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타고 바다를 가르다 화성 전곡항 요트 체험

바람을 타고 바다를 가르다 화성 전곡항 요트 체험

바람을 타고 바다를 가르다 화성 전곡항 요트 체험

사라질 풍경이 들려주는 연가 화성 우음도

흰 천과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여기서 흰 천은 돛을 의미하는데, 요트는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 따라 돛을 움직여 추진력을 만든다.

서해안 최대 규모 요트 정박지(마리나)를 갖춘 전곡항에 가면 언제든 ‘흰 천과 바람’을 타고 바다를 가르는 요트 체험을 즐길 수 있다.

화성 전곡항은 ‘수도권 요트의 천국’으로 불린다.

지난 2009년 수도권 첫 마리나로 뜨거운 관심 속에 개장해 세계 3대 요트 대회인 월드매치레이싱투어(WMRT)

경기국제보트쇼, 전국해양스포츠제전 등 굵직한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평소에는 일반 관광객을 대상으로 요트 체험을 진행한다.

체험이 아니라도 고급 요트 수백 척이 즐비한 이국적인 풍경을 즐기러 찾아오는 이들이 많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낡은 고기잡이배가 둥둥 떠 있던 작은 어항이 지금은 서해안을 대표하는 인기 마리나로 변신한 셈이다.

언뜻 간만 차이가 큰 서해안에 마리나가 어떻게 들어섰을까 싶지만, 화성시 서신면과 안산시 대부도를 잇는 방파제 덕분에 전곡항은 일정한 수심을 유지한다.

요트는 선체 아래 바람에 밀리는 것을 막아주는 센터보드가 있어 수심이 1.5m 이상 확보돼야 하는데, 전곡항은 밀물과 썰물 때 모두 3m 이상이다.

마리나가 들어서기에 최적의 조건인 것.

섬 둘레를 따라 깎아지른 기암괴석이 아름다운 제부도와 안산 탄도항의 그림 같은 풍력발전기

해넘이 명소로 꼽히는 누에섬까지 요트 위에서 바라보는 서해의 풍경도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서울과 경기도 어디서든 자동차로 한두 시간이면 닿는 접근성이 전곡항마리나의 가장 큰 장점이다.

마리나 내 전곡항여행스테이션과 마리나클럽하우스 1층 관광안내소에서 사설 업체가 운영하는 체험 프로그램을 비교해보고 선택할 수 있다.

처음 방문하는 관광객이라면 관광안내소부터 찾아보길 추천한다.

네 명 이상 가족 단위라면 비용을 조금 더 부담하더라도 단독 승선 프로그램을 선택해야 안전하게 요트 체험을 하고, 요트 내 다양한 휴식 공간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전곡항에 도착하니 해상과 육상 계류장에 빼곡한 요트 300여 척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파란 하늘과 하얀 요트, 그 사이에 선 빨간 등대가 마치 광고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요트를 탄다는 말에 지난밤부터 설렌 아이들은 처음 보는 풍경에 탄성을 터뜨렸다.

요트는 오직 바람의 힘으로 항해하는 딩기, 엔진과 선실을 갖춘 크루저로 분류한다.

요트 체험은 대부분 크루저에서 하는데, 우리가 선택한 크루저는 침실과 샤워실, 주방까지 갖춰 그야말로 바다 위 호텔이다.

바람을 가르며 전곡항을 출발한 크루저는 한 시간 반 남짓 제부도 앞바다를 항해했다.

큰아이는 아빠와 바다낚시를 즐기고 차가운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 선장님이 알려준 대로 직접 키를 잡고 조종도 해봤다.

엄마는 갑판에서 멋스런 인생 사진을 남기고, 센스 만점 선장님이 신나는 댄스음악으로 흥을 돋웠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려진 요트의 낭만을 제대로 만끽한 시간이다.

‘모세의 기적’으로 불리는 바다 갈라짐 현상으로 유명한 제부도는 석양이 아름다운 해변과 드넓은 갯벌이 매력적이다.

사라질 풍경이 들려주는 연가 화성 우음도

사라질 풍경이 들려주는 연가 화성 우음도

사라질 풍경이 들려주는 연가 화성 우음도

시화호가 만들어준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

평택시흥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와 시화대교를 건너다 보면 드넓은 갈대밭이 펼쳐진다.

시화대교를 건너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궁금했을 그곳이 우음도다.

1994년 지금의 시흥시 오이도와 안산시 대부도를 연결한 시화방조제가 완성되면서 군자만에 떠 있던 우음도, 어도, 형도 등이 육지가 됐다.

우음도 갈대밭에 관광·레저 복합 도시 송산그린시티가 들어설 예정이다.

우음도에 가려면 송산그린시티전망대를 찾는 게 빠르다.

전망대에 오르면 우음도와 시화호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 두기로 문 닫을 때가 많으니 개방 여부를 미리 확인해야 한다.

전망대 가는 진입로 입구에 ‘우음도 에코락’이라는 컨테이너 건물이 보인다. 그 앞에 너른 주차장이 있다.

