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꼬막을 굽이굽이 돌아 걷는 길 부산 동구 초량이바구길
까꼬막을 굽이굽이 돌아 걷는 길 부산 동구 초량이바구길
세상의 숱한 길들 너머로 사람 살아가는 마을길이 있다. 부산 동구 초량동의 초량이바구길을 걸으며 과거로 여행을 떠나보자. '이바구'는 '이야기'의 부산 사투리로, 이 길은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후, 그리고 70~80년대 산업혁명기까지의 굴곡진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부산역을 지나 길 하나를 건너면 초량이바구길이 시작된다. 부산항과 인접한 동구의 차이나타운 옆에 위치해 번잡함을 벗어나 옛 이야기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초입에는 1922년 부산 최초의 근대 병원으로 사용된 백제병원 건물과 부산 최초의 창고였던 남선창고터가 있다.
남선창고는 생선 창고로 쓰이며 명태를 보관하던 곳으로, 지금은 터만 남아 있지만 사람들의 추억이 살아 있다. 옛 모습을 간직한 동네를 걸어가다 보면 한강 이남 최초의 교회인 초량교회가 나타난다. 이곳의 '최초'라는 수식어는 길의 역사를 더해준다.
초량초등학교와 초량교회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지역 주민들의 중심지로 자리 잡고 있다. 분주한 일상 속에서 이 길을 걷다 보면 옛것에 대한 향수를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의 삶이 이어지는 이곳에서 과거를 만난다.
세월을 잇는 징검다리처럼 여전히 생활의 중심에 들어앉아 있다.
담장갤러리와 동구 인물사 담장을 지나며 마실 나온 할머니를 만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스물두 살에 시집와 여든여섯 살이 된 할머니의 얼굴 주름마다 세월의 흔적이 스며 있다. 이 길을 통해 살아보지 않은 시절의 골목을 상상하며 인생 이야기를 읽는다.
길은 고불고불한 골목을 따라가다 가파른 168계단을 내놓는다. 이 계단은 누구에게나 숨을 차게 하지만, 과거에는 일상이었을 터다. 누군가는 노동을 위해, 누군가는 학교를 다니기 위해 오르내렸을 이 계단에서 무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계단은 바라보기만 해도 숨이 찬다.
계단을 오르다 보면 아담한 김민부 전망대가 쉬어갈 자리를 제공한다. 가곡 '기다리는 마음'의 작사가 김민부 시인의 이름을 딴 이곳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옛 사람들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동구, 중구, 남구 일대와 부산역, 부산항, 영도까지 시원한 전망이 펼쳐진다.
파란 바다와 하늘이 선사하는 청량감에 바닷바람이 시름을 잊게 한다. 혼자 사색하거나 연인과 데이트하기 좋은 이 길은 부산 여행의 필수 코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