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과 유익함이 있는 곳 정읍 솔티달빛생태숲길

즐거움과 유익함이 있는 곳 정읍 솔티달빛생태숲길

즐거움과 유익함이 있는 곳 정읍 솔티달빛생태숲길

남종화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빚다 진도 운림산방

등산 초보도 걷기 좋은 정읍 솔티달빛생태숲길은 생태 체험장, 생태놀이터, 전망대, 짚라인 등

아이들도 좋아할 만한 놀거리가 다양하고 아기자기하게 숲이 조성되어 있어 자연 속에서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걷기 길은 내장산조각공원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국화축제가 열리는 곳이기도 한 내장산조각공원에는

국내 조각가 16인의 조각품이 각 1점씩 전시돼 있어 다양한 볼거리를 선사하며,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갑오동학혁명 100주년 기념탑도 자리합니다.

총거리는 269m, 높이는 2~8m에 달하는 내장생태탐방마루길을 걸어봅니다.

주변의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도록 조성되었고 내장산의 깃대종인 진노랑상사화와 단풍나무,

은행나무를 형상화한 3곳의 쉼터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마루길 위에서 공원의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습니다.

솔티달빛생태숲은 내장산국립공원의 서래봉과 불출봉이 내려앉은 천혜의 자연이 빚어냈으며,

멸종위기종인 진노랑 상사화를 비롯하여 많은 야생 동식물이 살고 있습니다.

국립공원의 아름다운 원시숲이 잘 보존된 지역으로 인간과 자연이 서로 공존하며 삶을 이어가고 있는 숲입니다.

숲길을 걸어 자연 친화적으로 조성된 생태놀이터에 이르면, 저 멀리 독특한 외형의 트리하우스가 눈에 띕니다.

솔티숲의 깃대종인 비단벌레와 진노랑 상사화를 모태로 디자인 된 트리하우스 전망대에 올라, 내장호와 내장산 서래봉, 불출봉의 풍경을 눈에 가득 담아봅니다.

생태체험장에는 아이들이 정말 좋아할 만한 보물이 숨겨져 있습니다.

숲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실컷 짚라인을 타니 지친 몸과 마음이 저절로 치유되는 듯합니다.

솔티숲이 품고 있는 송죽마을은 ‘소나무가 있는 터’라는 뜻을 가진 순우리말로 ‘솔티마을’이라고도 불립니다.

이 곳 송죽(솔티)마을에서는 생태관광을 위해 탄소발자국 인증을 받은 모싯잎 활용 떡 만들기 체험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곳을 반환점으로 다시 내장산조각공원으로 회귀하는 코스가 바로 정읍 솔티달빛생태숲길입니다.

계곡이 끝나는 지점에서 좌측에 보이는 와운교를 건너면, 그곳에서부터 나무데크가 아닌 일반도로가 이어집니다.

깔딱고개라고 부르는 이 짧은 구간이 바로 와운마을을 향하는 마지막 코스입니다.

드디어 지나가던 구름도 힘이 들어 누워간다는 말이 있는 마을답게 높은 고지에 생성되어 오래도록 한자리를 지켜온 ‘와운(臥雲)’마을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웅장한 크기와 용 비늘 문양의 윤기 있는 소나무 표피에서 힘찬 기운이 느껴지는 천년송을 눈과 마음에 담고 다시 뱀사골탐방안내소 회귀하는 코스가 남원 와운마을길입니다.

와운마을길의 시작점은 지리산국립공원뱀사골탐방안내소 좌측으로 5분 정도 걸으면 나타나는 뱀사골 신선길 입구에서부터입니다.

남종화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빚다 진도 운림산방

남종화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빚다 진도 운림산방

남종화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빚다 진도 운림산방

해미읍성의 어제와 오늘을 잇는 해미읍성역사보존회

흔히 진도를 삼보(진도개, 구기자, 돌미역)와 삼락(민요, 서화, 홍주)의 고장이라 한다.

삼락은 진도를 예향으로 일컫는 상징성이 있다.

진도 삼락 가운데 서화를 대표하는 곳이 첨찰산 아래 들어앉은 운림산방(명승)이다.

‘남종화의 대가’라 불리는 소치 허련이 말년에 낙향해서 지은 화실로, ‘첩첩산중에 아침저녁으로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 숲을 이룬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허련은 1808년 진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주가 많았지만, 다소 늦은 나이에 본격적인 그림 수업을 시작한다.

화가 허련의 삶에 두 인물이 등장한다. 다성이라 불리는 초의선사와 추사체를 완성한 김정희다.

허련은 28세 때 해남 대흥사에 머물던 초의선사를 찾아가 그림을 배웠고,

녹우당에서 공재 윤두서의 화첩을 감상한 뒤 며칠 동안 먹고 자는 것도 잊을 만큼 그의 그림을 모사하는 데 힘썼다.

초의선사가 허련의 작품을 추사에게 보였고, 추사는 한양 자신의 집에서 허련에게 그림 그리는 법을 가르치고 주변 화가들과 교류를 주선했다.

추사는 “압록강 동쪽에서 소치보다 나은 사람이 없다” “소치가 나보다 낫다”고 평했다.

허련은 임금 앞에 나아가 그림을 그려 바치는 화가의 최고 영예도 얻었다.

헌종은 관직이 없는 허련을 무과 시험에 합격시켜 관복을 입힌 뒤 그림을 그리게 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이때 허련이 헌종에게 바친 그림이 ‘설경산수도’다.

1856년 추사가 세상을 떠나자, 허련은 고향으로 돌아와 운림산방을 짓는다. 당시는 운림각이라는 초가였다.

앞마당에 연못을 파고 한가운데 섬을 만들어 배롱나무 한 그루를 심었고, 연못 주변에 정원을 꾸몄다.

배롱나무꽃이 피는 한여름이면 운림산방이 더욱 화사하다. 허련은 이곳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시를 짓고 그림을 그렸다.

운림산방은 허련이 죽고 아들 허형이 진도를 떠나면서 매각됐다가, 허형의 맏아들 허윤대가 다시 사들였고,

넷째 아들 허건이 복원해 지금에 이른다. 운림산방에 들어서면 커다란 소나무 너머로 운치 있는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첨찰산 봉우리를 배경으로 운림산방의 화실과 배롱나무를 품은 연못이 그림 같다.

