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마을로 변신한 대한민국 첫 조선소

예술 마을로 변신한 대한민국 첫 조선소

예술 마을로 변신한 대한민국 첫 조선소

메마른 감성을 촉촉하게 적셔줄 광주 예술 여행

조선소의 망치 소리로 요란하던 마을이 근사한 예술마을로 재탄생했다.

지금도 커다란 배를 만드는 용접 소리가 귀를 어지럽히고 거대한 프로펠러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기름 냄새, 쇠 냄새, 바다 냄새가 뒤섞인 깡깡이 예술마을 골목에는 삶의 흔적이 녹은 예술작품과 다양한 체험이 기다린다.

부산 영도구 대평동 옛 도선장 주변 동네는 일제강점기인 1912년 우리나라 최초 근대식 조선소가 들어선 곳으로, 지금도 조선 업체 12개가 운영 중이다.

‘깡깡이’라는 마을 이름은 아주머니들이 배의 녹슨 표면을 벗겨내는 망치질 소리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2000년 이후 쇠락하던 마을은 2015년 문화예술형 도시재생 프로젝트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예인선을 개조해 꾸민 선박 체험관, 옛 영도 도선의 이야기를 들으며ᅠ남항 일대를ᅠ둘러볼 수 있는 ‘깡깡이 유람선’, 방문객들이 시계,

장식품 등을 조립해 볼 수 있는 ‘깡깡이 마을 공작소’ 등 즐길 거리가 풍부하다.

골목 곳곳에 자리한 조각품과 벽에 그려진 벽화도 볼거리다.

신기한 선박체험관 : 예술가들이 참여해 예인선을 선박 체험 공간으로 꾸몄다.

파도의 힘을 이용한 휘파람 소리 체험 기계, 엔진으로 다양한 빛의 형상을 만들어내는 기관실 등이 있다.

깡깡이 마을 박물관 : 대평동 수리조선업에 얽힌 이야기를 마을의 유물과 영상, 예술작품 등을 통해 들려준다.

어린이 : 깡깡이 예술마을 메이커스 프로그램. 비즈공예. 드로잉엽서. 키트 조립

메이커스 프로그램 : 비즈공예. 드로잉엽서. 키트 조립. 주말 11:00~17:00. 체험비 별도

깡깡이 예술마을 통합투어 : 매주 토, 일요일 1일 3회 운영.

10인 이상 20인 이하 선착순 출발. 13세 이하 보호자 동반 필수. 만 6세 미만 유람선 탑승 불가. 1시간 10분 소요.

깡깡이 예술마을은 산업현장 가운데 있다.

작업중인 수리조선소도 많으니 안전을 위해 함부로 들어가지 않도록 한다. 평일에는 대중교통이 편하며, 사진촬영도 허가된 곳에서만 하자.

조선소의 망치 소리로 요란하던 마을이 근사한 예술마을로 재탄생했다.

지금도 커다란 배를 만드는 용접 소리가 귀를 어지럽히고 거대한 프로펠러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기름 냄새, 쇠 냄새, 바다 냄새가 뒤섞인 깡깡이 예술마을 골목에는 삶의 흔적이 녹은 예술작품과 다양한 체험이 기다린다.

조선소 마을 곳곳에 숨은 예술품을 만나는 재미

부산 영도구 대평동 옛 도선장 주변 동네는 일제강점기인 1912년 우리나라 최초 근대식 조선소가 들어선 곳으로, 지금도 조선 업체 12개가 운영 중이다.

‘깡깡이’라는 마을 이름은 아주머니들이 배의 녹슨 표면을 벗겨내는 망치질 소리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2000년 이후 쇠락하던 마을은 2015년 문화예술형 도시재생 프로젝트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예인선을 개조해 꾸민 선박 체험관, 옛 영도 도선의 이야기를 들으며ᅠ남항 일대를ᅠ둘러볼 수 있는 ‘깡깡이 유람선’,

방문객들이 시계, 장식품 등을 조립해 볼 수 있는 ‘깡깡이 마을 공작소’ 등 즐길 거리가 풍부하다. 골목 곳곳에 자리한 조각품과 벽에 그려진 벽화도 볼거리다.

메마른 감성을 촉촉하게 적셔줄 광주 예술 여행

메마른 감성을 촉촉하게 적셔줄 광주 예술 여행

메마른 감성을 촉촉하게 적셔줄 광주 예술 여행

고개와 능선 따라 펼쳐지는 하얀 군무 무등산 억새

광주가 예로부터 ‘예술을 즐기는 사람이 많고, 예술가를 많이 배출한 곳’이라는 뜻으로 ‘예향’이라 불렸다는 사실, 알고 있는가?

무등산의 청정 자연을 품은 의재미술관, 분위기 있는 골목을 따라 이색 카페가 가득한 동리단길,

세상의 모든 힙한 전시로 여행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까지,

예술 애호가라면 광주를 방문할 이유가 넘쳐난다. 예향 광주에서 메말랐던 감수성을 한껏 적셔 보자.

