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품은 산 왕의 길 을 받들다 경주 함월산 왕의 길

달을 품은 산 왕의 길 을 받들다 경주 함월산 왕의 길

달을 품은 산 왕의 길 을 받들다 경주 함월산 왕의 길

충주호 벚꽃 터널과 수안보 벚꽃길 산책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의 장례 행렬이 이어지던 길, 문무왕의 아들 신문왕이 아버지의 수중릉으로 행차하던 길,

지금은 그 길을 따르는 뭇 후손들이 더위를 식히고 역사를 기억하는 길, ‘왕의 길’에서 두 발로 뚜벅뚜벅 옛길을 더듬는다.

그 자체가 하나의 노천 박물관이라 할 정도로 경주에는 다 헤아리기도 벅찰 만큼 수많은 신라시대 유적과 유물이 있다.

그래서 경주는 갈 때마다 새롭고, 하루 이틀 혹은 며칠간의 여행으로는 도저히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곳이다.

보름달이 뜰 때는 달빛기행을 하고, 별이 밝은 날엔 별빛기행을 하며 밤에도 무궁무진한 고도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그런 경주에 최근 새로운 길 하나가 추가됐다. 추령터널과 기림사를 잇는 왕의 길이다.

함월산 아랫자락을 잇는 편도 3.9km의 걷기 좋은 숲길이다.

깊이 숨겨진 보물같이 아직은 제 모습을 세상에 널리 드러내지 못했지만 그래서 더 고즈넉하고 아늑하다.

경주 시내를 벗어나 감포 방향으로 가다 보면 함월산 자락에 추령터널이 있다.

이 추령터널 옆으로 왕의 길로 가는 진입로가 나 있다.

길은 처음부터 제 모습을 호락호락 보여주지 않는다.

진입로를 따라 2.5km의 시골길을 40~50분은 걸어야 왕의 길 초입인 모차골 입구에 닿는다.

좋은 길도 좋은 사람처럼 처음부터 그 깊은 속내를 훤히 다 드러내지 않는 법. 깊은 숲을 만나기 위해선 약간의 준비가 필요하다.

추령터널에서 모차골까지 가는 길도 숲길은 아니지만 꽤 한적하게 고만고만 걸을 만한 길이다.

걷다 보면 모차골 조금 못 미쳐 황용약수를 만나게 된다.

철분 함량이 높아 물이 떨어지는 곳의 돌들이 누렇게 변색될 만큼 몸에 좋은 물이다. 이 약수로 목을 축이면 한여름 갈증이 싹 달아난다.

약수 한 사발 들이켜고 나면 어느새 모차골에 닿는다.

모차골은 마차가 다니던 곳이라 하여 ‘마차골’로 불리다가 모차골이 되었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왕의 길이 시작된다.

그렇다면 이 길은 왜 이런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을까.

신문왕은 신라 31대 임금으로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의 맏아들이다.

삼국통일 이후 정세를 안정시키고 강력한 전제왕권을 확립한 왕으로 평가받고 있다.

681년 아버지인 문무왕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았을 당시 신라는 겉으로는 평온한 듯 보였지만

안으로는 통일 후의 긴장과 귀족들과의 갈등으로 고군분투하던 시절이었다.

《삼국사기》에 전하길, “근자에 와서 도의가 사라진 상태에서 왕위에 있다 보니 정의가 하늘의 뜻과 달라,

천문에 괴변이 나타나고 해와 별은 빛을 잃어가니 무섭고 두려움이 마치 깊은 못이나 계곡에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신문왕이 종묘에 제사를 지내며 조상들에게 바친 제문의 내용이다.

그만큼 통일 직후였던 당시는 귀족들의 반란이 끊이지 않고 외부와의 전쟁 위험도 있어 나라를 다스리기에 어려운 시기였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문왕은 즉위 다음해인 682년에 아버지 문무왕의 수중릉이 있는 동해바다에 갔다가 용을 만나

만파식적과 옥으로 만든 허리띠를 얻었다. 대나무로 만든 피리인 만파식적을 불면 적병이 물러나고 병이 나으며,

가물 때는 비가 오고 비가 올 때는 날이 개는 등 신비한 능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그만큼 나라의 평화와 안녕이 절실했다.

만파식적은 신문왕의 왕권 강화와 정세 안정을 위해 만들어진 설화였을 테다.

그러니까 이 길은 신문왕이 마차를 타고 아버지 문무왕의 묘를 찾아가는 길이자 나라를 구원할 힘을 얻은 길이다.

또 이보다 앞서 문무왕의 장례 행렬이 지나간 길이기도 하다. 처음엔 신문왕길 혹은 신문왕 호국행차길이라 불리다가

현재는 공식적으로 왕의 길로 불리고 있다. 비단 신문왕만 다니지는 않았을 테고,

여러 왕들이 동해로 행차하며 이 길을 지나갔을 것이라는 추측에 따른 것이다.

초입에서 숲길은 야생미가 넘쳐흐른다. 아이 키만 한 개망초가 길을 수놓고 옆으로 흐르는 계곡은 끊임없이 길을 따라온다.

작은 계곡을 건너는 일만도 수십 번이다. 한여름으로 접어들면서 숲은 온갖 식물과 갖가지 곤충,

개구리같이 작은 동물들을 무수히 키워내고 있다. 높은 나무에서 매미가 울어대고, 계곡은 졸졸졸 마르지 않고 흐른다.

가는 길은 내내 이런 풍경이다. 온갖 나무와 식물이 한여름에도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숲에 폭 안기는 느낌이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날에도 이 길에 들어서면 시원하다. 삼림욕이 거저다.

길은 초입에는 사람 하나 지나다닐 만한 오솔길이었다가 이내 마차와 수레가 지나다녔을 만큼 널찍해진다.