화실은 기와집, 고택은 초가집 두 채로 복원했으며, 화실과 고택 사이로 출입문을 냈다.

고택을 가로지르면 허련의 영정을 모신 운림사, 문중 제각인 사천사가 있다.

소치1·2관은 허련 일가의 작품을 만나는 공간이다.

소치1관은 허련의 작품 40여 점을 전시한다.

입구에 미술 분야 5대에 걸친 허련의 가계도가 있다.

소치2관은 허련의 넷째 아들인 미산 허형부터 남농 허건, 임전 허문, 오당 허진 등 5대에 이르는 후손의 작품 100여 점을 전시한다.

소치2관에 마련된 ‘소치 작품 이머시브룸’이 눈에 띈다.

대나무 정원을 배경으로 한 홀로그램, 허련의 작품을 미디어 아트로 연출하고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작품이 변해 유연하고 편안한 미술 감상이 가능하다.

화면 속 꽃을 손으로 만지면 꽃잎이 화사하게 흩날려 감동을 자아낸다.

운림산방 관람 시간은 오전 9시~오후 5시 30분(동절기 오후 4시 30분 / 연중무휴), 관람료는 어른 20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800원이다.

쌍계사는 운림산방과 이웃한 절집이다.

쌍계사와 함께 첨찰산 기슭에 있는 진도 쌍계사 상록수림(천연기념물)도 만나보자.

운림산방의 배경이 되는 첨찰산은 정상 인근에 진도기상대가 있어 차로 오를 수 있다.

운림산방로를 따라 향동리 방면으로 가다 보면 두무골재에 이르고, 여기서 좌회전하면 진도기상대까지 이어지는 임도가 나온다.

진도기상대 주차장에서는 해남과 진도 사이의 바다, 해남 두륜산과 달마산의 멋진 풍경이 보인다.

진도타워는 망금산 정상에 세운 높이 60m 전망대다.

7층 전망대에서는 쌍둥이 진도대교와 명량해전의 격전지 울돌목, 우수영국민관광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진도타워 아래 있는 명량해상케이블카를 이용하면 진도와 해남의 원스톱 여행이 가능하다.

진도타워와 명량마루, 해남의 우수영국민관광지에 자리한 울돌목스카이워크와 명량대첩해전사기념전시관까지 한 번에 둘러볼 수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털 캐빈을 타면 투명한 바닥으로 울돌목의 거친 회오리가 보인다.

명량해상케이블카 홈페이지에 울돌목 회오리 시간표가 있으니 참조하자.

진도개테마파크는 진도 삼보 중 하나인 진도개(천연기념물)를 만나는 공간이다.

개인기와 어질리티 등을 선보이는 공연으로, 진도개의 우수성을 확인할 수 있다.

덧셈과 뺄셈을 해서 나온 수만큼 짖는 묘기는 놀라울 따름이다.

진도개 공연은 평일 오전 10시, 오후 3시(주말 오후 1시)에 열린다.

진도는 고려 시대 삼별초가 선택한 섬이다. 배중손은 1270년 배 1000척을 거느리고 강화도에서 진도로 근거지를 옮겼다.

벽파진으로 들어온 삼별초는 성을 쌓고 몽골에 맞섰는데, 그곳이 진도 용장성(사적)이다.

용장산 기슭을 따라 계단식으로 성을 쌓고, 성안에 궁궐을 지었다.

하지만 9개월 만인 1271년, 여몽 연합군의 공격으로 진도 삼별초는 무너지고 제주도로 후퇴해야 했다.

용장성 입구에는 용장성홍보관과 고려항몽충혼탑이 들어섰고, 우물과 성벽, 궁궐터와 용장사 터 등이 남아 있다.

해미읍성의 어제와 오늘을 잇는 해미읍성역사보존회

해미읍성의 어제와 오늘을 잇는 해미읍성역사보존회

해미읍성의 어제와 오늘을 잇는 해미읍성역사보존회

남종화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빚다 진도 운림산방

역동적인 어제와 평화로운 오늘을 품은 해미읍성

서산 해미읍성(사적 제116호)은 시공간을 넘나드는 오묘한 마력을 지녔다.

조선시대에 축조된 성 안팎으로 확연히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성 밖은 상가가 밀집해 번화한 21세기의 풍경인 반면 성 안은 드넓은 잔디밭에 드문드문 전통 건축물이 선 15세기 조선 읍성의 풍경이다.

성문을 통과하는 것은 현대와 과거를 넘나드는 것이 된다.

그렇다고 성은 안과 밖을 단절시키지는 않는다.

옛 것을 품고 오늘의 것을 받아들여 서로 조화를 이룬다.

해미읍성이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절묘하게 간직할 수 있었던 데에는 성 밖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해미 사람들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성 안의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해미읍성역사보존회를 설립하고 해미읍성 보존과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주막, 찻집 같은 전통 공간과 국궁, 연날리기 등의 전통 체험을 통해 읍성 내 즐길 거리를 다변화했다.

그리고 2018년 관광두레 주민사업체로 선정되면서 한 단계 변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관광이라는 측면에 맞춰 콘텐츠를 정비하고 일부 시설을 개보수했다.

해미읍성역사보존회는 관광두레 기본 사업 기간 3년을 마친 후 종합평가에서 육성 가치를 인정받아 2년간 추가 지원을 받게 됐다.

해미읍성은 순천의 낙안읍성, 고창의 고창읍성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읍성으로 꼽힌다.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조선 성종 22년(1491)에 축조되었다.

축조 후에는 병마절도사가 배치돼 200년 넘게 일대의 군사권을 행사했다.

성의 높이는 약 5m, 둘레가 1,800m이고 성 안의 면적은 약 19만 6,400㎡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크다.

읍성 안에 들어서면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마치 평화로운 공원 느낌이다.

조선시대에는 너른 터에 동헌, 객사 등 여러 건물이 빼곡하게 자리했었다.

근대에는 해미초등학교, 우체국, 민가 등이 들어서 있었다. 1970년대 들어 읍성 복원 사업을 실시하면서 민가 등을 모두 철거했다.

주막부터 연날리기, 국궁, 캠핑까지~, 해미읍성을 즐기는 다양한 방법

현재 읍성 안에는 동헌, 객사, 내아, 옥사, 민속 가옥 정도가 복원·재현되어 있다.

