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맛이 운명을 바꾼 상주의 막걸리 경북 상주 은자골탁배기

물맛이 운명을 바꾼 상주의 막걸리 경북 상주 은자골탁배기

물맛이 운명을 바꾼 상주의 막걸리 경북 상주 은자골탁배기

청주 성안길에서 즐기는 따끈한 맛

경북 상주의 은자골탁배기는 3대째 100여 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탁주다.

우연한 기회에 뛰어난 물맛이 알려지면서 은자골탁배기로 거듭났다. 이름처럼 구수한 100년 전통의 은자골탁배기와 탁주를 빚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오랜 역사를 간직한 상주의 전통 막걸리

죽은 사람도 살리는 영험함을 가진 은자가 묻혀 있다 하여 이름 붙여진 은자골에는 서민들의 삶과 애환이 고스란히 담긴 탁주를 빚는 ‘술 익는 마을’이 있다.

은자골탁배기가 바로 그 곳.

탁배기는 탁주의 경상도 사투리로 가주 또는 농주로 불리며 서민들을 대표하는 술로 자리매김해왔다.

100여 년의 전통을 간직한 은자골탁배기는 탁주를 만드는 사람들의 삶의 애환이 그대로 담겨 있다.

은자골탁배기는 1994년에 작고한 이동영 씨를 시작으로 며느리이자 현 사장인 임주원 씨와 그녀의 아들인 이재희 씨로 3대째 이어지고 있다.

은자골탁배기의 역사는 19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임주원 씨의 시아버지인 고 이동영 씨는 막걸리에 애착이 참 많았다고 한다.

당시 매형이 운영하던 양조장의 막걸리 맛에 반해 고교 시절부터 양조장을 드나들며 틈틈이 제조법을 배우고 21세 때부터 막걸리를 빚기 시작했는데, 맛이 좋아 주변에 입소문이 자자했다고 한다.

결국 매형이 수십 년 동안 운영했던 양조장을 통째로 넘겨받아 본격적으로 술을 빚기 시작한 것이 은척양조장의 시작이다.

막걸리 맛이 좋다 보니 전해지는 에피소드도 많다.

이웃 주민들이 양조장 앞에서 술판을 벌이다가 술에 취하자 리어카를 가져와 실어가기도 하고, 쌀을 가져와 술로 바꿔 가기도 했다 한다.

한국전쟁 때 인민군이 들이닥쳤는데 막걸리 맛을 본 인민군이 양조장의 막걸리를 금세 동내고 술을 더 빚어내라며 행패를 부린 일도 있단다.

고 이동영 씨의 막걸리 사랑도 대단했다. 그에게 막걸리는 곧 밥이고 약이었다. 막걸리가 몸에 좋다며 늘 공복에 한두 잔씩 마셨다.

손자인 이재희 씨도 공복에 한 잔씩 먹은 기억이 난다며, 취해서 잠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양조장의 운명을 바꿔놓은 은자골탁배기의 물맛

1980년대 들어서면서 양조장 운영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소주와 맥주의 판매량이 늘면서 막걸리를 찾는 사람들이 서서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1994년에 시아버지가 작고한 뒤 양조장은 며느리인 임주원 씨가 이어받았다.

은척양조장이 은자골탁배기로 거듭나게 된 것은 경북대 미생물학 교수와의 우연한 만남 덕분이다.

한번은 미생물학 교수가 버섯 농가를 둘러보기 위해 은척면에 왔다가 우연히 임주원 씨 집에 들르게 되었다.

마침 날도 덥고 해서 물을 한잔 권했는데, 물을 마셔본 교수가 “막걸리 만드는 데 가장 적합한 물”이라며 물맛을 극찬했다.

이어 막걸리는 단순한 술이 아니라 우리 고유의 전통 발효음식이라며 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당시 음료나 과일을 내드릴 수도 있었는데, 시원한 물을 먼저 낼 생각을 한 것은 아마도 은자골탁배기를 위한 운명적 선택이 아니었을까?

임주원 씨는 이때부터 막걸리를 다시 보게 됐고, 은척양조장을 다시 일으켜 세울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양조장을 본격적으로 가동하기에 앞서 효모와 막걸리에 대해 공부를 시작했다.

막걸리의 가장 큰 단점은 뒤끝이 좋지 않고 트림을 하면 역한 냄새가 올라오는 것인데, 이를 개선하기 위해 술독에 빠지다시피 2년여를 보낸 끝에 은자골탁배기가 탄생했다.

옛날 방식은 발효 과정에서 독성이 생길 뿐 아니라 제대로 숙성되지 않은 상태로 막걸리를 마셨기 때문에 주로 뱃속에서 발효가 돼 트림이 나고 머리가 아팠던 것.

저온으로 숙성 기간을 늘린 은자골탁배기는 맛도 제법 독특하다. 은자골탁배기와는 몇 해 전 문경의 한 식당에서 첫 대면을 했다.

탁주 특유의 텁텁하고 걸쭉한 맛이 적고, 청량음료처럼 톡 쏘는 느낌이 무척 세련되고 새로운 맛이었다.

막걸리를 마시는 동안이나 마신 후에도 막걸리를 마신 티가 전혀 나지 않아 식당 주인에게 막걸리를 어디서 가져오는지 물었던 기억이 있다.

청주 성안길에서 즐기는 따끈한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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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촌 산골에 얽힌 이야기 방곡도깨비마을

상주집은 2013년에 작고한 1대 주인장 김월임 할머니에 이어 그의 따님이 대를 잇고 있다.