여기가 우음도둘레길(우음도 지오트레일) 시작점이다. 시화호환경학교와 송산그린시티전망대를 거쳐 원점 회귀하는 2.2km 코스로, 한 시간쯤 걸린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화성지질공원 우음도’ 안내판이 눈에 띈다.

18억 년 전 돌인 변성암과 중생대 화성암 등을 관찰할 수 있다는 설명과 사진이 있다.

둘레길에는 안내판이 없으니 여기서 읽어보고 출발하자.

갈대가 무성한 길을 지나면 신기하게 생긴 돌이 군데군데 나타난다.

첫눈에도 뭔가 특별해 보인다. 마침 두 여성이 돌을 보며 조사하는 것 같아 물어보니, 18억 년 전에 생긴 변성암 계열인 호상 편마암이라고 알려준다.

이름처럼 돌에 검은 줄무늬가 뚜렷하다. 호상 편마암 가운데 노란빛이 나는

흰색 바위는 1억 7500만 년 전에 나타난 것으로 추정하는 화성암이다.

두 사람은 화성지질공원 해설을 위해 현장 실습 중이었다.

우음도에서 지질 해설이 진행되면 쉽고 자세히 알 수 있겠다.

야자수 매트가 깔린 길을 따르면 한없이 펼쳐진 갈대밭과 그 속에서 불어오는 차갑고 마른바람, 서걱거리는 소리가 쓸쓸하게 어우러진다.

길 끝에 시화호환경학교가 자리한다. 한국수자원공사에서 운영하는 이 학교는 우음도 일대 습지 탐사를 통해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학교 뒤쪽에 송산그린시티전망대로 오르는 계단이 보인다.

계단을 오르면 전망대가 나오고, 도로를 따라 내려오면 출발한 장소로 돌아온다.

우음도 인근에 화성 고정리 공룡알화석 산지(천연기념물 414호)가 있다.

이곳은 시화방조제 건설로 갯벌이 육지로 변하면서 발견됐는데, 약 1억 년 전 중생대 백악기 공룡의 집단 서식지로 추정한다.

화성시 자료에 따르면, 공룡 알둥지 화석 30여 개와 알 화석 200여 개가 발견됐다.

우선 공룡알화석산지방문자센터에 들러보자.

‘화성시에서 발견된 한국 뿔공룡’이란 뜻인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Koreaceratops hwaseongensis) 화석이 눈에 띈다.

이 화석은 2008년 전곡항에서 발견됐다.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 원시 각룡류이며, 높고 납작한 꼬리로 헤엄을 잘 친다고 한다.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의 생김새가 궁금하면 방문자센터 외벽을 살펴보자.

여러 공룡 장식 중에서 가장 크고 꼬리가 특이하게 생겼다. 이를 캐릭터로 만든 ‘코리요’ 모형도 있어 아이들이 좋아한다.

고정리 공룡알화석 산지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 두기로 문 닫을 때가 있으니 개방 여부를 미리 확인해야 한다.

방문자센터에서 나오면 길 건너편에 공룡알화석 산지로 가는 탐방로가 있다.

탐방로는 덱을 따라 드넓은 갯벌과 갈대밭 사이를 가로지르며 약 1.5km 이어진다.

수려한 풍광 속에 산책하는 맛이 좋다. 전망대를 지나면 특이하게 생긴 붉은색 바위가 나온다.

깨진 공룡 알 화석이 많이 발견된 누드바위다.

좀 더 가면 미국 서부 사막지대에서 본 듯한 무명바위가 있다. 여기서도 공룡 알이 발견됐다. 안내판을 보면 공룡 알 화석을 찾기 쉽다

시화호가 만들어준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

시화호가 만들어준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

시화호가 만들어준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

팔도강산 꽃잔치 속에서 즐기는 소풍 화성 우리꽃식물원

광활한 갈대밭 위로 바람이 지나가고 철새들이 날아들어 쉬어 가는 풍경.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나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드라이브 코스가 있다.

공룡의 흔적을 찾아 갈대밭을 걸으며 긴 사색의 시간도 갖는다.

시화호가 만들어준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로 반나절 나들이의 행복을 느껴보자.

사강시장에서 풍성한 해산물을 구입할 수 있고 대부도 바지락칼국수도 맛볼 수 있는 코스다.

경기도 화성시의 고정리 공룡알화석지를 찾아가는 길은 바닷물이 출렁이던 곳이었다.

시화방조제가 생기면서 만들어진 간척지에는 갈대와 칠면초 등 습지식물들이 자라기 시작했다.

땅이 단단하게 굳으면서 상한염, 중한염, 하안염이라 불리던 섬으로 걸어갈 수 있게 되었고, 그곳에서 30여 개의 알둥지와 200여 개에 달하는 공룡알화석을 발견했다.

1999년의 일이다. 이 공룡알화석들은 세계 3대 공룡알화석으로 꼽히며 2000년에 천연기념물 제414호로 지정되었다.

