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큼하고 쫀득한 영주의 별미와 디저트

상큼하고 쫀득한 영주의 별미와 디저트

상큼하고 쫀득한 영주의 별미와 디저트

논산 연산오계 오골계가 아닌 오계라 불러다오

영주에 가면 말랑하고 쫀득한 갈등이 기다린다.

45년 전통의 소울푸드 메밀묵밥을 먹어야 할지, 30년 추억을 담은 쫄면을 먹어야 할지, 행복한 고민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나드리분식은 매콤한 쫄면의 추억을 찾는 중년층으로 붐비고, 순흥의 구수한 전통묵밥은 다이어트 음식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의 관심이 뜨겁다.

반전 매력이 있는 영주 별미에 촉촉한 순흥기지떡과 고구맘 파이까지 맛보고 나면 영주의 하루가 더할 나위 없이 달콤하고 구수하다.

영주의 옛맛, 순흥전통묵집의 메밀묵밥

소박한 가정식 식당이 유독 눈에 많이 띄는 영주에는 토박이들만 가는 동네 맛집이 많다.

한우로 유명한 한우식당은 물론이고, 풍기 인삼으로 업그레이드한 한방삼계탕, 순흥의 메밀묵밥집 등을 손에 꼽는다.

부석사 근처 마을인 순흥에는 1970년대부터 전통묵밥 한 가지만 만들어온 순흥전통묵집이 있다.

벽 두께가 두 자(60cm)가 넘을 만큼 투박하게 지은 토담집이 오랜 세월 든든하게 자리를 지켜왔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는 토담집 아랫목에 앉아 먹는 묵밥은 구수하다.

부엌에 딸린 안채 말고도 널찍한 식당이 두 군데나 있는데, 마당 가운데 야외 테이블에 앉아 먹는 묵밥도 별미다.

달고 시원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면 메밀묵밥 한 그릇에 옛집 마당의 정취가 감칠맛을 더한다.

메밀을 맷돌에 곱게 갈아 가마솥에 쑤어내고 하룻밤을 식혀야 먹을 수 있는 메밀묵은 옛맛을 이어가는 슬로푸드다.

먹고 일어서면 금세 배가 푹 꺼진다고 할 만큼 다이어트 음식으로 최고다.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는 메밀은 농약이 필요 없는 작물이라 무공해 식품으로도 주목받는다.

잘 식힌 메밀묵을 낭창낭창하게 썰어서 요것조것 올리는 고명도 푸짐하다.

송송 썰어낸 신 김치와 상큼한 무생채를 올리고, 바삭하게 구운 김가루와 깨소금을 듬뿍 뿌린다.

주인 할머니가 해마다 담그는 소고기간장으로 간을 맞추는 노란 빛깔의 멸치육수가 메밀묵을 흥건하게 적시면 메밀묵밥이 완성된다.

밋밋한 메밀묵이 요리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영주에는 쫄면의 양대 산맥이 있다.

30년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중앙분식과 나드리분식이 그것이다.

쫄면 하나로 경쟁하는 중앙분식과 돈가스, 김밥 등 다양한 분식 메뉴와 쫄면을 선보이는 나드리분식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진다.

영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굵은 생면 면발이다. 고무줄처럼 질기게만 느껴지는 쫄면이 아니다.

적당히 쫀득하면서 씹을수록 부드럽고 단맛이 느껴지는 면발에 영주 쫄면의 매력이 숨어 있다.

직접 담근 고추장을 섞어 만든다는 고추장소스는 투박하고 묵직한 맛이 입에 착착 붙는다.

분식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쫄면 한 그릇이 요리로 느껴지는 순간이다.

아삭아삭 소리도 경쾌한 단무지와 따끈한 국물 한 그릇은 매운 쫄면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궁합이다.

나드리분식에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쫄면이 있다. 어린아이의 입맛을 배려해 만들었다는 간장쫄면인데, 매운맛을 싫어하는 어른들에게 더 인기 있다.

양조간장에 사과, 양파, 오이 등 갖가지 채소를 넣어 졸이다 보면 감칠맛이 좋은 간장소스가 만들어진다고.

2인 이상 갔을 땐, 매운 쫄면과 함께 옛날식 돈가스를 시켜서 나눠 먹으면 좋다.

매콤한 쫄면에 바삭한 돈가스는 세트메뉴처럼 맛있게 어우러진다. 보기에도 클래식한 돈가스는 32년 전 레시피 그대로 요리한다.

양파와 사과, 배 등을 갈아서 생등심을 재웠다가 바삭하게 튀겨내는데, 옛날식 그레이비소스와 구수하게 어우러진다.

논산 연산오계 오골계가 아닌 오계라 불러다오

논산 연산오계 오골계가 아닌 오계라 불러다오

논산 연산오계 오골계가 아닌 오계라 불러다오

경북에서 즐기는 한옥체험 추운 겨울 따뜻한 아랫목이 그리울 때

대전에서 논산으로 가는 4번 국도를 따라가면 개태사, 돈암서원, 황산벌, 관촉사 등 제법 굵직한 역사를 간직한 문화유산이 산재했다.

길을 따라가다 보면 유독 눈에 띄는 표지판이 하나 있다. 천연기념물 제265호로 지정된 ‘연산 화악리의 오계’ 표지판이다.

오골계와는 차원이 다른 독특함과 천연기념물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보양식으로 맛볼 수 있는 특별함이 있다.

뼛속까지 검은 그대, 오계(烏鷄)를 만나보자.

왕건의 명으로 창건된 개태사 인근에는 천연기념물 중 하나인 연산 화악리의 오계를 만나볼 수 있는 지산농원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가운데 사람의 손에 사육, 관리되는 축양동물이 있는데, 올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제주 흑우를 포함해 모두 6종이다.

