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마음으로 떠나는 과천 박물관 여행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는 과천 박물관 여행
서울 양재동과 이어진 과천에는 체험거리 많은 박물관이 있다.
서예의 대가 추사 김정희의 일생과 서예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추사박물관이다.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서예체험도 할 수 있어 체험학습장으로 훌륭하다. 과학의 원리를 배우고 몸으로 체험하는 국립과천과학관도 가까이 있다.
추사 김정희(1786~1856)라는 이름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의 생애는 ‘추사체’라는 커다란 족적에 가려 있다.
예서, 전서, 초서, 해서, 행서 등 서예의 기본 서체 외에 특별히 추사체는 김정희의 글씨체를 말한다.
두께를 달리하며 그어나가는 획과 비틀어진 듯 보이는 글자들이 파격적이어서 마치 그림 같은 느낌을 주는 서체다.
추사는 금석학의 대가로 청나라에까지 이름을 떨쳤고, 당대의 문인, 승려들과 교우하며 수많은 서예작품을 남겼다.
전국의 고찰이나 유적지에서 추사의 글씨를 많이 만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경기도 과천시에 자리한 추사박물관은 출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김정희의 생애와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전시물만 대충 훑어보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문화해설사의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돌아볼 수 있어 더욱 의미 있다.
박물관 여행은 매표소가 있는 1층을 지나 2층 ‘추사의 생애실’에서 출발한다.
긴 눈매가 인상적인 추사의 초상화가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는다.
눈가에 주름을 잡으며 웃고 있지만 강한 성격과 위엄이 느껴지는 얼굴이다.
추사의 증조모는 영조의 딸 화순옹주다.
추사는 여덟 살 어린나이에 후손이 없는 큰아버지의 양자로 갔는데, 이때 생부 김노경의 안부를 묻는 편지가 전시되어 있다.
지금으로 치면 초등학교 1학년생의 글씨다. 또박또박 써내려간 글자에 아버지와 동생들의 안부를 묻는 의젓함이 그대로 나타나는 편지다.
북학파의 대가인 박제가의 제자로, 아버지의 청국 사행에 동행하며 금석학에 눈을 뜨는 과정도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연경에 머물며 금석학의 대가로 꼽히던 옹방강, 완원 등과 사제의 연을 맺고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후 추사는 금석학에 매진하여 무학대사가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던 북한산의 비석이 신라시대 진흥왕순수비임을 밝혀낸다.
이후 관직에 나아가 성균관대사성과 이조참판을 역임했다.
1840년 윤상도의 옥사에 연루되어 유배를 갔는데, 당시 머물렀던 서귀포 유배지를 모형으로 만날 수 있다.
제주에서 보낸 8년의 유배 기간 동안 추사체를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귀포 유배지 모형 옆에는 교과서에도 실린 <세한도>가 길게 이어져 있다.
<세한도>가 그려지게 된 사연도 특별하다. <세한도>는 제주 유배 당시 제자였던 이상적에게 선물로 그려준 것이다.
이상적은 청나라에 드나들던 통역관으로, 유배지 밖으로 벗어날 수 없어 오직 서책과 벗하며 지내던 추사에게 청나라의 최신 서적을 구해주던 인물이다.
추사는 어렵게 구한 책을 힘없는 자신에게 보내주는 이상적의 마음에 눈시울을 적시며 《논어》에 나오는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라는 구절을 떠올렸다.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의미이다.
어려운 지경이 되어서야 고마움을 알게 되었음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