의재미술관은 차로 편하게 갈 수 있는 도심 속 흔한 미술관이 아니다. 무등산 자락 숲속에 꼭꼭 숨어 있어,

등산로 입구에서 약 20분을 걸어야 닿을 수 있다. 다행히 우람한 나무와 시원한 계곡이 반기는 아름다운 숲길이라 걸음이 가볍다.

도시 소음 대신 맑은 바람과 물소리가 가득해, 일상의 무게를 내려놓을 때쯤 의재미술관이 눈앞에 나타난다.

미술관에 들어서면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유리창이 무등산 계곡 풍경과 햇살을 그대로 들여온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소박하고 간결한 디자인의 이 건물은 2001년 한국건축문화대상을 받았으며,

인천국제공항을 제치고 당당히 대상을 차지했다. 무등산의 자연을 미술관 안으로 끌어들여 의재 선생의 작품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설계된 점이 돋보이는데, 이는 미술관을 위한 건축설계가 따로 없던 당시에는 파격적인 시도였다.

의재미술관은 의재 허백련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됐다.

의재 선생은 1922년 열린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 동양화부에서 최고상을 타면서 화가로서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세속적인 성공보다는 자신의 예술세계를 위해 전국 유람을 떠난다. 그런 뒤 무등산에 들어와 정착했다.

춘설헌에서 그림을 그리며 예술 발전과 후학 양성에 힘을 쏟은 것은 물론 가난한 나라를 일으키기 위해 농업학교를 세웠다.

화가이자 다인, 교육자 그리고 사회운동가로 다재다능한 삶을 살았다.

전시실로 걸음을 옮기면 그의 작품과 유품 그리고 삶의 스토리가 온전히 다가온다.

하얀 벽면에 작품들이 여유롭게 배치되어, 그만큼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된다.

“삶과 예술은 경쟁하지 않는다”라는 그의 명언 앞에 걸음이 절로 멈춘다.

홍익인간을 쓴 서예 작품에서는 따뜻하면서도 힘 있는 필체가 느껴지고, 남도의 농촌 풍경을 담은 작품은 보기만 해도 풍요롭다.

활짝 웃음을 터트리는 선생의 대형 사진을 지나면 병풍과 산수화가 전시된 3전시실이 나온다.

그의 손때 묻은 붓과 다구들을 감상하며 천천히 걸어 들어가면 모란육폭병풍이 기다린다.

모란이 흐드러지게 핀 정원의 한 부분을 여섯 폭 병풍에 그린 그의 대표작이다. 의재 선생이 생전에 집안에서 사용하던 애장품이다.

남종화의 대가였던 그는 산수화를 즐겨 그렸다. 그가 말하길, 산수화는 우주를 담는 일이라 했다.

그의 작품 속에는 자연을 배경으로 사람들의 삶이 어우러지며, 그의 인생과 철학이 깊이 녹아 있다.

지하에서는 의재 선생의 손자인 직헌 허달재 화백의 작품도 볼 수 있다.

관람을 마치고 춘설차를 즐겨보자. 통창 앞에 무등산 자연과 마주 앉아서 마시는 춘설차는 더없이 향기롭다.

차 세트 입장료를 내면 단돈 5,000원에 관람과 함께 춘설차, 춘설빵을 즐길 수 있다.

의재 선생이 이름 붙인 춘설차는 그윽한 맛과 향이 일품이다. 춘설차 가루를 넣어 만든 춘설빵도 은은한 차향을 머금었다.

고개와 능선 따라 펼쳐지는 하얀 군무 무등산 억새

고개와 능선 따라 펼쳐지는 하얀 군무 무등산 억새

고개와 능선 따라 펼쳐지는 하얀 군무 무등산 억새

부산의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곳 산복도로

무등산은 빛고을 광주를 품은 ‘어머니의 산’이다.

가을이면 어머니 가슴처럼 따사로운 능선에 억새가 핀다.

무등(無等)에는 ‘비할 데 없이 높고 큰 산’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산’이라는 의미가 담겼다.

해발 1187m로 규모보다 풍기는 느낌에서 ‘무등’의 가치가 빛난다.

인구 100만이 넘는 도시를 껴안은 산 가운데 높이 1000m대는 무등산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등산은 2013년 국립공원 21호로 지정되었다.

가을 무등산 산행은 억새 덕분에 발걸음이 들뜬다. 10월에 접어들면 정상 주변으로 억새가 하얗게 피어난다.

긴 숲길을 무념무상 걸으며 피로감이 덜한 것도 불현듯 억새와 마주할 광경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무등산 억새 산행은 오르는 길, 고개, 능선에 따라 다채롭다.

가장 일반적인 출발 포인트는 두 곳. 증심사 지구에서 출발해 중머리재와 장불재를 거쳐 정상에 오르는 코스,

원효사 지구 원효분소에서 출발해 서석대에 오른 뒤 장불재를 돌아오는 코스다.

증심사 지구 중머리재 코스는 산행 초입에 사찰, 미술관 등 볼거리가 곁들여져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다.