드넓은 갈대밭 사이로 난 탐방로는 나무 데크로 이어진다.

그 길이가 무려 1.53km에 달해 갈대밭 사이를 천천히 걷다보면 공룡알에 대한 생각조차 잠시 잊게 되는 멋진 길이다.

사방으로 트여 햇살과 바람만이 존재하는 비현실적인 풍경 속을 걷는 듯하다.

중간에는 아담한 전망대와 통나무 벤치가 있어 잠시 쉬어 가도 된다.

광활한 갈대밭이 눈을 씻어주고 바람소리가 마음을 위로하는 곳이다.

나무 데크는 한때 섬이었던 4개의 바위산으로 안내한다.

붉은색 역암과 사암으로 이루어진 바위산은 바닷물에 깎인 흔적이 역력하게 드러난다.

그중 중한염에서 발견된 공룡알화석이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있다.

중한염 외에도 북동쪽에 위치한 닭섬과 개미섬에서도 공룡알화석들이 발견되었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갯벌 바닥에도

수많은 공룡알화석들이 숨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바로 이 일대가 공룡들의 집단 거주지였기 때문이다.

수많은 공룡들이 이곳에 머물며 알을 낳았을 1억 년 전 중생대 백악기는 상상하기 힘든 먼 옛날이다.

그러나 드넓은 갈대밭 아래에 아직도 공룡의 흔적들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어디선가 ‘쿵쿵’ 발소리를 내며 공룡이 걸어 나올 것만 같다.

중한염의 공룡알화석 학습판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공룡알화석들로, 납작한 자갈이 얹힌 모양이다.

그 어미가 어떤 공룡이었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크기가 작은 것으로 보아 초식 공룡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긴 갈대밭 탐방로를 다시 걸어 나와 방문자센터로 가면 공룡알화석지에 대한 설명과 공룡에 관한 다양한 자료를 만날 수 있다.

인근의 전곡항 방파제에서 발견된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의 화석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화성에서 발견된 한국 각룡류 공룡’이란 뜻으로 한국에서 최초로 발견된 뿔공룡의 새로운 속과 종이라고 한다.

공룡알화석을 처리하는 작업 과정을 볼 수 있는 것도 특이하다.

2층 영상관에서는 매시 20분마다 공룡시대의 환경에 대한 영상물을 상영한다.

고정리 공룡알화석지에서 나와 한국수자원공사가 운영하는 시화호전망대로 가보자.

시화방조제와 대부도, 시화호 간척지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아직 포장이 되지 않아 울퉁불퉁한 비포장길을 잠시 달려야 하지만, 간척지 너머로 떨어지는 낙조가 아름다워 사진 동호회의 출사지로도 입소문이 나 있는 곳이다.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와 마산리로 방향을 잡으면 본격적인 드라이브 코스가 시작된다. 과거 바닷가 포구 마을이었던 마산리는 달기로 유명한 송산포도의 생산지다.

팔도강산 꽃잔치 속에서 즐기는 소풍 화성 우리꽃식물원

팔도강산 꽃잔치 속에서 즐기는 소풍 화성 우리꽃식물원

팔도강산 꽃잔치 속에서 즐기는 소풍 화성 우리꽃식물원

근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화성으로 이번 주말 여행

남도의 동백부터 백두산 고산지대의 희귀식물까지, 팔도의 꽃나무와 야생화가 한곳에 모였다.

산골짜기 바위틈에 자라는 돌단풍, 울릉도에 자생하는 만병초가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너른 유리온실 안에 백두대간을 재현한 바위산들이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야외정원과 숲속 쉼터는 돗자리 깔고 소풍 즐기기에 그만이다.

백두대간의 식생을 담은 거대한 한옥 유리온실

화성시에서 운영하는 우리꽃식물원은 전국에 자생하는 야생화로 가득한 소중한 공간이다.

백두산, 금강산, 지리산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커다란 바위 구석구석 야생화들이 자라는 한 옥 유리온실과 야생화정원, 산책로와 쉼터 등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따스한 햇살 가득한 온실 안을 걸으며 고운 자태를 뽐내는 야생화를 감상하고, 야외 쉼터와 산책로에서 소풍 나온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본격적인 야생화 탐방을 시작하기 전,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야생화와 식생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배움터를 방문한다.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아기자기한 공간으로 ‘우리꽃싹틈관’이라는 예쁜 이름이 붙어 있다.

우리나라의 야생화 분포와 특징을 배우고 우리꽃 색칠하기, 탁본 뜨기, 퍼즐 맞추기 등 체험도 해본다.

작은 상영관에서는 사라져가는 희귀 야생화를 담은 영상을 볼 수 있다.

온실 여행에 앞서 우리 야생화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어 특별하다.

배움터에서 나와 계단을 오르면 한옥 온실이 있는 광장으로 연결된다.

밝은 햇살이 가득한 온실의 중심에 커다란 바위산들이 자리하고 있다.