현 주인장도 대전에서 10년 넘게 올갱이국집을 하다가 1971년에 청주로 옮겨와 어머니와 식당을 함께 운영했다.

1대 김월임 할머니는 상주가 고향으로 보은에서 올갱이를 잡아 국을 끓인 게 그 시초였다.

당시 하숙을 쳤는데 선생님이 많았고, 입소문을 타면서 손님이 늘기 시작했다고.

청주에서는 매 2, 7일장이 열렸던 서문시장에 올갱이를 잡아다 팔았고, 올갱이국을 끓이면서 자리를 잡았다.

특히 고속버스터미널이 가까워 장사가 잘 됐다. 상주집은 원래 맞은편 자리에서 운영하다가 건너편으로 옮겨왔다.

지금의 자리는 청주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연 삼양슈퍼마켓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잡아온 올갱이는 먼저 물에 담가 해감한 뒤 끓는 물에 익혀낸다. 국물에 된장을 풀고 부추를 넣어 끓이면 올갱이국이 완성된다.

직접 담근 된장을 쓰는데, 상주집의 올갱이국은 이 된장 맛이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밥도 인상적이다.

올갱이는 성질이 서늘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고 간장과 신장에 작용한다는 내용이 동의보감에 적혀 있다.

단백질, 칼슘, 철분, 비타민A가 풍부하여 숙취 해소와 신경통에 효능이 있고, 시력을 보호하며, 위장 기능과 빈혈 증세 개선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상주집의 메뉴는 올갱이국과 올갱이무침이 전부다.

경주집은 상주집과 바로 이웃해 있다. 오로지 버섯찌개만을 내는 원푸드 음식점이다.

그러다 보니 주문은 “뭘 드시겠습니까?”가 아닌 “몇 인분 드시겠습니까?”다.

경주집은 1973년에 문을 열었다. 버섯찌개 하나만으로 40년이 넘었으니 그 특별한 맛을 믿고 맛볼 만하다.

원래 청주 토박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단골집이었는데, 지금은 외지인도 많이 찾는다.

허름한 식당 안은 식사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사람들로 북적인다.

버섯찌개는 사골육수와 건표고, 소고기로 맛을 낸다. 육수는 한우 등뼈를 푹 고아서 쓴다.

표고버섯은 여러 지역에서 들여오는데, 바다와 인접한 지역보다는 내륙 지역의 표고버섯을 더 선호한다.

오랜 세월 경험에서 나온 비법일 터. 버섯찌개에는 건표고를 사용한다.

표고버섯은 건조 과정을 거치면서 감칠맛과 쫄깃한 식감이 살아난다.

효능면에서도 건표고가 더 낫다고 한다. ‘뼈회춘’이라 불릴 정도로 칼슘 흡수력이 뛰어난 비타민D가 훨씬 많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산 표고버섯은 2013년 ‘세계에서 맛과 건강에 좋은 16가지 슈퍼푸드’ 가운데 하나로 소개되었다.

비타민D가 풍부하고 콜레스테롤을 낮추며 면역력 향상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항종양 물질인 레티난 성분을 함유해 암환자의 생존율을 높인다고 알려져 있다.

표고버섯은 밑동을 잘라내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다. 버섯에서 우러나는 육수가 더욱 진하고 맛있기 때문이다.

건표고는 물에 불려 잘게 찢은 뒤 재래식 간장과 마늘, 생강, 참기름, 설탕 등에 버무려 만 하루 동안 숙성시킨 뒤 사용한다.

표고버섯과 함께 잘게 썰어 넣는 소고기는 한우 암소만을 사용한다.

메뉴판에 적힌, “한우 암소가 아닐 시 1억 원을 배상한다”는 문구에서 자신감이 느껴진다.

한우 사골을 고아낸 육수에 표고버섯과 얇게 썬 한우, 다진 마늘, 대파, 고춧가루 양념장 등이 한 냄비에 담겨 나온다.

냄비뚜껑을 닫고 팔팔 끓이면 표고버섯과 소고기에서 우러나오는 진한 육수에 고춧가루 양념장의 얼큰한 맛이 조화를 이룬다.

대체로 육수에 밥을 말아 먹는데, 밑반찬이 따로 필요가 없을 정도다.

도예촌 산골에 얽힌 이야기 방곡도깨비마을

도예촌 산골에 얽힌 이야기 방곡도깨비마을

도예촌 산골에 얽힌 이야기 방곡도깨비마을

왔노라 보았노라 그리고 올랐노라 울릉도는 섬이자 산이다

오래전 대강면 방곡리는 마을 사람 모두 도자기를 만드는 산촌이었다.

도자기를 팔고 돌아오는 길에 도깨비를 만났다는 어르신들의 옛이야기로 시작되는 흥미로운 방곡리 여행.

전통 기법으로 직접 도자기도 만들어 보고, 저잣거리의 별미, 손두부와 도토리묵도 맛보며 산골 체험에 빠져보자.

방곡도깨비마을은 마을 주민과 청년회가 합심하여 만든 체험 마을로, 2010년 운영을 시작했다.

조성 당시 친숙한 마을 이름을 찾던 주민들은 방곡리 터줏대감 어르신들이 들려준 옛날이야기를 떠올렸다.

도자기 장이 서는 날이면 막걸리 한잔 걸치고 돌아오기 일쑤였는데

그때마다 도깨비를 만나 씨름을 하고 도깨비불에 홀려 산길을 헤매다 정신을 차려보면 허허벌판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땐 그랬지…”라며 시작하는 옛날이야기, 지금도 마을 어르신들에게 직접 들을 수 있는 ‘믿거나 말거나’ 한 경험담이다.

