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랑아슬랑 낙원의 섬 영광 낙월도

아슬랑아슬랑 낙원의 섬 영광 낙월도

아슬랑아슬랑 낙원의 섬 영광 낙월도

한옥 힐링 스테이 완주 소양고택

한적한 섬 여행을 원한다면 답은 두 가지다. 조금 더 먼 곳이나 조금 덜 알려진 곳.

서울에서 오래 걸려 도착한 섬일수록, 이름이 낯설수록 한갓지게 쉴 확률이 높다.

대신 이동하는 시간과 수고, 얼마간 편의를 내주면 원하는 섬 여행이 가능하다. 낙월도는 전남 영광군 서쪽에 있다.

상낙월도와 하낙월도로 아슬랑아슬랑 낙원의 나뉘며 진월교가 두 섬을 잇는다.

관광객의 손이 타지 않은 섬으로, 피서지의 번잡함을 피하고 싶은 이라면 낙월도를 ‘낙원도’라 읽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힌트가 되는 몇 가지 정보가 있다. 낙월도에는 마트나 매점이 없다.

상낙월도선착장 대기실에 자판기 한 대가 전부다. 식당도 없다. 민박에 예약하면 ‘집밥’을 맛볼 수 있다.

섬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성찬은 아니어도 정갈한 식사다. 민박도 한 손에 꼽을 만큼 적다.

그러니 어지간한 간식거리는 미리 챙기자. 이쯤 되면 흔한 관광의 섬이 아님을 짐작할 테다.

먼바다 풍경을 보며 섬 둘레를 따라 아슬랑대는 것뿐이지만, 그때 얻는 여행의 기쁨은 도시 생활을 벗어나야 누리는 희열이다.

낙월도둘레길은 상낙월도와 하낙월도를 잇는다.

면사무소와 보건소 등 공공시설이 모여 있는 상낙월도가 큰 마을이고, 민가가 옹기종기한 하낙월도는 작은 마을이다.

상낙월도와 하낙월도를 각각 2시간으로 셈해 4시간 정도면 한 바퀴 돈다.

둘레길에 제주올레 같은 특별한 표식은 없다. 대체로 외길이라 길 잃을 염려는 없다.

의자나 정자 등을 자주 만나 원하는 만큼 걷다가 쉬면 된다. 그러니 섬에 굳이 차를 가지고 들어갈 이유도 없다.

둘레길 가운데 한 곳만 택한다면 자연 풍광은 하낙월도가 조금 낫다.

보통 진월교 지나 오른쪽으로 돈다. 곧장 외양마지 입구 전망 쉼터가 나오고 서쪽 바다와 북쪽 상낙월도, 동쪽 영광군 내륙이 보인다.

조금 더 걸으면 하늘을 가린 그윽한 대숲이다. 곧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은 당너매언덕, 오른쪽은 해안으로 이어진다.

당너매언덕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지만, 팔각정전망대에 서면 장대한 풍경이 단숨에 땀을 씻어준다.

이때 남쪽은 수평선 끝까지 트인 바다가 아니라, 섬에 둘러싸인 바다로 낙월도의 절경을 만든다.

장벌해변은 낙월도둘레길의 백미다. 둘레길에서 절벽 아래로 내려다볼 때 마음은 어느새 해변을 향해 달린다.

지도 앱으로 지형만 확인해도 알 수 있다. 섬 안쪽으로 ‘ㄷ’자를 그리는 아담한 해변은 명사십리가 부럽지 않다.

정자 쉼터에 가만히 앉아 바다만 바라봐도 마음이 편안하다.

둘레길 완주보다 아슬랑거리는 게 목적이라면 상낙월도가 좋다. 색색 그물이 길을 가득 채우고 볕을 쬔다.

그물에선 새우 짠 내가 살살 코끝을 간질인다. 낙월도는 한때 젓새우로 명성이 자자해 ‘작은 목포’로 불렸다.

마을 앞길이 곧장 바다와 접하는데, 눈앞에 신안군 지도와 임자도 등이 바다 위 능선처럼 펼쳐진다.

맑은 날에는 그 사이로 난 임자대교까지 보인다. 물때에 따라서 앞바다 펄이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렇다고 상낙월도둘레길이 밋밋하진 않다. 길가의 나무가 연출한 초록 터널, 둘레길까지 올라온 붉은발말똥게 등이 반긴다.

짧게 맛보길 원할 때는 땅재(고개) 너머 큰갈마골해변(상낙월해수욕장)까지 다녀온다. 주택가에서 떨어져 ‘프라이빗 비치’나 다름없다.

여름 해변이 이토록 차분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물에 발을 담그지 않고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충분할 정도다.

낙월도는 묵석(墨石)이 유명한데, 해변의 기암괴석 역시 못지않은 볼거리다.

묵어갈 수 있다면 진월교에서 하루의 끝을 마주할 일이다.

섬을 가로지르는 해는 낙월도 동쪽 영광군 내륙까지 길게 물들인다. 영광군 해안에서는 낙월도로 해가 지는 듯 보이기도 할 것이다.

시간이 맞으면 해가 진 방향으로 바통을 이어 달이 지는 그윽한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낙월도(落月島)는 순우리말로 ‘진달이섬’이다. 영광 법성포에서 낙월도로 달이 지는데, 그때 낙월도가 바다에 걸친 달처럼 보인다.

나당 연합군에 쫓기던 백제 왕족이 달이 지자 낙월도로 피신해 정착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쫓길 일 없는 한적한 섬의 시간, 일몰과 월몰은 낙월도의 정취를 간직한 또 다른 낙원 풍경이다.

낙월도 가는 여객선은 향화도선착장에서 하루 세 차례(07:30, 10:30, 15:00) 운항하며, 약 1시간 10분 걸린다.

출항 시각이 정해졌으나 물때에 따라 달라지니, 출발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낙월도까지 송이도 역시 향화도선착장에서 하루 두 차례 여객선이 오가며 1시간 30분쯤 걸린다.

송이도는 소나무[松]가 많고 섬 모양이 귀[耳]처럼 생겨서 그리 부른다.

송이도해변은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려운 하얀 몽돌이 유명하다.

물때를 맞추면 송이도에서 대이각도까지 드러나는 모랫길을 볼 수 있다.

영광군에서는 송이도와 안마도, 낙월도를 ‘삼형제 섬’이라 부른다. 세 섬이 바다 가운데 점점이 이웃한다.