연산 화악리의 오계도 진도의 진도개(제53호), 제주의 제주마(제347호), 경산의 삽살개(제368호), 경주개 동경이(제540호)와 함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축양동물이다.

연산 화악리의 오계는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재래 닭으로 인정받아 1980년 천연기념물 제265호로 지정되었다.

닭은 원래 동남아시아에서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입 경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나라에 들어온 뒤 현재의 모습으로 토착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오계가 문헌상에 등장하는 것은 고려 말 문신인 제정 이달충의 문집 《제정집》인데, “요승 신돈이 오계와 백마를 먹고 정력을 보충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조선 숙종이 오계를 먹고 건강을 회복한 뒤 오계가 충청 지역의 진상품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가장 가깝게는 연산 지역의 통정대부 이형흠이 철종에게 진상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형흠은 오계의 지정 사육인인 지산농원 이승숙 대표의 5대 조부다.

오계는 흔히 알려진 오골계와는 차이가 분명한데도 오골계와 혼동하기 십상이다.

오골계는 일본의 천연기념물로, 털은 흰 반면 뼈가 검어 오골계라 불린다.

일제강점기인 1936년 《동아일보》에 오계를 소개하면서 오골계라 불러 혼선을 빚은 게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재래 닭은 오골계가 아닌 오계가 맞다. 유홍준 선생이 문화재청장으로 있을 때 비로소 오골계에서 오계로 명칭이 바뀌게 된다.

연산 화악리의 오계는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먼저 오계는 외형뿐 아니라 뼈까지 검다.

《동의보감》 <금수편>에는 “닭의 눈이 검으면 뼈도 반드시 검은데 이것이 진짜 오계”라는 내용이 나온다.

오계는 털뿐 아니라 발, 볏, 눈동자와 눈자위, 피부와 뼈까지 까맣다. 가만히 다가가서 보면 전체가 검은 가운데서도 푸르스름한 기운이 도는데 그 빛깔이 참으로 곱고 오묘하다.

오계는 야생 조류에 가까울 정도로 성질이 예민하고 까다롭다. 가둬놓고 사육하면 스트레스를 받아 죽기도 해 사육하기 힘들다고 한다.

게다가 일반 닭보다 성장 속도가 5배 정도 느릴 뿐 아니라 하루에 하나씩 알을 낳는 양계에 비해 오계는 4~5일에 한 개씩 낳는다.

몸집이 작고 활동성이 좋지만 속된 말로 “체구도 작은 놈이 하도 싸돌아다녀 살이 안 찐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오계는 경제성이 떨어진다. 1970년대 들어 양계가 도입되면서 오계는 서서히 도태되기 시작했다.

오계는 1980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천연기념물 지정 문서에 “한국의 희귀 축양동물인 오골계의 멸종을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명시되어 있을 만큼 1970년대를 거치면서 멸종 위기의 시간을 걸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당시만 하더라도 몇 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고 한다.

오계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후 2대에 걸쳐 30년 넘게 사육, 관리되고 있다.

사육이 까다롭고 지원이 없다 보니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지산농원 이승숙 대표는 1999년 아버지 병간호를 하러 내려왔다가 이곳에 발을 붙였다.

보험까지 해약할 정도로 사재를 털었고, 오계 음식점을 병행하다 보니 천연기념물 지정 사육인이 아닌 삼계탕집 사장으로 불리기도 해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집단 사육을 하는 동물들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전염병이다. 특히 조류인플루엔자(AI)는 오계에게 가장 무서운 병이다.

자칫하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오계 1,000마리가 한꺼번에 살처분되어 멸종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06년과 2008년 등 지난 몇 년 동안 경기도 동두천과 인천 무의도, 경북 봉화와 상주 등으로 오계의 피난 행렬이 이어지기도 했다.

2012년에는 피난을 가야 할 오계들이 지자체의 반발로 발이 묶이기도 했다.

경북에서 즐기는 한옥체험 추운 겨울 따뜻한 아랫목이 그리울 때

경북에서 즐기는 한옥체험 추운 겨울 따뜻한 아랫목이 그리울 때

경북에서 즐기는 한옥체험 추운 겨울 따뜻한 아랫목이 그리울 때

마음 시린 날 커피 한잔의 위로 강릉 사천진해변

여행자들 중에는 따뜻한 아랫목이 있는 고택에서의 하룻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경상북도는 양반의 고장답게 고택이 제법 많고 한옥을 체험할 수 있는 곳도 많다.

이번 겨울 경북의 고택을 찾아 따뜻한 아랫목에서 긴 겨울밤을 보내보면 어떨까?

청송은 사시사철 아름다운 주왕산을 품고 있는 고장이다.

청송읍에서 주왕산으로 가는 길, 청운동이라 불리는 마을에 성천댁이라는 오래된 고택이 있다.

조선 고종 때 행장능참봉을 지낸 임춘섭이란 사람이 이 집을 샀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집이 지어진 지는 대략 300년쯤 되었다고 한다.

성천댁은 청운동성천댁이란 이름으로 중요민속문화재 제172호로 지정되어 있다.

성천댁은 이 고택이 문화재로 지정될 당시 이곳에 거주하던 할머니의 택호다.

할머니는 16세 때 이곳에 시집와서 90세가 넘게 사셨다는데, 남편을 여읜 뒤로 혼자 고택을 지켰다고 한다.

성천댁은 경상북도의 전형적인 뜰집이다. 뜰집은 ‘ㅁ’ 자형 집으로 중앙에 마당이 있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작은 공간에 사랑방과 안방, 부엌과 외양간까지 갖췄다.