주 출입문인 진남문으로 입장하면 맞은편에는 동헌이, 오른쪽으로는 옥사와 민속 가옥이, 왼쪽으로는 잔디 마당이 펼쳐진다.

잔디 마당에는 해미읍성역사보존회에서 운영하는 전통 주막, 카페, 기념품점, 연 판매소가 자리한다.

읍성 안 주막에서는 부침개, 도토리묵 등 요깃거리를 판매한다.

지역 양조장에서 가져오는 막걸리도 있다.

예스럽고 고즈넉한 풍경 덕에 음식 맛이 배가된다.

주막 옆 카페에서는 ‘교황님이 드신 키스링 마늘빵’을 맛볼 수 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해미읍성을 방문했을 때 교황 간식 식탁에 오른 빵이다.

서산6쪽마늘로 만들어 지역 특색도 담았다. 마늘빵을 먹다 궁금해질지도 모른다.

‘왜 교황이 해미읍성을 방문했지?’ 그 해답은 카페에서 대각선상에 보이는 회화나무와 옥사에 담겨 있다.

천주교 박해 당시 지역의 수많은 천주교도를 해미읍성 옥사에 가두고 그 앞의 회화나무에 매달아 고문하거나 처형했다.

천주교 성지로서 해미읍성의 역사적 가치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해미읍성역사보존회는 멘토링을 통해 ‘교황 빵’이라고도 불리는 마늘빵을 활용한 다채로운 메뉴와 함께 오란다 등 전통 주전부리 상품을 개발 중이다.

다양한 전통 체험도 진행한다. 연날리기와 국궁이 대표적이다.

해미읍성은 넓은 대지에 이렇다 할 장애물이 없고 바람도 잘 부는 편이라 연날리기 좋은 장소로 입소문이 자자하다.

연 판매소에는 다양한 가격대와 종류의 연이 가득하다.

기본적인 가오리연부터 강아지, 곰돌이, 박쥐, 갈매기, 독수리 등 연의 생김새와 크기가 각양각색이다.

요청하면 연 날리는 기본 방법도 알려준다. 초보자여도 상관없다.

읍성 안의 적당한 바람이 알아서 연을 하늘로 올려준다. 하늘 위를 알록달록 장식한 연들은 해미읍성의 풍경이 된다.

국궁 체험도 흥미롭다. 군사적 역할을 했던 해미읍성의 역사와도 맞아떨어지는 체험이다.

안내자로부터 활 쏘는 방법을 간단히 배운 후 실전에 임한다.

처음엔 화살이 뜻대로 날아가지 않아 당혹스러울 수도 있지만 차츰 익숙해지며 재미를 느끼게 된다.

활 크기와 과녁판 거리가 다양해 남녀노소 누구나 체험 가능하다.

기념품점 구경도 놓치지 말자. 지역 작가들이 만든 제품과 농산물을 판매하는데 서산의 또

다른 관광두레 주민사업체인 상점195협동조합에서 제작한 기념품이 눈길을 끈다.

해미읍성을 테마로 한 핸드폰케이스, 그립톡, 마스킹테이프, 마그넷, 에코백 등 품목이 다양하다.

해미읍성 방문 기념으로 하나쯤 챙겨오고 싶어진다.

남종화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빚다 진도 운림산방

남종화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빚다 진도 운림산방

남종화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빚다 진도 운림산방

동양 최대의 백련 자생지 무안 회산백련지

흔히 진도를 삼보(진도개, 구기자, 돌미역)와 삼락(민요, 서화, 홍주)의 고장이라 한다.

삼락은 진도를 예향으로 일컫는 상징성이 있다.

진도 삼락 가운데 서화를 대표하는 곳이 첨찰산 아래 들어앉은 운림산방(명승)이다.

‘남종화의 대가’라 불리는 소치 허련이 말년에 낙향해서 지은 화실로, ‘첩첩산중에 아침저녁으로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 숲을 이룬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허련은 1808년 진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주가 많았지만, 다소 늦은 나이에 본격적인 그림 수업을 시작한다.

화가 허련의 삶에 두 인물이 등장한다. 다성이라 불리는 초의선사와 추사체를 완성한 김정희다.

허련은 28세 때 해남 대흥사에 머물던 초의선사를 찾아가 그림을 배웠고, 녹우당에서 공재 윤두서의 화첩을 감상한 뒤 며칠

동안 먹고 자는 것도 잊을 만큼 그의 그림을 모사하는 데 힘썼다.

초의선사가 허련의 작품을 추사에게 보였고, 추사는 한양 자신의 집에서 허련에게 그림 그리는 법을 가르치고 주변 화가들과 교류를 주선했다.

추사는 “압록강 동쪽에서 소치보다 나은 사람이 없다” “소치가 나보다 낫다”고 평했다.

허련은 임금 앞에 나아가 그림을 그려 바치는 화가의 최고 영예도 얻었다.

헌종은 관직이 없는 허련을 무과 시험에 합격시켜 관복을 입힌 뒤 그림을 그리게 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이때 허련이 헌종에게 바친 그림이 ‘설경산수도’다.

1856년 추사가 세상을 떠나자, 허련은 고향으로 돌아와 운림산방을 짓는다.

당시는 운림각이라는 초가였다. 앞마당에 연못을 파고 한가운데 섬을 만들어 배롱나무 한 그루를 심었고, 연못 주변에 정원을 꾸몄다.

배롱나무꽃이 피는 한여름이면 운림산방이 더욱 화사하다.

허련은 이곳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시를 짓고 그림을 그렸다.

운림산방은 허련이 죽고 아들 허형이 진도를 떠나면서 매각됐다가, 허형의 맏아들 허윤대가 다시 사들였고, 넷째 아들 허건이 복원해 지금에 이른다.

운림산방에 들어서면 커다란 소나무 너머로 운치 있는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첨찰산 봉우리를 배경으로 운림산방의 화실과 배롱나무를 품은 연못이 그림 같다.

화실은 기와집, 고택은 초가집 두 채로 복원했으며, 화실과 고택 사이로 출입문을 냈다.

고택을 가로지르면 허련의 영정을 모신 운림사, 문중 제각인 사천사가 있다.

소치1·2관은 허련 일가의 작품을 만나는 공간이다. 소치1관은 허련의 작품 40여 점을 전시한다.

