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 봄물

수선화 봄물 드는 노부부의 바다 정원 거제 공곶이

수선화 봄물 드는 노부부의 바다 정원 거제 공곶이

수선화 봄물 드는 노부부의 바다 정원 거제 공곶이

제주도 서귀포 가볼 만한 곳 초록이 가득한 남쪽 여행 코스

공곶이는 바다 쪽으로 뻗은 육지를 뜻하는 곶(串)과 엉덩이 고(尻)가 결합해 ‘엉덩이처럼 튀어나온 지형’을 뜻한다.

‘거룻배가 드나들던 바다 마을’을 이르기도 한다. 하지만 봄날에는 이름의 유래가 모두 잊힌다.

바다를 향해 얼굴을 내민 건 수선화 봄물 지형이 아니라 수선화다. 샛노란 꽃망울이 열리면 공곶이에 봄이 깃든다.

그러니 이맘때는 공곶이 대신 수선화를 딴 이름을 지어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공곶이를 빛나게 만드는 이야기는 또 있다. 강명식·지상악 부부의 사연이다.

노부부는 1969년부터 호미와 곡괭이로 황무지를 개간해 반세기 넘게 농장을 가꿨다.

그리고 이곳에 꽃을 피워 조건 없이 나눈다. 그 따스한 마음 볕을 쬐기 위해서라도 봄날에 꼭 한번 다녀올 만하다.

공곶이는 거제도 동남쪽 끝자락이 말해주듯 구석진 위치다. 출발점은 자가운전자도 예외 없이 예구마을 북쪽 물량장 주차장이다.

초반 15분쯤 꽤 가파르다. 걷다가 뒤돌아보면 활처럼 휜 해안 풍경이 땀을 식힌다.

오르막 끝에 공곶이의 역사를 알리는 안내판이 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의 은신처였으며,

강명식·지상악 부부가 처음에는 귤나무를 심었고 한파로 동사하자 대신 동백나무와 수선화를 심어 가꾼 이야기는 TV 프로그램에 여러 차례 소개됐다.

공곶이 봄나들이는 수선화가 목적이지만 그 사이 숲길도 무척 아름답다.

첫 번째 마주하는 숲길은 아왜나무가 늘어선다.

바닷가 산기슭에 잘 자라는 나무가 좁은 길을 따라 호젓한 터널을 이룬다. 아왜나무 숲길 끝은 돌고래전망대 갈림길이다.

수선화 재배지는 오른쪽 내리막으로 내려선다.

폭 1m 남짓한 동백나무 터널이 나타나면 목적지가 가깝다는 의미다. 수선화가 피기 전인 2~3월 공곶이의 얼굴은 붉은 동백꽃이다.

딛고 내려가는 돌계단 하나하나 노부부가 직접 쌓았다.

머리 위로 동백나무 그늘이 드리워 동화 속으로 들어서는 기분이다. 동백꽃이 진 뒤에도 길은 아늑하다.

동백나무 터널이 끝날 즈음 후박나무 아래 무인 판매대가 보인다.

공곶이는 입장료와 매표소가 따로 없다. 비공식적인 입구 역할을 하는 무인 판매대를 지나자, 드디어 봄의 전령 수선화가 눈에 가득하다.

수선화는 그리스신화 속 나르키소스 이야기에 나오는 꽃이다.

나르키소스는 호수에 비친 자기 모습과 사랑에 빠져 죽은 뒤 수선화로 환생했다.

수선화가 간직한 신화의 비밀은 공곶이에서 풀린다. 살포시 고개를 숙여 핀 꽃은 제가 예쁜 걸 알고 있다.

더구나 촘촘히 등을 맞대고 무리를 이루니 장관이다.

수선화 꽃밭 사이로 우뚝 선 종려나무도 남쪽 땅 거제를 느끼게 한다.

공곶이는 2005년 개봉한 〈종려나무 숲〉 촬영지로 먼저 알려졌다. 영화에서 종려나무 숲은 기다림과 그리움을 상징한다.

자신을 사랑해 고개 숙인 나르키소스의 수선화와 기다림으로 높게 자란 종려나무의 사연이 대비된다.

수선화 꽃밭 사이로 난 길은 몽돌해변에서 끝난다. 꽃길이 길지 않아 아쉽지만, 몽돌해변은 그 아쉬움을 달래고 남는다.

이곳에 사람들이 하나둘 쌓아 올린 돌탑이 볼거리다. 바다 건너 지척에 보이는 섬은 내도다.

내도에는 지붕이 노란 집들이 마치 수선화처럼 자리한다.

공곶이 몽돌해변을 따라 동쪽으로 갈 수 있다. 해변 끝에서 덱 계단을 올라 산길을 걷는데, 공곶이와 예구마을을 잇는 남파랑길 거제 21코스다.

덱 계단 입구 가까이 공곶이에 유일한 화장실과 퍼걸러 쉼터가 있다.

내도 너머에 있는 외도와 한려해상국립공원이 보이는 자리다.

공곶이는 예구마을 쪽 초입의 카페를 제외하고는 벤치나 화장실이 따로 없다. 앞서 말했듯 애초에 관광지로 조성하지 않은 까닭이다.

공곶이는 노부부의 헌신으로 거제9경에 들었지만, 현재도 노부부의 삶터요 일터다.

그러니 수선화 꽃밭에 들어가 사진 찍거나 꽃을 꺾는 행위는 삼가야 한다.

무인 판매대의 수선화 한 송이 사서 그 마음을 품고 돌아가도 좋겠다.

봄날 공곶이에 가는 건 수선화를 보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수선화를 꽃 피운 노부부의 마음을 닮고 싶어서이기도 할 테니까.

옥화마을은 고즈넉한 바닷가에 위치한다. 자그마한 포구를 끼고 있으며, 마을 안쪽으로 벽화가 눈길을 끈다.

미술을 전공한 홍수명 전 이장이 그린 벽화에 문어와 바닷속 풍경을 담아, 바다 이야기가 육지로 연장되는 듯하다.

포구 쪽 무지갯빛 경계석이 포토 존 역할을 한다.

해안거님길(무지개바다윗길)이 벽화와 함께 옥화마을을 찾게 만든다.

마을 북쪽 끝에서 이어져 바다와 경계가 되는 기미산 둘레를 따라 장승포까지 걸을 수 있다.

초입에는 육지 쪽으로 동백나무 숲과 이웃하고, 해안 덱 전망대를 지나면 바다 쪽으로 나아간 곳에 해상 덱을 설치해 바다 위를 걷는 듯하다.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봄 바다를 만끽하기에 제격이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