강원도나 경북 산간 지역은 겨울이 추운 데다 늘 맹수의 위협이 있었기 때문에 집안에 모든 것을 들여야 했다.

성천댁의 매력은 바로 마당이다. 아마도 이처럼 작은 마당은 세상에 없을 게다.

잘 압축해놓은 집 한가운데에 마당까지 만들다니 더구나 ㅁ자 지붕 사이로 마당만큼이나 작은 하늘도 보인다.

마당이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공간이다. 성천댁은 전체적으로 아담하면서도 짜임새가 있어 옹기종기 오붓한 느낌이 절로 든다.

성천댁은 안채와 사랑채로 이뤄졌다. 안채와 사랑채에는 각각 방이 2개 있다.

사랑채는 미닫이문으로 나뉘고, 안채는 뒷방과 큰방으로 각각 나뉜다.

사랑채에는 차를 마실 수 있는 다구가 준비되어 있고, 안마당에서는 투호, 널뛰기, 자치기 등 전통놀이를 즐길 수 있다.

문간채는 입식 주방과 간단한 취사도구가 준비되어 있고, 화장실과 샤워실, 세탁기도 들여놓았다. 예약은 전화로만 받는다.

1990년 임하댐 건설로 지례마을이 물에 잠겼다. 지례마을은 조선 숙종 때 남인의 종장이었던 지촌 김방걸을 입향조로 3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유서 깊은 마을이었다.

댐 건설로 마을은 통째로 사라지고, 일부 고택만이 옛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산중턱으로 옮겨졌다. 바로 지례예술촌이다.

지촌종택과 지촌제청, 지산서당 등이 1985년 문화재로 지정되어 마을 뒷산 골짜기에 차례로 이전되었다.

여기에는 특별한 사연이 깃들어 있다. 마을이 수몰되기 전 《꽃신》의 저자인 소설가 김용익 씨가 마을을 찾았는데

곧 수몰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듣고 미국의 예술인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예술인촌은 문학, 미술, 음악을 하는 예술가들이 오래도록 머물며 예술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집단 거주지를 말한다.

김용익 씨의 제안으로 지촌종택과 부속 건물들을 옮겨 지례예술촌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지례예술촌은 지난 2011년에야 도로가 포장됐을 정도로 오지 중 오지다.

안동에서 청송으로 가는 34번 국도변에서 수애당을 지나서도 11km에 이르는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야 지례예술촌에 이른다.

예전에 프랑스 대사 부부가 지례예술촌을 찾아가다 험한 산길에 길이 산중으로 이어지자 납치로 오해했다는 일화도 있다.

하지만 오지에 있기에 창작활동을 하는 예술인뿐 아니라 수려한 풍경 속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늘 끊이지 않는다.

마음 시린 날 커피 한잔의 위로 강릉 사천진해변

마음 시린 날 커피 한잔의 위로 강릉 사천진해변

마음 시린 날 커피 한잔의 위로 강릉 사천진해변

당진으로 떠난 알찬 하루 여행 심훈기념관에서 우렁쌈장까지

커피와 휴식, 나아가 힐링은 한 팀이다. 덕분에 커피를 품은 강릉이 힐링의 고장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강릉 커피 투어는 제법 여러 동선으로 즐길 수 있는데 오늘은 아직 덜 알려진 사천진해변을 중심으로 살펴보려 한다.

이미 유명해진 안목항이나 <보헤미안><테라로사>보다 조용한 곳에서 나를 위한 한잔 선물해보는 것은 어떨까.

살다보면 한 박자 쉬어가야 할 때가 있다. 이럴 때 우리는 ‘한잔’을 떠올린다.

언제든 한잔 나눌 누군가 옆에 있다면 이 풍진 세상 살아갈 힘쯤 솟아나지 않을까.

후들거리는 두 다리로 간신히 땅을 딛고 있을 때, 이때 진짜 한잔이 간절해진다.

나와 단 둘이, 오롯이 나에게 허락된 시간을 함께 할 소중한 한잔.

알코올, 차(茶), 커피 등이 곁을 채울 것이다.

그 중 커피는 알코올보다 안전하고 차(茶)보다 다가가기 수월해 많은 이들이 찾는다.

그래서일까. ‘커피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땅 곳곳에 커피 전문점들이 들어서고 있다.

빠듯한 일과 중 커피 한잔 마시며 쉬어가는 게 일상이 되었으니 그리 과한 표현도 아닌 듯 하다.

그렇다고 전문점에서만 커피를 맛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부담없이 만날 수 있는 인스턴트 커피도 있다. 어쩌면 커피는 생각보다 더 깊이 우리 일상에 스며들었는지 모른다.

다만 지금부터 만나러 갈 오늘의 커피는 좀 멀리 있다. 마음 시린 어느 날, 그대를 위로해 줄 마법 같은 한잔이니 조금 멀어도 그저 기억해주시라.

언젠가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말하고 싶지 않을 때, 누구도 보고 싶지 않은 순간과 맞닥뜨리게 된다면 이곳으로 한잔 하러 가면 어떨까.

여행 좋아하거나 커피 좋아하는 이들은 이쯤 오늘의 여행지를 눈치 챘으리라. 맞다.

커피하면 빼놓을 수 없게 된 고장, 강릉이다. 소나무 향기 가득한 강릉에 커피향이 퍼지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이 땅의 드립커피 1세대로 꼽히는 <보헤미안>과 <테라로사>가 자리를 잡고 난 뒤 부터였을까.

커피 자판기들이 안목항에 들어서면서 부터였을까. 커피와는 딱히 인연이 없을 것 같은 강릉은 대한민국 커피의 메카로 자리 잡았다.