입구에 미술 분야 5대에 걸친 허련의 가계도가 있다.

소치2관은 허련의 넷째 아들인 미산 허형부터 남농 허건, 임전 허문, 오당 허진 등 5대에 이르는 후손의 작품 100여 점을 전시한다.

소치2관에 마련된 ‘소치 작품 이머시브룸’이 눈에 띈다.

대나무 정원을 배경으로 한 홀로그램, 허련의 작품을 미디어 아트로 연출하고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작품이 변해 유연하고 편안한 미술 감상이 가능하다.

화면 속 꽃을 손으로 만지면 꽃잎이 화사하게 흩날려 감동을 자아낸다.

운림산방 관람 시간은 오전 9시~오후 5시 30분(동절기 오후 4시 30분 / 연중무휴), 관람료는 어른 20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800원이다.

쌍계사는 운림산방과 이웃한 절집이다. 쌍계사와 함께 첨찰산 기슭에 있는 진도 쌍계사 상록수림(천연기념물)도 만나보자.

운림산방의 배경이 되는 첨찰산은 정상 인근에 진도기상대가 있어 차로 오를 수 있다.

운림산방로를 따라 향동리 방면으로 가다 보면 두무골재에 이르고, 여기서 좌회전하면 진도기상대까지 이어지는 임도가 나온다.

진도기상대 주차장에서는 해남과 진도 사이의 바다, 해남 두륜산과 달마산의 멋진 풍경이 보인다.

진도타워는 망금산 정상에 세운 높이 60m 전망대다.

7층 전망대에서는 쌍둥이 진도대교와 명량해전의 격전지 울돌목, 우수영국민관광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진도타워 아래 있는 명량해상케이블카를 이용하면 진도와 해남의 원스톱 여행이 가능하다.

진도타워와 명량마루, 해남의 우수영국민관광지에 자리한 울돌목스카이워크와 명량대첩해전사기념전시관까지 한 번에 둘러볼 수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털 캐빈을 타면 투명한 바닥으로 울돌목의 거친 회오리가 보인다.

명량해상케이블카 홈페이지에 울돌목 회오리 시간표가 있으니 참조하자.

동양 최대의 백련 자생지 무안 회산백련지

동양 최대의 백련 자생지 무안 회산백련지

동양 최대의 백련 자생지 무안 회산백련지

강화도로 떠난 그리움과 추억의 DMZ 반나절 여행

흙탕물 속에서 피어나는 순백의 꽃

‘진흙에서 피어나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는다’ 하여 고단한 삶 속에서도 깨끗한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의

상징으로 비유되기도 하는 백련. 전라남도 무안에 위치한 회산백련지는 백련의 동양 최대 자생지다.

법정스님은 회산백련지를 다녀간 뒤 “한여름 더위 속에 회산백련지를 찾아 왕복 이천 리를 다녀왔다.

아! 그만한 가치가 있고도 남았다. 어째서 이런 세계 제일의 연지가 알려지지 않았는지 그 까닭을 알 수 없다.

”라고 수필집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에 감상을 남기기도 했다.

저수지에서 동양 최대 백련 자생지로

무안 회산백련지는 면적이 313.313㎡로, 2001년 기네스북에 오른 동양 최대의 백련 자생지다.

일제강점기 저수지 두 개를 합해 복룡지라는 저수지로 축조해서 농업용수를 공급했으나,

1981년 영산강 하구둑이 완공되면서 저수지 기능을 상실하고 연못이 되었다.

이곳이 백련의 서식지로 번성한 것은 1950년대부터다.

인근 덕애 마을의 주민이 백련 열두 뿌리를 심은 뒤 꿈에서 학 열두 마리가 내려와 앉은 모습을 보았다.

이를 좋은 징조라 여겨 정성껏 가꿔 지금의 연지가 되었고, 1997년 연꽃축제를 시작하면서 백련지로 이름을 바꾸었다.

지금은 수상유리온실, 수생식물생태관, 생태탐방로, 야외물놀이장, 오토캠핑장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어 체험과 휴양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무안 백련의 개회기는 7~9월

백련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하얀 꽃이 피는 건 아니다.

끝이 연한 분홍색이던 꽃잎이 시간이 지나며 점차 하얗게 변하다가 백련이 되는 것이다.

무안백련은 생육기간이 길고 꽃과 잎, 연근이 다른 백련보다 크다. 꽃은 가장 늦게 피며 오래 핀다.

개화기는 7~9월로, 이른 새벽에 피었다가 오후면 봉우리를 닫기 때문에 활짝 핀 연꽃을 보려면 새벽에 찾아야 한다.

꽃이 일시에 피어나는 홍련과는 달리, 백련은 7월부터 연잎이 덮이기 시작하여 3개월 동안 연못을 가득 메우는데,

대부분의 꽃송이가 주먹만 하고 연잎 지름은 1m 안팎이나 된다.

느림의 미학으로 산책할 수 있는 생태탐방로

백련지 주차장은 두 곳으로 수석전시실이 있는 정문 쪽에 하나, 오토캠핑장이 있는 후문 쪽에 하나가 있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바로 주차장이 있고 왼쪽으로 향토음식관 건물이 보이는데 아직 영업을 하지 않는다.

2층에는 연꽃주제영상관과 수석·분청사기 전시관이 있다. 탐방로는 연지를 한 바퀴 도는 둘레길과 연지 사이를 걷는 생태탐방로로 나뉜다.

연꽃 밭 사이로 조성된 탐방로의 양옆으로 허리춤까지 올라오는 연꽃대가 가득 차 있다.

연꽃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미로를 탐험하는 기분마저 든다.

탐방로에는 백련을 비롯하여 수련, 가시연꽃, 어린연꽃 등 30여 종의 연꽃 및 50여 종의 수중식물과 수변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생태학습을 위해 수생식물, 야생화, 재래작물 등을 심어놓은 자연학습장도 있다.

무안백련, 가시연, 어리연, 개연 물질경이 등 희귀 물풀이 자라고 붕어, 잉어, 가물치, 메기 등 토종 물고기가

살고 있어 아름다운 경관과 더불어 생태학습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연못을 가로지르는 280m 길이의 백련교가 있으며,

다리 중간에 높이 1m의 전망대도 세 개 있다. 또한 번뇌를 식히는 108 출렁다리,

수상유리온실, 수생식물생태관이 있다. 수생식물생태관은 스마트 온실체험장으로 재탄생했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환경제어시설 관리와 내·외부 상시 모니터링을 갖춘 491㎡ 규모의 온실체험장이다.