산 중턱인 중머리재를 넘어서면서 크고 작은 억새 숲이 길동무가 된다.

원효분소 입구에서 서석대까지 하늘을 가리는 울창한 숲과 무등산옛길이 호젓하게 이어진다.

원효사 지구 코스에서는 우회하는 꼬막재 방향을 선택하거나, 사양능선을 넘나들며 여유롭게 억새를 감상할 수도 있다.

무등산 산행은 원점 회귀보다 올라가고 내려오는 길을 달리하는 게 진면목을 즐기는 요령이다.

증심교에서 출발해 문빈정사, 증심사를 거쳐 중머리재로 향하면 첫 쉼터인 당산나무까지 평이한 길이다.

당산나무는 수령 450년, 둘레 4.8m 아름드리 느티나무다.

당산나무에서 계곡 숲길과 돌계단을 거쳐 한 시간 정도 오르면 시야가 탁 트이는 너른 공간과 마주한다.

억새 산행의 서막을 알리는 중머리재다. 해발 617m 중머리재만 올라도 억새 너머로 작은 능선이 아득하게 펼쳐진다.

중머리재에서 장불재까지 본격적인 억새 산행이 이어진다.

용추삼거리에서 중봉으로 방향을 잡아도 억새가 흐드러지고, 갈 길을 고집해 장불재에 오른 뒤 큰 숨을 쉬어도 좋다.

장불재는 정상 등반의 마지막 쉼터이자, 무등산 억새 향연의 대표적인 아지트다.

장불재에서 백마능선으로 길을 잡으면 완만한 곡선을 따라 억새 숲을 가로지른다.

하늘거리는 억새 꽃이 백마 갈기처럼 보인다고 해서 백마능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억새는 위치와 시간에 따라 모습을 달리한다. 해를 등지고 올려다보는 억새는 짙은 갈색을 띠고,

정상에서 해를 마주하는 억새는 은빛으로 부서진다. 석양의 억새는 황금빛으로 물들며 가을을 화려하게 수놓는다.

장불재에서 억새밭 너머로 바라보는 정상 주상절리대는 무등산을 대표하는 풍경이다.

입석대, 서석대 등 높이 1000m 주상절리대는 무등산의 지질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천연기념물 465호다.

주상절리대는 흐린 날이면 구름에 휩싸여 그 모습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부산의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곳 산복도로

부산의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곳 산복도로

부산의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곳 산복도로

아이디어 톡톡 튀는 서울 시내 이색 카페

부산의 독특함을 만나고 싶다면 산복도로에 가야 한다.

산복도로에서 내려다보는 시원한 풍광도 좋지만, 그곳에 부산의 어제와 오늘이 있기 때문이다.

산복(山腹)은 산허리를 뜻하며, 산복도로는 경사지를 개발하면서 맨 위쪽에 자리한 도로다.

부산은 평지가 좁고 산이 많아 땅이 부족했다. 일제강점기에 일자리를 찾아 전국에서 온 사람들이 살 곳이 마땅치 않아 산으로 올라갔다.

산에는 무허가 판자촌이 하나둘 생겼다. 한국전쟁 때는 피란민이 봇짐을 지고 부산으로 모여들었다.

광복 당시 28만 명이던 부산 인구는 한국전쟁을 거치며 100만 명이 훌쩍 넘었다. 그렇지 않아도 비좁은 산비탈이 판잣집으로 뒤덮였다.

사람들은 산에 움막을 짓고, 깡통을 펴 지붕을 올렸다. 힘겨운 시절이었다.

아이들은 몸집만 한 물통을 이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 물을 길렀고, 마을 사람들은 공동 화장실을 사용했다.

팍팍한 삶이지만, 산동네는 피란민에게 안식처이자 희망의 터전이었다.

산동네에도 길이 필요했다. 1964년 10월 산동네를 연결하는 첫 산복도로가 열렸다.

중구 대청동 메리놀병원 앞에서 동구 초량동 입구까지 1820m 구간에 걸친 망양로다.

이후 구봉산과 천마산을 비롯해, 부산 곳곳에 산복도로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부산은 ‘산복도로의 도시’가 되었다.

최근 산복도로 재생 사업을 통해 부산의 애틋한 역사를 품은 산복도로가 새롭게 조명된다.

산비탈에 숨은 이야기를 만나고,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부산의 보석 같은 경치를 볼 수 있도록 구석구석 정비했다.

먼저 망양로(望洋路)에 가보자. 이름처럼 부산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길로, 발길 멈추는 곳이 모두 전망대다.

황홀한 풍광에 걸음이 저절로 느려진다. 망양로의 랜드마크는 ‘유치환우체통’이다.

파란 바다와 대결이라도 하듯, 빨간 우체통이 바다를 등지고 섰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로 시작하는 시 <행복>이 머릿속에서 흐른다.

유치환우체통은 부산과 인연이 깊은 유치환 선생을 기리기 위해 만든 것으로, 편지를 넣으면 1년 뒤에 배달된다.

유치환우체통에서 민주공원 방향으로 걷다 보면 ‘이바구공작소’를 만난다.