걷다 보면 다양한 이정표를 만난다. 수레가 넘어 다녔다는 수렛재, 급한 경사에서 수레를 끌던 말들이 굴렀다는 말구부리,

신문왕이 잠시 손을 씻으며 쉬어 갔다는 세수방, 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한 불령봉표를 거쳐 가며 옛길을 상상한다.

충주호 벚꽃 터널과 수안보 벚꽃길 산책

충주호 벚꽃 터널과 수안보 벚꽃길 산책

충주호 벚꽃 터널과 수안보 벚꽃길 산책

중원으로 떠나는 역사와 풍경여행

충북 충주시 충주호수로(충주호봄나들이한마당),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물탕공원(수안보온천제)

푸른 물빛에 어우러진 하얀 벚꽃이 눈부신 광경을 연출하는 충주호 벚꽃 터널을 걸어보자.

제4회 충주호봄나들이한마당(4월 11~13일)은 10km에 이르는 호수 양안의 벚꽃 터널을 걷고,

따스한 햇살이 내려앉은 공원에서 다채로운 체험 행사를 즐기는 축제다

벚꽃 길 걷기 대회, 사생 대회와 백일장, 마술 공연과 음악 공연, 제기차기, 투호, 떡메 치기 등이 열린다.

벚꽃 손수건 만들기, 벚꽃 팔찌 만들기 등 체험 이벤트도 마련된다.

행사가 열리는 우안공원(물레방아휴게소)은 연못과 벤치, 각종 조각품이 어우러진 소박한 공원으로,

도시락을 먹으며 봄 햇살을 즐기기 좋다. 공원을 천천히 걸으며 화단 곳곳에 피어난 들꽃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충주댐이 건설된 1985년 무렵 식재되어 수령 30년이 넘는 벚나무들은 호수의 봄을 장식하는 주인공이다.

축제가 진행되는 공원 인근뿐만 아니라 물레방아휴게소에서 충주나루로 가는 호반 도로, 계명산자연휴양림으로 가는 호반 도로가 모두 벚나무로 이어진다.

호반을 따라 즐기는 드라이브도 일품이지만, 나무 데크가 연결되어 느릿느릿 걷는 여행을 즐기기에도 그만이다.

남한강에서 충주댐으로 가는 길도 벚나무들이 안내하니 벚꽃만으로도 배가 부르다.

충주댐 물문화관에서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댐 정상으로 내려가 댐 위에 놓인 공도교를 걸을 수 있다.

길이 447m 공도교 위에서 거대한 충주댐을 만나고, 호수에 안긴 듯 걸어보는 느낌이 특별하다.

엘리베이터 전망대에 서면 그림 같은 충주호의 풍광과 댐 아래로 흘러가는 남한강 물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름이 정겨운 종댕이길은 충주호와 심항산 자락이 만나는 곳을 잇는 숲길이다.

마즈막재 주차장에서 출발해 생태연못과 제1조망대,

제2조망대, 출렁다리를 거쳐 계명산자연휴양림 쪽으로 돌아오는 6.2km 코스다.

출렁다리를 건너보고 숲해설안내소 쪽으로 길을 잡는 것이 좀 더 수월하고, 숲을 오래 즐길 수 있다.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여행객이라면 충주댐 아래 남한강 변에 위치한 조동리선사유적박물관에 들러보자.

지난 1996년~2000년 발굴된 조동리 선사 유적의 이모저모와 선사시대의 농경문화를 소개하는 공간이다.

충주자연생태체험관(3월 28일~4월 16일 휴관)은 이구아나와 카멜레온, 뱀, 육지 거북 등 작은 동물을 직접 만져볼 수 있는 곳이다.

가축 먹이 주기, 표본 만들기, 각종 공예 체험도 할 수 있어 어린이에게 인기다.

충주호의 벚꽃이 만개할 무렵이면 수안보온천의 벚꽃도 꽃망울을 터뜨린다.

이때 맞춰 열리는 수안보온천제(4월 18~20일)는 올해로 30회를 맞는다.

수안보온천비각이 있는 물탕공원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축제를 온천욕으로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즐겨보자.

산신제와 발원제, 주민 화합 길놀이, 불꽃놀이를 비롯해 온천수로 송편 빚기, 맨손으로 물고기 잡기 등 여행객을 위한 체험 행사가 다양하다.

우륵공충주시립우륵국악단과 택견시범단의 공연, 〈7080 스파 콘서트〉, 온천 가요제 등 볼거리도 풍성하다.

중원으로 떠나는 역사와 풍경여행

중원으로 떠나는 역사와 풍경여행

중원으로 떠나는 역사와 풍경여행

예술과 자연이 빚어낸 특별한 아지트 상상마당 춘천

중원을 장악하기 위한 치열한 다툼, 무협지에서 흔히 쓰는 상투적 표현이다.

충북 충주는 삼국시대에 백제-고구려-신라 순으로 주인이 바뀌면서 말 그대로’중원’을 차지하기 위한 각축이 치열했던 곳이다.

중원은 충주의 옛 지명이다. 파란만장한 역사 못지않게 경치도 아름다워 볼거리가 풍부하다.

충주시는 2014년 이곳이 국토의 중앙부임을 강조하기 위해 가금면의 명칭을 중앙탑면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중앙탑의 정식 명칭은 ‘탑평리 7층 석탑’이다. 8세기 후반~9세기 초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탑의 높이는 12.95m,

남아 있는 신라석탑으로는 가장 높은 탑으로 국보 제6호로 지정돼 있다.

높이에 비해 폭은 상대적으로 좁아 하늘로 치솟는 듯한 상승감이 두드러진다.

중앙탑 바로 앞은 탄금호 국제조정경기장이다.