앞의 몇몇 짐작들이 강릉을 커피의 메카로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커피 탐사보도가 아니라 상처받은 영혼을 달래러 가는 길이니 ‘힐링’에 최적화된 여행 동선부터 꾸려보자.

커피의 고장답게 강릉은 커피 집단 거주지역이 제법 많다.

동해안을 따라 쭉 뻗은 지도를 살펴보자.

커피 항구로 알려진 안목항부터 수산시장으로 유명한 주문진까지가 이번 여행의 큰 동선이고 이 둘의 가운데 즈음 자리한 사천진해변이 메인이다.

사천진으로 ‘한잔’하러 가보자.

어째서 안목이나 연곡, 경포가 아니라 사천진이냐고 묻는다면 가장 큰 이유로 그의 무명을 들겠다.

안목항처럼 깔끔하게 정비된 맛은 없지만 독채로 뚝뚝 떨어진 커피가게들이 바다를 향한 모습이 풋풋하고 정겹다.

게다가 아직 해안을 따라 가득 채워지지 않아 여유도 있다.

완성되지 않은 모습 덕분에 모르는 이들은 드라이브를 하며 지나친다.

그래서 사천진의 커피거리는 소중하다. 모두에게 알려지지 않은 덕분에 누구나 찾아들지 않아 안도감을 준다.

그렇다고 완전히 외떨어지지도 않아 혼자서도 찾아들기 부담스럽지 않다.

당진으로 떠난 알찬 하루 여행 심훈기념관에서 우렁쌈장까지

당진으로 떠난 알찬 하루 여행 심훈기념관에서 우렁쌈장까지

당진으로 떠난 알찬 하루 여행 심훈기념관에서 우렁쌈장까지

오리 이원익 선생을 만나는 충현박물관

화려한 슈퍼스타는 없지만 한번 빠져들면 헤어날 수 없는 그곳.

당진의 매력은 평범하면서도 독창적인 데 있다. 소설 《상록수》가 태어났고, 일출과 일몰이 한 땅에 나고 진다.

방조제를 따라 포구 풍경이 줄을 잇고, 해풍과 황토의 합작으로 자란 별미들이 기다린다.

게다가 경기도 평택에서 서해대교를 건너면 곧바로 당진 땅이다.

서울에서 고작 1시간 남짓이니 알토란 같은 당진을 하루에 누벼보자.

행담도를 건너 당진으로 들어서면 가장 가까운 곳이 필경사다.

서울에서 1시간 반이면 닿는 곳이니 부지런만 떨면 10시 전에 도착이 가능하다.

필경사는 얼핏 이름만 들어서는 절이라고 오해하기 십상이다.

그곳은 심훈이 《상록수》를 집필했던 집이다. 그는 서울 생활을 접고 내려와 손수 집을 짓고 필경사라는 이름을 붙였다.

밭을 가는 농부의 마음으로 붓을 잡는다는 뜻을 담았다.

일제의 수탈로 피폐해가는 농촌을 살리려는 마음으로 집필한 《상록수》는 전국 청년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게 된다. 마을 일대와 당진의 포구들이 《상록수》의 무대가 되었다.

심훈의 추모일인 지난 9월 16일, 필경사 옆에 심훈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전시관으로 들어서면 바닥에 새겨진 친필이 그의 영혼처럼 반긴다.

“높은 곳에 올라 이 땅을 굽어보니 큰 봉우리와 작은 뫼 뿌리의 어여쁨이여”, 그의 시 <나의 강산이여> 앞부분이다.

전시관에는 친족들이 소중하게 지켜온 육필 원고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3.1운동 가담으로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었던 시절에 쓴 ‘어머니께 올리는 글월’ 등 수백 편의 원고 사본과 그가 사용했던 책상, 손때 묻은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시집 《그날이 오면》의 검열본이다.

현재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이 시의 원고에는 빨간 펜으로 원고를 난도질한 일제의 검열 기록이 선명하게 남아 당시의 억압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날이 오면》은 1932년 조선총독부의 검열로 결국 출판이 좌절되었고, 그가 죽은 뒤인 1949년에 간행되었다.

심훈의 작품과 민족정신에 젖어 있는 사이 어느덧 점심시간이다. 필경사에서 5분 거리에 조희숙의 “상록수밥상”이 있다.

명소 옆에 근사한 밥집이 있다는 건 여행자에게 행운이다. 당진의 해풍과 황토에서 자란 것으로 차려내는 상록수밥상은 농촌진흥청이 지정한 농가맛집이다.

늙은 호박으로 담근 호박지, 장구항에서 잡은 실치, 쌀가루로 튀겨 더 바삭하고 고소한 두릅튀김, 들깨를 갈아서 된장과 김치를 넣고 보글보글 끓여낸 깻묵장,

서울에서 자란 조희숙 사장이 친정어머니한테서 배운 북어찜에다가 불고기,

꽃게, 굴젓 등 푸짐하고 맛깔스러운 진수성찬이 바로 상록수밥상이다.

상록수큰밥상은 차돌박이된장, 상록수밥상은 깻묵장이 주인공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배를 채웠으니 이제 서해의 낭만에 빠져볼 시간이다.

상록수밥상에서 한진포구는 10분 거리다. 한진포구에서부터 바다를 따라 왜목마을까지 차를 몰아보자.

바다 풍경이 쭈욱 펼쳐지는 방조제 드라이브 길은 당진 9경에 속할 만큼 아름답고 인기가 높다.

왜목마을은 북쪽으로 목을 쭉 빼고 있는 당진 땅끝에 자리 잡아 마을 양쪽이 바다다.