이바구는 ‘이야기’의 경상도 사투리. 이곳에서는 풍경만으로 알기 힘든 산복도로의 속 이야기를 볼 수 있다.

산복도로 사람들이 펼쳐놓은 <요강 이바구뎐>을 비롯해, 산복도로의 풍경을 펜으로 그린 작품이 전시된다.

이바구공작소 근처에는 국내 의료보험의 시초인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만든 장기려 박사를 기념하는 ‘더나눔’ 센터가 있다. 돈이 없는 환자에게

‘닭 두 마리 값을 내주시오’라는 처방전을 썼다는 장기려 박사의 일화를 비롯해 가슴 뜨겁게 하는 이야기가 고스란히 남았다.

아이디어 톡톡 튀는 서울 시내 이색 카페

아이디어 톡톡 튀는 서울 시내 이색 카페

아이디어 톡톡 튀는 서울 시내 이색 카페

경리단길에서 찾아낸 맛있는 이국적인 식당

아직은 꽃샘추위에 여행이 망설여지는 계절, 도심 속으로 떠나는 따뜻한 카페 여행은 어떨까?

봄날의 휴가를 계획하면서 맛있는 기내식을 먹고, 쾌적한 만화방 한구석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캠프장의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해먹에서 달콤한 낮잠에 빠질 수도 있다.

변덕쟁이 봄 날씨처럼 예측할 수 없는 상상력과 기발한 아이디어가 톡톡 튀는 도심 속 이색 카페 세 곳을 찾았다.

기내식과 함께 여행을 꿈꾸는 시간, 에어카페 비행기

여행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비행기에서 먹는 기내식은 최고의 별미다.

인천공항을 배회하느니 합정역 3번 출구 ‘에어카페 비행기’에서 소박한 기내식을 먹으며 여행을 꿈꾸는 시간이 훨씬 영양가 있다.

여행 마니아였던 주인장은 여행카페를 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여행을 못 가게 되었지만, 카페에는 여행자들의 엽서와 사진 등 온갖 정보가 넘쳐난다.

공항의 안내판과 기내처럼 직접 꾸민 인테리어가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다.

아무래도 건물 3층에 자리하다 보니 여행을 좋아하는 단골들이 사랑방으로 애용하고 있지만, 여러 여행책자에 소개된 덕분에 외국인 여행자도 알음알음 찾아온다.

음악을 전공한 주인장은 친구들이 보내주는 전 세계 항공사의 기내식 정보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독일과 프랑스에서 유학 중인 친구들의 조언을 받아 기내식 메뉴를 업그레이드한다.

기내식은 패스트푸드, 브런치, 샐러드, 라이스 스타일로 나뉜다. 커피와 음료수, 맥주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해서 세트 메뉴로 주문할 수 있다.

에어카페의 베스트 메뉴는 싱가포르항공의 기내식인데, 요리를 좋아하는 주인장의 감각으로 재탄생했다.

피자 도우에 닭고기를 넣고 따뜻하게 구워 샐러드와 함께 낸다.

쫀득하고 구수한 맛이 상큼한 채소와 어우러져 시원한 맥주 한 잔을 곁들이기에 제격이다.

어린이 입맛을 가진 손님에겐 브런치 스타일의 기내식도 즐겁다. 큼직한 소시지는 식감이 쫀득하고, 바삭하게 구운 토스트에 딸기잼은 달콤하다.

에어카페에 갈 때는 몇 가지 주의사항이 있다. 여행을 대리만족하러 갔다가 본격적인 ‘여행앓이’를 시작할지도 모른다는 것.

이코노미 클래스와 같은 가격으로 비즈니스석에 앉을 수 있으나 승무원이 한 명이라서 음식은 기다려야 한다는 것.

하늘에서 먹는 맛과 땅에서 먹는 맛이 확연히 다르다는 주인장의 고충을 배려하는 여유는 필수.

캠프장에 가면 너도나도 나무에 해먹을 걸어놓고 낮잠을 즐긴다.

허리가 축 처지는 해먹에서 즐기는 낮잠이 과연 편안할까? 의구심을 갖고 바라보았다면 계동에 있는 카페 ‘낮잠’에서 한 번쯤 시도해볼 일이다.

의외로 처음 만나는 해먹의 느낌이 낯설지 않다. 온몸을 감싸는 100% 순면의 안락함에 몸을 맡기면 긴장이 나른하게 풀린다.

그네처럼 리듬에 맞춰 흔들리는 해먹의 자유로움을 즐기는 것이 이곳의 매력이다.

해먹에 누워 책을 읽거나, 낮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하기 위해 찾아오는 여행자까지 손님층이 다양하다.

근처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을 아껴 쪽잠을 자러 오기도 하고, 창덕궁을 찾아온 외국인부터 북촌한옥마을 산책을 나온 가족과 연인,

친구 들까지 반나절 도심을 돌아보다 짧은 휴식을 위해 찾아오는 여행객들로 온종일 조용하게 붐빈다.

