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이원익 선생을 만나는 충현박물관

오리 이원익 선생을 만나는 충현박물관

조선 선조와 광해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에서 빠지지 않는 인물이 오리 이원익 선생입니다. 그는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같은 국난을 겪으며 나라를 위해 헌신한 명재상으로, 청백리의 상징이자 백성을 사랑한 정치가였습니다.

광명시 구름산 서쪽 자락에 위치한 충현박물관은 이원익 선생의 삶과 유물을 담고 있습니다. 구름산은 그 이름처럼 높이 솟아오른 봉우리로, 이곳에서 그의 흔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원익 선생은 조선 명종 때 태어나 선조, 광해군, 인조 대까지 60여 년간 공직에 몸담았습니다. 권력과 부에 얽매이지 않고 원칙을 지키며 국난을 헤쳐나간 그는 다섯 차례 영의정에 오른 인물입니다.

그의 애민사상은 안주목사 시절에 잘 드러납니다. 안주는 평안도의 중요한 지역으로, 그는 이곳에서 양곡을 요청해 풍작을 이뤘고, 양잠을 장려하며 백성을 보살폈습니다. 이 덕분에 백성들은 그의 선정을 기리며 생사당을 세웠습니다.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에서의 역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생은 선조를 의주까지 피난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는 안주목사 때 쌓은 민심 덕분이었습니다. 또한 인조 때 이괄의 난과 정묘호란에서 그는 78세와 81세의 나이에도 임금을 호종하며 충성을 다했습니다.

인목대비 폐위를 반대하다 유배를 당하거나, 광해군을 보호하려 했던 일화는 그의 강직한 성품을 보여줍니다. 서애 류성룡이 충무공 이순신을 비판할 때도 끝까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공직 생활 60여 년 동안 조선의 혼란을 견디며 헌신했으나, 가정에는 소홀했던 면이 있었습니다. 부인 영일 정씨가 세상을 떠난 후 지은 <도망시>에서 그의 미안한 마음이 드러납니다.

“상투를 틀고 쪽 찔러 부부가 된 지 / 지금에 와서 여러 해 지났구려 / 벼슬하러 사방을 나다녔으니 / 독수공방하는 날 얼마나 많았던가! / 한 방에 함께한 날이 며칠이었는가? / (중략) / 나는 병에 시달리며 아직 죽지를 않고 / 지루하게도 숨만 쉬고 있노라 / 널을 어루만지며 그대를 떠나보내니 / 그대 할 일 다 마친 것 부럽소 / 그대를 따라갈 것 몹시 원하지 / 세상에 오래 사는 것 원치 않으니 / 황천에서 혹시나 서로 다르게 되면 / 업보의 인연 응당 이전과 같으리.”

부인이 떠난 지 30년 후, 선생도 그녀 곁에 잠들었습니다. 충현박물관에서 그의 이야기를 통해 조선의 격동기를 되새겨보는 것은 여전히 의미深い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