한옥 힐링 스테이 완주 소양고택

한옥 힐링 스테이 완주 소양고택

한옥 힐링 스테이 완주 소양고택

플라스틱 물렀거라 숨 쉬는 옹기 나가신다 웰컴 투 옹기마을

화려하고 안락한 도심 속에서 내가 주인공이 되는 호캉스도 좋지만, 가끔은 자연 속 수많은 배경 속 작은 조연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완주군 산속 단아한 한옥 고택 숙소, 소양고택을 소개해 보려 한다.

서울역에서 한 시간 반이면 도착하는 전주역.

그곳에서 택시를 타면 완주군 소양면에 위치한 소양고택까지 30분 정도 걸린다.

직접 차를 몰고 방문하면 가장 좋겠지만, 뚜벅이 여행자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이동하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다.

처음 소양고택을 맞이했을 때 든 생각은 생각보다 알차다는 것이었다.

고택이나 한옥 스테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출하고 소박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책방, 카페, 숙소 등 다양한 시설이 구석구석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한옥 스테이는 전통을 따르고 감성을 쫓는다는 면에서는 좋지만 간혹 즐길 거리가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는데, 소양고택은 이런 단점도 잘 보완한 모습이었다.

규모를 앞세워 자연을 가리는 모습이 아닌, 주위의 산세와 어울리면서도 구석구석 볼거리를 담고 있는 느낌이었달까.

오늘 묵을 소양고택은 정성스레 가꿔진 정원 사이로 난 돌계단 위에 위치하고 있다.

한 계단 한 계단 밟으며 올라갈 때 마다 대문 뒤편의 한옥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는데,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풍경이 실제 눈 앞에 펼쳐지니 체크인 전부터 신이 났다.

무엇보다 대문에 걸려있는 ‘한국관광 품질인증’ 현판이 화룡점정.

오늘 하룻밤 묵을 공간에 대한 강한 확신을 주는 모습이다.

대문을 통과하면 잘 가꿔진 잔디밭을 가운데에 두고 두 채의 한옥이 완전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되실봉을 배경으로 정말 옛날 양반이 살았을 법한 묵직함이 느껴지는 한옥이다.

실제로 소양고택은 2010년 여름, 고창과 무안의 철거 위기에 놓인 180여 년 된 고택 3채를 해체하여 이축한 곳이기도 하다.

기존 고택이 가진 역사성과 전통미가 훼손되지 않도록 긴 시간 동안 문화재 장인들의 손을 거쳐

재탄생하게 되었다는 설명을 듣고 나니, 지금 소양고택이 보여주는 자연스러움이 이해가 되었다.

소양고택은 제월당부터 서현당까지 총 아홉 종류의 객실을 가지고 있다.

기존 고택을 이축하여 만든 곳이니 만큼, 각 객실마다 역사와 스토리가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내가 1박을 한 ‘혜온당2’의 경우 ‘따뜻한 온기를 전하는 집’이라는 의미로, 해체 전 원래 살던 집주인이 당시

사회복지가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덕을 베풀었다는 이야기를 품고 있다.

기존 고택이 가지고 있던 조선시대 말기의 모습을 이축하면서도 그대로 옮겨왔다고 한다.

혜온당2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정원 쪽으로 난 누마루였다.

일반 마루와 달리 마루 주변을 따라 난간이 설치되어 있는 점이 멋스러운 정자나 누각과 같은 모습이다.

삼면이 탁 트여 있는 만큼 준비된 방석에 앉아 있으면, 산바람이 볼을 간지럽히는 곳이다.

아까 지나온 고택의 대문 뒤편으로 보이는 종남산 골짜기는, 자연 속에서 즐기는 휴식이라는 이번 여정의 목적에 가장 어울리는 풍경이다.

누마루 안쪽은 거실과 침실 역할을 하는 두 칸의 방으로 나뉘어 있다.

방안 기둥이며 서까래며 하나하나 실제 고택의 것을 그대로 가져왔다는 것이 느껴지는 모습.

한옥 스테이라고는 하지만 실내는 현대식으로 꾸며놓은 곳들이 많은데, 소양고택은 정말 옛날 한옥의 모습 그대로이다.

문도 전통 방식 그대로 한지로 막아 놓은 모습이며 방충망이나 유리 창문 등을 찾아볼 수도 없다.

일부 도시 사람들에겐 불편함으로 다가올지도 모르나 불편함 대신 고즈넉한 멋과 자연의 풍경이 함께하니 감수할 만하다.

그 와중에 에어컨과 미니 냉장고가 설치되어 있고 와이파이가 잡힌다는 점이 감사하다고 하면 너무 이중적인 걸까.

방과 잘 어울리는 전통장 안에는 투숙객을 위한 간단한 간식과 전기포트 그리고 선풍기가 들어있다.

이 전기포트를 이용해 방안 탁자에 준비되어 있는 차도 즐길 수 있다.

안쪽에 있는 침실은 침구만 놓여있는 소박한 방이다.

대신 소양고택을 운영하는 사장님이 직접 만든 광목 자수 이불이라 그런지 이불 두 채만으로도 방이 꽉 차는 느낌이다.

실제 오랜만에 온돌바닥에 자면서도 불편함 없이 숙면을 취할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침구 덕분일지 모르겠다.

이불 외에도 바람이나 빛을 막는 커튼도 같은 모습의 자수가 놓여있는데, 대나무 발을 옮겨가며 필요한 곳에 설치할 수 있다는 점이 실용적이다.

가장 안쪽에 있는 욕실은 한옥고택이지만 고택 내에서 유일하게 현대적인 모습의 공간이다.

좌변기와 세면대, 샤워를 하는 공간까지 도시 사람들도 불편함 없이 이용할 수 있다.

건실 욕실로 몸을 씻는 공간은 한 계단 낮게 되어 있으며, 어메니티는 국내산 호텔 어메니티 브랜드

‘캄모멘트리’, 헤어드라이어는 다이슨 제품, 빗과 칫솔, 치약까지 부족한 것 없이 준비되어 있다.

플라스틱 물렀거라 숨 쉬는 옹기 나가신다 웰컴 투 옹기마을

플라스틱 물렀거라 숨 쉬는 옹기 나가신다 웰컴 투 옹기마을

플라스틱 물렀거라 숨 쉬는 옹기 나가신다 웰컴 투 옹기마을

디지털과 아날로그 풍경이 공존 대전 대흥동 문화거리

나는 ‘옹알못(옹기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옹기가 장을 담는 커다란 항아리라는 것 정도야 유치원생도 안다.