주민들은 마을 이름을 도깨비로 정하고, 어르신들이 도깨비를 만났다는 언덕 가장자리에 도깨비공원과 체험 마을을 조성했다.

도예 마을의 뿌리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이곳의 사철 프로그램은 도예 체험이다.

이 곳 방곡도깨비마을의 체험 프로그램은 방곡도예촌과 별도로 운영되며, 도깨비공원 건너편 체험관에서 진행된다.

도자기에 원하는 그림과 글씨를 새기는 성형 기법을 체험하고, 장작 가마를 보며 전통 도예 기법에 대한 설명을 듣는 시간으로 이어진다.

마을 농작물을 맛볼 수 있는 산골 먹거리 체험도 있다.

장 담그기와 두부 만들기, 김치 담그기, 떡 빚기 등 만들기 체험과 주민들이 정성 들여 만든 산골밥상 맛보기 시간이 있다.

이곳의 특산물인 오미자를 활용한 체험과 계절별 텃밭 체험, 천연 염색, 전통 놀이 등 산촌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체험관 옆으로 산도깨비와 물도깨비라 불리는 펜션 두 동이 있어 가족 단위부터 최대 30명까지 숙박이 가능하다.

숙박비는 각 동에 15만 원, 체험은 1인당 5,000원부터다. 자세한 내용은 예약할 때 별도로 문의하면 된다.

방곡리 일대에는 조선 시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가마터가 여럿있다.

당시 주 품목은 요강과 화분을 비롯한 민간 생활 자기로, 지금도 가마터 부근 흙에서 그 때 사용된 자기 조각이 발견된다.

현대에 이르러 도자기 수요가 줄면서 도예가들이 마을을 떠났다. 한때 단양군의 보조를 받아 도자기축제가 열리기도 했지만, 2005년에 축제가 폐지되었다.

이후 도예가 다섯 명이 방곡도예인협회를 만들고 방곡도예촌을 이끌며 방곡자기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회원들은 번갈아 가며 1년씩 도자기 전시장과 판매장, 체험 실습장을 관리·운영한다.

전시장에서는 도자기의 역사와 방곡 도자기의 특징, 도자기 만드는 과정, 도자기 종류 등을 관람하고, 판매장에서는 회원들이 만든 도자기를 구입할 수 있다.

도예촌 옆에 있는 저작거리는 방곡리의 사랑방이다. ‘저잣거리’가 옳은 표기지만, 옛 사람들의 구어를 그대로 살려 ‘저작거리’로 쓰고 부른다.

이 부근은 예전에 도자기 시장이 열리던 길로, 시장을 이용하는 이들이 지나던 곳이다.

시장에는 주막거리가 있기 마련인데 이 부근도 예외는 아니었다.

도자기 상인들의 쉼터가 되던 옛 주막 자리에 지금도 가게 두 곳이 운영되며 저작거리로 불리고 있다.

가게에서는 생활용품과 짚공예품이 판매된다. 짚으로 엮은 달걀 꾸러미가 인기 상품 중 하나라고.

주인아주머니가 만든 두부와 도토리묵도 맛볼 수 있는데, 가게 앞 평상에 김치 한 접시와 간장을 곁들여 내는 것이 전부다.

처음부터 가게 앞에서 상을 펼친 것은 아니다. 마을 주민이 모여 막걸리 한두 잔 나누던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왔노라 보았노라 그리고 올랐노라 울릉도는 섬이자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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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근대건축기행 백제 역사에 가려진 근대 문화

신생기 화산작용으로 태어나기도 했고 그 증거로 용암이 분출한 성인봉이 자리 잡고 있다. 한라산을 품은 제주와 닮았다.

천천히 식어 보드라운 곡선미를 자랑하는 제주 역시 화산분출로 태어나지 않았던가. 다만, 제주도가 부드러운 느낌이 강하다면 울릉도는 투박하고 젊다. 힘이 넘친다.

덧붙이자면 야성적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그의 속살에 발을 디뎠다 ‘쥬라기 공원’을 떠올리는 이들이 있을까.

한반도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동해바다에 자리 잡은 울릉도는 깊은 바다와 먼 거리를 방패삼아 그 신비함을 오래도록 (공식적으로) 지켜왔다.

망망대해 한 켠 경상북도의 0.4%에 달하는 72.89㎢ 면적을 차지한 울릉도 최고봉에 오르면 과연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어떤 풍경과 만날까.

성인봉을 오르는 가장 무난한 코스를 묻자 대부분 KBS중계소~성인봉~나리분지를 추천했다. 도동항에서 KBS중계소로 향한다. 택시를 이용하면 1만원 정도 든다.

원점회귀가 아니라 나리분지로 내려갈 계획이기 때문에 픽업해줄 일행이 따로 없다면 자가차량은 오히려 번거로울 수 있다.

성인봉 탐방로 안내도와 함께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된다. 안내도에서 보다시피 KBS중계소 코스는 대원사 코스와 안평전 코스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세 길 모두 성인봉에 닿기 전 만난다. 짧은 임도는 곧 흙길로 변신한다.

저 아래 산봉우리 사이 도동항과 촘촘하게 채워진 울릉읍이 내려다 보인다. 급히 오느라 인사를 못했다면 지금 하자.

섬벚나무 등 쭉쭉 뻗은 키 큰 나무들이 빛 샐 틈 없이 에워싼 지금, 울릉 섬 야생 트레킹을 시작한다.

영락없는 산길. 제법 오르막이다. 생긴 건 참 예쁜 ‘작살나무’의 이름 때문에 한번 웃는다.