일대를 조각공원 겸 수변공원으로 꾸며 가족끼리 연인끼리 한가롭게 강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중앙탑 뒤편은 충주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1986년 유물관으로 시작해 1990년 박물관으로 승격한 종합박물관으로 충주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전시실을 갖췄다.

박물관 옆 뜰엔 폐사지의 불상과 입상 등을 전시하고 있다.

중앙탑에서 3km 떨어진 입석마을(중앙탑명 감노로 2319번지)에는 국내에 유일한, 국보 제205호 충주 고구려비가 있다.

마을이름이 선돌(立石)이지만 돌의 정체가 밝혀진 것은 1979년이다.

숙종이 이 마을을 지나면서도 실체를 몰랐고, 마을주민들은 새마을운동 초기

고구려비 옆에 ‘칠전팔기의 마을’이라는 새마을 기념비를 세웠을 정도다.

해독할 수 있는 문자로 보건대 5세기 후반 고구려 장수왕 또는 문자명왕 때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구려의 영향력이 이곳까지 미쳤음을 증명하는 귀중한 사료다.

2012년 문을 연 충주고구려비 전시관에는 중국 지안(集安)의 광개토대왕비,

북한 황해남도의 안악3호분 등 고구려와 관련한 자료를 함께 전시하고 있어 흥미를 더한다.

전시관 개방시간은 09:00~18:00, 입장료는 무료다.

충주시내를 벗어나 3번 국도를 이용해 수안보로 이동하다 노루목교를 지나자마자 우측으로 방향을 틀면 달천과 나란한 작은 도로를 거슬러 오른다.

넓지 않은 달천의 물빛이 한없이 푸르다.

달천은 옛날 수달이 많이 살았다고 해 달강이라 부르기도 하고 달래강으로 부르기도 한다.

물이 맑을 뿐만 아니라 맛도 좋아 조선 성종 때 학자 허백당 성현은 ‘용재총화’에서 ‘우리나라 물맛은 충주 달천수가 으뜸’이라고 칭찬했을 정도다.

충주시 단월동과 단호사 등의 지명도 달천의 물맛이 그만큼 달다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수주팔봉은 바로 달천이 한 굽이 휘어져 돌면서 빚은 자연의 예술품이다.

높지도 않고, 규모도 크지 않지만 8개의 바위봉우리가 빚은 풍경은 한 폭의 수묵화를 보듯 평온하면서도 웅장한 힘이 느껴진다.

물길이 휘어지면서 빚어낸 아담한 백사장도 여행길에 쉬어가기 안성맞춤이다.

수주팔봉의 8개 봉우리가 달천으로 치닫는 중간 부분이 뚝 잘린 것은 일제 강점기에 농지를 개간하기 위해 허리를 끊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연은 안타깝지만 지금은 끊어진 봉우리 사이로 폭포수가 흘러 나름의 운치를 더한다.

수주팔봉 전망대에서 반대편으로 돌면 산정으로 팔각정으로 오르는 길이 나 있다.

이곳에서는 반대로 잘려진 허리 사이로 보이는 강변과 마을 풍경이 푸근하다.

예술과 자연이 빚어낸 특별한 아지트 상상마당 춘천

예술과 자연이 빚어낸 특별한 아지트 상상마당 춘천

예술과 자연이 빚어낸 특별한 아지트 상상마당 춘천

청주 중앙공원 은행나무전설과 청주여행이야기

의암호를 끼고 고요하게 자리한 춘천어린이회관 부지는 춘천시민들의 비밀스런 아지트 같은 공간이었다.

춘천에서 풍광이 가장 빼어난 곳 중 하나로 입소문 난 장소이기도 했다.

어린이회관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던 상태였던지라 춘천인형극제와 춘천마임축제 등 특정 행사 기간에만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 외의 기간에는 춘천시민들이 삼삼오오 평화로운 휴식이나 산책을 즐기던 고즈넉한 공간이었다.

돗자리를 펴고 쉬거나 낙엽 가득 쌓이는 계절에는 바스락거리며 걷는 것만으로도 절로 힐링이 되는 그런 곳이었다.

몇몇만의 비밀 아지트로 숨겨두기에는 아까웠던 어린이회관 부지가 이제 ‘상상마당’이라는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오르게 됐다.

고 김수근 건축가의 춘천어린이회관, 상상마당으로 다시 날갯짓하다

1980년에 개관한 춘천어린이회관은 올림픽주경기장, 벽산125빌딩(현 게이트웨이 빌딩) 등 국내 유명 건축물을

설계한 한국 건축계의 거장 고 김수근 건축가의 작품이다. 붉은 벽돌이 특징인 그의 다른 건축물처럼 춘천어린이회관 역시 벽돌로 만들어졌다.

의암호와 어우러진 벽돌 건축물이 상공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나비처럼 보인다.

김수근 건축가는 호수에 나비 한 마리가 내려앉은 듯한 모습을 연상하며 이 건물을 설계했다.

어린이회관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었지만 이 건물 자체가 갖는 가치 때문에 건축물만은 그대로 보존되어왔다.

그동안 어린이회관 운영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논의가 있었으나 결국 최종적으로 인연을 맺게 된 건 KT&G 상상마당이다.

상상마당은 KT&G가 진행하는 사회 공헌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고 대중에게 문화 향유의 기회를 넓혀주고자 하는 취지를 담은 복합 문화공간이다.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홍대 상상마당이 2007년에 문을 열었고,

2011년에는 문화예술 체험 공간인 논산 상상마당이 개관했다. 그리고 ‘아트스테이(art+stay)’라는 콘셉트를 가진 춘천 상상마당이 2014년 4월에 문을 열었다.

