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부자 되는 소박한 산골 여행 남원 월평마을
마음은 부자 되는 소박한 산골 여행 남원 월평마을
산촌의 새벽은 민박 할머니가 밥 짓는 소리로 시작되며, 장작 쌓인 마당에서 능선 위로 여명이 깃든다. 군불 때는 연기와 안개가 어우러진 아득한 시간을 불러온다.
남원 월평마을과 매동마을을 잇는 지리산둘레길은 가을 산골 풍경과 촌부의 삶을 만날 수 있는 길이다. 숲길을 걷다 감이 주렁주렁 달린 마을 담장을 지나며, 따끈한 민박에서의 일상이 펼쳐진다.
민박 비용은 2인 기준으로 4만~6만 원 정도이며, 산나물이 듬뿍 들어간 식사는 7000~8000원이다. 백만 불짜리 풍경과 할머니가 내주는 막걸리, 대추, 사탕, 그리고 함박웃음이 함께한다. 이 소박한 산골 여행에서 마음은 자연스럽게 부자가 된다.
월평마을과 매동마을을 잇는 길은 지리산둘레길 인월-금계 구간(3코스)에 속한다. 이 길은 남천을 따라 흐르다 논둑과 마을을 만나고, 숲과 고개를 넘어 다시 마을로 이어진다. 남원 인월에서 함양 금계까지 이어지는 이 구간은 전라도와 경상도를 연결하며, 지리산둘레길의 시범 개통 사연이 깃든 곳이다.
인월면 소재지에서는 큰 오일장이 열리고, 마을 주민들은 과거 신작로가 생기기 전 이 길을 걸어 인월장에 오갔었다.
월평마을-매동마을 코스는 월평마을에서 출발한다
서울에서 인월지리산공용터미널까지 시외버스가 다니며, 구인월교를 건너면 바로 월평마을에 도착한다. 이곳에는 지리산둘레길 남원인월센터가 있고, 독립서점이자 북카페인 '도보책방'이 자리 잡고 있다.
남원 주천이나 운봉에서 여행을 시작하거나 매동마을에서 반대 방향으로 걸을 경우, 월평마을에서 묵을 수 있다. 골목마다 벽화가 있는 이 마을은 '달이 뜨면 보이는 언덕'이라는 뜻으로, '달오름마을'로도 불린다.
월평마을에서 매동마을까지는 느린 걸음으로 4시간 정도 소요된다. 지리산을 병풍 삼은 산골 마을, 숲길, 냇물, 고개가 이 길에 담겨 있다. 길은 월평마을 앞 남천과 논둑을 따라 시작해 중군마을로 이어진다.
중군마을은 임진왜란 때 중군 부대가 주둔한 곳으로, 담장 너머로 감이 익어가고 마늘, 고추를 말리는 일상이 펼쳐진다. 마을을 지나면 본격적인 숲길이 시작되며, 갈림길에서 경사가 가파른 언덕을 선택하면 좁고 고즈넉한 숲길이 그늘을 제공한다.
이 길은 외딴 암자 선화사를 거쳐 수성대로 연결된다. 수성대의 맑은 물은 중군마을과 장항마을 주민들의 식수원으로 쓰인다. 수성대 초입 쉼터는 길손에게 부침개, 오미자차, 막걸리를 내놓는 명물이다. 지리산둘레길 인월-금계 구간 곳곳에 이런 쉼터가 있었으나, 현재 3~4곳이 주말이나 공휴일에 운영된다.
배너미재를 넘으면 지리산 자락의 탁 트인 정경과 함께 숨찬 숲길이 마무리된다.
숲길 끝자락에 장항마을 당산 소나무가 서 있다
장항마을에서는 지리산을 배경으로 당산제를 지내며, 수령 수백 년의 당산나무 아래 옛 흙담 길이 고즈넉하다. 마을 너머로 바래봉 능선 자락이 내려앉아 있다.
둘레길과 나란히 흐르던 남천은 만수천을 만나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장항마을 장항교를 건너면 매동마을이 나오며, 이곳은 인월-금계 구간의 중간 지점으로 여행자들이 하룻밤을 보내기에 적합하다.
매동마을에는 할머니가 운영하는 민박이 10여 곳 있으며, 과거 주요 수입원은 고사리 재배와 꿀 채취였다. 민박 아침상에는 뽕나무 새순, 머위, 장녹나물 등 산나물이 풍성하다. 직접 재배한 꽈리고추찜과 고들빼기김치도 향긋하게 제공된다.
막걸리 한 병을 건네며 할머니의 세월이 담긴 이야기를 전하는 곳도 있다. 빛바랜 사진 속 사연과 미소가 마당을 따뜻하게 채운다. 떠날 때 사탕 한 줌을 쥐여주며, 알뜰한 걷기 여행에서 마음은 지리산처럼 든든해진다.
둘레길 이정표에서 살짝 벗어나면 볼거리가 모여 있다. 매동마을 인근 퇴수정(전북문화재자료)은 조선 후기 선비가 세운 정자로, 누각 가운데 방 한 칸을 둔 독특한 구조다. 정자 앞으로 바위와 냇물이 어우러진다.
산내면 소재지를 지나 남천을 따라 걸으면 남원 실상사(사적)가 나타난다. 통일신라 때 창건한 천년 고찰로, 초입의 석장승과 증각대사탑(보물), 수철화상탑(보물)이 인상적이다. 실상사 경내와 주변 숲에 흩어진 승탑을 둘러보는 승탑순례길도 조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