경리단길에서 찾아낸 맛있는 이국적인 식당

경리단길에서 찾아낸 맛있는 이국적인 식당

경리단길에서 찾아낸 맛있는 이국적인 식당

아시아 문화의 만남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매력

경리단길이 어디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이태원부터 떠올린다.

경리단길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그곳은 이태원 옆에 있는 작은 동네가 아니라 ‘경리단 리퍼블릭(Republic)’이다.

낯선 언어가 들려오고 산책하듯 편한 옷차림의 외국인들이 북적이는 거리,

실내보다 테라스에서 외국인이 직접 만든 자국 음식을 맛보는 시간은 경리단길에서 누리는 특별한 즐거움이다.

독일 빵과 토마토수프, 멕시코식 타코와 올리브 향기 그윽한 그릭샐러드가 있는 골목.

이국적이지만 낯설지 않고, 생소하지만 맛있는 냄새로 가득한 경리단길의 소문난 외국식당 세 곳을 찾았다.

휴가 시즌이 시작되는 8월에는 누구나 어디로든 떠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비행기 타고 멀리 해외로 떠나는 휴가가 그림의 떡이라면, 그림의 떡이라도 한 조각 맛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당연히 있다. 지하철로 1시간이면 이국적인 음식과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외국으로 여행 온 기분을 낼 수 있는 식당들이 이태원과 경리단길에 즐비하다.

경리단길은 예전에 육군중앙경리단이 있던 곳이라 아직도 그 이름으로 불린다.

6호선 녹사평역 2번 출구에서 경리단 사거리까지, 그리고 경리단에서 하얏트호텔로 이르는 두 갈래 길을 통틀어 부르는 이름이다.

태국 식당부터 남아공 식당까지 세계의 모든 음식이 있는 이태원과는 또 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경리단길에서 인기 있는 외국인 셰프의 식당 세 곳을 찾았다.

독일식 빵과 브런치를 맛볼 수 있는 ‘더 베이커스 테이블(THE BAKER’S TABLE)’, 멕시코 요리의 정석을 맛볼 수 있는

‘돈 차를리(Don Charly)’, 지중해식 기로스와 그릭샐러드가 맛있는 ‘엘 그레코스(EL GRECOS)’ 등 셰프의 손맛이 믿음직하다고 소문난 곳들이다.

독일식 빵과 스프가 맛있는 베이커리, 더 베이커스 테이블

경리단길의 아침은 독일인 미샤가 구워내는 빵 냄새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더 베이커스 테이블은 경리단길의 브런치 타임을 책임지는 곳이다.

독일에서 3대가 운영하는 베이커리 집안 출신인 미샤는 영국과 미국, 홍콩 등 세계 여러 나라의 호텔에서 파티시에로 일했던 경험을 살려 독일식 빵집을 열었다.

호밀을 많이 넣어 빵 색깔은 거무튀튀해도 씹을수록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하루쯤 지나면 숙성된 맛이 더 좋지만, 방부제와 첨가물을 넣지 않아 당일 판매를 철칙으로 하고, 남은 것은 모두 푸드마켓에 기부하고 있다.

빵이 맛있으니 당연히 샌드위치도 맛있다. 수프와 샌드위치, 브렉퍼스트로 주문할 수 있는

브런치 메뉴는 홈스타일, 독일식, 파머 스타일로 나뉜다. 갓 구워낸 빵과 달걀프라이, 베이컨, 치즈 등을 푸짐하게 차려낸다.

독일식이 아니라 미샤 스타일이라고 부르는 토마토수프는 완숙 토마토와 채소를 끓인 수프에 생크림을 넣어 부드러우면서 얼큰한 맛이 난다.

매장에서 금방 구워낸 치아바타나 포카치오를 찍어 먹으면 해장용으로 환상이다.

김광석과 함께하는 음악버스

김광석과 함께하는 음악버스

김광석과 함께하는 음악버스

인천 앞바다 섬 풍경이 한눈에 소무의도 무의바다누리길

대구에 김광석을 만나는 새로운 길이 열렸다. 김광석의 음악과 삶을 시티투어에 접목한

‘더플레이버스(The Play Bus): 김광석’이 주인공. 언제 들어도 아련한 노랫말과 가슴 한구석에 위로를 건네주는 노래가 함께하는 신개념 여행이다.

더플레이버스는 미국 뉴욕의 시티투어 ‘더 라이드(The Ride)’에서 아이디어를 착안했다.

더 라이드는 버스 안에서 흥겨운 공연을 선보인다. 길거리에는 갑자기 뛰쳐나온 발레리나가 발레를 선보이고 댄서가 브레이크댄스를 춘다.

시종일관 흥이 넘친다. 반면 더플레이버스는 가수 김광석의 노래가 그러하듯 잔잔하다.

그의 음악과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 가슴이 따뜻해지고 애잔함이 더해진다.

김광석이 우리 곁을 떠난 지 20년이 넘었지만, 그의 이름 석 자는 언제나 우리 마음속에 깊이 자리한다.

나는 지금 김광석을 만나러 대구로 간다.