고개를 꺾어 올려다보면 바위 정상부터 아래까지, 바위틈마다 싱그러운 잎사귀를 뽐내는 야생화들이 자라고 있다.

겨우내 따스한 유리온실에서 자란 나무들이 초록 이파리를 가득 달고 꽃을 피우고 있다.

바위틈에서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와 고사리, 관목이 어우러져 산골짜기 계곡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

길목마다 봄꽃들이 발길을 잡는다. 해발 1,500m 고산지대에 사는 백산 진달래도 흰 꽃을 피워 올렸고, 비교적 쉽게 만나는 산당화와 명자나무도 진즉 꽃을 피웠다.

짙푸른 으름 덩굴이 기세 좋게 고목을 휘감고, 5월은 되어야 얼굴을 내미는 하얀 조팝꽃도 팝콘 같은 꽃망울을 가지 가득 매달고 있다.

동선을 따라 이어지는 야생화 꽃잔치에 탐방객의 걸음이 느려진다.

카메라에 꽃을 담고, 꽃 속에 가족의 얼굴을 담으며 얼굴 가득 미소가 번진다.

누가 돌보지 않아도 우리 땅 산과 들에 절로 피고 지는 야생화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감동이 너른 온실 가득하다.

온실을 가득 채운 야생화와 꽃나무를 지나면 온실 속 또 하나의 온실, 석부작실에 닿는다.

나무뿌리와 돌조각에 식물을 심어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목부작과 석부작은 식물 가꾸기를 취미로 하는 이들에게 좋은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우리 집 거실에 두고 보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기는 공간이다.

오래 묵어 세월의 깊이까지 느끼게 하는 다양한 작품들을 감상하며 오래 머물게 된다.

온실 밖으로 나오면 야생화를 식재한 정원으로 이어진다.

각 구역별로 식재된 야생화들이 조용히 싹을 올리고 있다. 봄을 알리는 꽃들은 이미 분주하다.

근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화성으로 이번 주말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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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이 예술로 재탄생하는 곳 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

이름은 익숙하지만 여행지로는 아직 조금 낯선 경기도 화성.

하지만 서울에서 1시간 30분 만에 갈 수 있는 곳으로, 알고 보면 참으로 보석 같은 국내 여행지입니다

식상해진 관광지에 조금 시들해져 새로운 곳을 찾는다면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 장소와 현대적인 디자인이 돋보이는 공간이 한데 공존하는 화성으로 떠나보는 게 어떨까요?

지금부터, 알고 보면 더욱 매력적인 도시, 화성을 소개해보겠습니다.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매력적인 도시 화성

융릉과 건릉 – 정조의 효심과 사도세자의 비참한 삶을 느낄 수 있는 곳

용주사 –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을 모시기 위해 세운 사찰

전곡항(마리나 탐방&요트탑승) – 우리의 힐링을 책임질 즐거운 뱃놀이

제부도 워터 워크 – 깔끔하고 현대적인 디자인이 매력적인 곳

매향리 역사박물관&쿠니사격장 – 역사의 아픈 기억을 되새길 수 있는 곳

융릉과 건릉은 각각 정조대왕과 효의왕후 김 씨 그리고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 씨의 무덤입니다.

당파싸움의 희생양이라고 볼 수도 있는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힌지 8일 만에 죽음에 이르렀고, 현 배봉산에 초라하게 묻혔죠.

이후, 이를 한스럽게 여긴 정조는 즉위 13년 만에 명당이라 불리는 이곳으로 무덤 자리를 옮겼다고 해요.

워낙 유명한 이야기다 보니 살갗에 와닿는 것도 많을뿐더러 길이길이 남을 전대의 역사가 이곳에 고스란히 묻혀있다고 생각하니 화성이 새롭게 보이더라고요.

웅장한 모습의 융릉 정자각. 건릉 역시 융릉과 비슷한 형태를 띠어 주변의 넓은 평지가 이를 에워싸고 있습니다.

여기서 몰랐던 사실 하나! 융릉과 건릉은 2009년 8월 27일,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고 하네요.

정조는 살아생전 아버지의 무덤을 13차례나 방문해 자신이 죽으면 반드시 아버지 옆에 묻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결국 본인의 말대로 아버지 산소 왼쪽에 왕릉을 마련했으나 이후 왕비도 죽음을 맞이하였고, 더 명당이라 평가받는 이곳으로 합장하여 모셨다고 해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컸을지, 정조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대목이었습니다.

융릉과 건릉 사이의 거리가 제법 되지만 그 사이의 녹지 가득한 공간을 거닐면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조용하고 산뜻한 길을 걸으며 정조의 효심과 사도세자의 서글픈 생애를 떠올려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걸 어떨까요.

책에서 읽었던 두 사람의 일화와 조선 시대의 시대적 배경을 거슬러올라가보며 화성이라는 공간 속에 오롯이 가라앉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절이지만 다른 절들과 달리 산속이 아닌 길가에 자리 잡은 게 특징인데요. 고궁과 비슷한 지리적, 위치적특색을 가집니다.