빈티지한 붉은 벽돌 건물이 아트센터로 변신

상상마당 춘천은 크게 ‘아트센터’와 ‘스테이’ 건물로 나뉜다.

옛 춘천어린이회관 건물에 들어선 아트센터에는 공연장, 갤러리, 라이브 스튜디오, 강의실, 카페, 아트숍 등이 자리한다.

외부와 마찬가지로 내부 역시 붉은 벽돌로 꾸며져 있으며, 1층과 2층이 자연스럽게 한 공간처럼 이어진다.

아트센터에서는 음악, 디자인, 교육, 시각예술 분야 활동이 주로 이뤄진다.

음악 위주의 공간은 사운드홀과 라이브스튜디오, 야외무대 등이다.

사운드홀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접할 수 있는 다목적 공연장으로 관객과 아티스트가 소통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고가의 장비를 갖춘 라이브 스튜디오는 라이브 및 원테이크 레코딩에 특화되어 있다.

시각예술을 테마로 하는 공간은 갤러리와 사진 스튜디오이다. 컨템포러리 아트 갤러리인 갤러리1에서는 국내외 작가들의 현대미술 전시가,

아카이브 갤러리인 갤러리2에서는 강원도 관련 다양한 시각자료 전시가 이뤄진다.

갤러리에서는 개관 기념으로 6월 15일까지 ‘춘천 기록 프로젝트 <기억하다> 전’이 진행된다.

2013년 4월부터 2014년 4월까지 춘천어린이회관이 상상마당 춘천으로 변신하는 과정을 기록한 작업을 전시한다.

건물 1층의 아트숍 ‘디자인 스퀘어’는 일상 속의 예술, 일상 속의 디자인을 소개하는 공간이다.

우리나라 독립 디자인 브랜드와 신진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전시 및 지원한다.

작품이 판매되면 일부를 제외하고 상당액을 작가들에게 그대로 전달한다.

그밖에 문화예술, 청소년 창의예술교육 등 강좌가 진행될 교육시설도 다양하게 갖췄다.

의암호를 끼고 자리한 상상마당의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제대로 만끽하고 싶다면 카페 ‘댄싱 카페인(Dancing Caffeine)’에 들러보자.

이름부터 독특한 이 카페는 커피의 기원설에 나오는 에티오피아의 염소 치는 소년 칼디와 관련한 ‘댄싱 고트(dancing goat)’에서 영감을 얻은 이름이다.

청주 중앙공원 은행나무전설과 청주여행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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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중앙공원 은행나무전설과 청주여행이야기

제천 청풍호 자드락길 2코스 정방사길

고려말의 정치상황

1392년 고려가 멸망하기까지 고려는 건국초기부터 멸망에 이르는 기간 동안 오랑캐들의 침략으로 하루도 편할 날 없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더구나 고려 말 약 100여년정도 지속된 원의 간섭은 고려의 힘을 약화시켰고 특히

고려 말 홍건적과 왜구의 잦은 침략은 백성들의 삶을 고통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부패한 귀족과 사찰은 백성들이 농사지을 땅마저 빼앗았으며 1368년 원이 멸망하고 명이 들어서자

정치세력들은 친명파와 친원파로 갈려져 첨예한 대립을 거듭했다.

이 당시 친명파였던 이성계는 요동정벌 명령을 거부하고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고려왕조가 멸망하는데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 ‘직지’의 고장으로 잘 알려진 청주는 충청북도의 중심지로 아름답고

서정적인 도시풍경과 더불어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문화재들이 산재해있어 교과서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 중 하나이다.

또한 규모 있는 도시의 명성에 걸맞게 여행자들이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음식점과 숙박시설 및 휴식공간 등

여행자들을 위한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신록이 푸르러지는 6월에 청주를 여행한다면 청주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여행지를 답사하며

그 여행지속에 숨겨져 있는 다양한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 보자.

청주 중앙공원 은행나무 (압각수-충청북도 기념물 제5호)

청주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중앙공원에는 1000여년이 가깝도록 그 자리를 지켜온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있다.

나른한 오후가 되면 할아버지 무릎을 베고 누운 손주가 낮잠을 자고 있을 것만 같은 편안하고 수려한 나무이다.

1000여년이 가깝게 자란 나무답게 허리둘레가 어마어마해서 장정 여럿이서 팔을 뻗어도 닿을 것 같지 않은 엄청난 크기를 자랑한다.

대부분의 오래된 나무들이 그러하듯이 이 은행나무에도 전설이 하나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흉년이 들거나 전쟁이 날 때 울음으로 알려준다는, 마을마다 전해 내려오는 비슷한 전설이 아닌 고려 말의 정치상황과 관련된 전설이다.

청주 중앙공원은 옛 청주관아가 있던 곳으로 압각수라 불리는 은행나무 옆으로 청주옥이라는 감옥이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고려 공양왕 시절에 10여명의 죄수들이 이곳 청주옥에 잡혀오게 된다.

죄수들 중에는 목은 이색, 도은 이숭인, 양촌 권근, 인재 이종학 선생 등의 충신들도 포함되어있었다.

이중에서 목은 이색선생은 학문과 인품이 뛰어나 훗날 조선성리학의 뿌리가 되신 분이다.

이들 죄수들은 이성계와 공양왕을 모함했다는 죄를 뒤집어쓰고 청주옥에서 모진 고초를 당했다.

고문이 어찌나 심했던지 죄수들 모두 밤늦은 시각이 되자 죽은 자처럼 축 늘어진 상태가 되었다.

모진 고문이 있던 날 밤 갑자기 천둥번개를 동반한 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물은 삽시간에 불어나서 청주옥을 휩쓸었다.

감옥에 갇혀있던 죄수들은 물론 관리들과 백성들까지 모두 불어난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목은 이색선생도 예외는 아니어서 급작스럽게 불어난 물에 떠내려가게 되었다.