덕분에 일몰과 일출을 모두 볼 수 있어 해가 바뀌는 때면 사람으로 넘쳐나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한적한 포구의 멋을 자아낸다.

오리 이원익 선생을 만나는 충현박물관

오리 이원익 선생을 만나는 충현박물관

오리 이원익 선생을 만나는 충현박물관

영월 동강 어라연 잣봉 트레킹 자연이 그린 산수화

조선 선조와 광해군 때의 이야기를 다룬 사극 <징비록>과 <화정>이 최근 방영되고 있다.

<징비록>은 서애 류성룡 선생의 이야기를, 화정은 광해군 시대 정명공주의 삶을 그린다.

비록 주연은 아니지만 두 드라마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또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 있다.

오리 이원익 선생이다. 그는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등 격동의 시대를 거치면서 나라를 위해 묵묵히 헌신한 명재상이자 이 시대의 귀감이 되는 청백리였다.

오리 이원익 선생의 삶과 유물을 만나볼 수 있는 광명 충현박물관을 찾아가 본다.

영의정만 다섯 차례 오른 명재상

구름을 뚫고 솟아오른 봉우리라 불리는 구름산.

광명시 구름산 서쪽 자락에는 조선시대 명재상이자 청백리로 이름을 드높인 오리 이원익 선생의 흔적이 담긴 충현박물관이 있다.

먼저, 오리 이원익 선생의 삶을 들여다보자.

선생은 조선 명종 때 태어나 선조, 광해군, 인조 대에 이르기까지 60여 년에 걸쳐 공직에 몸담았다.

권력과 부에 집착하지 않고 원칙과 소신으로 국난을 헤쳐나간 명재상이자 청백리, 그리고 백성을 사랑했던 정치가였다.

선조부터 인조 대까지는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이라는 두 차례 국난을 겪었고, 당쟁으로 말미암아 조정 대신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분란의 시대였다.

이원익 선생은 이 혼란의 시대를 거치며 다섯 차례나 최고 중앙관직인 영의정에 올랐다.

선생의 애민사상은 그를 기리기 위해 살아생전에 생사당을 세운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5년 전, 그는 안주목사로 부임했다.

평양과 안주에서 각각 한 글자씩 따서 평안도라 불린 만큼 안주는 변방이지만 무척 중요한 지역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백성을 위해 양곡을 요청해 풍작을 이루었고, 양잠도 장려하는 등 백성들을 보살폈다.

백성들이 그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생사당을 세운 것도 이때 일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를 의주까지 피난시킬 수 있었던 것도 안주목사 때 선정을 베풀어 민심을 얻은 결과였다.

인조 때 이괄의 난과 정묘호란 당시에도 임금을 모시고 충남 공주와 강화도로 각각 호종했다.

당시 그의 나이 78세, 81세에 이르는 노구의 몸이었다.

인목대비 폐위를 반대하다 홍천으로 유배되기도 했고, 인조 즉위 후 광해군을 죽이려 하자 몸소 막았으며, 서애 류성룡이

충무공 이순신을 비판할 때 끝까지 믿음을 보낸 것도 그였다.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개의치 않고 소신을 펼친 일화는 그가 얼마나 강직한 성품을 지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공직에만 60여 년간 몸담았고,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을 거치며 망가질 대로 망가진 조선을 위해 헌신했지만,

아쉽게도 가정에는 소홀했던 듯하다. 부인 영일 정씨가 1603년에 세상을 떠나자 부인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도망시(悼亡詩)>에 미안한 마음이 애절하게 배어 있다.

“상투를 틀고 쪽 찔러 부부가 된 지 / 지금에 와서 여러 해 지났구려 / 벼슬하러 사방을 나다녔으니 / 독수공방하는 날 얼마나 많았던가! /

한 방에 함께한 날이 며칠이었는가? / (중략) / 나는 병에 시달리며 아직 죽지를 않고 / 지루하게도 숨만 쉬고 있노라 /

널을 어루만지며 그대를 떠나보내니 / 그대 할 일 다 마친 것 부럽소 / 그대를 따라갈 것 몹시 원하지 / 세상에 오래 사는 것 원치 않으니 /

황천에서 혹시나 서로 다르게 되면 / 업보의 인연 응당 이전과 같으리.”

부인이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지나서야 선생도 부인 곁에 나란히 잠들었다.

영월 동강 어라연 잣봉 트레킹 자연이 그린 산수화

영월 동강 어라연 잣봉 트레킹 자연이 그린 산수화

영월 동강 어라연 잣봉 트레킹 자연이 그린 산수화

설날 대비 고속도로 휴게소 별미

산골마을 강원도에서도 오지로 꼽히는 영월.

그리고 영월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동강. 우리가 동강을 만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직접 물길에 올라 래프팅을 하거나 물줄기를 따라 두발로 걷거나.

모두 매력적이지만 이번에는 동강 바로 옆에서 걷고 봉우리에 올라 동강 줄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걷기’를 택했다.

시작되는 여름, 천혜의 자연을 자랑하는 동강으로 떠나보자.

동강 줄기 최고의 비경으로 꼽히는 ‘어라연’을 걷기 전 동강부터 살펴보자.

산골마을 강원도에서도 오지로 꼽히는 정선과 평창, 영월 땅을 차례로 적시는 동강은 뼝대(강원도에서 ‘벼랑’을 이르는 말)를 끼고 굽이굽이 흐른다.

물줄기의 전체적인 흐름을 짚어보자면 태백 금대봉 자락 검룡소에서 발원한 물이 골지천을 이루고 정선에서 송천과 만난다.