하지만 옹기가 어떻게 숨을 쉬는지, 1200도나 되는 불지옥 가마에서 태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 무지하다.

그런 내가 옹기마을에서 놀라운 하루를 보냈다.

지겹기는커녕 어찌나 흥미롭고 재미가 있는지 시간가는 줄 몰랐다.

장인의 손에 들어간 흙덩이가 순식간에 커다란 옹기가 되는 장면도 보았고, 내 손으로 근사한 그릇도 만들었다.

발효꽃차 만들기부터 맷돌커피 마시기까지 체험은 끝도 없었다.

옹기박물관에는 전국 각양각색의 옹기가 모여 있었다.

옹기국수와 부추전은 또 얼마나 맛있던지. 신나는 토요일을 만들어준 “웰컴 투 옹기마을”강추다.

독립자금 모았던 태극항아리와 세계최대옹기는 가슴 뭉클

예전의 우리나라는 집집마다 장독대가 흔했다.

장독대에서 된장 한 그릇 퍼 와서 보글보글 찌개를 끓여내던 어머니들의 모습은 이제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다.

그런데 뉴스에서 장독 같은 옹기를 굽는 마을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문재인대통령이 옹기에 서명하는 장면이 특히 인상 깊었다. 대통령이 방문한 곳은 외고산옹기마을이다.

물레를 돌려 옹기를 만드는 장인들이 모여 산다. 옹기를 굽는 거대한 가마와 장인들이 만든 전통의 옹기를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매주 토요일마다 ‘웰컴 투 옹기마을’을 진행한다는 꿀 정보를 입수하고, 반가운 마음으로 달려갔다.

외고산옹기마을에 도착하자 마을 곳곳에 장독들이 옹기종기 반긴다.

가장 먼저 세계에서 가장 큰 옹기가 보고 싶어 박물관으로 향했다.

기네스에도 등재된 세계최대옹기는 키가 2m를 훌쩍 넘고, 둘레는 5m가 넘는다.

작은 옹기하나도 불 속에 들어가면 깨지고, 무너지기 십상인데, 이렇게 큰 옹기라니. 참, 대단하다.

박물관에는 재미있는 옹기들이 많다.

독립자금을 모았다는 태극문양의 옹기는 가슴이 뭉클했고, 천주교인들이 박해받던 시절 남 몰려 그려 넣은 십자가 문양 항아리와

도깨비문양 항아리같이 신기한 항아리도 많았다.

전국의 항아리들이 모여 있는 코너도 있는데, 각 지역의 옹기를 한눈에 비교할 수 있었다.

따뜻한 경상도 지역은 입구가 좁고 배가 불룩한 모양이고, 일조량이 적은 경기도 옹기는 햇빛을 많이 받도록 입구가 넓었다.

옹기 장인과 만나는 공방투어

옹기를 자세히 봤으니 이제 직접 빚을 차례다.

박물관 옆에 있는 옹기공방으로 가면 물레와 도자기체험이 가능하다.

옹기토로 접시를 만드는 간단한 체험이지만, 물레 앞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마음만은 옹기장이다.

물레를 돌리고, 방망이로 흙을 두드려 접시를 만드는 건 난생 처음해보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발로 물레를 돌리고, 손으로 방망이를 두드리며 집중하다보니 잡념은 싹 사라지고, 기분이 좋았다.

손으로 가장자리를 주물러 모양을 내고, 그림을 그려주자 나만의 접시가 완성되었다.

이렇게 만든 작품은 며칠간 건조한 뒤 유약을 바르고 구워서 택배로 보내준다.

마을 안에는 옹기를 굽는 커다란 가마가 여러 군데 있다. 그 중에 불이 활활 타고 있는 가마가 ‘소원장작체험’가마다.

나무에 소원을 적어서 가마불 속에 던져 넣으면 적은 데로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나도 정성껏 소원을 적었다. “인간적으로 딱 5키로만 빼자!”뜨거운 불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지는 소원장작을 보자, 나의 뱃살도 저렇게 사라질 것만 같았다.

옹기가 태어나는 가마온도는 무려 1200도. 이런 뜨거운 불가마에서 옹기가 ‘태어나는구나’ 실감났다.

옹기장인을 만나는 공방투어는 외고산옹기마을의 백미다. 옹기마을에는 7명의 옹기장이 있다.

대를 이어 옹기를 만드는 장인의 공방으로 들어가면, 장인이 옹기를 만드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다.

이날은 영화요업에서 옹기를 만드는 배영화 옹기장을 만났다.

물레를 돌릴 때마다 굵직한 흙가래가 한 단 한 단 쌓였고, 눈 깜짝 할 새에 커다란 옹기가 되었다.

넓적한 방망이로 옹기 표면을 두드리자 매끈하게 변신했다. 장인은 구경 온 사람들에게 설명도 해주었다.

그가 들고 있는 넓적한 방망이는 수레, 옹기 안벽을 바치는 둥근 나무는 도개라고 알려주었다.

나 같은 옹알못들에게는 그저 두드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굉장히 정교한 작업이다.

수레를 손잡이 쪽에서부터 옹기 면에 닿게 두드려 가는데, 도개와 조금만 어긋나도 옹기가 찢어지거나 굽는 동안 무너지는 원인이 된다.

설명을 듣고 보니 장인의 모습이 아이돌처럼 대단해 보였다. 물가죽으로 입구를 빚을 때는 모두가 숨을 죽였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풍경이 공존 대전 대흥동 문화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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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여행자에게 대전 대흥동 문화거리는 재미난 요소가 가득한 보물창고다.

세련된 도시 이미지가 느껴지는 건물과 카페가 있는가 하면, 그 속에 70~80년대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손때 묻은 풍경이 숨을 쉰다.

소극장에는 공연이 줄을 잇고, 오래된 골목 안 낡은 건물은 커다란 벽화로 치장해 빈티지한 멋을 더했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대전의 낭만을 느끼기에 대흥동 문화거리만큼 좋은 곳은 없다.

나쁘게 보면 낙후되어가는 도심 속 공간이요, 좋게 보면 아날로그 풍경이 남아 있는 정겨운 공간이다.

그래서 감각 있는 사람들은 대흥동으로 모여든다.

대흥동 한가운에서 ‘대흥동립만세’를 외치다

대흥동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대흥동립만세’라는 마을축제 때문이다.

