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 푸른언덕블루베리 체험 여행

포천 푸른언덕블루베리 체험 여행

포천 푸른언덕블루베리 체험 여행

록 음악과 함께하는 여름휴가 지산 밸리록 페스티벌

여름 대표 과일은 수박이라지만,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여름 과일은 블루베리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부터 나기 시작해 지금이 한창 수확기란다.

10대 슈퍼푸드 중 하나인 블루베리는 그 자체로도 맛있지만 생과, 냉동, 건조

블루베리를 이용해 음료, 아이스크림, 케이크, 쿠키, 건강식품 등 다양한 형태로 즐길 수 있다.

요즘에는 동네 마트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재배농장을 찾아가 직접 따먹는 블루베리는 더욱 달콤하다.

전국적으로 재배하고 있기 때문에 집에서 1~2시간 거리의 재배농장을 찾을 수 있다.

자연이 준 푸른 보석, 블루베리를 따러 포천 푸른언덕블루베리 농장으로 향했다.

포천에서 유일한 블루베리 농장인 ‘푸른언덕블루베리’를 찾아가는 길.

농장이 있는 마을길로 접어들자 파란색 바람개비가 드문드문 서 있다.

이정표를 바람개비로 대신했다고. 파란 바람을 일으키는 바람개비를 따라 들어가니 야트막한 언덕 위에 농장이 보인다.

폭염이 한창인 요즘이지만 초록 잎사귀 사이로 짙푸른 블루베리가 가득하니 보는 것만으로 시원하다.

농장주 최종오 씨는 원래 웹 디자인을 했는데, 어느 날 블루베리 농장의 홈페이지를 제작해주다가 블루베리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때부터 블루베리 농사를 시작해 2009년 포천에 자신의 농장을 차렸다.

2010년부터 2~3년생 묘목을 식재해 어느덧 수확이 본격화한 시점이다. 현재 약 5,000㎡ 규모의 농장에 7~8년생 1,500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블루베리는 북아메리카 원산으로 인디언들이 야생에서 채취해 먹던 것이 지금은 전 세계에 퍼졌다.

블루베리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10대 슈퍼푸드로 소개되면서 우리나라에도 재배농가가 급속도로 늘었다.

블루베리는 항산화 효과가 뛰어나며, 시력에 좋은 안토시아닌을 포도에 비해 30배 이상 함유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전투기 조종사들이 야간 출격 시 블루베리를 먹은 뒤 명중률이 높았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세계적으로 수백 가지 품종이 있다는데 푸른언덕블루베리는 알이 굵고 단맛이 강한 스파르탄을 비롯해 챈들러, 토로, 브리지타, 엘리자베스 등이 주를 이룬다.

수확 기간을 늘리기 위해 조생종과 만생종을 고루 재배한다.

블루베리는 재배 지역에 따라 수확 시기가 다른데 전라도 등 남쪽에서는 5월부터 수확하고, 포천의 경우 6월에 시작해 8월 초나 중순까지 수확한다.

수확 기간이 짧은 것이 아쉽지만, 봄에는 방울꽃을 닮은 사랑스러운 꽃을 볼 수 있고 가을이면 붉은

단풍이 들어 봄부터 가을까지 보고 즐길 수 있는 게 블루베리다. 단풍 든 잎은 말려서 차로 마셔도 좋다고.

아파트 베란다나 주택 옥상 등에서 화초처럼 블루베리를 키우는 사람들도 점차 늘고 있다.

잘 관리하면 50년 가까이 살 수 있다니 반려식물로 충분하다.

블루베리 언덕 한가운데에 자리한 안내소에서 체험바구니를 받고 주의사항을 들은 뒤 체험을 시작한다.

록 음악과 함께하는 여름휴가 지산 밸리록 페스티벌

록 음악과 함께하는 여름휴가 지산 밸리록 페스티벌

록 음악과 함께하는 여름휴가 지산 밸리록 페스티벌

대구도시철도 3호선 도시 위를 달리는 하늘열차

제1회 지산 밸리록 페스티벌(2009년)의 대표 라인업은 영국 록밴드 오아시스와 미국 얼터너티브록 그룹 위저(Weezer)였다.

세계적인 록밴드의 내한 공연 소식이 알려지자 마니아들의 가슴은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국내외 정상급 아티스트들의 공연은 계속되었다.

라디오헤드, 뮤즈, 언니네이발관, 넬 등 이름만 들어도 록 음악 애호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뮤지션들이 여름이면 지산 밸리록으로 모였다.

2013년부터는 잠시 장소를 변경해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에서 행사가 열렸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3년 만에 다시 경기도 이천시 지산포레스트리조트에서 공연을 개최했다.

지산 밸리록은 올해부터 ‘2016 지산 밸리록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로 이름을 바꿨다.

‘플러그 인 뮤직 앤드 아츠(Plug in Music & Arts); 음악 그리고 예술을 만나다’라는 축제 콘셉트에 맞춘 새 이름이다.

자연이라는 공간에서 음악과 예술을 함께 만나자는 의도가 엿보인다.

축제 현장에는 BIGTOP STAGE, GREEN/RED STAGE, TUNE-UP STAGE 등 세 개의 공연 무대가 설치된다.