여기에 오대산에서 발원한 오대천이 몸을 섞으며 비로소 ‘동강’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동강은 영월에서 서강과 합수해 남한강 줄기를 이뤄 한양으로 이어진다.

동강을 살펴봤으니 본격적인 동강 여행을 시작해보자.

가장 대중적인 거운분교~잣봉~어라연~된꼬까리~만지나루~거운분교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를 걷기로 했다.

총 7km로 쉬엄쉬엄 4시간이면 충분하다. 안내 표지판은 ‘3시간30분 소요’로 소개한다.

초등학생 이상이라면 충분히 걸을 수 있지만 오르막 돌길이 부담스럽다면 잣봉에 오르는 대신 처음부터 동강 줄기를 따라

만지나루~어라연까지 갔다 되돌아오는 것도 괜찮다. 왕복 2시간30분 소요.

울창한 숲과 굽이치는 물줄기 모두를 만나러 일단 잣봉으로 향한다.

비포장도로와 숲길을 지나 가파른 오솔길이 시작된다.

오르막이지만 방향 팻말이 잘 세워져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흙길과 돌길을 지나 능선에 올라서면 낙엽송 군락지 사이로 다시 완만한 숲길이 펼쳐진다.

드문드문 자리한 털중나리가 수줍게 고개를 숙이고 사람들을 반긴다.

얼마나 걸었을까. 나뭇잎 틈새로 동강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좀처럼 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 감질날 즈음 첫 번째 전망대가 나온다.

잣봉에 오르기 전 두 번의 전망대와 닿는다. 첫 번째 전망대에서는 어라연의 일부만 보인다.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두 번째 전망대에서 굽이치는 물줄기와 어라연이 한눈에 펼쳐지니까.

아직 이른 여름이라 래프팅을 즐기는 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잔잔한 물길 위로 뗏목에 오른 떼꾼들이 절로 그려진다. 강원 산골에서 한양까지 이어지는 물줄기에 속하는 동강.

교통이 발달하기 전, 동강은 강원 산골에서 한양까지 목재를 운반하는 최적의 물길로 경복궁 재건 즈음 최고의 전성기를 맞는다.

당시 태백과 정선 등 강원 남부에서 베어낸 목재들을 뗏목으로 엮어 동강 줄기에 올린 것.

굽이굽이 동강위에 오른 뗏목은 남한강을 따라 한양 광나루까지 흘러갔다.

전성기가 지난 후에도 1957년, 강원 함백선 개통 전까지 떼꾼들은 계속해서 물길에 올랐다.

동강 이야기에 떼꾼이 빠질 수 없는 이유다.

뗏목이 알아서 한양까지 갈 수는 없었을 터다.

뗏목위에 올라 이들을 운반하는 ‘떼꾼’은 강줄기 사람들에게 ‘큰돈’을 벌 (아마도) 유일한 기회였으리라.

오죽하면 ‘떼돈’이라고 했을까. 하지만 세상에 쉬이 벌 수 있는 돈이 있으랴.

밖에서 보기에는 그저 잔잔하게만 보이지만 동강은 구불구불한데다 거센 여울까지 품은 어려운 물길이다.

큰 비까지 내려 불어난 물은 더 위험했다. 그래도 떼꾼들은 ‘아침밥이 사자밥’이라면서도 묵묵히 물길에 올랐다.

그 중에서도 평창 미탄의 황새여울과 영월 거운리의 된꼬까리는 ‘떼꾼들 무덤’이라고 불리던 위험구간.

‘우리 집 서방님은 떼를 타고 가셨는데 황새여울 된꼬까리 무사히 지나가셨나’라는 노래 자락에서 서방을 물길에 보낸 아낙들의 근심이 묻어난다.

천신만고 끝에 황새여울을 건너오면 잔잔하고 아름다운 어라연에 닿았다.

설날 대비 고속도로 휴게소 별미

설날 대비 고속도로 휴게소 별미

설날 대비 고속도로 휴게소 별미

숲과 승마 즐기는 일석이조 힐링 여행 영천 운주산 승마자연휴양림

언제부터였을까.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제대로 된 식사는 물론 커피전문점에서 후식까지 즐기게 된 것은. 호두과자, 감자구이, 오징어,

어묵바, 그리고 우동 등의 간식들로 허기를 달래며 대충 쉬어가는 공간이던 휴게소는 여전히 거침없이 진화중이다.

먹거리는 물론 아웃도어 전문점 등의 의류 매장까지 자리를 잡았다.

휴게소에서 쇼핑까지 가능한 시대가 된 것이다. 어쩌면 휴게소에서 맛본 그 음식을 잊지 못해 휴게소를 목적지로 달려갈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현실과 여행지 사이를 징검다리처럼 잇던 휴게소는 징검다리가 아닌 독자적인 ‘섬’이 되는 것은 아닐까.

조만간 휴게소로 떠나는 여행지도가 만들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휴게소에서 맛본 그 음식을 잊지 못해 휴게소를 목적지로 달려갈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현실과 여행지 사이를 징검다리처럼 잇던 휴게소는 징검다리가 아닌 독자적인 ‘섬’이 되는 것은 아닐까.

조만간 휴게소로 떠나는 여행지도가 만들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은 휴게소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에 적합한, 맛있는 메뉴부터 알아볼 계획이다.

고속도로 위의 맛집, 휴게소 별미를 필두로 각 휴게소만의 특징을 살펴보자.

입으로 맛본 즉각적인 포만감은 오래도록 휴게소를 기억하게 해 줄 것이다.

코앞으로 다가온 추석 한가위를 대비해 유용하게 활용하시길.

올해는 부모님께 얼굴 보여드리러 가는 효도를!