매년 8월 지역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프린지 페스티벌의 성격을 띠지만, 사실 축제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저 대흥동 한가운데에서 ‘동립만세’를 외치는 몸부림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동립만세’의 어감이 참 예쁘고 마음에 와 닿았다.

아마도 쇠락해가는 원도심이 다시 일어서기를 바라는 젊은 열정이 전해진 탓이리라.

대흥동은 대전의 원도심이다. 옛날에는 대전의 중심가로 위용이 당당했지만, 유성과 둔산으로 중심이 옮겨가면서 낡은 구도심으로 전락했었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니 상권도 시들해지고, 빈 건물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사글세가 옥천보다 쌌다고 하니 대흥동의 쇠락을 막을 수는 없어 보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떠난 곳이 가난한 예술가들의 새 보금자리가 되었다.

임대료가 싸서 부담이 적고, 대전 문화예술의 일번지였던 곳이라 선배 예술가들이 터를 잡고 있으니 자연스레 스며들기도 좋았다.

그렇게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찾아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들어 대흥동은 활기를 되찾고 있다.

대흥동 문화거리 탐방을 위한 베이스캠프는 우리들공원이다.

옛 중구청 자리에 조성된 공원은 대전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다.

인근에 오래된 골목과 화방이 있고, 그 옆에 마임, 연극연구소 같은 것이 자리했다.

소극장, 갤러리도 군데군데 눈에 띈다. 서울의 대학로와 홍대를 섞어놓은 대흥동의 특징을 살펴보기에 좋은 장소다.

낭만이라 불리는 뒷골목 풍경

대흥동을 멋스럽게 만들어내는 것은 아날로그적 풍경이다.

낡고 허름해 보이지만 어쩐지 정이 가는 풍경으로 고급스럽게 포장하면 ‘빈티지’하다.

대흥동 골목을 즐기는 방법은 오래된 건물 외벽에 그려진 그림을 찾는 것이다. 학창 시절 소풍 가서 보물찾기 하듯 골목을 누빈다.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그림은 우리들공원 입구에 그려진 빨간 자동차다.

벽을 뚫고 나오는 자동차가 생동감 넘치거니와 어두운 터널을 뚫고 새롭게 비상하는 대흥동의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

골목길 벽에 옹기종기 붙어 있는 전기계량기도 재미있다.

지저분하기 쉬운 것에 밝은 색으로 앙증맞은 그림을 그려넣어 보는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한다.

여행자들이 꼽는 가장 큰 보물은 산호다방 건물 외벽에 그려진 옷걸이에 걸린 티셔츠 그림이다.

낡은 건물과 다방, 그리고 멋들어진 그림의 조화가 이채롭다.

분명 겉모습은 낡았으나 풍겨내는 체취는 한 편의 예술작품을 보는 것 같다.

산호여인숙 골목의 티셔츠 그림도 반갑다. 회색 콘크리트 건물 벽면에 때에 찌든 듯 꾀죄죄한 흰색 면티.

사람들에게 외면 받던 대흥동의 모습이 떠오른다.

산호여인숙의 녹색 철문도 재미나다.

여인숙을 알리는 뻔한 간판 대신 대문에 꽃으로 산호여인숙이라 치장했다. ‘대체 뭐하는 곳일까’ 궁금증을 유발하는 간판이다.

1977년 문을 연 여인숙은 1층을 전시 공간으로 사용하고, 2층은 가난한 예술가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한다.

예쁘고 세련된 카페와 낡고 손때 묻은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대흥동에서 할 일이다.

마치 하나의 공간에서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오래되어 색 바랜 간판과 벽,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주택, 시대극에서나 볼 법한 골목 등 볼거리가 무궁무진하다.

오래된 것들이 세련된 도시 풍경과 함께 있으니 더욱 아련한 향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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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과 유익함이 있는 곳 정읍 솔티달빛생태숲길

이런 분들에게 추천해 드립니다!

도보, 지하철 여행을 선호하시는 분

서울 종로 명소를 찾고 계신 분

레트로 감성 여행지를 원하시는 분

세운상가, 서울 한방진흥센터, 서울 풍물시장, 을지다방

1층 ~ 4층은 상가, 5층 위로는 주거공간으로 이루어진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건물입니다.

1980년대 말 개인용 컴퓨터 보급이 늘어나면서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대부분이 이곳에서 거래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상가 주변에 전기, 전자 부품점을 비롯하여 조명 용품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청계상가에는 호랑이카페, 시계다방, 붐박스 등 레트로한 가게들이 밀집되어 있어, 특별한 데이트를 즐기고 싶으신 분들에게 추천해 드립니다.

그중에서도 붐박스는 70년대 유행하던 오디오 기기인 붐 박스의 이름을 본 따 만든 아날로그 체험공간인데요.

수동타자기, 브라운관 텔레비전 등을 체험하실 수 있습니다.

한의학을 주제로 박물관 전시와 교육, 족욕, 약선음식 체험 등 다양한 한방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한방 복합 문화공간입니다.

전통적인 한옥 형태의 외관이 멀리서도 눈길을 끌며, 국내 최대 약재시장인 서울 약령시 안에 있어 품질 좋은 건강식품 구매 및 한방의료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한국관광공사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K-웰니스 관광지로 선정한 장소인 만큼 몸과 마음 모두 힐링을 즐기기 좋습니다.

1층 안내 데스크에서 원하는 체험 코스 이용권을 구매하고 체험을 즐기실 수 있습니다. 박물관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데요.

가장 유명한 만 원의 행복 코스는 보제원 체험, 약초 족욕, 전시 관람, 한방차 제공을 모두 만 원에 즐기실 수 있습니다.

만물시장, 벼룩시장으로 유명했던 황학동 시장에서 유래한 전통시장입니다.

황학동에서 동대문운동장으로 이전했다가 2008년에 현재 자리에 개설되었으며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제품을 폭넓게 취급하고 있습니다.

동묘시장과 가까워서 구제물품 구경하기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추천할 만한 곳입니다.

2층에는 추억의 거리가 조성되어 있어 부모님과 함께 방문하기에도 좋습니다.

청춘다방, 문방구, 오락실 등 다양한 공간을 구경할 수 있고, 무료로 교복과 교련복을 입고 기념촬영이 가능합니다.

대략 오후 5시 ~ 5시 30분에 상인들이 가게를 닫기 때문에 일찍 방문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방탄소년단 2021 시즌 그리팅 촬영지로도 유명한 을지다방은 70~80년대 다방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다방입니다.