성인봉까지는 3.8km. 성질 급하게 떨어진 낙엽과 곰솔나무, 그리고 붉게 물든 울릉도의 속살이 인사한다. 앗, 우산고로쇠다.

앞에 ‘우산’ 이 붙은 건 이곳 우산국에서만 난다는 뜻이다. 우산국 산(産) 고로쇠는 지리산 것만큼 달큰한 맛으로 유명하다.

목조 구름다리는 출렁다리로 이어진다.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한 등산객에게 “어디로 올라왔느냐”고 묻자 “대원사 코스로 왔다”고 한다.

길이 너무 가팔라 고생했단다. 바다를 뒤에 두고 펼쳐진 말잔등 측면을 장식한 노랗고 붉은 가을 물결에 한 숨 돌리며 쉬어가자.

고사리 밀림을 뚫고 길을 오른다. 성인봉에 오르다 보면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하나는 섬인데도 불구하고 물이 흔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화장실이 없다는 점이다. 성인봉을 지나 나리분지로 향하는 길, 신령수쯤 가야 화장실이 있다. 팔각정이 나오면 잠시 쉬어가자.

성인봉까지 된비알은 계속 된다. 결코 길지 않은 팔각정에서 성인봉까지 한번 쉼터가 있는 것도 그 때문 아닐까.

중간 중간 자리한 나무 계단이 걸음을 돕는다.

울릉군의 진산이기도 한 성인봉(聖人峰)은 ‘산의 모양새가 성스럽게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울릉도 최고봉임에도 신령수 근처에 와야만 그 모습이 보여 신비로움을 더한다. 이런 저런 이유는 모두 차치하더라도 울릉도 최고봉에서 바라다보는 풍경은, 아름답다.

한반도에 서 뚝 떨어진 섬. 깊은 바닷속을 뚫고 기어코 뭍이 되어버린 이 섬의 말잔등에 붉은 가을이 물들기 시작한다.

화살표를 따라 전망대로 내려서면 송곳봉과 알봉분지가 수줍은 듯이 속살을 드러낸다.

뾰족하게 솟은 산줄기를 병풍처럼 세워둔 가운데 평지가 바로 울릉도 유일의 평지, 나리분지다.

울릉도를 이야기할 때 ‘성인봉’이나 ‘독도’만큼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나리분지’다.

화산이 폭발하면서 태어난 섬, 그것도 힘이 넘치는 종상화산인 울릉도는 사방이 힘껏 솟은 기암들로 둘러싸여 있다.

울릉도의 유일한 평지이자 평야인 나리분지는 분화구(칼데라) 속에 자리하고 있다.

면적은 200만㎡(약 60만평). 울릉도가 생겨날 당시 분화구 안에 화산재가 쌓이며 만들어졌다.

알봉은 나리분지에서 발생한 화산폭발로 태어났다.

공주 근대건축기행 백제 역사에 가려진 근대 문화

공주 근대건축기행 백제 역사에 가려진 근대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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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치유의 도시 제천 관광두레 마을로 떠나는 체험여행

사람의 선입견은 참으로 무섭다. 한 가지 일이나 사물에 고정적인 시각을 갖게 되면 다른 방면으로는 잘 생각하지 않으니 말이다.

공주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백제의 수도로 잘 알려진 탓에 무령왕릉, 공산성 등 백제 유적만 떠올릴 뿐 다른 시대의 유적은 생각하지 않는다.

공주에는 삼국시대 이전의 선사문화 유적에서 고려, 조선에 이어 근대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별 유물과 유적이 남아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들 유적에 관심을 주지 않으니, 어쩌면 백제 역사의 피해자들이 아닐까.

공주 근대건축기행의 출발점은 선화당이다. 국립공주박물관에서 우측으로 국궁장이 보이고, 그 맞은편에 선화당이 있다.

선화(宣化)는 ‘왕의 덕을 드러내어 널리 펼치고 백성을 교화한다’는 뜻이다. 너른 잔디밭이 인상적인 선화당은 충청도 관찰사가 정무를 보던 곳이다.

오늘날로 치면 대전광역시와 충청도를 아우르는 도청인 셈이다.

조선시대 충청감영은 영호남과 어깨를 견주는 호서 지역의 지방 거점이었다.

창건 당시에는 정면 9칸, 측면 5칸이었는데 현재는 정면 8칸, 측면 4칸으로 규모가 축소되었다.

1937년 옛 국립공주박물관의 진열관으로 사용되다가 1992년 박물관이 이전하면서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정면으로 보이는 2층 누각은 선화당의 정문인 포정사다.

아래층은 큰 문을 달아 출입구로 사용하고, 위층은 누각으로 사용했다.

일제강점기까지 공주사대부고 정문으로 사용되었다.

누각에 오르면 소나무 정원과 선화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선화당과 포정사 사이에 길게 늘어선 건물은 동헌이다.

관찰사가 행정 업무를 보고 재판을 하던 장소이다. 멋을 내지 않은 단아함이 양옆 소나무 정원과 어우러져 멋스럽다.

두 번째 코스인 옛 공주읍사무소는 붉은 벽돌이 인상적이다.

성냥갑처럼 네모반듯해서 한눈에 보기에도 근대 건축물임을 알 수 있다.

이 건물은 공주가 지방 행정의 중심에서 교육도시로 전환되는 과정에 행정을 담당했던 곳이다. 공주의 가장 큰 변화를 보여주는 공간인 셈이다.

1920년 충남금융조합 연합회 회관으로 건립된 이래 1930~1985년까지 공주읍사무소, 공주가 시로 승격되면서 시청사로 사용되었다.

