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과 아날로그 풍경이 공존 대전 대흥동 문화거리
디지털과 아날로그 풍경이 공존 대전 대흥동 문화거리
도시여행자에게 대전 대흥동 문화거리는 재미난 요소가 가득한 보물창고다.
세련된 도시 이미지가 느껴지는 건물과 카페가 있는가 하면, 그 속에 70~80년대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손때 묻은 풍경이 숨을 쉰다.
소극장에는 공연이 줄을 잇고, 오래된 골목 안 낡은 건물은 커다란 벽화로 치장해 빈티지한 멋을 더했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대전의 낭만을 느끼기에 대흥동 문화거리만큼 좋은 곳은 없다.
나쁘게 보면 낙후되어가는 도심 속 공간이요, 좋게 보면 아날로그 풍경이 남아 있는 정겨운 공간이다.
그래서 감각 있는 사람들은 대흥동으로 모여든다.
대흥동 한가운에서 ‘대흥동립만세’를 외치다
대흥동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대흥동립만세’라는 마을축제 때문이다.
매년 8월 지역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프린지 페스티벌의 성격을 띠지만, 사실 축제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저 대흥동 한가운데에서 ‘동립만세’를 외치는 몸부림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동립만세’의 어감이 참 예쁘고 마음에 와 닿았다.
아마도 쇠락해가는 원도심이 다시 일어서기를 바라는 젊은 열정이 전해진 탓이리라.
대흥동은 대전의 원도심이다. 옛날에는 대전의 중심가로 위용이 당당했지만, 유성과 둔산으로 중심이 옮겨가면서 낡은 구도심으로 전락했었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니 상권도 시들해지고, 빈 건물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사글세가 옥천보다 쌌다고 하니 대흥동의 쇠락을 막을 수는 없어 보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떠난 곳이 가난한 예술가들의 새 보금자리가 되었다.
임대료가 싸서 부담이 적고, 대전 문화예술의 일번지였던 곳이라 선배 예술가들이 터를 잡고 있으니 자연스레 스며들기도 좋았다.
그렇게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찾아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들어 대흥동은 활기를 되찾고 있다.
대흥동 문화거리 탐방을 위한 베이스캠프는 우리들공원이다.
옛 중구청 자리에 조성된 공원은 대전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다.
인근에 오래된 골목과 화방이 있고, 그 옆에 마임, 연극연구소 같은 것이 자리했다.
소극장, 갤러리도 군데군데 눈에 띈다. 서울의 대학로와 홍대를 섞어놓은 대흥동의 특징을 살펴보기에 좋은 장소다.
낭만이라 불리는 뒷골목 풍경
대흥동을 멋스럽게 만들어내는 것은 아날로그적 풍경이다.
낡고 허름해 보이지만 어쩐지 정이 가는 풍경으로 고급스럽게 포장하면 ‘빈티지’하다.
대흥동 골목을 즐기는 방법은 오래된 건물 외벽에 그려진 그림을 찾는 것이다. 학창 시절 소풍 가서 보물찾기 하듯 골목을 누빈다.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그림은 우리들공원 입구에 그려진 빨간 자동차다.
벽을 뚫고 나오는 자동차가 생동감 넘치거니와 어두운 터널을 뚫고 새롭게 비상하는 대흥동의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
골목길 벽에 옹기종기 붙어 있는 전기계량기도 재미있다.
지저분하기 쉬운 것에 밝은 색으로 앙증맞은 그림을 그려넣어 보는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한다.
여행자들이 꼽는 가장 큰 보물은 산호다방 건물 외벽에 그려진 옷걸이에 걸린 티셔츠 그림이다.
낡은 건물과 다방, 그리고 멋들어진 그림의 조화가 이채롭다.
분명 겉모습은 낡았으나 풍겨내는 체취는 한 편의 예술작품을 보는 것 같다.
산호여인숙 골목의 티셔츠 그림도 반갑다. 회색 콘크리트 건물 벽면에 때에 찌든 듯 꾀죄죄한 흰색 면티.
사람들에게 외면 받던 대흥동의 모습이 떠오른다.
산호여인숙의 녹색 철문도 재미나다.
여인숙을 알리는 뻔한 간판 대신 대문에 꽃으로 산호여인숙이라 치장했다. ‘대체 뭐하는 곳일까’ 궁금증을 유발하는 간판이다.
1977년 문을 연 여인숙은 1층을 전시 공간으로 사용하고, 2층은 가난한 예술가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한다.
예쁘고 세련된 카페와 낡고 손때 묻은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대흥동에서 할 일이다.
마치 하나의 공간에서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오래되어 색 바랜 간판과 벽,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주택, 시대극에서나 볼 법한 골목 등 볼거리가 무궁무진하다.
오래된 것들이 세련된 도시 풍경과 함께 있으니 더욱 아련한 향수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