힙지로라는 별명처럼 젊은 세대는 색다른 여행을, 어르신들은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레트로 공간입니다.

계란이 동동 띄워진 쌍화차는 물론 냉커피, 매실주스, 라면 등 과거 다방의 인기 메뉴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다방 곳곳에서 정감 있는 인테리어와 오래된 소품 등 과거의 정취를 감상해 보세요.

즐거움과 유익함이 있는 곳 정읍 솔티달빛생태숲길

즐거움과 유익함이 있는 곳 정읍 솔티달빛생태숲길

즐거움과 유익함이 있는 곳 정읍 솔티달빛생태숲길

남종화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빚다 진도 운림산방

등산 초보도 걷기 좋은 정읍 솔티달빛생태숲길은 생태 체험장, 생태놀이터, 전망대, 짚라인 등

아이들도 좋아할 만한 놀거리가 다양하고 아기자기하게 숲이 조성되어 있어 자연 속에서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걷기 길은 내장산조각공원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국화축제가 열리는 곳이기도 한 내장산조각공원에는

국내 조각가 16인의 조각품이 각 1점씩 전시돼 있어 다양한 볼거리를 선사하며,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갑오동학혁명 100주년 기념탑도 자리합니다.

총거리는 269m, 높이는 2~8m에 달하는 내장생태탐방마루길을 걸어봅니다.

주변의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도록 조성되었고 내장산의 깃대종인 진노랑상사화와 단풍나무,

은행나무를 형상화한 3곳의 쉼터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마루길 위에서 공원의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습니다.

솔티달빛생태숲은 내장산국립공원의 서래봉과 불출봉이 내려앉은 천혜의 자연이 빚어냈으며,

멸종위기종인 진노랑 상사화를 비롯하여 많은 야생 동식물이 살고 있습니다.

국립공원의 아름다운 원시숲이 잘 보존된 지역으로 인간과 자연이 서로 공존하며 삶을 이어가고 있는 숲입니다.

숲길을 걸어 자연 친화적으로 조성된 생태놀이터에 이르면, 저 멀리 독특한 외형의 트리하우스가 눈에 띕니다.

솔티숲의 깃대종인 비단벌레와 진노랑 상사화를 모태로 디자인 된 트리하우스 전망대에 올라, 내장호와 내장산 서래봉, 불출봉의 풍경을 눈에 가득 담아봅니다.

생태체험장에는 아이들이 정말 좋아할 만한 보물이 숨겨져 있습니다.

숲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실컷 짚라인을 타니 지친 몸과 마음이 저절로 치유되는 듯합니다.

솔티숲이 품고 있는 송죽마을은 ‘소나무가 있는 터’라는 뜻을 가진 순우리말로 ‘솔티마을’이라고도 불립니다.

이 곳 송죽(솔티)마을에서는 생태관광을 위해 탄소발자국 인증을 받은 모싯잎 활용 떡 만들기 체험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곳을 반환점으로 다시 내장산조각공원으로 회귀하는 코스가 바로 정읍 솔티달빛생태숲길입니다.

계곡이 끝나는 지점에서 좌측에 보이는 와운교를 건너면, 그곳에서부터 나무데크가 아닌 일반도로가 이어집니다.

깔딱고개라고 부르는 이 짧은 구간이 바로 와운마을을 향하는 마지막 코스입니다.

드디어 지나가던 구름도 힘이 들어 누워간다는 말이 있는 마을답게 높은 고지에 생성되어 오래도록 한자리를 지켜온 ‘와운(臥雲)’마을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웅장한 크기와 용 비늘 문양의 윤기 있는 소나무 표피에서 힘찬 기운이 느껴지는 천년송을 눈과 마음에 담고 다시 뱀사골탐방안내소 회귀하는 코스가 남원 와운마을길입니다.

와운마을길의 시작점은 지리산국립공원뱀사골탐방안내소 좌측으로 5분 정도 걸으면 나타나는 뱀사골 신선길 입구에서부터입니다.

남종화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빚다 진도 운림산방

남종화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빚다 진도 운림산방

남종화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빚다 진도 운림산방

해미읍성의 어제와 오늘을 잇는 해미읍성역사보존회

흔히 진도를 삼보(진도개, 구기자, 돌미역)와 삼락(민요, 서화, 홍주)의 고장이라 한다.

삼락은 진도를 예향으로 일컫는 상징성이 있다.

진도 삼락 가운데 서화를 대표하는 곳이 첨찰산 아래 들어앉은 운림산방(명승)이다.

‘남종화의 대가’라 불리는 소치 허련이 말년에 낙향해서 지은 화실로, ‘첩첩산중에 아침저녁으로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 숲을 이룬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허련은 1808년 진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주가 많았지만, 다소 늦은 나이에 본격적인 그림 수업을 시작한다.

화가 허련의 삶에 두 인물이 등장한다. 다성이라 불리는 초의선사와 추사체를 완성한 김정희다.

허련은 28세 때 해남 대흥사에 머물던 초의선사를 찾아가 그림을 배웠고,

녹우당에서 공재 윤두서의 화첩을 감상한 뒤 며칠 동안 먹고 자는 것도 잊을 만큼 그의 그림을 모사하는 데 힘썼다.

초의선사가 허련의 작품을 추사에게 보였고, 추사는 한양 자신의 집에서 허련에게 그림 그리는 법을 가르치고 주변 화가들과 교류를 주선했다.

추사는 “압록강 동쪽에서 소치보다 나은 사람이 없다” “소치가 나보다 낫다”고 평했다.

허련은 임금 앞에 나아가 그림을 그려 바치는 화가의 최고 영예도 얻었다.

헌종은 관직이 없는 허련을 무과 시험에 합격시켜 관복을 입힌 뒤 그림을 그리게 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이때 허련이 헌종에게 바친 그림이 ‘설경산수도’다.

1856년 추사가 세상을 떠나자, 허련은 고향으로 돌아와 운림산방을 짓는다. 당시는 운림각이라는 초가였다.

앞마당에 연못을 파고 한가운데 섬을 만들어 배롱나무 한 그루를 심었고, 연못 주변에 정원을 꾸몄다.

배롱나무꽃이 피는 한여름이면 운림산방이 더욱 화사하다. 허련은 이곳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시를 짓고 그림을 그렸다.