현재 내부 공사 중이라 주변이 어수선한 게 흠이나 정면에 보이는 4개의 원형 기둥과 좌우로 원형창을 대칭으로 배열한 것이 인상적이다.

파리의 개선문을 연상시키는 아치형 입구는 전형적인 고전주의 건축 기법이라고 한다.

건물 뒤편으로 시민의 쉼터가 조성되어 공사가 마무리되면 훌륭한 역사 교육장이 될 것 같다.

옛 공주읍사무소에서 뒤편 봉황동으로 10분 남짓 걸으면 고딕 양식의 공주제일교회를 만날 수 있다.

현대식 건물 사이에 끼어 있어 그리 오래돼 보이지 않지만 1930년에 붉은 벽돌로 지은 남부 지방 최초의 감리교회다.

6·25전쟁 때 많이 파손됐는데 벽, 굴뚝 등 그대로 보존할 수 있는 것을 남기고 보수해서 구석구석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다.

건물 벽면에 개축 연도가 표시되어 있다. 첨탑 아래 ‘예배당’이라 조각된 글씨가 낯설면서도 정감이 간다.

공주제일교회 내부는 박물관으로 꾸며놓았다. 1층은 ‘나눔의 순례길’로 공주제일교회 신도들의 사진과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2층 ‘복음의 역사길’은 교회 설립 후 민족과 사회에 대한 공헌과 업적을 되돌아볼 수 있는 사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발길을 국고개 제일 높은 곳으로 돌리면 고딕식 종탑을 갖춘 중동성당이 나온다. 공주에 천주교를 전파한 이는 1898년 프랑스 선교사 진 베드로 신부다.

성당 건물은 1921년 주임으로 부임한 최종철 마르코 신부가 서울의 약현성당을 모델로 직접 설계해서 1936년에 완공했다.

성당과 사제관, 수녀원 등을 갖추고 이듬해 5월 12일 축성식을 가졌으나 현재는 본당과 사제관만 남아 있다.

자연 치유의 도시 제천 관광두레 마을로 떠나는 체험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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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미리벌민속박물관 할머니가 사용하던 생활용구가 한자리에

‘관광두레’는 지역주민이 주인이 되어 자발적으로 관광 사업을 운영하여 일자리와 수익을 창출하는 새로운 형태의 주민 주도형 관광경영 공동체 사업이다. 2013년 경기도 양평

강원도 양구, 충북 제천, 경북 청송, 전북 부안 등 5개 지역이 시범 두레 사업에 선정되어 문화 관광체육부의 지원을 받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 다섯 개 중 지역의 특색을 잘 살려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충북 제천의 ‘관광 두레마을’을 찾아가 본다.

제천 관광두레마을 여행코스는 3개의 두레마을 사업과 인근에 위치한 관광명소를 엮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천의 숨은 보물, 교동 민화 마을과 공전 마을을 관광지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자작문화예술협동조합’이 나섰다.

‘민화마을’ 내 ‘민화연구소’에서는 민화를 테마로 한 다양한 벽화와 체험, 기념품을 개발했다.

옛 폐교였던 ‘공전학교’에서는 가족 건강을 책임지는 다채로운 효소체험과 효소 밥상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은 이용되지 않는 ‘공전역사’는 ‘우드트레인’ 목각공예 체험장으로 재탄생하여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교동민화마을’이 위치한 교동은 우리나라의 산업화 시기인 196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들어선 도농복합지구 형태의 거주지였으나 최근 들어

빈 가옥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이를 바라본 지역의 문화, 예술인들이 2009년부터 담장에 민화를 그리기 시작하면서부터 민화 마을로 탈바꿈 하게 된다.

대부분 단층으로 지어진 가옥의 벽에는 호랑이, 사슴 등 민화 속의 동물은 물론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이 교동 일대의 담장을 장식하기 시작하여 지금은 100여 점이 넘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교동민화마을’의 벽화는 다른 지역의 벽화와는 다른 점이 하나 있는데, 벽화의 주제가 ‘어변성룡(魚變成龍)’이라는 점이다.

‘물고기가 용으로 변한다’는 뜻을 가진 이 말은 합격이나 출세를 상징하니 자녀를 둔 부모들이 찾기 안성맞춤인 지역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교동민화마을’의 출발지 역할을 하는 ‘지은순민화연구소’는 민화 그리기, 민화를 활용한 “어변성룡” 복주머니 만들기, 민화 부채 만들기 등

각종 체험 행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밖에 민화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며

전통 물감을 활용한 민화 그리기는 어린이나 어른 모두에게 재미난 추억거리를 선사한다.

‘교동민화마을’에는 ‘교동향교’가 있다. ‘교동향교’는 고려 마지막 왕인 공양왕 1년에 세워진 것으로

지방유형문화재 105호로 지정되었으며 문화 체육관 광부에서 지정한 시범 향교이기도 하다.

‘자작문화예술 협동조합’은 제천지역의 예술인 15명이 힘을 합쳐서 만든 일종의 두레이다.

문학, 사진, 도자기, 목공예, 미술 등 서로 다른 전공을 살리고 부족한 것은 협력하여 문화, 관광, 체험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립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폐교인 ‘공전초등학교’와 폐역인 ‘공전역’을 새롭게 단장하여 효소를 중심으로 한 ‘공전자연학교’와 편백나무로 목공예를 체험하는 ‘우드트레인’을 운영하고 있다.