김광석을 만나기 위해 더플레이버스를 기다린다. 버스 한 대가 다가오고 “안녕하실테죠? 제가 김광석입니다”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이어 김광석의 큼지막한 얼굴이 미소 짓는다. 문득 반가움 뒤로 ‘보고 싶다’, ‘듣고 싶다’는 그리움이 번진다.

더플레이버스에 오른다. 곳곳에 김광석의 존재가 묻어 있다. 버스 뒤편 음악감상실이 눈에 띈다.

더플레이버스가 출발하자 디제이가 김광석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며 노래를 들려준다. 그의 뒤로 김광석의 영상이 흐른다. 의자 깊숙이 몸을 묻고 노래에 귀 기울인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 덜컹이는 기차에 기대어 너에게 편지를 쓴다 / 꿈에 보았던 길 그 길에 서 있네”

첫 곡은 ‘바람이 불어오는 곳’. 김광석은 오토바이를 타고 전국을 여행하는 게 꿈이었다고 한다.

나에게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어디일까. 김광석이 보고 싶어 찾아온 여행이니 그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일 게다.

이어 디제이는 “여러분의 사랑은 어떤 색인가요.

알록달록한 무지개인가요, 초콜릿 같은 달달함인가요, 아니면 코발트블루의 아련함인가요”라는 이야기와 함께 ‘그녀가 처음 울던 날’을 들려준다.

하모니카 선율에 실려 흐르는 간절한 사랑 노래가 오래도록 가슴을 적신다.

김광석의 감성과 노랫말에 젖어들 즈음 창밖에는 서서히 어둠이 내린다.

이때 서른을 넘긴 이나 서른을 앞둔 이가 한번은 들어봤을 노래가 흐른다.

“또 하루 멀어져간다 / 내뿜는 담배 연기처럼 / 작기만 한 내 기억 속에 /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 점점 더 멀어져간다 /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 비어가는 내 가슴속엔 /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 (중략) /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 (중략) /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서른 즈음에’는 언제 들어도 마음이 애잔하다. 지나온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살아갈 날의 기대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내가 김광석을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는 가사에 담긴 그때 그 시절의 아련함이 있어서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가슴으로 부를 수 있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더플레이버스가 이동하는 60분 동안 김광석의 이야기와 노래는 계속된다.

더플레이버스가 이동하는 60분 동안 김광석의 이야기와 노래는 계속된다. 종착지인 김광석 다시그리기길에 도착해서도 멈추지 않는다. 대구 지역 뮤지션들이 야외 무대에서 거리 공연을 한다.

공연을 보겠다고 내리지 않아도 된다. 버스 안 스피커를 통해 편안히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차창 밖은 무대, 버스 안은 객석인 셈이다.

아시아 문화의 만남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매력

아시아 문화의 만남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매력

아시아 문화의 만남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매력

인천 앞바다 섬 풍경이 한눈에 소무의도 무의바다누리길

광주에 아시아 문화를 접할 수 있는 대규모 공간이 탄생했다.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옛 전라남도청사 뒤편에 자리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다.

‘아시아’와 ‘문화’라는 큰 주제로 전시, 공연, 연구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흥미로운 볼거리가 많아 5개원과 주변을 산책하려면 시간을 넉넉히 잡고 방문해야 한다.

역사적 장소를 향한 경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연면적은 16만 1,237㎡로 국내 문화 공간 중 가장 넓다.

위압적인 모습의 초고층 빌딩이 떠오르겠지만 아시아문화전당은 주변 풍경을 거스르지 않으며 자리했다.

옛 전남도청사 뒤로 땅을 파고 건물을 지었기 때문이다.

중앙광장에 해당하는 아시아문화광장에 서면 어린이문화원, 문화정보원, 민주평화교류원 등이 자연스럽게 관람객을 감싼다.

옛 전남도청사를 보기 위해선 시선을 위로 올려야 하는데, 역사적 장소를 향해 자연스럽게 경의를 표하는 관람의 형태가 되는 점도 독특하다.

아시아문화전당의 건물들은 땅을 파고 세웠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실내가 매우 밝다.

건축 설계 공모에 당선된 우규승 건축가가 정한 ‘빛의 숲’이라는 콘셉트 덕분이다.

건물 옥상과 광장 쪽 외벽은 거의 창문으로 가득 찼다. 자연광이 물 흐르듯 들어가 실내를 밝힌다.

관람객은 답답함을 전혀 느끼지 않으며 머물거나 이동이 가능하다.

실내외의 경계를 허물어 건물 내부가 훨씬 넓게 느껴지는 효과도 있다. 넓은 창을 통해 언제든 바깥 풍경을 조망하는 것도 가능하다.

민주평화교류원에서 시작하는 아시아문화전당 투어

아시아문화전당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은 넓은 면적과 규모에 조금 당황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디를 먼저 갈지 오래 고민할 필요는 없다.

민주평화교류원을 시작으로 어린이문화원, 문화정보원, 예술극장, 문화창조원 순서로 둘러보고 마지막에 하늘마당으로 향하면 된다.