운림산방은 허련이 죽고 아들 허형이 진도를 떠나면서 매각됐다가, 허형의 맏아들 허윤대가 다시 사들였고,

넷째 아들 허건이 복원해 지금에 이른다. 운림산방에 들어서면 커다란 소나무 너머로 운치 있는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첨찰산 봉우리를 배경으로 운림산방의 화실과 배롱나무를 품은 연못이 그림 같다.

화실은 기와집, 고택은 초가집 두 채로 복원했으며, 화실과 고택 사이로 출입문을 냈다.

고택을 가로지르면 허련의 영정을 모신 운림사, 문중 제각인 사천사가 있다.

소치1·2관은 허련 일가의 작품을 만나는 공간이다.

소치1관은 허련의 작품 40여 점을 전시한다.

입구에 미술 분야 5대에 걸친 허련의 가계도가 있다.

소치2관은 허련의 넷째 아들인 미산 허형부터 남농 허건, 임전 허문, 오당 허진 등 5대에 이르는 후손의 작품 100여 점을 전시한다.

소치2관에 마련된 ‘소치 작품 이머시브룸’이 눈에 띈다.

대나무 정원을 배경으로 한 홀로그램, 허련의 작품을 미디어 아트로 연출하고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작품이 변해 유연하고 편안한 미술 감상이 가능하다.

화면 속 꽃을 손으로 만지면 꽃잎이 화사하게 흩날려 감동을 자아낸다.

운림산방 관람 시간은 오전 9시~오후 5시 30분(동절기 오후 4시 30분 / 연중무휴), 관람료는 어른 20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800원이다.

쌍계사는 운림산방과 이웃한 절집이다.

쌍계사와 함께 첨찰산 기슭에 있는 진도 쌍계사 상록수림(천연기념물)도 만나보자.

운림산방의 배경이 되는 첨찰산은 정상 인근에 진도기상대가 있어 차로 오를 수 있다.

운림산방로를 따라 향동리 방면으로 가다 보면 두무골재에 이르고, 여기서 좌회전하면 진도기상대까지 이어지는 임도가 나온다.

진도기상대 주차장에서는 해남과 진도 사이의 바다, 해남 두륜산과 달마산의 멋진 풍경이 보인다.

진도타워는 망금산 정상에 세운 높이 60m 전망대다.

7층 전망대에서는 쌍둥이 진도대교와 명량해전의 격전지 울돌목, 우수영국민관광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진도타워 아래 있는 명량해상케이블카를 이용하면 진도와 해남의 원스톱 여행이 가능하다.

진도타워와 명량마루, 해남의 우수영국민관광지에 자리한 울돌목스카이워크와 명량대첩해전사기념전시관까지 한 번에 둘러볼 수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털 캐빈을 타면 투명한 바닥으로 울돌목의 거친 회오리가 보인다.

명량해상케이블카 홈페이지에 울돌목 회오리 시간표가 있으니 참조하자.

진도개테마파크는 진도 삼보 중 하나인 진도개(천연기념물)를 만나는 공간이다.

개인기와 어질리티 등을 선보이는 공연으로, 진도개의 우수성을 확인할 수 있다.

덧셈과 뺄셈을 해서 나온 수만큼 짖는 묘기는 놀라울 따름이다.

진도개 공연은 평일 오전 10시, 오후 3시(주말 오후 1시)에 열린다.

진도는 고려 시대 삼별초가 선택한 섬이다. 배중손은 1270년 배 1000척을 거느리고 강화도에서 진도로 근거지를 옮겼다.

벽파진으로 들어온 삼별초는 성을 쌓고 몽골에 맞섰는데, 그곳이 진도 용장성(사적)이다.

용장산 기슭을 따라 계단식으로 성을 쌓고, 성안에 궁궐을 지었다.

하지만 9개월 만인 1271년, 여몽 연합군의 공격으로 진도 삼별초는 무너지고 제주도로 후퇴해야 했다.

용장성 입구에는 용장성홍보관과 고려항몽충혼탑이 들어섰고, 우물과 성벽, 궁궐터와 용장사 터 등이 남아 있다.

해미읍성의 어제와 오늘을 잇는 해미읍성역사보존회

해미읍성의 어제와 오늘을 잇는 해미읍성역사보존회

해미읍성의 어제와 오늘을 잇는 해미읍성역사보존회

남종화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빚다 진도 운림산방

역동적인 어제와 평화로운 오늘을 품은 해미읍성

서산 해미읍성(사적 제116호)은 시공간을 넘나드는 오묘한 마력을 지녔다.

조선시대에 축조된 성 안팎으로 확연히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성 밖은 상가가 밀집해 번화한 21세기의 풍경인 반면 성 안은 드넓은 잔디밭에 드문드문 전통 건축물이 선 15세기 조선 읍성의 풍경이다.

성문을 통과하는 것은 현대와 과거를 넘나드는 것이 된다.

그렇다고 성은 안과 밖을 단절시키지는 않는다.

옛 것을 품고 오늘의 것을 받아들여 서로 조화를 이룬다.

해미읍성이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절묘하게 간직할 수 있었던 데에는 성 밖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해미 사람들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성 안의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해미읍성역사보존회를 설립하고 해미읍성 보존과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주막, 찻집 같은 전통 공간과 국궁, 연날리기 등의 전통 체험을 통해 읍성 내 즐길 거리를 다변화했다.

그리고 2018년 관광두레 주민사업체로 선정되면서 한 단계 변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관광이라는 측면에 맞춰 콘텐츠를 정비하고 일부 시설을 개보수했다.

해미읍성역사보존회는 관광두레 기본 사업 기간 3년을 마친 후 종합평가에서 육성 가치를 인정받아 2년간 추가 지원을 받게 됐다.

해미읍성은 순천의 낙안읍성, 고창의 고창읍성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읍성으로 꼽힌다.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조선 성종 22년(1491)에 축조되었다.

축조 후에는 병마절도사가 배치돼 200년 넘게 일대의 군사권을 행사했다.

성의 높이는 약 5m, 둘레가 1,800m이고 성 안의 면적은 약 19만 6,400㎡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크다.

읍성 안에 들어서면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마치 평화로운 공원 느낌이다.

조선시대에는 너른 터에 동헌, 객사 등 여러 건물이 빼곡하게 자리했었다.

근대에는 해미초등학교, 우체국, 민가 등이 들어서 있었다. 1970년대 들어 읍성 복원 사업을 실시하면서 민가 등을 모두 철거했다.

주막부터 연날리기, 국궁, 캠핑까지~, 해미읍성을 즐기는 다양한 방법

현재 읍성 안에는 동헌, 객사, 내아, 옥사, 민속 가옥 정도가 복원·재현되어 있다.