강화도로 떠난 그리움과 추억의 DMZ 반나절 여행

강화도로 떠난 그리움과 추억의 DMZ 반나절 여행

강화도로 떠난 그리움과 추억의 DMZ 반나절 여행

청정 기운을 품은 예천으로 떠나는 여행

나의 강화도 여행은 한 장의 인상적인 사진에서 시작되었다.

자전거 여행을 떠난 친구가 교동도 지석리 망향대에서 찍어 보낸 사진이었다.

북한 땅이 지척에 보이는 사진 한 장은 일상에 묻혀있던 나의 호기심을 발동시켰다.

너비 2.5km의 바다를 사이에 둔 황해도 연백군의 풍광이 망원경 안에 선명하다고 했다.

당장 그 망원경 속의 풍광이 보고 싶었다. 6월의 어느 하루, 실향민의 애환과 레트로가 공존하는

대룡시장부터 파머스마켓, 조양방직 카페 순례까지 완벽한 DMZ 반나절 여행이 시작되었다.

DMZ 평화 자전거길에서 평화와 통일의 꿈을 만나다

교동도에 첫 방문이라면 교동 제비집(웰컴센터)을 방문하는 게 좋다.

제비집 1층은 관광 안내와 자전거 대여(유료) 등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지역 농산물도 살 수 있다.

2층엔 VR 체험과 전시, 전망 공간 등이 마련되어 있다.

나는 본래 계획대로 자전거를 빌려 타고 망향대까지 평화누리 자전거길을 달려보기로 했다.

평화 자전거길의 일주거리는 총 30km다. 자전거길 바닥의 파란 실선을 따라 섬 외곽을 일주하는

자전거길은 갓길이 좁고 농로 구간이 많아서 자전거 통행이 만만치 않다.

자전거길은 원래 농로가 주목적이라 자전거 이용 시 농기계 운행을 주의해야 한다.

교동도 외곽의 대부분은 해안 철책선인데, 바로 옆 오솔길은 자전거로 갈 수 없고 철책선을 배경으로 북한 땅이 보이는 사진을 찍는 것도 금기사항이다.

시간상 아무래도 일주는 무리이고 평화 자전거길 안내도에 나온 마중길과 회주길을 이용해 고구저수지를 지나 망향대로 향했다.

우려했던 대로 망향대까지 가는 자전거길도 쉽지는 않았지만, 잠시 내려 쉴 때마다

두 눈으로 실컷 바라본 철책과 해안선 길은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고 아름다운 길이었다.

교동도 북쪽의 밤머리 산에 위치한 망향대는 황해도 연백군에서 피난 온 실향민들이 제사를 모시기 위한 제단으로 조성한 곳이다.

북쪽을 향해 서 있는 두 대의 망원경과 작은 비석과 제단이 있는 소박한 공간이지만 실향민의 그리움이 진하게 배어있다.

분단 이전 남쪽의 섬, 교동도는 바다 건너 북쪽의 육지, 연백군과 이웃사촌처럼 지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대표 곡창지대였던 연백평야의 농번기엔 교동도 사람들이 배로 건너가 일손을 돕고 곡식을 나눠 먹을 정도였다.

망원경으로 당겨진 북녘의 작은 마을은 이국적인 붉은 지붕과 소박한 마을 풍경이 어우러져 정겹다.

운이 좋으면 망원경으로 북녘 사람들의 움직임을 발견할 만큼 망원경의 성능 또한 우수해서 반가운 마음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대룡시장과 파머스 마켓에서 강화의 삶을 만나다

제비집에 자전거를 반납하고 홀가분하게 대룡시장을 찾았다.

한국전쟁 이전, 교동도 사람들은 배를 타고 연백 장터로 장을 보러 다녔다고 전해진다.

대룡시장은 전쟁 당시 황해도에서 넘어왔던 피란민들이 휴전 때문에 돌아가지 못하고 정착하면서 만들어진 시장이다.

400m 남짓한 골목 시장에는 다방, 약방, 시계방, 신발가게, 떡집, 이발관 등 70년대로 돌아간 것처럼 낡고 오래된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어깨를 부딪치며 골목을 걷다가 금방 튀겨낸 호떡이나 꽈배기를 한 입 베어 물어도 좋고

대룡시장의 핫 플레이스인 교동 다방에서 달걀노른자를 띄운 옛날식 쌍화차를 마시며 70년대 감성에 젖어도 좋다.

청정 기운을 품은 예천으로 떠나는 여행

청정 기운을 품은 예천으로 떠나는 여행

청정 기운을 품은 예천으로 떠나는 여행

산꼭대기에서 소원을 외치다 영양 일월산 해맞이전망대

안도현 시인은 자신의 고향 예천을 ‘이 나라 땅의 눈동자 같은 우물’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만큼 예천은 맑은 물과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진 지역인데요.

최근 김제덕 선수가 도쿄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며 ‘양궁의 고장’으로도 다시 한번 입지를 다진 곳이기도 합니다.

​고즈넉한 자연과 양궁의 열정이 공존하는 도시, 예천으로 떠나볼까요?

예천 비룡산에 있는 장안사는 회룡대를 올라가는 길에 만날 수 있는 1,000년의 역사를 가진 아담한 절입니다.

장안사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에 백성들의 평안을 염원하며 지은 절로 금강산 장안사,

양산 장안사와 함께 전국 3개의 산에 지은 장안사 중 하나입니다.

장안사를 대표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용왕각과 용바위입니다.

예천은 바다와 인접한 지역이 아니지만, 회룡포와 비룡산 등 용을 닮은 지형이 많아 용궁과 용왕을 중요시 모시게 되었습니다.

​용왕신은 우리 조상의 고유 민속 신앙으로,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존재로 여겨져 왔습니다.

국가 명승 회룡포는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이 350도 휘돌아 나가는 육지 속의 섬마을로 빼어난 경치를 가진 예천의 대표 관광지입니다.

최근 큰 화제를 모은 트로트 <회룡포>의 모티브가 된 실제 장소이기도 하며,

하얀 단구, 범람원 등 하천의 침식과 퇴적 현상을 살펴볼 수 있어 학술적 가치 또한 높은 곳입니다.