BIGTOP STAGE에서는 헤드라이너급 출연진이 주로 무대에 오른다. GREEN/RED STAGE는 밤 12시를 기준으로 분위기를 전환한다.

한 개의 공연장에 두 개의 이름을 붙였다.

GREEN STAGE에서는 감성적인 공연이 열리고 시간이 새벽으로 넘어가면 RED STAGE로 변해 록, 힙합, 일렉트로닉 등 열정적인 음악을 들을 수 있다.

TUNE-UP STAGE에서는 CJ문화재단이 선정해 지원한 튠업 뮤지션들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선보였다.

BIGTOP STAGE에서 기대되는 공연은 스테레오포닉스, 레드 핫 칠리 페퍼, 장기하와얼굴들, 김창완with김창완밴드, 제드, 비피 클라이로, 디스클로저 등이다.

공연 첫날에는 스테레오포닉스의 보컬 켈리 존스의 허스키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둘째 날 김창완with김창완밴드와 장기하와얼굴들의 공연은 우리나라의 대표 선후배 밴드의 음악을 1시간 간격으로 감상하는 자리가 되겠다.

첫날 GREEN STAGE에서 가장 주목받는 뮤지션은 우리나라 가수 이소라다.

독보적인 음색으로 대중성과 예술성에서 경지에 오른 아티스트다.

마지막 날에는 브릿팝 밴드인 트래비스 음악도 들을 수 있다.

밤 12시가 지나 GREEN STAGE가 RED STAGE로 변하면 음악에 취해 잠 못 드는 밤이 시작된다.

피아, 노라조 메탈, 더블유 앤 웨일 등이 새벽까지 공연을 펼친다.

TUNE-UP STAGE에서 주목할 공연은 이제는 고인이 된 선배 가수들을 위해 후배들이 마련한 헌정 무대다.

코어매거진, 남메아리, 아시안체어샷, 네임텍, ABTB, 아홉번째, 마호가니킹 등

7개 팀에서 12명이 모여 데이비드 보위, 프린스, 신해철 등을 기리는 공연을 한다.

지산 밸리록에서는 음악 외에도 축제를 즐길 방법이 얼마든지 많다.

잠깐 공연장을 빠져나올 여유가 있다면 아트 포레스트(ART FOREST)와 아트 밸리(ART VALLEY)에 가보자.

플러그 인 뮤직 앤드 아츠(Plug in Music & Arts); 음악 그리고 예술을 만나다’라는 페스티벌 콘셉트가 실현되는 현장이다.

아트 포레스트에서는 길종상가, 유어마인드, 신도시 등이 예술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디자인 활동을 하는 길종상가는 축제 기간 중 관객과 함께 신기하고 이상한 물건을 만든다.

“볼링처럼 뭔가를 굴려 넘어뜨리거나, 동전이나 나무토막을 울퉁불퉁한 나무 판 위에 던져 놀 수 있는 물건을 만들 겁니다.

참여형 게임을 할 수 있는 물건이죠”라고 길종상가 박길종 대표는 설명한다.

그 물건이 무엇일지는 축제가 시작되어야 정확히 알 수 있겠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도시 위를 달리는 하늘열차

대구도시철도 3호선 도시 위를 달리는 하늘열차

대구도시철도 3호선 도시 위를 달리는 하늘열차

수리산 병목안시민공원 산과 하늘을 품은 쉼터

지상 10m 높이의 하늘열차는 대구 도심 위를 달리며 다이내믹한 풍경들을 선사한다.

높은 빌딩 사이를 지나고, 넓은 강 위를 달리고, 다닥다닥 지붕 위를 날아가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얼굴의 대구를 만난다.

빌딩 사이로 보는 노을과 일출도 특별하다.

하늘열차에서 내리면 가보고 싶었던 대구의 명소와 먹거리들이 기다린다. 3호선은 신나는 대구여행의 새 출발점이다.

“아제~ 이번 역은 달성공원이죠.” “그래, 이번 역은 옛날 토성이 있는 달성공원역 아이가.

달성공원이나 대구향토역사관으로 가실 분들은 오른쪽 문으로 내리시면 됩니데이~”

사투리 안내방송이 구수하게 들려오는 대구도시철도 3호선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대구에 도시철도가 처음 개통된 것은 1997년이다.

그 뒤 2005년에 2호선이 완성되었고, 10년 만인 지난 4월 23일 3호선이 운행을 시작했다.

5월 31일까지 이용객이 무려 300만 명. 하루 평균 7만 6,500명이 열차를 탔다 하니 그 인기가 짐작되고도 남는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은 컴컴한 지하를 달리는 지하철이 아니라 하늘열차(Sky Rail)라 불리는 지상철이다.

평균 높이가 11m인 하늘열차를 타면 도심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폭 200m가 넘는 금호강을 가로지를 때면 강 위를 나는 듯 느껴지고, 대봉교를 건너면 신천 둔치 잔디밭을 산책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평화롭게 다가온다.

남구에서는 오밀조밀한 주택 지붕들 너머 앞산이 마주 보이고, 수성못역이 가까워지면 오른쪽으로 수성못이 나타난다.