이색선생께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아름드리 은행나무의 가지를 붙든 뒤였다.

신비스럽게도 하늘 높은 곳에 있던 은행나무 가지가 저절로 내려와 이색선생을 붙잡은 것이었다.

이색선생이 은행나무 가지를 붙들자 은행나무 가지는 다시 사뿐히 하늘로 올라갔다.

덩달아 이색선생께서도 하늘로 올라가 은행나무꼭대기에 앉게 되었다.

그런데 왕을 모함한 죄로 잡혀온 죄수들도 다 같이 은행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이 아닌가?

죄수들이 은행나무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본인들을 고문했던 관리들이 하나같이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며 급한 물살에 밀려 떠내려가고 있었다. 청주 고을 사람들이 이를 보고 하늘이 무고한 죄수들을 살렸음을 칭송하며 감복했다고 전해진다.

또 고려 공양왕 역시 하늘이 살린 자들은 죄가 없음을 밝히고 그들을 풀어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제천 청풍호 자드락길 2코스 정방사길

제천 청풍호 자드락길 2코스 정방사길

제천 청풍호 자드락길 2코스 정방사길

겨울 바다 훈훈한 미술 엿보기 체험

절이 절벽 중턱에 걸터앉은 것 같다. 절 마당에 서면 눈 아래 펼쳐진 산줄기의 바다가 망망하다.

겹쳐진 산줄기들이 저 멀리서 밀려오는 물결을 닮았다.

그 품에 안긴 청풍호는 안식처처럼 평온하다.

사람 마음도 격랑과 평온을 넘나드니 풍경과 마음이 닮았다. 정방사에 가면 마음을 닮은 풍경을 볼 수 있다.

청풍호의 물결과 호수를 담고 있는 산줄기가 만들어낸 풍경을 걷는다.

제천시가 만든 청풍호 자드락길은 나지막한 산기슭의 비탈진 땅에 난 좁은 길을 뜻한다.

자드락길은 전체 7코스로 이뤄졌는데 저마다 특징이 있어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1코스 작은동산길 : 청풍 만남의 광장에서 능강교까지 이어지는 19.7km 구간. 청풍호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2코스 정방사길 : 능강교에서 정방사에 이르는 1.6km 구간. 절벽에 지어진 절과 절 마당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압권이다.

3코스 얼음골생태길 : 능강교에서 얼음골에 이르는 5.4km 구간. 맑은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 냉풍이 나오는 얼음골에서 끝난다.

4코스 녹색마을길 : 능강교에서 상천민속마을까지 이어지는 7.3km 구간. 산수유와 진달래가 피는 봄에 걸으면 가장 좋다.

5코스 옥순봉길 : 상천민속마을에서 옥순대교까지 5.2km 구간. 청풍호와 옥순봉의 풍경이 볼 만하다.

6코스 괴곡성벽길 : 옥순대교와 지곡리를 잇는 9.9km 구간. 도중에 만나는 옛 마을의 풍경이 볼 만하다.

7코스 약초길 : 지곡리에서 율지리 말목장까지 8.9km 구간.

이 밖에 배를 타고 풍경을 감상하는 뱃길도 있다.

자드락길 6코스가 끝나는 지곡리에서 배를 타고 옥순대교(옥순봉 휴게소)에서 내리는 코스다.

짧은 걸음 강렬한 풍경

청풍호 자드락길 제2코스 정방사길을 간다.

출발지점인 능강교에서 정방사까지는 1.6km쯤 오르막길을 계속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포장된 길이라서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길 초입에서 계곡이 여행자를 반긴다.

큰 바위 아래 맑은 물줄기가 시원하게 흐르고 바위 위에 솟은 소나무가 푸르다.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잠시 머물다가 본격적으로 오르막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우거진 숲이 그늘을 드리운다.

길은 정방사에서 끝나고 전망 좋은 풍경이 정방사 앞에 펼쳐진다.

눈 아래 펼쳐지는 풍경에 마음이 통쾌하다.

저 멀리서부터 넘실대며 밀려오는 산줄기가 바다를 닮았다. 바다 같은 풍경을 한눈에 담기가 벅차다.

산줄기와 청풍호가 만들어내는 망망한 풍경 위에 또 그만큼의 하늘이 펼쳐지고 하늘을 덮은 구름이 낮게 깔렸다.

절 마당 앞에 펼쳐진 풍경을 충분히 즐기고 나서야 절집이 눈에 들어온다.

신라 문무왕 2년(662)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정방사는 1,400년 가까운 역사를 품고 있는 절이다.

겨울 바다 훈훈한 미술 엿보기 체험

겨울 바다 훈훈한 미술 엿보기 체험

겨울 바다 훈훈한 미술 엿보기 체험

조선개국의 땅 전주 남원 진안 역사 여행

통영의 겨울체험은 눈과 마음이 즐겁다. 도시의 역사와 훈훈한 사연을 담아낸 미술관들과 벽화마을을 엿보는 이색경험이 기다린다.

독특한 테마를 지닌 미술공간들은 바다를 배경 삼거나, 담장을 캔버스 삼아 푸른 통영을 그려내고 있다.

전혁림 미술관, 옻칠미술관, 동피랑 마을 등에서 따뜻한 겨울 햇살과 함께 감성을 풍요롭게 하는 체험이 진행된다.

전혁림 미술관은 추상, 옻칠미술관은 전통, 동피랑 마을은 서민들의 삶을 소재로 고스란히 통영을 담아내고 있다.

통영시 용남면에는 국내 최초의 옻칠 미술관이 자리 잡았다.

통영에 옻칠 미술관이 세워진 것은 충무공과도 사연이 깊다.

