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중앙공원 은행나무전설과 청주여행이야기

청주 중앙공원 은행나무전설과 청주여행이야기

고려 말의 정치 상황은 건국 초기부터 멸망까지 오랑캐들의 침략으로 인해 안정되지 못했다. 특히 원의 간섭이 약 100년 동안 지속되면서 고려의 힘을 약화시켰고, 홍건적과 왜구의 잦은 침략은 백성들의 삶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부패한 귀족과 사찰이 백성들의 땅을 빼앗았으며, 1368년 원이 멸망하고 명이 들어서자 정치 세력은 친명파와 친원파로 나뉘어 대립을 거듭했다. 이성계는 친명파로서 요동 정벌 명령을 거부하고 위화도에서 회군해 고려 왕조의 멸망을 촉진했다.

세계 최초의 금속 활자본 '직지'로 유명한 청주는 충청북도의 중심지다. 이곳은 아름다운 도시 풍경과 오랜 역사, 전통을 자랑하는 문화재가 많아 중요한 장소로 꼽인다. 또한, 여행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음식점, 숙박 시설, 휴식 공간 등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

여행자들을 위한 인프라

6월의 신록이 푸르른 시기에 청주를 방문하면, 도시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여행지를 탐방하며 조상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여다볼 수 있다.

청주 중앙공원에 있는 은행나무는 압각수로, 충청북도 기념물 제5호로 지정된 1000여 년 된 거목이다. 이 나무는 시내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으며, 그 크기가 장정 여러 명이 팔을 뻗어도 감싸지 않을 만큼 웅장하다.

이 은행나무에는 고려 말의 정치 상황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진다. 옛 청주관아가 있던 자리에 위치한 이 나무 옆에는 청주옥이라는 감옥이 있었다. 고려 공양왕 시절, 10여 명의 죄수가 이곳에 갇혔다. 이들 중에는 목은 이색, 도은 이숭인, 양촌 권근, 인재 이종학 같은 충신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색 선생은 학문과 인품이 뛰어나 조선 성리학의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다. 그들은 이성계와 공양왕을 모함했다는 죄로 고문을 당했다. 고문 후 밤늦게 큰 비가 내리며 물이 불어나 감옥을 휩쓸었다. 죄수들은 물론 관리들과 백성들까지 물에 떠내려갔다.

은행나무의 기적

이색 선생도 물에 휩쓸렸지만, 하늘 높은 은행나무 가지가 내려와 그를 붙잡았다. 선생이 가지를 잡자 나무는 다시 하늘로 올라갔고, 선생은 나무 꼭대기에 안착했다. 놀랍게도 다른 죄수들도 함께 나무 위에 올라 있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고문했던 관리들이 물살에 떠내려가며 도움을 구하는 모습이었다. 청주 사람たちは 이 광경을 보고 하늘이 무고한 죄수들을 구했다며 칭송했다. 공양왕도 이 사건을 통해 그들의 무죄를 인정하고 풀어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