뿐만 아니라 입구에는 보통 궁궐에서 볼 수 있는 삼문도가 보입니다.

사도세자를 모시는 특별한 곳이기 때문에 중간의 큰 문은 평상시에 닫아놓다가 제삿날에만 열어 놓는 게 특기할만한 내용이죠.

재활용이 예술로 재탄생하는 곳 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

재활용이 예술로 재탄생하는 곳 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

재활용이 예술로 재탄생하는 곳 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

국난을 극복한 강직한 삶 오리 이원익 선생을 만나는 충현박물관

수도권에서 가까운 위치에 폐자원으로 만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가 최근 개관했다.

전시 관람뿐 아니라 체험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이곳과 더불어 광명시자원회수시설까지 함께 둘러본다면 그동안 소홀했던 재활용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두 시설에서 운영하는 견학 프로그램은 자녀와 함께 참여하기에도 좋다.

버려진 물건이 작품이 된다

광명시 가학산 주변이 업사이클 테마파크로 거듭나는 중이다.

버려진 자원을 재료로 만든 작품을 전시하는 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이하 업사이클아트센터)가 지난 2015년 6월 개관한 것이다.

업사이클아트센터에서 ‘업사이클’은 ‘업그레이드(upgrade)’와 ‘리사이클(recycle)’을 합친 용어다.

재활용(recycle) 수준에서 머물지 않고 한 단계 더 나아가 작품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업사이클아트센터 방문으로 교육 효과도 기대할 수 있어 전체 방문객 중 자녀를 둔 가족 및 학생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업사이클아트센터는 바로 옆에 있는 광명시자원회수시설 홍보동을 리모델링했다.

함께 개관한 에코에듀센터는 새로 지은 건물이다.

업사이클아트센터 디자인은 김수근건축상을 받은 로랑 페레이라가 담당했다.

페레이라는 영국 BBC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 중 하나로 선정한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의 설계를 맡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1층으로 입장하면 반원 모양의 전시장이다. 통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이 작품을 밝게 비춰 답답한 느낌 없이 전시장을 거닐 수 있다.

1층과 2층에는 업사이클 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아트숍과 음료 및 식사가 가능한 카페가 자리한다.

특히 카페 테라스로 나가면 야외에서 차를 마시며 가학산 자락을 구경할 수 있어 잠깐의 여유를 즐기기에 충분하다.

1, 2층에서 연결된 통로를 지나면 에코에듀센터다.

각종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교육실, 공동작업실, 창고가 있는 곳이다.

창고에는 업사이클아트센터에서 진행하는 디자인 교육의 재료인 폐자재를 모아놓았다.

지역 업체에서 보낸 것들이다. 광명동굴에서 시음 후 보낸 와인병도 볼 수 있다.

홈데코 교실에서 쓰이는 와인병인데, 다육식물을 키우는 화분이나 집안을 꾸미는 조명등을 만드는 데 사용한다.

업사이클 아트 전시회와 다양한 체험

업사이클아트센터 전시장에서는 현재 폐목재나 폐가구를 이용한 작품을 볼 수 있는 ‘리본 가구(RE:BORN FURNITURE)’전이 열리고 있다(2016년 1월 31일까지).

전시에는 하이브로우(이천희 & 이세희), 한정현, 박현진, 신명환, 천근성 등의 작가가 참여해 다른 곳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업사이클 작품들을 보여준다.

뻥튀기를 이용해 만든 명품 가방, 버려진 목재와 와인병을 활용한 테이블도 감상할 수 있다.

작품의 소재, 작가의 아이디어, 그 안에 담긴 의미 등 모든 요소가 흥미로운 전시다.

특히 배우로 활동 중인 이천희 작가와 이세희 작가가 나무 팔레트를 이용해 의자와 테이블을 만든 작품 ‘YARD-FURNITURE’가 눈에 띈다.

어느 휴식 공간에 두어도 어색하지 않을 업사이클 작품이다.

실내외 공간에 상설 전시 중인 작품도 지나치지 말자.

에코에듀센터로 넘어가는 통로 계단에는 프랑스 작가 엘로디 드 루빌이 만든 ‘스타’라는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버려진 주얼리와 각종 자재로 별을 표현한 작품이다. 업사이클아트센터 앞에는 엄아롱 작가의 ‘돌고래, 도시의 숲’이 있다. 쓸모없어진 LP판을 녹여 만든 작품이다.

국난을 극복한 강직한 삶 오리 이원익 선생을 만나는 충현박물관

국난을 극복한 강직한 삶 오리 이원익 선생을 만나는 충현박물관

국난을 극복한 강직한 삶 오리 이원익 선생을 만나는 충현박물관

곤지암 루지 360과 함께 즐기는 광주 힐링 여행

조선 선조와 광해군 때의 이야기를 다룬 사극 <징비록>과 <화정>이 최근 방영되고 있다.