수면에 햇빛이 하얗게 물결 따라 부서지는 풍경을 뒤로하고, 열차는 범물동 빌딩들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땅 위에서는 볼 수 없는 대구의 비경이다.

해가 진 뒤에 3호선을 통해 보는 대구의 모습도 새롭다.

빌딩마다 하나둘 불이 켜지고,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전동차 아래를 지나는 자동차 불빛들은 강물처럼 흘러가고, 범어천을 따라 양쪽으로 우뚝 선 빌딩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달리는 열차 안에서 빌딩 숲을 붉게 물들이며 지는 해를 바라보는 일도 특별하다.

대구 하늘을 남북으로 달리는 하늘열차는 북구 동호동 칠곡경대병원역에서 수성구 범물동 용지역까지 모두 30개 역을 거친다.

전체 24km 구간을 지나는 데 48분이 걸린다. 신호 대기도, 답답한 정체도 없이 시원하게 달린다.

승용차를 이용할 때 70분 이상 걸리는 거리를 20여 분 단축했다.

오전 5시 30분부터 밤 12시까지, 아침저녁 러시아워 때는 5분 간격, 그 외에는 7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궤도빔 위를 차량의 고무바퀴가 감싸 안고 주행하는 방식이라 소음과 진동이 적고 승차감이 뛰어나 편안하게 풍경에 빠져든다.

대구 하늘열차는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교통 모노레일이다. 세계에서도 대중교통에 모노레일을 도입한 사례는 많지 않다.

일본 도쿄와 오사카, 중국 충칭 그리고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등 세계 14개국에서 운행 중이다.

그중에서 대구 하늘열차는 최장거리다.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최고를 자랑한다.

아파트나 주택 밀집 지역을 지날 때면 창문흐림장치가 작동해 시민들의 사생활을 보호해준다.

위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땅 위로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는 스파이럴 슈트와 물분사 방식의 자동소화시설이 설치되어 안전에 온 힘을 쏟았다.

무인 운행이지만 걱정은 접어두어도 좋다. 차량마다 안전요원이 1명씩 승차하고, CCTV를 통해 칠곡차량기지 관제시스템에서 실시간 모니터링한다.

다른 노선으로 갈아타려면 1호선은 명덕역에서, 2호선은 신남역에서 환승 가능하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타고 내리는 역은 서문시장역이다. 3호선 개통으로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주말 기준 40% 정도 늘었다.

3번 출구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면 바로 시장 입구다. 기존에는 2호선 신남역에서 내려 10여 분을 걸어야 했다.

평양장, 강경장과 함께 조선 시대 3대 장터로 꼽혔던 서문시장은 대구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이다.

수리산 병목안시민공원 산과 하늘을 품은 쉼터

수리산 병목안시민공원 산과 하늘을 품은 쉼터

수리산 병목안시민공원 산과 하늘을 품은 쉼터

괴산 산막이옛길 걷기 연둣빛 일렁이는 옛길을 거닐다

갈증을 잠시 달래주는 물 한 잔처럼 짧은 휴식이 필요할 때가 있다.

요란하지 않고 번거롭지도 않은 짧은 휴식은 때로 남태평양의 백사장에서 누리는 휴식만큼이나 멋지고 달콤하다.

산과 하늘이 가깝고 바람 소리까지 들릴 만큼 조용한 공원이 있다.

경기도 안양시에 자리한 병목안시민공원이다. 수리산 자락이 품은 보석 같은 쉼터를 만나보자.

소박한 휴식을 선물하는 공원

왕복 2차선 도로가 끝나고 좁은 외길에 들어서서도, ‘병목안시민공원’이라는 커다란 표지석을 지나고서도 ‘과연 이런 곳에 공원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중앙 광장으로 향하는 가파른 계단에 발을 딛고서야 널따랗게 펼쳐진 하늘이 이마 위로 성큼 다가선다.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목덜미를 부드럽게 간질이고 맑은 햇살이 그대로 내려와 잠시 눈이 부시다.

입구는 마치 병목처럼 좁지만 그 안에 너른 공간을 품고 있어 ‘병목안’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수리산 아래 자락의 지명이다.

경기도 안양시와 군포시, 안산시를 아우르며 마치 독수리가 날개를 펼친 듯 긴 능선으로 이어진 수리산은 수도권 산행의 떠오르는 명소다.

정상인 태을봉(해발 489미터), 슬기봉(해발 451.5미터)으로 오르는 등산로뿐 아니라

삼림욕장과 완만한 둘레길 등이 있어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에게 훌륭한 나들이 코스가 되어준다.

병목안시민공원은 수리산의 정기를 누리며 소박한 휴식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다.

193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경부선 철도와 수인선 철도에 쓰일 자갈을 채취하던 채석장이 시민공원으로 변신한 것은 2006년이다.

방치된 산의 경사면이 위태롭고 돌덩이와 돌가루가 뒹굴던, 버려진 공간이었다.

필요에 의해 파헤쳐지고 버려진 공간은 되돌이표처럼 돌아왔다.

천덕꾸러기로 방치되었던 공간이 공원으로 변신하는 과정은 조용히 이루어졌다.