‘공전자연학교’는 오미자, 오가피 과일 매실, 약초 등 갖가지 효소체험과 효소를 반찬으로 한 효소 자연밥상으로 유명하다.

밀양 미리벌민속박물관 할머니가 사용하던 생활용구가 한자리에

밀양 미리벌민속박물관 할머니가 사용하던 생활용구가 한자리에

밀양 미리벌민속박물관 할머니가 사용하던 생활용구가 한자리에

내면 깊은 곳에서 위안과 감동 받으며 걸은 영혼의 숲길

장, 농, 반닫이, 문갑, 탁자… 소박하고 검소한 전통가구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탁자 앞에 앉아 사서삼경을 읽던 선비, 장과 농에 소중한 물건을 보관하던 여인은 세월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고 사라져갔다.

그네들의 온기가 스며든 전통가구만 제 모습 그대로다. 전통 민속품 수집을 취미가 아닌 숙명이자 의무로 생각한 사람의 노력 덕분이다.

밀양 미리벌민속박물관 성재정 관장은 귀중한 전통 민속품이 사라져가는 것이 못내 아쉬워 1970년대부터 하나둘 수집하기 시작했다.

전국을 돌며 수집하고 또 수집하기를 30여 년. 선조들의 삶을 혼자 보는 것이 안타까워 미리벌민속박물관을 열었다.

그의 고집스런 노력으로 우리는 조선시대 고관대작부터 평민들이 사용하던 사랑방과 안방, 주방가구를 비롯해 각종 생활용품을 통해 조상의 숨결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미리벌민속박물관으로 가는 길, 시내에 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초동면 범평리의 조용한 시골에 자리하고 있었다. 건물도 화려하지 않다.

폐교된 범평초등학교를 박물관으로 활용해 길가의 ‘미리벌민속박물관’ 안내판이 없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박물관 건물로 들어간다. 특이하게 입구에 매표소가 없다.

무료는 아니고 관람을 마치고 나갈 때 지불하는 방식이다. 전시공간은 교실 5개로 꾸몄다.

사랑방 가구, 안방 가구, 부엌가구와 생활소품, 초등학교 사회 교과과정에 나오는 민속품, 평상 전시실 등으로 구분했다.

제1전시실의 주제는 사랑방 가구다. 사랑방은 남자들의 공간이다.

선비가 글을 읽기도 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방이다. 그러다 보니 가구들이 단순하고 간결하다.

전시물은 사랑방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반닫이다. ‘닫이’란 문짝을 의미한다. 반닫이는 문이 반만 닫힌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주로 책이나 문서, 옷 등을 보관했다. 장식은 적지만 나뭇결을 살려 가구 자체의 아름다움이 빼어나다.

만석꾼이 엽전을 보관하던 돈궤도 눈에 띈다. 하늘이 내린다는 부자가 사용하던 금고니 한눈에 보기에도 두꺼운 나무판자에 시우쇠를 달아 튼튼해 보인다.

돈궤는 문을 위로 연다고 해서 윗닫이, 문을 들어서 연다고 해서 들닫이라 부르기도 한다.

제2전시실은 여성의 공간에서 사용되던 장과 농이 주를 이룬다.

박쥐와 나비 문양 경첩으로 한껏 멋을 낸 가구들은 얼핏 봐서는 어느 것이 장이고, 어느 것이 농인지 구별하기 쉽지 않다.

요즘에는 옷가지를 넣어두는 가구를 장롱이라 부르지만, 예전에는 장과 농이 구별되었다고 한다.

장은 층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구성되고, 농은 각 층이 분리되는 형태다.

장과 농은 생김새가 비슷하나, 사용자의 신분과 경제력은 차이가 난다. 장은 양반가의 대표적인 혼수품이었다.

제작비가 많이 들고 공간의 제약도 받아서 일반 서민은 사용하지 못했다. 서민들은 고리짝이나 값싼 농을 주로 썼다.

농은 경제력이나 가족의 수에 따라 크기와 모양새가 결정되었다.

아래층에는 철 지난 옷을 보관하고, 위층에는 평상시 입는 옷이나 자주 사용하는 물건을 넣어 사용했다.

내면 깊은 곳에서 위안과 감동 받으며 걸은 영혼의 숲길

내면 깊은 곳에서 위안과 감동 받으며 걸은 영혼의 숲길

내면 깊은 곳에서 위안과 감동 받으며 걸은 영혼의 숲길

생명의 땅 여수 순천 무르익은 봄날을 즐겨요

무려 40여 년 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소나무 숲.

원시림으로 보호된 이 비밀의 숲이 열린 것은 불과 몇 년 전이다.

그저 상상 속에서만 맴도는 원시 자연의 숲이 바로 울진 금강소나무숲이다. 말로만 듣던 이곳을 탐방하기로 한 날.

‘이제 곧 걷게 될 이 숲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이 숲길에서 무엇을 얻게 될까?’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가 커진다.

아침부터 설레는 마음을 품고 경북 울진으로 떠났다.

서울에서 4시간 여 만에 울진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해 길 건너편 버스정류장에서 소광리행 버스를 탔다.

이 버스의 종점인 금강송펜션 앞이, 바로 금강소나무숲길의 출발점이다.

버스는 어느 새 국도를 벗어나, 계곡을 낀 깊은 산 속 길을 쉼 없이 달린다.

그야말로 첩첩 산중이다. 50분 정도 갔을까? 드디어 종착역인 소광2리 금강송펜션 앞에 내렸다.

이날 묵을 민박집이 바로 앞에 있다. 민박집에 짐을 푼 시간은 오후 4시 30분.