<징비록>은 서애 류성룡 선생의 이야기를, 화정은 광해군 시대 정명공주의 삶을 그린다.

비록 주연은 아니지만 두 드라마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또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 있다.

오리 이원익 선생이다. 그는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등 격동의 시대를 거치면서 나라를 위해 묵묵히 헌신한 명재상이자 이 시대의 귀감이 되는 청백리였다.

오리 이원익 선생의 삶과 유물을 만나볼 수 있는 광명 충현박물관을 찾아가 본다.

영의정만 다섯 차례 오른 명재상

구름을 뚫고 솟아오른 봉우리라 불리는 구름산.

광명시 구름산 서쪽 자락에는 조선시대 명재상이자 청백리로 이름을 드높인 오리 이원익 선생의 흔적이 담긴 충현박물관이 있다.

먼저, 오리 이원익 선생의 삶을 들여다보자.

선생은 조선 명종 때 태어나 선조, 광해군, 인조 대에 이르기까지 60여 년에 걸쳐 공직에 몸담았다.

권력과 부에 집착하지 않고 원칙과 소신으로 국난을 헤쳐나간 명재상이자 청백리, 그리고 백성을 사랑했던 정치가였다.

선조부터 인조 대까지는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이라는 두 차례 국난을 겪었고, 당쟁으로 말미암아 조정 대신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분란의 시대였다.

이원익 선생은 이 혼란의 시대를 거치며 다섯 차례나 최고 중앙관직인 영의정에 올랐다.

선생의 애민사상은 그를 기리기 위해 살아생전에 생사당을 세운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5년 전, 그는 안주목사로 부임했다. 평양과 안주에서 각각 한 글자씩 따서 평안도라 불린 만큼 안주는 변방이지만 무척 중요한 지역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백성을 위해 양곡을 요청해 풍작을 이루었고, 양잠도 장려하는 등 백성들을 보살폈다.

백성들이 그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생사당을 세운 것도 이때 일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를 의주까지 피난시킬 수 있었던 것도 안주목사 때 선정을 베풀어 민심을 얻은 결과였다.

인조 때 이괄의 난과 정묘호란 당시에도 임금을 모시고 충남 공주와 강화도로 각각 호종했다.

당시 그의 나이 78세, 81세에 이르는 노구의 몸이었다.

인목대비 폐위를 반대하다 홍천으로 유배되기도 했고, 인조 즉위 후 광해군을 죽이려 하자 몸소 막았으며, 서애 류성룡이 충무공 이순신을 비판할 때 끝까지 믿음을 보낸 것도 그였다.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개의치 않고 소신을 펼친 일화는 그가 얼마나 강직한 성품을 지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공직에만 60여 년간 몸담았고,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을 거치며 망가질 대로 망가진 조선을 위해 헌신했지만, 아쉽게도 가정에는 소홀했던 듯하다.

부인 영일 정씨가 1603년에 세상을 떠나자 부인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도망시(悼亡詩)>에 미안한 마음이 애절하게 배어 있다.

곤지암 루지 360과 함께 즐기는 광주 힐링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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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지암 루지 360과 함께 즐기는 광주 힐링 여행

자박자박 걸어가니 가만가만 가을이 다가옵니다

서울 근교에 뜨거운 여름을 짜릿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이 있다. 경기도 광주에 신설된 곤지암 루지 360 이 그 주인공.

곤지암 루지 360 은 1.9km 길이의 광폭 트랙과 두 개의 360도 회전 구간을 갖춰 스릴 넘치는 레이싱을 즐길 수 있다.

무동력 썰매를 타고 씽씽 달리며 무더위를 날려보자.

루지에 탑승하기 위해서는 스키하우스 2층 매표소에서 티켓을 구매해야 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파란 벽화가 그려진 터널을 만났다.

미지의 세계로 이어지는 비밀 문을 통과하는 기분이 들었다.

리프트를 타고 정상으로 가는 길.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온몸이 상쾌해졌다.

언덕의 야생화도 노란 잎을 흔들며 반겼다. 저마다의 속도로 루지를 즐기는 다른 이용객들의 모습도 보였다. 나도 빨리 타고 싶다는 생각에 기분이 한껏 들떴다.

탑승장에 내리니 알록달록 무동력 썰매들이 열 맞춰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차례가 되면 마음에 드는 썰매에 앉아 안전교육을 받고 잠시 대기하면 된다.

썰매 조종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핸들 하나로 방향 전환과 속도 조절을 한꺼번에 할 수 있다.

드디어 출발 신호가 떨어졌다. 기대감에 두근두근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구불구불한 트랙을 질주하니 묵은 스트레스가 확 날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아슬아슬하게 코너를 돌 때마다 한여름 더위를 잊은 듯 함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조형물, 트릭아트, 야생화 등 볼거리가 다양해 지루할 틈도 없었다.