서울에서 대전, 대구를 지나 부산까지 이어지는 경부고속도로는 오래된 시간만큼 많은 휴게소들이 자리한다.

다양한 지역 별미를 맛볼 수 있는 기쁨까지 누릴 수 있으니 목적지를 중심으로 들를 수 있는 휴게소를 찾아보자.

경부고속도로에 자리한 휴게소 별미로는 안성휴게소의 안성국밥, 망향휴게소의 버섯빠금장 된장찌개, 금강휴게소의 도리뱅뱅이 정식 등이 꼽힌다.

아무래도 신속하게 맛볼 수 있는 국밥종류가 휴게소에서는 강세다. 아이들 입맛에 잘 맞는 돈가스도 인기.

여기에 망향휴게소의 버섯빠금장 된장찌개와 금강휴게소의 도리뱅뱅이 같은 지역 특산품이 더해진 음식도 찾는 이들이 많다.

금강줄기의 민물고기로 만드는 도리뱅뱅이 정식은 요리하는 시간이 제법 필요하므로 전화로 미리 주문해 두면 기다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서울에서 전남 목포까지 서해안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341km의 길.

경부고속도로 다음으로 긴 거리를 자랑한다. 태안반도와 변산반도 등 아름다운 서해안을 따라가는 재미가 있다. 서해안 별미는 물론 일몰도 감상할 수 있다.

경기도와 충청남도를 잇는 서해대교를 건너면 행담도 휴게소와 닿는다. 휴게소 안에서 다양한 음식은 물론 쇼핑까지 즐길 수 있다.

뷔페식으로 원하는 음식을 선택해 맛볼 수 있는 자율식당은 단골식객이 있을 정도로 찾는 이들이 많다.

혼자서 식사하기에는 약간 부담되고 서넛이서 함께 식사한다면 경제적인 가격으로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또 서해 줄기를 따라 자리한 길 위를 달리는 만큼 서산어리굴젓백반(서산휴게소)과 해풍으로 키운 쌀로 지은 해나루쌀 비빔밥(7500원) 등

서해 줄기 특성이 묻어나는 별미도 맛볼 수 있다. 소금기 더해진 어리굴젓은 사계절 내내, 돌솥굴밥은 한여름을 제외하고 맛볼 수 있다.

아쉽게도 이번 한가위에는 돌솥굴밥은 맛보기 어렵지만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0월부터는 가능하므로 기억해두자.

냉동굴이 아니라 생굴로 요리해 굴밥의 맛을 음미하기에 무리가 없다.

숲과 승마 즐기는 일석이조 힐링 여행 영천 운주산 승마자연휴양림

숲과 승마 즐기는 일석이조 힐링 여행 영천 운주산 승마자연휴양림

숲과 승마 즐기는 일석이조 힐링 여행 영천 운주산 승마자연휴양림

고향의 맛? 고양의 맛! 웅어회 미꾸라지털레기 닭칼국수

휴양림 하면 ‘숲’과 ‘휴식’이란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숲이 내뿜는 피톤치드 속에 몸도 마음도 치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 생활에 찌든 사람들에게는 더욱더 절실한 단어일지 모른다.

경북 영천에 자리 잡은 운주산 승마자연휴양림에서는 숲에서 누리는 휴식 외에도 또 다른 즐거움이 있는데, 바로 승마다.

숲에서 몸과 마음을 쉬고, 승마로 활력을 돋운다. 운주산 승마자연휴양림은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힐링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운주산 승마자연휴양림은 항상 구름에 휩싸여 있어 ‘구름이 머무르는 산’이란 뜻을 지닌 운주산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언뜻 들으면 산세가 험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휴양림은 운주산 끝자락의 완만한 구릉지대에 조성되어 있다.

완만한 산세를 이루는 숲과 넓은 구릉지에 자리해 휴양림과 승마장에 적합한 지리적 조건을 갖춘 곳이다.

운주산 승마자연휴양림이 우리나라 최초로 휴양림과 승마장이 결합된 자연휴양림이 된 이유다.

아쉽게도 휴양림 내에는 특별한 생태체험 프로그램이 없다. 그런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휴양림을 둘러싸고 있는 숲이 리기다소나무로 이루어진 단순림이라 다양한 생태 환경을 접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북미가 원산지인 리기다소나무는 생장 속도가 매우 빠르고, 척박한 땅에서도 생존 능력이 뛰어난 소나무다.

1960년대 이후 산림녹화사업이 본격화하면서 일등공신 대접을 받기도 했다.

북미에서는 지름 1m, 최대 높이 30m까지 자란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생장 환경이 다른 탓인지 30m에 이르는 리기다소나무는 아직 없다고 한다.

휴양림 주변의 소나무 숲 역시 1970년대에 연료림으로 조성되었다.

리기다소나무 숲에는 간혹 적송의 모습이 눈에 띈다. 리기다소나무의 생장 속도를 따라가려는 듯, 언뜻 리기다소나무의 길쭉한 모양새를 닮았다.

생장이 빠른 리기다소나무와 경쟁하느라 애처롭기 그지없다.

방문자센터 좌우로 난 길은 휴양림을 한 바퀴 도는 약 3km의 임도로 이어져 있고, 정상 전망대에서 능선을 따라 중세돈지의 숲속의 집까지 솔바람길로 불리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방문자센터를 출발해 임도를 따라 전망대를 경유해 방문자센터로 내려오는 코스는 총 4km 정도로 한 시간 반이면 쉬엄쉬엄 다녀올 수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대구와 포항을 잇는 고속도로 뒤로 영천댐과 멀리 보현산 자락이 길게 이어진다.