이순신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로 통영에 부임한 이후 12공방을 설치했고 공방중 상하칠방에서 나전칠기를 생산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후로 통영은 400년 전통을 이어온 나전칠기의 본고장으로 명성을 알리기 시작했다.

옻칠 미술관에 들어서면 퀘퀘 묵은 옷장과 화장대 대신 옻으로 단장한 다양한 미술작품을 만날 수 있다.

국내, 외 작가의 현대작품 150여점이 전시중인데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옻칠 장신구와 한국 옻칠화다.

옻칠 장신구는 옻칠만의 미학적 특성을 살린 옻칠조형작품으로 전통미 가득한 목걸이, 브로치 등으로 재현됐다.

옻칠화는 유화와 달리 캔버스가 아닌 나무 위에 그림을 그리는게 특징으로 아름다운 광채와 빛깔이 독특하다.

미술관 소재 아트숍에서는 통영의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는 그윽한 휴식을 즐길 수 있다.

통영 미륵산 자락으로 향하면 건물 자체가 작품인 독특한 미술관을 만나게 된다.

‘통영의 피카소’로 불리던 추상화가인 전혁림 화백의 미술관이다.

전혁림 화백은 통영에서 태어나 타계했으며 고향인 통영을 화려한 색으로 담아낸 작가다.

미술관에는 전화백의 작품 80여점과 관련자료 50여점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미술관은 멀리서 봐도 다른 건물들과는 차별화된 독특한 인상으로 다가선다.

그가 거주하던 봉평동 일대의 뒷산을 배경으로 세워진 미술관은 건물 외벽이 아름답게 채색된 세라믹 타일들이 빼곡하게 채우고 있다.

전화백과 아들 전영근씨의 작품을 7,500여장의 타일로 재구성해 통영의 바다와 화백의 예술적 이미지를 재현했다.

전시관에서는 한국 색채추상의 대가인 전화백의 강렬한 유작 뿐 아니라 생전에 쓰던 물감 캔버스 등 작품도구 등도 구경할 수 있다.

별관에는 미술관에서 운영하는 카페가 있어 작품과 음악을 감상하며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는 휴식의 시간도 마련된다.

화가 전혁림 외에도 시인 유치환, 극작가 유치진, 화가 이중섭, 소설가 박경리, 음악가 윤이상 등이 모두 그리운 통영의 바다가 길러낸 예술가들이다.

하지만 통영 일대가 유명한 예술가들의 사연만 묻어나는 것은 아니다.

강구안에서 이어지는 골목 사이에 웅크린 벽화마을 동피랑은 미대 학생들과 일반인들의 따뜻한 그림이 있는 마을이다.

중앙시장 뒷길을 따라 동피랑 골목을 굽이굽이 오르다보면 다양한 벽화들이 길손을 반긴다.

마을은 몇 장의 그림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걸어 다니면서 그림을 감상하고 벤치에서 휴식을 즐기는 슬로우시티를 지향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시절 항구와 중앙시장에서 일하던 인부들이 기거했던 과거를 지닌 동피랑은 한 때 철거될 위기에 처했으나

‘푸른 통영 21’이라는 예술단체가 서민들의 삶이 녹아있는 독특한 골목문화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공모전을 열었고 미술학도들이 몰려와 골목마다 그림을 꽃피워냈다.

예쁜 벽화들이 입소문이 나면서 관광객들이 찾아들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통영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했다.

동피랑은 동쪽에 있는 비랑(비탈의 사투리)이라는 뜻으로 마을 언덕 중턱까지 오르면 통영 앞바다가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동피랑에서 강구안으로 내려서면 통영의 유서 깊은 공간들과 조우하게 된다.

중앙시장, 서호시장 등 통영의 대표 시장들 역시 강구안에 기대 있다.

400년 전통을 자랑하는 중앙시장은 뒤에는 동피랑을, 앞에는 강구안 포구를 두고 있다.

중앙시장에는 싱싱한 생선과 마른고기가 주류를 이루고 통제영 시절 이 일대에 12공방이 있었던 까닭에 나전칠기 가게도 만나볼 수 있다.

여객선 터미널 방향의 서호시장은 인근에서 나는 해산물들이 모두 모이는 곳이다.

자연산 활어부터 건어물까지 사계절 해산물이 넘쳐나며 즉석에서 막 회를 맛볼 수도 있다.

새벽 경매 시간때가 피크로 경매구경을 끝낸뒤 졸복국, 해물뚝배기, 굴밥 등으로 시원한 속풀이가 가능하다.

시장들 외에도 강구안은 통영의 명물인 충무김밥집과 선술집이 몰려 있고, 문화마당과 남망산 조각공원 등 문화공간도 함께 어우르고 있다.

강구안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전함이 정박하던 곳으로 초입에는 거북선 한척이 실제 크기로 전시돼 있다.

조선개국의 땅 전주 남원 진안 역사 여행

조선개국의 땅 전주 남원 진안 역사 여행

조선개국의 땅 전주 남원 진안 역사 여행

간판 하나로 유명해진 조용한 시골 진안 원촌마을

이 땅의 이름이 고려에서 조선으로 교체되어 가던 14세기 말,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격동의 시대.

바람 앞의 등불 같은 ‘고려’ 끝자락과 두려울 것 없이 성큼성큼 다가오던 ‘조선’의 시작점을 살아가던 이들의 삶은 어땠을까.

KBS1에서 인기리에 방영중인 <정도전>을 따라 역사 여행을 떠나봤다. 전주와 남원, 진안에서 만난 살아있는 조선의 역사 따라 출발!

고려말에서 조선초, 이 시대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몇 있다.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 그리고 태종 이방원과 정몽주다.