무엇보다 스스로 속도를 조절하며 달릴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남녀노소 누구나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오후 6시, 트랙의 LED 조명이 켜졌다. 다양한 색깔로 빛나는 조명 덕분에 분위기가 한층 무르익었다.

루지 운영 마감 시간인 오후 8시까지도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루지와 함께 짜릿한 액티비티를 즐겼다면 지금부턴 푸른 여름 숲을 만끽할 시간이다.

곤지암 루지 360 인근에는 “정답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뜻을 지닌 화담숲이 있다.

이곳의 식물들은 생물자원 보호 차원에서 수집된 것이라 훨씬 다양한 나무와 식물을 만날 수 있다.

계절마다 색도 다른데, 여름에는 눈이 시리도록 짙푸른 초록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가장 먼저 우리를 반겨 주는 곳은 원앙 연못이다.

아름드리나무와 한옥이 한 폭의 그림처럼 어우러져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풍경에 가만히 들어가 멋진 인생샷을 건졌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모노레일 탑승장이 있다.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가 숲 테마 코스로 천천히 걸어 내려올 생각이다.

녹음이 우거진 여름 화담숲은 걷기만 해도 상쾌하지만 모노레일 위에서 바라보는 숲은 또 다른 감동을 준다.

모노레일 내부가 통유리라 화담숲의 싱그러운 여름 풍경을 한층 생생하게 바라볼 수 있다.

모노레일 3코스에서 내려 천천히 걷던 중 산수국을 만났다.

작고 푸른 잎이 반딧불이처럼 반짝 빛났다. 여름에만 볼 수 있는 화담숲의 보물이다.

방문 당시에는 꽃이 살짝 시든 상태였지만 그 매력을 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즐거운 산책을 끝내고 나가는 길, 화담숲 입구에 핀 능소화가 발목을 다시 붙잡았다.

서울 근교에 이런 숲이 있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산책코스 또한 남녀노소 누구나 걷기 편하게 조성되어 있어 가족들의 나들이 코스로 추천할 만하다.

자박자박 걸어가니 가만가만 가을이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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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말을 걸어왔다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인조는 명을 가까이 하고 후금을 멀리하였다.

국력을 키운 후금은 나라의 이름을 청으로 바꾸고 조선을 침략하였다.

이것이 1636년 일어난 ‘병자호란’이다.

막강한 청나라 군대는 빠르게 한성으로 진격하였고, 남한산성으로 피신해 47일 동안 대항하던 인조는 결국 청에 항복하였다.

이후 조선과 청은 신하와 임금의 관계를 맺었고 조선의 백성들은 임진왜란 이후 또다시 크나큰 고통을 겪어야 했다.

남한산성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등산로로 이용하고 있지만, 과거 병자호란의 치욕을 겪은 가슴 아픈 곳이다.

“아빠, 남문으로 갈 거야? 그럼, 나 먼저 간다아아~”

여덟 살 꼬마의 발에 스펀지라도 달린 걸까.

바닥이 꼬마를 밀어 올리듯 가볍게 남한산성 계단을 밟아 나간다.

아빠보다 몇 십 미터를 앞서 걷다 뒤돌아보며 산성을 감상하는 여유도 지녔다.

한두 번 남한산성을 오른 솜씨가 아니다.

중년의 신사에게서 느껴지는 여유와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삶이 곧 경쟁인 현대사회에 남한산성을 자박자박 걷는 꼬마에게서 여유를 배운다.

과자들 틈에 별사탕을 발견하는 마냥, 가을을 걸으니 인생의 단맛이 다가온다.

73칸의 행궁과 80개의 우물이 있던 자리, 남한산성 가을 산행에는 성남시를 경유하는 남문코스가 제격

“…치솟은 능선을 따라가는 성벽이 밤하늘에 닿아 있었고, 모든 별들이 성벽 안으로 모여서 오목한 성은 별을 담은 그릇처럼 보였다…”

작가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의 일부다 .실제 남한산성의 모습은 굽이친 능선에 은테를 두른 듯 하다.

‘별을 담은 그릇처럼 보인다’는 묘사 또한 실제와 같다.

성의 전체적인 형태가 주변부는 높은데 반해, 중심부가 낮고 평평한 평지를 이루고 있는 점을 보면 그렇다.

수비는 쉽게, 성내의 생활은 편하게 해 산성역할에 적합한 지형이었던 셈.

남한산성은 서울 외곽을 지키는 4대 요새 중 동쪽을 맡은 요새였다.

조선시대 산성의 모습을 가장 완벽히 보존하고 있다.

하지만, 남한산성을 얘기할 때면 으레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애초 신라 문무왕 12년에 토성으로 축성 되었던 이력 때문이다.

석성으로 개축한 것은 조선 광해군 12년 후금의 침입을 막고자 한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역사적, 문학적 배경을 차치하고서라도 남한산성은 충분히 아름답고 장엄하다.

일찍이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남한산성에는 동서남북으로 향하는 문과 73칸의 행궁, 80개의 우물, 45개의 샘이 있고, 광주읍의 행정처도 산성 안으로 옮겼다고 기록돼 있다.