저녁 6시가 되어 민박집 주인아주머니가 차려준 저녁밥을 먹은 후, 방에서 책을 읽다가 잠들었다.

내일 아침 금강소나무숲길을 만날 생각에 가슴은 푸푼 채…

날이 밝고, 드디어 금강소나무숲길을 탐방하는 날! 출발 시간은 아침 9시.

민박집 바로 옆의 출발지에 가니, 숲해설사가 나와 있다.

이날 탐방하는 구간은 소광리 숲길 3구간. 금강소나무숲길 탐방로는 모두 5개 구간이며 현재 1구간과 3구간, 2개 코스가 운영된다.

그런데 탐방객이 나 혼자였다. 평일이고, 마침 태풍과 비 소식 때문에 예약했던 몇 명이 취소해서, 나와 숲해설사 단 둘이 숲길을 걷게 되었다. ‘세상에, 이런 호사가!’

숲해설사에 따르면 이렇게 탐방객 혼자 가는 것은, ‘숲해설가를 동반한 예약탐방제’로 운영된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금강소나무숲길을 탐방하려면 사전에 인터넷 예약이 필수다. 또한 숲과 야생동식물의 보호를 위해 1구간/3구간 각 구간별 80명만 이용할 수 있다.

숲해설가 주영숙 씨를 따라 숲길로 들어선다. 길가에는 이름 모를 꽃들과 식물들이 무성하게 피어있다.

“얘는 좁쌀꽃이에요. 좁쌀처럼 생겼죠?”

“이 나무는 등골나무, 얘는 노루오줌나무에요, 나무에서 노루오줌 냄새가 나요”

이름부터 호기심을 자아내는 꽃과 나무들, 지나가면서 이름들을 알아가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왼쪽으로 한 무더기의 하얀 꽃들이 언덕에 가득 피어있다.

“얘는 굉장히 많이 피어있네요”

“얘는 개망초인데, 얘가 잔뜩 피어 있으면 농사를 망친다고 해서 이름도 곱지 않죠.

또 개망초는 번식력이 강한데 특히 나라가 망할 때도 아랑곳없이 언덕 여기저기에 많이 피어있어 ‘망국초’라고도 해요”

무심코 지나치는 꽃 하나, 나무 하나에도 제각기 이름을 갖게 된 이유와 사연이 담겨있다는 것이 놀랍다.

주영숙 숲해설사는 “그저 이 꽃과 나무, 숲 자체를 있는 그대로 느끼고 즐기라”고 말했다.

생명의 땅 여수 순천 무르익은 봄날을 즐겨요

생명의 땅 여수 순천 무르익은 봄날을 즐겨요

생명의 땅 여수 순천 무르익은 봄날을 즐겨요

익산의 숨은 맛 육회비빔밥과 마요리

살아있는 바다, 숨쉬는 연안 을 주제로 열리는 이번 박람회에서는 바다를 통해 지구 생태계와 사람이 서로 어울려 살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접할 수 있다.

첨단 운송 선박의 개발, 심해저 광물자원 탐사, 심층수 해양자원 개발, 해양오염방제, 해양보안 및 안전시스템 등의 첨단 기술이 그것. 공간 곳곳의 볼거리도 다양하다.

거대한 파이프오르간 형태의 스카이타워, 뉴미디어 버라이어티쇼와 100여 개 참가국가의

문화공연 무대인 빅오(The Big-O), 갯지렁이와 따개비를 닮은 바다 위의 주제관, 다도해를 상징하는 국제관 등이다.

박람회장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거대한 건축 예술을 접할 수 있는 흥미로운 장소이다.

대한민국 생태수도 순천의 봄은 풍요롭다.

너른 갯벌은 늘 그래왔듯 수많은 생명을 품에 안아 키우고, 지난 가을 황금빛 감동을 전해주던 갈대군락이 사라진 자리엔 앙증맞은 새순들이 파랗게 고개를 내밀었다.

그뿐이 아니다. 천년 고찰 ‘선암사’ 뒷마당에는 곱게 단장한 개나리와 벚꽃과 매화가 상춘객을 맞이하고

전국적인 규모의 5일장인 ‘아랫장’이 서는 날이면 대로변까지 빈틈없이 들어선 좌판과, 그 사이로 흐르는 인파가 일대 장관을 이룬다.

1박 2일 여수~순천 여행의 순천 코스는 생태관광의 메카인 순천만에서 시작한다.

남해 쪽으로 돌출한 두 개의 반도, 즉 여수반도와 고흥반도 사이에 위치한 순천만은 우리나라 제일의 갈대군락지이자 세계 5대 연안습지의 하나다.

2006년에는 그 보존가치를 인정받아 국제습지조약인 람사르협약에 등록되기도 했다.

순천 시내를 통과한 동천과 이사천이 몸을 합쳐 바다로 흘러드는 S자 수로, 그리고 수로 주위로 드넓게 펼쳐진 갈대밭은 순천의 상징이요 자랑이다.

순천만은 세 가지 방법으로 탐방할 수 있다.

먼저 대대포구에서 생태체험선을 타고 물길을 따라가며 순천만이 품고 있는 다양한 생명들을 만나는 방법이다.

갯벌에는 짱뚱어, 달랑게, 농게, 칠게, 갯지렁이를 비롯해 다양한 염생식물들이 서식한다.

체험선 두 대가 번갈아 다니는데, 자연환경해설사가 동승하며, 왕복 약 35분이 소요된다.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썰물 때는 배가 뜨지 않으므로 미리 배 시간을 확인하고 가는 것이 좋다.