​회룡포 전망대에서는 하트 모양의 산이 보이는 자리에서 사랑의 자물쇠를 걸며 행복한 추억을 쌓을 수 있습니다.

굽이굽이 몰아치는 회룡포의 기운을 받으며 예천만의 특색 있는 경치를 감상해 보세요!

회룡대에서 감상했던 회룡포 마을로 발걸음을 옮겨볼까요?

회룡포 마을은 회룡포의 대표적인 명물 뿅뿅다리를 통해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뿅뿅다리는 귀여운 이름만큼이나 귀여운 유래가 있는데요.

하천의 물이 불어나면 철 발판 구멍으로 물이 퐁퐁 솟는다고 해서 불린 ‘퐁퐁다리’가 ‘뿅뿅다리’로 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마을에 입장하기 전, 예천 농특산물 홍보 판매장에서 운영하는 교복 대여 서비스를 이용해 보는 건 어떨까요?

‘교복 입고 회룡포 돌아보기’ 체험은 중장년층에는 과거 학창 시절의 향수를, 젊은 층에는 새로운 추억을 남겨줍니다.

​소담한 돌담과 낮은 지붕으로 이루어진 마을을 걷다 보면 어느새 정겨운 시골의 정취에 흠뻑 취하게 됩니다.

예천 삼강문화단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주막인 ‘삼강주막’을 보유하고 있는 체험형 관광단지입니다.

삼강주막은 1900년경 지어진 작은 주막으로 낙동강을 따라 한강을 오르내리던 보부상과 사공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던 곳입니다.

​’삼강’은 낙동강, 내성천, 금천 세 개의 강이 만나는 지점에 있음을 뜻하며,

옛 시대상을 보여주는 역사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경상북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주막 옆에는 ‘들돌’이라고 불리는 커다란 돌이 있는데요. 50㎏ 무게의 이 돌은 일꾼들 힘을 측정하여 품삯을 정하는 도구로 쓰였다고 합니다.

산꼭대기에서 소원을 외치다 영양 일월산 해맞이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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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꼭대기에서 소원을 외치다 영양 일월산 해맞이전망대

알록달록 벽화 보고 물 위를 걸으며 힐링 안동 예끼마을

영양 일월산은 ‘소원을 비는’ 산이다. 경북 일대에서 해와 달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산으로 알려졌다.

‘일월(日月)’이란 명칭도 해와 달의 사연에서 비롯됐다.

해발 1219m 산꼭대기에 해맞이전망대가 있고, 태백산맥 줄기 봉우리 사이로 해가 솟아 고즈넉하게 새해를 맞이하기 좋다.

전망대에 서면 잔설과 마른 나뭇가지, 시린 바람이 곁을 채운다.

굿당과 기도처가 곳곳에 있으며, 무속 신앙을 믿는 영양·봉화 주민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산이기도 하다.

일월산 정상부의 양대 봉우리가 일자봉과 월자봉이다.

그중 전망대가 있는 일자봉이 일월산의 주봉이다.

일자봉에 닿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차량을 이용하면 KBS일월산중계소가 있는 정상 아래까지 단번에 오른다.

윗대티, 선녀탕 등 등산로를 택하면 전망대까지 3~4시간 걸린다.

일월산 표석은 산 정상부에 군부대가 있어 일자봉과 월자봉의 갈림길인 중계소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정표 옆, 돌무더기와 기도의 흔적은 일월산에서 자주 보는 풍경이다.

중계소에서 일자봉까지 9부 능선을 따라 좁은 길이 30여 분 이어진다.

쿵쿵목이를 경유하는 1.5km 등산로가 초행자도 이동하기 편하다.

산길을 걷다 보면 푸른 하늘과 마른 참나무 가지가 쾌청한 풍경을 만든다.

등산로 곳곳에 잔설이 외딴 겨울 산의 단면을 보여준다.

일월산은 경북에서 소백산과 함께 첫눈이 먼저 내리는 곳이다.

겨울 상고대의 풍경이 아름답기로 소문났다.

해맞이전망대에 도착하면 탁 트인 시야에 매료된다.

전망대 앞으로 태백산맥 줄기의 산세가 아득하게 펼쳐진다.

통고산, 검마산, 백암산으로 연결되는 산줄기에 봉우리가 가득 담긴다.

봉화와 울진, 청송 사이에 들어앉은 영양은 산이 80% 이상인 대표적인 산골 고장이다.

일자봉에서 바라본 풍광에도 온통 산이다. 선명한 날은 울진의 동해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계단식으로 꾸민 해맞이전망대는 조망을 위한 여건을 갖췄다.

나무로 채운 바닥은 백패커에게 인기다. 봉우리 사이로 해가 뜨는 순간을 기다리며 전망대에서 하룻밤 묵는 이들도 있다.

전망대 상단에는 새로운 ‘일월산’ 표석이 있다. 표석 뒷면에 영양 출신 이문열 작가의 글귀가 적혔고, 표석 뒤 담장은 군부대와 경계다.

전망대 주변 봉우리는 시간대에 따라 색을 달리한다.

영양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국제밤하늘보호공원으로 등록된 청정 고장이다.

유난히 하늘이 또렷하고 별이 많다. 새벽에 붉은 여명으로 시작된 빛의 조화가 별과 달이 뜰 때까지 이어진다.

해맞이전망대는 일월산 등산로와 바로 연결된다.

윗대티, 선녀탕, 일월산자생화공원, 벌매 등이 주요 코스다. 불향사, 찰당골에서 쿵쿵목이를 경유할 수도 있다.

윗대티에서 출발해 3시간쯤 걸리는 코스가 산행객이 애용하는 등산로다.

일월산 이름의 유래에는 산에 천지라는 연못이 있었고, 그 모양이 해와 달을 닮았다는 설이 있다.

낙동강 상류이자, 영양을 가로지르는 반변천이 일월산에서 발원한다. 산 아래 등산로 끝자락은 영양의 외씨버선길과 이어진다.

일월산은 사연 많은 산이다. 동학의 경전 《동경대전》과 포교 가사집 《용담유사》를 집필했다고 추정하는 곳이며,

최근에는 동학의 2대 교주인 해월 최시형의 은거지가 발견됐다고 해서 화제를 모았다.