하늘마당에서 출발하면 옥상 공원 전체를 둘러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곳은 새로운 시작점 구실을 한다.

시간이 부족하다면 관심 있는 건물 내부만 둘러보거나 외부 산책만 즐기는 것도 좋다.

민주평화교류원은 옛 전남도청사를 리모델링해 활용했다.

건물의 역사성과 가치를 살리기 위해 5.18민주평화기념관과 문화교류지원실이 들어설 예정이다.

특히 5.18민주평화기념관에는 민주, 인권, 평화와 관련한 예술 콘텐츠가 채워질 것이다. 민주평화교류원은 2015년 11월 말 개관할 예정이다.

민주평화교류원에서 나오면 아시아문화광장이다. 광장 중앙에 서면 비로소 아시아문화전당 전체를 볼 수 있다.

땅을 파고 세운 건물들이지만 답답하거나 갇혀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관람객이 서 있는 위치상 주변 건물이 잘 보이지 않아 공간에 더욱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도 있다.

어린이문화원은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문화 체험을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췄다.

이를 위해 어린이체험관, 어린이도서관, 어린이극장, 어린이창작실험실 등을 운영 중이다.

어린이문화원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문자도로 내 이름 꾸미기’, ‘그림책 빛그림 감상하고 메모꽂이 만들기’,

‘투명한 그림책 만들기’ 등의 교육 프로그램과 베이비 드라마 <달> 등의 공연을 개최해왔다.

인천 앞바다 섬 풍경이 한눈에 소무의도 무의바다누리길

인천 앞바다 섬 풍경이 한눈에 소무의도 무의바다누리길

인천 앞바다 섬 풍경이 한눈에 소무의도 무의바다누리길

아름다운 노을 북성포구

가을, 호젓한 섬길 한번 걸어보자. 통통배만 오갈 뿐 차도 다니지 않는 섬 해변길 말이다.

무의도는 드라마 촬영지와 하나개해변, 호룡곡산 등으로 명성을 떨친 지 오래지만 동생 섬인 소무의도가 입소문이 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무의도 샘꾸미포구에서 소무의도까지 구름다리가 놓이고 무의바다누리길이 조성되면서 찾는 이의 발길이 늘고 있다.

주말이면 무의도 가는 길이 꽤 편리해졌다.

예전에는 두세 차례 버스를 갈아타고 오갔지만 요즘은 인천공항철도가 주말마다 용유임시역까지 연결된다.

기차역에 내리면 무의도행 배가 출발하는 잠진도선착장까지 바다를 옆에 두고 걸어서 닿을 수 있다.

잠진도선착장에서 배를 타면 무의도까지 5분 남짓. 배는 20~30분마다 다니고,

섬 안에서는 뱃시간에 맞춰 버스들이 수시로 오가니 굳이 승용차를 몰고 섬 안에 들어설 필요가 없다.

사실 한적한 어촌마을 풍경을 보러 떠나는데 승용차가 넘쳐나는 것만큼 볼썽사나운 것도 없다.

무의도선착장에서 미니버스를 타면 섬을 가로질러 반대편 광명항까지 덜컹거리며 달린다.

호젓한 섬을 걷는 소무의도 여행은 버스 뒷자리에 앉아 차창을 열고 심호흡을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제법 가파른 언덕을 넘어선 버스가 자맥질하듯 고꾸라지면 무의도의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광명항보다는 주민들에게 샘꾸미마을로 익숙한 포구가 드러나고, 포구 건너에 소무의도가 웅크리고 있다.

예전 무의도와 소무의도를 연결하는 방법은 배편이 유일했다.

소무의도 서쪽마을과 동쪽마을은 산으로 가로막혀 산길을 걸어 넘거나 고깃배로 오가야 했다.

샘꾸미에서 소무의도 서쪽마을을 잇는 구름다리가 들어서고 섬을 일주하는 무의바다누리길이 조성되면서 섬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소무의도의 다른 이름은 ‘떼무리’다. 인도교와 연결되는 서쪽마을 선착장 이름도 떼무리선착장으로 불린다.

해안선 길이가 2.5km인 아담한 섬의 역사는 3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씨 가족이 세 딸과 함께 들어와 섬을 개척했고, 유씨 청년을 데릴사위로 삼으면서 유씨 집성촌이 형성됐다고 한다.

인근에서는 새우 등이 많이 잡혔고, 한때는 안강망 어선이 40여 척이나 될 정도로 부유했던 섬이다.

소무의도는 인천상륙작전 당시 군 병참기지로 사용되기도 했다.

섬 안에는 풍어제를 올렸던 터가 남아 있으며,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가족과 함께 휴양차 들렀다는 해변도 있다.

섬 주변은 간조 때면 해변길을 드러낸다. 낚시꾼이나 찾을 줄 알았던 외딴 섬이 품은 사연이 이렇듯 구구절절하다.

몽여해변에서 언덕을 하나 넘으면 명사의 해변으로 연결된다.

이 해변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가족과 함께 휴양을 즐겼다는 고즈넉한 곳이다.