두 번째는 순천만의 또 다른 명물인 갈대열차를 타는 것이다. 갈대밭 사이를 달려 순천이 낳은 두 명의 문학가

<무진기행>의 김승옥 작가와 <오세암>의 고 정채봉 작가의 예술세계를 엿 볼 수 있는 순천문학관까지 다녀올 수 있다.

세 번째는 순천만 탐방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갈대밭 산책과 용산전망대 일몰 감상이다.

갈대밭 사이로 난 나무 데크를 따라 걷다가 갈대밭이 끝나는 지점부터 1km가량 야트막한 산길을 올라가면 용산의 남쪽 끝 전망대에 닿는다.

순천만을 담은 대표적인 사진들, 이를테면 황홀한 일몰이나 원형 갈대군락지 촬영 포인트가 바로 이곳이다.

선명한 S라인 물길과 갯벌, 둥글게 군락을 이룬 갈대밭의 조화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전망대까지 왕복 1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익산의 숨은 맛 육회비빔밥과 마요리

익산의 숨은 맛 육회비빔밥과 마요리

익산의 숨은 맛 육회비빔밥과 마요리

맑은 국물에 넘쳐 나는 남도의 넉넉한 인심

익산시 황등면 황등시장 인근에는 유난히 맛집이 많다.

황등이란 ‘큰 등성’이라는 뜻으로 예부터 논이 넓고 소가 많았던 이 지역에서는 자연스레 한우비빔밥이 탄생했다.

<서동요>로 유명한 익산은 마 생산지로도 이름이 나 있다. 여느 곳에서는 쉽게 먹을 수 없는 다채로운 마요리도 맛볼 수 있다.

황등시장 인근의 맛집들은 대체로 저렴하면서도 푸근한 상차림을 선보인다.

겉은 허름하지만 속은 꽉 찬 백반집도 여럿 있고 한우비빔밥을 파는 집도 몇 있다.

그중에서도 한일식당은 세련되면서도 깔끔한 맛으로 까다로운 도시인의 입맛도 수월히 만족시키는 맛집이다.

한일식당의 주 메뉴는 황등육회비빔밥과 한우갈비전골. 육회비빔밥을 만드는 과정이 특이하다.

익산의 한우비빔밥은 다른 지역과 달리 비빔밥을 만들 때 스테인리스 대접을 불 위에 올려놓고 달군다.

돌솥이 아니니 아주 뜨겁게 달구지는 않고 따뜻할 정도로 살짝 달궈서 따뜻한 비빔밥을 먹을 수 있도록 한다.

일반적으로 먹는 사람이 비비는 보통의 비빔밥과 달리 밥도 미리 비벼져서 나온다.

주방에서 밥을 비빌 때도 큰 솥을 불 위에 올려놓고 비빈다. 고추장 대신 약간의 양념과 고춧가루를 넣는 것도 이채롭다.

고춧가루를 사용하는 탓에 밥이 눅눅해지지 않고 고슬고슬하면서도 맵거나 짜지 않은 담백한 맛을 낸다. 한일식당은 3대째 그 맛을 이어오고 있다.

같이 나오는 선짓국도 일품이다. 선짓국을 끓일 때 돼지뼈로 국물을 내고 한우 선지를 쓴다.

시원하면서도 고소한 선짓국만으로도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울 수 있을 것 같다. 한우갈비전골도 일품이다.

갈비는 미리 두들겨 손질해놓아 식감이 마치 떡갈비 같다.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반할 만한 맛이다.

육회비빔밥은 인근의 진미식당도 알아준다. 이 집 역시 3대째 같은 자리에서 맛의 비법을 이어오고 있다.

진미식당에서는 한우비빔밥에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섞어 쓰며, 대접을 달구고 밥을 미리 비벼 내는 것은 같다.

제철나물과 야채도 듬뿍 넣는다. 진미식당에서는 직접 만든 순대도 판매한다.

시내 인근에는 마요리 전문점인 본향이 있다. 주인은 서동마 창작요리연구가로 각종 요리경연대회에서 수상한 바 있는 요리 명인이다.

마요리를 코스로 선보이는 본향에서는 상차림에도 스토리텔링을 입혔다.

요리 하나하나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요리마다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는 다음 요리로 이어진다.

마요리 풀코스를 주문하면 전체 이야기를 모두 맛볼 수 있다.

서동의 탄생부터 <서동요>로 이어지는 선화공주와의 사랑, 결혼, 잔치, 무왕 등극, 왕의 수라상 등 마치 무왕길을 걷듯 요리를 통해 이야기가 이어진다.

음식 궁합을 생각한 퓨전 창작요리는 그 모양도 모양이지만 맛도 훌륭하다.

특히 33가지 재료를 넣은 마약밥은 담백한 맛이 입맛을 당긴다. 찐 당귀잎에 싸먹는 마약밥은 맛도 좋고 몸에도 좋은 건강밥이다.

이밖에 마스테이크, 마튀김, 마샐러드, 마산약전골, 마잡채 등도 별미다. 마약주를 곁들여도 좋다.

모두 마를 기본 재료로 해서 제철에 맞는 여러 재료와 궁합을 맞춰 요리한다.

지역적 특성과 재료의 특성을 잘 살렸다. 요리란 헤아릴 ´요(料)´에 다스릴 ´리(理)´ 자를 쓰는데, 땅과 사람의 이치를 잘 헤아리고 다스려 만들어야 한다고.

지역 특산물을 잘 살려 마 코스 요리를 선보이는 본향의 상차림은 맛과 모양이 모두를 만족시킨다. 마밥정식은 평일 1만 원, 주말 1만 5천 원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