채석장의 흔적은 높이 65미터, 폭 95미터의 거대한 인공 폭포로 깔끔하게 가려졌다.

가파른 경사면에 야생화 화단을 조성하고, 철 따라 피고 지는 꽃을 보며 걸을 수 있는 산책로를 만들었다.

중앙 광장에 퍼걸러 등 쉼터를 만들고 잔디 광장 주변에는 나무를 심었다.

채 10년도 지나지 않아 나무들은 울창해지고 돌가루 날리던 옛 모습은 자취를 감추었다.

산책로와 정자, 체력 단련장 등의 시설도 함께 있어 공원을 찾는 이들에게 아기자기한 재미도 선물한다.

병목안시민공원의 상징이 된 인공 폭포는 국내 최대 규모의 인공 폭포이자 독특한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수리산을 비행하는 독수리 한 마리가 올라앉은 긴 폭포를 비롯해 크고 병풍처럼 펼쳐진 작은 암봉들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폭포

대형 스크린처럼 벽면을 가득 적시며 흐르는 폭포 등 다양한 형태의 인공 폭포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잔디가 깔린 중앙 광장은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공간이다.

초록빛으로 눈을 씻으며 도시락 먹기에 좋은 원두막들도 자리를 잡았다.

중앙 광장 둘레를 따라 서 있는 나무 그늘 아래에서는 책 한 권 읽어도 좋고, 한가롭게 낮잠을 즐겨도 좋다.

하늘과 산자락에 눈높이를 맞추고 마음속의 묵은 먼지들을 털어내기에도 그만이다.

어린이 놀이터 옆으로는 예전 자갈 실은 화물열차가 다니던 철로를 복원해놓았다.

괴산 산막이옛길 걷기 연둣빛 일렁이는 옛길을 거닐다

괴산 산막이옛길 걷기 연둣빛 일렁이는 옛길을 거닐다

괴산 산막이옛길 걷기 연둣빛 일렁이는 옛길을 거닐다

눈물의 결정이 말라붙은 고흥 오마도 간척지

괴산군 지도를 보고 있으면 온통 파랗다.

그만큼 산이 많다는 증거다. 산이 많으니 계곡도 많다.

쌍곡과 선유동계곡, 화양동계곡, 갈은계곡 등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계곡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 바로 괴산이다.

산이 장막처럼 둘러싸고 있어 막혀 있다는 뜻을 지닌 ‘산막이’ 역시 산이 만들어낸 지명이다.

산으로 막힌 마을로 불리는 산막이마을은 달천을 가로질러 건너야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오지 중 오지였다.

산에서 채취한 버섯, 나물, 약초 등을 강 건너 읍내 장에 내다파는 것이 유일한 외출이었다.

하지만 댐이 건설되면서 물길마저 사라졌고, 마을은 더욱더 오지가 되었다. 그래서 태어난 길이 지금의 산막이옛길이다.

발아래 목숨을 노리는 호수와 벼랑이 버티고 서 있는 굽이굽이 위태로운 길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세상과 단절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살아가기 위해 만든 길이다.

산막이옛길은 충북 괴산군 칠성면 외사리 사오랑마을에서 산막이마을을 이어주던 10리 길, 즉 4km에 걸친 옛길이다.

지금은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 되었지만, 그전에 있던 길은 분명 옛길이 맞다.

이 산막이옛길을 지난해에만 140만 명이 찾았다고 하니 이제 오지 신세를 면한 셈이다.

주차장에서 괴산호의 풍경을 만나기까지는 오르막길이 반복된다.

아름다운 풍경을 쉽게 보여주기 싫었던 모양이다.

길게 이어진 농특산물 지정 판매장을 지나 가파른 길을 걸어 관광안내소, 차돌바위나루를 지나 소나무동산에 이르면 또 한 차례 계단길이 이어진다.

소나무동산엔 40년 수령의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구불구불 뻗은 소나무와 단정하게 쌓은 돌담길이 제법 운치 있어 오르는 길이 힘든 줄 모른다.

언덕 정상에 이르면 비로소 괴산호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길 중간에 설치되어 있는 그네와 흔들의자에 앉아 여유롭게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이 제법 눈에 띈다.

왼편 소나무 숲 너머로 괴산호와 산막이옛길을 탄생시킨 주인공이 얼굴을 내민다. 괴산댐이다.

괴산댐은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달천을 가로막아 건설한 댐식 발전소다.

한국전쟁 이후 파괴된 전력시설을 재정비, 복구하기 위해 우리나라 최초로 우리 기술로 건설했다.

전망대에서 호수를 굽어보며 한숨 돌리고 나면 흙길과 나무데크를 따라 완만한 길이 이어져 발걸음이 제법 경쾌해진다.

소나무 출렁다리는 산막이옛길의 최고 명소 중 하나다. 소나무 숲 사이로 출렁다리를 연결해 삼림욕과 함께 재미를 더했다.

소나무 출렁다리를 지나면 산막이옛길에 재미를 더하는 다양한 볼거리가 이어진다.