주 출입문인 진남문으로 입장하면 맞은편에는 동헌이, 오른쪽으로는 옥사와 민속 가옥이, 왼쪽으로는 잔디 마당이 펼쳐진다.

잔디 마당에는 해미읍성역사보존회에서 운영하는 전통 주막, 카페, 기념품점, 연 판매소가 자리한다.

읍성 안 주막에서는 부침개, 도토리묵 등 요깃거리를 판매한다.

지역 양조장에서 가져오는 막걸리도 있다.

예스럽고 고즈넉한 풍경 덕에 음식 맛이 배가된다.

주막 옆 카페에서는 ‘교황님이 드신 키스링 마늘빵’을 맛볼 수 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해미읍성을 방문했을 때 교황 간식 식탁에 오른 빵이다.

서산6쪽마늘로 만들어 지역 특색도 담았다. 마늘빵을 먹다 궁금해질지도 모른다.

‘왜 교황이 해미읍성을 방문했지?’ 그 해답은 카페에서 대각선상에 보이는 회화나무와 옥사에 담겨 있다.

천주교 박해 당시 지역의 수많은 천주교도를 해미읍성 옥사에 가두고 그 앞의 회화나무에 매달아 고문하거나 처형했다.

천주교 성지로서 해미읍성의 역사적 가치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해미읍성역사보존회는 멘토링을 통해 ‘교황 빵’이라고도 불리는 마늘빵을 활용한 다채로운 메뉴와 함께 오란다 등 전통 주전부리 상품을 개발 중이다.

다양한 전통 체험도 진행한다. 연날리기와 국궁이 대표적이다.

해미읍성은 넓은 대지에 이렇다 할 장애물이 없고 바람도 잘 부는 편이라 연날리기 좋은 장소로 입소문이 자자하다.

연 판매소에는 다양한 가격대와 종류의 연이 가득하다.

기본적인 가오리연부터 강아지, 곰돌이, 박쥐, 갈매기, 독수리 등 연의 생김새와 크기가 각양각색이다.

요청하면 연 날리는 기본 방법도 알려준다. 초보자여도 상관없다.

읍성 안의 적당한 바람이 알아서 연을 하늘로 올려준다. 하늘 위를 알록달록 장식한 연들은 해미읍성의 풍경이 된다.

국궁 체험도 흥미롭다. 군사적 역할을 했던 해미읍성의 역사와도 맞아떨어지는 체험이다.

안내자로부터 활 쏘는 방법을 간단히 배운 후 실전에 임한다.

처음엔 화살이 뜻대로 날아가지 않아 당혹스러울 수도 있지만 차츰 익숙해지며 재미를 느끼게 된다.

활 크기와 과녁판 거리가 다양해 남녀노소 누구나 체험 가능하다.

기념품점 구경도 놓치지 말자. 지역 작가들이 만든 제품과 농산물을 판매하는데 서산의 또

다른 관광두레 주민사업체인 상점195협동조합에서 제작한 기념품이 눈길을 끈다.

해미읍성을 테마로 한 핸드폰케이스, 그립톡, 마스킹테이프, 마그넷, 에코백 등 품목이 다양하다.

해미읍성 방문 기념으로 하나쯤 챙겨오고 싶어진다.

남종화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빚다 진도 운림산방

남종화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빚다 진도 운림산방

남종화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빚다 진도 운림산방

동양 최대의 백련 자생지 무안 회산백련지

흔히 진도를 삼보(진도개, 구기자, 돌미역)와 삼락(민요, 서화, 홍주)의 고장이라 한다.

삼락은 진도를 예향으로 일컫는 상징성이 있다.

진도 삼락 가운데 서화를 대표하는 곳이 첨찰산 아래 들어앉은 운림산방(명승)이다.

‘남종화의 대가’라 불리는 소치 허련이 말년에 낙향해서 지은 화실로, ‘첩첩산중에 아침저녁으로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 숲을 이룬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허련은 1808년 진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주가 많았지만, 다소 늦은 나이에 본격적인 그림 수업을 시작한다.

화가 허련의 삶에 두 인물이 등장한다. 다성이라 불리는 초의선사와 추사체를 완성한 김정희다.

허련은 28세 때 해남 대흥사에 머물던 초의선사를 찾아가 그림을 배웠고, 녹우당에서 공재 윤두서의 화첩을 감상한 뒤 며칠

동안 먹고 자는 것도 잊을 만큼 그의 그림을 모사하는 데 힘썼다.

초의선사가 허련의 작품을 추사에게 보였고, 추사는 한양 자신의 집에서 허련에게 그림 그리는 법을 가르치고 주변 화가들과 교류를 주선했다.

추사는 “압록강 동쪽에서 소치보다 나은 사람이 없다” “소치가 나보다 낫다”고 평했다.

허련은 임금 앞에 나아가 그림을 그려 바치는 화가의 최고 영예도 얻었다.

헌종은 관직이 없는 허련을 무과 시험에 합격시켜 관복을 입힌 뒤 그림을 그리게 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이때 허련이 헌종에게 바친 그림이 ‘설경산수도’다.

1856년 추사가 세상을 떠나자, 허련은 고향으로 돌아와 운림산방을 짓는다.

당시는 운림각이라는 초가였다. 앞마당에 연못을 파고 한가운데 섬을 만들어 배롱나무 한 그루를 심었고, 연못 주변에 정원을 꾸몄다.

배롱나무꽃이 피는 한여름이면 운림산방이 더욱 화사하다.

허련은 이곳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시를 짓고 그림을 그렸다.

운림산방은 허련이 죽고 아들 허형이 진도를 떠나면서 매각됐다가, 허형의 맏아들 허윤대가 다시 사들였고, 넷째 아들 허건이 복원해 지금에 이른다.

운림산방에 들어서면 커다란 소나무 너머로 운치 있는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첨찰산 봉우리를 배경으로 운림산방의 화실과 배롱나무를 품은 연못이 그림 같다.

화실은 기와집, 고택은 초가집 두 채로 복원했으며, 화실과 고택 사이로 출입문을 냈다.

고택을 가로지르면 허련의 영정을 모신 운림사, 문중 제각인 사천사가 있다.

소치1·2관은 허련 일가의 작품을 만나는 공간이다. 소치1관은 허련의 작품 40여 점을 전시한다.

입구에 미술 분야 5대에 걸친 허련의 가계도가 있다.