전망대 입구까지는 임도로 이어져 있어 차로도 갈 수 있지만, 능선을 따라가는 길은 온전한 리기다소나무 숲길로 큰 기복 없이 편안하게 걷기 좋은 길이다.

운주산 승마자연휴양림은 휴양림 시설과 승마장 시설이 별도로 나뉘어 있지만, 서로 잇닿아 있어 찾아가기 쉽다.

휴양림은 완만한 산골짜기를 따라 길게 이어지고, 울창한 소나무 숲이 둘러싸고 있다. 33㎡, 46㎡, 49㎡, 71㎡ 등 다양한 크기의 숲속의 집과 10개의 야영장 시설이이 있다.

누구나 언제든지 편하게 와서 머물다 갈 수 있는 곳이다.

영천은 말의 역사가 제법 깊은 고장이다. 영천 서북쪽에 자리 잡은 신녕면은 조선시대 지방역원의 중심인 장수역이 있던 곳이다.

역은 말과 역졸을 두고 한양과 지방을 오가는 문서를 전달하거나 공물 운송, 관원과 사신의 영접 기능을 담당하던 곳이다.

장수역은 종6품인 찰방이 역을 운영하고 관리했는데, 조선 태조 때까지만 하더라도 17개 역을 거느릴 정도였고, 10여 마리의 역마와 마위전(역마의 유지와 관리에 필요한 토지)을 보유하고 있었다.

일본으로 가던 조선통신사도 안동․의성을 거쳐 장수역을 지났고, 조선통신사를 위해 경상감사가 전별연을 베풀기도 했다.

그만큼 영천은 말의 고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향의 맛? 고양의 맛! 웅어회 미꾸라지털레기 닭칼국수

고향의 맛? 고양의 맛! 웅어회 미꾸라지털레기 닭칼국수

고향의 맛? 고양의 맛! 웅어회 미꾸라지털레기 닭칼국수

진짜 순대 백암에서 맛보다

임금님이 드시던 진상품으로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일품인 웅어회와 미꾸라지에 갖은 야채와 국수 등을 넣고 얼큰하게 끓여낸 미꾸라지털레기,

닭을 푹 고아낸 육수에 쫄깃한 면을 푸짐하게 넣은 닭칼국수까지 고양의 맛은 든든하고 넉넉하다. 영양학적으로도 뛰어난 음식들이라 보양식으로도 그만이다.

임금님이 드시던 물고기로 잘 알려진 웅어는 미식가들 사이에서 봄철 최고의 별미로 꼽힌다.

습성이 연어와 비슷해 연안에서 살다가 봄이 되면 산란을 위해 강으로 거슬러 올라오는데, 이 때가 살도 많고 기름져 씹을수록 고소하다.

멸치과에 속하는 웅어는 칼슘과 인, 철분은 물론 비타민 A가 풍부해 예부터 왕의 진상품에 속했다.

웅어는 갈대에 숨어산다고 하여 위(葦)어로도 불렸는데, 조선 말기에는 궁궐의 음식을 관리하던 사옹원에서 웅어만을 따로 잡아 진상하는 관청인 위어소를 두었다는

기록도 남아있을 만큼 귀한 음식이었다.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 <송남잡지(松南雜識)>

등의 고서적에 따르면 당시 웅어는 한강의 행주(고양의 옛 지명)나 대동강, 임진강 등에서 많이 잡혔으며 이 중 행주가 임금의 진상품을 담당했던 것으로 적혀 있다.

임금이 먹던 생선이라 그런지 웅어를 둘러싼 이야기들도 흥미롭다. 웅어는 금강 등 옛 백제문화권에서도 즐겨 먹는 음식인데,

이 지역에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백제 의자왕(?~660)이 웅어를 몹시 즐겨 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당나라 장수인 소정방이 백제를 함락한 후 그 맛이 궁금하여 웅어를 잡아오라고 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웅어들은 모두 도망간 후였다.

그래서 이 지역에선 의리 있는 물고기라고 하여 의(義)어라고도 부른다.

웅어는 성질이 급하여 잡힌 즉시 죽어버리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내장과 머리를 떼어내고 얼음에 보관하는데,

요즘은 냉동기술이 발달해 사계절 언제든 웅어회를 맛볼 수 있다.

현재 식당들에서 내는 웅어회는 이처럼 냉동된 회를 후추와 참기름을 넣고 야채와 버무린 형태다.

냉동을 거친 횟감이라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씹을수록 고소하고 은은한 향이 배어난다.

제철인 4~5월이면 살이 더욱 연하고 부드러우며 달콤한 수박향이 난다고 한다.

고양에선 능곡역 근처에 자리한 ‘자유로장어웅어회’가 대표적인 맛집으로 꼽힌다.

점심시간이면 머리가 희끗한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웅어회를 즐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데,

맛도 좋을 뿐 아니라 먹고 나면 임금이 된 것처럼 기운이 불끈 솟는 보양식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고양의 향토음식 중 하나인 미꾸라지털레기는 그 독특한 이름부터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고 갖은 채소와 민물새우, 국수, 수제비 등 있는 것은 모두 털어 넣는다는 의미에서 털레기다.

고재종 시인의 ‘한 바탕 잘 끓인 추어탕으로’라는 시를 보면 논두렁에서 미꾸라지를 양동이 가득 잡아

올렸다는 소식에 동네 아낙들이 각자 집에서 갖은 양념을 들고 나오는 모습이 생“누군 풋배추 고사리를 삶아 오고,

누군 시래기 토란대를 가져오고, 누군 들깨즙을 내 오고 태양초 물을 갈아 오고, 육쪽마늘을 찧어 오고 다홍고추를 썰어 오고…”

생하게 묘사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