지금은 연못이지만 예부터 벼를 재배했던 논으로 빗물에 의존해 모를 심었다는 연화담을 비롯해 노적봉, 성재봉, 옥녀봉, 군자산 등이 겹겹이 보이는 망세루가 가장 먼저 반긴다.

1968년까지 실제로 호랑이가 살았다고 전하는 호랑이굴 앞에는 잘생긴 호랑이 한 마리가 웅크린 채 지나는 여행객들을 노려보고 있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포토존이기도 하다.

눈물의 결정이 말라붙은 고흥 오마도 간척지

눈물의 결정이 말라붙은 고흥 오마도 간척지

눈물의 결정이 말라붙은 고흥 오마도 간척지

부여 백제문화단지 1400년 전 백제의 숨결이 깨어나다

행락이 아닌 ‘여행’이라면, 길 위에서 더러 뜨거운 상처 같은 이야기들과 만나게 된다.

이긴 자들보다 진 자들이, 성공한 자들보다 실패한 이들이, 가진 자들보다 못 가진 자들이 살아낸 삶은 언제나 더 뜨겁다.

입신양명이나 부귀영화야 당대의 성취쯤으로 끝나지만, 못 다 꾼 꿈이나 가슴 치는 억울함은 오래 남아 긴 시간을 건너간다.

그렇게 건너온 이야기를 여름의 절정을 넘어서 찾아간 고흥 땅에서 만났다.

너른 논이 까마득한 소실점까지 이어지는 해창만 간척지.

논과 논 사이에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는 물길이 하늘을 담아낸다.

소외된 이들의 눈물과 가난한 이들의 희망이 소금 결정처럼 남아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전남 고흥의 오마도 간척지다.

분노와 슬픔, 그리고 눈물겨운 가난에 뿌리를 대고 있는 땅.

그곳에 갈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도, 노을이 물드는 모습을 바라보다 자주 울컥하게 되는 것도 모두 간척지를 이룬 것들에 대한 생각 때문이었다.

서울 여의도 크기의 세 배쯤 되는 고흥 오마도 간척지는 한센인들이 1962년부터 3년 동안

소록도 북쪽 풍양 반도에서 도양읍 봉암 반도까지 2㎞가 넘는 바다를 메워 만들어낸 땅이다.

간척을 위해 한센병 음성환자 2000명이 2개의 작업대로 나누어 교대로 한 달씩 일했다.

당시 소록도의 한센병 음성환자는 3300명.이 중 작업이 가능한 인원이 2000명 정도였으니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다 나섰던 셈이었다.

이들에게 지급된 장비는 삽과 손수레뿐.

대나무와 소나무로 만든 사다리를 수심 8m가 넘는 바다에 박아놓으면

이튿날 펄 속으로 다 잠겨버렸고, 인근의 산에서 캐낸 흙과 바위를 리어카로 실어 바다에 부으면 밀물의 바다가 이내 흙을 육지 쪽으로 밀어붙였다.

사다리를 다시 짜서 바다에 넣고 밀려 나간 흙을 다시 바다에 쏟아붓기를 끝없이 반복했다.

천신만고 끝에 겨우 막은 제방이 거센 조류에 허망하게 터져버린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노동. 부상자는 속출했고 더러는 목숨을 잃기도 했다.

한센인들은 왜 이런 고된 노동을 마다하지 않았을까. 그들이 원했던 것은 ‘정착’이었다.

완치돼 전염성이 없다는 판정을 받은 음성 환자들은 귀향을 허락받았다.

그러나 부푼 꿈을 안고 고향으로 향했던 이들은 십중팔구 다 병원으로 돌아왔다. 고향의 가족마저 받아주지 않았던 것이다.

돌아온 한센인에게 병원장은 ‘바다 간척사업에 나서면 새로운 정착촌을 만들어 주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소록도를 떠나 육지에서 살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한센병 환자들은 제안을 받아들였다.

반세기가 넘도록 치유되지 않을 상처의 시작이 이랬다.

물막이 공정이 80~90%가 끝났을 무렵, 정부는 돌연 한센병 환자들을 모두 내쫓았다.

총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한센병 환자와는 함께 살 수 없다’고 반대하던 간척지 주변 주민들의 민원에 굴복했던 것이었다.

스스로의 손으로 땅을 만들어 살고자 했던 한센인들의 꿈은 이렇듯 허망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소외된 병자를 국가가 주도하는 건설사업에 동원했던 것이나 약속을 저버리고 파렴치하게 마지막 꿈마저 빼앗았던 건 무자비한 폭력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폭력에 유린당한 이들은 이 땅에서 가장 낮고 불쌍한 사람들이었다.

부여 백제문화단지 1400년 전 백제의 숨결이 깨어나다

부여 백제문화단지 1400년 전 백제의 숨결이 깨어나다

부여 백제문화단지 1400년 전 백제의 숨결이 깨어나다

제주 걷기 좋은 길 성안올레 1코스 원도심 투어

백제문화단지의 정문인 정양문을 지나면 시원스런 중앙광장이 펼쳐지고, 그 뒤로 사비궁이 자리해 있다.

사비궁은 정전인 천정전을 중심으로 서궁과 동궁으로 나뉜다.