고려 충신 정몽주에게 새나라 ‘조선’을 함께 건국하자 회유하던 조선의 세 번째 왕 태조 이방원의 시

‘하여가’와 고려 충신으로 생을 마친 정몽주의 답가 ‘단심가’ 한 소절 읊어보며 조선시대 역사 여행을 시작해보자.

결국 정몽주는 개경의 선지교(선죽교)에서 이방원에게 제거된다.

그의 죽음은 새나라 건국에 날개가 된다.

4개월 뒤인 1392년 8월 이성계는 고려 공양왕에게 왕위를 받아 조선을 건국한다. 500년 고려의 끝 그리고 500년 조선의 시작이었다.

역사의 승자는 이성계였다.

1388년, 위화도 회군으로 권력을 잡은 이성계는 최영 세력을 숙청하고 조선의 태조가 된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조선의 ‘소프트웨어’를 완성한 정도전이 있었다. <조선경국전>의 저술자이자 ‘조선’이라는 나라의 설계자 정도전.

1398년, 정몽주에 이어 이방원에게 제거되기 전까지 그는 조선 최고의 권력자이자 설계자로 활약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고려에서는 변방인으로 새나라 조선에서는 개국공신으로 꽃을 피우나 싶더니 태종 이방원에게 제거된 후 조선 말기에 가서야 복원된 정도전.

하지만 그가 주장하고 기획한 한양 천도, 경복궁, 한양 도성 등은 조선시대를 관통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우리가 지금껏 알고 있는 성문의 이름도 그의 작품이다.

미비한 신분 탓에 외면당하던 고려를 벗어나 새로운 나라에서 잠시나마 마음껏 춤출 수 있었던 정도전이 꿈꾸던 ‘백성들이 살만한’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태조 이성계의 어진 품은 경기전

전주를 비롯해 남원과 진안 등 전라북도 지역은 조선의 건국과 뗄 수 없는 공간이다.

특히 ‘가장 한국적인 고장’으로 꼽히는 전주에는 유일하게 현존하는 태조 어진(임금님 초상화)을 비롯해 전주이씨 시조 묘역인 조경묘,

이성계가 황산대첩에서 승리한 후 쉬어 갔다던 오목대와 이목대 등 얘깃거리가 넘쳐난다.

상당수가 전주한옥마을 지척에 자리하니 한옥마을부터 살펴보자.

태조 어진을 모신 경기전 정전(보물 제1578호)에 들어선다.

왕조가 일어난 경사스러운 터를 뜻하는 경기전은 조선 건국을 기념해 건립됐다.

기둥 아래 하얗게 덧칠한 구름을 타고 왕을 배알하러 다가간다.

안으로는 권문세족과 신진사대부들의 대립, 밖으로는 왜구와 홍건적이 들끓던 고려말 혼란기,

최영과 함께 고려 최고 무장으로 꼽히던 이성계는 새나라를 개국한다. 경기전에 모신 태조 어진(국보 제317호)이 푸른 곤룡포를 입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태조 어진 진품은 어진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다. 일년에 한번, 한달 정도 대중에게 공개된다. 올해는 아직 일정이 나오지 않았다.

간판 하나로 유명해진 조용한 시골 진안 원촌마을

간판 하나로 유명해진 조용한 시골 진안 원촌마을

간판 하나로 유명해진 조용한 시골 진안 원촌마을

로컬푸드로 만들어 더 맛나다 제주 별난 빙수 열전

모든 것이 크고 화려해지는 세상, 쉴 새 없이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

그 속에서 살다 보니 문득 아날로그 세상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디지털의 편리함은 없지만 삶의 속도를 한 박자 늦출 수 있는 따뜻한 감성이 살아 있는 곳.

천편일률적이지 않고 사람들의 삶과 역사가 묻어 있는 풍경.

거칠지만 자연스럽고, 투박하지만 세련된 공간에서 따뜻한 감성을 되살릴 수 있는 여행지가 진안 원촌마을이다.

특별하게 볼 것 없는 평범한 시골 마을이지만, 기계로 찍어낸 획일적인 간판을 예쁜 손글씨 간판으로 바꿔 달면서 꽤나 근사한 마을로 탈바꿈했다.

길에서 만나는 아날로그 풍경과 그 속에 보물처럼 숨어 있는 친근한 간판의 글씨체가 잊고 지낸 고향의 기억을 되살아나게 한다.

그래서 지금 나는 원촌마을을 걷고 있다.

주민들의 삶과 예쁜 손글씨 간판의 조화

‘간판이 유명해봐야 그게 그거지.’ 사실 원촌마을에 가기 전까지는 크게 기대하는 바가 없었다.

그저 간판을 바꿔 달아 유명해진 마을로 생각했다.

발을 들여놓고서야 깨달았다. 크고 화려한 것만이 멋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평범함 속에 비범함이 숨어 있음을.

옛날식 벽돌 건물에 슬레이트 지붕이 줄지어 있는 마을 앞 삼거리 풍경.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시골 모습 속으로 한 걸음 더 내딛으니 지붕에 걸린 예쁜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신발가게에는 신발이 그려져 있고, 흰구름 할인마트에는 하얀 구름이 두둥실 떠 있다.

맞은편 백운약방에도 흰 뭉게구름이 걸려 있다. 구름 속에는 정갈한 글씨로 ‘백운약방’, ‘정류소’, ‘고농농약사’라 쓰여 있다.

백운약방은 무주, 진안, 장수를 오가는 무진장여객 버스의 정류소이기도 하다.

첫인상이 나쁘지 않다. 간판에 손글씨로 가게 이름을 쓰고 그림을 그리거나 조형물을 부착한 풍경이 비슷하면서도 사뭇 다른 느낌이다.

도시의 획일적인 간판과는 전혀 다르다. 세련되지만 그렇다고 마을 풍경을 해치지는 않는다.