황씨 부인의 기구한 설화를 간직한 황씨부인당은 우리나라 무속 신앙의 본거지이자 기도처로 유명하다.

참나물을 비롯한 산나물 맛이 뛰어나 일월산 일대에서 해마다 영양산나물축제도 열린다.

일월산 새벽 산행은 전문가의 동행이 필요하며, KBS일월산중계소까지 오르는 찻길은 결빙에 유의해야 한다.

영양은 일출뿐만 아니라 별 보는 재미가 있는 고장이다. 국제밤하늘보호공원으로 지정된 핵심 지역이 수비면 일대다.

검마산자연휴양림에서 은하수를 감상하기 좋다. 휴양림 숙소 이름도 카시오페아, 베가, 오리온 등 별자리에서 따왔다.

검마산자연휴양림은 국내 휴양림 중 드물게 반려견과 함께 투숙할 수 있는 곳으로, 반려견을 위한 숲놀이터가 조성됐다.

솔숲 산책로가 고요하며, 휴대폰과 QR 코드를 이용한 비대면 숲 해설을 진행한다. 휴양림에서 영양반딧불이천문대가 가깝다.

최근 영양의 명품숲으로 떠오르는 곳이 죽파리 영양자작나무숲이다. 30년 된 높이 20m 자작나무가 30ha에 빼곡하다.

알록달록 벽화 보고 물 위를 걸으며 힐링 안동 예끼마을

알록달록 벽화 보고 물 위를 걸으며 힐링 안동 예끼마을

알록달록 벽화 보고 물 위를 걸으며 힐링 안동 예끼마을

마음은 부자 되는 소박한 산골 여행 남원 월평마을

안동 예끼마을은 1970년대에 안동댐 건설로 수몰된 예안면 주민들이 이주해 정착한 마을이다.

푸른 안동호를 굽어보는 언덕에 18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산다.

빈 건물을 활용한 갤러리와 담벼락의 벽화가 아기자기한 볼거리를 선사하고, 호수를 가로지르는 다리는 운치 있는 산책로다.

식당과 카페, 한옥체험관이 있어 1박 2일 여행 코스로 손색없다.

예끼마을은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에 속한다.

일제강점기에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예안면이 됐다가, 1970년대 안동댐 준공과 함께 도산면에 편입됐다.

당시 400여 가구가 수몰지와 가까운 이곳에 택지를 조성해 이주했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는 예안현, 1895년(고종 32) 이후에는 예안군 관할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예안향교, 예안교회, 예안이발관, 선성공원 등 옛 지명의 흔적이 있다.

선성은 예안의 옛 이름이다.

서부리는 예안의 중심이었지만 세월이 흘러 다른 농촌처럼 쇠락의 길을 걸었다.

그러다 최근 ‘선성현문화단지 조성 사업’과 ‘이야기가 있는 마을 조성 사업’을 벌이며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낡은 담벼락에 벽화가 등장하고, 관공서 건물과 빈집은 갤러리가 됐다.

식당이 들어서고 카페가 문을 열자 외지인의 발길이 잦아졌다.

‘예술의 끼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을 담아 이름도 예끼마을로 지었다.

마을은 아담해서 천천히 걸으며 구경하기 좋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조형물을 지나면 완만한 경사를 따라 집과 골목이 이어지고, 그 끝에 안동호가 펼쳐진다.

이 풍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포인트는 선비촌한식당 2층 전망대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마을을 내려다보는 소녀상이 반겨준다.

선성현아문(宣城縣衙門) 현판이 걸린 솟을대문으로 들어가면 갤러리 근민당과 카페 장부당이 있다.

수몰 전까지 면사무소 서부리 출장소와 그 부속 건물로 쓰던 한옥을 옮겨 개조했다.

대들보와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난 카페 내부는 고즈넉하고 따뜻하다.

맷돌로 갈아서 내려주는 핸드 드립 커피가 대표 메뉴다.

근민당 외에 우체국 건물을 개조한 갤러리 예(藝), 갤러리 끼, 레지던시갤러리도 있다.

방문하기 전에 마을 홈페이지에서 전시 진행 여부와 일정을 꼭 확인하자.

‘2020 예끼마을전국물빛사랑미술대회’ 수상작을 타일처럼 외부에 장식한 갤러리 예는 포토 존으로도 인기다.

골목을 누비며 개성 있는 간판과 조형물을 구경하는 재미를 놓치지 말자.

참주원양조장, 예안이발관, 가구 카페 고이, 맹개술도가, 서부제분소, 안도제유소 등이 눈에 띈다.

요즘 인기를 더해가는 전통주에 관심 있다면 맹개술도가에 들르자.

직접 농사지은 밀로 소주를 빚는 양조장이다.

2019년 국내에서 유일한 밀소주인 ‘안동진맥소주’를 출시했다. 22%, 40%, 53% 소주를 시음하고 구매할 수 있다.

예끼마을은 전체가 포토 존이라 할 만큼 예쁜 벽화와 트릭 아트가 많다.

골목 좌우 벽과 바닥을 활용해 산과 들, 나무, 냇가를 표현한 트릭 아트가 돋보인다.

졸졸 흐르는 냇물 위 외나무다리와 징검다리 사진은 필수다.

2020년 정식으로 개장한 선성현문화단지 입구에서 가깝다.

선성현문화단지는 선성현 관아를 재현한 공간이다.

관아의 대문에 해당하는 아문, 핵심 건물인 동헌, 수령이 생활하던 내아, 죄인을 다스리는 형리가 근무하던 형리청,

외국 사신이나 관리의 숙소로 사용하던 객사 등을 안동호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옛 모습 그대로 세웠다.

쌍벽루도 복원했다. 더 가면 선성산성공원이다.

산 정상을 중심으로 능선에 테를 두르듯 쌓은 산성 주변을 공원으로 꾸몄다.

산성은 7세기 통일신라 때 축성한 것으로 짐작한다.

쌍벽루를 지나 여기까지 오는 이가 드물어 호수를 내려다보며 호젓하게 걷기 적당하다.

마음은 부자 되는 소박한 산골 여행 남원 월평마을

마음은 부자 되는 소박한 산골 여행 남원 월평마을

마음은 부자 되는 소박한 산골 여행 남원 월평마을

초록빛 능수버들 살랑대는 도심 여행

산촌의 새벽은 민박 할머니가 달그락대며 밥 짓는 소리로 시작된다.