천정전이 왕의 즉위 의례나 신년 행사 등 국가의 각종 의식을 거행했던 공간이라면 서궁과 동궁은 왕의 집무 공간이다.

서궁에선 무신, 동궁에선 문신에 관련된 업무를 처리했다고 한다.

서궁과 동궁의 정전을 각각 무덕전과 문사전이라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천정전 중앙에는 어좌(御座)가 놓여 있다. 용좌라고도 불리는 어좌는 왕이 앉던 의자다.

천정전의 어좌는 부여와 공주 지역에서 발굴된 백제시대 유물을 토대로 재현한 것으로, 기단부의 문양은 국보 제128호인 금동관음보살입상의 대좌에서

어좌 뒤 봉황문은 부여 규암면 외리에서 출토된 유물에서 차용한 것이다.

봉황은 태평성대에만 나타나는 전설 속의 새로 용, 거북, 기린과 함께 사령(四靈)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어좌 양옆으로는 왕과 왕비의 평상복과 대례복이 전시돼 있다.

서궁의 무덕전은 백제시대 복식을 체험해볼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선 왕이 입던 용포에서 장군의 갑옷에 이르기까지 백제의 다양한 복식을 무료로 체험해볼 수 있다.

무덕전 중앙의 멋스러운 의자와 드라마 <계백> 에 나왔던 주인공들의 실물 크기 모형은 모두 기념촬영을 위한 소품들이다.

동궁의 문사전으로 걸음을 옮기면 백제 제26대 성왕이 웅진(공주)에서 사비(부여)로 천도를 선포하는 장면을 홀로그램으로 만나볼 수 있다.

사비궁 우측에는 능사(陵寺)가 자리해 있다. 능사는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백제 위덕왕 14년에 창건한 사찰이다.

백제문화단지 내 능사는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절터(능산리사지·사적 제434호)에서 발굴된 유구를 토대로 복원한 것이다.

여기서 잠깐! 능사를 사찰의 이름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능사는 사찰의 이름이 아니라 ‘능 옆에 지어진 절’을 가리키는 일반명사이다.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던 사찰을 원찰이라 부르는 것과 비슷한 경우다.

실제로 능산리 절터에서 백제왕릉원까지는 직선거리로 채 200m도 되지 않는다.

백제문화단지 내 능사에는 대웅전과 오층목탑을 포함해 향로각, 부용각, 결업각, 자효당, 숙세각 등 부속 전각까지 고스란히 복원돼 있다.

그 중 시선을 끄는 건 단연 오층목탑이다. 높이 38m에 이르는 이 거대한 탑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복원한 백제시대 목탑이다.

능산리 절터 목탑 자리에서는 능사의 창건연대가 적힌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국보 제288호)이 출토되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리함과 함께 백제를 대표하는 유물 중 하나인 백제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도 이곳 절터의 서쪽 건물지에서 출토되었다.

불전에 향을 피우기 위해 사용했던 백제금동대향로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우리 유물 100선’에 선정할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제주 걷기 좋은 길 성안올레 1코스 원도심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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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랑과 흥겨운 판소리의 무대 전북 남원

주변이 깔끔하게 정비된 산지천은 서울 청계천의 모델이 된 곳이다.

이런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면 대부분 깜짝 놀란다.

“아니, 산지천이 청계천을 따라 바꾼 게 아니고요?”

많이 오해하고 있는 사실이다. 산지천은 오래전부터 도민들의 생활 터전이었던 곳으로 1960년대에

인구가 증가하면서 땅을 넓히기 위해 복개했다가 환경 문제로 1990년대에 모두 걷어냈다.

완벽하게 복원된 산지천에는 맑은 물이 흐르며 물고기들이 헤엄쳐 다닌다.

또한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관광 명소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과거 이명박 서울시장 시기에 청계천 복원을 꾀하면서 이러한 산지천의 사례를 많이 참고했다고 한다.

산지천 다리를 건너면 성안올레 스탬프 코너가 나타난다.

우리보다 먼저 스탬프를 찍고 있던 이들은 중국인 관광객이었다.

중국에까지 성안올레가 벌써 소문이 난 건가?! 뿌듯한 마음으로 스탬프에 도장 꾹, 찍고 길을 재촉했다.

성안올레를 지나가는 길에 옛 제주 성벽이 남아 있는 계단길을 들렀다.

겉보기엔 평범한 계단 같은데 제주성의 유구한 역사를 담고 있는 곳이다.

일제강점기에 제주성은 모두 허물어져 버리고 유일하게 남은 성벽의 흔적이 이 계단길 아래 남아 있다.

계단 옆길로 나서면 성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많은 부분이 담쟁이덩굴에 가려 있지만 실제로 보면 커다란 암석들이 높게 쌓아 올려진 꽤나 웅장한 성벽이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일제 때 자원수탈을 위한 항구를 만들면서 제주성을 허물어 그 돌로 바다를 매립했는데

당시 측후소(기상청)가 있던 지금의 계단길은 허물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나마 남아 있게 된 것이다.