소무의도 남쪽의 해녀섬길은 바다 건너 해녀섬을 조망하는 길로, 능선을 따라 늘어선 기암절벽을 감상할 수 있다.

명사의 해변길과 해녀섬길 아래는 간조 때 물이 빠지면 장군바위까지 해안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장군바위에는 해적들이 바위 모양을 보고 장군과 병사들로 착각해 도발하지 못했다는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아름다운 노을 북성포구

아름다운 노을 북성포구

아름다운 노을 북성포구

자연의 품에 안긴 섬 굴업도와 덕적도의 매력

오후 한때 비가 내리고 해질 무렵 비가 그쳐야 제대로 된 북성포구의 노을을 볼 수 있다.

비가 그친 뒤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구름 사이로 울긋불긋 노을빛이 포구로 쏟아진다. 그럴 때면 노을이 피어나는 반대쪽 하늘에 간혹 무지개도 떠오른다.

북성포구는 인천역에서 1km 정도 떨어져 있다. 북성포구로 가는 길은 옛 정취가 있으니 인천역에 도착하면 카메라부터 꺼내자.

인천역에 내려 역 광장 오른쪽으로 가면 인천역 화장실이 있다. 그 앞을 지나 바로 우회전해서 걷다 보면 고가도로 아래 철로가 보인다.

철로를 건너 조금 더 가면 대한제분 인천공장 입구가 나온다. 그곳에 북성포구를 알리는 안내판이 있다.

대한제분 인천공장 입구에서 북성포구까지는 약 400m. 그 주변 풍경이 볼 만하다.

길가에 어망이 길게 놓여 있고, 갯골에는 밀물과 썰물에 따라 바닷물이 차고 빠진다.

갯골 건너에는 원목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멀리 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이 길을 걷다 보면 자연스레 풍경 이곳저곳에 카메라를 겨냥하고 셔터를 누르게 된다.

검고 습한 갯벌과 흙빛 바다에서 피어나는 습한 기운이 공기마저 음습하게 만드는 것 같다.

오래되어 빛바랜 포구와 검은 갯벌, 주변을 둘러싼 삭막한 공장.

낱낱이 떼어놓고 보면 마음 편하게 바라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닌데, 이 세 가지가 하나로 어우러져 아무데서나 볼 수 없는 이색적인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어느 바다가 이런 풍경을 연출할 수 있단 말인가.

북성포구는 노을이 피어날 때가 가장 아름답다. 그중에서도 가장 황홀한 풍경은 비 갠 뒤에 피어나는 노을이다.

그래서 인천에 비가 내리면 북성포구의 아름다운 노을을 기대해본다.

비가 그치지 않고 계속 내린다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겠지만, 비가 그치면 역동적인 구름과 노을빛이 만들어내는 포구의 풍경을 볼 수 있다.

비 그친 하늘에 간혹 무지개도 피어난다. 생각지도 않는 곳에서 만난 무지개로 인해 마음까지 환해진다.

비 그친 뒤 북성포구의 노을이 아름답다는 것을 아는 사진작가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촬영 포인트에 삼각대를 펼치고 카메라를 장착한 뒤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담기 위해 집중한다.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 사람마저 풍경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포구 중간에서 촬영을 하는데, 포구 안쪽으로 들어가면 다른 각도에서 북성포구를 바라볼 수 있다.

고깃배가 들어와서 배를 대는 포구 선착장으로 향한다. 바다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의 일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그곳은 또 다른 촬영 포인트다.

고깃배가 선착장에 배를 드러내고 기우뚱하게 서 있다.

그 앞에는 고기를 잡던 그물이 쌓여 있다. 흙빛 뻘이 진득한 질감으로 다가오고 갯골에는 물길이 굽이굽이 돈다.

저공비행하는 갈매기들이 정지된 화면 같은 선착장 풍경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는 것까지 북성포구에 깃든 삶의 모습을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는다. 아름다운 일상이다.

해는 졌어도 여운이 남아 바다와 하늘이 아직도 붉다. 붉은 노을이 하늘을 뒤덮은 구름에 닿았다.

잔잔한 바다 위에 노을빛 하늘과 붉은 구름이 비친다. 하늘도 바다도 온통 붉다. 이때가 노을의 절정이다.

북성포구 안쪽에 식당 골목이 있다. 갈매기 날아다니고 공장 굴뚝에 연기가 솟아오르고 뻘에는 고깃배가 정박해 있는 포구의 풍경을 앞에 두고 밥 한끼, 술 한잔 할 수 있다.

북성포구 식당 골목에 자리를 잡고 노을이 피어날 때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괜찮겠다.

북성포구는 1970년대 후반 연안부두에 어시장이 생기기 전까지 수산물공판장 등이 자리했던 대규모 어업단지였다.

지금도 북성포구 옆에 만석포구, 화수포구가 남아 있다.

북성포구 식당 골목으로 들어가서 골목길을 따라가면 만석동 제3경로당이 나오고, 조금만 더 가면 고가도로 아래 마을이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