산성의 규모와 산성 내의 공간이 가늠키 힘들만큼 크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얼마 되지 않는다.

동, 남문과 서장대, 현절사, 문무관, 장경사, 지수당, 영월정, 침괘정, 이서 장군사당, 숭렬전, 보, 루, 돈대 등이 남아 있다.

그 중 성곽의 모습을 잘 살필 수 있는 곳은 4대문과 수어장대, 서문 중간의 일부 성곽 정도다.

가을 정취를 느끼며 성곽을 걷는 길은 크게 세개 정도로 꼽을 수 있다.

얼굴이 말을 걸어왔다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얼굴이 말을 걸어왔다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얼굴이 말을 걸어왔다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배려 가득한 산책로에서 행복한 하루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의 할머니들은 아무 말이 없다.

얼굴로 지난한 세월을 이야기한다. 그림 속 할머니들은 깊게 팬 주름에 서러운 이야기가 겹겹이 쌓여 있다.

박물관 얼굴에는 1000여 개의 얼굴이 복닥거린다.

어떤 얼굴은 뭔가를 염원하는 듯하고, 어떤 얼굴은 기나긴 세월을 지나며 감정의 무용함을 깨달은 듯하다.

시간이라는 씨줄과 이야기라는 날줄로 직조된 얼굴들.

무수한 얼굴이 전하는 말을 들으러 경기도 광주를 찾는다.

1930년대 솜털이 하얗던 소녀들은 2019년, 백발성성한 할머니가 됐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생긴 지 80여 년이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 할머니 238명 중 생존한 할머니는 22명뿐.

이들의 평균 나이는 90대에 접어들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할머니들을 좀 더 잘 기억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반가운 소식이 있다.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이 새로 증축된 것이다.

“우리가 강요에 못 이겨 했던 그 일을 역사에 남겨 두어야 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로 증언한 김학순 할머니 말에 힘입어 1998년 처음 문을 열었다.

그 후로 20년에 접어드는 2017년 말, 유품전시관과 추모기록관(이하 추모관)이 세워졌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소녀상 ‘못다 핀 꽃’과 할머니들 흉상이 있는 입구를 지나 나눔의 집 뒤편으로 향하면 추모관이다.

옅은 회벽에 기와를 얹은 2층 건물이다.

추모관 1층 전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기획전시관에는 할머니들 초상화가, 유품전시관에는 할머니들 유품이, 그림전시관에는 할머니들이 직접 그린 그림 20여 점이 전시돼 있다.

벽 양옆에 가로세로 1m가 넘는 그림 10점이 나란하다. 공연예술가 팝핀현준이 그린 할머니들 그림이다.

그는 말했다. “할머니들 얼굴이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또 그렸다”고. 할머니마다 표정도 분위기도 제각각이다.

백발의 박옥련 할머니는 입을 한 일자로 굳게 다물었고, 배춘희 할머니는 생긋 미소 지을 듯 입꼬리가 올라갔다.

김군자 할머니는 금방이라도 “밥은 먹었우?” 하고 말을 걸어올 듯 장난기 어린 눈빛이다.

할머니들은 입을 열어 자신을 설명하는 대신, 선과 색이 빚은 표정으로 한 많은 인생을 내비친다.

소녀의 피눈물은 말라붙어 할머니의 주름이 됐다. 화폭 속 할머니들은 끝내 일본의 공식 사죄를 받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가까운 일은 기억 못해도 옛일은 왜 이리 생생한지 모르겠다.”

김순덕 할머니의 말씀이다. 유품전시관에는 할머니 열일곱 분의 인생 이력과 사진, 생전에 쓰던 물건이 있다.

‘한 맺힌 삶을 살다.’ 전시관 소개 글에 딸린 제목이다. 즐거운 일보다는 한스러운 일이, 기억하고픈 일보다는 잊고 싶은 일이 많은 인생이었다.

“끌려간 친구들은 다 죽고, 나 혼자만 살아 돌아왔어.”

11살,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중 가장 어린 나이. 김외한 할머니는 일본 홋카이도에서 혼자 돌아왔다.

김옥주 할머니는 일자리가 있다는 일본인 집주인의 말에 속았다. 도착한 곳은 중국 하이난섬 위안소였다. 단 몇 줄로 축약하기에는 사연 하나하나가 길고 길다.

생전 쓰시던 물건들은 어찌나 소박한지. 돋보기, 화투, 한글 교본, 고국으로 넘어올 때 손에 ‘단디’ 쥐었을 여권….

울컥했다 화가 났다 아릿했다 분주한 마음을 달래가며 보느라 걸음이 느려진다.

그림전시관에는 잔잔한 음악이 깔린다. 서촌 골목길, 작은 갤러리에 들어온 듯하다.

할머니들은 1993년부터 그림 수업을 받았다. 처음에는 주변 사물을 따라 그리는 정도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비통한 지난날을 표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