장작 쌓인 마당에 서면 능선 위로 여명이 깃들고, 군불 때는 연기와 안개가 뒤섞인 아득한 시간이 찾아든다.

남원 월평마을과 매동마을을 잇는 지리산둘레길은 가을 산골 풍경과 촌부의 삶을 만나는 곳이다.

숲길을 걷다가 감이 주렁주렁 달린 마을 담장을 지나고, 따끈한 민박에 머무는 일이 일상처럼 전개된다.

민박에 머무는 데 4만~6만 원 선(2인 기준), 산나물이 푸짐한 식사가 7000~8000원이다.

‘백만 불짜리’ 풍경과 할머니가 내주는 막걸리, 대추와 사탕 한 줌, 함박웃음이 곁들여진다.

소박한 산골 여행에 마음은 부자가 된다.

월평마을과 매동마을을 잇는 길은 대부분 지리산둘레길 인월-금계 구간(3코스)에 속한다.

길은 남천(람천) 따라 흐르다 논둑과 마을을 만나고, 숲과 고개 넘어 다시 마을과 이어진다.

남원 인월에서 함양 금계까지 전라도와 경상도를 연결하는 이 구간은 지리산둘레길이 시범 개통한 사연 깊은 길이다.

인월면 소재지에서는 제법 큰 오일장이 섰고, 마을 주민은 신작로가 생기기 전만 해도 옛길(현 지리산둘레길)을 걸어 인월장에 오갔다.

월평마을-매동마을 코스는 월평마을에서 출발한다.

서울에서 인월지리산공용터미널까지 시외버스가 다니고, 구인월교를 건너면 바로 월평마을이다.

월평마을 가는 길에 지리산둘레길 남원인월센터가 있고, 독립서점이자 북카페 ‘도보책방’이 문을 열었다.

남원 주천·운봉에서 둘레길 여행을 시작하거나 매동마을에서 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뗐다면 월평마을에 묵을 수 있다.

골목마다 벽화가 볼 만한 월평마을은 ‘달이 뜨면 보이는 언덕’이라는 뜻이고, ‘달오름마을’로도 불린다.

월평마을에서 매동마을까지 느리게 걸어 4시간 남짓 걸린다.

지리산을 병풍 삼은 산골 마을과 숲길, 냇물, 고개가 둘레길에 담긴다.

월평마을 앞 남천과 논둑 따라 시작된 길은 중군마을로 이어진다.

중군마을은 임진왜란 때 전군과 중군, 후군 가운데 중군 부대가 주둔한 곳이다.

담장 너머로 감이 익고, 마늘과 고추를 말리고, 깨를 터는 일상이 펼쳐진다.

중군마을을 지나 본격적으로 숲길이 시작된다.

갈림길에서 경사가 가파른 언덕을 택하면 좁고 고즈넉한 숲길이 그늘을 만든다.

길은 외딴 암자 선화사(옛 황매암)를 거쳐 수성대로 연결된다.

수성대 맑은 물은 중군마을과 장항마을 주민의 식수원으로 쓰인다.

수성대 초입에서 만나는 쉼터는 둘레길의 명물이다.

주인 할머니가 길손에게 부침개와 오미자차, 막걸리 등을 내놓는다.

지리산둘레길 인월-금계 구간 곳곳에 쉼터가 있었는데, 최근에는 3~4곳이 명맥을 유지한다.

찾는 사람이 많은 주말이나 공휴일 위주로 문을 열며, 길손에게 부침개와 오미자차, 막걸리 등을 내놓는다.

배너미재를 넘으면 지리산 자락의 탁 트인 정경과 함께 숨찬 숲길이 마무리된다.

숲길 끝자락에 장항마을 당산 소나무가 듬직하게 서 있다.

마을에서는 지리산을 배경으로 당산제를 지낸다.

수령이 수백 년에 이르는 당산나무 아래 장항마을은 옛 흙담 길이 고즈넉하다.

마을 너머로 바래봉 능선 자락이 내려앉는다.

둘레길과 거리를 유지하며 나란히 흐르던 남천은 만수천을 만나 낙동강까지 흘러든다.

장항마을 장항교를 건너면 나오는 매동마을은 인월-금계 구간 중간 지점의 의미가 짙다.

함양 금계마을까지 오가는 여행자가 매동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마을에는 할머니가 운영하는 민박이 10여 곳 있다.

둘레길 손님이 찾아들기 전, 매동마을 주요 수입원은 고사리를 재배하고 꿀을 따는 것이었다.

민박 할머니가 차려준 아침상에는 뽕나무 새순, 머위, 장녹나물 등 산나물이 푸짐하다.

인근 산자락에서 봄에 딴 나물을 말렸다가 그때그때 들기름에 무쳐 낸다.

직접 재배해 만든 꽈리고추찜, 고들빼기김치도 향긋하다.

막걸리 한 병을 선뜻 건네는 민박도 있다. 함양 마천에서 50년 전에 시집온 이야기, 시어머니 대신 장터에 가서 들뜬 이야기

빛바랜 사진 속에 할머니의 세월이 묻어나고, 얽힌 사연과 미소가 마당을 따사롭게 맴돈다.

하룻밤 묵고 민박을 나설 때, 할머니가 대문 밖까지 배웅하며 사탕 한 줌 쥐여주신다.

알뜰한 걷기 여행을 하는데, 마음은 지리산처럼 든든하고 넉넉해진다.

둘레길 이정표에서 슬쩍 벗어난 곳에 볼거리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매동마을 인근에 퇴수정(전북문화재자료)이 있다.

조선 후기 선비 박치기가 벼슬에서 물러난 뒤 세운 정자로, 누각 가운데 방 한 칸을 들인 구조가 독특하다.

정자 앞으로 바위와 냇물이 아늑하게 어우러진다.

산내면 소재지를 지나 남천 따라 걸으면 남원 실상사(사적)가 평지에 모습을 드러낸다.

통일신라 때 창건한 천년 고찰로 초입의 석장승이 인상적이며, 증각대사탑(보물)과 수철화상탑(보물) 등이 있다.

실상사 경내와 주변 숲에 흩어진 승탑을 둘러보는 승탑순례길도 조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