오히려 마을 사람들의 삶과 가까이 있는 것 같다.

옷이 날개라고 하더니, 간판 하나로 원촌마을은 소박함과 세련된 멋이 조화를 이루는 멋진 여행지가 되었다.

원촌마을이 간판마을로 변신한 것은 2007년 봄이다.

전주대학교 도시환경미술학과 이영욱 교수가 간판 재정비 사업을 제안하면서 이뤄졌다.

처음에는 주민들의 불만도 많았다. 예전 간판으로도 불편한 게 없었고, 손으로 쓴 간판 글씨가 아이들이 쓴 것 같아 불평도 했다.

대학생들이 정성스레 작업한 간판이 하나 둘 걸리면서 변화가 찾아왔다.

새로 단 간판이 30여 개. 요란스럽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지만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은근한 매력에 이끌려 지나던

차들이 멈춰 서서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점차 입소문이 나면서 멀리서 일부러 사진을 찍으러 오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조용하던 마을에 외지인들이 방문하면서 몇몇 가게는 매출도 늘었다.

“우리 마을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건 없어. 그저 간판 하나 바꿨을 뿐인데…”라고 말하는 어르신은 간판을 보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마냥 신기하다.

여행자들이 와서 보는 건 간판만이 아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되돌아갈 수는 없지만, 원촌마을 여행을 통해서 옛 풍경을 만나고,

간판마다 녹아든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잊고 지내온 아련한 기억을 떠올린다.

로컬푸드로 만들어 더 맛나다 제주 별난 빙수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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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쟁이 두 소년의 올 댓 초콜릿 제주 초콜릿랜드

무더위를 쫓는 데는 역시 빙수가 제격이다. 빙수 한 스푼에 불볕더위에 지친 심신이 파르르 생기를 회복한다.

제주도는 한겨울에도 빙수를 찾을 만큼 빙수 사랑이 각별한 곳이다.

1년 365일 빙수를 찾는 이곳. 섬에서 나고 자란 재료들로 만든 로컬푸드 빙수가 시원함은 물론 건강까지 알뜰살뜰 챙겨준다.

구좌 향당근의 시원한 변신, 당근빙수

제주 동부 지역의 작은 시골 마을 종달리.

종달리가 속한 구좌읍은 향당근이 주요 특산품이다.

마을 안쪽에 자리한 ‘카페동네’는 지역 특산품인 당근으로 만든 독특한 빙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당근으로 빙수를 만들다니. 빙수 마니아들도 이런 빙수는 처음 본다는 반응이다. 당근빙수, 몹시 궁금해진다.

카페동네는 제주 올레길을 걷다 만난 커플이 결혼한 후 아예 제주에 새 삶터를 꾸린 남다른 인연으로 시작된 작고 아담한 카페이다.

카페 어느 곳이든 부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이 집만의 특별한 메뉴인 당근빙수도 부부가 오랜 시간 함께 공들여 만든 결과물이다.

여행 중에 구좌 향당근을 처음 먹어보고 아주 맛있어서 당근을 재료로 특별한 메뉴를 만들 생각을 했단다.

이때 떠오른 아이디어를 차근차근 개발시켜 만든 것이 지금의 당근빙수다. 어디에도 없는 이들 부부만의 빙수가 탄생한 셈이다.

당근빙수는 보기에도 시원해 보인다. 투명한 유리 볼에 담긴 새하얀색과 주홍색의 조합이 잘 어울린다.

맨 아래쪽에 부부의 비법이 담긴 우유얼음을 깔고, 그 위에 당근즙을 얼려 만든 얼음가루를 수북하게 얹는다.

두툼한 인절미와 호두 알갱이를 토핑으로 올렸고, 꼭대기에 작은 허브 잎을 앙증맞게 장식했다.

주홍색과 흰색 얼음가루를 적당히 섞어 한입에 쏘옥 넣어본다.

사르르 녹는 얼음가루 사이로 향기로운 당근 내음이 입안에 가득 퍼진다.

오호, 이것 참 별미일세. 어디 한입 더 먹어볼까. 곱게 갈린 우유얼음과 식감이 느껴지는 당근얼음이 조화롭게 어울린다.

한참 먹다가 문득 깨닫는다. 어? 안에 팥이 없네. 그렇다. 이 집 당근빙수에는 팥이 없다.

그래서인지 더 담백한 맛이다. 게다가 몸에도 좋은 당근이니 빙수 한 그릇에 왠지 더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카페동네에서 내다보이는 풍경은 빙수 맛을 더해준다.

창밖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제주의 전통 농가들과 그 뒤로 멋진 오름이 한눈에 잡힌다.

한라산을 먹을까, 진달래밭을 먹을까?

제주시 용담해안도로변에는 한라산을 테마로 한 재미난 빙수가 있다. 카페 ‘닐모리동동’의 한라산빙수가 그 주인공이다.

새하얀 우유얼음을 산처럼 쌓아 올린 한라산빙수는 겨울철 눈 쌓인 한라산 모습을 연상시킨다.

갖가지 토핑을 올린 여느 빙수들과 비교하면 한라산빙수는 무척 단순해 보인다.

보기엔 그저 얼음가루만 가득 쌓아놓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입 맛보면 잠시도 스푼을 놓기 힘들다.

게다가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얼음이 이가 시릴 정도로 시원하다.

한라산빙수는 우유얼음 위에 기호에 따라 녹차나 커피시럽을 뿌린 후 안에 든 팥과 얼음을 살살 비벼 먹는다.

여기에 함께 나오는 타피오카를 한두 개씩 곁들여 먹으면 금상첨화.

부드러운 우유얼음과 달콤한 팥이 어우러져 자꾸만 찾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