군은 20여 일 동안 보물을 약탈했으며, 외규장각의 귀중한 서적들이 프랑스로 옮겨갔습니다. 이중 일부는 2011년에야 반환되었습니다.

초지진에서 약 5km 떨어진 정족산성은 조선군과 프랑스군의 최후 결전지입니다. 이곳의 정족산사고에는 조선왕조실록이 보관되어 있었으며, 조선군은 이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병인양요 5년 후, 미군 함대가 상하이에서 출발해 조선을 공격했습니다.

미군 5척과 1,200여 명의 군인이 초지진으로 상륙했으나, 어제연이 이끄는 조선군이 저항했습니다. 이미 병인양요를 겪은 조선은 대비를 마친 상태였으며, 안개 속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