소치2관은 허련의 넷째 아들인 미산 허형부터 남농 허건, 임전 허문, 오당 허진 등 5대에 이르는 후손의 작품 100여 점을 전시한다.

소치2관에 마련된 ‘소치 작품 이머시브룸’이 눈에 띈다.

대나무 정원을 배경으로 한 홀로그램, 허련의 작품을 미디어 아트로 연출하고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작품이 변해 유연하고 편안한 미술 감상이 가능하다.

화면 속 꽃을 손으로 만지면 꽃잎이 화사하게 흩날려 감동을 자아낸다.

운림산방 관람 시간은 오전 9시~오후 5시 30분(동절기 오후 4시 30분 / 연중무휴), 관람료는 어른 20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800원이다.

쌍계사는 운림산방과 이웃한 절집이다. 쌍계사와 함께 첨찰산 기슭에 있는 진도 쌍계사 상록수림(천연기념물)도 만나보자.

운림산방의 배경이 되는 첨찰산은 정상 인근에 진도기상대가 있어 차로 오를 수 있다.

운림산방로를 따라 향동리 방면으로 가다 보면 두무골재에 이르고, 여기서 좌회전하면 진도기상대까지 이어지는 임도가 나온다.

진도기상대 주차장에서는 해남과 진도 사이의 바다, 해남 두륜산과 달마산의 멋진 풍경이 보인다.

진도타워는 망금산 정상에 세운 높이 60m 전망대다.

7층 전망대에서는 쌍둥이 진도대교와 명량해전의 격전지 울돌목, 우수영국민관광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진도타워 아래 있는 명량해상케이블카를 이용하면 진도와 해남의 원스톱 여행이 가능하다.

진도타워와 명량마루, 해남의 우수영국민관광지에 자리한 울돌목스카이워크와 명량대첩해전사기념전시관까지 한 번에 둘러볼 수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털 캐빈을 타면 투명한 바닥으로 울돌목의 거친 회오리가 보인다.

명량해상케이블카 홈페이지에 울돌목 회오리 시간표가 있으니 참조하자.

동양 최대의 백련 자생지 무안 회산백련지

동양 최대의 백련 자생지 무안 회산백련지

동양 최대의 백련 자생지 무안 회산백련지

강화도로 떠난 그리움과 추억의 DMZ 반나절 여행

흙탕물 속에서 피어나는 순백의 꽃

‘진흙에서 피어나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는다’ 하여 고단한 삶 속에서도 깨끗한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의

상징으로 비유되기도 하는 백련. 전라남도 무안에 위치한 회산백련지는 백련의 동양 최대 자생지다.

법정스님은 회산백련지를 다녀간 뒤 “한여름 더위 속에 회산백련지를 찾아 왕복 이천 리를 다녀왔다.

아! 그만한 가치가 있고도 남았다. 어째서 이런 세계 제일의 연지가 알려지지 않았는지 그 까닭을 알 수 없다.

”라고 수필집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에 감상을 남기기도 했다.

저수지에서 동양 최대 백련 자생지로

무안 회산백련지는 면적이 313.313㎡로, 2001년 기네스북에 오른 동양 최대의 백련 자생지다.

일제강점기 저수지 두 개를 합해 복룡지라는 저수지로 축조해서 농업용수를 공급했으나,

1981년 영산강 하구둑이 완공되면서 저수지 기능을 상실하고 연못이 되었다.

이곳이 백련의 서식지로 번성한 것은 1950년대부터다.

인근 덕애 마을의 주민이 백련 열두 뿌리를 심은 뒤 꿈에서 학 열두 마리가 내려와 앉은 모습을 보았다.

이를 좋은 징조라 여겨 정성껏 가꿔 지금의 연지가 되었고, 1997년 연꽃축제를 시작하면서 백련지로 이름을 바꾸었다.

지금은 수상유리온실, 수생식물생태관, 생태탐방로, 야외물놀이장, 오토캠핑장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어 체험과 휴양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무안 백련의 개회기는 7~9월

백련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하얀 꽃이 피는 건 아니다.

끝이 연한 분홍색이던 꽃잎이 시간이 지나며 점차 하얗게 변하다가 백련이 되는 것이다.

무안백련은 생육기간이 길고 꽃과 잎, 연근이 다른 백련보다 크다. 꽃은 가장 늦게 피며 오래 핀다.

개화기는 7~9월로, 이른 새벽에 피었다가 오후면 봉우리를 닫기 때문에 활짝 핀 연꽃을 보려면 새벽에 찾아야 한다.

꽃이 일시에 피어나는 홍련과는 달리, 백련은 7월부터 연잎이 덮이기 시작하여 3개월 동안 연못을 가득 메우는데,

대부분의 꽃송이가 주먹만 하고 연잎 지름은 1m 안팎이나 된다.

느림의 미학으로 산책할 수 있는 생태탐방로

백련지 주차장은 두 곳으로 수석전시실이 있는 정문 쪽에 하나, 오토캠핑장이 있는 후문 쪽에 하나가 있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바로 주차장이 있고 왼쪽으로 향토음식관 건물이 보이는데 아직 영업을 하지 않는다.

2층에는 연꽃주제영상관과 수석·분청사기 전시관이 있다. 탐방로는 연지를 한 바퀴 도는 둘레길과 연지 사이를 걷는 생태탐방로로 나뉜다.

연꽃 밭 사이로 조성된 탐방로의 양옆으로 허리춤까지 올라오는 연꽃대가 가득 차 있다.

연꽃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미로를 탐험하는 기분마저 든다.

탐방로에는 백련을 비롯하여 수련, 가시연꽃, 어린연꽃 등 30여 종의 연꽃 및 50여 종의 수중식물과 수변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생태학습을 위해 수생식물, 야생화, 재래작물 등을 심어놓은 자연학습장도 있다.

무안백련, 가시연, 어리연, 개연 물질경이 등 희귀 물풀이 자라고 붕어, 잉어, 가물치, 메기 등 토종 물고기가

살고 있어 아름다운 경관과 더불어 생태학습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연못을 가로지르는 280m 길이의 백련교가 있으며,

다리 중간에 높이 1m의 전망대도 세 개 있다. 또한 번뇌를 식히는 108 출렁다리,

수상유리온실, 수생식물생태관이 있다. 수생식물생태관은 스마트 온실체험장으로 재탄생했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환경제어시설 관리와 내·외부 상시 모니터링을 갖춘 491㎡ 규모의 온실체험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