성안올레 도보투어는 김만덕 기념관도 지나간다. 제주의 인물로 ‘김만덕’을 빼놓을 수 없다.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기생의 몸종이 되었던 김만덕은 후에 거상이 되어 막대한 부를 형성했는데

나라에 흉년이 들어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자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해 제주도민을 살린 의인 중의 의인이다.

김만덕 기념관에는 이러한 이야기들이 재미나게 꾸며져 있다.

골목길 안쪽에는 건입박물관이 있다. 마을 주민들이 전시물품을 기증해 만든 작은 박물관인데 소소한 볼거리들이 많다.

과거에 유행했던 제주 산호 기념품이나 직접 쓰던 돌절구, 다리미, 물허벅 등 마치 타임머신 여행을 떠나온 느낌이다.

박물관 후문으로 나서면 잘 꾸며진 생태 공원과 물사랑홍보관이 있다.

과거 제주도는 물이 귀하고 부족해 조선시대에는 최악의 유배지로 여겨지던 곳이었다.

기술이 발달해 지하수를 퍼올리게 되면서 지금은 삼다수를 수출까지 하는 시대가 되었다.

물사랑홍보관에서는 이런 이야기들을 자세히 들을 수 있다.

성안올레 1코스에는 동자복, 2코스에는 서자복이 있는데 제주 읍성의 동쪽과 서쪽에서 마주 보는 느낌으로 서 있다고 한다.

돌하르방과 닮은 듯 다른 동자복은 아주 오래전부터 마을 주민들이 미륵불로 여기며 신성하게 여겨왔다고.

이날도 누군가 기도를 드리고 간 듯 음료와 목걸이가 공물로 놓여 있었다. 동자복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믿음의 상징으로 굳건히 서 있었다.

김만덕 객주가 내려다보이는 길을 지나 건입동 마을 길로 접어든다.

멋지게 그린 벽화 길을 지나 산지등대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푸른 바다와 제주항 전경이 한눈에 잡히며 길을 따라 곧게 걸어가면 산지등대가 나타난다.

산지등대는 1916년 무인등대로 처음 설치되었으며 100년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장소이다.

작은 등탑이 예전 것이며 큰 등탑은 지금도 여전히 불을 밝히고 있다.

등대 안 관사였던 곳을 카페로 꾸며 쉬어갈 수 있다.

여기까지 쉼 없이 올라왔으니, 시원한 음료를 한 잔 마시면서 한참을 쉬었다.

아름다운 사랑과 흥겨운 판소리의 무대 전북 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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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포부터 호미곶까지 사색하며 걷는 포항 여행 코스

춘향이와 이몽룡이 만나 풋풋한 사랑의 봉우리를 터뜨리고, 천생연분 변강쇠와 옹녀가 불 같은 사랑을 나누기도 했으며

가난하지만 심성 고운 흥부의 우애 깊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땅은 다름 아닌 여느 고을보다 먼저 봄이 찾아오는 남원이다.

로맨티스트와 휴머니스트의 정기가 서린 이 고장에서 어느 봄날, 누구보다 따뜻한 사랑을 꽃피워보자.

‘사랑사랑 내 사랑이야 어허둥둥 내사랑이지야 삼오신정 달밝은밤 무산천봉 완월사랑 목락무변 수여천에 창해같이 깊은 사랑…’

줄리엣의 창 아래에서 로미오가 부르던 사랑의 세레나데가 바로 이와 같지 않았을까!

세기의 연인이라 불리며 보는 이의 가슴마저 설레게 한 춘향과 몽룡.

지금이라도 광한루에 가면 고운 속치마 내보이며 그네를 타던 춘향의 고혹적인 모습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들뜨곤 한다.

이몽룡처럼 번쩍하는 사랑에 빠지고 싶은 이, 춘향처럼 누군가를 매혹하고 싶은 이들에게 사랑의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광한루의 유혹이 지금 시작된다.

광한루원에는 춘향과 몽룡이 만났던 곳, 사랑을 나누었던 곳 등 곳곳에 촬영 흔적이 남아 있어 금방이라도 춘향이가 버선발로 뛰어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광한루원을 두고 사람들은 신선이 사는 이상향을 지상에 건설한 조선시대 대표적인 정원이라고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하늘나라 월궁인 광한루와 그 아래 천상의 은하수를 상징하는 호수와 오작교,

그리고 신선들이 산다는 전설속의 삼신산을 연못 가운데 조성하여 전체적인 구성이 마치 천제우주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젓이 산책하기에도 좋은 곳이 또한 광한루는 춘향전의 무대가 된 까닭에 연인들도 많이 찾는다.

사실 춘향과 몽룡의 사랑이야기가 현실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데에는 광한루의 아름다움이 큰 몫을 하고 있다.

특히나 오작교는 해마다 칠월 칠석이면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안타까운 천상의 사랑을 춘향과 이몽룡을 통해 완성시킨 사랑의 다리로도 유명하다.

그 외에도 춘향사당, 완월정, 춘향관, 월매집, 그네, 전통놀이 체험장 등 오랜 역사와 더불어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을 해볼 수 있는 곳 등이 많다.

춘향과 이몽룡이 이별의 정을 나눈 곳이라 전해지는 오리정도 들려보자.

춘향고개 하단 도로 좌측에 위치하고 있는 2층 목조 건물인 오리정은 춘향과 이몽룡이 백년가약을 맺고

남원에서 행복하게 지내다가 이몽룡이 남원부사로 전직하게 되어 부친을 따라 남원을 떠나게 되자 애절한 심정으로 함께 슬픔을 나눈 곳이라 전해진다.

복숭아꽃처럼 어여쁜 여자가 버드나무 같이 가는 허리는 봄바람에 하늘 하늘거렸다.

이처럼 어여쁜 여자가 팔자가 사나워 치마 자락 한 번 만지는 남자마다 모두 죽기 일쑤였다.

그런 여자가 제 짝을 만났으니 바로 변강쇠였다. 이들의 만남의 장소가 된 곳이 바로 장승 쌈지공원이다.

변강쇠뎐의 흔적이 남아있는 백장계곡의 가늘고 길게 늘어져 흐르는 물줄기가 내려와 웅덩이를 만드는 지형은 남자의 힘이 쏘에 모여 기를 생성하는 형상이다.

그리하여 이곳 태아바위에 염원을 하면 귀한 아들을 얻으며 근연바위를 긁어 국을 끓여 먹으면 기운이 세진다고 하고,

비가 내린 후에는 전국팔도의 많은 명창들이 이 곳의 폭포에서 목청을 다듬기도 했다고.

역시나 전국의 장승들이 모여들었다는 전설처럼 수많은 장승과 남근상이 있다.

구룡포부터 호미곶까지 사색하며 걷는 포항 여행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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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중심에서 즐기는 알뜰한 여름방학

때는 신라 진흥왕 시절, 장기현령이 늦봄에 각 마을을 순시하다가 지금의 용주리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폭풍우가 휘몰아치면서 바다에서 용 10마리가 승천하다 그 중 1마리가 떨어져 죽자

바닷물이 붉게 물들면서 폭풍우가 그쳤다고 합니다. 9마리의 용이 승천한 포구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 바로 ‘구룡포’입니다.

구룡포는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조용한 어촌마을이었습니다.

어부 이외에는 가족의 먹을 거리를 구하기 위해 바다에 나가는 정도였지요.

일제강점기가 되자 구룡포는 최적의 어업기지로 떠올랐습니다.

‘도가와 야사브로’라는 일본인 수산업자가 조선총독부를 설득해 구룡포에 축항을 제안하였고

큰 배가 정박할 곳이 생기자 수산업에 종사하던 일본인들이 대거 구룡포로 몰려온 것이지요.

방파제를 쌓아 생긴 새로운 땅에는 일식가옥이 빼곡히 들어섰습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100여 채 남아있던 일본인가옥은 현재 50채가량 남았습니다.

거리 곳곳에는 일제강점기 당시 사진이 붙어 있어 현재 모습과 비교하며 둘러볼 수 있습니다.

집 내부에는 다다미는 물론, 일본 잡지로 도배한 방문, 후지산이 그려져 있는 유리창 등 일제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남아 있지요.

포항시에서는 이를 활용해 한때 풍요로웠던 일본인들의 생활상과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의 증거물이자 교육장으로써 ‘구룡포 근대 문화 역사 거리’를 조성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표지판에서 오른쪽으로 쭉 걷다 보면, 멋들어진 건물 한 채가 보이는데요

이 건물은 1920년대 가가와현에서 온 하시모토 젠기치(橋本善吉)가 살림집으로 지은 2층 일본식 목조가옥입니다.

그는 구룡포에서 선어운반업으로 크게 성공하여 부를 쌓은 사람입니다.

건물을 짓기 위해 당시 일본에서 직접 건축자재를 운반하여 건립하였다고 합니다.

현재 복원 공사를 마무리하여 ‘구룡포 근대역사관’으로 개관하였습니다.

건물 내부의 부츠단, 고다츠, 란마, 후스마, 도코바시라 등이 1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잘 남아 있으며 일본식 건물의 구조적 의장적 특징을 잘 갖추고 있습니다.

이 건물은 한국과 일본 건축 전문가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대상으로 삼는 건축물로 그 가치가 크다고 해요.

1층에는 100년 전 일본 어부들이 구룡포에 정착하게 된 상황과 당시 일본인들의 생활상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부츠단과 고다쯔, 부엌 등 당시 이곳에 살았던 이들의 생활상을 재현해 두었습니다.

2층에서는 일본으로 돌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당시 구룡포에 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일본인들로 구성된 ‘구룡포회’ 회원들의 육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집안 곳곳을 둘러보다 복도 끝에 걸터앉습니다. 목조건물 특유의 안락함과 창 밖에서 들어오는 겨울 볕은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넓은 정원이 딸린 2층 목조 가옥에서 떵떵거리며 살았을 그의 모습을 떠올리니 가슴 한쪽이 씁쓸합니다.

근대역사관을 나와 왔던 길을 따라서 쭉 걸으면, 좌우로 늘어선 일본의 적산가옥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한적한 일본마을의 풍경을 연상하게 하는 골목입니다.

적산가옥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이 골목은 마치 일시정지라도 한 듯이 그 시절의 기억을 아직 떨쳐버리지 못한 채 멈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